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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0 의 전체보기
조용한 아내_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누구나 겪고 있는 | 나의 서재 2020-03-1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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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용한 아내

A.S.A. 해리 저/박현주 역
엘릭시르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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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나를 찾아줘’와 대척점에 설 수 있는 아주 내밀하고도 절제된 심리 스릴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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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나를 찾아줘’와 대척점에 설 수 있는

아주 내밀하고도 절제된 심리 스릴러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일, 가족, 사랑 혹은 수많은 것들 사이에서 수시로 열등감과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극복 가능성을 채워줄 대상 혹은 상대를 찾아 끝없이 헤매는 존재들인지 모르겠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행동과 발달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존재에 보편적인 열등감·무력감과 이를 보상 또는 극복하려는 권력에의 의지, 즉 열등감에 대한 보상욕구’라고. 『조용한 아내』 속의 조디와 토드에겐 서로가 그런 존재였다. 명석하고 아름다우며 같이 있으면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 조디, 상대가 편안한지 확인할 줄 아는 섬세한 배려를 지녔으면서도 활력으로 가득한 남자 토드는 각자가 지닌 불완전한 면모들을 상대로 하여금 채울 수 있었기에 서로를 갈망했다. 하지만 욕망은 다른 욕망으로 곧잘 대체되기 마련이고, 비록 비루한 현실이라 하더라도 일상이 모두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고서야 쉽게 전복되지 않는다. 여러 번에 걸친 토드의 외도로 이미 그들의 관계는 진즉에 무너졌어야 마땅하지만 관계는 유예되고 일상은 지속된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안정’과 ‘평온’이 위협받게 된 지금, 조디는 자신의 것을 지켜야만 한다.

 

 

 

 

 

 

사랑과 결혼에 관한 우울한 심리학

 

 

   『조용한 아내』는 이십 년간 이어온 가정에 위기가 닥친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다. 소설은 조디와 토드의 시점을 교차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부부의 극명한 시각차와 내밀한 결혼 생활의 현실은 바로 이 구성 안에서 극의 묘미와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아들러 심리학 연구자이자 심리상담사인 조디는 친구들과 낚시 여행을 가겠다는 말로 불륜 상대와의 여행을 감추려는 토드를 통해 외도의 낌새를 눈치 채지만 토드는 이를 알 리가 없다. 이미 조디는 그의 여러 번에 걸친 외도를 눈감아 준 바가 있다. 심리상담가인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토드는 과거에 알코올 의존자인 아버지와 학대받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나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불능과 권위에 대한 혐오, 충동적인 모험심은 사업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그의 끝없는 외도는 깊이 자리잡은 열등감을 반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하나 그녀가 확실하게 아는 것 중에 하나는 가정이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토드뿐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에게 ‘가정은 외도를 화려하게 만드는 대척점’이 되고, 외도란 그 정의상 ‘비밀이고 일시적이며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는 것이고, 장기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복잡한 일들로 이어지지 않기에 매력적인 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는 그의 거짓 여행이 이십 년간 유지해온 그들의 결혼 생활까지 무너뜨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의 삶은 이제 정점에 이르렀으며 이십 년간 지속된 토드 길버트와의 부부 생활로 천천히 침식당한 청춘의 탄력성이 붕괴의 마지막 단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그녀는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아를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에 관한 개념이 본인의 생각보다 훨씬 불안정하고 취약하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그녀에게서 살인자의 모습이 튀어나오기까지 앞으로 고작 몇 달의 시간이면 충분할 텐데도. / 10p

 

예전에 조디는 토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는 나의 약점이야. 나는 그 사람한테 약하지.” 그녀는 이 말을 일종의 합리화로서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했다. 남자를 위해 자기의 모습을 변형하는 것은 이제 환영받는 일이 아니고, 현대 여성해방의 관점에선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제단에 자기의 가치를 바디는 것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로서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도를 넘어선 관용이 널리 설파되지는 않을지언정, 두 사람이 일상적으로 몸을 맞대고 살며 생활의 전제로서 서로의 존재 방식을 호흡해야 한다면 필연적으로 어떤 유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 200p

 

 

 

 

 

 

   토드는 오랜 친구인 딘의 딸 나타샤와 아내인 조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조디를 사랑한다. 오랫동안 건축 일에 골몰했던 그로서는 박사 학위에 석사 학위도 지닌 명석한 아내가 자랑스럽다. 언제든 그를 위해 정성껏 내어오는 요리와 분별력, 편안함과 위안을 제공하는 그녀는 심지어 여전히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간혹 조디가 그보다 한 계층 위의 사람이라며 떠들기 좋아하는 친구들로부터 놀림감이 되는 것에 심기가 불편하다. 엄밀하게 계산된 대화를 나누며 적당하게 술을 마시고 저녁을 든 뒤, 불을 끄고 갓 세탁한 파자마를 갖춰 입은 채로 이불 속에 들어가는 이 비슷한 패턴에도 언제부턴가 흥미가 떨어졌다. 더욱 씁쓸한 것은 다른 부부들처럼 시끄럽게 말이 많고 싸우다 화해하기를 반복하기보다 항의를 하지도, 고함을 치지도 않는 그녀의 무거운 침묵이, 고집스러운 가식이, 그 안에 내재된 강인함이 그를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타샤는 달랐다. 우울증으로 한참 힘들었을 때, 그녀는 삶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한 남자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감정 속에서 살게 했다.

 

 

 

소년 시절 그의 집에 평형감각이란 없었다. 항상 불확실한 동맹이 문제였다. 어머니는 그를 아버지에게서 보호했고, 아버지는 그가 어머니를 적대하도록 했으며, 그 자신도 혼란을 느끼고 충성이라는 감각을 변형시켰다. / 171p

 

 

어떤 사람들은 삶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가령, 조디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규칙에 따라 나의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디는 그를 높이 평가한다. 그의 성공, 그리고 약속을 실천하고 꿈의 영역을 걸어가는 그의 능력을 찬탄한다. 그는 조디에게 칭찬받는 게 좋다. 그녀의 칭찬은 몇 년간이나 그를 두둥실 떠오르게 하고 용기를 주었다. 또한 칭찬에는 그 자신을 약간 조절하고 궤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엄격한 훈육 같은 것이 따라왔다. 그녀가 없었어도 그는 자기 길을 갈 수 있었을 테지만 그녀의 존재는 일종의 자동차 윤활유가 되어주었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사랑받지는 않는다. 심지어 어머니의 사랑조차 타협의 결과였다. 어머니의 사랑은 죄책감으로 병들었고,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해 다소 가로막히기도 했다. / 284p

 

 

 

 

 

 

   설사 외도를 한다 하더라도 이 평온한 관계가 유지만 된다면 조디는 토드를 용서할 생각이었다. 심지어 나타샤가 토드의 아이를 가지고, 그가 집을 나설 때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전담 변호사를 통해 조디에게 퇴거 명령이 내려지자 그녀는 이 관계가 정말 끝에 다다랐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그녀는 항상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여자, 잘 운영하는 여자였기에 그간 쌓아놓은 삶들이 한꺼번에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결국 카드까지 모두 정지되고, 집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할 때가 왔음을 실감한다.

 

 

 

   한편, 토드는 조디와 함께 살던 집을 나와 나타샤와의 결혼을 준비하는 중에도 나타샤와 함께하는 삶이 편안히 정착될지, 지금보다 안정되고 정돈될지, 무엇보다 조디와 함께하는 삶과 비슷할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나타샤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데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래저래 심란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나타샤와의 약속을 깨고 일로나라는 웨이트리스를 만나러 가던 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조용한 아내』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줘』를 떠올리게 된다. ‘외도를 한 남편’과 ‘살해 혹은 남편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아내’라는 가정 스릴러의 공식과 결을 같이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나를 찾아줘』가 강렬한 서사와 엎치락뒤치락하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매우 극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아내』는 내밀하고도 절제된 서사에 섬세한 문장,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한 부부의 관계를 밀도 있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그 누구도 부부의 속사정을 다 알지 못하지만, 누구나 겪고 있는 부부만의 고민들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여기에 불안정한 유년기의 가정환경이 한 개인의 자아 형성과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심도 있게 접근한다는 점에서도 이 책을 단순히 스릴러로 한정 짓기 아쉬운 이유다.

 

 

 

제러드: 그럼 당신이 처리해야 한다는 것, 그게 당신 일이라고 부모님이 당연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

조디: 저로선 기분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전 그냥 어린애였는데 그런 권위와 책임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그게 제게 힘을 주었던 것 같아요. 분명 저의 자아 이미지에 영향을 끼쳤을 거고, 물론 궁극적으로는 제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주었죠. 제가 라이언을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요. / 275p

 

 

가운데 낀 딸로서 사는 기분, 부모님이 그녀에게는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사실, 그녀가 학교에서 우등생이 되고 전문가이자 주부로서 가치를 드러냄으로써 부모님에게 반항하려 한 것. 그녀에게 경쟁심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여지도 없었다. 또한 그녀가 양쪽 부모에게서 하나씩 물려받은 기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에게서는 가정을 사랑하는 기질. 그녀는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도 더 원가족의 산물이었다. / 333p

 

 

 

   이 책이 영화화가 확정되면서 조디 역으로는 니콜 키드먼이 낙점되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아름다우며 어딘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는 조디 역으로 그녀는 무척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강렬한 서사가 아닌 심리적인 내러티브를 강조한 이 소설이 어떻게 영화화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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