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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의 실종_ 언어와 정체성, 그 경계의 사이에서 | 나의 서재 2018-11-1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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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프랑스어의 실종

아시아 제바르 저/장진영 역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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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민자의 삶과 고뇌를 오롯이 담아내기 위한 섬세하고도 유려한 문장들이 전하는 문학적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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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와 프랑스 사이의 경계에서 평생을 숙고해왔던 문제들을 다룬 작가의 역작!

피식민자의 삶과 고뇌를 오롯이 담아내기 위한 섬세하고도 유려한 문장들이 전하는 문학적 힘!

 

 

   19세기 후반, 서양의 열강 세력들이 월등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약소국을 식민지 삼아 팽창주의를 펼쳤던 때가 있었다. 모로코와 리니지에 인접한 아프리카 국가, 일명 '알제'라고 불리는 알제리(Algeria)는 지정학적으로 유럽권 국가와 인접했기에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프랑스의 침공으로부터 피할 수 없었다. 1830년부터 1962년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최근까지 프랑스의 영향권 하에 있었고 독립을 하는 과정에서도 민족주의자들간의 대립, 아랍권 과격파 및 정치적 유혈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자국민들의 의식과 피부 속에 갖가지 상흔을 남겼다. <프랑스어의 실종>은 바로 이러한 프랑스의 식민지하에서 고통 받았던 알제리 국민들의 애환과 상처들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덕분에 알제리란 나라가 우리에겐 멀고도 꽤 낯선 나라임에 틀림없지만 제국주의라는 명명 하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우리의 역사와 유사점이 많아 그 슬픔과 상처가 가깝게 다가온다.

 

 

 

언어와 정체성, 경계자의 시선에서 그려낸 피식민자의 삶

 

 

   아시아 제바르.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저명하고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이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덕분에 아랍의 여느 여자아이와 달리 프랑스 학교를 다니며 역사를 공부하고, 파리로 유학을 가 최초의 무슬림 여학생이 세브르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는 이례적인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알제리이슬람학생총연합의 동맹 파업에 가담하여 시험에 응하지 않은 탓에 퇴학 처분을 받은 뒤로 작품 집필 및 영화 제작에 몰두하며 프랑스 식민지하에서 고통 받던 알제리의 실상과 내부 문제들을 드러내는 작업에 몰두한다. <프랑스어의 실종>은 그녀의 열한 번째 장편 소설로, 역사 속 격변기를 통과하며 살아온 피식민자로서의 삶을 생생하게 구현해냄으로써 작가의 주제 의식과 희망이 종합적으로 담긴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설은 크게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20년 동안 살면서 사회보장기금 행정부서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베르칸이 불현듯 직장을 그만두고 고국 알제리로 돌아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나간다. 그는 돌아온 곳에서 알게 된 어부 라시드와의 대화를 통해 그간 '상실된 수많은 단어와 부활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언어'를 다시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으로부터 창씨개명을 강요받았던 우리처럼, 베르칸 역시 구어인 아랍어와 문어인 프랑스어 사이의 경계에 위치해있어야 했기에 모국어처럼 사용한다고는 하나 프랑스어는 그에게 있어서 외부의 언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고뇌는 프랑스에서 머물던 시절 자신의 연인이었던 배우 마리즈에게 편지를 쓰며 '그 망명이 왜 그리 길었고 또 왜 그렇게 늦게 끝났을까' 하며 자신의 어지러운 마음을 토로하는 데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귀향의 충격, 당신과 헤어진 데서 오는 슬픔, 여자를 가까이 못한 지 6개월이 되었다는 사실, 내가 고독을 즐기고, 내가 고독을 선택했지만 한밤중에 밖에서 가을날의 폭풍우가 내 감각을 무기력하게 만들 때,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어린아이는 바로 이 귀향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 "이 땅에서는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잃어버렸던 목소리가 다시 살아나고, 소리치고, 나로 하여금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고 있소. 정신을 사납게 하는 모호한 그 목소리를 당신에게 편지로 전하는 건 어둠 속에서 되살아나는 이 두려움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요. / 27p

 

 

 

   소설에 있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베르칸이 유년 시절에 자신이 누비고 다녔던 카스바의 거리에서 프랑스의 압제가 가져다 준 공포, 즉 원체험을 떠올리는 데서 알제리의 불운한 역사를 복기하는 장면이다. 자신이 다니던 프랑스 학교에서 알제리 국기를 그림 속에 그렸다는 이유로 교장실에 끌려가 따귀를 맞았던 경험들, 프랑스인 정육점 주인을 갈고리에 매달고 경찰서를 공격해 그들의 무기를 빼앗자고 선동하는 무리들, 대마초 흡연자들의 모임 장소로 쓰인 삼촌의 이발소와 그의 죽음까지. 하지만 더욱 그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비록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했으나 그렇다고 상황이 현저히 나아진 것 같지 않은 파손되고 황폐화된, 심지어 타락한 이 터전과의 재회였다.

 

 

 

"다른 거, 그들이 교문이 걸어 놓은 건 그들 거야!"

누구나 자기 깃발이 있다는 논리는 빈틈이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우리 것은 왜 감출까?'라는 의문만 빼놓고는. / 41p

 

 

프랑스어는 공급자 선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네! 단지 자본의 네트워크만 있을 뿐인데, 그것이 이러한 도시 계획의 병원이야. 그들은 무엇보다 현장에서 살게 될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아. 함께 대화해야 할 가문의 대표자도, 뒷받침해 주어야 할 전통 장인도 마찬가지야. 그래, 시민들은 전혀 믿지 않는 거야! 오직 동료 악당들끼리 나눠 가질 수입만 고려하고 있어. 자네도 잘 알고 있잖은가! / 73p

 

 

이것이 제3세계 국가에서 일어나는 기억력 마비의 운명 아니던가? 마치 그 장소에 새겨진 고통의 기록이 검인 도장 이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하다. 이름이라니! 그게 전부라니! 이것은 사회 전체가 숨 가쁘게 앞으로 달려가고, 기본적인 생존 임무를 향해 맹목적으로 서두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수도 중심지에서 사라진 덧없는 흔적들이여! / 80p

 

 

 

 

 

 

   2부는 귀향 후 한 달 뒤, 베르칸이 나지아라는 낯선 여인을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이때 베르칸은 과거 민족해방전선에 의해 할아버지인 라르비가 암살된 날의 이야기를 듣는데, 여기에서 그간 베르칸의 입장에서만 서술되어오던 전개가 여성인 나지아로 바뀌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또 다른 피식민자로서의 삶은 물론, 여전히 여성을 억압하는 알제리사회 내부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나지아의 목소리를 통해 어쩌면 작가 자신을 그녀에게 투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욱이 소설은 베르칸과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눈 나지아를 통해 그간 결핍처럼 느끼고 있었던 언어와 자신의 정체성의 경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만난 마리즈에게서는 채워지지 않던 갈증이 나지아를 통해 비로소 해소되는데, 이는 프랑스어를 상징하는 마리즈가 아닌 아랍어와 알제리를 상징하는 나지아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프랑스어의 실종'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늙은 할머니(이 일은 할머니가 나이 든 후였어요)와 젊은 아버지, 서로 결속되어 있는 두 사람이 실성한 건 그날이었다고 생각돼요……. 그들은 영원히 미친 사람이 되었어요. 나와 너무도 가까운 사람들, 영원히 불타 버린 사람들, 치유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뒤집어 쓴 피 때문이에요! / 118p

 

 

두 살. 그녀는 이제 거의 마흔 살이 되어 간다. 원숙한 여인인 그녀가 정박하고 있는 곳은 아디인가? 최초의 드라마가 있었던 그 현장인가, 아니면 망명지마다 그녀가 모시고 다닌 할머니의 끊임없는 고통 속인가? / 119p

 

 

 

 

 

 

   이어 3부에서는 갑작스러운 베르칸의 실종으로 인해 동생인 드리스, 마리즈, 나지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환되며 알제리의 현실과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여성, 언어, 역사의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관조한다. 3부에서는 대체로 상징적인 문체들이 나의 발목을 잡고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하지만, 나지아가 '베르칸, 나는 어떻게 될까요. 망명자인가요? 흔히들 망명이 쓸쓸한 거라고 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아요! 나는 난민인가요? 하지만 무엇으로부터의 피난민일까요? 나는 무국적자예요, 비록 내가 두 개의 여권을 갖고 있고, 마치 결정적으로 '앞으로만 정진하자!'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3개 국어를 말하지만요. 그래도 나는 내가 도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라고 쓴 편지의 대목이나 "땅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와 같은 코페르니쿠스의 인용된 말은 경계인의 삶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삶의 방향성을 가늠케 한다.

 

 

 

   이렇듯 <프랑스어의 실종>은 식민지하에서 분열과 대립, 억압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과 삶의 방향성이라는 꽤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유려하고도 섬세한 문장과 입체감 있는 구성으로 인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만하다. 더욱이 프랑스어권 문학에서 고전 반열에 오른 아랍 작가라는 프로필만으로도 우리는 그녀가 도전하고 보여주고자 했던 삶의 열망들을 기꺼이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의 언어는 내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나의 아버지와 또 아버지의 아버지가 통과한 삶이 우리에게 어떠한 현실을 비추고 있는 것인지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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