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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_ 세상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 나의 서재 2020-10-28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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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저/최성은 역
민음사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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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상징체계로 쌓아올린 좀 더 심오한 형태의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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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상징체계로 쌓아올린 좀 더 심오한 형태의 스릴러!

『태고의 시간들』에 이어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왜 올가 토카르추크를 노벨문학상에 선정한 것인지를 충분히 설명하게 한다!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크워츠코 계곡의 어느 산골 마을. 눈이 잔뜩 내린 추운 겨울밤, 누군가가 두셰이코의 문을 두드린다. 과격하고 불길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두셰이코는 몇 안 되는 이웃 중의 한 명인 ‘괴짜’를 통해 ‘왕발’이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이곳 산골 마을에 사계절 내내 거주하는 사람이라고는 두셰이코 자신과 괴짜 그리고 왕발 뿐, 나머지 주민들은 추위를 피해 10월에 이미 대문을 걸어 잠그고 도시로 돌아가고 없는 상태라 두셰이코는 별도리 없이 왕발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왕발은 마치 몸이 스스로와 결투를 벌이다가 장렬히 나자빠진 것처럼 기괴한 자세를 하고서 누워 있었는데, 퉁퉁 부어오른 혓바닥 아래에서 질식사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날카로운 뼛조각이 발견된다. 불에 탄 동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이용 프라이팬, 동물의 잔해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마룻바닥 그리고 말끔하게 절단된 사슴 머리. 왕발의 시체만큼이나 끔찍한 그의 집을 둘러보던 두셰이코는 문득 이곳으로 오는 길에 마주쳤던 야광 빛 연녹색 눈동자 사슴 두 쌍을 떠올린다.

 

 

 

숲속 여기저기를 헤매는 들사슴은

인간의 영혼에 불안을 안긴다.

-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 중에서 / 119p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폴란드의 어느 산골 마을에서 일어난 한 남자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슴을 포획해 잡아먹다 목에 뼛조각이 걸려 질식한 것으로 보이는 남자의 죽음은 그렇게 단순하게 마무리되는 듯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그나마 단 하나의 실마리가 있다면, 살해된 피해자들의 주변으로 빙 돌아가며 남겨져 있는 사슴 발자국뿐이다. 오직 두셰이코만이 이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동물이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거야. (…) 동물들은 강하고 지혜로워. 그들이 얼마나 영리한지 우리가 모를 뿐이지.”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왕발의 죽음이 어쩌면 좋은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를 혼란스러운 삶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을 그의 해코지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니까. 그렇다, 갑자기 나는 죽음이 살균제나 진공청소기와 마찬가지로 정의롭고 유익한 것임을 깨달았다.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18p

 

 

이 오두막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하면서 공포가 서서히 엄습했다. 왕발은 덫으로 사슴을 포획한 뒤, 도살해서 구워 먹었다. 한밤중에 고요와 침묵 속에서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하늘에서는 벼락도 치지 않았다. 그 어떤 손길도 죽음으로 인도한 적은 없지만, 결국 악마는 처벌을 받았다. / 28p

 

 

 

 

 

 

   그도 그럴 것이 두셰이코는 이 마을 안에서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행동에 줄곧 분노하곤 했다. 숲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니면서 버젓이 밀렵을 해대는 사냥꾼과 마을 사람들, 사망자가 발생한 장소 근처에서 무도회를 여는 그물버섯 채집 협회, 사냥꾼은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인 자연을 보살피는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 옹호하는 신부, 모피 암거래를 위해 여우를 키우는 농장까지. 두셰이코를 둘러싼 공동체들은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법의 테두리’라는 그들만의 논리 안에서 끊임없이 동물들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며 깊은 회환과 절망에 빠진 두셰이코는 총을 든 사냥꾼들 앞에서 거칠게 항의하고, 경찰에 거듭 호소하거나 교회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신부를 질타해보기도 하지만 어느 미친 노파의 헛소리로 취급될 뿐이다.

 

 

 

먹먹한 슬픔과 비탄. 매번 동물이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러한 회환과 애도의 감정은 아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애도가 끝나면, 또 다른 애도가 이어지므로 나는 끊임없이 상중이다. 이것이 나의 상태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눈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갑고 뻣뻣한 어른 멧돼지의 털을 계속 쓰다듬었다. / 148p

 

 

“동물들은 정의감이 매우 강하거든요. 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아니면 부당하게 꾸짖거나 약속을 어길 때마다 나를 바라보던 그 애들의 눈빛이 기억나요. 내가 도대체 왜 신성한 법칙을 어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지독히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했죠. 그 애들은 내게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정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우리에겐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지만, 동물들에게는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있답니다. 아시겠어요?” / 281p

 

 

“그거 아세요? 우리가 때로는 스스로 창조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무엇이 나쁜지 좋은지도 직접 정하고, 자신을 위해 의미의 지도를 손수 그리면서요. 그러고 나서는 자신이 고안해 낸 뭔가를 쟁취하려고 평생을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버전을 갖고 있어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죠.” / 309p

 

 

 

   이처럼 소설의 전반부가 한 마을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에 의해 이야기가 촉발되었다면, 중후반부는 인간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분노하며 홀로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는 두셰이코의 의식에 기대어 전개된다. 때문에 독자들은 이제까지 보았던 여느 스릴러처럼 범인이 누구이고 살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그 과정을 쫓아가는 양상이 아닌 독특한 상징체계로 쌓아올린 좀 더 심오한 형태의 스릴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별과 행성의 위치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인과 관계와 명맥하게 일치한다고 믿는 범우주론적인 관점의 점성학, 사건의 단서이자 복선의 구실을 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철학,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한 지형적 특성, 인간과 동물 혹은 생태 전체에 관한 모럴리티를 다룬 주제 의식은 올가 토카르추크만의 남다른 소설적 지형도를 완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태고의 시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좋은 소설이란 그 외피가 스릴러이든 로맨스이든 상관없이 세상을 향해 지혜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던 작가의 신념이 잘 반영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노는 정신을 명료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다른 감정을 모두 휩쓸어 버리고 몸을 통제한다. 분노는 분명 모든 지혜의 근원이다. 왜냐하면 분노에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 30p

 

 

그러려면 우리는 자신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 두어야 하며, 사실과 일치시키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대목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하며, 어떤 사건이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많은 사건이 실은 단일 사건의 여러 측면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은 거대한 그물이며, 그 어떤 사물도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의 미세한 조각들은 평범한 사고방식으로는 꿰뚫기 어려운, 복잡한 연결망의 우주에 의해 나머지 다른 조각들과 견고하게 묶여 있다. 그렇게 세상은 작동한다. / 87p

 

 

“고통받는 사람은 신의 뒷모습을 본다.”

나는 여기서 뒷모습이란 게 등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엉덩이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신의 앞모습조차 상상하기 힘든데 뒷모습은 과연 어떨까. 어쩌면 이 말은 고통받는 사람은 일종의 쪽문과도 같은 특별한 창구를 통해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축복을 받으며, 고통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진리를 포착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보면 건강한 사람이란 결국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삶의 조화와 균형이 맞춰지는 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165p

 

 

 

 

 

 

   첨부하여 더 하고 싶은 말은 남아 있지만 소설의 결말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어서 여기서 줄여야 할 듯하다. 충격적이고도 다소 호불호가 갈릴 듯한 결말에 대한 해석은 모든 독자들의 몫일 테니까. 다만,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던 저 외침과 실존적 투쟁이라는 당위성 안에서도 발견되는 인간의 이중성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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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_ 이토록 명랑한 러브젤리매직파워판타지히어로라니 | 나의 서재 2020-10-23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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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보건교사 안은영 (리커버 특별판)

정세랑 저
민음사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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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하지만 견고한 정세랑의 언어는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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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이 있는 한 이 세계는 어쩐지 아름다울 것 같다!

말랑말랑하지만 견고한 정세랑의 언어는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학교에는 아무래도 뭔가가 있다. 출근 첫날부터 느낄 수 있었다. 안은영은 유감스럽게도 평범한 보건교사가 아니었다. 은영의 핸드백 속에는 항상 비비탄 총과, 무지개 색 늘어나는 깔때기형 장난감 칼이 들어 있다. 어째서 멀쩡한 30대 여성이 이런 걸 매일 가지고 다녀야 하나 속이 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은 멀쩡하지 않아서겠지. 안은영, 친구들에게는 늘 ‘아는 형’이라고 놀림받는 소탈한 성격의 사립 M고 보건교사, 그녀에겐 이른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18p

 

 

 

  엑토플라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들을 안은영은 볼 줄 아는 아니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일종의 미색 젤리 같은 이 응집체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무지개빛 플라스틱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 그리고 은영 본인의 기운이 필요하다. 비비탄 총은 하루에 스물두 발, 플라스틱 칼은 15분 정도. 여기에 이집트산 앙크 십자가와 터키의 이블 아이 혹은 바티칸의 묵주와 부석사의 염주 같은 영험한 것들의 힘을 빌리면 스물여덟 발에서 19분까지 늘일 수 있다. 가운 안, 허리 뒤쪽으로 비비탄 총과 장난감 칼을 꽂고 다니는 30대 여성의 보건교사라니. 어쩐지 내막을 안다 해도 그건 꽤나 엉뚱해 보이고, 내막을 모르면 더더욱 수상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2학년 1반의 담임이자 한문 과목을 가르치는 홍인표에게도 안은영은 어딘지 미덥지 않아 보이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이상한 여자 경보기’를 울리게 한다. 평소 교무실과는 데면데면했던 은영이 대뜸 그를 찾아와 자신의 반 학생인 승권이가 뭔가에 물린 것 같다며 조퇴시켜야겠다고 하자 난색을 표한다. 사실 인표는 M고의 설립자인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교직을 택했지만 이 학교에선 해마다 자살을 선택하는 아이가 생겼고, 각종 사고와 비행의 빈도 역시 상당히 심각해서 상당히 난감해하던 중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반 학생이 어딘가 나빠 보였다는 은영의 말에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직접 승권을 찾아나선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인표는 승권을 찾아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여겼던 게 틀림없다. 학교 지하실에, 할아버지 때부터 지하층 입구를 동여매고 있는 쇠사슬 저 너머에 사특한 기운을 품고 있는 어떤 존재가 아이들을 헤치려 하고 있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안은영의 눈에만 보이는 지독한 사념의 유기체들이어서 마침 지하실을 살펴보던 은영을 따라 우연히 지하실로 들어간 인표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봉인되어 왔던 뜻밖의 미스터리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지하 깊숙한 곳에서 몸을 잔뜩 부풀린 존재가 인표로 인해 봉인 해제되고, 학교는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일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이로, 우리의 보건교사 안은영이 무지개빛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 총을 든 채 스타킹 발을 하고서 학교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복도를 내달리기 시작한다.

 

 

 

“이 못생긴 새끼,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 43p

 

 

 

 

보건교사 안은영은 내 친구

 

 

 

   『보건교사 안은영』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M고 보건교사 안은영이 한문 교사 홍인표와 함께 학교에 깃든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가는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다. 안은영은 주말이면 남산 타워에 가서 연인들이 채워 놓은 자물쇠로부터 사랑의 힘을, 명승지나 절 탑에서는 소원의 힘을 에너지로 삼아 소모되는 기운을 충전하고 때로는 욕도 서슴지 않지만, 자신이 필요한 곳이면 통굽 슬리퍼를 벗어던진 채 스타킹이 찢어지도록 뛰어다닌다. 뭐 이렇게 명랑한 러브젤리매직파워판타지히어로가 다 있는지. 죽은 자의 영혼을 보거나 퇴마사를 소재로 한 장르물은 많이 봐왔지만 플라스틱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든, 그것도 누구도 쉽게 주목하지 않는 보건교사가 히어로로 등장하는 작품은 처음이 아닐까. 다소 유치해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쿨하고 발랄한 영웅의 등장은 이제껏 우리가 기다려왔던 여성 캐릭터를 드디어 만난 것 같은 가슴 벅찬 느낌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세계의 단단한 부분을 밟고 살아간다면 자신은 발이 빠지는 가장자리를 걸어야 함을 슬슬 깨달아 가던 중이었다. 그리하여 완전히 아이처럼 보였던 정현이 점점 젤리처럼 보였다. / 51p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 123p

 

 

 

 

 

 

 

 

   왜 정세랑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필이면 보건교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학교의 그 수많은 선생님들 중에서 보건교사(나 때는 양호실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건실은 학생들이 자주 오가는 교실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특별히 아픈 일이 없으면 보건교사와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다. 심지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에서는 보건실이 복도 끝의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보건실은, 보건교사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지만 늘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세랑은 어떤 교리나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학생들의 안전과 안녕을 우선으로 살펴봐줄 수 있는 한결 같은 존재에게서, 그들의 사소해 보이는 친절에서 영웅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들여다본 게 아닐까. 우리가 자라던 시절에 사랑과 정의의 힘으로 우리의 자아를 수호해주었던 세일러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가장 여린 존재들을 지켜줄 안은영이 지금 이곳에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세랑은 그걸 믿게 해준다. “아뇨, 햇빛과 아이들은 우리 편이에요.”라고 말할 줄 아는 안은영이 있는 세계, 선한 사람이 지닌 힘을 믿는 세계. 우리는 이미, 그 세계를 살고 있다고.

 

 

 

은영은 핸드백 속의 비비탄 총과 깔때기 칼을 생각했다. 정현이 아파했더라면, 혹 정현이 한 사람에게라도 해를 끼쳤다면 예전에 정현을 분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현은 너무나 무해했다. 격하게 몸부림치며 부서지는 죽음도 있는가 하면 정현처럼 비누장미같이 오래 거기 있는 죽음도 있는 것이다. / 53p

 

 

은영은 문득 크레인 사고 뉴스를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되짚어 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크고 무거운 기계가 중심을 잃고 부러지고 휘어지고 떨어뜨리고 덮치는 일이 흔하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 계속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더라. / 195p

 

 

- 칙칙해지지 마, 무슨 일이 생겨도. / 198p

 

 

 

 

 

  끝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드라마는 소설과 분위기가 비슷한 듯 다른 결을 띄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롭다. 소설이 발랄하고 명랑한 느낌이라면 드라마는 좀 더 미스터리한 장르적 성격에 충실한 느낌이다. 고무적인 것은 소설에서 설명되지 않는 혹은 너무 가볍게 흘러간 듯한 요소들을 드라마에서는 좀 더 설득력 있는 형태로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안은영의 고뇌와 성장에 보다 집중한 부분이 그러하다. 인영과 인표와의 관계가 급하게 수습된 듯한 소설의 마무리 역시 드라마에서는 시간을 두고 풀어갈 듯하여 좀 더 탄탄한 그림을 기대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상 작품은 대체로 만족을 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의 경우는 어느 한쪽이 기운다기보다 각자의 언어를 활용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다만 영상을 보기 전에 소설을 꼭 먼저 읽어보시기를, 보다 안은영 다운 힘을 소설에서 먼저 느껴보시길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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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_ 정작 무서운 건 귀신도 시체도 아닙니다, 사람이죠 | 나의 서재 2020-10-21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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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은 자로 하여금

편혜영 저
현대문학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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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된 신념, 순응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자본주의 논리의 비정함에 이내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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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쇄락이 삼켜버린 것들, 그 자리에 폐허처럼 남겨진 사람들!

배반된 신념, 순응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자본주의 논리의 비정함에 이내 숨이 막힌다!

 

 

 

   무주는 이석에게 거듭 묻는다. 병원이 왜 좋으냐고. 병원에 오면 다 아픈 사람인데 나는 아픈 데 없이 멀쩡하니 좋고, 남들은 병원에 돈 쓰러 오는데 나는 돈 벌러 오니까 좋고, 가끔 빈 침대에서 낮잠도 잘 수 있고 아프면 공짜로 약도 주니 좋고……. 그러다 이석이 “병원이 좋은 게 아니고 집이 싫다”고 헤벌쭉 웃는 것으로 이 쓸데없어 보이는 듯한 문답을 끝낸다. 누구보다 빨리 병원으로 출근해 회진하는 의사보다 더 자주 병동을 돌며 환자와 인사하고, 간호사나 동료에게 자주 농담을 걸고 허튼소리도 하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성실하고 늘 철저한 사람, 이석은 선도병원 내에서 가장 평판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비록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끄는 소리가 묘하게 신경이 거슬리고, 한번 당한 일은 잊지 않고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며 부당한 일을 겪으면 반드시 되갚아주는 섬뜩한 면모도 지니고 있지만, 작은 월급으로 아픈 아이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가장이라는 점은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하다. 무엇보다 무주로서는 서울에서 낯선 이인시로 내려와 선도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막역한 우정과 베풀어준 이석에게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그런 이석의 비리를 고발해야만 하는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지방의 한 종합병원을 배경으로,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 윤리적인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비애로부터 출발한다.

 

 

 

정의와 공존, 그 불완전성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신과 율법을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자부했으나 예수는 그들을 ‘위선자들’이라 꾸짖었다. 무주는 자신이 꼭 바리새인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예수를 죽임으로써 더 높고 훌륭한 인간이 되려 했던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어떤 공명심과 정의감에 홀린 건지 무지의 장막 아래에서 싸구려 도덕심에 고취’되어 이석을 고발한 것에 대해 수시로 저항감을 느낀다. 거의 모든 구매 건에서 이석의 리베이트를 찾아낸 무주는 한때 자신이 태연히 저질렀던 비리와 관행으로 인해 지방 병원으로 내쳐진 과거의 자신과 완전히 결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겼던 게 분명하다. 이제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날 아이를 생각하면 떳떳한 아빠이고 싶고, 이석을 감싸느라 알고도 모른 체하면 공모자 취급을 받거나 부주의하고 태만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테니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의 병원비 때문에 이석이 어쩔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닐까, 고작해야 몇 개월 감봉이나 경고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석이 사직 처리되자 그만 자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무주는 완벽하게 좌우대칭이 맞는 세계, 균형이 잡힌 세계란 없다고 생각해왔다. 모든 것은 비뚤어져 있고 기울어져 있기 마련이라고. 그런 점에서 세계는 애초 구나 정육면체처럼 정확하고 완벽한 형상이 아니라 오히려 트램펄린 같은 것이었다. 똑바로 서면 균형을 잃는 곳, 균형을 유지하려면 비틀거리거나 한쪽 발을 구부리고 팔을 뻗어야 하는 곳, 뒤뚱거려야만 가까스로 설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런 세계이므로 균형을 잃은 태도를 오히려 균형 잡힌 태도로 여겼다. / 40p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주는 자신이 이석을 고발한 사실이 병원 내에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음을 알게 된다. 직원들은 이석이 저지른 비리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이석이 아닌 무주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제 원칙주의자라는 그간의 평을 오히려 비아냥거리로 삼거나 조롱하고 경멸하는 눈빛을 숨기지 않는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무주는 더 이상 이석을 향한 미안한 마음은커녕 이석을 대신해 자신이 비난을 받는 상황이 도무지 참기 힘들어 충동적으로 사무장이 지시한 일이라 말해버리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석의 아이가 죽었다는 소문까지 겹쳐져 직원들은 더욱 냉랭한 태도를 취할 뿐이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무주는 야간 근무자로 보직에서 밀려나고, 아이마저 유산이 되어 아내와의 관계 또한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 믿음직한 남편이자 아빠 그리고 성실한 직원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무주의 바람은 상명하복의 질서와 경쟁주의로 점철된 자본주의의 조직 문화 속에서 철저히 매도된다. 때문에 개원 예정인 요양시설의 본부장으로 복귀하게 된 이석이 무주와의 대화 속에서 『나태복음』 8장의 구절을 인용하는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마태복음』 8장에 이런 구절이 있어.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곱씹었어. 예수는 인자하고 자비롭다면서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러나, 사람이 죽었는지 이렇게 야박해도 되나…… 이해할 수 없었지. 한참 새기니까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

“무슨 뜻인데요?”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 / 140p

 

 

 

 

 

  잘못된 관행과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한 조직일지라도 조직에 성실하고 순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비정한 논리. 양심의 가책보다 조직에서 배제되는 것이 더욱 공포스러운 현실 앞에서 무주가 병원의 영업 방식에 순응하며 끝내 병원비가 체납된 환자를 병실 밖으로 끌어내는 장면은 우리가 얼마나 이 완고한 논리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기어코 확인하게 한다. 어쩌면 그것은 소설의 배경인 병원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 생명의 보존이라는 숭고한 가치마저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쳐질 수도 있는 이분법적인 공간, 환자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자본주의의 생존적 논리 앞에서 공존이란 의미는 그저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 일로 무주는 병원이 걱정하는 게 환자는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병원이 바라는 건 병상이 비지 않는 것이지, 환자의 완치가 아니었다. / 69p

 

관행만큼 편하고 안전한 건 없었다. 문제가 불거지면 ‘관행’이 비난받을 것이었다. 자신 말고도 그렇게 한 선배와 지시를 내린 과장이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 다소 편해졌다. 장부에서 부풀린 수많은 돈 중 자신이 직접 주머니에 챙겨 넣은 돈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놓았다. / 75p

 

 

“그렇지만 거미줄이라고 해도 두 마리, 세 마리가 함께 있으면 안 됩니까? 왜 있잖아요, 공존. 여기서는 안 됩니까?”

“거미줄 하나에 거미 두 마리가 함께 있는 게 공존이 아니야. 그건 자연계를 무시한 처사지. 한 거미줄에 한 마리씩의 거미가 여러 개 늘어서 잇는 것, 그게 공존이야. 다른 거미줄을 넘보지 않는 상태가 공존인 거라고.” / 134p

 

 

 

 

 

 

   배반된 신념, 배제에 대한 불안, 순응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자본주의 논리의 비정함을 이토록 잘 묘사한 작품이 또 있을까.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나는 병원, 이인시, 서울 그 어디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못하고 떠도는 무주를 보며,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가장 근원적인 공포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문에 “병원에 영안실이 있으니까 귀신이 있다느니 어떻다느니 떠들어대지만 정작 무서운 건 귀신도 시체도 아닙니다. 사람이죠.”라던 효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파고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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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_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을까 | 나의 서재 2020-10-15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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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프리즘

손원평 저
은행나무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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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성장통을 겪는 동안 우리는 또 한 뼘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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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큼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게 또 있을까!

사랑이라는 성장통을 겪는 동안 우리는 또 한 뼘 자라난다!

 

 

 

   『프리즘』은 네 번의 계절이 지나는 사이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과해온 네 남녀의 성장통 같은 이야기다. 손원평 작가는 책의 말미에 ‘이들은 사랑이라는 흔하고도 특별한 감정을 통과하며 자신을 확장해가고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민다. 그것이 내가 그리고 싶던 사랑의 본질과 효과’라며 네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정리한다. 아름다워도 상처받아도, 아파서 후회해도 사랑이란 건 멈춰지지 않기에,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랑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기에 다만 침잠하지 않고 확장되어 갈 수 있기를.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을 지닌 저 프리즘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이 일으키는 무수한 결들 속에서 끝끝내는 찬란히 빛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덕분에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을까’ ‘사랑이 나를 성숙하게 한다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를 생각한다. 참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사랑만큼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건 없기에.

 

 

 

다만 열심히 사랑할 수 있기를

 

 

 

이 거리에는 사람이 많다. 참 많다. 너무 많다. / 9p

 

 

 

  좁은 냇물처럼 나 있는 거리를 매일같이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평생 단 한 번 마주치기도 어려운 이 복잡한 거리 속에서도 누군가는 있다. 내가 있고, 그리고 그가 있다. 예진은 오늘도 번잡한 효고동 길목의 작은 은신처에서 커피를 마시며 도원을 떠올린다. 자신만의 공간이라 여겼던 곳에서 몇 번이나 마주치곤 했던 도원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건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예진은 적당히 친근하고 적당히 거리감 있는 이 단정한 남자를 매일 기다리게 된다. 도원 역시 이 관계가 어떻게든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예진은 계산하지 않고 웃는 얼굴이 시원시원한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매력적인 여자다. 하지만 도원은 딱 지금만큼의 간격을 유지하고 싶다. 사랑은 그에게 늘 상처였기에,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누구도 자신의 공간에 들이고 싶지 않다.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있죠. 오래전 연락이 끊겼지만 가끔씩 생각나고 정말 보고 싶은 사람. 다들 하나쯤 있지 않나요.”

그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문장을 맺고 나서야 자신이 누군가를 떠올렸기에 나온 말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글쎄요. 전 제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늘 만나고 있어서요.”

예진이 화사하게 답했다. 그 티 없는 밝음은 도원을 웃게 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을 두 발짝쯤 물러서게 했다. / 58p

 

 

예진은 이 상태가 싫지 않다. 아직 ‘연애 중’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는 없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설레는 날들. 이런 날들만 계속된다면 매일이 재미날 텐데. 그 많고 많은 시작의 직전들 중, 연애의 시작 전보다 달콤한 게 있을까. 아쉽게도 이 시간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건 예진도 알고 있다. 취한 뒤의 갑작스런 입맞춤, 예기치 못한 한 방처럼 불시에 듣게 되는 상대의 속마음, 혹은 자신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암시적인 고백. 그런 찰나의 지점 후에 관계는 성큼, 어느 단계로 진입한다. / 63p

 

 

 

 

 

 

   호계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베이커리를 채우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 냄새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뭐랄까, 이해가 되는 냄새라고나 할까. 하지만 호계는 이 냄새가 진실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하고 마냥 병아릿빛 같은, 그래서, 그러므로 가짜라고 여긴다. 이것이 오랫동안 애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부터 배제되어왔던 호계가 대략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한편, 호계가 일하고 있는 베이커리의 사장인 재인은 헤어진 남편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내내 만남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달에 두세 번 정도 만나 식사를 하고 잠자리도 가지지만 서로 간에 오가는 말은 별로 없다. 그녀는 이 의미 없어 보이는 관계를 쉬이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면서도 여전히 그를 만난다.

 

 

스스로가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사랑이란 건 줏대도 없이 좇는 유행이라고 생각했었고 모두들 그 흔해 빠진 유행에 휩쓸려 살아간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실은 그렇게 생각해야 버틸 수 있었다. 그래야 자신이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당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 124p

 

나는 왜 이토록 행복한 결말에 대해 관대한 걸가. 정작 그런 걸 별로 경험해본 적도 없으면서. 의문했던 적도 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의문 자체에 답이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도 그런 호사를 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재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겪지 못한 행복, 충만하고도 영원한 사랑이 타인을 통해 어디선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 82p

 

 

 

 

  접점이 없을 것 같았던 네 사람의 우연한 만남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도원은 자신이 음악을 하던 시절에 짧게 만났던 재인과의 재회에 다시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낀다. 무언가가 회복되는 느낌, 치유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 되살아나고 아물어 가는 느낌을 받으며 그녀와 이대로 함께 한다면 마지막은 어떨지 상상한다. 그건 재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도원에게 아직 할 수 없는 말들이 너무도 많다. 그렇게 시작된 이 관계가 온전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급하게 다시 쌓아올려진 이 관계에 문제는 없는 걸까. 그 사이 도원과 재인이 가까워지는 것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예진은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때때로 자신이 도원을 좋아한 게 맞을까, 사실은 이별과 상실을 잊고 그저 ‘새로운 설렘’이라는 감정에 빠져 있는 게 즐거웠던 건 아닐까 뼈아픈 의심에 빠져들기도 한다. 때문에 이번만큼은 자신을 좋아해주는 남자를 만나겠다는 예진을 바라보며 호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누군가와 시작하곤 하는 그녀에게 화가 치민다. 예진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는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것은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그녀의 사랑을 비난하는 것뿐이다.

 

 

 

재인은 입을 닫았고 호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얘기를 여기저기 한 조각씩 흘리고 다녀도 되는 걸까. 진열대에 늘어선 비닐 안의 쿠키들을 볼 때면 가끔 불안해진다. 나도 저런 모습이 아닐까. 잘 포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속이 뻔히 들여다보인다는 점에서는. 그러다가 언젠가, 소소한 비밀이라고 여겼던 모든 일들이 전부 알려진다면? 그런 그림을 그리면 등 아래쪽에서부터 한기가 서려온다. / 47p

 

 

시작과 동시에 도원은 늘 끝을 생각했다. 설레야 할 때도, 절정이어야 할 때도, 극복해야 할 때도 끝이 그려졌다.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연상시켰다. 그 무수한 과정을 거쳐 도원은 마침내 사랑과 죽음은 등가라는 공식에 다다랐다.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는 한 번도 먼저 이별을 입에 담은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농담으로라도 끝을 얘기하는 연인에겐 단번에 마음이 식었다. 수민과의 이별이 어렵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끝을 연상시키는 관계를 그는 용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원의 결론은 점점 굳어져갔다. 사랑이 뒤틀린 시간을 만나면 죽음이 되는 거라고. / 196p

 

 

 

   이렇듯 『프리즘』은 서로 다른 네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마음의 여러 지점들을 잔잔한 문체와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의 설렘, 사랑하는 순간에 나누게 되는 약속들, 서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했을 때 끝끝내 누설되고 마는 오해와 흠집들, 내내 보고 싶지 않아서 회피했던 것들까지. 소설은 우리가 사랑을 하는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감정과 그것이 가져온 변화들 그리고 그 사랑이 내게 남긴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감정을 느끼고 읽는 뇌 기능이 고장 난 탓에 공감 능력 장애를 지고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아몬드』, 견디며 사는 삶에 익숙해진 청춘들에게 반격을 고하는 『서른의 반격』이 그러했듯 말이다.

 

 

예진의 말대로 세상은 위험한 곳이었다. 과거 호계가 생각한 세상은 색이 한 가지였고 그 빛깔과 모양은 구겨진 회색 종이와 비슷했다. 아득했다. 이토록 많은 색을 무시하고 한 톤으로 세상을 규정했던 시간들이. 이제 그는 나아갈 것이다. 수많은 색과 무늬를 가진 곳으로. / 240p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에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과잉된 자의식, 네 명의 등장인물이 저마다 다른 고유의 색채를 지닌 듯하지만 결국엔 하나의 색처럼 느껴지는 단조로움, 이 때문에 등장인물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매력을 느낀다거나 이입되지 못한 채 마지막까지 그저 흘러가고야마는 이야기. 이제는 책 소개글 따윈 필요 없이 ‘손원평’이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작품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작가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지만, 어느 덧 그 이상을 기대하게 되는 독자의 바람을 이렇게나마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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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만지다_ 이 경이로운 세상에서 우리가 함께 한다는 건 | 나의 서재 2020-10-1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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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주를 만지다

권재술 저
특별한서재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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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이자 시인의 시선으로 아득한 우주의 세계를 아름답게 어루만지는 물리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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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우주가 있다!

물리학자이자 시인의 시선으로 아득한 우주의 세계를 아름답게 어루만지는 물리학 에세이!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별을 본 건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지도부원을 포함해 학생회 부원들과 함께 산으로 수련회를 갔다가 나는 눈앞에서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별들에 그만 그 자리에서 누워버렸다. 그렇게 나는 친구와 함께 돗자리 하나를 깔아놓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밤새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건 너무나 동화 같은, 비현실적인 현실이었다. 이따금씩 나타나 이쪽 하늘에서 저쪽 하늘로 사라지는 별똥별들, 아낌없이 반짝여주었던 별빛들, 고요하지만 찬란했던 별무더기들. 나는 그날 하늘이, 아니 온 우주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이라 믿는다. 그것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우주를 만지다』를 읽고 있으면 가장 경이롭고 순수한 감동을 느꼈던 그 날 밤이 떠오른다. 저 별은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아득한 옛날에 사람들이 밤길을 걸으며 의지했다던 별자리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별자리와 같은 것인지 어느 것 하나 분명히 아는 게 없지만, 우주는 아득히 먼 허공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곳이자 나를 둘러싼 이 세상 전체가 우주라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바로 그 날 밤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우리가 우주 안에 있듯, 우리 안에 우주가 있다”던 맥스 테그마크의 말과 꼭 닮았다.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원자 단위의 미시세계부터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우주 너머의 거시세계까지, ‘과학’이라는 영역 속에 가둬두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을 물리학자이자 시인은 ‘어른 아이 다 같이 우주를 듣고 우주를 보고 우주를 만지고 우주와 춤을 추자’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부디 이 책을 이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우주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우주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이 아름다운 우주에 태어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세상 아무 것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바늘에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우리의 인연은 바로 이 어마어마한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이루어진 관계이기에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다. 『우주를 만지다』에서도 저 아득한 우주의 수많은 별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밤하늘에 보이는 무수한 별들은 대부분 은하수 은하라고 하는 우리 은하에 속해 있는데, 이 은하는 지름이 약 10만 광년이나 되고 그 안에 별이 약 1,000억 개가 있다고 말이다. 우리가 별을 보는 것은 별에서 나온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인데, 어떤 별빛은 10년, 어떤 별빛은 1만 년, 어떤 것은 10만 년 전에 출발한 것이라고 한다. 10만 년 전의 별이라니, 10만 년 전이라면 인류에게는 구석기 시대로 우리는 그때 출발한 빛을 지금 보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 별은 지금쯤이면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이 어마어마한 별들 중에서, 또 어마어마한 확률로 생명이 살 수 있는 별에서 태어나 그보다 더 어마어마한 확률로 내 옆의 인연을 만난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새삼 당신과 나, 우리의 만남이 세상 그 무엇보다 경이롭게 느껴진다.

 

 

 

10억 분의 3초, 0.003초, 이런 시간은 너무나 짧아서 그냥 현재로 우겨도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달은 지금의 달이 아니다. 1.3초 전의 달이다. 우리가 보는 태양은 8분 전의 태양이다. 태양계의 가장자리라고 하는 오르트 구름대는 1년 전의 모습,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4년 전의 모습, 북극성은 400년 전의 모습, 안드로메다 은하는 230만 년 전의 모습이다. / 28p

 

 

지구는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생명이 존재하는 푸른 점이다. 아직도 우주의 어디에 다른 생명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주에 다른 생명이 있건 없건 지구의 생명은 소중하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비록 우주에 다른 생명이 무수히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지구의 생명은 그 생명과 매우 다른, 독특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구의 생명은 이 우주에서 매우 독특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 51p

 

 

 

 

  과학자들은 흔히 원자 수준의 세계인 미시세계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거시세계로 세상을 구분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밀리, 마이크로, 나누, 피코, 펨토, 아토, 젭토, 욕토로 구분되는 저 작은 원자의 세계는 놀라울 정도다. 책에 따르면 거기세계와 미시세계를 구분하는 숫자를 ‘아보가드로수’라고 하는데, 아보가드로수는 물질 1몰에 들어 있는 원자의 수로 무려 600,000,000,000,000,000,000,000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즉, 원자가 이만큼 모여야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거시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보가드로수는 ‘너와 나를 우리로 만드는 마법의 수’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세상을 좀 더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게 한다. ‘오늘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서 한 아이가 눈 오줌에 있던 물 분자가, 한 달 뒤 내가 마시는 한 컵의 물 속에 들어 있다’는 말처럼, 내 허파에 들어갔던 공기가 1초 후에 너의 허파 속으로 들어가고, 1분 후에 너의 핏속에 들어가고, 1시간 후에 너의 살 속에 들어가며 나의 피와 살이 너의 피와 살이 된다는 것. 우리가 모르고 있지만 모든 생명체는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저 아보가드로수의 위대함을 잊지 않기를.

 

 

 

색도, 질감도, 온도도 없는 원자. 여러분은 그런 원자가 궁금하지 않은가? 만져보고 싶지 않은가? 과학자들은 이런 원자를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가고 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서 온다. 보이는 것은 허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실상이다. 보이지 않는 원자, 하지만 모든 보이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원자다. / 107p

 

 

뉴턴은 이러한 인력이 태양, 지구, 달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천체들 사이는 물론, 돌멩이와 지구 사이에도 있고, 돌멩이와 돌멩이 사이에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중력을 ‘만유 인력’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물질 사이의 인연은 가히 우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 166p

 

생각해보자. 우리가 보는 우주의 배경복사는 138억 년 전의 전파다. 우리가 보는 우주의 가장자리는 지금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138억 년 전의 가장자리다. 지금의 우주 가장자리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과거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우주의 ‘지금’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그런 것이다. 현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과거의 것들이다. / 298p

 

 

 

 

 

 

   이렇듯 『우주를 만지다』는 물리학자이자 시인의 시선으로 아득한 우주의 세계를 아름답게 어루만지는 물리학 에세이다. 엔트로피, 빅뱅, 양자역학, 차원, 상대성 이론 등 물리학의 여러 이론들을 통해 나를 둘러싼 세계의 엄정한 질서를 이해하면서 광활한 우주의 신비로움이 전하는 경이로움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을 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겠다는 마음으로 읽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이 책을 받아들일 것을 추천 드린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의 너비가 분명 이전보다 넓어진 것을 느끼게 될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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