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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계절 / 불편한 진실 | 기본 카테고리 2023-01-09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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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태풍의 계절

페르난다 멜초르 저/엄지영 역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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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단어에 집중하다 보면 책을 바로 덮을 것이다. 그로테스크를 들여다보는 통찰만이 이 소설의 완성도를 이해할 수 있다. 휘휘 젓듯 걷어 낼 건 걷어내고 비집고 들어가 찾아낸 여백의 공감하나 건지면 된다. 추악하고 배려심 없는 전개에 손사래를 쳐도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멜초르의 문체는 확신에 차있다. 이유와 핑계는 찾아볼 수 없고 한곳을 향해 정확하게 칼끝을 겨눈다. 반박조차 할 수 없어 고통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


『태풍의 계절』
페르난다 멜초르 / 엄지영 역 | 을유문화사 | 2022년
독일 문화의 집이 수여한 국제 문학상과 안나 제거스상 수상
맨부커상 국제 부분과 더블린 국제 문학상의 최종 후보


『다리에 난 털만큼이나 검은 스타킹과 검은 긴소매 블라우스, 마찬가지로 검은 치마와 하이힐, 또 검고 긴 머리칼을 정수리에 둥글게 말아 올린 뒤 그 위에 머리핀으로 고정시킨 베일까지, 온몸을 모두 검은색으로 치장한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놀라서인지 웃겨서인지, 사람들은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머리가 타들어 갈 지경인데』


마녀의 등장에 리얼리즘을 흔들어 놓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마녀의 존재가 시사하는 바는 컸다. 빈곤과 폭력, 혐오 그리고 차별 속에서 그들에게 믿을만한 구석이 필요했고 마녀는 우스운 구경거리인 동시에 두려움과 미신적인 존재였다.


『나무 위에서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 앉아있는 소년들의 등이 저녁 햇살에 비쳐 반짝였다. 어떤 등은 타미린드 씨앗처럼 갈색으로 빛났고, 어떤 등은 우유로 만든 과자나 잘 익은 사포딜라의 과육처럼 부드럽고 매끈했다. 계피 빛깔 혹은 자단목과 비슷한 마호가니 빛깔의 피부, 물에 젖어 반짝이면서 탄력이 넘치는 피부. 저 멀리서, 마녀가 숨어서 엿보고 있는 곳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나무줄기 위에서 어른거리는 빛깔들. 마녀의 눈에 그 살결들은 매끄러우면서도 아직 시고 떫은 풋과일의 과육처럼 속이 꽉 차고 단단해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망설임 없이 써 내려간 이 문단은 태풍의 계절에서 제일 아름답다. 마녀는 산들바람을 타고 들판에 떠도는 남자아이들의 짭조름한 체취를 상상 속에서 음미하기 위해, 베일을 머리 위로 걷어 올렸다. 쉴 새 없이 불어 대는 산들바람에 모든 것들이 끝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빈곤과 소외,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며, 나무줄기 위에서 어른거리는 빛깔을 통해 다가온 성애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유일한 시도는 극에 달하고 통제에 익숙하지 않아 가학적인 행위까지 받아들여 사회적 문제를 여과 없이 노출시키는데 멜초르는 성공한다. 표현은 쉴 틈 없이 거침없었다. 본능이라고도 내세울 수 없는 그들의 무지에서 솟아오르는 빈곤과 폭력, 마약과 동성애로 뒤범벅된 괴기한 리듬에 맞추다 보니 슬픔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불편한 진실에 펜 하나로 맞서는 멜초르에게 총알은 저속한 단어들이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어둠의 쏟아냄은 반드시 존재하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독자를 자극에 시달리게 하여 어둠에 충실한 삶을 맛보게 하는 일이 그녀의 목적은 아닐까.


마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그들 간의 얽힘은 연민을 자아내면서 극의 흐름이 살인이라는 범죄보다 사회적 소외로부터 오는 취약함을 더 와닿게 한다. 타락한 인물들은 어느새 기억 속에서 잊히고 설득력 있는 멜초르의 외침만이 자리 잡게 해 짙은 어둠만을 토해내는 『태풍의 계절』이다.


그들을 향한 연민의 끝은 어디인지. 인간답게 사는 삶의 기준 속에 그들은 어디만큼 닿았는지. 과연 그 기준이 얼마나 합당한가에 대한 암실문고의 물음은 ‘21세기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어두운 성취’라는 타이틀을 한 번 더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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