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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마드인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 | 비소설 2018-03-1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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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바일 보헤미안

혼다 나오유키,요스미 다이스케 공저
세종서적 | 2018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모바일 보헤미안>

두 노마드인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


여기 부러운 두 사내가 있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디지털 유목민이다.

혼다 노유키와 요스미 다이스케.
그들은 하와이 해변에서, 뉴질랜드 숲속에서,
잉여의 삶처럼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간다.

전 세계를 누비며 강연을 하고, 책을 쓰고, 자문을 해주며 다양한 수입원을 두고 돈을 번다.
그리고, 낚시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 낚시 글을 쓰고 돈을 번다.
미식가처럼 음식을 먹고, 그 다음엔 음식 글을 쓰고 돈을 번다.
일본에 잠깐 갔다가, 하와이로 가서 자신의 일을 즐긴다.
스마트폰이 있어 모든 작업을 사무실 없이 까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할 수 있다.
그저 부럽기만 한 꿈의 일상이다.

과연 이런 생활은 그들에게만 허락된 것일까, 아니면 독자에게도 가능한 일일까.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며,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므로 누구라도 자신들처럼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들은 그 사실을 증명하고, 독자들에게 도전해 보라며, 이 책을 썼다.
책 속에 자신들이 어떤 준비를 해 왔으며,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시간을 쓰고 있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다.

그들은 모두 직장생활을 했다.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을.
그랬기에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더 거짓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단, 그들은 목표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정했고(가령 하와이에서 살자)
그 목표를 위해,
직장생활 동안 돈을 모으고,
몇 번이나 사전 답사를 하고,
구체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고,
그리고 그것이 완료될 때까지 직장생활을 견뎌냈다.
직장생활을 플러스 항목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많은 것을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모든 작업은 목표가 명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흔이 넘어서 그 결과를 완성시켰으며, 지금은 완벽해진 일상으로, 자신들의 꿈대로 그 삶을 그대로 살아내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잉여의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
절벽 위 까페에서 차를 마시며, 결제를 하거나,
어느 도시든지 도착하면 가장 좋은 까페를 찾아가 글을 쓰고 5분만에 발송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너무 늦은 때가 없다는 것을 받아 들인다면, 나도 이 책 저자처럼 지금부터라도 뭔가를 준비할 수는 있겠다. 그렇다면 하물며 젊은 청년들이여, 무엇을 더 고민하겠는가.

다만, 이 책의 교훈을 좀더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을 벌고 살아가기 위해,
내가 뭘 좋아하지?를 결정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때로 우리는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또,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에 사명감으로 일을 하기도 하는 것이기에,
삶의 가치관, 세계관 같은 것에 따라 다소 받아들이는 데 경중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두 사람이 워낙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꺼내 놓고 만든 책이라, 그런 측면에서 책은 참 유용하고 도전이 되었다. 아직 기회는 있으니까.

단, 그들과 나는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달라서,
목적을 보다 명확히 했다고 하더라도
어느 쪽으로 달려갈지는 분명히 다를 수 있겠다.
내게는 나의 달려갈 길이 있으니까.

(물론 함정은 그것이다. 나의 달려갈 길이 있는데, 나는 지금 그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저자가 말하는 쳇바퀴 도는 직장생활의 늪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면, 저자들이 말하는 것이 딱 맞는 상황인데...쉽지 않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삶이란 게, 눈을 딱 감고 번지점프처럼 몸을 내던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아 미혼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가족을 이루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이야기가 한갓 신기루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 것.)

“몸은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고,
짐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모바일 보헤미안,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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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거사 크리스티, 나쓰키 시즈코의 초기작 - 흑백의 여로 | 일반문학 2018-03-1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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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흑백의 여로

나쓰키 시즈코 저/추지나 역
엘릭시르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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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여로>


일본의 애거사 크리스티라 불린다는 일본의 여류 추리작가의 소설이다. 그녀는 영문과 재학 중이던 1960년에 쓴 추리소설로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 뒤 50년간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고,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베이징 탐정추리문예협회 번역작품상, 프랑스 모험소설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세계 추리작가회의에 몇 번이나 초청받는 등 세계 추리작가들 사이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작가로 명성이 높았고, 2006년에는 그간의 공로로 일본 미스터리문학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2016년에 사망하여 이제는 그녀의 신작을 접할 수가 없다. 1991년 미국에서 간행된 20세기 추리소설 작가 사전에, 마쓰모토 세이초, 마사코 도가와와 함께 나쓰기 시즈코의 이름이 등재되었다.

이 작품 <흑백의 여로>는 일본에서 1975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비교적 초기 작품에 속한다. 그녀는 엘러리 퀸 등 미국 고전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 작품의 특징은 대부분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이며, 기자, 변호사, 검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며 사건을 치밀하게 해결해 나간다.

그녀의 작품들은 일본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고, 그녀는 지상파 방송국 NHK 추리 퀴즈쇼의 메인 작가로 3년간 각본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그녀가 가장 바쁠 때인 드라마 방송이 한창이던 때에 출판되었다. (뒤늦게 엘렉시르에서 한국판으로 출판하게 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410쪽을 넘기는 꽤 두꺼운 책이었다. 도입부는 매우 강렬하게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애인과 함께 동반자살했지만 동반자살을 권유했던 남자는 칼에 찔려 죽어 있고, 자신을 수면제를 토하는 바람에 살아났던 것. 그녀는 손에 쥐어진 칼자루를 보며 경악했고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 것으로 생각해 진짜 범인을 경찰보다 먼저 찾아내 무죄를 증명하려고 한다. (여기까지는 책 뒷표지에 실린 내용이니 스포는 아님)


총 22장의 소제목을 가진 이야기는 회를 거듭할수록 등장인물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더 꼬이고 조금씩 더 복잡해졌다. 게다가 작가가 일본인의 이름을 성과 이름으로 분리해 각각 사용함으로써 혼란은 더욱 커졌다. (일본 안에서는 성을 부르는 것과 이름을 부르는 것이 다소 늬앙스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외국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헷갈린다. 두 명이 나오지만 각각 성과 이름을 혼용해서 부르면 독자는 책 속에서 네 명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일본 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책 중반부를 지나도록 주인공 이름이 누구인지 헷갈릴 수도 있겠다.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주인공 이름인 리카코와 상대편 여자 이름인 유키노가 마지막까지 헷갈렸다. 이름치인 사람들은 일본 소설이 쉽지 않음을 안다. 이번 소설도 약간 그런 축에 속했다. 두 사람 이름에 키옄 자가 세 개나 들어 있어서 그랬다고 말하면 좀 우스운가?

중반부에 호적 부분이 나오면서는 정말 대충대충 이야기 흐름만 인지하고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너무 많은 이름과 지명이 나오니 그것들의 연결고리를 다 파악하면서 읽기가 어려웠다. 물론 그런 것들을 다 이해하고 읽을 수 있다면 즐거움은 세 배 이상 되었을 것이다.

반전은 몇 번이나 이어졌고, 마지막 반전 또한 기가 막혔다.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새삼 느껴졌다. 그녀가 엘러리 퀸의 사전 허가를 받고 출간한 것으로 유명한 “W의 비극”도 구해 놓았다. 곧 만날 수 있으리라. 좋은 추리소설을 읽어 기분이 좋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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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14일(수) 독서컬럼-김수영의 "반항의 자유" | 밑줄 긋기 2018-03-1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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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14일(수)

반항의 자유
진정한 반항의 자유조차 없는 그들에게
마지막 부르고 갈
새날을 향한 전승(戰勝)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어라!

그것은 자유를 위한 영원한 여정이었다
나직이 부를 수도 소리 높이 부를 수도 있는 그대들만의 노래를 위하여
마지막에는 울음으로밖에 변할 수 없는
숭고한 희생이여!

나의 노래가 거치럽게 되는 것을 욕하지 마라!
지금 이 땅에는 온갖 형태의 희생이 있거니
나의 노래가 없어진들
누가 나라와 민족과 청춘과
그리고 그대들의 영령을 위하여 잊어버릴 것인가!

자유의 길을 잊어버릴 것인가!

(김수영전집 1-시. 조국에 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 후반부)

고향이 북쪽이었던 사람들, 남쪽이었던 사람들.
적과 아군이 수시로 교차하는 가운데
남아 있지도, 떠나지도 못한 사람들,
남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북한군이 되거나, 남한군이 된 사람들.
그러다 붙잡혀 반공포로가 되거나 적국포로가 된 사람들.

그러다 그냥 전쟁이 끝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자신의 의지는 하나도 없이
타인에 의해 자신이 결정된 사람들.
그럼에도 자유는 쇠고랑에 묶이고,
노래마저 부를 수 없었던 사람들.

김수영 시인은 말합니다.
포로로 붙잡혔다가, 도망쳤다가,
다시 붙잡히려는 순간
새벽에 파묻었던 총과 러시아 군복을 찾아입고
겨우 목숨을 부지했던 김수영 시인은 말합니다.

"그러나 천당이 있다면 모두 다 거기서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억울하게 넘어진 반공포로들이
다 같은 대한민국의 이북 반공포로와 거제도 반공포로들이
무궁화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진정한 자유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어라!
(조국에 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 후반부 바로 앞부분)

이쪽도 저쪽도 아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적이라는 것이, 실상 허상임을.
그래서,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물을 때
그냥 죽고 싶을 뿐이라고.
나는, 나로 족하다고.

(김수영 전집을 샀습니다.
3월 도서 구입은 끝났는데, 김수영 전집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했습니다.
한창 시 공부할 때, 김수영 시를 몽땅 출력해서 읽고 또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출력물은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
김수영 시인의 날선 시들은 활자로 남아, 소리로 남아, 이미지로 남아,
여전히 제 시의 소중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함께 딸려온 북 파우치도 예쁩니다. 이런 사진 올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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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13일(화) 독서컬럼 - 동물에 대하여 | 밑줄 긋기 2018-03-1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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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13일(화)

그랑빌은 1840년에서 1842년 사이에 <동물들의 공적, 사적 생활>이라는 연재물을 발표했다. … 이러한 장치는 가면을 쓰는 것과 같지만,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은 가면을 벗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이 동물들은 사람에 대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차용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가면이 벗겨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들 동물은 그것들이 강제 징집을 당해 온 인간의, 또는 사회적 상황이라는 것 속에서 포로가 되어 왔던 것이다. (본다는 것의 의미, 존 버거, 29쪽)


그랑빌의 동물 수용소 판화에 등장하는 개들은 결코 개가 아니다. 그것들은 개의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마치 사람처럼 감금을 당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30쪽)


그랑빌의 책들 중 1권은 다음과 같은 글로 끝맺는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친애하는 독자여. 집에 가서 당신의 우리를 잘 잠그고, 푹 자면서 즐거운 꿈을 꾸십시오. 내일이 될 때까지." (30쪽)

어디에서나 동물들은 사라지고 있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자신들 스스로의 소멸에 대한 경계표가 되고 있다. (40쪽)

강제에 의해 주류에 의해 밀려나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모든 장소들 - 빈민가, 판자촌, 감옥, 정신병원, 강제노동수용소 -은 동물원과 공통적인 어떤 점을 가지고 있다. (40쪽)

갑자기 빅리그 코미디에서 박나래 개그맨이 나오는 코너가 생각난다.
"감금이 됩니다!!"


"그랑빌 우화"를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구했다. 아직 펼쳐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 첫 챕터를 읽으면서 펼쳐보게 되었다. 존 버거 책에 나온 "개"가 그려진 삽화와 똑같은 그림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 중고책방 순례가 기대 이상의 기쁨을 준다는 것을 체험한다.


존 버거의 글을 읽으면서 불편해지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알고 있고, 그렇게 같이 생각하고 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소위 후기 산업사회라는 시기에는 동물들이 원료 취급을 받았다. 식품으로 소용되는 동물들은 대규모로 제조되는 상품처럼 가공되었다." (23쪽) 같은 문장들을 읽으면 더 그렇다. 치킨을 끔찍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존 버거는 그렇지만, 동물이 노예처럼 취급받고 있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슬쩍 비꼰다.

사람들이 우리에 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랑빌의 말을 빌려서.

집에 가서 당신의 우리를 잘 잠그라고 ~~

그리고 그는 강제적으로 주류에 의해 밀려나는 것이 동물원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며, 사유의 폭을 갑자기 확대해 버린다. 그는 빈민가, 판자촌, 감옥, 정신병원, 강제노동수용소 등을 언급했지만, 나는 거기에 남성과 여성, 가족 같은 사회의 기본틀을 이루는 것들도 곧 포함될 것이라는 어두운 예감을 가져본다. 우리 각자가 동물원의 동물이 되어 힘없이 바닥에 뒹굴게 되는 것은 아닐지. 끔찍한 상상에 머리를 흔든다.

오늘날 우리는 동물들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본다는 것의 의미, 21쪽)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점점 동물이 되어가는가 보다. 그래서 스스로의 우리에 감금이 되는 건 아닌지…… 오늘은 괜히 글이 좀 무거워졌습니다.

(삽화가 그려진 책은 모두 그랑빌 우화 책을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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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11일(일) 독서컬럼-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 밑줄 긋기 2018-03-1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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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11일(일)

오늘도 비가 내렸습니다. 나와 가르페는 잠자리 대용으로 쓰는 볏짚 속에 들어가 어둠 속에서 몸을 긁적이고 있습니다. 목덜미와 잔등에 조그마한 벌레가 기어다녀 별로 잠을 자지 못합니다. 일본의 이는 낮에는 꼼짝 않다가도 밤만 되면 우리 몸을 염치없이 기어다니는 버릇없는 놈입니다. (엔도 슈사큐의 "침묵", 59쪽)

여기서는 밤과 고독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우리들도… 언젠가는 페레이라 신부처럼 붙잡힐까?"
가르페는 다시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생각보다 나는 내 잔등에 기어다니는 이에 더 관심이 있네."
(엔도 슈사쿠의 "침묵", 61쪽)

일본에 온 천주교 선교사들도 일본의 박해정책과 배교정책 때문에 붙잡혀 고문을 받는 것만큼이나 옷에 달라 붙어 있는 이가 무서웠나 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머리에 이가 없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이가 투두둑 떨어졌습니다. (이런 사진을 올려 죄송합니다만, 이가 찾아지나요? 큰 사진은 도저히 못 올리겠습니다.)

이란 녀석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인지,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녀석들은 쉽게 옮겨 다녔기 때문에 학교에서 한 명이 이를 보유하고 있으면 순식간에 반 전체로 퍼졌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집으로 오면 날마다 옷을 벗어 이를 잡고, 머리를 빗어 이를 잡는 것이 주요 일과이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는 겨울이 되면 늘 손등이 터져 바세린을 발라야 했고, 초등학교 입학 할 때는 늘 콧물이 흘러 왼쪽 가슴에 코를 푸는 손수건으로 핀으로 꽂아 두어야 했습니다. 손등 터진 손을 친구에게 보여주는 게 참 부끄러웠는데, 그것이 청결과 위생의 결과가 아니라 가난의 상징인 듯도 했습니다.

이제 그 벌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새삼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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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10일(토) 독서컬럼-우리가 남이가 | 밑줄 긋기 2018-03-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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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10일(토)

"우리집은 그런 집 아니다. 수챗구멍에 밥티가 허옇게 쏟아지고, 돼지 구정물 통에 쌀밥 붓는 집이 아니야.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거든 여기서는 그 버릇 고쳐라. 놉한테 퍼 주고 하인, 머슴, 계집종 먹이라고 농사 짓는 거 아니다."
그제서야 효원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님. 놉이 누군가요? 놉은 남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집 농사를 지어주는 우리 손이요, 우리 발 아닌가요? 놉을 남이라고 생각하면 놉도 우리를 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놉한테 주는 밥그릇을 애끼면, 놉도 우리한테 주는 힘을 애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 아닌가요?

아무리 종이라도 신분이 낮아 천한 대접을 받을 뿐, 사지에 오장육부는 똑같이 타고났고, 그 속에 마음이 있는 것은 양반이나 무에 다르겠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야 몸이 움직여지는 법인데, 배를 곯이고 마음을 상하게 한 뒤에 무슨 정성을 바랄 수 있을까요?"
(혼불2, 79~80쪽)

까까머리 강모에게 시집온 효원은 어머니 율촌댁으로부터 주방의 권한을 물려받는다. 시험대였지만 효원은 자신들의 농사를 지어주는 하루 일꾼 놉들에게 아낌없이 밥을 해주었다. 버릇을 고치려 한 율촌댁에게 작은 며느리는 결코 수그러짐 없이 자신의 뜻을 펼친다. 하나 하나 옳은 말이다.

어제 올렸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도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 높고 높은 신분제도가 있었다. 혼불의 배경은 일제강점기로 1919년 삼일절도 지나갔고 막바지에 이른 일본이 창씨개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때다.

지금의 대한민국 역시 크게 바뀌지 않았다.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신분은 다양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다. 성씨를 보면 왕족 아닌 사람들이 없다. 평등을 원하지만, 나만은 높은 곳에 있고 싶은 욕망. 그리고 그 권력을 나쁜 쪽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위대함은 강함에 있지 않고
그 힘을 바르게 쓰는 데 있다.

훌륭한 사람은
그 힘으로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월간 채널예스 2월호, 15쪽 - 영화 원더의 마지막 부분 대사)

오늘 하루.
혹시 내게 주어진 자그마한 힘이 있다면,
오늘은 그 힘을 바르게 써보자.

내 가족에게 용기를 주고,
이웃에게 희망을 주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주자.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자.

그렇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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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9일(금) 독서컬럼-노예는 반댈세 | 밑줄 긋기 2018-03-1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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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9일(금)

법이
펄떡거리는 심장과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흑인들을
주인에게 소속된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한,
아무리 잘 관리되는 노예제도라 해도
아름답고 바람직한 제도가 될 수 없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1, 27쪽)

아주 인도적인 한 법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을 최악으로 학대하는 방법은
그를 목매달아 죽이는 것이다."

아니다.
그보다 더 학대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노예제도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1, 37쪽)

우리가 진정 인간이라면
우리는 누구도
노예로 삼아서도 안 되고.
우리는 누구에게도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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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8일(목) 독서컬럼-살아간다는 건 | 밑줄 긋기 2018-03-0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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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8일(목)

"우리가 막 나오려고 할 때 전화가 오지 않겠어요. 한 청년이 자살했어요. 군대에 갔다 온 청년이라는 데요."
아! 내 파티가 한창인데 죽은 사람 얘기는 왜 또 하는 거야. 이때 클라리사는 생각했다. (댈러웨이 부인, 266쪽)

전에 한번 클라리사는 서펜타인 연못에 1실링짜리 은전 한 닢을 내던진 일이 있었다. 이 밖에는 무엇을 내던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청년은 몸을 내던져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잖은가. (267쪽)

댈러웨이 부인은~ 으로 시작하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클라리사"라는 자기의 이름으로 끝을 맺는다.

연못에 1실링짜리 은전 하나 내던진 경험이 있는 그녀는, 군대에 갔다 온 이후 정신병에 걸려 결국 자살하고만 청년을 생각하며 자신과 비교해본다. 모든 것을 던져버린 청년. 그 청년은 중요한 것을 지켰고 도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저자는 자살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이고 정신병적인 아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자 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파티는 계속 열렸고,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지극히 개인 중심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타인의 아픔엔 관대하고 내 아픔엔 지독스러워 한다.

오늘 하루는 옆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반응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를 조금 더 멀리 보내고, 그 사람에게 1센티미터만 더 가까이 가보자구요. 그러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거라고 믿습니다. 봄이 조금 더 빨리 올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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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7일(수) 독서컬럼-자신에겐 관대하지 | 밑줄 긋기 2018-03-0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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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7일(수)

우리는 보통,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실제 모습보다 더 온순하다고 생각하고
잠재적인 악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동기가 있다고
재빠르게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정된 전쟁, 100쪽)

우리는 대체로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자기의 생각을 잘 아니까,
자신의 의도는 선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상대의 의도에 대해서는
언제나 색안경을 끼고 바라봅니다.

상대가 선의의 도움을 주려고 해도,
혹시 그것에 어떤 함정이 있을까 봐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합니다.

일단 상대의 행동에 대해서
오늘은 무조건
선한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세상이 조금 달라지겠죠?
전쟁도 조금 줄어들겠죠?

나만 당하면 안 돼. 하는 생각을 하고 의심을 하면
필연적으로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이 아니라, 지혜를 모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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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시장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 비소설 2018-03-0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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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주 오래된 서점

가쿠타 미쓰요,오카자키 다케시 공저/이지수 역
문학동네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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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서점>

일본에 유서 깊은 헌책방이 많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이제 헌책방보다는 중고서점이 더 많아지고 있다.
헌책방과 중고서점의 차이는 명백하다.

예전에는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이제 중고서점은 알라딘 중고서점이나 예스24 중고서점처럼 대형서점이 지역마다 세우는 깔끔한 현대식 책방을 이르는 말로 변했다. 취급하는 책들도 대부분 깨끗한 책들 중심, 유명한 책들 중심으로 다시 읽는 책으로써의 기능을 위한 서점이다.

이에 반해 헌책방이라고 하면 조금은 더 시대가 앞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중고서점에서 취급하는 책들을 거의 다 취급한다. 그래서 그런 책을 찾는 사람들 때문에 운영이 되기도 한다. 솔직히 중고서점에서는 2000년대 이전 책은 취급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헌책방은 1990년대 책은 물론이고 1970년대,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로로 쓰인 책들도 많고, 심지어는 고서점처럼 아주아주 오래된 책들을 취급하기도 한다.

한국에는 미국이나 일본 또는 유럽처럼, 헌책 시장이 없다. 헌책방이 있긴 하지만, 헌책을 사고 팔고 수집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말이다. 가령 절판된 책이나 초판본, 사인본 같은 책들이 별도의 가치를 가지고 그 가치를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지며 찾아다니는 시장이 없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서점>은 노란 책 표지에 헌 책이 가득 쌓여 있고, 고양이가 한 마리 앉아 있다. 그래, 이 느낌이야. 딱 그 느낌이 온다.


게다가 뒷표지에는 한국의 유명한 소설가인 “김연수”가 이 책을 들고 일본에 가고 싶다,고 구구절절 적어 놓아 뭔가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에 덥석 붙잡은 책이었다.


한국에 얼마 전 소개된 책 <장서의 괴로움>의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가 1년 동안 일본 헌책방을 순례하며 집필한 이 책은 딱 일본스러웠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 식의 기획을 할 것 같지 않은, 솔직히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이런 식으로 책을 냈다면 결코 책이 팔릴 것 같지 않은(그러나 이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실제 판매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너무 개인적이며 사설이 많은, 아니 어쩌면 사설 중심의 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책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자 사실은 한숨이 조금 나왔다. 내가 기대한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책이었다. 다만 앞부분에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처럼, 한국에는 어쨌든 이런 헌책방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 일본에는 아직 이런 책방이 계속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샘이 났다. 책을 다 읽고 나자 맨 뒤에 “헌책방 일람”이라는 부록을 붙여 놨는데, 그 사이에 벌써 폐점해서 사라진 서점이 꽤 있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네 군데나 폐점되었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 책을 들고 일본에 가서 헌책방을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주려는 마음으로 정보를 공개한 듯 보였다.

또 다른 일본 작가가 헌책방 순례를 하고 내부를 스케치하여 책으로 펴낸 걸 본 적이 있는데, 오히려 그 책이 훨씬 알찼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에 이 많은 헌책방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눅이 들고 부러웠던 책이었다. 한국의 헌책방은 부활할 수 있을까?

"어느 서점이든 그 서점만의 온도가 있어서, 그 온도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는 즐거움보다 안도감쪽이 더 컸다. 책은 소비되고, 잊히고, 사라지는 무기물이 아닌 체온이 있는 생명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어서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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