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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축제가 된다면 | 책 이야기 2020-10-2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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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축제가 된다면

김상근 저/김도근 사진
시공사 | 2020년 10월


 

신청 기간 : 1028일 까지

모집 인원 : 5

발표 : 1029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 신청 전 도서를 받아 보실  기본주소를 꼭 확인해주세요.


인문학자 김상근 교수와 함께 걷는

감각과 열정의 도시, 베네치아!

지금 우리는 왜 베네치아로 향해야 하는가?


베네치아.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푸른 하늘과 더 푸른 바다가 떠오르고, 곤돌라에서 노 젓는 사공의 아리아가 귓가에 맴도는 도시. 카사노바의 고향이자 셰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의 배경이 되었으며 화가 벨리니와 티치아노가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떠난 도시다. 베네치아에서는 물과 뭍이 만나며, 바다와 하늘이 만나고, 동양 문명과 서양 문명이 만나 조화를 이룬다.

 

 

* 서평단 여러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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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나는 춤추는 중 | 시 이야기 2020-10-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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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습관 캠페인 참여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바람의 혀가 투명한 빛 속에

산다, 산다, 산다, 할 때

 

나 혼자 노는 날

나의 머리칼과 숨이

온 담장을 허물면서 세계에 다가왔다

 

나는 춤추는 중

얼굴을 어느 낯선 들판의 어깨에 기대고

낯선 별에 유괴당한 것처럼

<허수경의 나는 춤추는 중전문>

 

이란 인간의 육체를 움직여 어떤 동작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일컫는다.

대개는 음악에 맞춰 흥겨운 몸짓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딱히 예술적으로 뛰어난 기교가 수반되지 않더라도, 그저 지신의 감정에 따라 자유롭게 추는 이른바 막춤도 당사자에게는 흥겹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가 추는 춤은 그러한 즐거움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는 표현을 통해서, 화자의 춤이 어쩌면 슬픔의 표현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맑고 투명한 날, 화자에게 살아야한다는 절실한 자각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화자는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던 것일까?

그리하여 나 혼자 노는 날 / 나의 머리칼과 숨이 / 온 담장을 허물면서 세계에 다가온 결과가 바로 화자의 춤이었을 것이다.

드디어 화자는 나는 춤추는 중이라고 밝히지만, 그것은 얼굴을 어느 낯선 들판의 어깨에 걸치고 / 낯선 별에 유괴당한 것처럼추는 것이라고 묘사된다.

마치 유괴당한 사람이라면, 그가 추는 춤은 결코 흥겨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춤추는 행위마저 외로움이 짙게 드러나는 시인의 심정을 담고 있다고 이해된다.(차니)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허수경 저
문학과지성사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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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 시 창작의 원동력! | 여중재리뷰(고전문학/한국고전) 2020-10-2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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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마(詩魔)

김풍기 저
아침이슬 | 200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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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생활하면서 까닭을 알 수 없지만, 일이 번번이 그르치는 경우를 당하면 ‘마(魔)가 끼었다’고 표현한다. 이 경우 마(魔)는 귀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을 하거나, 자신의 운명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또는 적극적으로 그 원인을 찾고 풀기 위해, 점을 치거나 굿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에 대처하기 위한 이 모든 행위 속에는, ‘마(魔)’란 우리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물론 지극히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러한 인식 자체가 자신의 나약함을 변명하기 위한 합리화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아무런 까닭도 없이 좋지 않은 일이 한 사람에게 계속해서 일어난다거나,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많이 벌어지고 있다. 정상적이지 못한 일이 한 사람에게 계속해서 일어날 때, 그것을 자신의 운명 탓으로 여기고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든지 그런 경우 자신의 탓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힘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하소연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굿과 같은 또 다른 힘을 빌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좋은 일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닥칠 경우에도 그 이유를 ‘하늘의 덕택’이나 ‘조상의 도움’ 때문으로 돌리기도 한다. 결국 여하한 경우든지 대체로 절대자나 귀신의 덕택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상 ‘마(魔)’나 ‘귀신’은 인간들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하기 위한 ‘합리화의 장치’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한 일을 당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 상대는 자신이 믿든 그렇지 않든 간에 더 이상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계속해서 발생하는 상서롭지 못한 일들이 당연히 자신에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는다면, 그 이후 그 사람의 삶은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귀신은 대체로 두 가지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논의된다. 주로 음양론(陰陽論)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데, 양(陽)의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를 신(神)이라 한다. 이에 반해 음(陰)의 성질을 띠고 있고,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존재는 귀(鬼)라고 지칭한다. 간략하게 표현한다면 ‘좋은 귀신’과 ‘나쁜 귀신’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가 귀신이라고 지칭하는 존재는 이 둘을 결합한 성질의 것이다. 흔히 ‘마귀’라는 현대어로 번역되는 마(魔)는 실상 후자의 성격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마(魔)는 귀(鬼)와는 또한 엄격하게 구별된다.

 

   특히 이 책의 주제로, ‘시의 귀신’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시마(詩魔)’는 좀처럼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똑같은 ‘시의 귀신’이라고 하더라도 ‘외부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지배당하는 세계가 시귀(詩鬼)의 세계라면, 시인 내부에서 발현되는 신비스러운 힘은 시마(詩魔)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시마’란 시인에게 시를 쓰도록 만드는 알 수 없는 힘, 즉 창작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여기에 왜 ‘시마’라는 흉측한(?) 이름을 부여했던 것일까?

 

   주지하다시피 동아시아의 중세는 엄격한 신분질서에 의해서 유지되는 사회였다. 그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성원들에게 제도적?이념적으로 고착화된 일정한 틀을 부과한다. 그러한 제도적 틀을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사회의 중심 질서에 편입해 들어갈 수 있지만, 그것을 거부하면 어김없이 주류의 질서에서 내쫓기게 된다. 중세에 지식인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내세운 이념을 받아들이고, 온몸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인 이념으로 유학(儒學)이 통용되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후기부터는 주희(주자)에 의해서 체계화된 성리학(性理學)이 굳건한 이념의 토대로 여겨졌다. 때문에 주희의 학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를 제출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끔찍한 멍에를 감수해야만 하기도 했다.

 

   중세의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문학적 상상력이란 때로는 억제해야만 하는 대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과거로 상징되는 관료선발 방식은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일정한 문학적 관습을 강요하는 제도이기도 했다.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일생을 걸고 분투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기성의 관습에 매달려야만 했고, 그 과정을 통과했더라도 거대한 주류의 이념적 질서에 맞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다. 대체로 기성의 질서 속에 편입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개성을 추구한 존재들은, 사회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외인(方外人)’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문학에서는 때로 이들 ‘방외인’이 존재가 더욱 비중있게 다루어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시마’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고려 후기의 문인인 이규보의 ‘구시마문(驅詩魔文)’이나, 조선 중기에 활약했던 최연의 ‘축시마(逐詩魔)’도 당시의 규범적인 문장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그 문장의 이면에는 문인의 창조적 사유를 억누르는 당대의 규범적 질서에 대해서 반어적인 수법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시마를 받아들이는 이규보의 태도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게 보면 시마란 창작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창작에 매달리도록 하는 근원적인 힘을 지칭하는 말’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을 진지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주장한다면, 당대의 질서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규보는 ‘시마를 쫓는 글’의 형식을 통해서 자신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의적인 수법으로 표현했고, 어쩌면 이규보와 동일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을 후대의 문인들은 그 글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올바르게 이해했을 것이다. 결국 기존의 질서에 억눌린 창작에의 욕구를 자신의 이성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인 시마(詩魔)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마는 기성의 질서에 맞서는 ‘소수자들의 문학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규보는 중세적 질서 속에서 중세를 벗어난 사유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책은 <시마>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단순히 시마에 국한된 논의에 머물지 않는다. 다양한 자료들을 근거로 기존의 질서에 매몰되지 않는 문학의 힘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문학적 창작력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작업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주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는 시마에서 촉발된 논의의 끈을 문학적 상상력의 문제와 연결시켜, 지속적으로 문학비평의 중요한 과제를 성찰하고 있다. 즉 이 책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은 문인을 억누르는 질서와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시인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시마는 중세적 질서에서 보자면 ‘저주받은 시인들의 벗’이 되는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 이전의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논의의 폭을 현재에도 유효한 문제로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저자의 서술 방식도 돋보인다. 이러한 저자의 자세가 자칫 지루하고 따분하게 여겨질지도 모를 주제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힘이기도 할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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