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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_ 추억하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 나의 서재 2017-06-30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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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저/이은선 역
다산책방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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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가는 순간에,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은 눈부신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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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가는 순간에,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은 눈부신 동화!

 

 

  너른 광장 하나가 있다. 그곳에는 늘 한 자리에 머물러서 내가 서 있는 쪽을 지그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딘지 모르게 바쁘게 사라졌다가 다시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는 사람들도 있다. 광장의 한쪽에는 프리지아가 한 가득 피어있고, 뿌리 깊은 높다란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기도 하다. 나의 아이가 좋아하는 아기 사자 인형이 작은 벤치에 놓여 있고, 그 옆에 있는 멋진 그랜드 피아노 위에서는 악보 하나가 살포시 부는 바람에 팔랑팔랑 소리를 내며 페이지를 넘긴다. 하늘 위에는 뭔가가 둥실둥실 떠다니는데 가만히 보면 구름이 아니라 책이다. 그렇다, 이곳은 다름 아닌 ‘기억’이라는 나만의 광장이다. 이 광장은 당시의 감정이나 기분, 정서를 동반하는 온갖 매개체들이 존재하는 나만의 우주 즉, 나만의 천체이다. 기억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끼거나 인생의 마지막에 임박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이 광장을 함께 거닐며 그것들에 얽힌 사연들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이별을 마주할 수 있다면 어쩐지 그 이별이 슬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헤어짐을 배워가는 손자        

 

 

 

“노아한테 뭐라고 하지? 내가 죽기도 전에 그 아이를 떠나야 한다는 걸 무슨 수로 설명하지?” / 31p

 

 

 

  세상에 이별에 익숙한 사람이 있을까. 일생에 누구나 한 번은 이별을 마주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특히 가족과의 이별 앞에서는 누구나 깊은 상실감과 무기력함을 느끼곤 할 것이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속 할아버지는 서서히 잃어가는 기억만큼 하루하루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손자의 이름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좋아서 항상 ‘노아노아’라고 부르는 그는 손자와의, 기억과의 이별 앞에서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이별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에게도, 이별을 설명해야만 하는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기억이라는 광장으로 손자를 이끌며 두려움 없이 작별할 수 있는 서로만의 방식을 찾아나간다. 두 사람이 굉장히 좋아하는 수학 이야기를 하거나, 광장에 존재하는 반짝이는 추억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원의 넓이를 계산할 때 필요한 원주율 외우기도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게임이다. 할아버지는 비밀의 문을 열어서 온 우주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런 신비한 숫자들을 사랑한다. 할아버지는 원주율을 소수점 이하 200번째 자리까지 외운다. 아이의 기록은 그 절반이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사고는 확장되고 할아버지의 사고는 수축돼서 둘이 중간에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 40p

 

 

‘중요함!’ 한 건물을 이렇게 깜빡인다. ‘기억할 것!’ 한 건물을 이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높은 건물은 ‘노아의 사진들’이라고 반짝인다.

“저 건물들은 뭐예요, 할아버지?”

“기록을 보관하는 곳. 중요한 것들이 전부 저 안에 들어 있지.”

“예를 들면 어떤 거요?”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모든 것. 사진, 영화, 그리고 네가 준 가장 쓸모없는 선물들.”

할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리고 노아도 웃음을 터뜨린다. / 62p

 

 

 

 

 

 

 

   이 소설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아이의 사고는 확장되고 할아버지의 사고는 수축돼서 중간에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말하는 데에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점점 자라고 한 사람은 점점 작아져서 몇 년이 지나면 중간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존재한다. 광장이 하룻밤 새 작아졌음을 눈으로 보면서, 모든 게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며 삶에 대한 기대마저도 잃기 마련이지지만 여기, 이 우주처럼 어디로 확장될지 모르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으니까. 나를 추억해 줄 테니까, 슬프지 않다. 이렇듯 상실과 새로운 시작을 따뜻하고 담담하게 담아내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이별이 단순히 단절과 사라짐이 아니라는 잔잔한 울림을 준다.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답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 81p

 

 

 

나랑 평생을 함께 했잖아요. 내 평생을 가져갔으면서.

 

 

 

“여보, 기억들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어. 물과 기름을 분리하려고 할 때처럼 말이야.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 85p

 

 

 

 

 

 

  이별을 준비하면서 할아버지는 아내와 나눈 시간들에 대한 회상과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유독 사무친다.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의 사람으로 지내며 히아신스 향기가 나고 가끔 고수 냄새도 풍기는 정원에서 공유했던 그들의 시간이 지금은 이토록 생생한데, 그 기억이 지워지게 될 것을 생각하면 나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는가. 이별을 직면하게 되고나니 더욱 크게 느껴지는 서로의 존재와 그 애절한 마음을 “당신의 히아신스. 그 향기가 이렇게 강렬했던 적이 없는데.” 이 한 문장으로 압축한 저자의 표현이 애잔하게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우리가 맨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당신이 잠자는 시간이 고문이라고 했던 거 기억나요?”

“응. 잠은 같이 잘 수 없었으니까.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거기가 어디인지 알아차리기 전 몇 초 동안 얼마나 괴로웠다고.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아차리기 전 몇 초 동안 말이야.”

그녀는 그에게 입을 맞춘다.

“매일 아침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점점 길어질 거예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이유는 당신의 머리가, 당신의 세상이 남들보다 넓었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 97p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마치 『어린 왕자』와 같은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기법으로 인해 확실히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과는 차별화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보일 생각으로 시작한 원고가 아니라고 한 저자의 말처럼 두터운 서사나 흥미로운 전개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 되돌아볼 ‘나’라는 기억의 광장에 앞으로 무엇을 채워나가야 할 지 청사진을 그려보게 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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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시간_ 애써 채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넘치는 | 나의 서재 2017-06-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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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차의 시간

마스다 미리 글,그림/권남희 역
이봄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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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시간, 인생의 단상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우리는 차를 마시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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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시간, 인생의 단상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우리는 차를 마시러 갑니다.

 

 

 

   그간 써왔던 서평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써볼까 해요. 그냥, 어쩐지 마스다 미리 작가님이 쓸 법한 어투처럼, 느긋하면서도 편안하게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마스다 미리 작가님은 『평범하고 느긋한 나의 작가 생활』,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주말엔 숲으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등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만화와 에세이로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녀의 신작 『차의 시간』은 커피와 카페라는 공간을 애정해마지 않는 저로써는 흥미를 감출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카페가 내 집 안방처럼 되는 일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있어 카페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을 넘어 꽤나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지요. 퇴근길에 삼삼오오 모인 일행과 가벼운 수다를 즐기거나 다정한 연인과 달콤한 디저트만큼이나 달달한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며, 비밀스러운 고민과 서로의 푸념을 덜어주는 위로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카페는 온갖 인생의 단상들이 머무르는 곳이 맞는 듯합니다. 차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공감력이 확대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고요. 식어가는 찻잔과 녹아드는 얼음으로 커피가 거의 물이 되어갈 만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날의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면 참 별 거 없다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러나 그 순간, 순간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미스다 마리 작가님도 알고 있었어요. ‘잡담’을 유사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거기에는 담소, 여담, 잡소리, 소담, 한담, 에피소드, 잡음 등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도 많은 말이 있더라는 거예요. 결국 그날 그저 가볍게 나눈 잡담이란 것이 알고 보면 참 소중한 말이었단 거지요.

 

 

 

 

 

 

 

  요즘 카페를 가면 노트북을 켜고 일하거나 책을 펼쳐들고 저마다 자신의 미래에 몰두하고 있는 청년들이 참 많아요. 『차의 시간』 속에도 그런 장면이 담겨져 있어요. 취업준비 중인 듯한 대학생 그룹 열 명이 토론 같은 하고 있는 광경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 하는 밝고 건강한 ‘미래’ 같은 것을 눈으로 마주하는 느낌이랄까요. 한때는 저도 그들 중 한 명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이르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들의 모습이 유독 젊어 보입니다. 저들의 눈에 제 모습은 30대 중반에 아이 하나를 둔 아줌마의 모습으로 보이는 건 아닌지 괜스레 움츠러들곤 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이 쓴 단순한 문장 하나가 마음의 무게를 더네요. 40대를 인생의 반환점이니 뭐니 하지만 반환한 사람이 있나?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장면은 화려한 수식어 따위가 없어도 큰 위로가 됩니다.

 

 

 

 

 

 

 

 

 

인간은 성장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의 숫자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생물이야. 

 

 

 

  팬 사인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세 명의 출판사 직원들과 가졌던 티타임 장면이 참 인상적입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작가님은 자신이 먹을 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는데, 디저트가 세 개 뿐인 건 왜인지 의문이 들었나봅니다. 각자 하나씩 먹으려면 네 개가 필요한데 말이죠.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혼자 한 개씩 디저트를 먹기보다 여러 가지 주문해서 함께 나눠 먹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지요. 마치 된장찌개 하나로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가져가는 것처럼 말이죠. 개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주 예쁘게 생긴 디저트 하나만 있어도 분위기는 묘하게 달콤해지고 우리는 그 달달함을 나눠먹음으로써 감정을 공유하게 되니까요. 어쩌면 차의 시간은 ‘애써 채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넘치는, 그런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말입니다.

 

 

 

   『차의 시간』을 읽고 나니 누군가와의 티타임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어쩐지 이전과는 다르게 티타임 이후의 여운까지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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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기술_ 우리는 왜 기억하고 망각하는가 | 나의 서재 2017-06-2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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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망각의 기술

이반 이스쿠이에르두 저/김영선 역
심심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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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을 완성하는 기억과 망각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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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을 완성하는 기억과 망각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다!

 

 

  우리는 모두 기억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기억의 산물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감각 정보들을 받아들여 이를 저장시키고, 회상이라는 작용을 통해 복기해나가는 일련의 연속된 행위들 속에서 우리의 삶이 유지된다. 알츠하이머나 치매와 같이 기억장애를 지닌 이들이 겪는 곤란함에 비추어보았을 때 기억은 생존과 결부될 만큼 기능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기억은 정서적이기도 하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잊고 싶어 몸부림치게 만드는 아픈 상처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왜 반드시 잊고 싶은 기억은 유독 끝끝내 잊히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영화 <맨 인 블랙>처럼 기억을 지워주는 아이템이라도 있다면, 불쑥불쑥 떠오르는 괴로운 기억 따윈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을 텐데.

 

 

 

   이렇듯 우리에게 ‘망각의 기술’이란 게 있다면, 이것을 적절히 사용할 수만 있다면 삶의 만족도가 보다 높아질 수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이유로 『망각의 기술』이란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쉽게 기억을 통제하지 못하듯 망각 또한 통제하기 어려운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나름의 근거를 통해 기술을 체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접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기대와 달리 ‘지우고 싶은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법에 대해 기술한 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책은 기억과 망각이란 무엇이며, 신경과학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을 일으키게 하는 생화학적 기제들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다소 전문적인 주제를 다룬다. 즉, ‘우리는 왜 기억을 하고 또 잊는 것인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의 기술로써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기억과 망각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망각한다

 

 

   『망각의 기술』의 저자 이반 안토니오 이스쿠이에르두는 브라질의 과학자로 학습과 기억을 연구한 신경생물학 분야의 선구자이다. 그는 생물학적 기제에서 기억 과정을 설명하는 일에 초점을 둔 연구를 통해, 뇌에서 어떤 정보가 기억으로 형성되는 과정과 공포나 스트레스 등 특정 상태일 때만 인출되는 기억 인출 조절에 에피네프린, 도파민,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 그리고 아세틸콜린 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최초로 밝혀낸 인물이다.

 

 

 

   그는 기억이란 우리가 흔히 학습이라고 부르는 습득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말한다. 경험이 뇌의 언어로 번역되면 그 결과 생긴 정보는 기억의 흔적이나 기억 파일로 응고화 되어 뇌의 언어로 저장되는 것이다. 그는《심리학》이라는 저서를 출간한 맥고가 “기억의 가장 두드러진 양상은 망각”이라고 한 말을 인용해, 우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분명히, 매일 우리 기억의 많은 부분이 영원히 사라진다. 망각이란 기억을 형성하고 인출하는 기제가 포화될 수 있기 때문에 쓰이지 않는 기존 기억은 새로운 기억에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정리되고 마는 과정이다. 즉, 우리가 모두 개인으로서 활발히 또는 흡족히 행동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기억 또는 기억의 단편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는 곧 망각 역시 기억만큼이나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듯, 우리가 망각하는 것 또한 우리 자신임을 피력한다.

 

 

 

 

 

 

   기억을 떠오르지 않게 하는 데는 습관화, 소거, 차별화, 억압의 네 가지 방식이 있다. 이 네 가지는 근본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기억으로의 접근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습관화란 망각의 기술을 이루는 중요한 기둥으로, 경적소리를 처음 들으면 놀라서 그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만, 열아홉 번째로 경적소리를 들으면 그냥 무시해버리는 예를 통해 점진적인 반응의 억제를 바로 습관화라 명명한다. 습관화는 우리가 세상을 좀 더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도록 도와준다. 공항 같은 시끄러운 장소 또는 극장처럼 빛이 많거나 공공시장처럼 여러 목소리가 뒤섞이는 곳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소거는 우리에게 친숙한 ‘파블로프의 개’의 실험으로 설명된다. 신호음은 조건 자극, 먹이는 무조건 자극, 개가 습득한 신호음에 타액을 분비하는 반응은 조건 반사다. 무조건 자극은 조건 행동을 강화하기 때문에 ‘강화물’이라고 부른다. 일단 조건화를 확립한 뒤 강화물을 생략하면 동물은 조건 반응을 억제한다. 이것이 바로 소거이다.

 

 

 

   차별화는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반응을 일으키는 자극과 질적으로 비슷한 자극에 대한 반응을 억제하는 것이다. 어린 아기가 주변 모든 남성을 ‘아빠’라고 부르다가 곧 진짜 아빠를 가리키는 데만 한정해서 이 말을 쓰도록 스스로 학습하듯, 아무 남성을 보고 아빠라고 부르는 일을 억제하는 것을 차별화라고 한다. 앞선 세 가지가 학습의 형태를 통해 이뤄진다면 마지막인 억압은 의식 안으로 어떤 기억을 들여보내지 않기 위해 그 표출을 억제하는 것으로, ‘자발적 억압’이 뇌 체계 작동 결과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진짜 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망각의 네 가지 기술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생존하는데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기억과 망각에 관여하는 뇌 영역과 감정이 기억의 형성과 인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원인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증명한다. 인간과 다른 동물, 주로 포유류에게 있어 감정적이지 않은 순간은 없다. 이런 점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자극적인 기억이 대개 잘 기억되는 것은, 이때 기억의 형성과 인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신경호르몬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정서적 각성이 해마와 편도체의 노르아드레날린성 자극을 발생시켜 더 선명하고 강렬한 기억의 형성과 인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정서나 감정의 영역이라 여겼던 부분까지도 뇌의 기능과 호르몬의 역할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하니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신경을 제거한 횡격막 실험이 극적으로 보여주듯 시냅스의 폐기는 그것을 거쳐 이동한 정보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확실한 방법이다. 라몬 이 카할이 1893년에 주장하고 현대 신경과학이 증명한 대로 시냅스가 기억 보관소로 여겨지는 한, 인간과 모든 동물에게 일어나는 진짜 망각의 대부분은 시냅스의 폐기에서 비롯된다. / 121p

 

 

기억이 지속되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 기억의 감정적 내용이나 개인적인 중요성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많은 각성이 따르는 강렬한 감정 상태에서 습득한 기억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이 과정은 보통 기저외측 편도체로부터의 입력 그리고 노르아드레날린성 및 도파민성 자극으로, 해마에 있는 기억 형성 세포의 유전자가 활성화하고 단백질 합성이 강화된 결과다. / 123p

 

 

 

 

 

 

 

   뇌 속에는 단백질과 뉴런의 많은 교체가 이루어지는데, 하루에도 여러 차례 구성 물질을 바꾼다고 한다. 뇌에 들어오는 많은 정보가 그 안에 그대로 머물지 않으며 다른 정보로 대체되거나 또는 대체되지 않을 수도 있는, 매우 복잡하고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기억과 망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존재들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자서전 《살아남기》의 첫 구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기억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라고. 결국 내 삶을 완성해가는 건 무엇을 기억하느냐와 무엇을 망각하느냐 사이에 있음을,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 역시 그 지점에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불편하고 귀찮은 기억에 사로잡힐 때마다 나의 뇌에게 ‘소거’하자, ‘억압’하자 하고 명령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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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셀프트래블_ 태양의 마법에 빠지다 | 나의 서재 2017-06-2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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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페인 셀프 트래블

김은하 저
상상출판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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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축복으로 가득한 스페인의 열정과 낭만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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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축복으로 가득한 스페인의 열정과 낭만을 즐기다!

스페인 자유여행을 위한 맞춤형 실속 가이드북! 

 

 

   최근에 <유럽여행 베스트 123>이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가 있다면 바로 스페인이었다. 평소 스페인에 대한 이렇다 할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탓에 그 책을 읽고 나서는, ‘스페인이 이렇게 매력 넘치는 나라였어?’ 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아마도 그 어디보다 자신만의 색채를 가장 뚜렷이 갖고 있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 같이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 구시가지의 소소한 일상과 한낮의 느긋한 여유까지 즐길 수 있는 스페인은 이제 가장 가고 싶은 유럽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여행 정보에 로컬의 감성까지 더하다!

 

 

   <스페인 셀프트래블>은 스페인을 보다 가깝고, 깊게 이해하는데 제격인 맞춤형 가이드북이다. 그간 여러 여행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역시 저자의 필력에 따라 가이드북의 이미지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스페인 셀프트래블>은 단순히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스페인 백과사전과 같이 깊이 있는 정보와 더불어 한 편의 에세이를 읽듯 로컬의 감성까지 다채로운 독자의 니즈를 충족시킨다. 드넓은 영토와 장엄한 자연환경을 갖춘 스페인의 지정학적인 매력을 비롯하여 뛰어난 예술가를 많이 배출해낸 문화와 예술의 품격, 강렬한 축제의 희열과 풍부한 농수산물을 바탕으로 한 미식의 향연 등 삶이 곧 문화인 현지인들의 모습까지 속속들이 소개한다. 넓은 땅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스페인 속에서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아야 이 땅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저자 덕분에 우리는 단숨에 태양의 마법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베스트 오브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의 유산으로 스페인 최고의 관광도시가 됐지만 가우디의 건축 여행 말고도 바르셀로나에서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하는 일들은 많다. 도시의 예술적인 면모는 미술관뿐 아니라 작은 골목의 디자인 상점에서도 드러나며 유명한 축구 클럽과 레스토랑, 19세기 모더니즘 건축물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자, 그럼 예술 도시의 아름다움과 지중해의 활기와 여유 속으로 들어가 보자. / 56p

 

 

 

 

 

 

   책은 스페인 내에서 ‘바르셀로나’에 특히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바르셀로나는 로마 시대부터 중세까지 지중해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만큼 경제적 부흥과 함께 뛰어난 모데르니스모 건축들이 꽃을 피웠다. 익히 알고 있는 가우디를 비롯한 많은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활약하였으며 피카소와 미로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활동하여 곳곳에 많은 유산들을 남기기도 하였다. 저자는 바르셀로나로의 여행 계획을 꿈꾼다면, 반드시 가우디 건축물 보기, 보케리아 시장 구경하기, 구시가지 산책하기,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시간 보내기, 현지 음식 최대한 먹어 보기를 추천한다. 적어도 3박 4일 이상 길게는 일주일의 일정을 제안하면서 이에 따른 최적화된 여행 코스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계절의 변화에 따른 여행법이나 주요 여행 팁, 언어와 문화, 드넓은 도시 전경 및 다양한 쇼핑 루트도 함께 제공한다. 특히 바르셀로나를 직접 다녀온 여행자들의 후기와 그들의 만면에 띤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스페인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르셀로나의 로컬 감성과 아티스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보른’에 꼭 들려보고 싶다. 웅장한 카탈루냐 음악당과 피카소 미술관을 비롯하여 아기자기하고 유니크한 디자인 공방이 몰려있는 거리를 산책하다보면 ‘아, 바르셀로나에 오길 잘했어!’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올 듯하다. 보른을 비롯하여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가우디 박물관과도 같은 ‘엑삼플레’가 아닐까. 동화 속 집을 연상케 하는 카사 바트요와 강한 파도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라 페드레라, 지금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정도로 거대한 종교의 미적 감각을 자랑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전공하는 신랑이 이곳에 온다면 무궁무진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최현석 셰프가 TV에서 선보인 분자요리를 맛볼 수 있는 디스프루타르 식당에서의 식사도 기대가 된다. 단, 이 도시에서는 가격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고 하니 그 와중에도 합리적인 가격의 식당을 소개해주는 저자의 추천지를 참고해봄직 하다.

 

 

 

 

 

 

 

   책은 바르셀로나의 근교를 포함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동화 속 성을 찾을 수 있는 ‘세고비아’, 스페인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톨레도’, 정열의 나라를 상징하는 ‘세비야’,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머무른 절벽 위의 하얀 도시 ‘론다’, 아트 도시로 변모 중인 항구 도시 ‘말라가’, 이슬람 왕국의 마지막 도시 ‘그라나다’, 스페인 제3의 도시 ‘발렌시아’, 위대한 화가 고야를 만날 수 있는 ‘사라고사’, 무데하르 양식을 꽃피운 도시 ‘테루엘’, 미식의 도시 ‘산 세바스티안’, 문화의 도시로 거듭난 ‘빌바오’, 북부 여행의 경유 도시 ‘산탄데르’, 유럽의 봉우리들이라는 뜻으로 스페인 북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피코스 데 에우로파’, 순례자들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방대한 정보들을 아우른다. 이 중 그라나다는 이슬람 건축물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멕시코 출신의 비평가가 자신의 시에 “그라나다에서 장님이 되는 것만큼 불행한 인생은 없다”고 표현하였고,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 역시 “스페인에서 한 도시만 방문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라나다여야 한다.”고 했다고 하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책은 다양한 특색을 지닌 지역에 관한 정보 외에 로컬 음악과 플라멩코의 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클럽을 소개하고 있는 점 또한 이색적이다. ‘바(Bar)’ 문화가 그 어느 나라보다 발달된 스페인인만큼 레스토랑 외에도 바와 카페, 베이커리 등 특색 있는 미식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추천지도 흥미롭다. 끝으로 스페인에 관한 기본 정보와 축제 및 연중 행사, 여행 준비에 필수인 입출국 정보, 교통, 여행 준비 등과 같은 가이드북에 있어서 필수 정보들도 상세히 다루고 있으니 유용하다. 이렇듯 <스페인 셀프트래블>은 여느 가이드북 보다 스페인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으면서 실용적인 정보들로 가득하다. 모두들~ 이 책을 읽고 Buen Viage!(부엔 비아헤!: 좋은 여행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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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_ 해답 없는 문제, 탈출구를 잃은 자들의 공포 | 나의 서재 2017-06-2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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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직 두 사람

김영하 저
문학동네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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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반복되는, 탈출구 없는 인생 그 이후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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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반복되는, 탈출구 없는 인생 그 이후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독보적인 존재감, 독자적인 경계 어디쯤에 서 있는 작가, 김영하!

 

  한국 문단에 있어 가장 동경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김연수 작가와 김영하 작가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로 두 작가는 다소 다른 지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는데, 김연수 작가는 전통적인 문법을 가장 소설가답게 단단하게 여밀 줄 안다면 김영하 작가는 문법 속에 자의식을 애써 투영시키지 않고 치밀한 듯 치밀하지 않은 듯 해체와 결합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독특한 문학 세계를 완성시킨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책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어쩐지 맹목적인 믿음 같은 게 있어서 작가의 신작 소설집『오직 두 사람』을 냉큼 구매했다. 역시나, 무려 7년 동안 쓴 7편의 단편 소설을 모아 출간하였을 만큼 출판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독자적인 존재감은 여전했다.

 

 

 

인생의 원점을 잃은 이들에 대하여

 

 

   7편의 단편 소설들을 아우르는 『오직 두 사람』은 끝없는 상실과 돌아갈 자리를 잃어버린, 인생의 원점을 잃어버린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하여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와 같은 명쾌한 해답이 있다면 좋겠는데 인생이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의 연속인지라 매사 그것을 담담하고 성숙하게 견뎌내는 것만이 능사라는 듯이 말이다. 때문에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 것’으로 소설집을 갈무리한 작가의 말이 마음을 씁쓸히 휩쓸고 간다.

 

 

 

   7편의 단편 소설들은 대체로 가장 일상적인 곳에서 찾아오는 공포와 낯선 판타지의 기묘한 동거로 이루어져있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은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 출신자인 언니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을 생각하며 현주는 자신의 상황에 투영시킨다. 현주는 앞선 희귀 언어 사용자처럼 아빠는 자신에게, 자신은 아빠에게 ‘오직 두 사람’이지만 ‘오직 한 사람’ 같은 존재로 서로만이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유독 현주만을 편애하고 집착하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는 아빠이지만, 자신의 삶에 있어 ‘커다란 결락이자 중독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아빠를 향한 현주의 이중적인 감정은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듯한 기분을 같게 되는 것이다. 아빠를 잃어버린 것은 곧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으로의 진입을 의미함으로 이러한 상실이 그녀의 앞길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언니, 수학에 이런 방정식 있잖아요? 예를 들면 3x+4xy+6xyz=8이라고 해요. 그럼 좌변에서 x를 괄호 밖으로 빼낼 수 있잖아요? x(3+4y+6yz)=8. 여기서 x가 아빠예요. 아빠를 괄호 밖으로 빼내면 수식은 참 단순해져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빠가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니에요. 수식을 잘 보세요. 괄호 밖에서 x가 모두를 가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 36p

 

 

 

   7편의 단편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아이를 찾습니다』였다. 마트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의 상실감을 그린 작품으로, 무려 11년 동안 일상이 뒤틀리고 조각난 삶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아이를 찾아 헤매는 윤석의 처절한 모습이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아이를 잃었다는 자괴감에 조현병에 걸린 아내와 낡은 단칸방 생활 속에서도 잃어버린 아들만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던 그의 맹목적인 믿음 또한 조악한 인생사의 헛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쓰라렸다. 특히,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 아이를 잃어버린 순간 아내인 미라가 표현한 공포는 너무나 일상적인 곳에서 벌어졌기에 더욱 섬뜩했다.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이 매장 안으로 벌써 세 번째 울려퍼졌다. 반향은 없었다. 방목하는 양떼처럼, 수백 대의 카트들이 매장 안을 평화롭게 소요하고 있었다. 미라는 그들 사이로 헤치고 들어가 소리치고 싶었다. 왜 아무도 방송을 듣지 않아요? 여러분도 아이가 있잖아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 48p

 

 

십 년간 그는 ‘실종된 성민이 아빠’로 살아왔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그것이 끝나버렸다. 행복 그 비슷한 무엇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불행이 익숙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 그는 한 번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민이만 찾으면, 성민이만 찾으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 이후를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퇴행성이라는 미라의 조현병까지도 씻은듯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 65p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작품은 탈출구를 없는 기이한 공간 속에 내던져진 이들의 이야기 <신의 장난>이다. 일종의 입사 테스트의 명목으로 연수를 온 네 명의 남녀가 느닷없이 ‘방 탈출 게임’에 휘말려버린 것인데, 어딘가에 힌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탈출을 시도하려했던 시도가 무색할 정도로 이들은 오랜 기간 감금 상태에 이르고 만다. 이들은 방문에 온몸을 던져 부딪쳐도 보고, 속죄의 기도를 끊임없이 올리거나 자신들을 가둔 이들을 교란시킬 수 있을 만한 일들을 꾸며도 보지만 마치 영화 ‘큐브’처럼 끝없는 미로에 잠식당한다.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탈출구 없는 인생을 상징하는 듯하다. ‘정은은 그녀를 다독이고 태준은 다시 서성이고 강재는 철문으로 돌진하고…… 그렇게 그들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긴 여운을 준다.

 

 

 

“정은씨, 난 언제나 현재가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여기만 지나가자. 그럼 나아질 거야. 그런데 늘 더 나빠졌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더 행복했어요. 그럼 지금 이 순간도 최악이 아닐 수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이 그래도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서는 가장 젊고, 제일 괜찮은 순간일 수 있다는 건데…… 우리 모두 여기서 늙어가다가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처음 들어왔던 때가 그래도 좋았어. 그땐 젊었고, 희망도 있었다.” / 257p

이 외에도 <인생의 원점>, 제3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이들 역시 이 주제를 아우르는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역시나, 하고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뛰어난 가독성과 문학과 대중의 경계를 아우르며 특별한 지점에 위치해 있는 작가의 존재감이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독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다음에도 그의 작품이 나온다면 나는 이번과 같이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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