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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앨리스가 심청이는 아니니까 | 도서일기 2011-01-2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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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저/존 테니얼 그림/김경미 역
비룡소 | 200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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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지금 읽는다는 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를 성인이 된 다음 다시 접하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호기심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활자가 커서 그런지 비교적 빠르게 읽었는데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그 궁금증에 대한 나름의 결론은 이렇게 내려졌다. 순수한 눈으로 앨리스를 따라갔던 그때의 독서보다 쪼그라든 상상력으로 활자에 쫓기다시피 했던 오늘의 독서가 더 힘들고 어려웠다고. 때문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재탄생된 그간의 영화들이 그토록 당기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영국과 같은 유럽권인 프랑스에서도 재밌게 읽히기까지 열 번 이상의 번역 과정을 거쳤다고 하니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는 제대로 옮기기가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읽은 것이 저자가 쓴 것과 같은 내용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그만큼 영국 사회를 비꼬기 위해 만들어 낸 인물들과 잘 알기 어려운 소설 속 여러 배경과 소재들이 참 낯설게 느껴진다. 우스꽝스러운 시들은 그 맥이 전혀 파악되지 않아 재차 읽어도 스토리와 어우러지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루이스 캐럴이 워낙 말장난과도 같은 언어유희를 작품 속에 많이 포함시켰는데, 그나마 이것을 적절하게 우리식으로 잘 살린 것 같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으로는 사실 그리 적합한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어린이 문학의 위대한 고전이 된 것은 아마도 앨리스의 여정과 환상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친구가 이상한 나라를 정신없이 쏘다니다 잠에서 깰 때, 나는 다른 언어와 낯선 문화가 주는 이질감에 떠돌다 현실로 돌아왔다(는 게 내 솔직한 한줄평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어느 못난 독자가 앨리스의 여정에 발맞출 수 없을 만큼 순수함을 잃고 낯선 문화에 좀처럼 발을 담그지 못해 허탈해하고 있다고 여기는 게 옳다. 어쨌든 앨리스가 심청이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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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일탈을 훔쳐보는 재미 | 도서일기 2011-01-2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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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삼. 곱하기. 십 (3×10)

장현웅,장희엽,성세인 등저
소모(somo)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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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1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개성이 넘치는 만큼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이 하는 일이 저마다 다르다 해도,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작곡가, 에디터, PD, 라디오작가, 포토그래퍼, 플로리스트, 금송공예가 등 프리랜서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열 명의 저자는 오늘도 여느 사람들처럼 바쁘게 살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질문, 당신에게 3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무엇을 해도 좋으니까 본인에게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하세요. 이 책은 그렇게 3(일)×10(명), 총 30일을 은밀하게 훔쳐본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얼마나 각양각색인지, 10명 모두 오만 가지 생각 끝에 알차게 보낼 방법을 나름대로 정하고 열심히 3일을 즐기기 시작한다. 만날 일만 하는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생각해서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안하겠다며 무위도식을 선언한 이도 있고, 바빠서 몇몇 부탁 받았던 일들을 그냥 넘겨버렸던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 달랑 주소 하나 들고 무작정 사람을 찾아가는 이도 있고, 요리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빚으며 에너지를 불어넣는 이도 있고, 태국여행에서 발품 발아 가져온 다양한 물건들을 삼일장 격으로 되팔아 본전 이상을 거두며 기뻐하는 이도 있고, 동물원에 관한 백과사전을 뒤지고 동물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고 동물원에 가서 숨쉬는 이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3일을 기록한 글들을 건네받고 한편의 소설을 쓰는 스토리텔러도 있다.

 

나라면 무엇을 할까?, 를 생각하는 것으로 읽기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열명의 이야기를 따라 이곳도 가보고 저곳도 가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그들만큼 근사한 삶을 살지 않는 탓인지 평범한 일상을 듣는 일도 지루하지가 않다. 그들은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직업을 가졌지만, 산다는 게 누구나 그렇듯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보통의 삶에서 3일이라는 시간은 역시나 소중해 보인다. 살면서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평소에 꿈만 꿨던 일들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옴니버스 에세이 <삼.곱하기.십>은 그런 의미에서 숨가쁘게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산객에게 잠깐 자리를 내어주는 나무가 된다. 내비게이션 없이 차를 모는 여행과 휴대폰 전원을 끄고 보내는 일요일의 교집합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나도 용기내지 못할 이유가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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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번뇌의 해방 | 도서일기 2011-01-1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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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2010 선정 도서 24권 리뷰대회 참여

[도서]생각 버리기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저/유윤한 역
21세기북스 | 201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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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잠시라도 생각을 멈출 수 없는 동물이라고 한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꿈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펼치니까 말이다. “나는 꿈을 꾸지 않아”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뿐, 엄청난 생각을 무의식 속에서 진행시킨다.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뇌는 그래서 쉴 틈이 없다. 쉬지 못하고 늘 일만 하면 피곤해지는 육체와 마찬가지로 끓어넘치는 생각을 조절할 수 없다면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과부하가 그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정도로만 끝난다면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 동시에 일을 해야하고 타인을 상대해야만 탓에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게 문제다.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심지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내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오해를 사고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서 생각이란 ‘내가 꼭 어떤 생각을 해야지’ 하고 시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굳어진 생각, 즉 하나의 고정된 관념도 해당된다.

 

비교적 젊은 일본의 주지스님, 코이케 류스노케는 이런 생각들의 원인을 불교의 사상에 뿌리를 놓고 판단할 수가 있으며 불교의 가르침과 자신이 터특한 노하우를 통해서 생각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현재 국내에서도 책의 이름 덕분인지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 그 가르침이라는 것이 특별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허나 오래도록 머릿 속에 자리잡은 번뇌를 그저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극복하려는 자세는 참 본받을만 하다.

 

특히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내용 두가지가 나의 뇌를 쉬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나는, 우리가 왜 생각을 많이 하는지 그리고 생각에 집착하는 것인지 그 원인을 분석한 대목에 있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감각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거리를 걸어가면서 그것들이 주는 오감의 느낌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어제 무슨 일을 어떻게 했다, 누가 내게 어떤 이야기를 했다, 와 같은 생각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것. 어떤 일이 벌어졌을 당시에 그것에 관한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될 사건들을 생각하는 버릇은 오감에 무던한 결과라는 말이 무척 와닿았다.

 

다른 하나는, 만(慢)의 번뇌 때문에 쓸데없는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충고한 부분이다. 만(慢)이란 자신이 좋게 평가받고 싶다고 걱정하며 조바심 내는, 프라이드에 집착하는 탐욕으로써 불교의 한 개념이다. 예를 들면, 아직 시일이 남은 어떤 일을 여유있게 하려는 참인데 어느날 갑자기 상사가 “그 프로젝트, 다 해결했어?” 라고 물었다 치자. 그때 우리는 “기일이 앞당겨졌나요? 그렇다면 지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고 “아직 여유가 있어서 안한건데”, “회의 결과에 따라 내용이 조금 달라질 것 같아서 하지 않았는데”, “안 그래도 할참이었는데”, “말씀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텐데” 와 같은 불필요한 말을 앞에 붙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대가 어떤 의미로 말을 했든, ‘일부러 시켜야만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나’, ‘나 참 열심히 하는데’ 라고 생각을 하면서 ‘급하게 일을 처리해서 결과가 나쁘면 다 당신 탓이야’ 라는 부정적인 늬앙스를 순식간에 떠올린다면 그것이 만의 번뇌에 의한 결과이다. 우리가 그렇게 만의 번뇌에 조종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진정한 감사와 사죄를 하기가 어렵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욕구, 자신의 주가를 깎아내리고 싶지 않은 자기이미지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만 원만한 인간관계도 형성할 수 있고 불필요한 생각에 의한 고통도 줄일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무릎을 쳤다.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무의미한 번뇌의 해방을 꿈꾸며 스님의 말씀을 따라서 의도적으로 마음이 아니라 오감에 집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요며칠 부단히 애를 써봤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또 하나의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부끄러운 낯빛으로 여기 이렇게 고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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