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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의 끼니는 안녕하십니까? | 기본 카테고리 2022-09-2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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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끼니

유두진 저
파지트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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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남편과 태국으로 여행을 갔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큰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어 여행하는 동안 행복하다가도 불안감에 시달리곤 했다. 그렇게 즐거움 반 긴장 반으로 마지막 날엔 거의 소강상태였고 맛집을 알아보거나 할 여력도 없었다. 마침 쇼핑을 갔던 참이어서 남편과 나는 푸드코트에 가서 아무거나 사 먹기로 했다. 국물에 밥 말아 먹고 싶은 마음에 똠얌꿍을 시켰는데, 맛집도 아니고 그냥 푸드코트 음식인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한 그릇 다 비우고 밥도 추가해서 더 먹었다. 뜨끈하고 새콤매콤한 국물을 떠먹으니 어찌나 개운하던지. 남편이 시킨 메뉴는 기억조차 안 나는데, 그날 먹은 똠얌꿍은 아직도 떠올리면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참 맛있었던 기억이다.

뜬금없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식사 이야기를 한 건 바로 이 책, 《끼니》 때문이다. 서문에 살면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뭐였냐는 저자의 질문이 있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도 아니고 스페셜한 오마카세도 아닌 그냥 소박한 한 끼가 기억에 남았던 걸 보면 맛보다도 상황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는 큰 일에 대한 두려움과 여러 가지 현실적인 걱정을 뜨끈한 한 그릇이 데워준 게 아닐지. 아무튼 그때의 기억으로 수술도 잘 마치고 건강하게 잘 회복할 수 있었다. 밥심이라는 말이 헛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에게 밥심을 주었던 끼니, 감동을 주었던 끼니, 행복함을 선사했던 끼니는 어떤 음식이었을까 궁금해하며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에는 저자가 끼니를 때우면서 관찰한 별난 사람 &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선거 출마하는 선배를 응원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만난 싸고 맛있는 냉면집 이야기에는 내가 다 입맛이 다셔졌다. 하지만 이름도 길도 기억하지 못해서 영원히 추억 속으로 묻혀졌다는 부분에서는 함께 아쉬워했다. 사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던 터라 남일같지 않았다(난 중국집이었지만). 심지어 계산도 내가 안 해서 카드명세서를 뒤져볼 수도 없다는 게 함정...

아버지 지인 딸 결혼식에 축의금 전달하러 가면서 뷔페인 줄 알고 실컷 먹을 마음에 신이 났는데, 스테이크 코스 요리라고 해서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먹을 수 없다며 그냥 발길을 돌렸다는 대목에서는 화가 났다! 아니, 모르는 사람 사이에 끼어서 먹으면 좀 어때서? 스테이크인데?! 아직 혼밥 내공이 나보다 못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모르는 사람 아니라 모르는 사람 할아버지랑도 동석 가능한 거 아닙니까, 작가님?!

반면 많이 먹으려고 선배 결혼식에서 먼저 식사부터 하고 결혼식에 가서 사진도 찍고 다시 재입장해서 소식하는 척 많이 안먹는 척 하다 선배 사촌 여동생한테 두 번 입장한 걸 들킨 부분에서는 내가 더 창피했다. 시간순서가 언제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두 번 입장도 하신 분이 스테이크 포기라니...작가님, 먹는 걸로 장난(?)치시는 거 아닙니다. 그러시면 곤란하다구요.

혼밥 10단계를 저자가 가장 먼저 적은 거라며, 1단계인 편의점에서 혼자 삼각김밥 먹기부터 10단계인 꼼장어 집이나 삼겹살집에서 혼자 구워 먹기를 모두 해봤다는 부분에서는 또다시 분노했다. 아니, 이것도 성공하신 분이 스테이크는 왜 못 썰고! 다음부터는 저자가 꼭 모르는 사람 사이에 끼어서라도 스테이크 코스요리를 먹고 왔으면 좋겠다. 왜이렇게 스테이크 코스요리에 분노하냐면, 내가 스테이크에 정말 진심이라서 그렇다. 못 먹고 나왔다는 부분에서 책장 잠시 덮었다는 불편한 진실....

아무튼 읽는 동안 별난 사람(a.k.a 진상) 이야기에 함께 어이없어하고 분노하며, 보통 사람 이야기에는 어쩐지 짠하면서도 공감하다 보니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앞으로도 끼니를 챙기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람 냄새 나는 재미난 이야기들로 끼니2를 냈으면 좋겠다. 먹고 싶어서 침 꼴깍 삼키며 읽을 준비는 이미 되어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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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한 순간, 그림이 내게 말을 걸었다 | 기본 카테고리 2022-09-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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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림의 말들

태지원 저
클랩북스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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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자주 가던 바에 걸려 있던 그림이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유난히 시선을 잡아끌던 그림. 남편이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나는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유일하게 불을 밝힌 곳, 도시인들이 모여 저마다의 인생을 풀어내는 공간. 마치 그림이 나에게 너만 외로운 게 아니라고, 인생은 원래 그렇게 외로운 거라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나중에는 그림을 볼 요량으로 혼자 바에 들르기도 했다. 그림을 안주 삼아 이름 모를 칵테일을 홀짝거리면 알콜이 주는 힘인지 그림이 주는 힘인지, 아무튼 더는 외롭지 않았다. 그게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물론 레플리카겠지만).

그림이 내게 말을 건넨 순간은 또 있다. 몇십 분이고 같은 자리에 서서 한 작품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게 되는 순간. 이중섭의 「황소」가 그랬고 에바 알머슨의 「나비」가 그랬다. 그림은 내게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말해주기도 하고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너를 펼치라고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런 순간을 경험했기에 태지원 작가의 《그림의 말들》을 만났을 때 더욱 반갑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책은 브런치에 연재했던 명화를 통해 얻은 지혜와 통찰에 관한 글을 엮은 두 번째 책으로, 인생에 질문이 찾아온 순간마다 그림이 들려준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알아야 할 것들 / 나 자신과 잘 지내고 싶다면 / 적당한 거리가 관계를 아름답게 만든다 / 지치고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는 법 등 네 개의 챕터로 꾸려져 있는데, 작가가 겪었던 일들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에 알폰스 무하, 요하네스 베르메르, 폴 고갱, 테오도르 루소, 폴 세잔 등 세계적인 화가들의 그림들이 어우러져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고백하건대 어릴 땐 막연히 나이 먹으면 자연스럽게 어른의 스탠스를 취하게 될 줄로만 알았다. 결혼하면 외롭지 않을 줄 알았고, 마흔이 되면 흔들리는 일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내일모레가 마흔인데 나는 여전히 철딱서니가 없고 삶이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을 수도 없이 많이 마주친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데, 벌써 수천 번도 더 흔들린 것 같습니다만...아무튼 살면 살수록 쉽기는커녕 어려운 일이 늘어만 간다. 마치 레벨이 올라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게임처럼.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 그 속에서도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나갔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고, 어떤 부분에선 찔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실패와 성공에 대한 기준 이야기였는데, 작가도 나처럼 어떤 일을 하던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실패'라고 규정해왔다고 한다. 실패와 성공만 존재하는 이진법의 세계에서 살아왔고, 완벽히 성공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다고. 나는 내 얘기를 적어놓은 줄 알았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보니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워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했다. 시작도 전에 포기했던 일도 있었다. 남들에게는 잘도 '시작이 반'이라며 응원해줬으면서, 왜 자신에겐 그러지 못했는지.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올 것만 같았다.

스스로를 미친 듯이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자아상을 세우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작가의 말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모두가 길 위에서 저마다 외롭지만 새롭게 알게 된 그림의 말들이 있어 더는 외롭지만은 않을 것 같다. 다음에는 또 어떤 그림이 내게 말을 건네고 위안이 되어줄까?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해도 너무 좋은 그림, 그리고 그림의 말들로 오래간만에 일상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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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히 사랑했던 시절'로의 추억여행을 하다 :) | 기본 카테고리 2022-09-1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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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눈이 빛나서, 미소가 예뻐서, 그게 너라서

김예채 저/최종민 그림
놀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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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수줍게 인사를 나눴던 밤의 골목길에서였을까, 마주 앉아 맥주잔을 부딪치던 호프집에서였을까, 집 앞까지 데려다주며 살며시 손을 잡았던 때였을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서로에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져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밤을 새워 통화하다 휴대폰을 귀에 얹은 채로 잠이 들기도 하고, 톡이 오길 기다리며 어딜 가든 손에는 꼭 휴대폰을 들고 다니던 시절. 우리의 모든 행동은 오로지 한 단어, '사랑'만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긴 내 결핍을 채워주는 사람이야.”
꽃다발을 내밀며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웃는 얼굴이 콤플렉스였던 내게 웃는 게 너무 예쁘다고, 눈이 반짝반짝한 게 너무 사랑스럽다고 말해주던 그와 결혼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여전히 우리는 투닥거리지만 사랑하며 살아간다. 흔히들 말하는 부부는 의리로 살아간다든지, 가족끼리 스킨십 하는 거 아니라든지 하는 말을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적인 사랑은 아닐지라도, 가슴 떨리고 설레는 기간은 지났을지라도 우리는 분명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눈이 빛나서, 미소가 예뻐서, 그게 너라서》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옛 생각에 빠져들었다.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사랑의 시작과 절정, 그리고 이별과 추억까지 한 권에 담겨 있다. 밤마다 그 사람이 마음에 툭 걸리고, 맛있는 걸 먹거나 좋은 걸 보면 어김없이 그 사람 생각이 나고, 생각만 해도 목울대가 울렁거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사랑하고 사랑받음에 이러다 행복해 죽겠네 싶은 그런 기분. 이 책은 사랑할때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을 통해 우리를 '가장 열렬히 사랑하던 그때'로 되돌려 놓는다.

마치 옛날 싸이월드 감성을 느끼게 하는 글과 그림이 참 정겹게 느껴졌다. 추억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이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싸이갬성 is back! 인 건가? 하긴. 우리가 연애하고 결혼했던 때가 2013년, 싸이월드와 카카오스토리의 말년 즈음이었으니 우리의 사랑도 어떻게 보면 싸이감성의 일환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땐 지금 보면 오글거린다고 하는 표현도 '퍼가요~♡'의 대상이 되던 때였으니 말이다. 어쩌면 오글거린다, 중2병이다라는 놀림이 사랑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걸 저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책 속 글귀처럼 나는 사랑할 때만큼은 나이 먹지 않고 오래오래 철없고 싶다. 오글거리는 표현도 앞으로 더 많이 하고 싶다. 그래야 사랑이 오래도록 녹슬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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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기본기를 갖춰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 기본 카테고리 2022-09-07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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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첫 경제사 수업

조너선 콘린 저/우진하 역
타인의사유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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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 문과 선택과목은 정치, 경제였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때 나는 고민 없이 정치를 선택했다. 정치는 그나마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라도 했지만 경제는 아예 처음 듣는 용어도 많았기 때문에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경제활동이 없는 학생에겐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대학생을 거쳐 직장인이 되었을 때도 딱히 관심을 둘 일이 없었다. 회사에 다닌다는 행위 자체가 경제활동이지만, 한국말 한다고 국문학에 대해 빠삭한 사람 별로 없듯 경제활동 한다고 해서 경제학을 다 아는 건 아니더라(일단 나만 봐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경제란 여전히 내게 멀고도 먼 이야기였는데, 《나의 첫 경제사 수업》이라는 책 출간 소식을 듣고 제목을 딱 보자마자 '오, 이거면 까막눈은 피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이들 아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든지 '마르크스 이론'이라든지, 그 정도만 알고 있는 생초보라 이번 기회에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책은 세계사를 바꾼 13인의 위대한 경제사상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들은 가장 위대한 경제사상가는 아니지만 위대한 경제적 사고를 대표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선정 기준은 오늘날의 경제적 사고의 지적인 구성에 얼마만큼 기여를 했는지였고 이를 토대로 선정된 13인은 애덤 스미스/데이비드 리카도/존 스튜어트 밀/카를 마르크스/앨프리드 마셜/조지프 슘페터/존 메이너드 케인스/프리드리히 하이에크/밀턴 프리드먼/존 포브스 내쉬 2세/대니얼 카너먼/아마르티야 센/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이다.

책의 콘셉트나 대상의 선정 기준은 좋았다고 생각한다(비록 나는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외에는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다만 이 책의 타겟층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나같은 왕초보는 절대 아닐 거라고 답하고 싶다. 제목의 '첫'이라는 표현 때문에 나처럼 경제의 경 자도 모르는 사람도 기초부터 배울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적어도 경제에 대한 기본 개념은 잡혀 있는 상태여야 이 책을 좀 수월하게 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조너선 콘린이 독저자인 줄 알았더니 그를 필두로 여러 명이 집필한 책이었다. 여러 명의 저자를 다루는 만큼 여러 명이 나눠 쓸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쭉 저술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부분은 분명 있었다. 관세청장이었던 애덤 스미스가 관세청장의 일을 하는 걸 싫어했다는 이야기. 특히 그는 자유무역을 제한하는 행위를 지극히 싫어한 나머지 자신의 옷가지 중에서 수입된 제품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성격이 보통은 아닌 양반인 게 확실하다. 하긴, 보통내기가 아니니까 경제학의 기틀을 세우기까지 했겠지만.

존 스튜어트 밀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의 기업에 비해 노동자가 직접 관리하는 기업이 더 효율적일 거라 믿었고,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에 매료되어 협동조합 방식의 생산을 옹호했다고 한다. 노동자 계급의 교육수준, 지적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노동자들이 본격적인 형태의 협동조합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는 걸 미리 예측한 것이다(그 시대에!). 그 당시 경제분야에서는 굉장한 혁명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봐도 놀랍다.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한 거나 진배없으니.

'경제'라는 용어는 있었지만 '경제학' 혹은 '경제학자'라는 말은 없었던 시절, 경제학의 기반을 만들어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단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졌다. 배우려고 책을 읽는데, 책을 읽기 위해 또 배워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분명히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다. 지금은 어려워서 찾아보면서 읽고, 검색하면서 읽고 하느라 속도가 느렸지만 다음에 읽어볼 땐 지금보다는 더 읽기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잠깐 이런 생각도 했다. '선택과목을 경제로 했으면 지금보다 읽기 쉬웠을까?' 뭐, 암기식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큰 차이는 없었을 것 같지만. 근 20년 만에 그런 생각을 해볼 정도로 간절히 수월하게 술술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좀 더 곱씹고 다져서 조만간 꼭 다시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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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이라 더 아프게 다가왔던 성장소설 | 기본 카테고리 2022-09-0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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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네 얼굴로 울 수 없어

기미지마 가나타 저/박우주 역
달로와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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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사카히라 리쿠는 일어나자마자 이상함을 감지했다. 못 보던 책상, 못 보던 책꽂이, 못 보던 파자마...전신거울을 들여다본 순간 깜짝 놀라고 만다. 거울 속에는 나, 사카히라 리쿠가 아닌 같은 반 여학생 미즈무라 마나미의 얼굴이 있었던 것.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사카히라, 즉 자신이 된 미즈무라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대화 한 마디 나눠본 적 없는데, 같이 풀장에 빠지고 난 뒤 이런 일이 일어났다. 미즈무라도 사카히라도 그저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네 얼굴로 울 수 없어》는 하루아침에 몸이 뒤바뀐 사카히라와 미즈무라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서른 살인 현재와 열다섯 살부터의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보통 몸이 뒤바뀐 이야기는 개인이 느끼는 감정에 치중해 서술되는 데 반해, 이 책은 감정뿐 아니라 신체적인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현실적이다 못해 굉장히 날것 그대로라 살짝 당황할 정도였다. 내가 접했던 그 어떤 body switch물에도 이런 구체적인 묘사는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미즈무라의 몸이 된 사카히라는 자신이 미즈무라가 됐다는 사실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묵직하게 전해져오는 생리통과 뚝뚝 떨어지는 생리혈을 먼저 수습해야 했을 정도였다(주인공 못지않게 독자까지 당황하게 하는 작가의 전술일까?). 게다가 보통은 이벤트성으로 일정 기간동안만 바뀌거나(영화 《체인지》), 번개가 친다든지 하는 상황이 오면 바뀌거나(드라마 《시크릿가든》) 하는 식인데,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장장 15년을 바뀐 몸으로 살아간다.

어쨌든 몸이 다시 제대로 돌아올 때까지 누구도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게끔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했기에 둘은 정보를 교환한다.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그들을 어떻게 부르는지, 집안 분위기는 어떤지 등등. 다음날부터 정상 등교하며 그럴싸한 방법은 몽땅 시도해보기 시작한다. 수영장으로 몰래 잠입해 하나 둘 셋 하고 뛰어들어보기도 하고, 서로의 머리를 부딪쳐보기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보기도 했다. 모두 헛수고였고 둘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여전히 바뀐 그대로였다. 그러면서 사카히로는 다짐한다. 미즈무라가 미즈무라의 인생을 언제 되찾아도 상관없도록, 미즈무라가 마음 아파할 필요 없도록, 완벽하게 미즈무라로 살아가며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감쪽같이 속여 내고야 말겠다고.

둘은 자주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갑자기 돌아가면 다시 적응하기 쉽도록 일기를 적기로 한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은 사실 서로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일한 서로에게 위로받는 시간이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자 반 포기 상태로 지내게 되는 둘. 하지만 몸이 바뀔 때를 대비해 조심하며 최대한 미즈무라 위주로 살아가려는 사카히쿠와 달리, 미즈무라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매사에 미즈무라의 의견을 묻는 사카히쿠, "너도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답하는 미즈무라. 부단히 그녀를 연기해 왔는데, 배신감마저 느끼고 마는 사카히쿠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즈무라는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만다. 그 누구도 내가 아닌 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온전히 이해받을 수도 없다. 이들도 잘 알고 있지만, 내 삶이 아닌 상대의 삶을 살고 있기에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땐 자기도 모르게 좌절하고 만다.

나이지만 내가 아니고, 내가 아니지만 나인 삶을 살아가는 둘. 본의 아니게 서로의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서로의 모든 것을 빼앗으며 살아왔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이질감은 견디기 힘든 것일 테다.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왔을 둘의 외로움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서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둘의 모습이 어쩐지 아프게 느껴지는 성장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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