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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_ 글씨로 삶의 기술을 얻다 | 나의 서재 2020-01-31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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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구본진 저
쌤앤파커스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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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체를 성공과 직결시켜 내 삶의 무기로 삼는 법을 일러주는 흥미로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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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필적 전문가가 들려주는 글씨체에 관한 모든 것!

필체를 성공과 직결시켜 내 삶의 무기로 삼는 법을 일러주는 흥미로운 책!

 

 

 

   누군가의 글씨를 보고 나도 글씨를 예쁘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적이 있다. 바로 중학교 2학년 때, 내 짝의 글씨를 보고난 뒤부터였다. 그녀는 필통이 꽤나 묵직할 정도로 알록달록한 볼펜을 종류별로 가지고 다니는 친구였는데, 수업이 끝나면 꼭 노트에 그날 배운 것을 예쁘게 정리해서 필기를 해두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나는 깔끔하고 예쁘게 정돈된 그녀의 노트를 볼 때마다 감탄을 했고, 친구에게 이런 글씨체를 가지고 싶다고 솔직하게 밝히고 따라 써보기까지 했다. 이미 절반이나 쓴 노트를 아예 새로운 노트에 다시 정리해 쓰는 수고로움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때 그 친구의 글씨체를 따라 연습하면서 굳어진 게 지금의 글씨체가 되었다.

 

 

 

   한 때는 세 번째 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손글씨 쓰기를 좋아한 적도 있었는데, 최근 들어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가르쳐주면서 글씨를 쓴다는 게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다. 워낙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익숙해져서 손으로 긴 문장을 공들여서 써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글씨체에 관한 책이 출간되어 눈길을 끌었다.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다소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다. 글씨체가 인생을 바꿀 만큼 대단한 것이었던가, 의아하다가도 내가 아이에게 거듭 강조하던 게 바른 자세로 바른 글씨를 쓰는 것의 중요성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과연 틀린 말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글씨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의 저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필적학자다. 21년간 검사로 근무하면서 살인범, 조직폭력배의 글씨에서 일반인과는 다른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필적학의 세계에 입문하면서 ‘필체와 사람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글씨는 손이나 팔이 아닌 뇌로 쓰는 것으로, ‘뇌의 흔적’이 담겨 있기 때문에 글씨체는 곧 그 사람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특히 필체를 분석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을뿐더러, 글씨체를 바꾸면 성공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사실 글씨와 사람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을 그가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다. 서예의 종주국인 중국은 전통적으로 ‘글씨가 곧 사람’이라 글씨에서 그 사람의 성품과 학식을 짐작할 수 있다고 믿었고, 공자는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이 귀한 사람인지 천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는 “글씨를 쓰기 전에 제일 먼저 뜻을 바르게 세우라.”고 말해서 글씨에 고결한 정신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퇴계 이황 역시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다.”고 했고, 셰익스피어는 “내게 손글씨를 보여주면 그 사람의 성격을 말해주겠다” 하기도 했다. 이에 서양에서는 수천 년에 걸쳐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글씨를 크기, 모양, 간격, 기울기 등으로 분석하는 필적학을 발달시켰다. 이는 글씨를 쓸 때 뇌에서 손과 팔 근육에 메시지를 전달해서 선, 굴곡, 점 등을 만들기 때문에 필적이 내적 세계를 반영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필적을 분석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필적학에서는 글자 크기, 형태, 압력, 속도, 기울기, 정돈성, 전체적인 인상, 자연스러움, 조화, 리듬 등을 살핀다. 자음과 모음의 세부적인 형태, 글자의 시작 부분 및 끝부분의 형태, 필순, 자획을 이어 쓰는 방법, 운필 방향, 획 사이의 공간, 자획의 굴곡 상태와 꺾인 각도 등 세부적인 운필 특징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한다. / 21p

 

 

 

   다시 말해 필적은 ‘뇌의 흔적’이자 ‘몸짓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여 그 근원을 알게 되면, 행동 습관인 필체를 바꾸어 성격을 바꿀 수도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의식적으로 글씨체를 바꾸면 성격이 변하고, 성격이 바뀌면 행동 패턴이 변하며, 행동 패턴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 따라 저자는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를 통해 다양한 글씨의 유형에 따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을 분석하고, 어떻게 꾸준히 쓰고 연습하면 성격과 인생까지 바꿀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또 김구, 안중근, 한용운, 역대 대통령, 백남준, 김연아와 같은 유명인의 필체를 수록하여 그들이 어떤 성향을 지녔으며 그것을 어떻게 삶의 무기로 삼았는지를 살펴본다.

 

 

 

필체를 바꾸는 2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 방법은 자신이 모델로 삼는 사람의 필체를 흉내 내는 방법이다. (…) 글씨를 바꾸는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목표 달성, 또는 과제 해결에 부합하는 필적 특징을 부분적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현재의 자신에게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공부를 잘하고 싶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인내심을 기르고 싶다.’, ‘연예인으로 성공하고 싶다.’, ‘일을 똑 부러지게 하고 싶다.’, ‘시험에 합격하고 싶다.’와 같은 목표를 세운다. 그 다음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필적 특징을 따라 쓰는 것이다. / 31p

 

 

필적학자들은 둥근 글씨는 친화적이고 사회성이 있으며 다정하고 편안한 사람을 의미한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또 여성스럽고 외부의 영향을 쉽게 받으며 적응력이 있고 즐거움과 그것을 위한 돈을 버는 데 애착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각진 글씨는 용기가 있고 열심히 일하며 적극적이고 현실적이고 물질적이며 신뢰할 수 있으나 무례하고 거칠며 이기적이고 저항적이고 융통성이 없다고 말한다.

모서리에 각이 선명한 모난 글씨는 사회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쓴다. 의지가 굳고,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 비판적이며 유머가 부족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정직하고 고집이 있으며 원칙을 중시한다. 조직 관념이 강하고 품행이 단정하다. 모험을 좋아하지 않고 정의감과 책임감이 있다. 규칙적이고 꼼꼼하며 진지하고 고지식하다. / 51p

 

 

필압이 세다는 것은 정신적 힘이 강하고 의지가 굳다는 것을 의미한다. 활력이 있고 결연함, 열정, 주도권, 용기, 자기주장이 강함, 물질주의, 공격성, 호전적, 저항적, 감각적, 심미적임을 의미한다. 안중근, 박정희 전 대통령, 조선 후기의 송시열, 야구선수 최동원, 선동열과 같은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나타나고 유영철과 같은 살인범에게서도 나타난다. 일상 행동 역시 파워풀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과 불화가 있을 수 있다. / 55p

 

 

 

 

 

 

  나의 글씨체는 둥근 글씨체인가, 각진 글씨체인가.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글씨체인가 내려가는 글씨체인가. 획 사이가 여유 있는 글씨체인가 획이 가까이 붙어 있는 글씨체인가. 혹은 글을 쓰는 속도가 빠른가, 느린가. 책을 읽다보면 내가 쓰는 글씨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해봄으로써 나의 성향이나 성격이 이런저런 장단점을 지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이를 어떻게 고쳐 써야 할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해볼 수 있어 흥미롭다. 무엇보다 공부 잘하는 글씨, 합격하는 글씨, 존경받는 글씨, 큰 부자 되는 글씨 등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상에 따라 꾸준히 연습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봄으로써, 이를 자기긍정이자 특별한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삼아볼 만하다.

 

 

 

훌륭한 글씨체로 정약용의 글씨를 소개하고 싶다. 그의 글씨는 보기에도 멋스럽지만 필적학으로 접근해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그는 군자나 대인과 같은 이상적인 인간의 수준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형태가 네모반듯한 글씨를 쓰는 사람은 보통 보수적이고 이성적이며 곧다. 하지만 글자의 간격이 충분히 넓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용기도 갖추고 있었다. / 174p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씨를 두고 악필이라 평가하는데, 저자는 일반적으로 예쁘고 단정한 글씨를 잘 쓴 글씨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글씨가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나쁜 글씨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잘 쓴 글씨와 못 쓴 글씨는 스스로 추구하는 인간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필적학적으로 악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는 당장에 바른 글씨 쓰기 책을 사서 무조건 따라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에 따라 그에 맞는 글씨체를 지향하는 것에 목표를 두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또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가. 이 책을 나를 이해하고, 내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해볼 수 있는 좋은 가이드로 삼아보기를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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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_ 여성들의 ‘말하기’ 그리고 진정한 연대에 대하여 | 나의 서재 2020-01-30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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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붕대 감기

윤이형 저
작가정신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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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말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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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말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 페미니즘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넘어서 연대를 모색하다!

 

 

   사월의책 출판사의 편집장인 박동수는 인문잡지 《한편》을 통해 오늘의 2030세대를 ‘페미니즘 세대’라 명명한다. 이 말은 오늘날 청년세대 모두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아니라, 청년세대가 페미니즘과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 관계 설정 없이는 자신의 정치적 주체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대중적 페미니즘’이라는 비가역적 사건을 경험하고 그 사건을 주체화한 세대라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견을 갖든 무관심하든, 청년세대의 생각과 행동이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탈여성이라는 기표와 근대라는 단절적 시간성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대적 연결과 연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박동수는 여기에서 ‘이 연결과 연합을 어떻게 추적하고 관찰하고 사유하며 또한 어떻게 거기에 참여할 것인가가 남겨진 과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이형의 『붕대 감기』는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안고 있는 편가르기식의 분열과 혼란 등의 각종 복잡한 문제와 박동수가 제기하고 있는 과제들로부터의 응답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짜’, ‘좋은’, ‘완전한’으로 귀결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말하기’ 즉, 마음을 끝까지 열어 보이는 것에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이라는 것을.

 

 

 

 

 

 

낯설지만 익숙한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지난 해, 한국대표 작가 29인이 모여 박완서 작가의 콩트를 오마주한 『멜랑콜리 해피엔딩』에서 작가 윤이형은 「여성의 신비」라는 작품을 통해 쌍둥이를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된 지혜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이기적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자신의 경력을 되찾고 싶어 하는 지혜를 통해 한국 사회 내에서 여성이 겪어야만 하는 우울한 현실과 비애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붕대 감기』는 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로서 지혜의 이야기를 더욱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로 확장하고 구체화한 작품이다. 다시 말해 나이, 직업, 학력 등 제각기 다른 여성들의 독립적인 서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겹쳐지는 독특한 구성 방식을 취함으로써 워킹맘의 고충, 성폭력, 미러링, 탈코르셋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와 상처들을 정교하게 엮어나간다.

 

 

 

   이야기는 미용실의 실장인 해미가 ‘언제나 온몸과 마음이 잔뜩 긴장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손님을 떠올리는 데서 시작한다. 그 손님이란 영화 홍보기획사에서 일하는 은정으로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서균을 갖고 배 속에서 태동이 커져가는 걸 느끼면서도 절대로 커리어를 놓지 않겠다고, 또한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리고 ‘무식한 아이 엄마’로만 남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녀였는데, 서균이 눈썰매를 타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사고로 인해 휴직 신청을 해야 했다. 아이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모르고, 모두가 자신의 눈치만 보거나 말을 아끼기만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친구가, 마음을 터놓을 곳이 딱 한 군데만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렇게 어느 날 문득, 엉망으로 길어져 흐트러진 머리,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다리를 절뚝이며 혼자만의 긴 싸움에 지쳐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마주한 그녀는 미용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누군가가 머리를 감겨주었으면 좋겠다고, 영양제 서비스로 넣어드릴게요, 라는 말이라도 듣고 싶어서.

 

 

 

하지만 그 이름이 어느 순간부턴가 조금씩 자랑스럽지 않아졌다. 머리를 자르는 일, 단백질을 먹고 소화시켜 머리카락으로 바꾸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그 일 자체에는 잘못이 없었다. 그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외의 시술들이 갑자기 낯설고 이상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산업의 어디까지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여성을 아름다움에 억지로 묶어 자유를 빼앗는 일일까. 지현은 구분할 수가 없었다. / 36p

 

 

범죄자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해야 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어째서,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살기 위해 모여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결코 단일한 집단이 아닌 그들을 끝끝내 단일한 혐오 집단으로 몰려는 사람들만 이렇게 많은 것일까? 애써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의제를 만들어서는 안 됐다. 지현은 집회에 나갔지만 그 집회를 둘러싸고 일어난, 여자들끼리 하는 싸움에 끼지는 않았다. 그런 건 소모적으로 보였다. / 39p

 

 

‘……아이는 아직 모른다. 달착지근한 마카롱 몇 개나 갑작스럽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같은 것으로는 괜찮아지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것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이 점점 더 겁나는 모험처럼 느껴진다. 결과가 안 좋을 때가 더 많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굳이 물어보았다. 나 역시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주기를, 종종 장미가 비를 기다리듯이 기다리게 되므로.’ / 55p

 

 

 

 

 

 

   미용실 실장인 해미와 워킹맘 은정의 사연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는 이제 미용실 직원인 지현을 거쳐 진경과 세연의 이야기로 거쳐 간다. 진경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살가운 친구였고, 각각 다른 대학을 가면서 드문드문 만나게 되었을 때도 거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까웠다. 그런 그들이 3년 전쯤부터 멀어진 건 무엇 때문인지 경진은 생각한다. 무료해서, 무언가 칭찬이 필요해서, 인생이 칡 덩어리를 억지로 씹는 것처럼 쓰고 건조해서, 필터를 씌운 자시의 얼굴을 페이스북에나 찍어 올리는 아이 엄마와 잘 나가는 프리랜서 출판 기획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세연의 간극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상상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발산해내는 과도한 에너지에, 휴식 없는 생활에 지쳐 전혀 좋아하지도 않고 말을 길게 나누고 싶지도 않은 남자 페친들과 영혼 없는 웃음으로 범벅이 된 댓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남편 자랑을 하는 걸 비웃지 않고 맞장구를 쳐주고 있을 때, 새로 산 립스틱의 발색 샷을 여러 장 올리고 있을 때, 가장 한가운데에서 혼자일 시간도 없이 외롭다고 끄적이고 있을 때, 그런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세연의 시선을 떠올린다. 하지만 자궁근종을 얻어 자신을 제대로 돌봐줄 보호자 하나 없는 상태에서 친구인 진경에게조차 연락을 하지 못하는 세연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삶이 반드시 제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혼자 사는 여자의 삶 그리고 진경에게는 당연히 있는 것들이 자신에게는 없는 데에서 비롯된 구차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걸, 그렇게 세연은 친구를 상상 속에서 속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 68p

 

 

저기, 그런 게 아니거든요? 저는 아이를 가질 생각도 전혀 없고요. 제 삶에는 남자가 오래전부터 아예 없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건데요. 사실은 한달에 한 번 배란이 되고 생리를 하는 것도 귀찮아 죽겠거든요. 저는, 적출한대도 아무 상관 없는데, 회복이 빠르다기에 빨리 일로 돌아가야 해서 하이푸 쪽을 선택한 건데요. 여자로서 삶이 망가진다는 무슨 말씀이세요. 세연은 정색하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저곳 비교해본 결과 그 병원의 시술 비용이 제일 합리적이서 그냥 참고 넘겼다. / 75p

 

 

 

 

 

  이 외에도 소설 속에는 불법영상촬영 피해자인 바람을 도와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껴 집회에 나간 지현, 일을 따내려고 이 남자 저 남자 가리지 않고 들이댄다는 말이 돌자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간 윤슬, A교수의 추행 사실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쓴 뒤 보복을 당할까 두려움에 떠는 채이, 제자인 채이를 위해 A교수에게 보내는 격문을 써서 학생회관 벽에 붙였다가 ‘페미니스트 투사’가 된 대학 교수 경혜 등이 차례로 등장한다. 그러는 동안에 행동하고 분노하는 젊은 여성과 그런 젊은 여성을 철없다고 단정 짓는 늙은 여성의 대립이, 전업주부와 워킹맘이 서로를 견제하고 기혼녀와 비혼녀가 적대시하며 가치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상황이 흔하게 발생한다. 마치 여성들에게 꾸밈노동을 강요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고 있으면서도 미용업에 종사하는 자신의 직업정신에 자부심을 느끼는 지현의 그것처럼 여성들간의 연대는 불완전해 보인다.

 

 

 

아무튼 세상은 무서운 곳이니까 여자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연은 어째선지 조금 마음이 편했는데, 그건 ‘여자’라는 말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블라우스 밑 가슴께에도 족쇄처럼 채워져 있어서, 숨이 막히는 게 자신뿐은 아니라는 생각, 간신히 다른 아이들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126p

 

 

진경은 거울일 뿐이었다. 진경을 보며 진경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27년 전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 붕대를 들고 서 있던, 단지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고,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어서 엉거주춤 서 있던 어린 자신을, 세연은 한없이 미워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도,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게. / 142p

 

 

하지만 만나서 얘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평행선이잖아, 채이는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말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걸까? 의제 하나에 쌍둥이처럼 집회가 두 개씩, 그것도 동시에 열리는 게 너는 바람직해 보여? 나는 부조리해 보이는데. 언제까지나 저신과 똑같은 사람들만 만나고 살면 어떻게 발전을 하지? 우리는 서로의 대립항이 되기 위해서 이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잖아. 우리가 가진 공통점은 왜 중요하지 않아? / 146p

 

 

 

 

 

 

   『붕대 감기』가 의미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른바 페미니즘으로 제기되는 여성들의 문제점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갈등을 유발하는 것인지 또는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직시하고, 질문하고, 자책하며 자조하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진짜’, ‘좋은’, ‘완전한’ 페미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저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각자가 서로의 이야기를 터놓고 ‘말하기’ 함으로써 관계 맺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무임승차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최소한의 공부는 하는 걸로 운임을 내고 싶을 뿐이야. 어떻게 운전을 하는 건지, 응급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배워둬야 운전자가 지쳤을 때 교대할 수 있잖아. 너는 네가 버스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 우린 결국 같이 가야 하고 서로를 도와야’ 한다던 세연의 말처럼 말이다.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다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하다못해 수십 년을 함께 해온 친구들에게조차도 나는 꾸미고, 감추고, 덜 내어놓는다. 딱히 보여줄 것이 있다기보다 그들을 실망시킬 것이 더 두려운 까닭이다. 하지만 『붕대 감기』를 읽고 나서 그들을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나의 상처를, 불안을, 모순을 더 감싸 안든 덜 감싸 안든 그래도 이야기 해보자고, 들어봐 주겠다고 “뭐해? 만나자” 말해주는 이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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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_ 선과 악, 희비극의 세태를 풍자적으로 보여준 고전 | 나의 서재 202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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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저/유수아 역
현대지성 | 2020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유머와 해학이라는 요소를 이용해 시대를 풍자하고 비판하고자 한 작가의 위대한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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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밑바닥과 세상의 부정과 모순을 생생하게 묘사하다!

유머와 해학이라는 요소를 이용해 시대를 풍자하고 비판하고자 한 작가의 위대한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

 

 

   수많은 고전 중에서도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내가 가장 최고로 손꼽는 작품 중에 하나다. 작가의 후기 대표작답게,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빈민자들의 삶과 귀족의 폭압 정치, 복수에 얽힌 광기를 생생하게 묘사하여 디킨스 식 문체를 압도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그의 초기 작품들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바로 디킨스를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올리버 트위스트』는 그의 작가정신과 문제의식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단초가 될 만한 작품이다. 비록 『두 도시 이야기』가 보여주는 강렬하고도 원숙한 느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당시 영국 사회의 밑바닥과 부정 그리고 모순을 날카롭게 직시하되 유머러스하면서 해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특유의 자신감과 예술적 야망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대중적이면서 희극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만큼 찰스 디킨스의 문학 세계를 즐겨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일단 『올리버 트위스트』부터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선한 사람들의 의지를 믿는 이들이 있는 한

  흔히 대중을 열광케 하는 작품 속에는 공통의 요소가 깃들어 있다. 이를 테면 출생의 비밀, 주인공보다 더 눈에 띄는 비열한 악한,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 죽음을 넘나드는 절체절명의 위기 같은 것들이다. 소설『올리버 트위스트』에는 이러한 요소가 적재적소에 나타난다. ‘고아원 소년의 여정’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소년 올리버가 고아로 자라 온갖 학대와 누명 그리고 죽음의 위기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악은 심판을 받고, 올리버는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는 일련의 전개 속에서 우리는 분명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게 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일단 첫 장에서부터 눈을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태어난 곳과 출생을 둘러싼 환경의 특성’, ‘유쾌한 노신사와 어린 친구들에게로 돌아가서, 똑똑한 독자들에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가진 새로운 인물을 소개하는 장’과 같이 설명이자 요약에 가까운 ‘차례’가 그러하다. 또 작품의 출간 목적과 이야기 구성, 소설적 장치를 작가 스스로 먼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저자 서문’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저자 서문은 작품을 모두 읽은 후에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면 저자의 의도를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을 듯하니 이를 추천한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범죄자들과 런던 인구의 하류층에서 선정되었다는 것이 아주 조잡하고 충격적인 설정으로 보일 것이다. 사익스는 도둑이고, 페이긴은 장물아비이며, 소년들은 소매치기에다가, 주인공 소녀는 매춘부다.

하지만 나로서는 가장 추하고 불쾌한 이야기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선한 교훈이 얻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나는 이것이 널리 인정되고 확립괸 진리라고 항상 믿어왔다. 세상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했으며, 가장 선량하고 지혜로운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에 따라 행동했으며, 이성과 모든 사려 깊은 정신의 경험이 그것을 확증한다. / 10p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구빈원(생활 능력이 없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수용하여 구호하는 공적·사적인 시절)에서 자라게 된 올리버가 학대와 굶주림으로부터 달아나 런던에 이르러 악명 높은 장물아비와 소매치기 소년들을 만나는 내용이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자들의 지지자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세상은 영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하나를 잃었다’던 찰스 디킨스의 묘비명에서 알 수 있듯, 여기에서는 구빈원의 고아로 자라나 인간답게 살기를 거부당해야 했던 소년 올리버의 기구하고도 참혹한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구빈원 지부의 관리자인 노부인과 말단 교구관 범블 씨로부터는 사회 행정적 요소의 부패함을, 소매치기 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훔친 물건을 챙기는 유대인이나 사익스로부터는 도덕을 훼손하고 약자를 유린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는 사회 밑바닥 계층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립킨스 이사장님, 죄송하지만, 올리버가 더 달라고 했답니다!”

다들 깜짝 놀랐다. 모든 이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더 달라고 했다고!” 림킨스 이사장이 소리쳤다. “범블, 일단 진정하게. 그리고 내 말에 똑바로 대답하게, 지금 그 아이가 규정대로 배급받은 저녁을 다 먹고서도 더 달라고 했다는 말인가?”

“네 그랬답니다, 이사장님.” 범블 씨가 대답했다.

“그 녀석은 앞으로 교수형을 당하겠군. 장담하건대, 교수형을 당할 거라고.” / 37p

 

 

이 광경을, 배 속에서는 고기와 술이 썩어나고 얼음 같은 피와 강철 같은 심장을 가진 철학자들이 좀 보았으면 싶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개도 거들떠보지 않을 진수성찬에 달라붙어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말이다. 허기로 잔뜩 독이 오른 올리버가 고기뼈를 갈기갈기 찢어내듯 뜯어먹는 끔찍한 탐욕의 광경을 직접 목도하면 그 감상이 어떠할까? 이보다 더 바라는 소원이 딱 하나 있다면 그 철학자도 똑같은 음식을 올리버와 똑같이 탐욕스럽게 먹는 것이다. / 59p

 

 

동네 가게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길거리에서 노아를 보면 ‘거지새끼’처럼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러대기 일쑤였다. 이런 모욕적인 놀림에도 노아는 대꾸 한 마디 없이 참고 지냈다. 그러나 이제 운명은 노아 앞에 이름 모를 고아 하나를 던져주었다. 이 고아는 가장 미천한 자조차도 손가락질하며 깔볼 수 있는 존재였다. 노아는 자기가 받은 모욕에 이자를 얹어서 실컷 되갚아주었다. 이런 상황 전개는 우리에게 아주 매력적인 명상거리를 던져준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가장 훌륭한 귀족에서부터 가장 비천한 자선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이 아름다운 본성은 아주 공평하게 나눠 갖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 65p

 

 

 

 

 

 

   2부와 3부에서는 사익스에 의해 의도치 않게 강도 현장에 따라 나서게 된 올리버가 총에 맞음으로써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다행히 로즈 양과 메일리 부인을 만나 마침내 따뜻한 사랑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으로 갈무리된다. 여기에서는 올리버의 해피엔딩 여부보다, 교활한 악당들에게서 엿보이는 선에 대한 증오와 죄의식 그리고 응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보다 집중함으로써 이 소설이 단순히 신파적인 요소로 가득한 소설이 아니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브라운로 씨나 로즈 양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올리버를 믿고 포용함으로써 인간의 선한 의지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 또한 인상적으로 봐야 할 듯하다.

 

 

 

“아무리 저 아이가 나쁜 아이라고 해도 아직 어리잖아요.” 로즈 양이 말을 이어갔다. “엄마의 사랑이나 가정의 따뜻함을 아예 몰랐을 수 있어요. 학대와 매질, 배고픔 때문에 악당들과 한패가 되어 범죄로 내몰린 건지도 모르지요. 이모님, 사랑하는 우리 이모님, 이 아픈 아이를 감옥에 보내기 전에 제발 이런 점을 먼저 생각해주세요. 갱생할 기회는 줘봐야죠.” / 327p

 

 

범블 씨는 기습 공격을 당해 끔찍하게 패배를 한 셈이었다. 분명히 범블 씨에게는 약자를 괴롭히는 성향이 있었다. 이런 성향을 잘 발휘해서, 자잘한 가혹행위로 상당한 쾌감을 얻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범블 씨는 겁쟁이가 틀림없었다. 절대로 범블 씨의 성품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다. 엄청나게 존경받고 추앙받는 공직자들도 이와 비슷한 약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범블 씨에 대한 찬사일 수도 있었다. 범블 씨가 공직자의 적절한 자격을 이미 갖추었다는 느낌을 만방에 널리 알리는 격이 아닌가. / 402p

 

 

무릇 살인자들이 심판을 피했다고 하느님의 섭리가 잠들었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두려운 고통으로 가득한 기나긴 1분이 수백 번의 난폭한 죽음과 맞먹는 법이기 때문이다. / 534p

 

 

 

 

 

 

   이처럼 소설은 당시 영국의 시대상을 암울하고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이를 풍자와 해학이라는 유머 코드로 표현해냄으로써 독특한 소설적 성취를 완성해낸다. 이것이 시대를 직시하고 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반영한 『두 도시 이야기』란 작품과 유사한 결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분명한 차이를 지닌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작가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올리버 트위스트』 와 후기작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두 도시 이야기』를 함께 읽어본 나로서는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며 또 어떤 작품이 있는지, 그의 작품 세계를 더 넓게 이해해보고 싶어졌다. 끝으로 덧붙여보자면, 다수의 출판사에서 이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테지만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번역본에는 19세기 최고의 삽화가였던 조지 크룩생크의 삽화가 24장 수록되어 있다. 작품과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이를 참고하기 좋을 듯하여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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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잡지 한편 1호: 세대_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 나의 서재 2020-01-24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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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한편 1호 세대 [2020]

편집부 편
민음사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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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와 불평등, 젠더에 관한 가장 콤팩트한 담론들. 시도가 충분히 의미있다. 그래서 다음 호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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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와 불평등, 젠더에 관한 가장 콤팩트한 담론들!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논쟁이 되는 주제를 전면에 제시한 새로운 형식의 인문잡지!

 

   총선을 앞두고 있다. 어김없이 세대 프레임을 극복하고 청년의 정치 참여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세대교체론’이 대두될 예정이다. 특히 ‘청년 정치’는 한결같이 이전 정권의 낡은 기득권적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선동이자 표심 공략법으로 작동되어 왔다. 하지만 《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안성민)에 따르면 20대 국회는 ‘40대 미만 국회의원 역대 최저’라는 기록을 세웠고, 19세부터 39세까지 이른바 ‘2030세대’의 경우 유권자 수가 무려 전체의 35.7%였음에도 불구하고 40세 미만의 지역구 출마자 중 당선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고작 1%도 되지 않는 청년 정치인들이 무려 36%의 유권자인 청년들을 대변해야 하는 비상식적이고 기형적인 대의민주주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 지겹도록 반복되는 세대주의와, 청년팔이(김선기, 「청년팔이 사회」)가 이제는 가장 낡은 정치적 언어이자 한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물며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를 나누는 이분법적인 구조는 우리 사회의 끈질긴 병폐다. 현실이 이러한데 왜 여전히 세대주의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이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는 것일까.

 

 

 

세대의 역사, 그 가능성과 과제에 대한 담론

 

 

   지난 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책이 있다. 바로 《90년생이 온다》(임홍택)이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현 청년들의 세태와 고민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세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앞에서는 늘 중요한 의문이 하나 생긴다. 《90년생이 온다》 속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면, 다시 말해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특징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세대로 묶어서 잘 설명되는 현상이 있고, 아무래도 세대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베이비붐세대, X세대, 386세대, N포 세대, 밀레니얼 세대와 같은 세대론을 끊임없이 관통해왔다. 왜 우리는 인간을 나이대에 따라서 구분을 하고 또 그것에 이름표를 붙여가며 세대론을 계속해서 양산해 내는 것일까. 애초에 세대라는 개념은 누가 만들어 내는 것일까. 세대는 왜 문제일까. 세대는 세대론이 만들어 내는 환상일까, 변화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일까. 2020년에는 세대 이야기를 이제 그만해야 할까, 앞으로 더 해야 할까. 사람들이 세대를 말할 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기 위해 민음사에서 출간한 새로운 형식의 인문잡지 《한편》은 ‘세대’를 그 첫 번째 화두로 내걸었다. 여기에는 아주 콤팩트한 형식의 열 편의 원고가 수록되어 있다. 근대성과 세대 그리고 청년이라는 연쇄적인 담론 고리를 통해 세대 이론의 중심 서사를 살펴본 박동수의 「페미니즘 세대 선언」, 세대주의를 직접적으로 청년팔이라고 선언하며 세대론의 한계에 대해서 지성적으로 인지하면서도 다시금 세대론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세대주의적인 발화와 행동을 실천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김선기의 「청년팔이의 시대」, 꾸밈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점점 더 낮아지는 현실에 대항하기 위하여 1020 탈코르셋 운동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가를 진단하고 있는 이민경의 「1020 탈코르셋 세대」, 이른바 ‘20대 남자’들에게서 엿보이는 반페미니즘의 기원과 성격을 살펴보고 그들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또 왜, 어떻게 반대하는가를 자신의 언어와 맥락으로 살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우창의 「“20대 남자” 문제」, 개인이 강조되는 밀레니얼 세대 내에서 오히려 가족 배경의 결정력이 더욱 커지고 계층간의 이질성이 강화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살펴보는 김영미의 「밀레니얼에게 가족이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세대론의 기원과 동력을 살펴본 고유경의 「세대, 기억의 공통체」가 바로 그러하다.

 

 

 

요컨대 근대사회에서 근대성, 세대, 청년은 하나의 연쇄적인 담론 고리를 형성해 왔다. 기성세대의 근대화 기획에 의해 주조된 청년세대가 고유한 세대를 형성하고, 기성세대와 변별되는 새로운 근대화 모델을 주창하며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하고, 이 갈등 속에서 ‘근대화의 근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근대적 세대 이론의 중심 서사이며, 이 때문에 청년세대가 사회와 역사 속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규정하는 일이 세대론의 핵심 문제가 된다. 따라서 세대론은 언제나 청년론이자 근대화론이다. / ‘페미니즘 세대 선언’ 중에서 19p

 

 

이 같은 맥락에서 세대주의는 교묘하게 계산된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일상적으로 편재해 있는, 대다수 사회 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상(imaginary)에 가깝다. 데이터에서 세대에 따른 차이가 별로 두드러지지 않을 때도 세대론이 생산되고, 또 그러한 세대론이 무리 없이 수용되는 바탕에는 ‘세대는 중요하다’, ‘세대 차이는 존재한다’, ‘청년은 기성세대에 비해 어떠하다.’라는 데 대한 느슨하지만 견고한 믿음(belief)이 깔려 있다. 담론과 실재는 순환하며 서로를 강화한다. 세대주의적인 믿음은 세대주의적인 행위와 제도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세대라는 실재가 현저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로 이어져 다시금 믿음을 확신으로 바꾼다. / ‘청년팔이의 시대’ 중에서 41p

 

 

국가와 민족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처럼 보일 때 청년세대는 국가의 숭배 대상으로 부상했다. 통일로 성립된 독일 제국(1871~1918) 시기에 널리 유포되었던 청년 예찬론은 청년(Jugend)을 단지 인간의 생물학적 발달 단계를 지칭하는 표현을 넘어,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가치관을 대변하는 수사로 활용했다. 순수하고 도덕적인 청년들의 자발성과 개방성, 희생정신이야말로 타락하고 낡은 독일 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변혁과 전복의 아이콘으로서 청년은 기성세대에게 희망과 공포의 양가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청년은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통제의 대상이었다. / ‘세대, 기억의 공동체’ 편 중에서 151p

 

 

 

 

 

 

   뿐만 아니라 중국은 어떠한 세대적 변화를 거쳐왔는지 그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하남석의 「오늘의 중국 청년들」, 한국과 베트남의 밀레니얼 세대를 비교 분석 하여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석한 조영태의 「밀레니얼은 다 똑같아?」와 같이 한국 사회의 범주에서 벗어났을 때 세대 문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세대 문제와 비교해보는 텍스트들도 눈에 띈다. 아울러 영화 <벌새>를 통해 주인공인 은희의 시선에서 바라 본 현대 사회라는 시대적인 감각과 성장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이나라의 「<벌새>와 성장의 딜레마」, 기후위기를 통해 미래세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혜선의 「미래세대의 눈물과 함께」는 학술적인 의미를 넘어서 다양한 개념의 지도를 넓혀가려는 인문잡지 《한편》의 시도가 엿보이는 부분들이라 또한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더 윤리적인 ‘청년팔이’는 어떻게 가능할까? (이 또한 끊임없이 조정되겠지만) 잠정적인 두 가지 원칙은 이렇다. 우선, 대안적인 ‘청년팔이’는 다차원적인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만 19~39세의 청년층 인구는 천만 명이 넘기 때문에, ‘청년’을 주어로 전체를 이야기하게 되면 같은 청년이라도 누구는 선택되고, 누구는 배제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청년’에 대한 강조가 세대내의 불평등과 격차를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이 될 수 있으므로, ‘청년’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문제에 각별히 성찰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 ‘청년팔이의 시대’ 중에서 51p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반)페미니즘이 불과 2~3년 만에 해당 세대 남성 집단 전반으로 퍼져 나간 데서 알 수 있듯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과거와는 다른 장치, 다른 매체, 다른 동학, 다른 전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차이를 인식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로인 언어와 담론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그것들이 어떤 요소들로 이우러졌으며 어떤 지향점과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석하지 않는 한, 20대 남성이 586세대의 기대와 예측을 벗어나는 일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반복 속에서 서로를 향한 경멸과 분노의 심정이 회전하는 나사못처럼 더욱 깊어지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예측할 수 있다. / “20대 남자 문제” 중에서 91p

 

 

이제 우리는 부모 세대에서의 불평등이 자녀 세대에서의 기회 불평등을 대단히 다양한 방식으로 증폭시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불평등은 개인들의 타고난 능력 차이에 따른 경제적 결과를 증폭시켜 약간의 지능 차이가 고액의 연봉 차이로 귀결되게 만든다. 불평등은 부모들의 교육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구조를 변화시켜 자녀의 계층 하강 위험에 극도로 민감해진 중간 계급 교육 기회 사재기를 부추긴다. (리처드 리브스, 『20 vs 80의 사회』) 또한 불평등은 파워 집단이 자녀의 재능과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권력의 불균형 상태를 초래한다. / ‘밀레니얼에게 가족이란’ 중에서 104p

 

 

 

 

 

 

   괴테가 ‘경험의 공유가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결정적인 요소’라고 말하였듯 ‘세대’를 주제로 각각의 텍스트들을 읽다보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세대주의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세대주의가 촉발한 다양한 불평등 문제, 이제는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의 구도가 되어버린 젠더의 관한 이견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양극으로 갈라놓고 상황에서, 내 아이가 성장하여 맞이할 미래 세대는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딜레마에 더 큰 타격을 입으리라는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주제를 전면에 내세워 읽고 다함께 이야기해보자는 《한편》의 의도는 나름 성공적인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각기 독특한 사회적 경험을 하며, 그에 기반을 둔 자전적인 사회학적 성찰을 만들어 가는 자기 삶의 사회학자들’이라 하여 ‘특정한 세대론을 채택하거나 거부하는 일, 그러한 담론을 바꾸는 일, 나아가 자신과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일은 모두 보통의 사회적 행위자들에게 달려 있는 일’이라고 강조한 박동수의 글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되새겨봄직 한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 세대론의 배후에는 언제나 사회 변동을 이끄는 집단이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존재한다. 실재하는 주체이건 지배 집단의 의도로 만들어지는 기회이건, 경험의 공동체이자 기억의 공동체로 세대를 중심에 놓을 때 역사는 새롭게 쓰일 수 있다.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여전히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와 민족 중심의 서사는 청년세대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주변부에 위치해 왔던 여러 집단적 범주들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거대 서사에서 소외된 다양한 주체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어 역사를 보는 관점을 다변화하는 일은 민주 사회의 구성원을 양성하는 시민 교육의 맥락에서도 중요하다. / ‘세대, 기억의 공동체’ 중에서 158p

 

 

 

 

 

 

   이처럼 《한편》은 ‘세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사회학, 역사학, 인류학, 정치학, 인구학, 미학, 철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자들을 연결한 독특한 형식의 인문 잡지를 지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열 편의 글 모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발명된 이래 종이책 판매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사르트르와 같은 권위 있는 지식인은 이제 나오지 않는 시점에서 우리가 최악의 도구이자 최고의 도구인 인터넷을 활용할 때, 한명의 사상가에 기대는 대신 여러 분과 학문의 연구를 연결할 때 인문과학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이반 자블론카의 말처럼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가 한편, 한편으로 엮여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고자 한 이들의 의도는 주효한 듯하다. 창간호의 ‘세대’ 편은 그 시작과 방향성을 타진하며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앞으로 나올 2호 ‘인플루언서’, 3호 ‘환상’은 또 무엇을 이야기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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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_ 나이도 체하지 않게 먹어야 하는 거라지 | 나의 서재 2020-01-22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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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임선경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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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반환점을 맞은 50대, 나이 먹는 일에 대한 유쾌 발랄한 공감 에세이!

 

 

  “이제 너희 애들이나 봐주면서 살아야지 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깊은 상실감과 공허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이든 노모에, 그것도 꽤 오랫동안 치매를 앓아왔던 만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법도 한데 그래도 엄마는 떠난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위로해보기 위해 “이제 엄마 하고 싶은 것도 하고, 편하게 살아” 하고 말했다. 엄마는 그래야지, 하면서도 당장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 와서 뭘 새로운 걸 해보겠느냐고, 너희 아이들이나 봐줘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목이 탁, 막혔다. 아이를 낳아보고 나서야 알게 된 가장 큰 사실 하나는 우리가 엄마의 시간을 갉아먹고 이만큼 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남은 시간마저 나와 내 아이들을 위해 갉아 먹히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 이제 엄마 시간을 살아. 그간 충분히 애써왔으니까.”

 

 

 

   나는 내 아이들이 섭섭해 하지 않게 일찌감치 두고두고 선언할 것이다. 너희들을 돌보고 키우고 먹여야 하는 시간동안에는 엄마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할 거라고, 하지만 엄마의 시간이 너희들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엄마도, 너희들의 엄마가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늙어갈 순 있지만 젊어갈 순 없다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가장 열심히, 꾸준히 한 일이 바로 나이 먹는 일이었다.’

   아, 뭐 이리 찰떡같은 문장이 다 있나. 게다가 자신은 지금 갱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고백하는 책의 저자는 이렇게 심경을 토로한다. 남편, 애들과 한 팀으로 묶여 내 정신이 아닌 채로 살아왔지만, 이제라도 정신 좀 차리고 잘 살아 볼까 하니 나이 오십이더라고.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아이들이 다리에 감기던 시기가 지나고 나니, 내 다리로 어디든 갈 수가 있긴 한데 대체 어디를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때가 왔노라고 말이다. 평소 나 역시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을 다 키워내고 마침내 뭔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정작 나이 때문에 발목 잡혀 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을 때가 분명 찾아오리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이 먹는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저자는 어른이 되는 일, 사는 일에 허기가 져서 그간 맛도 모르고 허겁지겁 집어먹기 바빴으니 이제라도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대체 뭔지 요모조모 뜯어보고 어떻게 먹어야 체하지 않고 잘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는 인생의 반환점과 제2의 사춘기라 불리는 갱년기의 한복판에 서서 ‘요즘 어른’이 겪는 리얼한 일상과 고민들을 담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극본을 쓴 방송작가 겸 소설가답게 솔직담백하면서 유쾌한 그녀의 입담에는 웃다가도 울컥하게 만들고 이내 끄덕끄덕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실려 있다.

 

 

 

‘늙다’는 동사이고 ‘젊다’는 형용사라는 걸 아시는지? ‘늙다’는 움직임과 과정이지만 ‘젊다’는 어떤 상태나 성질을 나타낸 것이다. ‘늙어갈’ 수는 있지만 ‘젊어갈’ 수는 없다니… 참 섭섭하다. / 10p

 

 

실제로 나이 들수록 피부 감각도 늙는다고 한다. 피부의 촉각을 담당하는 수용체의 숫자가 감소하고 신경 전달 속도가 느려지면서 노화를 겪는 것이다. 감각이 늙으면 통증을 느끼는 정도도, 온도를 느끼는 정도도 둔해진다.

피부 감각이 둔해지고 유방과 자궁이 긴장을 잃으면서 얻은 것은 평화다. 더 견딜 만하고 더 순조롭다. 첫째 낳을 때보다 둘째 낳을 때 고통이 덜한 것도 심리적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 22p

 

 

 

   문득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제 서른일곱인 내 나이, 오십에 가까운 나이에 이르면 아줌마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까 하고 말이다. 아줌마. 아무래도 그건 평생 받아들여지지 않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말이다. 그나마 ‘애기 엄마’ 하고 불러주는 지금에 감사라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여전히 ‘어머님, 아주머니, 저기요’와 같은 애매한 호칭 앞에서 마음이 들쑥날쑥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이렇듯 책에는 중년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공감할 법한 상황들이 등장한다.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아줌마들의 대화에 얽힌 속성들, 스마트폰이나 자동화된 시스템에 바로바로 적응하지 못해 난감해지는 순간들, 살던 대로 살게 되는 삶의 관성들 그리고 빈약한 근거로 나이만 믿고 꼰대짓을 하는 세대로 자연스레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그렇게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할 테지. 솔직히 이건 뭐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그저 받아들일 것은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모르는 건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억지로 애쓰려고 하지 않고 사는 수밖에.

 

 

 

아줌마들의 대화는 한 사람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조용히 듣는 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모두가 그 대화에 한꺼번에 참여해야 한다. 말을 거들어주는 조력자가 없으면 이야기 자체를 할 수가 없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머릿속의 물방울을 떠올리고 물방울을 건네주고 받고 해야 한다. 그러니 대화에 독점이 있을 수 없고 동시에 소외도 없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민주화가 이뤄진다. 남들이 듣기에는 아줌마들은 왜 저렇게 동시에 다 떠들고 있냐고, 참 시끄럽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줌마들의 대화는 평등하고 기회가 있고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말 그대로 인터랙티브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아줌마의 수다는 그래서 즐겁다. / 32p

 

 

나이가 들면, 한 50년쯤 살다 보면 어디서 주워들은 것도 많아진다. 이런 일 저런 일 겪기도 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 그러니 스스로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당연히 경험도 많다. 원래 의견과 주장은 지식과 경험이라는 토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은 매 사안에 의견과 주장을 가지기 쉽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그거 옛날에 나도 다 해본 건데’ 하며 확신하는 것이다. / 63p

 

 

 

 

 

 

   ‘껌딱지처럼 들러붙을 때는 언제고 이젠 나를 껌종이 취급하다니.’ 사내 아이 둘을 키워낸 엄마로서 ‘우리 사이는 이제 끝났다. 애정으로 충만한 사이.’라고 단언하는 그녀의 말투가 나의 뼈에까지 새겨지는 듯하다. 나 역시 사내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 몇 번이나 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게 있다. 이 두 녀석들에게 엄청난 존재였던 시절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고 말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엄마에게 자랑하려 뛰어오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엄마를 찾으며 울고, 뭔가 열심히 하는 것은 엄마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고, 엄마가 해 준 음식이 제일 맛있고, 엄마가 있어야 안정이 되던 그런 아들은 길어야 중학생이 되기 이전까지일 거라고. 곰살맞은 우리 아들은 안 그럴 거라는 믿음은 애당초 가지지 않는 게 뒤늦게 찾아올 상처에 크게 데이지 않는 방법이라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미리 이렇게 마음의 준비라도 해놓아야지. 아이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 사이에서 서로 할퀴지 않고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들을 고심해보는 게 그나마 최선이라면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나는 말하고 싶다. “모모야 제제야, 내게 와서 울어라. 내게 와서 한탄해라. 내게 와서 밖의 사람들 누구를 욕하고 화내라. 좋은 일은 실컷 좋아하고 잘한 일은 지치도록 자랑하고 으쓱대라. 그러라고 내가 있는 거란다.” / 131p

 

 

 

 

 

 

어떻게 먹어야 체하지 않고 잘 먹을 수 있을까

 

 

  갱년기는 쇠락과 상실의 시기일까? 각종 사회적 의무와 양육의 부담, 여성성의 멍에를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와 독립의 시기는 아닐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확실한 것은 갱년기는 사춘기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신체가 격변을 겪는 때라고. 그러니 사춘기처럼 예민하게 느끼고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왕성하게 배우고 무한히 감동하고 그러면서 훌쩍 자를 수도 있는 시기라고 말이다. 비록 폐경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와 무뎌진 신체 기능,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의 건망증이 멘탈을 흔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영을 배우고, 귀를 뚫고, 친구 혹은 나혼자 만의 여행에 눈을 뜨고, 노년에 그림책 그리는 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며 그림을 배운다. 체하지 않고 나이를 먹기 위해, 건강하게 먹음으로써 다채롭게 채워질 나의 새로운 시간을 위해.

 

 

 

나이 든 것이 확실하니 이제는 정말 해야 할 일, 그건 바로 ‘미룬 일’이다. 해야 하지만, 하고 싶지만 이제껏 미루었던 일을 ‘드디어’ 해야 한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왜냐면 미룰 시간이 없으니까. 미루고 미루었는데 또 미루다 보면 이번 생에서는 영영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아주 옛날부터 그러니까 몇 십 년 전부터 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미루고 미루다 하지 못한 일. / 43p

 

 

나는 ‘나이 먹은 나’에 대한 기대가 있다. ‘나이 먹은 내가 쓰는 글’에 대한 기대다. 숙련은 없을지라도 정년도 없으니까. 늙어서는 훌륭한 작가가 될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계속 쉬지 않고 써야 한다고 자신을 독려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 229p

 

 

 

 

 

 

   어릴 때의 나는 막연히 나이가 들면 ‘아줌마가 되면 남들 다하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는 하지 않을 거야’, ‘편하다고 몸빼 바지 입지 않고 집에서도 우아하게 꾸미고 있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독려하고 지지해주면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기꺼이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자세임을 이 책을 통해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나이 먹고 급체하지 않기 위해, 가뿐하고 유쾌하게 나로 살 수 있는 방법들이란 무엇인지 지금부터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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