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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살인마_ 살인자는 나였다 | 나의 서재 2020-10-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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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지 살인마

최제훈 저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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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차례 잘려나가는 손가락, 피의 퍼포먼스 속에 숨어든 비틀린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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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 속에 숨어든 모방 살인, 살의의 전이 그리고 악의의 진실!

차례차례 잘려나가는 손가락, 피의 퍼포먼스 속에 숨어든 비틀린 윤리!

 

 

  사람이 둘 이상만 모이면 어김없이 손가락,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같은 단어가 흘러나온다. ‘단지 살인마’는 연일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다. 언론은 ‘단독’ ‘속보’를 앞세워 단지 살인마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네 건의 살인사건을 시시콜콜 파헤치고, 경찰은 전방위적인 수사를 펼치지만 쓸 만한 단서를 포착하지 못한다. 범행 장소는 목포-대구-서울-원주, 범행 대상은 청년-여고생-노파-중년 남성. 그야말로 동서남북,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이 비정형적인 범행 행각에 대중은 서슬한 공포를 느낀다.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흉기-무차별 폭행-둔기-익사, 별개의 사건으로 보아도 무방한 네 건의 살인을 하나로 꿰는 표식은 차례차례 잘려나가는 손가락뿐이다.

 

 

 

살의로 일그러진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그린 블랙 코미디

 

 

 

   시작은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단서 하나 남기지 않고 네 건의 살인을 저지르는 주도면밀한 악마에게도 어떤 패턴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숫자와 차트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기 절제와 매매 타이밍, 숨겨진 패턴을 투시하는 혜안을 지녔다고 자부하던 전업 투자자 장영민은 프라모델 대신 탐정놀이로 가볍게 시간을 때우는 것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건에 접근하기 시작했다가 마침내 특별한 패턴 한 가지를 포착해내고야 만다.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열 가지 계율, 그는 희생자들이 정확히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살해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또 다시 다섯 번째 희생자가 나온다. 사인은 질식사,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는 30대 남자 황성찬은 천안으로 들어가는 국도변 풀숲에 쓰러져 있었고 다섯 손가락이 모두 잘린 모습이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 황성찬은 어릴 적부터 소문난 사고뭉치에 빠듯한 형편에도 미국 유학을 가겠노라 떼를 썼다가 이내 마약 사건에 연루돼 부모를 곤경에 빠뜨린 일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율 역시 ‘부모를 공경하라’였다.

 

 

 

약간의 현대적 변용을 허용한다면, 희생자들은 정확히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살해되고 있었다.

1.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보스를 바꾼 조직원

2. 우상을 만들지 말라-아이돌 그룹의 사생팬

3.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친 노파

4.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주말로 없이 일을 시킨 공장 사장 / 28p

 

 

 

 

 

 

   장영민의 추측대로라면 이제 여섯 번째 계명 ‘살인을 하지 말라’에 따른 희생자가 나타날 차례다. 문득 고교 시절, 자신을 찹쌀모찌라고 불렀던 양승범을 떠올린다.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버젓이 자행되었던 성폭력까지. 덕분에 사회불안장애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 그는 거듭 되뇐다. ‘살인을 하지 말라, 살인을 하지 말라, 살인을…… 꼭 심장을 멈추게 해야만 살인은 아니다. 열일곱 살 소년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는 것도 살인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 박힌 생각이 그 증거’라고 말이다. 장영민은 사이버 흥신소에 의뢰해 양승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운명의 날, 여섯 번째 계명은 마침내 실행된다. 스스로 단지 살인마를 가장한 장영민에 의해 양승민의 손가락이 잘려나간다.

 

 

 

“사람 기억 중에서 말이야, 제일 질긴 게 쪽팔린 기억이더라.”

“응?”

“이건 시간이 흘러도 당최 사라지거나 희미해지지가 않아. 다른 기억들은 적당히 퇴색되고 나한테 유리하게 왜곡되기도 하던데, 얘는 안 그래. 오히려 갈수록 과장되고 비비 꼬이면서 어떻게든 나를 괴롭히려고 안달이지.” / 64p

 

 

사후 세계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누전차단기 떨어지듯 암흑 속에 묻히고 끝나는 거라고. 하지만 갓 생겨난 주검을 마주하고 있자니 뭐라도 있기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저게 내가 아등바등 살아온 세상이구나, 하고 돌아볼 수 있는 초월적인 무언가가. / 71p

 

 

 

 

  소설을 읽고 있으면 불현듯 이런 의심이 든다. 단지 살인마를 가장했던 장영민처럼, 어쩌면 수많은 모방범들이 악명 높은 연쇄살인사건의 이름을 빌려 버젓이 살인을 하고 우리 주변에 숨어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때문에 단지 살인마가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는 행위를 ‘현대문명에 대한 완강한 거부를 상징’하는 동시에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경고를 점층법적 절단 의식에 담은 것’이라고 분석하는 저 의미심장하고 진지한 해석 따위는 이내 우스워지고 만다. 그렇게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는 행위가 한낱 퍼포먼스로 전락하는 사이, 독자들은 ‘살인자’는 누구도 아닌, 나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될 수 있다는 평범성에 전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살의와 악의는 어느 소수의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자에게서만 보이는 특이 행동이 아니라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품고 있는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섬뜩해지고 마는 것이다.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번 사건 역시 모방 범죄일지 모른다는. 이전 다섯 건의 사건들 또한 단독범의 소행이 아닐지 모른다는. 이 만만찮은 가능성을 애써 무시한 이유는, 만일 범인이 서로 알지 못하는 다수라면 십계명에 따른 전개가 신비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이었다. 그쪽까지 헤아릴 여력은 없었다. 일곱 번째 계명이 어사무사했지만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난 그만 손 털었으니 알아서들 하라지. / 87p

 

 

“우린 선택을 한 거예요. 평생을 괴로움 속에서 사느니 목숨 걸고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기로. 그렇죠?”

손동식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한 짓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잖아요. 우리야말로 피해자고, 궁지에 몰린 생쥐처럼, 그러니까 말하자면…… 전쟁. 그래요, 작은 전쟁을 치른 거죠.” / 138p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지난 해 세상에 드러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범 이춘재는 이미 자신의 처제를 성폭행 및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그런데 이춘재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 이미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범인은 다른 사건으로 오래 전부터 수감돼 있거나 죽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살인행각을 멈추지 못할 것”이라 주장한 바가 있다. 경찰이 이춘재의 심리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성범죄와 살인을 계속하면서도 죄책감 등의 감정 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감정 상태에 따라 살해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고, 수법도 점차 가학적인 형태로 진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소설 속 장영민에게서도 유사한 형태로 드러난다.

 

 

 

   단지 살인마에 의한 희생자인지 모를, 일곱 번째 희생자가 또 다시 나타나고 그러는 동안에 장영민은 ‘잠시 성찰할 틈도 없이 계속되는 자기복제’ 속에서 점점 범죄에 무감각해지고 스스로도 ‘한없이 가벼워져 휘발되는’ 듯한 ‘윤리적인 소멸’을 느낀다. 잠시 무감각해져 있었던 투자 타이밍에 대한 감각도 돌아오고, 여행지에서 버킷리스트를 즐길 계획까지 세우는 등 점차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분리되는 과정으로 이행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우편함에 꽂힌 편지에서 ‘단지 살인마, 전화 요망. 010-XXXX-XXXX’이란 메시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제 장영민은 자의에 의해 선택한 살인을 타의에 의해 멈출 수 없는 복잡한 시험대에 오른다. 그는 살인을 멈출 수 있을까. 이미 가속도가 붙어버린 그의 범죄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까.

 

 

 

 

 

 

   소설 『단지 살인마』는 차례차례 잘려나가는 손가락, 피의 퍼포먼스 속에 숨어든 개인과 사회 전체의 비틀린 윤리를 냉정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한 평범한 소시민이 연쇄살인의 형식을 빌려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과정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범죄가 작동하는 방식과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살인과 관련되어 있는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손가락을 자르는 연쇄살인범의 살인 패턴, 완전범죄를 꿈꾸는 모방 살인, 또 다른 살인자와의 공모에 이르기까지, 추리소설의 특성과 철저히 살인자의 시선에서 그의 심리를 따라가는 전개 방식은 마지막까지 몰입도를 높인다.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예비 독자분들이라면 망설임 없이 질주하는 작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즐기면서 그 속에 들어있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함께 숙고해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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