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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상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픔 | 일반문학 2017-05-3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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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저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현 시대를 상냥하게 바라보지만, 숨겨진 폭력으로 가슴 아플 수밖에 없는 데면데면한, 그럭저럭 살아숨쉬는 삶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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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냥한 폭력의 시대>
글쓴이 : 정이현
발행일 : 2017년1월5일(초판8쇄)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장르 : 한국소설
쪽수 : 249쪽
완독일 : 2017년 5월26일
완독권수 : 2017년 111권째

상냥함, 폭력, 시대
제목으로 책의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폭력을 표현하는 말들은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공격적이다. 힘, 테러, 완력, 강제력, 실력 따위가 관련된 어휘로 나타난다. 김원우는 “짐승의 시간”에서 짐승에게는 폭력만 난무한다고 정의하였다. 폭력은 인간성, 도덕성, 사랑, 덕, 예, 지 등을 제거한 날것의 짐승성을 떠올리게 한다.

상냥함은 형용사로 성질이 싹싹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한다. 폭력을 받쳐주는 보완적인 형용사로서는 맞지 않는다. 아니 온당치 않은 단어다. 상냥한 폭력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폭력의 정신을 위배한다.

폭력이란 세상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눈다. 폭력이 존재하는 세상은 힘을 가진 소수의 가해자와 그에 맞서지 못하고 고스란히 얻어 터지는 다수의 피해자가 있다.

그런데 온당치 않은 ‘상냥한’을 갖다 붙이면, ‘폭력’은 더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없게 된다. 상냥한 폭력은 가해자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냥한 폭력에 얻어 맞은 사람은 피해자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냥한 가해자가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냥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가족치료와 상담에서 매우 위험한 역기능적인 가족 중 하나로 경계가 느슨한 가족을 예로 든다. 부모와 자녀의 경계가 너무 느슨할 경우, 친밀감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가족의 위기,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의 위기가 닥칠 경우, 느슨한 가족은 위기에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서로의 역할과 기능이 사라지고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7개의 단편소설을 통해,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 영웅도, 정치가도, 권력자도 아닌 우리들을 통해, 지금 이 시대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 속에 경계도 없이 편만해져 있는 폭력들, 부드럽고 상냥하여 이것이 폭력인지조차 알 수 없는 비열한 폭력들을 소개한다.

각각의 단편은 단편소설답지 않게 조용하다. 어디에 폭력이 있을까 눈을 씻고 찾아도, 이게 그 폭력일까, 의심하게 만든다. 폭력은 모래속에 스며든 물과 같다. 우리는 미세먼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몸을 관통해 폐에 쌓여도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처럼, 전방위로 폭력에 상냥하게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첫 번째 작품에서 고스란히 햇살에 널어둔 빨래처럼 무방비로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5년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8시 반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짓을 반복해왔다. 야근이나 초과근무는 없으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쉰다. 물론 야근수당이나 특근수당도 없으며 월급은 적다. 30년 후를 대비해 적금을 붕립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지만, 매달 공과금을 연체할 만큼 굉장히 적지는 않다. 나는 그럭저럭 살아간다. 이런 시대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악을 모면하며 살아가는 것을 그럭저럭, 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11쪽,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 중에서)

최악을 모면하며 살아가는 그럭저럭한 삶. 우리는 이것을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주인공은 애완동물로 고양이 인형을 키웠다. 말하지 않지만 자신과 함께 저녁을 보내주는 동물. 진짜가 아닌 모형의 삶. 그 인형의 삶이 바로 우리네 삶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은 혹시 말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살아가지만 어쩌면 죽어가고 있는 그런 삶은 아닐까.

상냥한 폭력은 도미노 게임의 삶이다. 우리는 중간에 끼어있는 도미노 칩과 같다. 다시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남들보다 더빨리 골인지점으로 가서 넘어질 수도 없다.
<서랍 속의 집>에 나온 저자의 글을 마지막으로 옮겨 본다.

그 여자의 태연한 설명을 듣다 보니 이것은 커다란 도미노 게임이며, 자신들은 멋모르고 중간에 끼어 서 있는 도미노 칩이 된 것 같았다. 종내는 모두 함께, 뒷사람의 어깨에 밀려 앞사람의 어깨를 짚고 넘어질 것이다. 스르르 포개지며 쓰러질 것이다. (179쪽, 서랍 속의 집, 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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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숲으로 | 일반문학 2017-05-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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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터에서

김훈 저
해냄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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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태어났더라도 우리는 숲으로 넘쳐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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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공터에서
작가 : 김훈
출판 : 해냄
쪽수 : 355쪽
발행일 : 20176.02.03. (초판 4쇄, 초판 1쇄가 2월1일)
완독일 : 2017.05.25.
완독권수 : 2017년 110권째
느낌한마디 : 공터에서 숲으로


나는 김훈 작가의 역사소설이 참 좋았다. 그의 “남한산성”이나 “칼의 노래”는 뚝뚝 끊어내는 그의 필법에도 잘 들어맞았고,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면서 아픈 조선의 역사를, 왕이 아니라 사람의 눈으로 막막하게 그려내었다. 나는 그가 그려낸, 꺼져가는 명나라를 해바라기 하며 춤을 추는 왕의 모습에서 절망도 희망도 아닌 더 먼 곳의 초첨을 읽었다. 조선은 역사 속에서 더 먼 곳의 나라였다.

그러다 읽은 현대소설 “공무도하”는 그의 역사소설에 젖어있던 나로서는 쉽게 적응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이야기들은 산만했고 바닥에 놓인 서민들, 그러나 현대사의 중앙을 관통한 자들의 아픔 역시 초첨은 더 먼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역사소설은 그 빗나간 초점이 오히려 관망적이어서 몰입하기 좋았는데, 현대소설은 역사의 톱니바퀴와 이가 맞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 이번에 가장 최신간으로 나온 “공터에서”를 읽었다. 그러자 “공무도하”와 연결되는 어떤 초점의 축이 희미하게 보였다. “공무도하”에서 나오는 베트남전쟁의 이야기는 “공터에서” 역시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공터~를 읽으면서 조셉 콘래드의 “암흑이 핵심”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 같은 작품들이 떠올랐다. 노벨문학상과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들이다. 인류문화와 역사를 아프게 노래하는 작품들. 고발하지 않고 상처를 부여안고 혼잣말로 노래하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바다 깊숙한 곳에 품고 있는 작품들. 바깥으로 떠오르면 판도라 상자처럼 터져 나와 세상은 감당 못할 것이어서, 스스로 무거운 철공을 매달고 바다 밑 깊숙한 곳에 내려놓고 그림자만으로 이야기하는 그 이야기. 한편으로는 그래서 노벨문학상이나 맨부커상은 거뜬히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받고도 남지 않을까. 그 무게와 깊이로 따지더라도.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두 아들 마장세와 마차세의 이야기가 1910년부터 현재까지 쉼없이 이어진다. 끊어질 수 없는 이야기. 운명은 결코 서로를 배신하지 않아, 마동수의 형 마남수는 일제 강점기 때 남산 경찰서 고문실에서 일본인에게 고문을 당한 뒤 죽었고, 마차세의 형 마장수도 남산 경찰서에 들어간다.

마동수와 이도순, 마장세와 린다, 마차세와 박상희의 2세대 가족은 가족이나 가족이 아닌 듯, 형제이나 형제가 아닌 듯, 한국인이나 한국인이 아닌 듯, 피와 물이 어떻게 섞일 수 있는지, 핏물이 어떻게 세상에 활착하고 고정되고 결박되는지, 운명은 정말 삶을 구속하고 얽어매어 끝내 우리를 주저앉게 만드는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마른 모래가 입 안에서 서걱거린다.

웃음이나 유머는 이 책에서 사치에 속한다. 우리네 삶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다만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막내동생 마차세와 박상희 부부는 그 속에서 평범한 소시민으로 역사가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역사의 한복판에서 이를 악물로 일어선다. 무직에서 오토바이 택배원으로, 형 소개로 운명처럼 꼬인 군 동료 무역회사원으로, 그리고 다시 무직으로, 대신 아내 박상희가 옷가게를 열고 그렇게 삶은 이어진다. 입가에 햇살을 머금어 따뜻한 종결어미를 찍는다.

형 마장세가 베트남 전쟁에서 움직이기 힘든 동료 병사에게 내린 치명적인 결정은 올해 초 읽었던 파워 케빈스의 자전경험 전쟁소설 “노란 새”와 무척 닮았다. 공인된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터라도, 죽음은 개인의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가 한국에 돌아올 수 없었던 그 마음은 천만 번 이해하고도 남는다. 전쟁터에서 동료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따져 사병에게 그 책임을 씌우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국가가 개인에게 내리는 이율배반적인 폭력이기도 하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활착”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자주 썼다. 활착은 옮겨 심은 식물이 새 땅에 정착하는 것인데, 작가가 생각한 활착의 공간은 어디에서 어디로의 이동일까. 활착이라는 단어를 읽으면서 ‘정착’의 개념보다는 ‘고착’의 뜻이 더 강한 것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기력이 딸려서 더 길게 적지 못했다고 책 말미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가 평생 쪽지로 가슴에 간직했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다 풀려나온 것 같아 나도 후련했다. 마차세와 박상희로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펼쳐지면 좋겠다. 그들의 딸, 눈 내리는 날에 태어난 ‘누니’는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운명의 철망을 끊어내고, 자유로운 한국인으로 살아가길 기도한다.

그가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는 공터였겠지만, 하나 둘 옮겨 심은 풀과 나무들이 이제는 활착에 성공하여 푸른 초장이 넘실대는 숲이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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