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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꽂을 데가 없다 하더라도. | 리 베 의 시 선 2020-11-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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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참여

결혼을 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우리의 첫 보금자리는 대구였다.

그 중 1년 반 동안, 한 사람은 대구에서 한 사람은 수원에서 지냈다.

대구에서 지내는 사람은 그 중 2년 동안 동네에서 작은 커피집을 했다.

 

1년 반의 주말부부 생활을 끝내고, 수원에서 지내던 사람이 대구로 돌아온 후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경북 구미에 터를 잡았다.

 

대구에서 구미로 이사를 했다. 고속도로로 왕복 2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

마침 계약이 만료되기도 했고, 매일 오고 가는 것도 쉽지만은 않아서 대구에 있던 커피집도 닫았다.

 

13평 아파트에서 23평 아파트로 옮겨왔을 때,

대구 집을 빼곡히 채우던 가구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도 여기 저기 생겨난 여백의 미가 낯설기도 했다. 가게를 정리하고 가게에 있던 짐을 조금씩 가져오면서 그 여백들은 차곡차곡 채워졌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연애시절, 데이트의 8할이 독서와 공부였을 만큼,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수원에서, 대구 집에서, 가게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가지고 있던 책들을 한 데 모았더니

열다섯 칸짜리 책장 2개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에 쌓아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옮겨오느라 먼지가 탄 책들을 장르별로, 작가별로 차근히 정리하면서

혹시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버리거나, 깨끗하게 읽어 중고서점에 팔 수 있는 책들이 있을까 싶었지만 

찾을 마음이 없었는지, 정성껏 찾지 않았는지, 몇 번을 훑어보아도 떠나보낼 책이 없었다.

 

알록달록 형광펜으로 여기저기 줄도 긋고, 이런 저런 메모도 해 둔 책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팔수는 없었다. 사실은 어쩌면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 편이 확실하다.


나는 워낙 버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구석구석 차곡차곡 쌓아두는 걸 잘 하는 사람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책을 대할 때는 더욱 기준이 깐깐해진다.

이 책은 이런 이유로, 저 책은 저런 이유로 도저히 떠나보낼 수가 없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일 수도,

쓰고 긋고 접으며 읽는 자유분방한 습관 때문일 수도,

떠나보낸다는 다소 감정적인 표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결국 나는 이번에도 단 한 권도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저 비좁은 책장 사이사이 빈 공간을 찾아 눕히고 기울여 꼭꼭 채워 넣었을 뿐.

 

이사를 하면서 그 좋아하는 옷을 커다란 장바구니에 꾹꾹 눌러 담아 4번이나 내다버렸는데도

책은 한 권도 버리지 못한 것처럼, 앞으로도 나는 손때 묻은 책을 떠나보내기는 어려울 듯싶다.

 

버리거나, 떠나보내지 못하고 이고 지고 살아야 한다면 그만큼 더욱 사랑해주기로 했다.

두 번 세 번 읽을 책이라면 다섯 번도 읽고더 많이 쓰고, 긋고, 접으면서

오롯이 내 것으로 누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가지고 살아갈 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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