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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처럼 사는 게 가능할까? | 비소설 2017-12-3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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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양이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스테판 그라니에 저/이소영 역
이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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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스테판 가르니에 / 이마 출판사 / 2017년12월13일 발행

“고양이처럼 사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규격 외 판형으로 작고 얇고(156쪽밖에 되지 않는다), 표지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있는 깜찍한 책이다. 책이 고양이처럼 작아서 외투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읽을 수 있을 정도다. 강아지에 비해 고양이가 뒤늦게 반려동물로 각광을 받으면서 고양이 관련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고양이 자랑하듯 사진을 찍어 책을 내고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분명히 반가운 현상이고 당연히 반긴다. 고양이 사진이든, 고양이가 쓴 글이든 고양이를 핑계로 낸 글이든, 고양이가 들어간 책은 귀엽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고양이 관련 책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종류는 고양이를 직접 키우는 분들이 고양이와의 생활을 알콩달콩 사진이나 그림과 함께 적어 책으로 펴내는 경우다. 가끔은 길고양이들과의 교류를 사진으로 찍어 책으로 내는 분들도 있다. 두 번째 종류는 고양이 이름을 빌린 문학책이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소설도 많이 있다. 추리소설에 고양이가 많이 등장하는 건, 고양이가 어떤 영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 있어서이다. 어떤 책은 고양이 이름만 빌려왔지 전혀 고양이와 관련이 없는 소설도 있지만, 동화책에는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정말 많은 어린이 소설이 있다. 세 번째 종류로는 고양이를 매개로 인생철학이나, 삶의 방향 같은 걸 논하는 자기계발 서적류다. 그러니까, 고양이를 본 받아서 뭘 어떻게 해보려는 고양이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인간들이 쓴 책이다. 가끔은 직접 고양이가 썼다고 주장하는 책들도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세 번째 유형에 속하는 책이다. 저자가 고양이와 직접 살면서 고양이와 부대끼면서 고양이로부터 많은 깨달음을 얻어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널리 전하고자 펜을 든 경우이다.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이지만,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고양이 책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는, 고양이 책 덕후로서, 이번 책은 특히 의미가 있었다. 올해 20여 권의 고양이 관련 책을 읽었지만, 감사하게 이 책이 올해의 마지막 고양이 책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고양이처럼 살아보기” 책도 있었고, 20여 년 전에 읽었던 “일곱 마리 고양이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 책이 너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어, 이런 류의 책에 대해서는 늘 뭔가 얻을 게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물론 책 내용은 대부분 고양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속해 있어 책을 읽으면서, 놀람으로 두 눈을 크게 뜨거나, 득도하듯이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하거나, 카타르시스가 생기는 환희가 느껴지는 강렬함은 없었다. 다만, 주인공이 느낀 그 깨달음에 대해, 함께 공감하며, 다시 나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을 조금 더 진지하게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에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책 내용만으로 본다면 2017년 9월에 발행되어 나온 양장본 “고양이처럼 살아보기”와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람들이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고양이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것은 그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나 틈새의 미세한 발견 같은 것이 있겠지만.



이 책이 좋은 점은 책 중간에 그려진 삽화가 세밀화 수준이라는 것. 그 표정이 매우 섬세하여 마치 살아있는 고양이를 바로 옆에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글들이 많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밑줄을 많이 그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고양이의 행동을 통해 40여 가지의 행동방식을 정리하고 이를 우리 인간에게 적용해 우리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물론 중간에는 다소 억지스러운 고양이 따라 하기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고양이 덕후라면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을 듯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로서, 새해를 뭔가 고양이스럽게, 여유있게 살아보기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고양이처럼 내색하지 않고 멀찍이 앉아서 추천해본다.



~~~~~~~~~

고양이를 챙겼으면 이제 나 자신을 챙겨보자. 고양이한테 해준 것처럼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야말로 하루를 시작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32쪽)

개와 반대로 고양이는 새로운 것이라고 무작정 덤벼들지 않는다. 새 종이 가방이나 제 몸을 숨길만한 낯선 물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간다. 이 엄청난 호기심 덕분에 고양이는 쉴 새 없이 자신의 세계를 재발견한다. (46쪽)

개는 주인이 있고,
고양이는 하인이 있다. - 데이브 베리(1947년, 미국 작가)

고양이는 호전적이지도 않고 싸움꾼도 아니다. 자기 영역이 위태롭지 않은 한 언제나 싸움을 피한다. ... 갈등은 두 명의 패자만 남긴다. (81쪽)

어휘로 표현하지 못할 아름다움이 있다.
고양이는 그런 차원에 속한다.
-루이 누세라(1928년, 프랑스 소설가)

고양이들은 모두 아름답다. ...
못 생긴 고양이를 만나기란 지극히 드문 일이다.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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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세 개의 시간_미래는 상상하는 자의 것 | 청소년소설 2017-12-2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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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 개의 시간

윤여경,박효명,허진희,김유경,허윤,임우진 공저
사계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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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상상하는 자의 것이다.

제3회 한낙원 과학소설상 작품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여섯 명의 과학소설 작가들이 쓴 단편 모음집이다. “세 개의 시간”이라는 수상작을 쓴 윤여경이 보너스로 최신작 하나를 더 포함시켜 총 일곱 작품이 모여 한 권의 책, 일곱 개의 미래를 만들어냈다.


한낙원은 아동문학가이면서 한국 SF 소설의 선구자로 “금성 탐험대”라는 400쪽에 가까운 미래소설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외국 작가의 외국 이름을 가진 작품이 아니라, 고진이라는 한국 청년이 주인공을 등장하는 한국 SF소설. 사실 이 책 “세 개의 시간”을 읽기 전에는 한낙원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낙원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사실은 이 책을 읽게 된 기쁨보다 더 컸다. 다행히 창비의 “금성 탐험대”와 현대문학의 “한낙원 과학소설 전집”을 최근 발간하여 판매 중이니 얼른 사 보아야겠다는 욕심이 든다.

사계절출판사의 “세 개의 시간”은 한낙원을 기리며 만들어진 과학소설상 수상작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단편집을 읽는 기분이 들게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가 미래 SF와 판타지를 다소 결합한 모양새라면, 단편집은 정통 SF 소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작가들의 SF소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참신한 작품집이다.

서로 다른 여섯 작가의 서로 다른 일곱 개 이야기가 모였는데, 조금은 일정 부분 서로 공유하는 미래상이 있다. 겹쳐지는 영역이 있다는 얘기다. 즉 우리의 가까운 미래는, 현재 과학기술에서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이제 인공지능의 딥 러닝과 무인 자율주행차량, 드론 같은 것들은 미래가 아닌 현재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세 개의 시간”에서 상상한 독특한 미래에 대한 설정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현재가 되어 우리 또는 우리 자녀들 앞에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번 SF 소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미래 시대의 설정이나 사건 전개의 참신함이나 기발한 상상력보다도, 그 속에서도 끊을 수 없는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우정 등 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SF 소설을 과학기술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미래를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과 조우하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낯선 적응에 동감하고 그 주인공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미래는 디스토피아일까 유토피아일까. 일단 일곱 개의 소설을 통해 유추한다면 조금 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그러나 디스토피아라는 기준은 지금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다. 만약 이미 모든 환경에 통제된 상태로 태어난다면 그때는 그 기준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지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작품집에 실린 미래 소설은 전 지구적 관점에서의 접근으로 거시적인 환경을 설정하고, 미시적인 인간관계를 단편으로 소설화하였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야기의 규모가 작다. 빠르게 결정하고 종결해야 하는 단편소설에서 거시적 환경은 최대한 줄이고, 미시적 관계를 좀더 강화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물론 일곱 작품들은 그런 면에서도 훌륭하다. 이제 수상한 작가들이니 앞으로 한낙원과 같은 훌륭한 미래소설 작가로서 계속 정진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우리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 조금 더 밝았으면 좋겠다. 밝은 미래는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일곱 편의 이야기를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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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술래잡기 | 일반문학 2017-12-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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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신의 술래잡기

마옌난 저/류정정 역
몽실북스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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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술래잡기>


중국판 셜록 홈즈 모삼과 법의관 프로파일러 무즈선.

그 둘의 완벽한 조합으로 탄생한 멋진 형사 추리물.


변태 살인마 L은 모삼의 애인을 이용해 모삼을 농락하고 모삼을 기억상실증에 빠뜨린다모삼은 범죄 현장에 우연히 있게 되면서 기억을 찾게 되고 L과의 두뇌게임에 이끌린다. L이 문제를 던지고 모삼과 무즈선이 담당 경찰들과 함께 L이 요구하는 기한 내에 범인을 찾아내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표지의 끔찍한 장면만 아니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물론 그런 장면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으나모삼의 캐릭터 같은 걸 만들어 표지를 장식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추리물은 좋아하지만 호러물은 싫어하는 나 같은 독자는 스스로는 절대 집어들지 않을 으스스한 표지였다.


표지와 다르게 책 내용은 상당히 짜임새 있게 전개되었다이 책이 단순히 재미를 쫓는 추리물이 아니라 독자에게 인문학적 성찰을 하게 하는 선과 악의 개념법의 원론적 역할에 대하여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책이다그러니까 쫓고 쫓기는 범죄 추리물이 주는 긴박감과 재미그리고 사회적 현상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하게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좇았고 그 시도는 훌륭하게 성공하였다.


가해자들은 사실상 피해자들이었고그들은 자신들의 억울한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가해자가 되었다그들은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피해자였음이 드러난다변태 살인마 L은 모삼에게 지속적으로 선한 것이 무엇이고악한 것이 무엇인지를 따진다법이 지켜주지 못한 피해자들실종 신고를 했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경찰 때문에 처참하게 죽은 가족을 대신해 경찰이 되기로 한 가해자들물론 최종적으로 살인을 한 그들의 행동이 잘한 것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작가는 L의 시선을 쫓아가며 세상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독자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진다.


재미의 깊이만큼이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나는 무죄하여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그들은 죄인이라 하여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가정의는 과연 무엇이고법은 과연 어디까지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가모삼과 무즈선을 따라가며 즐거움과 함께 삶의 깊이와 두께를 체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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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가면을 씌운 소설 | 일반문학 2017-12-2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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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저/권일영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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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 독자에게 가면을 씌운 소설


“난 인생에서 져본 적 없어. 설령 범죄라 해도.”

마지막 문장을 읽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미스터리 소설의 독보적 신화
히가시노 게이고의 허를 찌르는 심리 스릴러!

책 겉표지를 다시 한 번 더 두른 띠지의 광고문.
겉표지의 디자인은 아예 띠지를 예상하고 띠지 부분의 아래를 아무 이미지도 넣지 않고 비워 놓았다. 겉표지와 띠지는 오직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붉은 색으로만 채워져 강렬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걸출한 작가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 몇 년 전 “용의자 X의 헌신”을 2011년 보면서 그 작품의 원작자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영화로 본 그 숨막히는 이야기와 마지막 반전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는데, 나중에 실제 원작 소설을 보고 나서 한국 영화가 더 멋진 반전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지난 해 1월, 라플라스의 마녀를 시작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올해는 기린의 날개를 읽은 뒤 그의 오래된 초기 작품들을 몇 권 더 읽었다. (브루투스의 심장, 11문자 살인사건, 백마산장 살인사건, 게임의 이름은 유괴) 5월에만 그의 작품을 네 권이나 읽었다.

그러다 12월에 그의 “게임의 이름은 유괴”를 양장본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초기 작품들에 비해 최근의 작품들이 훨씬 원숙미가 넘치고 사회성 깊은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다. 이 책은 일본에서 2003년에 출판된 뒤 2005년에 노블하우스 출판사에서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고, 2010년에는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다시 출판되었고, 이번 2017년 11월에는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양장본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너무 유명한 작가라 판권이 계속 바뀌는 모양이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청춘의 데스마스크”라는 이름으로 처음 연재되었고 “게임”으로 영화화가 되었다. 그가 1995년에 “방과 후”라는 작품으로 처음 데뷔했으니 10년 정도 지난 뒤 작품으로 중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초기 작품들이 주로 순수하게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형 소설이었다면 지금의 후기 작품들은(지금을 굳이 후기라고 붙인다면) 매우 사회성이 높은 주제를 가져와 깊은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의 중기 작품들은 그 중간 선상에 놓인 작품이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그의 시선이 범인만 찾는 데서 이제 조금씩 개인의 아픔, 사회의 부조리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겉으로만 보면 매우 단순한 스토리와 단순한 등장인물 그리고 일직선으로만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어 몰입도가 매우 좋고,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고 한번에 독서를 끝낼 수 있을 정도의 재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보면, 초기 작품의 수준에서 완성도가 더욱 높아진 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 그의 일본 제목인 “청춘의 데스마스크”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사람의 가면에 대하여 말한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또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연기자처럼 어떤 역할 - 구스타프 융 심리학자의 용어를 빌린다면, 페르소나(persona)에 대한 것 –을 수행하는 외면적 삶에 대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영화 “g@me”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광고기획사에서 유괴한 여주인공의 아버지 회사인 자동차 회사에 제출한 기획작품이 게임에 대한 것이었고, 그 게임 내용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가면”에 관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말한다.

“누구나 그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 그 가면을 벗기려고 해서는 안 돼. 누군가의 행위에 일희일비한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지. 어차피 가면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나도 가면을 쓰기로 했어.”

“어떤 가면?” (주인공이 유괴한 여주인공의 말)

“한마디로 말하면, 그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면,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기대하는 가면이 되겠지. ... (중략) ...”

“믿어지지 않아.”

“대단한 건 아냐. 게다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편할 때가 많아. 누가 무슨 소릴 해도 상대는 가면에 말을 걸고 있을 뿐이지. 나는 그 가면 아래서 혀를 날름 내밀면 돼. 그러면서 다음에는 어떤 가면을 쓰면 상대가 기뻐할까 생각하는 거지. 인간관계란 원래 번거로운 거야. 그렇지만 이 방법을 쓰면 아무것도 아니지.”

“줄곧 그렇게 살아왔어?”
“줄곧 그래왔지.”
주리는 포크를 놓고 두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왠지 슬프네.”
(게임의 이름은 유괴 219~220쪽 일부)

사실 어렸을 때 나도 많은 가면을 쓰고 행동했다. 슬퍼도 웃었고, 그렇게 자신을 통제하는 걸 대견스러워했다.

주인공은 말한다.
“이 세상은 게임이야. 상황에 따라 얼마나 적절한 가면을 쓰느냐 하는 게임.”
(220쪽)

슬픈 대화지만, 그 슬픔이 우리네 삶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더 슬퍼진다. 아직 나는 어떤 가면을 쓰고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걸까?

손에 잡으면 단숨에 마지막까지 읽어버리게 하는 힘을 가진 놀라운 소설.
마지막 반전에 한 번 놀라고,
반전 뒤에 숨은 반전에 한 번 더 놀라게 되는 소설.

5월에 한 번 읽고도 숨죽이며 12월에 한 번 더 읽은 소설.
그러면서 마지막에 두 번 다시 놀랐던 소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어떤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걸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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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정의여 (서평-살인범은 그곳에 있다) | 인문-사회-철학 2017-12-1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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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살인범은 그곳에 있다

시미즈 기요시 저/문승준 역
내친구의서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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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같은 세상에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책


누워서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제목을 훔쳐본 아내가 이런 책은 정신건강에 안 좋다고 읽지 말라고 한다. 우리 부부는 호러영화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끔찍한 장면이 들어간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 예전에는 전쟁 영화를 좋아했는데 너무 사실적인 묘사가 많은 영화는 절대 사양한다. 이미지는 뇌에 오랫동안 잔상을 남기고,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장르 책으로 본다면 표지는 매우 정숙하고 얌전한 편이다. 그냥 제목이 뭔가, 압축되어 있으면서 끔찍함을 대류의 파동처럼 느끼게 하는 그런 날카로움이 있다. 부제로 달린 제목 역시 나쁜 것은 다 모아 놓았다. 연쇄, 아동납치, 살인. 이런 단어를 입에 올리면서 결코 즐거워 할 수는 없다. (사실 얼마 전에 읽은 “봉제인형 살인사건” 같은 제목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다행이 아내에게 이 책은 그런 소설이 아니라, 실화를 엮은 책이라고, 아직 아이들을 찾지 못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어 아내의 우려를 조금 낮출 수 있었다. 이 책은 방금 얘기한 것처럼 일본에서 17년 동안 무려 다섯 명의 아이들이 실종되고 살해당한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한 한 방송기자의 탐사보도 형식의 사회 고발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재심”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영화였다. 영화는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벼랑 끝 변호사가 억지로 재심 사건을 맡아 10년 동안 살인자 누명을 쓰고 살아온 청년을 무죄로 변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가 살인죄를 뒤집어 쓰게 된 것은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고 거짓 자백을 했기 때문이었다.

책의 저자는 아동살인사건이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한 사람에 의해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임을 추리하고, 그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범인이라고 자백해 무기징역으로 수감되어 있던 사람이 무죄임을 밝히는 과정을 아주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그 피해자 역시 경찰의 무자비한 고문 때문에 거짓 자백을 하고 살인자가 되었다.

영화 재심이 나오고 나서, 사건 당시 판사였던 박범계 국회의원은, 영화에서 변호사 역의 실제 모델이었던 고졸 출신의 파산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가 재심을 청구하여 1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삼례 나리슈퍼 사건의 무고한 세 명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또는 경찰의 무리한 취조로, 명확한 증거없이 정황증거만으로 범인으로 몰린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세우는 무지막지한 사회정의 구현을 빌미로 한 권력자들도 있다.

이 책의 90퍼센트는 저자가 살인자로 복역하고 있는 사람이 실제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을 “재심”이나 “무죄”로 하면 되지, 왜 저렇게 무시무시한 제목을 달고 있느냐 하는 것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람이 무죄로 풀려났다면 당연히 경찰은 진짜 범인을 찾는 수사를 벌여야 하는데, 일본 경찰과 사법부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저자가 17년째 복역 중인 그를 무죄로 하기 위해 힘들게 유가족을 만나고,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범인 용의자를 만나고, 증거품을 수집하고 했지만, 그 모든 정보를 경찰에게 알렸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다. 국회의원을 움직이고 텔레비전 방송으로 압박을 해도, 경찰은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날까만 걱정하였다.

그래서 저자는 제목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바로, 아동 다섯 명을 살해한 그 범인이 아직 우리들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범인이 살아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래서 그는 책으로 다시 사자후를 토하는 것이다.

손에 책을 잡고 이렇게 빨리 몰입되어 읽기는 오랫만이었다. 그것도 소설이 아닌 비문학 책을. 놀랍게도 이 책은 일본추리문학협회로부터 상을 받게 된다. 그만큼 이 책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놀라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놀라는 것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이 아니라, 실제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데 있다.

이 책은 사회 정의를 위한 책이다.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책이다. 정치인들을 움직이게 하는 책이고, 사법부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고, 우리의 가슴을 다시 뜨겁게 하는 책이다.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한다. 응답하라, 정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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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겨울 아이 | 시인의 방 2017-12-1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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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아이

 
 
아기가 태어난 그날
아버지는 웃었을까 울었을까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알지만
모든 아기도 죽는다고 말할  있을까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을 거야, 아니라면
우리 아기도 죽을 거야, 아는 
아버지는, 아기가 태어난 그날
웃었을까요 울었을까요
 
나는 신이
웃음을 향처럼 머금었지만 슬픔을 기침처럼 토해낸 
울면서 태어났습니다
너무 추워요
없는 이를 딱딱거리며
콧물을 훌쩍이며 태어났습니다
너무 추워서 아픈 날에


2017.12.19.
요나단, 후조 이태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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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식품의 모든 것-통조림의 탄생 | 비소설 2017-12-1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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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통조림의 탄생

게리 앨런 저/문수민 역
재승출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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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의 탄생>

통조림의 역사라기보다는 보존식품의 백과사전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듯하다. 보존식품의 귀결이 결국 현재 우리가 마트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먹는 통조림이니까 같은 말인 듯하지만, 책은 현대의 통조림보다는 식품 보존의 역사를 거침없이 파헤친다.

백과사전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듯하다는 나의 판단은 전적으로 나의 주관적인 견해이다. 그만큼 책에는 엄청나게 방대한 식품의 종류와 그에 연관된 지식과 정보들이 담겨져 있다. 어느 독자는 사전을 펼쳐놓고 찾아가며 읽었다고 하는데, 그럴 욕심을 가지지 않고 책장을 넘긴다면 어쩌면 그 지식의 방대함에 기가 눌려 옴짝달싹 못할 수도 있다. 바로 내가 그랬다.

나는 사실 이 책이 “통조림의 탄생”이라는 제목에서 시사하듯 통조림의 탄생을 좇아가는 인문학적 또는 사회학적 서사가 아닐까 추측했다. 그래서 정글을 탐험하듯 다양한 이야기를 쫓다보면 어느새 통조림의 기원과 만나고, 그리고 그 이후 계속 발전해 나가는 통조림을 통한 다양한 담론들을 조우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보존식품의 모든 것을 한 권의 책에 다 담으려고 시도한 듯 보였다. 그러다보니 엄청난 사료를 바탕으로 한 전 세계의 음식 보존법이 총 망라된다. 염장법, 훈연법, 공기차단법, 염지법, 발효법, 초절임법, 당절임, 산, 지방 그리고 통조림법, 농축법, 저온살균법, 냉동법, 방부제법, 방사선처리법, 고압처리법이 100쪽 가까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 식중독균, 대장균 등 다양한 세균에 대한 설명이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책은 온갖 음식에 대한 설명이 음식 종류별로 이어진다. 육류, 생선, 갑각류, 조개류, 문어류, 가금류, 곡류, 콩류, 유제품, 과일, 탄수화물 그리고 디저트까지.

그러다보니 온갖 정보에 눌리기 시작하면서 1초에 두세 개씩 나타나는 새로운 용어들은 나를 무장해체시키고 말았다. 다행히 200쪽을 넘어가자 내가 원했던 분야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리적 여건에 따른 식품의 운송 이야기, 지역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 이야기, 마지막 양념장 이야기들까지.

이 책에는 매우 많은 과거의 다양한 음식 보존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정말 오래된 식품들의 홍보포스터 들이 거의 매 쪽마다 삽입되어 있다. 음식을 좋아하고, 여러 재료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고, 양념 만들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분명히 좋아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나처럼 어떤 사회학적, 인류문화적, 인문학적 이야기를 생각하는 분이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덧붙인다면,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한 권의 책으로 남긴 저자의 집요함과 전문적인 책임감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꼭 전해져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수고한 저자의 노력이 더욱 많이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존식품을 자세히 뜯어보면 문화의 지문이 가득 남아 있다.” (10쪽)
“영어에서 사회집단을 구별짓는 특성과 음식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모두 ‘culture’(문화,와 균의 배양이라는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라 부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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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를 위한 구원의 서사-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 | 일반문학 2017-12-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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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저/공경희 역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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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칼의 높은 산>


내가 아는 얀 마텔이 아니었다. “파이 이야기”를 썼던 그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첫 이야기는 실망으로 치달았다. 주인공 토마스는 갑작스럽게 부인과 아들을 잃고 만다. 그는 슬픔에 못 이겨 뒤로 걷기 시작하는데, 하필 그 때 아내가 뒤로 걷는 사람을 봤다는 얘기를 한다. 어, 내가 읽은 책에도 뒤로 걷는 사람 얘기가 나왔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토마스는 포르투칼의 높은 산에 있는 교회에 특이한 십자가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그곳으로 가려고 한다. 부유했던 숙부는 세상에 처음 나온 자동차라는 것을 빌려준다. 토마스가 포르투칼로 가는 여정을 그린 1부, 1904년의 이야기, “집을 잃다”는 토마스가 가족을 잃고 상실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세상에서 자동차를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자동차로 포르투칼의 높은 산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간절히 바랐던 그 십자가상을 찾지 못한다. 오히려 자동차로 한 어린이를 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다 도망치고 만다.

2부 ‘집으로’는 1939년. 그러니까 토마스가 포르투칼로 갔다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끝난 지점에서 30년, 1세대가 지난 즈음에 전혀 다른 인물들이 나타나 이야기를 시작한다. 단편소설이었나?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아이를 잃은 부부, 그리고 그 남편을 잃은 부인 마리아가 부검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를 찾아온다. 이야기의 연결고리는 이 마리아가 잃은 아이가 바로 1부에서 토마스가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그 아이라는 설정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2부 이야기는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얀 마텔이 ‘파이 이야기’에서 보여준 식인호수에 버금가는 설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놀라운 상상력이자 그 상징성의 깊이에 그저 놀랄 뿐이다. 마리아의 집은 어디였을까? 아이를 잃고 남편마저 잃은 마리아의 집은 남편이었다.

3부 ‘집’은 현대로 넘어와 1980년이 된다. 캐나다 상원의원인 피터. 그는 미국에 초청되어 갔다가 우연히 침팬지연구소를 방문하게 되고, 우연히 침팬지 오도를 데려오게 된다. 미친 짓임을 알면서 그는 그와 함께 살려고 한다. 그는 오도를 위해 자신이 태어났던 곳 포르투칼의 높은 산으로 간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집 한 채를 겨우 구하고 그 곳에서 침팬지와의 삶을 시작한다. 캐나다에 있는 아들도, 누이도 버려두고,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삶이 놀랍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 피터가 말하면서, 삶은 달걀과 감자가 담긴 냄비를 오도(피터가 데려온 침팬지)에게 보여준다.

그들은 생각에 잠긴 채 조용히 먹는다. 식사가 끝나자 오도가 다시 창밖으로 펄쩍 뛰어 나간다.

낡은 매트리스가 의심스러워 피터는 거실 테이블 위에 캠핑용 매트와 침낭을 깐다.

그러고 나니 할 일이 없다. 3주 동안 - 아니 한평생일까? - 쉼 없이 움직였는데, 이제 할 일이 없다. 무수한 종속절과 수십 개의 형용사와 부수가 들어가고, 기발한 접속사들이 문장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는 와중에 - 예기치 못한 막간의 촌극까지 끼어들고 - 하이픈 없는 명사들이 난무하는 장문이 마침내 놀랍도록 고요한 마침표와 함께 끝이 난다. 한 시간쯤, 꼭대기 층 계단참에 나가 앉아서, 지치고 조금 긴장이 풀리고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그 마침표에 대해 생각한다. 다음 문장은 무엇을 가져오려나? (얀 마텔, 포르투갈의 높은 산, 332쪽)

그는 침팬지를 닮아 점점 하등동물처럼 단순해지고, 침팬지는 피터를 닮아 지능적이 되어 귀리죽을 끓인다.

“피터는 침실에서 손목시계를 꺼내 온다. 아직 오전 8시도 안 되었다. 거실에서 테이블을 바라본다. 읽을 보고서도 써야 될 편지도 없고, 어떤 종류의 문서 업무도 없다. 구성하거나 참석할 회의도 없고, 우선적으로 처리할 일도 없고, 해결해야 할 세세한 일들도 없다. 걸거나 받을 전화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다. 일정도 없고, 프로그램도 없고, 계획도 없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업무가 전혀 없다.

그런데 시계를 볼 필요가 있을까? 그는 손목시계를 푼다.” (347쪽)

그는 끝내 자기 집을 찾았다. 토마스가 도달하려고 했던 집, 마리아가 안식하려고 했던 집, 그 집을 피터는 침팬지와의 삶 속에서, 토마스가 갔던 그 포르투칼의 높은 산에서 발견한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흥 없이 실망하며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엄청난 희열과 충격과 감동으로 놀란 가슴을 쉬이 진정시키지 못했다. 역시 얀 마텔.

다양한 상징들, 예수, 십자가상, 집, 안식, 애통, 죽음 등 다양한 변주가 사방에 숨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모든 것들의 위대한 뜻과 깊이를 헤아릴 수 있었다.

결국 세 이야기는 애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내와 아들을 잃은 아빠, 아들과 남편을 잃은 아내

애통은 질병이에요. 벌집을 쑤신 것마냥 슬픔의 마맛자국이 생겼고, 우린 열에 시달리고 타격에 무너졌어요. 그 병은 구더기처럼 우리를 초조하게 하고, 이처럼 달려들었죠. - 우린 미칠 정도로 몸을 긁어댔어요. 그 과정에서 귀뚜라미처럼 활력을 잃고 늙은 개처럼 기운이 빠졌어요. (244쪽)

결국 책은, 익명의 군중이 살해한 사람의 아들, 그 익명을 애통해하는 신의 눈물에 관한 이야기, 애통하는 자녀들에 대한 신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 구원의 여정으로 걸어가는, 전혀 높지 않은, 포루투칼 높은 산으로 걸어가는, 믿음의 이야기다. 예수의 십자가상이 어떤 사람의 눈에는 침팬지처럼 보여, 이게 신성모독이 아닌가 가히 의심스러운 매우 위험한 책일 수도 있으나, 그 팔이 긴 것은 모든 사람을 안으려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얼굴이 긴 것은 애통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다.

가장 인간적이고 우아하며 품위있는 영적 여행, 이라는 뒷표지의 한 문장이 매우 정확한 책이다.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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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 인문-사회-철학 2017-12-11 21:53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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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선택 가능한 미래

비벡 와드와,알렉스 솔크에버 공저/차백만 역
아날로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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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가능한 미래>

SF소설을 좋아하다보면 자연히 미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막연한 동경은 SF소설에서, 미래공상과학영화에서 힌트와 아이디어를 얻는다. 왜냐하면 영화와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출발하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막막한 임계점을 넘어 곧잘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설정과 장치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영화와 소설을 통해 나타난 것들이 결국 현실로 나타나고, 우리는 그 예언적인 예지력 앞에 다시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우주 이야기 “스타트렉”은 1969년에 미국에서 처음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스타트렉의 많은 것들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타트렉은 무수한 팬을 만들어내며 현재까지 그 명성을 이어가며 영화의 다양한 버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반면 지구의 멸망 이후를 다룬 영화인 “매드맥스”는 스타트렉보다 10년 뒤인 1979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때 멜깁슨이 풋풋한 모습으로 나온다고 한다. 물론 영화는 무척 황폐하고 황량하며 잔인하고 난폭하다고 하는데, 죽기 전 꼭 봐야 할 1001편의 영화에 소개되어 있어 나름의 의미를 가진 영화로 보인다.

“선택 가능한 미래”의 저자는 우리에게 “스타트렉”이냐 아니면 “매드맥스”냐를 질문한다.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둘 다 우리의 미래에 관한 것이며, 하나는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미래 또 하나는 매우 차가우며 자기중심적인 미래이다.

미래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이며 그 발전속도에 대한 것, 발전 내용에 관한 것은 사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최근 나오는 많은 책에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절반 이상은 4차 산업 혁명이라든지, 인공지능을 다루는 다른 책들과 별 차이점이 없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미래에 대한 관심으로 몇 권의 책을 이미 읽어왔고, 관련 기사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기에 저자의 정보성 글들은 그다지 나를 유혹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름 좋은 평점을 얻게 된 것은 그러한 정보들이 그저 신기한 정보로만 역할과 기능을 하지 않고, 우리에게 인문학적인 질문거리를 던져주었다는 데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을 읽는 당신은 미래에 대하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재확인시켜준 것에 있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매우 희망적이면서 역설적인 책임까지 떠안겨 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2장부터 4장까지 소개하는 인공지능, 로봇, 유비쿼터스, 드론, 마이크로바이옴, 자율주행, 3D프린팅, 태양에너지, 인공신체 같은 이야기는 사실 이제 식상한 주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물론 각 주제의 내용을 서술함에 있어서 단순한 정보제공에 그치지 않고 저자는 끊임없이 스타트렉과 매드맥스의 관점에서 비교하며 어떤 선택의 지혜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그 모든 것을 나열하기에 앞서서 가장 먼저 1장에서 독자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는 데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건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기술을 좋은 일에 쓸 수도, 반대로 나쁜 일에 쓸 수도 있다.” (19쪽)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선택은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최신 기술의 정보들을 최대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활용하고 또 대처하는 것에 만족하려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당신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당신이 나서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대한 정신이 하나로 모여서 집단지성을 이루고 힘을 발휘할 때만 법률제정자들은 변화의 방향을 조절하는 ‘상식적 정책’을 마련한다.” (56쪽)


우리는 지난 해 위대한 정신이 하나로 모여서 집단지성의 승리를 이룬 바가 있다. 그 경험과 노하우라면, 우리의 미래 역시 그렇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집단지성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투쟁해 왔는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아갈, 그리고 우리의 자녀가 살아갈 미래라는 생각을 한다면, 우리는 더 정신을 집중해서 디스토피아가 아닌, 우리가 꿈꾸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지성을 모아야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앞질러 갈 거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지금부터 포기하고 체념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인공지능은 비록 단번에 바둑을 점령하고 은퇴해버렸지만, 현재의 로봇은 아직 빨래조차도 제대로 구분하고 개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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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의미 | 밑줄 긋기 2017-12-0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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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이 자연과 인간에 의해 사라져갔지만, 그 중에서 0.1퍼센트만이라도 살아남으면,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개혁과 재생이 가능했다. …
인간은 책을 남겼다.
그리고 책은 우리에게 희망을 남겨 주었다. (책 여행자, 김미라, 19쪽)

책은 무엇일까요?
이 시대에,
이 사회에,
그리고 나에게,
책은 어떤 존재이고,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책은 어떤 가치를 품고 있나요?

인쇄기는 1400년대에 처음 등장했는데, 당시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에게 매우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쇄기로 인해 지식이 확산되었고, 다양한 생각이 공유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쇄술"의 발달에 의한 성경책의 보급이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미국에서 인쇄공을 시작했을 때가 1700년대 초였으니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300년 가량이 지났을 때입니다. 미국 청교도들이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아메리카로 이주해 온 1600년대에서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하버드대학교는 이미 1636년에 세워졌습니다. 생각보다는 역사의 끈이 짧게 이어지는 듯합니다. 1700년대 후반에 벤저민 프랭클린이 쓴 자서전을 다시 300년이 지난 뒤에 이렇게 읽고 있으니 말입니다.

책이 없었다면 우리는 무얼 하고 있을까요?
오늘 하루는
책이 내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한 장 한 장 쉬이 넘기지 않고,
나무 한 그루 베어 만드는 종이 위에 쓰여진 활자의 의미를,
그 정신이, 그 사상이, 그 이야기가
눈을 통해 내게로 건너온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책은 화약처럼 위험한 것입니다.
사상을 퍼트리고, 나누고, 공유하니까요.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내게 무엇을 퍼트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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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1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