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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정의에 관하여’ 20선] 전쟁과 정의 | 공지사항 2010-10-2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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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정의/마이클 왈저 지음/인간사랑

 


《“불간섭주의는 절대적인 도덕원칙이 아니다. 때로는 지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용인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많이 남용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잔악성과 고통의 정도가 극심하고, 그 지역의 어떠한 세력도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도덕적으로 필요하다.”》


정의를 위한 전쟁, 정의로울까 ?



‘전쟁’과 ‘정의’는 서로 반대 의미를 가진 단어처럼 보인다. 폭력과 파괴, 인명 살상을 수반하는 전쟁은 세계 평화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않은 전쟁을 구분하는 것은 자칫 위험해 보일 수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전쟁은 사라져야 하는데,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말은 마치 전쟁을 옹호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원 교수인 저자는 윤리적 시각에서 오랫동안 전쟁을 연구해왔다. 그는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은 일어난다. 전쟁을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위라고 단정해버리면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전쟁이 진행되는가’ 같은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만큼 우리는 ‘왜’와 ‘어떻게’의 문제를 고민해야만 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정의로운 전쟁론은 어떤 전쟁이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이론이 아니다. 그 대신 어떤 전쟁에서 정의가 얼마나 이뤄질 수 있는지, 전쟁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행위들이 얼마나 정의로운지 평가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쟁론이 전쟁의 필연적인 결과인 인명살상 등의 상흔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정당하게 전쟁 속으로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필요하다면 무력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침략과 잔학행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5장 ‘인도주의적 개입의 정치’를 보면 정의로운 전쟁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대량학살이나 인종청소가 벌어지고 있는 국가에서 이런 상황을 스스로 수습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쟁을 피하는 것보다 개입하는 편이 오히려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르완다에서 학살을 종식시키기 위한 군사력의 사용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걸프전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다. 미군의 공격으로 인한 이라크 민간인 사상자는 적었지만 이라크 경제기반 모두를 타격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군의 공격은 쿠웨이트 해방과 이라크 군사력 진압이라는 당초의 목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 미국은 최후의 보루로서 개입국가가 돼야 하는가. 이 질문에 저자는 “그래야 한다”고 답한다.


모든 국가는 세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수록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된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경우 이것은 단순히 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이자 과제다. 비문명적, 비인류적 행태는 억지되지 않는다면 유사한 방식으로 다른 지역까지 곧 확대된다. 머지않아 문명세계 근처에서 혼란과 무법의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온다.


이 책은 “어느 누구도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미국은 더 적은 자원을 보유한 다른 나라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다른 나라의 문제에 개입하게 될 것이며 그래야 한다. 이제 미국의 힘에 대한 기존의 회의적 태도를 버리고 필요성을 신중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도서] 전쟁과 정의
마이클 왈저 저/유홍림 등역 | 인간사랑 | 200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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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 붉은서재>

 

2.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3. <붉은서재 -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4. < 붉은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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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붉은서재 - 혁명을 위한 인문학>

 

2.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3. <붉은서재 -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4. < 붉은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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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붉은서재 -  블로거의 혁명을 위한 인문학>

 

2.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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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1.

내가 기억하기로 2006년 즈음에 본인이 다니고 있는 모교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몇몇 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라는 선정적인 선언을 발표하며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잘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당시 어윤대 총장 밑에서 진행되었던 신자유주의적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이 홀대받고 있다는 불만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불만에서 출발한 것이, 어느새 한국 전반의 ‘인문학 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린다는 취지의 선언으로 그 의미외연이 확장되었던 것이다. 나는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한국 인문학계의 사정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 선언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다. 또한 나는 인문학의 위기의 진짜 본질이 무엇인지, 혹은 그 진정한 원인(번역경시 풍조, 경직된 아카데미즘, 연구자 홀대, 금전적인 문제, 기타 등등)이 무엇인지에 대해 남들보다 더 예리하게 진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물론 이러한 ‘인문학의 위기’ 선언은 당시에도 그랬지만 학문의 ‘돈줄’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에 걸쳐있었기 때문에 지금에서도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인문학의 위기는 ‘정치경제적인 쟁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그 사건을 돌이켜 볼 때 당시의 ‘선언’은 지금도 매우 기묘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인문학의 위기’라는 당시의 선언을 전후해서 오히려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담론의 레벨에서 나름대로 ‘범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각종 대중매체에서 유명세를 얻은 로쟈, 강유원, 이택광을 필두로 한 저자들이 ‘인문적 교양’을 주제로 다룬 대중서적들을 출간하였고, 심지어 자기계발서와 경영서에서도 ‘인문학적 상상력’을 강조하는 모습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대학에서 자립한 ‘수유+너머’와 같은 사설 인문강좌들도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말하자면 인문학의 학문적 권위가 해체되는 동시에 인문학 담론이 아카데미 바깥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현상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세대이다.

물론 그것이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선언을 불러온 현실적 배경을 무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인문학을 전문적인 분과 학문으로서 성립시키는 현실적 기반들이 아카데미 내부에서 무너져 가는 사태를 부정할 수 없다. 즉 인문학을 이루는 제반 영역들이 독립된 분과학문으로서 위상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 레벨에서 본다면 ‘전문적인 인문학 연구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진로 상으로 현실성을 잃어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입 발린 소리를 잘 하는 사람들은 흔히 인문학에 미래를 향한 새로운 상상력이 잠재해 있다고들 말하지만, 나와 같은 20대에게 인문학의 미래는 ‘저임금 시간강사’이다. (물론 위기 운운하는 인문학 교수 자신들이 이런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 걷고 나서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오히려 역설적으로 섬세한 인문학적 교양, 왠지 있어 보이는 인문학적 상상력, 남들과 차별화시켜주는 인문학적 아이디어, 등등에 관한 아카데미 바깥의 대중적 매혹이 그러한 인문‘학’의 위기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카데믹한 레벨에서의 인문학의 위기란 또 다른 레벨에서 인문학이 상대적으로 새롭게 각광받는 현상과 시차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현상을 두고 나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인문적 ‘사유’란 그 자체로는 결코 ‘위기’에 의해 관통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안정적인 조건 속에서 인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전에도 없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거대한 반동에 직면해 있는 이 시대에 불안정한 조건에 처해 있는 것은 ‘오직’ 젊은 인문학 연구자들이나 인문학도들뿐만이 아니다. 물론 부분적인 유용성이 있겠지만 유독 인문학에 대한 ‘특별한’ 제도적-금전적 지원만으로는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만일 학문적 빈곤이 특별한 사유거리가 된다면 그것은 해당 학문이 오직 현실의 빈곤을 ‘함께’ 사유하는 한에서만 그러하다. 인문학이 처한 현실적 빈곤을 ‘사유하지 않고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인문학 그 자체의 내재적인 빈곤을 구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문적 사유는 경영서와 자기계발서 속에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장식품과도 거리가 멀다. 만일 인문학을 위기로부터 구해내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앞으로의 인문적 사유가 다음과 같은 역할, 즉 미래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경영인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소비자들을 즐겁게 해 주는 역할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데에만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인문학을 구해내는 것은 그것이 구성해내는 사유 그 자체의 내재적인 불온함뿐이다. 인문학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국가로부터 그럴싸한 구실로 교묘하게 타 내는 것은 그 다음 다음 일이다.

인문학의 위기가 고질적이게 된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즐겁게’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만 없는 게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 역시 ‘없다.’ 인문학은 이제 기술관료들, 원로 교수들,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CEO들의 소관사항이 아니며 그네들이 굳이 인문학 때문에 되지도 않는 궤변을 만들어내기 위해 골치를 썩일 필요도 없다. 인문학은 이제 더 이상 부르주아들의 생계수단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인문적 사유 역시 더 이상 비천한 부르주아적 삶에 아부하는 데에도 점점 더 부적합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문적 사유의 근본은 그러한 아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좋은 문학이란 부르주아들을 화나게 하는 문학이라고 선언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다시 한 번 패러프레이즈 하자면, 앞으로의 훌륭한 인문학은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적 연대와 변혁에의 희망을 좀 먹는 부르주아들의 옹알이를 끝장 낼 역할에 복무할 것이다. ‘좋은’ 인문적 사유는 혁명에 굶주린 자들과 함께 굶주릴 것이고 그러한 굶주림과 더불어 사유할 것이다.

2.

나는 대학 신입생 때 다시 말해 2006년 즈음에 인문학 관련 포스팅을 올리는 용도로 지금의 네이버 블로그, 즉 ‘붉은서재’를 시작했다. 딱히 네이버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이글루스도 있었고 진보넷도 있었지만 별 생각 없이 네이버로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블로그가 유행하던 막바지에 시류에 편승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어느새 포스팅들을 출판하는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주로 그때그때 유행하던 철학 분야 서적을 읽고 난 뒤의 두서없는 감상들을 올린 게 전부였지만, 기간이 축적되어 어느 새 책 한권으로 묶을 분량이 되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정리해서 갈무리하는 것이 벅찰 정도의 분량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블로그를 출판하는 경우들은 이미 흔한 루트가 되었다. 여행기 분야에서 이러한 출판 사례들의 가장 유명한 경우들도 너무 많아 손에 꼽기 힘들 정도이다. 이 부분에서도 나 역시 유행의 막바지에 편승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최근에 비슷한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와 이택광 교수의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가 출간된 상황에서, 나의 글들에 굳이 차별화가 되는 지점을 찾는다고 한다면 다만 나 자신의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 뿐이다. 어쩌면 세대론이 여전히 유행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그것이 (대단하지는 않지만) 또 다른 상품가치(?)를 지닐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의 독서이력에 작용한 세대적 경험을 새롭게 환기하고 싶다. 나는 어쨌든 간에 인문학 대중화의 수혜를 입은 세대에 속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당시에 수유+너머를 중심으로 푸코, 들뢰즈에 관한 유행이 여전히 한창이었고, 유학길에 올랐던 젊은 연구자들이 돌아와 속속들이 현대철학 분야의 최신 번역서들을 내놓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알라딘의 서재꾼 로쟈의 도움도 매우 컸다. 의무교육 과정에서 해방된 기분 속에서 들뢰즈와 푸코를 논(?)하며 어떤 묘한 기대감과 흥분감을 캠퍼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짧은 기간을 입대하기 전에 잠깐 동안이나마 운 좋게 경험할 수 있었던 시점에 대학에 들어온 셈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당시는 학생사회 내에서의 유의미한 정치적 개입이 끝나가던 시점이었다. 2006년은 고려대에서 학생운동가 몇몇에게 ‘출교’라는 어처구니없는 처분이 내려졌던 해이기도 하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내가 전공과도 무관하게 입문하게 되었던 인문학, 그 중에서도 ‘현대(정치)철학’은 좀 냉정하게 말해서 당시 2000년대 초반부터 점차 전면적인 폐색에 이른 학내의 정치적 개입을 대체한 관념적 탈출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나와 같은 20대에게 있어서 ‘인문학’이란 그 자체로 완결된 영역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정치사회적 맥락과 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생태주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문화이론, 자율주의 등등의 특정 인문학적 유행에 편승한 인문학 키드들이 학내에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다가 결국 흐지부지 되었던, 그러한 지리멸렬한 정황 속에서 독서를 시작하게 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나 역시 그러한 지리멸렬한 인문학 키드들 중 한 사람이다. 나 자신이 전혀 학생운동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혹자들은 초장부터 내가 인문학이라는 주제에 대해 너무 정치과잉으로 나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나에게 있어서 대학시절에 경험한 ‘인문학’은 ‘학생운동’이라는 정치적 맥락을 피할 수 없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학생운동은 젊은 인문학도들에게 우회 불가능한 주제이다. 내 또래의 몇몇 인문학도들 중에서는 ‘정치’와 무관한 ‘순수한’, (즉 ‘정치’와 무관한 ‘순문학’을 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에서의) 뭔가 삶에 더 근본적으로 잇닿아 있는 ‘순수 인문학’ 내지는 ‘순수 철학’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사실 그것이야말로 무사유의 극치이다. 나는 내 세대의 잔존해 있는 이런 인문학 오타쿠들이 자신의 기원을 정직하게 대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학생시절에 가지게 된 인문학적 욕구의 기원은 어쨌든 간에 학생운동의 위기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예나 지금이나 20대의 자율적 주체성이 불가능한 한국 사회 속에서, 캠퍼스 내에서 정치적 주체성이 (혹은 주체성에 관한 표상이) 가능했던 유일한 영역이 바로 ‘학생운동’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20대 주체들이 인문학에 관해 가지고 있는 자기표상 역시 학생운동 내지는 그것의 위기를 피해 갈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인문학의 위기 따위가 아니라 학생운동의 종언, 더 나아가 그것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 20대의 주체성 자체의 위기이다.

물론 학생운동의 위기는 멀리 나가면 90년대 초의 분신정국 내지는 한총련의 ‘연대 사태’에서부터 시작했지만, 그것은 그 이후에도 서구에서 수입된 소위 말하는 ‘최신 인문학’ 담론으로부터 그 정치적 상상력을 끊임없이 수혈해 왔다고 해도 좋다. 다시 말해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이 국가관료가 되거나 재벌기업의 준-관료가 되거나 혹은 직업적인 정당 정치인이 되는 경로 외의 전혀 다른 주체적 자율성의 지평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여전히 학생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러한 희망의 소재들을 소위 말하는 ‘인문학적 상상력’에서 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 2000년대 초반의 학생운동 서클 내부의 학회들만큼 최신 인문철학적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곳은 없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일부 급진적인 중간계급 학생들은 국가(관료제)와 자본에 강하게 포섭된 한국의 시민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가능한 대안적인 ‘사회적 연대’에 관한 희망을 인문학의 아이디어에서 얻고자 했었고, 그것이 사후적으로 인문학 그 자체에 대한 매혹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의 논리구성 그 자체가 (캠퍼스 내부에서든 그 바깥에서든) 어떤 사상적인 힘을 가졌던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해도 좋다. ‘아감벤’이든 ‘고진’이든 ‘네그리’이든, 캠퍼스 내부에서 특정 인문학 저자들이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사상적 힘’을 가졌던 것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새로운 사회적 연대와 그 안에서 가능한 주체적 자율성에 관한 희망을 담지 하는 한에서였다. 내가 인문학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러한 맥락 속에서이다.

본문에 수록된 21편의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내가 쓴 글들은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도 않고, 논조 자체도 시종일관 차분하고 공평무사한 시선과 거리가 멀다. 나는 전문적인 인문학 연구를 지망하는 학생도 아니고, 인문학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나름대로 인문학을 가능한 한 철저하게 ‘정치적인’ 방식으로 읽어내고자 시도했다. 물론 인문학이 그 자체로 정치적인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여전히 인문적 사유가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을 사상적으로 ‘예고’하는 방식이다. 그것이 내가 인문학, 그 중에서도 철학, 특히 정치철학에 경도된 이유였으며, 아마 그러한 사정은 다른 비슷한 성향을 지닌 내 또래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일 내가 정당 민주주의 따위에 기대를 걸거나, 사회 민주주의 같은 추상적인 가치로서의 ‘진보적인 것’ 일반에 관심을 두었다면 아마 인문학 내지는 철학 자체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점차 추상적인 가치로서 상품화된 진보담론이 보수화되고 관료화된 한국의 부르주아 시민사회와 결합하고 있는 경향은 과거에 비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잘도 잘난 척을 해 왔던 나 역시 내심 그러한 체제에 편입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향이 지속된다면 미래에도 젊은이들은 80년대에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방황을 또 다른 방식으로 반복할 것이다. 그런 정황 속에서 본래의 의미에서의 인문학적 사유는, 그것이 새로운 사회적 결속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것인 이상,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정치적 주제를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 질 패기 있는 젊은이답게 발랄하고 깜찍한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 매우 미안하다. 하지만 모든 젊은이들이 김연아나 박태환이 아닌 이상 앞으로 그런 발랄함을 기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책임도 그리고 우리들의 책임도 아니다. ‘발랄함’과 ‘개드립’에 대한 찬양이 유행하는 이 시대 속에서, 이 책을 바로 앞으로의 젊은이들의 새로운 ‘반시대적인 진지함’을 위해 바친다.

2010년 10월 6일 새벽녘의 학생회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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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랑시에르와 민주주의 -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독서후기

 

문화비평

 

1. 88만원 세대, 박민규,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 세대론의 풍경과 그 정치적 부침

2. 하루키와 사도 바울 - 상실의 시대에 대한 비판적 독서

3. 비평은 작품의 괴사(壞死)다 - 발터 벤야민과 비평가의 포지션

4. 예루살렘의 하루키 - 하루키 수상소식에 붙인 변

5. 비평의 오타쿠화를 경계하며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독서후기

6. 왜 한국문학은 재미 없는가 - 문학과 사회성

7. 배트맨 다크나이트 - 진정한 할리웃 칸트주의

 

인문적 사유

 

1. 삐리리 불아봐 해체주의 - 이웃 블로거 '람혼' 독서후기

2. 근대문학의 종언과 학생운동의 종언 - 종언의 정치적 귀결

3. 기표의 용법 - 고유명과 정치

4. 주체, 구조, 그리고 반복강박 - 주체성의 이론적 가능성

5. 칸트와 함께 물자체를 - 무한판단의 문제에 관하여

6. 칸트의 유물론 - 칸트 이후 근대의 존재론적 배치

7. 헤겔을 사랑하고, 나라를 읽자! - 헤겔철학과 국가관

 

시사비평

 

1. 우리는 좀 더 가난해져도 좋다! - 88만원 세대 독서후기

2. 레닌주의, 좌파정치의 진정한 교양

3. 왜 레닌과 마오여야만 하는가

4. 신자유주의와 인터넷의 정치적 주체성

5. 그녀가 우리를 불편하게 한 이유 - 김예슬 대자보에 부쳐

6. 소위 말하는 학벌 드립에 관하여

7. 학생운동의 이율배반 - 대자보에 대한 정치적 전유의 결과들

8. 왜 아직도 김예슬인가 - 김예슬과 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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