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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말들 | 소설 에세이 2020-10-3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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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주 리뷰 이벤트 (~10.31) 참여

[도서]다가오는 말들

은유 저
어크로스 | 2019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 경험하는 만큼 세상을 본다. 어려서는 모든 것을 호기심으로 대하며 열심히 배워 가지만 어른이 된 후 배움을 멈춘다. 자신의 세계를 규정하며 '나 때는 말이야'라는 '라떼'형을 들먹이며 타인을 쉽게 판단하며 꼰대가 되곤 한다.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은 작가가 읽은 책과 글 속에 그리고 저자가 만난 수많은 만남들 속에 저자에게 다가온 말들에 대한 단상을 적은 에세이다. 알지 못했던 말들이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들어오며 그 말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말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책이다.

"존은 내가 실제로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고통을 겪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며, 그걸로 그는 만족이다."


위 구절은 저자가 인용한 소설 <누런 벽지>의 인용 구절이다. 저자가 인용한 소설의 배경은 아내가 출산과 병으로 몸이 아프자 내과 의사인 남편 존이 아내의 병을 의사인 자신이 잘 안다며 함부로 진단하는 모습이다. 작가 은유는 이 소설 속의 남편이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사정을 헤아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 지식으로 성급히 단순화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이 문장을 보며 남편을 떠올렸다. 남편은 집안일을 여자인 나보다 훨씬 잘 한다. 설거지도 잘 하고 청소도 도맡아한다. 육아도 잘 도와준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힘들다고 하는 울부짖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 "내가 이만큼 하는데 그 정도로 부족하냐?" "모든 엄마 다 그렇게 사는데 넌 왜 그렇게 힘들다고 불평하냐."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남편이 아무리 가사를 잘 도와준다해도 기본적인 육아 책임권, 워킹파파로 일하는 것보다 워킹맘으로 일하는 현실이 더 불안정하고 잔혹함을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소설 속 남편처럼 내가 고통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단정짓고 내 힘듬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람은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내가 안다라며 당사자가 되기 거부하며 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역지사지의 노력 없이 하는 말들이 상대방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

우리 일상이 시를 낳는 공간이 되려면 똥물 같은 언사를 휘두르는 현실로부터

눈 돌리지 않고 같이 뒹굴고 치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나도 '반격하는 몸'이 되고 싶다.

시 쓰는 운전기사를 위해.


저자는 버스 안에서 기사에게 함부로 대하는 승객의 무례함을 묵인하는 다른 승객들의 태도에 주목한다. 저자 역시 그 중 한 명이었음을 반성하며 무시 당하는 기사를 모른체하는 승객들을 보며 이 사회에 만연한 공동체의 무신경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은 학생들이 잘못 된 행동을 하면 훈계를 하곤 했다. 폭력을 당하는 아이를 보면 막아주기도 하였다.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았다. 물론 지나친 간섭은 있었지만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사람들은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주변의 누가 부당한 취급을 받아도 내가 피해볼까봐 모른체한다. 사람들의 무신경과 무관심 속에 누군가가 폭행을 당하고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주위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 사회는 운전기사가 시를 쓰는 일상을 줄 수 있다. 그 힘은 바로 우리에게서 나온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구나 기성세대가 된다.


저자는 기성세대라고 말했지만 실생활에서 우리는 '꼰대'라는 말을 쓴다. 어른들이 하는 말들을 돌아보자.

먼저 시어머니들의 단골 대사 "내가 다 키워봤다"라며 다 안다며 가정한다. 자신의 지식으로 다 알고 있다고 말하며 그 판단하에 아이 엄마의 힘듬을 단정짓는다. 이런 현상은 매우 흔하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고통을 다 안다고 말하면서 쉽게 생각하고 충고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지 않으면서 말하는 건 때론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한다. 꼰대가 되는 길은 쉽다. 바로 당사자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자연스레 기성세대, 즉 꼰대가 된다.

《다가오는 말들》 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 쉽게 접했기에 그 안에 숨겨져있던 폭력과 상처를 잘 몰랐던 말들을 이젠 다른 언어로 불릴 것을 제안한다. 말은 힘을 갖는다. 우리가 말을 할 때 그 대상은 실재성을 띄며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러함으로 우리는 잘못된 말들을 희망의 말로 바꿔나가야 한다. 가령 잘못된 말의 기원인 '며느라기' 또한 다른 말로 바꿀 것을 제안하듯이 이 사회 속의 잘못된 말들을 다른 말로 대체해야 한다. 그 작업은 쉽게 되지 않지만 말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내 주위의 말들 중 잘못된 말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말들 또한 진지하게 들어야겠다. 잘 듣고 생각하며 내 주위의 말들이 희망의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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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버텨나간 '필사'의 시간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 | 소설 에세이 2020-10-30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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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김이설 저
작가정신 | 2020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엄마들에게 주말은 없다. 엄마 뿐이랴.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말은 무의미하다. 아이 또는 누군가를 돌보아야 하는 어제와 똑같은 날이다. 워킹맘인 내게도 마찬가지다. 평일은 회사에 가고 저녁에는 아이를 돌보지만 주말은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매여 있는 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게는 시간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이들이 빨리 자야 서평을 쓸텐데... 시간이 나면 못 읽은 책을 마저 읽어야지... 하지만 시간은 쉽게 나지 않는다. 책은 같은 페이지를 맴돌고 내 노트북은 커서만 깜빡거리고 있다.


김이설 작가의 장편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은 집안일에 자신을 희생해 온 한 여인의 이야기다. 부모님 집에서 사는 주인공 나는 변변찮은 직업이 없이 조카들 육아와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제부의 폭력을 본 후 참다 못해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온 후부터 나는 두 조카들을 맡는다. 군식구가 늘면서 아버지는 경비일을 하고 어머니는 청소일을 한다. 동생은 회계사 사무실과 퇴근 후에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가족들이 출근 후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식사 빨래 청소 등 모든 일은 나가 맡아서 한다.

육아와 가사에는 퇴근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끝이 없고 매번 반복된다. 매번 닦고 밥을 차리고 씻기는 일이 반복된다. 퇴근이 없는 노동이지만 절대 티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공통점도 있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집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밥순이, 집순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주인공 나 또한 마찬가지다. 집안 식구들을 깨우고 밥상을 차리고 조카를 온종일 돌봐도 바깥에서 일하는 동생만 대우받는다. 심지어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 잠을 잘 자야 한다며 나의 방을 동생의 방으로 바꿔버리고 나를 거실에서 자도록 한다. 집안일 까딱하지 않는 엄마는 매일 출근 전 온갖 집안일을 명령하지만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상 '24시간'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만을 위한 시간. 나에게 집중하고 온전한 휴식을 위한 시간. 엄마가 된 이후 나는 언제나 24시간이 고팠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에서는 필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시를 쓰고 싶어 공부했고 매일 시를 필사하는 밤을 조카들을 돌보며 빼앗겼다. 깨어있는 동안 조카와 집안일에 매여있어야 하는 나의 일상은 더욱 지치게한다. 주인공을 버티게 해 준 필사의 밤들이 빼앗기며 주인공 또한 흔들린다.



자꾸 주인공을 통해 나를 대입하게 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또는 돌봄노동의 당사자로서 쫓기는 시간들, 주인공의 채우지 못한 노트에는 시간에 쫓겨 글을 쓰느라 엉망이 된 나의 글들을, 그 고단함을, 필사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더욱 초조해지며 힘들어하는 날들은 책을 읽으려다 한 장도 다 못 읽고 잠들어버린 나의 날들에 대입해가며 순간 순간 울컥함이 치밀어 오른다.

이 일상 속에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동생만을 챙기는 엄마, 엄마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너도 있으면 가. 안 말려, 아니지, 못 말리지. 내가 뭐라고 네 갈 길 막겠니."

엄마의 목소리는 남편의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시간을 달라고 할 때마다 "쉬어. 내가 언제 못 쉬게 했냐!"라며 말하는 말은 헛웃음만 맴돌게 했다.

많은 엄마들이, 또한 많은 돌봄노동자들은 희생을 강요받는다. 이름 없이 살 것을 요구한다. 아이들을 낳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어머니가 뒤에서 나를 부르셨던 때를 기억한다. "xx애미야." 아이를 낳은 후 나는 내 이름을 잃었다. 자연스레 이름보다 oo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그 생활 속에 누가 자신을 불러도 알지 못한다는 우스개 소리는 이제 일상사이다. 시간과 꿈과 이름까지 잃어가는 게 당연한 일상이다.

조카 육아와 집안일에 함몰되어 가는 주인공에 무한 공감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짬을 내어 필사하고자 하는 몸부림에 응원을 하게 된다. 내가 힘들어 할 때 나를 응원해주었던 내 주변의 사람들처럼 주인공이 마침내 독립하며 자신의 삶을 찾아 걸어나갈 때 무한 박수를 치게 된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을 읽고 또 읽는다. 읽으면서 수십 번 주인공에 나를 대입해본다. 시를 비평할 재간도, 필력도 없지만 필사를 하며 버텨가는 주인공과 글을 쓰고 싶어 책을 읽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나를 본다.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 갈등하며 초조해했다. 이 긴 시간 끝에, 주인공이 필사를 해 오며 쌓인 문장들 속에 머물지말고 자신의 시를 계속 써내려가야 함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을 보며 나 또한 남의 글을 읽는 데 머무르지 말고 나의 글을 써 내려가야 함을 함께 알아간다.

첫 장을 읽어나갈 때부터 주인공에 무한 공감을 해 가며 혹시라도 저자가 주저앉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 책의 해설을 쓴 구병모 작가와 이 책의 저자 김이설 작가 또한 육아로 글 한 편 제대로 읽지 못했던 날들의 고통을 호소한다. 시간이 날 때 쓰는 게 아닌 "쓸 수 있을 때 그냥 쓴다"는 작가의 글은 돌봄노동의 현실을 대변해준다.

그 고단함을 알기에 김이설 작가는 주인공에게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는 결말을 주었나보다. 함께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내자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위로해 주는 글을 아버지의 통화 "주저앉지 마"라는 한 마디로 위로해주었나보다. 다행이다. 주인공이 포기하지 않았듯 나도 포기하지 않으련다. 주인공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써야 겠다고 말하듯, 쓸 수 있을 때 쓴다는 구병모 작가처럼, 오늘 밤에도 써야겠다는 김이설 작가처럼 나도 나만의 글을 쓰련다. 나는 아직 미처 피지 못한 꽃이니까..




-리뷰어스 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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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목소리, 소설 『여자들의 집』 | 소설 에세이 2020-10-2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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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저/임미경 역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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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의 여자 앵커가 팔찌에 찬 글귀가 화제였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진 집콕 시대에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가정 폭력이 증가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여자 앵커는 폭력을 반대하는 글귀였다. 이 영상은 많은 네티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재난의 시대, 전염병의 시대, 가정 폭력과 이혼율이 증가했다. 또한 최근 실업률 또한 여성 실업률이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재난은 여성에게 무자비함을 깨우쳐주는 각종 수치가 발표되었다.

『여자들의 집』은 사는 곳은 다르지만 동시대에 사는 세 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세 갈래의 길』로 감동을 선사한 래티샤 콜롱바니의 신작 소설이다. 전작에 이어 이 『여자들의 집』 에서는 재난에 쉽게 노출된 여성의 현실과 이들과 함께하며 나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소설은 잘 나가는 변호사 솔렌이 절친한 지인 생클레르의 변호를 했지만 최악의 결과와 함께 생클레르의 투신으로 모든 게 무너져버린 모습으로 시작한다. 생각지 못한 생클레르의 죽음으로 충격 받은 솔렌은 쓰러지고 의사로부터 '번아웃' 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모범생, 명문대, 유명 로펌, 능력있는 변호사, 넓은 아파트 등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던 솔렌은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휴일도 없이 일만 하며 바쁘게 살았던 일들이 무의미해지고 넓은 아파트는 생각만해도 외롭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두려운 솔렌에게 의사는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제안한다.

로펌 사직 후 의사의 제안에 따라 봉사활동을 알아보던 솔렌은 '펜연대'라는 협회를 알게 된다. 어렸을 적 작가가 꿈이었던 솔렌은 글을 써 주는 직업이라는 설명에 봉사활동을 신청하고 '여성들의 궁전'이라는 쉼터에서 편지를 써 주는 일을 시작한다.

소설은 솔렌이 '여성들의 궁전'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을 알아가며 변화해가는 이야기와 '여성들의 궁전'을 지은 구세군 블랑슈가 이 쉼터를 만들게 되기까지의 과거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이 쉼터에는 각국에서 온 여성들 뿐만 아니라 갈 곳이 없어 이 곳에 잠시 거처를 마련한 불우한 환경의 여성들이 쉬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배낭으로 테두리를 정한 후 잠을 자고 어떤 사람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화를 내는 여성도 있다. 솔렌의 눈에는 그들이 이상한 여자들로만 보이며 거부감을 갖는다.

이해할 수 없는 여성들이 솔렌에게 다가오고 솔렌은 그들의 사연을 듣고 편지를 써 주며 뉴스에서 보았던 재난과 전쟁들을 비로소 체험하게 된다. 이방인으로 멀리서 그들을 보았을 때 가난, 전쟁, 재난 등이 추상적으로 다가오지만 이 재난들이 쉼터에 거하는 여자들의 이름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그 실체가 명확해진다. 이 단어들이 결코 추상명사가 아닌 동사로 다가오며 그들의 사연에 분노하게 되는 솔렌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령 이 '여성들의 궁전'에서 일하기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바느질 용품이 노력에 비해 얼마나 헐값을 받는지, 아프리카에서 딸에게는 할례라는 고통을 주기 싫어 아들을 두고 몰래 딸과 함께 프랑스로 피난 온 수메야를 통해 할례의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정부 지원금을 받고도 빈곤에 허덕이는 여자들에게 단 돈 2유로 거스름마저도 얼마나 절실한 돈인지를 알게 되며 가난, 빈곤의 이름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나에게 일종의 신고식을 치르게 할 심산일까?

고작 2유로를 돌려받기 위해 편지를 써 달라니 …….

그 돈을 돌려받아 봤자 우편 요금과 봉투 값을 빼면 남는 게 없는데.'

여자의 요청을 거절하려는 찰나

그가 솔렌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말을 덧붙였다.

"내 앞으로 한 달에 50유로가 나와요.

그걸로 이곳의 원룸 임대료를 내고 공과금 고지서며 청구서들을

메우다 보면 식비가 빠듯해요."


재난과 빈곤으로 '여성들의 궁전'에 와서 숙식해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점점 파리 중심가의 빈곤에 처한 여성들로 이야기가 옮겨진다. 화려한 파리 시내, 부유한 솔렌의 마을에 빵집 앞에서 구걸하는 한 소녀에게로 초점이 옮겨진다. 솔렌이 이 쉼터에 오기 전까지는 전혀 관심 없었던 빈곤의 실체가 이제 이웃의 이름으로 '릴리'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있었다.

접근하지 말라는 경계선, 일종의 폴리스 라인이었다.

완충지대, 무인 지대라고,

아무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막아서는 바리케이드였다.

그들 대부분은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저 요령 있게 피해 가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들에게 여자는 하나의 걸림돌, 그저 길을 가로막은 어떤 물체였다.


소설을 읽으면 김춘수의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이 유명한 구절을 이 소설에 대입해본다. 솔렌이 가난,재난,빈곤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을 때 이 단어들은 하나의 추상명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쉼터에서 만난 여성들, 이웃들의 이야기가 될 때 가난, 재난은 추상명사가 아닌 하나의 실체가 되었다. 이웃의 이름으로 그 단어들이 다가왔다. 솔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솔렌이 이들을 만나 변화하며 함께 연대할 때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책 표지의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라는 문장은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될 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 그 고통은 혼자의 것이 아닌 모두의 고통이 된다.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이웃의 이름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상처를 치유하는 첫 걸음은 바로 그들의 고통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이웃, 가족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 우리는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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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클래식 가이드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 인문 2020-10-2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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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이지혜 저
파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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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클래식을 접했다. 유명한 만화이자 드라마였던 이 작품은 지루한 음악이라며 기피했던 클래식을 단번에 매력적인 음악으로 다가오게 해 주었다. 어떤 소재에 대해 관심을 끌기 위해선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클래식을 싫어하던 내게 「노다메 칸타빌레」의 진지하고도 코믹한 스토리텔링이 클래식의 관심을 유발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 또 하나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또한 이지혜 클래식 해설가도 작가만의 해석이 담긴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들을 클래식의 세계로 초대한다.

「노다메 칸타빌레」가 코믹한 상황으로 클래식에 대한 거리감을 줄여주었다면 클래식 해설가이자 이 책의 저자인 이지혜 해설가는 계절로 클래식을 소개한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에 맞는 음악을 추천하며 곡에 대한 해설과 작품에 대한 작곡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계절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보통 계절을 이야기할 때 봄을 먼저 이야기한다. 학교 입학식 또한 봄의 시작인 3월에 하듯 계절의 시작은 봄이다. 하지만 저자는 봄이 아닌 가을로 클래식 세계의 포문을 연다는 점이 독특하다. 아마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이 가을인 점을 겨냥해 가을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부르는 가을답게 저자 또한 음악회와 전시회가 많은 이 가을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가을이라고 소개한다.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 중 기타의 명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작곡가 타레가와 '누에고 탱고'를 탄생시키며 탱고의 대중화를 힘쓴 '피아졸라'가 흥미롭다. 어떤 길이든 주류의 길을 가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건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타레가와 피아졸라 마찬가지였다. 특히 자신의 길이 아님에도 남을 따라 클래식을 배웠던 피아졸라를 야단 친 그의 스승의 질책은 매우 따끔하다.



겨울, 저자는 겨울을 외로움으로 해석한다. 그래서인지 겨울을 소개하는 작품들은 외로움과 우울함의 사투 속에 써내려간 작품들이 많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듯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와 극심한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라흐마니노프 등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작곡을 하며 피아노를 치는 그들의 이야기는 겨울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외로움,우울함이 담긴 곡이 많지만 겨울은 새해 1월만큼은 밝은 곡을 소개한다. 특히 '1월의 첫날에 들어야 하는 곡'으로 추천한 곡은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이다. 잔잔하면서도 신비한 왈츠 곡인 이 작품을 들으며 새로운 시작을 계획해 볼 것을 제안하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게 된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 새싹이 돋고 모든 사물이 새로 시작하는 활기찬 봄에는 모차르트를 빼놓을 수 없다. 청중에게 오로지 음악을 즐기는 기쁨과 자유를 선사하는 모차르트의 음악은 듣는 이를 즐겁게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한 《디베르티멘토 D장조》에서 '디베르티멘토'라는 뜻마처 '즐겁게 하라'는 의미라니 어찌 봄과 어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생동감 있고 유쾌한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한 설명을 듣노라면 어릴 적 모차르트 위인전에서 읽은 일화가 떠오른다. 가난해서 연료를 사올 돈도 없이 추위를 나야 했던 모차르트 부부가 추위를 이기기 위해 함께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는 힘든 상황에서도 유쾌하게 생활했던 그의 음악과 닮아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연애 기간의 절반 이상을 예비 장인어른이자 스승과 치열한 소송으로 버티며 사랑을 지킨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 이야기는 슈만을 새롭게 보게 한다. 슈만의 가곡이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곡이라니 부러움을 자아낸다.

더위가 내리쬐는 여름, 치열한 여름을 위풍당당한 헨델, 베토벤 등을 소개해 주는 등 저자가 추천하는 음악과 글을 읽으면 감상의 폭이 예전과 달라짐을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흥준 교수님의 말처럼 저자의 해설을 통해 듣는 음악은 더 깊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이제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늦가을, 이 책을 따라 음악을 듣는다면 음악이 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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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의 에세이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 소설 에세이 2020-10-2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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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코로나에 걸려버렸다

김지호 저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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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면 지나갈 줄 알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느덧 1년이 가까워져가고 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가을을 지나고 있다. 사람들의 일상을 모조리 바꿔 놓은 이 코로나 환자가 다행히 내 주위에 없었지만 확진자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궁금했다. <코로나에 걸려버렸다>의 저자 김지호씨는 코로나에 걸린 친구의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유일하게 확진 판정을 받은 불운한 케이스였다.

저자는 이 글 초기에 본인이 면역력이 약함을 알기에 마스크를 철저하게 쓰고 개인 위생을 확실하게 행하여 왔음을 강조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맞는 가족 식사에서까지 최대한 말을 줄이고 말을 하지 않을 때에는 마스크를 쓰면서 식사하였음을 말하며 이는 결코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말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그의 확진 소식을 접한 후 들려오는 말은 모두 비슷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

"그러게 더 조심하지 그랬어."

모두 그를 탓하는 듯한 주변의 반응에 그는 상처받아야 했고 직장에서도 죄인이 되어야했다. 자신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친구에게 한 마디라도 쏘아주고 싶지만 친구가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받았다는 말에 원망도 할 수 없었다. 무료한 일상, 언제 나갈지 모르는 병상에서의 일상이 지속되며 저자는 지루함과 두려움 속에서 버텨나가야했고 결국 50일이 지난 후에야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죄인이 되어가고 이었다.

아직 명확한 건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 하나인데,

주변인들은 자신을 잠정적 피해자로 여기며 나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병원 내가 아닌 이 사회에 만연해 있음을 저자는 깨닫는다. 자신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회사, 자신을 피하는 퍼스널 트레이너 등 자신을 바이러스 취급하는 듯한 사회의 모습 속에 저자는 또 한 번 좌절해야했다.

<코로나에 걸려버렸다>는 전문 작가가 아닌 치료를 받으면서 써 왔던 기록이기에 거친 표현들도 다소 보인다.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아마 저자의 심정을 표현해주기 위해 그 표현을 고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나라에서 코로나 확진자에게 제공해주는 혜택을 확진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이 혜택이 어떤 도움을 주는지 알지 못하는 부분들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실수혜자로서 설명해준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병상에서의 생활 또한 자세히 기록해주어 많은 궁금중을 해소해준다.

저자 주위의 지인 중 갓난아기와 병으로 투병 중인 남편을 둔 지인의 이야기는 전염병 위험 속에서 아이와 남편을 지켜야 한다는 그 절박함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24개월 이하의 아이들의 경우 마스크를 착용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절대 문을 열지 않겠다는 그 지인의 마음은 같은 엄마로서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생이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조카가 다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확진자로 판정되며 조카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했다.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동생이 들려주는 주변의 반응은 매우 씁쓸했다. 근처 학원의 웹사이트에서 "우리 학원은 XXX 학교 학생이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어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 잘못도 아니고 확진자 선생님의 잘못도 아니건만 마치 몹쓸 존재로 표현하는 그 학원 홍보 문구는 바로 이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강한 항의를 받고 홍보글을 삭제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나는 코로나에 걸렸고, 이를 이겨내면서 항체가 생겼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에 걸려 코로나에 걸린 이들이나 자신의 둘움을 자극하는 이들에게 돌을 던지고 칼을 휘두른다.

두렵다는 이유로...

전혀 새롭지 않은 사실은 부지불식간에 퍼지는 이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에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는 것이다.


혐오 바이러스가 들끓고 있다. 저자는 이 혐오 바이러스가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근거 없는 기사들이 두려움을 양산하고 무조건적인 두려움에 확진자들을 비난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장기화와 함께 혐오 바이러스 또한 장기화되고 있다. 이 사회를, 두려움을 이겨낼 백신은 무엇일까 저자는 곰곰히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연대만이, 함께 견뎌내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수가 없음을 저자는 고백한다. 비록 저자 또한 직장에서 결국 나와야 했고 사람들이 그를 피했지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그와 함께 해 준 사람들이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연대와 함께라는 마음이 없다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나와도 이 사회는 결코 회복되지 못함을 이야기한다.

<코로나에 걸려버렸다>는 우리에게 코로나와 함께 혐오 바이러스도 치료해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 백신은 우리가 만들 수 없지만 혐오 바이러스 백신은 가능하다. 우리가 마음만 더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코로나 확진자였던 경험이 과감하게 드러나서 이 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이 사회가 함께 나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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