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hjh8s님의 블로그
http://blog.yes24.com/hjh8s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hjh8s
hjh8s님의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1월 스타지수 : 별3,181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나의 서재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내용이 없습니다.
2020 / 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나의 친구
최근 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ㅈ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새로운 글
오늘 20 | 전체 24860
2016-04-11 개설

2020-10-28 의 전체보기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_ 세상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 나의 서재 2020-10-28 03:57
http://blog.yes24.com/document/1322756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저/최성은 역
민음사 | 2020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독특한 상징체계로 쌓아올린 좀 더 심오한 형태의 스릴러!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독특한 상징체계로 쌓아올린 좀 더 심오한 형태의 스릴러!

『태고의 시간들』에 이어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왜 올가 토카르추크를 노벨문학상에 선정한 것인지를 충분히 설명하게 한다!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크워츠코 계곡의 어느 산골 마을. 눈이 잔뜩 내린 추운 겨울밤, 누군가가 두셰이코의 문을 두드린다. 과격하고 불길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두셰이코는 몇 안 되는 이웃 중의 한 명인 ‘괴짜’를 통해 ‘왕발’이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이곳 산골 마을에 사계절 내내 거주하는 사람이라고는 두셰이코 자신과 괴짜 그리고 왕발 뿐, 나머지 주민들은 추위를 피해 10월에 이미 대문을 걸어 잠그고 도시로 돌아가고 없는 상태라 두셰이코는 별도리 없이 왕발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왕발은 마치 몸이 스스로와 결투를 벌이다가 장렬히 나자빠진 것처럼 기괴한 자세를 하고서 누워 있었는데, 퉁퉁 부어오른 혓바닥 아래에서 질식사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날카로운 뼛조각이 발견된다. 불에 탄 동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이용 프라이팬, 동물의 잔해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마룻바닥 그리고 말끔하게 절단된 사슴 머리. 왕발의 시체만큼이나 끔찍한 그의 집을 둘러보던 두셰이코는 문득 이곳으로 오는 길에 마주쳤던 야광 빛 연녹색 눈동자 사슴 두 쌍을 떠올린다.

 

 

 

숲속 여기저기를 헤매는 들사슴은

인간의 영혼에 불안을 안긴다.

-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 중에서 / 119p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폴란드의 어느 산골 마을에서 일어난 한 남자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슴을 포획해 잡아먹다 목에 뼛조각이 걸려 질식한 것으로 보이는 남자의 죽음은 그렇게 단순하게 마무리되는 듯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그나마 단 하나의 실마리가 있다면, 살해된 피해자들의 주변으로 빙 돌아가며 남겨져 있는 사슴 발자국뿐이다. 오직 두셰이코만이 이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동물이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거야. (…) 동물들은 강하고 지혜로워. 그들이 얼마나 영리한지 우리가 모를 뿐이지.”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왕발의 죽음이 어쩌면 좋은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를 혼란스러운 삶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을 그의 해코지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니까. 그렇다, 갑자기 나는 죽음이 살균제나 진공청소기와 마찬가지로 정의롭고 유익한 것임을 깨달았다.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18p

 

 

이 오두막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하면서 공포가 서서히 엄습했다. 왕발은 덫으로 사슴을 포획한 뒤, 도살해서 구워 먹었다. 한밤중에 고요와 침묵 속에서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하늘에서는 벼락도 치지 않았다. 그 어떤 손길도 죽음으로 인도한 적은 없지만, 결국 악마는 처벌을 받았다. / 28p

 

 

 

 

 

 

   그도 그럴 것이 두셰이코는 이 마을 안에서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행동에 줄곧 분노하곤 했다. 숲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니면서 버젓이 밀렵을 해대는 사냥꾼과 마을 사람들, 사망자가 발생한 장소 근처에서 무도회를 여는 그물버섯 채집 협회, 사냥꾼은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인 자연을 보살피는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 옹호하는 신부, 모피 암거래를 위해 여우를 키우는 농장까지. 두셰이코를 둘러싼 공동체들은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법의 테두리’라는 그들만의 논리 안에서 끊임없이 동물들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며 깊은 회환과 절망에 빠진 두셰이코는 총을 든 사냥꾼들 앞에서 거칠게 항의하고, 경찰에 거듭 호소하거나 교회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신부를 질타해보기도 하지만 어느 미친 노파의 헛소리로 취급될 뿐이다.

 

 

 

먹먹한 슬픔과 비탄. 매번 동물이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러한 회환과 애도의 감정은 아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애도가 끝나면, 또 다른 애도가 이어지므로 나는 끊임없이 상중이다. 이것이 나의 상태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눈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갑고 뻣뻣한 어른 멧돼지의 털을 계속 쓰다듬었다. / 148p

 

 

“동물들은 정의감이 매우 강하거든요. 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아니면 부당하게 꾸짖거나 약속을 어길 때마다 나를 바라보던 그 애들의 눈빛이 기억나요. 내가 도대체 왜 신성한 법칙을 어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지독히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했죠. 그 애들은 내게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정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우리에겐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지만, 동물들에게는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있답니다. 아시겠어요?” / 281p

 

 

“그거 아세요? 우리가 때로는 스스로 창조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무엇이 나쁜지 좋은지도 직접 정하고, 자신을 위해 의미의 지도를 손수 그리면서요. 그러고 나서는 자신이 고안해 낸 뭔가를 쟁취하려고 평생을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버전을 갖고 있어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죠.” / 309p

 

 

 

   이처럼 소설의 전반부가 한 마을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에 의해 이야기가 촉발되었다면, 중후반부는 인간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분노하며 홀로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는 두셰이코의 의식에 기대어 전개된다. 때문에 독자들은 이제까지 보았던 여느 스릴러처럼 범인이 누구이고 살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그 과정을 쫓아가는 양상이 아닌 독특한 상징체계로 쌓아올린 좀 더 심오한 형태의 스릴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별과 행성의 위치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인과 관계와 명맥하게 일치한다고 믿는 범우주론적인 관점의 점성학, 사건의 단서이자 복선의 구실을 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철학,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한 지형적 특성, 인간과 동물 혹은 생태 전체에 관한 모럴리티를 다룬 주제 의식은 올가 토카르추크만의 남다른 소설적 지형도를 완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태고의 시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좋은 소설이란 그 외피가 스릴러이든 로맨스이든 상관없이 세상을 향해 지혜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던 작가의 신념이 잘 반영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노는 정신을 명료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다른 감정을 모두 휩쓸어 버리고 몸을 통제한다. 분노는 분명 모든 지혜의 근원이다. 왜냐하면 분노에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 30p

 

 

그러려면 우리는 자신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 두어야 하며, 사실과 일치시키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대목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하며, 어떤 사건이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많은 사건이 실은 단일 사건의 여러 측면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은 거대한 그물이며, 그 어떤 사물도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의 미세한 조각들은 평범한 사고방식으로는 꿰뚫기 어려운, 복잡한 연결망의 우주에 의해 나머지 다른 조각들과 견고하게 묶여 있다. 그렇게 세상은 작동한다. / 87p

 

 

“고통받는 사람은 신의 뒷모습을 본다.”

나는 여기서 뒷모습이란 게 등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엉덩이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신의 앞모습조차 상상하기 힘든데 뒷모습은 과연 어떨까. 어쩌면 이 말은 고통받는 사람은 일종의 쪽문과도 같은 특별한 창구를 통해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축복을 받으며, 고통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진리를 포착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보면 건강한 사람이란 결국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삶의 조화와 균형이 맞춰지는 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165p

 

 

 

 

 

 

   첨부하여 더 하고 싶은 말은 남아 있지만 소설의 결말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어서 여기서 줄여야 할 듯하다. 충격적이고도 다소 호불호가 갈릴 듯한 결말에 대한 해석은 모든 독자들의 몫일 테니까. 다만,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던 저 외침과 실존적 투쟁이라는 당위성 안에서도 발견되는 인간의 이중성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1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