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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린] - 가족이라는 끈을 길게 붙들며 우리는 매일매일 | 영화일기 2012-11-2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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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마린

멜라니 로랑
프랑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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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가족이라는 끈을 길게 붙들며 우리는 매일매일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했다. 어느 관계에서나 들어맞는 말이지만, 특별히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욱 그러하다. 곁에 머물 때는 별로 티가 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멀리 떨어지면 그리워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치받을 때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혼자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아도 생각보다 가족의 그늘은 깊고 짙다. 몇 년 전부터 직접 각본을 쓰면서 조금씩 연출의 꿈을 키워온, 지금까지는 연기자로 친숙했던 멜라니 로랑은 이 같은 가족의 부재를 이야기 삼아 장편 데뷔작을 만들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카메라를 드는 건 물론이요, 여기서는 연기까지 겸한다. 배우를 두고 온갖 실험을 벌이는 감독의 입장과 거의 같은 모양새로 동생 마린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는 언니 리사의 시선은 가족 구성원이 다양하게 얽히고설키는 이야기 속에서도 단연 뼈대를 이룬다. 제목은 '마린'이지만, 관객은 마린을 바라보는 '리사'에 주목하게 된다.


마린은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리사네 가족에 입양되었는데 리사가 동생을 원했던 터라 각별히 친한 자매가 된다.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는 리사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동생과 계속 같이 사는 걸로 봐서는 서로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마린에게 알렉스라는 남자가 나타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사랑을 믿는 동생과 사랑을 믿지 않는 언니는 외따로 사는 엄마에게서 각기 다른 자유를 느낀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놓고 그들은 마찰을 빚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린이 불의를 사고를 당한다. 언니에게도 연인에게도 조카에게도 소중한 존재였던 그녀가 갑자기 깊은 잠에 빠지자 모두 웃음을 잃는다. 소중한 것의 가치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에라야 비로소 도드라지는 것일까? 특히 리사는 그동안 자신을 너무 마음 깊은 곳에 가둔 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고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던 알렉스의 진심을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리사뿐만 아니라 마린 곁에 있었던 엄마, 연인, 조카 모두에게 그녀를 추억하는 시간을 비슷하게 할애한다. 그리하여 소중한 사람의 부재로 인한 슬픔을 가족 전체로 확장시킨다. 마지막에 등장인물마다 작별을 고하는 시점숏을 나란히 배열한 데서 이야기의 방향을 분명히 짚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결국 입양이라는 소재는 마린과 리사를 포함해 그들 모두를 가족 관계로 잇는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인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만 거기서 가족이라는 끈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을 내비친다. 따라서 입양아를 뜻하는 원제 ‘Les adoptes’를 ‘마린’으로 바꾼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전반적으로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리듬이 울퉁불퉁한 편인데, 이는 멋진 그림을 많이 넣고 싶은 욕심에 지나치게 자주 점프컷을 사용한 까닭이다. 그게 개성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지만, 감각적인 화면과 배우를 예쁘게 만질 줄 아는 능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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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내 마음에 들어온 책 1, 2, 3 | 비망록 2012-11-2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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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저
천년의상상 | 2012년 04월

 

저자가 김수영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이유가 까?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설명되어 있는 셈이지만, 나는 사람들이 갈수록 시를 읽지 않는다는 데 주목하고 싶다. 이는 제2의 김수영이 등장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알다시피 오늘날 시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해마다 신춘문예를 통해서 시인은 계속 탄생하고 있고, 달마다 따끈따끈시집이 서점에 새롭게 진열되고 있다. 그러나 시는 널리 읽히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은 점점 시()에서 시작(詩作)을 떠올리지 못한다. 시는 그저 시를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의 전유물이라 여긴다. 김수영은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되기를 바랐다. 따라서 그를 인문학의 자긍심으로 추앙하는 저자의 고백은 많은 이들에게 시의 가치를 일깨우는 일이 될 것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저/송태욱 역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05월

 

 

인간은 결코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인간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종말이 두려운 것은 이 세계가 무너지고 다른 세계가 올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죽음을 전후로 무언가가 바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죽음은 언제나 미확정인 채로 끝이 난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나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 단적으로 모리스 블랑쇼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죽을 줄을 모른다." 제아무리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도 그 결말을 직접 지켜볼 방도는 없다. 오랜 세월 예술이 그토록 죽음을 무수히 모사한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죽음에 안도하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신에 의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외친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저
동녘 | 2012년 08월

 

 

토마스 하디가 말한 대로 “인간의 운명은 바로 그의 성격”이다. 고로 자신의 삶을 배우로서만 살 것인지 감독으로서도 살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개인에 달려 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배우와 감독을 오가는 삶이란 비유하자면 정원사의 그것과 닮았다. 정원사는 제 공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꾼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정원사의 태도에서 사냥꾼의 전략으로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지구 저편에 있는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보다 더 가까이 존재하는 게 가능한 시대에는 누구나 사냥꾼이 되기를 바라는 유혹에 빠지기 쉽고, 또 그렇게 되는 편이 경우에 따라서 더 큰 즐거움을 얻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냥꾼은 영원히 쫓기는 신세라는 걸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띄운 이 편지 다발은 사냥꾼의 쾌락이 정원사의 고독보다 진정 더 아름다운 것인지 당신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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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젤(3D)] - 사랑의 정점을 향한 죽음의 몸짓 | 영화일기 2012-11-17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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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지젤 3D

발레리 게르기예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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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3D)

 

사랑의 정점을 향한 죽음의 몸짓

 

 

춤을 좋아하는 아리따운 처녀 지젤에게 농민으로 변장한 알브레히트 백작이 찾아온다. 로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백작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그녀는 서서히 달콤한 사랑에 빠진다. 운명을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에 아랑곳없이 그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백작의 약혼녀 마틸다 공주가 지젤이 사는 마을에 들른다. 이때 지젤을 짝사랑하던 남자가 급작스럽게 알브레히트의 정체를 밝히면서 그녀는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결국 비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눈을 감는다. 여기까지만 정리하면 이건 뭐 한마디로 ‘이 죽일 놈의 사랑’이다. 사랑의 서사에서 이 같은 이야기는 고전이나 매한가지다.


자, 그런데 지금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안의 세계를 벗어난 지젤은 독일 전설에 등장하는 윌리(가슴 아픈 사랑으로 결혼 전에 죽은 아가씨 영혼)들을 만난다. 그 한 맺힌 정령들은 남자를 저주하며 묘지에서 춤을 추는데, 지젤 또한 그 무리에 속하게 된다. 그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알브레히트가 무덤을 찾아오면서 지젤은 그에게 어쩔 수 없이 죽음의 유혹을 시작한다. 그러나 지젤은 사랑의 힘으로 알브레히트를 구원하고 영원한 안녕을 고한다. 이렇게 ‘지젤’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별개의 이야기로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 공연을 보고 나면 의외로 구성의 묘가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3D 콘텐츠로서의 매력을 근사하게 뽐내는 수준은 아니지만,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을 스크린으로 만나는 즐거움이 무엇보다 크다. 스크린으로 옮기기 위해서 그와 어울리는 작업을 따로 더 하거나 기존의 공연에 연출자의 개성을 보태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무용수들의 표정과 동작을 충실히 담아내는 쪽으로 신경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말 그대로 공연 실황이고, 이에 대한 감상은 ‘지젤’이 지닌 매력 유무로 수렴되는 측면이 있다. 이는 <피나>의 경우와 다른 점이다. 좌우간 죽음을 뛰어넘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춤의 선율로 만끽하는 시간은 황홀했다. 특히 무덤에 잠든 지젤이 죽음의 전령이 되어 달빛 아래 매혹적인 춤사위로 밤을 수놓을 때 손끝이 찌릿찌릿. 멜랑콜리아의 전율 같은 게 뭉근하게 깔린다. 거기서 2부, 특히 춤추는 장면을 위해 1부가 존재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 사랑의 정점을 향한 죽음의 몸짓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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