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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辛卯年)!!! | 공지사항 2010-12-3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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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도서 1월 | 신간도서 2010-12-3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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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 합의의 시대를 평론하다 : 현대의 대표적 지성 랑시에르의 시론 모음집
자크 랑시에르 저 | 인간사랑 | 201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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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학 | 북 리뷰 2010-12-3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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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학
신동준 역 | 인간사랑 | 2010년 12월

 

 

 

 

 

 

 

 

 

 

3대 기서와 {후흑학}



중국은 유사 이래 많은 기인(奇人)이 존재했다. 그러나 저서를 남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들 기인들이 남긴 저서 중 소위 ‘3대 기서(奇書)’가 있다. 당나라 중엽 조유(趙蕤)의 {장단경(長短經)}, 명나라 말기 이탁오(李卓吾)의 {장서(藏書)} 및 {분서(焚書)}, 청나라 말기 이종오(李宗吾)의 {후흑학(厚黑學)}이 그것이다. 이들 서적이 ‘3대 기서’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수천 년 동안 불변의 진리로 통용돼 온 성리학의 왕도(王道) 대신 법가와 종횡가 및 병가 등이 역설한 패도(覇道)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인물과 사건을 평했기 때문이다. 성리학을 절대시한 조선조의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 ‘사문난적’에 해당한다. 실제로 이들 서적 모두 이단서로 몰려 불태워지는 등의 수모를 당하고, 당사자 역시 은둔생활을 하거나 자진하는 등의 굴절된 삶을 살았다.

이탁오를 존경한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종오’의 ‘오(吾)’자 돌림으로 개명한 이종오는 청나라 말기에 태어나 중화민국이 등장하는 20세기 초의 격변기를 살았던 까닭에 이탁오처럼 자진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이는 그가 중국의 인민들에게 ‘후흑구국(厚黑救國)’을 설파하며 서구 열강의 침략을 단호히 분쇄해 자주독립을 이루자고 역설한 사실과 무관치 않다. 미국과 비견되는 G2의 일원으로 성장한 현재의 중국과 비교할 때 금석지감이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이런 주장은 중국이 문득 G2의 일원이 된 21세기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가 역설한 ‘후흑’이 더욱 강조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중국 내에서 소위 돌돌핍인(咄咄逼人) 내지 화평굴기(和平崛起)에 대한 반론으로 중국의 국가 기본전략인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 그 증거다. 일각에서는 등소평이 제시한 도광양회 책략을 향후 1백년 간 더 견지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내놓고 있다. 이 주장은 이종오가 역설한 ‘후흑’의 백미에 해당한다.

도광양회는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 때까지 은밀히 힘을 기르며 시기를 노리고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일거에 적을 궤멸시키는 수법을 말한다. 이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춘추시대 말기의 월왕 구천(句踐)과 삼국시대의 위나라 권신 사마의(司馬懿)다. 이종오가 {후흑학}에서 역대 호걸 중 ‘후흑’을 가장 절묘하게 구사한 사람으로 구천과 사마의를 꼽은 이유다.

‘1백년에 걸친 도광양회’ 얘기가 나오는 것은 실질적인 G1인 미국이 구사하는 ‘G2’ 운운의 립 서비스에 현혹됐다가는 일본이 ‘20년 장기침체’에 빠졌듯이 미국의 계략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는 경계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행보를 연상시키는 ‘돌돌핍인’은 말할 것도 없고 ‘화평’의 접두어에도 불구하고 인접한 신흥대국 인도 등을 긴장케 만드는 ‘굴기’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지적이다. 겉으로는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는 비사(卑辭)를 동원해 겸손함을 내보이며 뒤로는 섶에 누워 쓸개를 핥는 와신상담의 자세로 설욕의 그날을 위해 칼을 가는 ‘후흑’의 요체를 꿰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수뇌부는 물론 13억의 중국인 모두 아편전쟁 이래 서구 열강에게 무참히 당한 치욕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G2 운운의 ‘립 서비스’에 결코 현혹될 리가 없는 것이다. 무서운 ‘후흑 무장’이 아닐 수 없다.



G1과 후흑



현재 중국 내 ‘후흑’ 연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후흑’ 이론을 토대로 정치와 경제 및 군사 등 사회의 모든 방면을 진단하면서 ‘후흑’의 활용방안과 비전을 제시한 저서와 논문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 그 증거다. 이런 흐름은 갈수록 더욱 고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G20 서울정상회의’를 두고 건국 후 초유의 쾌거 운운하며 우쭐댈 때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위아래 할 것 없이 ‘후흑’으로 무장한 중국에 대해 과연 어떤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는지 진지하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2010년의 천안함사태와 연평도사태에서 중국 수뇌부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도 이런 흐름과 결코 무관치 않다. 중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G1의 ‘신중화질서’ 구축이다. 현재의 과도적인 G2 상태에서 G1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을 제압해야만 한다. 미국은 아편을 팔아먹기 위해 중국을 무력으로 제압한 뒤 반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대영제국의 후신이다. 중국이 장차 미국을 따라잡고 명실상부한 G1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부단히 ‘후흑’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의 사태에서 중국 수뇌부가 북한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접근해야 그 속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예일대 교수 폴 케네디가 지적했듯이 분단국인 한국은 중국과 미국의 격돌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다. 예측 불허의 북한 행보는 말할 것도 없고 4강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남북을 체스판의 말처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오가 젊었을 때 바라본 중국의 현실이 현재의 한반도와 꼭 닮아 있었다.

당시 서구 열강과 일본은 빈사상태의 청나라와 그 이후의 중화민국을 갈라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종오가 ‘동맹회’에 들어가 중국의 자주독립을 제1의로 내세운 이유다. {후흑학}이 약소국으로 몰락한 중국이 살아남기 위한 방략을 집대성해 놓은 배경이 여기에 있다. 실제로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주은래와 등소평 등이 지속적으로 추구한 ‘제3세계 비동맹’은 이종오가 역설한 ‘세계 약소민족 연합’을 구체화한 것이다. 



후흑의 본질


 

이종오가 최초로 거론한 ‘후흑’이라는 용어는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성한 말이다. 이는 대략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번역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후흑’을 ‘뻔뻔함과 음흉함을 토대로 한 처세술’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는 ‘후흑’의 기본취지를 제대로 파악치 못한 것이다. 기본취지는 ‘후흑구국’에 있다. 16세기 초 마키아벨리가 조국인 피렌체 공화국을 교황 및 외국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독립시킨 후 이탈리아반도 통일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군주론}을 저술한 것과 같은 취지다.

‘후흑구국’은 마키아벨리의 주장처럼 난세의 위정자가 통상적인 도덕률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원래 이종오는 마키아벨리를 연구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오직 {군주론}의 원전 격에 해당하는 {한비자}와 {손자병법} 등을 탐독했을 뿐이다. 그가 그밖에 {논어}와 {맹자}, {순자} 등의 제자백가서를 호함해 24사(史) 등의 사서를 두루 살핀 뒤 마침내 ‘구국’의 비책으로 찾아낸 게 바로 ‘후흑’이다.

난세의 시기에는 늘 삼국시대의 조조와 유비처럼 각지에 할거한 군벌이 인의(仁義)를 기치로 내걸고 온갖 궤계(詭計)를 구사하며 치열하게 다투는 ‘군벌각축’의 양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서는 이를 ‘군웅축록(群雄逐鹿)’으로 표현했다. 군웅들이 가시권에 들어온 사슴을 잡기 위해 서로 정신없이 줄달음을 친다는 뜻이다. 천하를 거머쥐는 것을 ‘득록(得鹿)’, 천하를 잃는 것을 ‘실록(失鹿)’으로 표현하는 이유다. ‘득록’은 발이 가장 빠른 자의 몫이다. 현실에서는 무력전과 심리전, 첩보전 등의 우열로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주목할 점은 발이 빠른 자나 느린 자나 너나 할 것 없이 ‘축록전’에 나선 자 모두 겉으로는 ‘인의’를 내걸고 구세제민(救世濟民)을 떠벌인다는 점이다. ‘인의’는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불과할 뿐이다. 이기면 모든 것이 미화돼 ‘만세의 구세주’가 되고, 패하면 모든 게 폄하돼 ‘만고의 역적’이 된다. 단 한 번의 예외가 없다. 새 왕조의 건립과정을 기록하면서 궤계가 난무한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기록코자 하면 사관의 목이 백개가 있을지라도 오히려 모자란다. 이종오가 제자백가서와 24사를 샅샅이 뒤진 뒤에야 뒤늦게 ‘득록’의 비결을 찾아낸 이유다. 창업주의 궤도를 왕도로 둔갑시켜 놓은 사관의 윤색 및 각색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후흑학} 첫머리에서 ‘후흑’을 찾게 된 배경을 이같이 써 놓았다.

“당초 나는 글을 안 후 영웅호걸이 되고자 했다. 4서5경을 읽었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제자백가와 24사를 통해 얻고자 했으나 이 또한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과거 영웅호걸이 된 자는 분명히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 비술을 터득했을 터인데 나만 못나서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흥망성쇠와 사신(史臣)의 평이 완전히 상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비결을 찾아내기 위해 무진 고생했음에도 쉽게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 비결은 바로 낯가죽이 두꺼운 ‘면후’와 속마음이 시꺼먼 ‘심흑’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사서는 승자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이종오가 사서를 읽을 때 그 행간을 읽은 이유다. 그가 ‘만세의 구세주’와 ‘만고의 역적’이 엇갈리게 된 비결을 찾아낸 것은 바로 행간을 읽었기에 가능했다.

‘만세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후흑’이 달인이 되어야 한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난세의 군주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여우의 간계’와 ‘사자의 용맹’을 든 것과 같다. 이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후흑학}에 마키아벨리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군주론}을 전혀 읽지 않은 게 확실하다. 16세기 당시 중국에 체류하던 선교사들이 거의 광적으로 번역해 펴낸 중국의 고전을 마키아벨리가 탐독했을 공산이 크다.

 



‘후흑’ 잣대를 적용한 리더십 분석




일본의 오카모토 마나부(岡本學)는 {후흑학} 번역서에 후흑의 잣대를 적용해 모택동과 장개석의 리더십을 분석한 부록을 실어 놓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택동과 장개석 모두 ‘심흑(心黑)’의 달인이다. 장개석의 경우는 1936년의 소위 ‘서안사건’이 논거로 제시됐다. 자신을 감금했던 장학량에게 군사재판에서 무죄가 되도록 해 주겠다고 꼬드겨 남경으로 데리고 간 뒤 곧바로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는 것이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쫓겨 가면서도 장학량을 대만으로 연행해 가고 이어 죽으면서까지 그를 연금 상태로 묶어두도록 한 것도 같은 차원으로 보았다.

모택동은 ‘심흑’에서 장개석을 능가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국가주석의 자리를 유소기에게 넘겨줘야 하는 위기상황에서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반전을 꾀했다는 게 논거다. 사실 모택동은 문화대혁명 당시 소리장도(笑裏藏刀)의 웃는 얼굴로 유소기를 안심시킨 후 서서히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 ‘심흑’의 정수에 해당한다. 당시 모택동이 ‘심흑’을 발휘하지 않았으면 그는 이내 역사무대에서 강제로 퇴장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오카모토의 분석이다.

오카모토는 모택동이 이종오의 {후흑학}을 애독한 것이 절묘한 ‘심흑’을 발휘한 하나의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문화혁명 기간 중 소위 ‘비공(批孔)’ 운동이 전개한 데에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공자를 신랄하게 비판한 {후흑학}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게 중론이다. 원래의 공자가 성리학에서 말하는 공자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카모토가 보여주었듯이 ‘후흑학’ 이론은 동아3국에서 활약한 근현대 위정자들의 리더십을 분석하는데 매우 유용한 잣대로 활용할 만하다. 이 잣대를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적용할 경우 어떤 평가가 가능할까? 수십 년 동안 동양고전을 깊이 탐사해온 편역자 역시 후기(後記)에서 6공화국 이후에 등장한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을 정밀하게 분석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우선 노태우는 ‘면후(面厚)’에 밝았다. 대선공약으로 ‘중간평가’를 내세워 당선된 뒤 평민당 총재 김대중과 손을 잡고 이내 이를 폐기시키고 이어 민주당 총재 김영삼과 합세해 3당통합을 성사시켰다는 게 논거다. 그러나 노태우는 ‘심흑(心黑)’의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3당통합 후 책사인 박철언의 계책을 좇아 김영삼을 축출하려 했다가 오히려 속셈을 그대로 드러내는 바람에 덜미를 잡혔다는 것이다. 14대 대선 직전 탈당을 통해 반전을 꾀했다가 오히려 영어의 몸이 된 것은 ‘심흑’을 터득치 못한 후과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후사 문제에 실패해 암군행보를 보인 삼국시대의 손권과 닮았다는 분석이다.

이에 반해 김영삼에 대한 평은 후한 편이다. ‘면후’와 ‘심흑’을 고루 갖췄다는 이유다. ‘군부독재 종식’을 내세웠던 사람이 문득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군부 출신과 손을 잡은 것은 ‘면후’의 정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입성 후 문득 돌변해 자신의 당선을 위해 애썼던 인물들을 가차 없이 거세하는 소위 ‘토사구팽’을 행한 것은 ‘심흑’의 진수로 꼽혔다. 삼국시대의 조조에 비유된 이유다.

김대중에 대해서도 후한 점수를 주었다. 다만 ‘심흑’에서 적잖은 문제를 노정한 게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다. 13대 대선 당시 직선제 개헌만 이뤄지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이를 뒤집고, 15대 대선에서 내각제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후 또다시 상황논리를 들어 태도를 바꾼 게 ‘면후’의 논거로 제시됐다. 다만 출범 직후 ‘옷로비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한데도 사정(私情)에 얽매여 당사자를 과감히 자르는 결단을 하지 못한 것 등은 ‘심흑’의 한계로 지적됐다. 관우와 장비 사후 제갈량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정에 얽혀 동오 정벌에 나섰다가 참패한 유비와 닮았다는 지적이다.

노무현은 김대중과 정반대로 ‘면후’보다는 ‘심흑’에 밝았다는 평이다. 대선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 방안’을 제시해 승기를 잡은 게 논거다. 그러나 청와대 입성 후에는 ‘후흑’과 정반대되는 ‘박백(薄白)’으로 나아갔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북한과 주변 4가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자신의 카드를 모두 내보이는 박백’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한미우호가 유지돼야만 중국 및 북한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도 이런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다만 한미FTA 체결은 나름 평가할 만하나 그 과정만큼은 완전히 ‘후흑’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진행돼 지지자들과 괴리된 것은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분석이다. 퇴임 후 자진으로 삶을 마감한 것도 고립무원의 결과로 지적됐다. 초한전 때 책사인 괴통의 ‘천하삼분지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이내 ‘토사구팽’을 당한 한신에 비유된 이유다.

이명박은 득국 과정에서 상당 수준의 ‘면후’와 ‘심흑’을 구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계천 신화’를 지렛대로 삼아 국민들에게 ‘CEO출신 경제대통령’의 환상을 심어준 뒤 기묘한 ‘경선룰’을 고집해 강적 박근혜를 물리친 게 ‘심흑’의 논거로 제시됐다. 17대 대선에서 ‘국정의 동반자’ 운운하며 박근혜를 유인해 이회창를 제압하는 ‘이이제이’를 구사한 것도 높이 평가받았다. ‘면후’의 사례로는 ‘이명박 당’을 만들기 위한 18대 총선의 공천물갈이 행보가 제시됐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필요가 있는 만큼 박근혜 사람을 대거 탈락시킨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자신과 가까운 인물을 밀실에서 낙점하는 식의 ‘사의’를 좇다가 낭패를 본 것은 차라리 물갈이를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한 ‘박백’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청와대 입성 후 당태종의 위징과 같은 인재를 곁에 두지 않고 있는 것도 ‘박백’의 사례로 지적됐다. 왕사(王師)를 모시고 가르침을 받는 게 가장 바람직하나 여의치 못할 경우 스승 격 벗인 소위 ‘사우(師友)’를 둬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조가 하후돈을 ‘사우’로 삼아 칼을 찬 채 자식의 군막을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예외를 인정한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하후돈은 전장에서 군막 안에 선생을 모셔놓고 공부한 당대 최고의 유장(儒將)이다. 

사우를 두지 못할 경우는 뛰어난 참모와 각료라도 곁에 두어야 한다. 이게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것마저 없을 경우 최고통치권자의 독단을 견제할 길이 없게 돼 이내 패망케 된다. 연평도사건 당시 외교안보라인이 시종 우왕좌왕하며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것은 과연 이런 최소한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지 의심케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소위 ‘영포회사건’과 ‘형님예산’ 등은 ‘박백’의 전형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등소평이 집권 기간 동안 인민들의 오해를 살까 우려해 자신의 고향은 물론 한반도의 2배 크기인 사천성조차 아예 들르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초한전 때 유일한 책사인 범증마저 내친 항우에 비유된 이유다.

박백’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좁은 소견을 마치 천하대사를 꿰고 있는 양 착각하는데 있다. 구한말 당시 성리학에 찌든 일부 사대부들이 ‘위정척사’를 내세우며 개화파의 행보를 정도(正道)가 아닌 사도(邪道)로 몬 게 그 실례다. 자신의 생각과 신념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게 바로 ‘박백’의 고질이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사탄’ 용어가 난무하는 것은 극히 불길하다. 구한말 입만 열면 거품을 물며 ‘정도’와 ‘사도’를 역설한 위정척사파를 연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선악을 다루는 종교 및 시비를 논하는 도덕철학과 달리 선후당부(先後當否)를 논하는 영역이다. 이게 뒤섞이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수천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중동의 종교전쟁이 그 증거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주변 4강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차대한 시기에 이런 식의 ‘박백’이 난무하는 것은 극히 불행한 일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외적의 침공은 늘 국론이 분열된 뒤 나타났다. 실제로 위정척사파와 개화파가 소모적인 설전을 전개하는 와중에 나라는 패망하고 백성들은 어육(魚肉)이 됐다. 불과 1백 년 전의 일이다.     



중국의 후흑과 한국의 박백



과거 참여정부 시절 학자들 내에 친미와 친중 노선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한가한 논쟁을 벌일 시간이 없다. 최대 교역국인 동시에 한반도의 앞날과 직결된 중국과의 친교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최소한 미국과 똑같은 비중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소위 ‘연미연중(聯美聯中)’을 역설하는 이유다.

현재 일본은 나름 ‘후흑’에 버금하는 학문을 갖고 있다. ‘야스오카학(安岡學)’이 그것이다. 역대 수상의 스승 역할을 수행해 ‘일본의 국사(國師)’로 불린 야스오카 마사히로(安岡正篤)의 ‘제왕학’을 말한다. 이는 동양 고전에 나오는 지혜의 정수를 추출한 것이다. 야스오카는 이종오에 필적할 만한 기인이다.

유독 동아3국 중 우리나라만 이런 기인이 없다. 없으면 배우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통령학’을 비롯한 구미의 리더십이론 만으로도 능히 21세기의 격랑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탓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동양 고전에 나오는 ‘제왕학’의 리더십이론은 ‘대통령학’ 등 서양의 리더십 이론과 많은 차이가 있다. ‘대통령학’ 이론을 그대로 적용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풍토가 다르면 생장하는 동식물도 다르듯이 동아3국에 부합하는 리더십 이론이 있다. 그게 바로 ‘후흑학’과 ‘야스오카학’이다. ‘대통령학’을 배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G1인 미국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이 또한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학’의 잣대로 중국과 일본 수뇌부의 움직임을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원래 동양 전래의 ‘제왕학’은 겨우 2백여 년밖에 안 되는 미국의 대통령을 분석대상으로 삼는 ‘대통령학’과는 그 깊이와 폭 등에서 비교가 안 된다. ‘제왕학’은 ‘인간경영’의 압권에 해당한다. 일례로 21세기에 들어와 소위 ‘구루’로 칭송받는 서구의 내로라하는 경제경영학자들의 최근 행보를 들 수 있다. 이들이 마치 경천동지할 듯이 내놓은 이론을 보면 동양 고전에 나온 일부 구절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한 뒤 이리저리 살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 

이종오의 {후흑학}은 단순히 동양의 고전만 섭렵한 결과물도 아니다. 그는 토마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번역한 엄복의 {천연론}을 비롯해 다윈의 {종의 기원}과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의 저서 등을 두루 읽었다. 그의 ‘후흑’은 동서고금을 섭렵한 뒤 나온 것이다. 그의 {후흑학}을 두고 {한비자}와 {도덕경}의 제왕학 이론을 하나로 버무린 당대의 기서로 꼽는 이유다.

원래 노자는 제자백가 중 마치 곤륜산과 같은 존재다. 모든 산맥이 여기서 뻗어나갔다. 한비자는 동해에 비유할 만하다. 수많은 강물이 모두 이곳에 모이기 때문이다. 공(公)·왕(王)·천(天)·도(道)로 요약되는 {도덕경}의 제왕학 이치는 ‘후흑’의 체(體), 법(法)·술(術)·세(勢)로 상징되는 {한비자}의 제왕학 이치는 ‘후흑’의 용(用)에 해당한다. 한비자가 제자백가 중 최초로 {도덕경}에 주석을 가한 이유다. 노자와 한비자의 제왕학 이론을 ‘후흑’의 체용으로 해석한 사람은 이종오가 유일하다. 명대 말기에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등 당대의 기인으로 활약한 이탁오도 이 경지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후흑학}의 정수는 ‘박백학’을 이론적으로 격파한 <중국학술의 추세> 등에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일종의 ‘처세술’에 해당하는 ‘후흑술’을 정수로 알고 있다. 이는 본말이 뒤집힌 것이다. 영리에 눈이 먼 출판사의 책임이 크다.  



한국판 후흑 대 중국판 후흑



현재 구미 학계 내에서는 중국을 배제한 동북아시대는 있을 수도 없고, 21세기 세계사의 새로운 전개도 불가능하다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후흑’으로 무장한 중국을 보다 정확히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실제로 모든 면에서 중국과 일면 경쟁하며 협조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화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중국은 이미 수천 년 간에 걸쳐 소위 ‘책사지국(策士之國)’으로 불린 나라다. 그만큼 난세의 논리에 익숙해 있다. 2, 3백년 단위로 왕조가 바뀐 탓이다. 일본이 ‘야스오카학’을 만들어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12세기 말 가마쿠라 막부가 등장한 이후 에도 막부가 무너지는 19세기 중엽까지 6백여 년 동안 2, 3백 년 단위로 막부의 주인이 바뀌었다. 5백 년 단위의 왕조가 거듭 들어선 역사를 하등 자랑할 게 못 되는 이유다. 이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좁은 소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무기력한 상황이 지속됐다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21세기 현재 중국 수뇌부는 ‘도광양회’의 달인에 해당한다. ‘화평굴기’를 내세우며 때론 ‘돌돌핍인’의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기본은 어디까지나 ‘도광양회’이다. 최근 중국이 전통극인 ‘변렴(變臉)’을 시연하듯이 무시로 자신의 얼굴을 바꾸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지난 2010년 9월 <뉴욕타임즈>는 이같이 분석한 바 있다.

“현재 중국이 보여주는 얼굴은 크게 3가지이다. 첫 번째 얼굴은 아시아에 대해 ‘채찍’을 든 모습이다. 한국과 일본이 주요 타깃이다. 두 번째 얼굴은 미국에 대해 ‘예의’를 차린 모습이다. 칼날을 숨기고 은밀히 실력을 키우는 도광양회의 행보가 아직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세 번째 얼굴은 이란과 북한 등에 대해 ‘배려’를 하는 모습이다. 이들 나라가 중국의 이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바로 중국이 3개의 ‘변렴’을 연출하는 무대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G1의 ‘신중화질서’를 추구하는 중국과 아직은 G1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힘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현장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변렴’ 행보를 제대로 파악치 못할 경우 통일시대의 개막은 요원하다. 편역자가 지난 2003년에 펴낸 {난세를 평정하는 중국통치학: 후흑학}을 완전히 새롭게 다듬은 본서를 펴낸 이유다. 중국의 ‘후흑’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한말 당시 ‘후흑’으로 무장한 사무라이를 앞에 두고 ‘왕도’ 운운하며 ‘박백’으로 맞서다가 자멸한 ‘위정척사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훗날 상당수의 개화파 인사들이 친일파로 변신한 것과 달리 이들은 항일의병의 주축을 이루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이것이 나라를 망친 책임을 면제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후흑’으로 무장한 중국에 또다시 ‘박백’으로 맞서는 것은 남북공멸의 길이다. 이미 3대세습으로 인해 자멸의 길로 가고 있는 북한에 이어 영해 내의 통상 훈련까지 주변 4강의 간섭대상이 되도록 만든 남한마저 계속 ‘박백’으로 나아갈 경우 구한말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 붓으로 칼을 상대할 수 없듯이 ‘후흑’은 반드시 ‘후흑’으로 맞서야 한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로 불리는 이종오의 {후흑학}을 깊이 탐사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에 나온 {후흑학}은 이종오의 원고를 거의 빠짐없이 수록해 놓은 점에서 지난번 판본과 비교된다. 원래 이종오는 생전에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후흑’을 설파했다. 그의 원고는 지금도 계속 발굴 중이다. 그러나 2010년 현재 거의 다 발굴된 상태다. 문제는 중국 출간서의 수록된 내용이 들쑥날쑥한데 있다. 이번 개정판은 그간 새롭게 발굴된 원고 중 이전의 것과 중복되는 내용은 삭제하고 새로운 내용만 첨가해 이종오의 원고를 거의 망라했다는 점에서 이전 판본과 큰 차이가 있다.  

각주가 대폭 보완된 것도 커다란 차이다. 이전 판본에는 본문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각주가 일부 빠져 있거나 본문과 약간 다른 내용의 각주가 삽입 된 게 있었다. 이번 판본에는 이런 부분이 모두 보정됐다. 추가분 원고에 대한 것까지 더해져 각주의 규모가 전례 없이 늘어났다.

이번 개정판은 중국 출간서 대부분이 각주를 전혀 달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중국의 지식인들조차 {후흑학}을 완전히 해독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이종오의 {후흑학}에 정밀한 각주를 달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와 사상사를 꿰고 있어야 한다. 편역자는 이를 거의 완벽하게 해 냈다. 청대의 고증학자들이 고전을 정리하면서 주소(注疏)를 총망라한 것에 비유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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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도서 12월. | 신간도서 2010-12-2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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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 무의의 공동체
장 뤽 낭시 저/박준상 역 | 인간사랑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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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학 저자 약력 | 공지사항 2010-12-2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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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학
신동준 역 | 인간사랑 | 2010년 12월

 

 

 

 

 

 

 

 

 

저자 : 리 쭝우 李宗吾 (1879∼1944)

청나라 말기인 광서 5년 중국 사천에서 태어났다. 농부였던 그의 부친은 9남매 중 여섯 째 아들인 리 쭝우만 공부를 시켰다. 리 쭝우는 사천에서 팔고문의 대가로 알려진 노단(盧彖)에게 수업을 받은 후 성도고등학당에서 수학했다. 학업을 마친 뒤에는 손문이 결성한 동맹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 성도의 에 「후흑학」과 「후흑경」, 「후흑전습록」을 연재해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 공자 등 중국 성인들을 비판한 「성인에 대한 회의」도 탈고했지만 사회적인 반발이 심해 발표하지 못했다.

1912년부터 몇 해 동안 사천성 관원으로 일했으며 이때부터 자신을 ‘후흑교주’라 부르며 제자들과 함께 ‘후흑국’ 건설에 나섰다. 1917년에는 교육계에 투신, 부순현중학교와 면양성중학교 교장을 지냈고 1922년에는 사천성 장학관에 임명되어 졸업시험 실시 등 다양한 교육개혁안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후 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성도 에 「후흑사관」과 「후흑학발명사」, 「후흑철학」 등을 연재했고, 이 글이 1936년 북경에서 『후흑학』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져 다시 한 번 중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리 쭝우는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타계할 때까지, 일제와 서구 열강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후흑’의 길밖에 없다며 왕성한 집필활동을 보였다.

 

중국판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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