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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티스트] - 잃어버린 무성영화의 매력을 찾아서 | 영화일기 2012-02-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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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티스트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미국, 프랑스 | 201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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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되던 1920년대의 극장가를 상상하는 건 거기에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시기를 배경으로 만든 여러 영화에서 묘사되었던 당시의 분위기를 익히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이 영화의 기본적인 줄거리만 듣고도 '아티스트'라는 제목이 무엇을 겨냥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견 영화는 그러한 예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무성영화 스타 조지 발렌틴과 유성영화 스타 페피 밀러의 엇갈린 운명과 위대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다분히 전형적이고,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은 유명한 작품들의 오마주로써 친근하다. 그러나 영화는 무성의 형식을 통해 색다른 감흥을 안긴다. 어쩌면 그 형식이 낳는 의미에 집중하고자 의도적으로 눈에 익은 이야기 위주로 그때 그 시절을 재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간 영화가 무성의 스크린을 다시 불러온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야만 한다. 현시대에 무성영화의 향수를 환기하는 작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기술의 발전으로 그때와는 또 다른 전기를 맞은 오늘날의 영화계에서 이 작품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재미 이상의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의외로 무성영화의 틀을 보란 듯이 깨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는 당시의 예술가들이 느꼈음 직한 복잡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영화를 이루는 요소를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영화의 영화를 맛보는 즐거움이다. 가령, 조지가 느끼는 유성영화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영화가 잠시간 무성의 형식을 벗어나 그의 주변에 널린 사물들의 소리를 내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조지의 심경을 구체적으로 느끼거나 그 상황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것을 넘어 소리를 가진 영화 혹은 영화가 내는 소리에 대한 사고의 발화점으로 작용한다. 사물의 색채가 그 생생한 윤곽만큼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로 흑백영화의 가치가 여전히 드높은 데 비하면 아직까지 무성영화의 그것은 다소 초라한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성의 효과를 매력적으로 활용하는 이 영화의 내용과 형식은 무성영화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품은 흔적이 역력하다.


 

영화가 무성의 형식을 취한 목적은 시대적 상황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화의 소리를 경험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무성영화를 스크린에서 접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새로운 경험이 된다. 그 경험이란 이런 것이다. 인물이 뭐라고 말하는지 스크린 바깥에서 알 길이 없을 때 우리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감지되는 분위기를 통해 극을 스스로 전개한다. 그 전개가 맞건 틀리건 관객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환상은 영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나 다름없다. 아마도 이것이 무성영화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청각의 입장에서는 결핍이지만 시각의 입장에서는 결핍이 아니다. 도리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당시에 무성영화만의 어떤 정조를 높게 평가했던 이들은 소리를 입힌 스크린을 끝내 외면하거나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조지도 그와 사정이 다르지 않다. 고맙게도 페피가 그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지만, 현실의 그림자는 무성영화의 몰락과 그의 몰락을 가르지 않는다. 고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 그의 미래를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조지를 향한 페피의 따뜻한 손길이 한 인간의 연민과 사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큰 목소리로 "컷"을 외치는 극중 감독의 마지막 대사는 스크린 안팎으로 울림을 갖는다.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그들의 숙고가 종을 울리는 수준은 아니지만, 무성과 유성의 형식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이 작품의 내적인 측면보다는 외적인 측면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수의 고전영화를 재료로 삼아 무성의 형식으로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21세기형 무성영화'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데서 드러나듯 기본적으로 박수를 받을 만한 구석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 재료가 대부분 할리우드의 것이라는 점과 감독 및 배우가 모두 자국의 문화에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이라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미국의 다소 낯간지러운 찬사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가부간 지금 여기에 도착한 이 아름다운 무성영화는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를 여러 경로로 매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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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형용사가 메우는 풍경의 침묵 | 영화일기 2012-02-1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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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토마스 알프레드슨
영국 | 201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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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다.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알고 가는 것이 외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처럼 장면과 장면 속에 꼭꼭 숨겨 놓은 비밀을 파헤치는 데 무재무능한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다. 어째 전문가들도 복잡한 줄거리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두 번 보면 더 좋다는 어떤 평자의 말을 한 번으로는 부족한 데가 있다는 뜻으로 알아들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대사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걸 꼬박 읽어야 한다거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떠올리기 어렵다면 다소 어지러울 것이다. 각색하기 쉬운 작품이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 국내 평단의 평점이 낮은 것은 그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지금 영화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토마스 알프레드슨은 퍼즐 조각을 완성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여느 첩보물처럼 의문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기본적으로 재미를 안기는 것은 맞지만, 누가 스파이인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 만큼 이 영화에서 사건의 비밀은 그리 중요한 성질의 것이 못된다.

 

 

영화는 영국과 러시아에서 이중간첩으로 활약해 20세기 최고의 스파이로 불린 어느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쓴 존 르 카레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첩보물은 대개 공공의 적을 내세워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한 긴장을 자아내는 데 반해 영화는 영미와 소련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던 6, 70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냉전시대의 공기를 담고 스파이의 사적인 감정을 그리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적은 존재하되 카메라가 적을 상대하는 이의 행동보다는 마음을 비추려고 작정한 것 같다. 그래서 영화가 포착하고 있는 풍경은 말이 없다. 영화의 세계는 '위'와 '아래'의 도움 없이 '옆'으로만 관찰된다. 그러니까 다수의 수평 트래킹숏을 통해서 시공간의 풍경을 수식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핀쳐가 '동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예술가라면, 토마스 알프레드슨은 '형용사'를 기가 막히게 쓰는 예술가다. 이런 장르라면 동사의 사용에 능한 작품이 아무래도 선호되지만(제임스 본드와 이단 헌트를 생각하면 더더욱) 영화는 이야기의 부연을 압축하고 장면의 인상을 연장한다.

 

한마디로 영화는 형용사를 만드는 데 힘을 쏟는다. 그 형용사가 풍경을 침묵을 메우는 것이다. 영화의 감상을 설명하는 데 온갖 그림씨가 쓰이는 것도 다 원인이 있는 셈이다. 형용사를 던지니까 형용사를 받을밖에. 그런 의미에서 어느 영화 주간지가 이 영화의 개봉에 맞춰 스파이영화의 계보학을 훑는 것은 한편으로 적절한 기획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스꽝스러운 짓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팅테솔스 스타일을 분명히 인식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쓸모가 있지만, 내용적 비교는 거의 없고 007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차이점만 언급하는 정도에 그치는 데서 느끼듯 사실상 의미가 없다. 결국 형용사는 실존적인 뉘앙스를 거느리지 않는다. 어떤 시공간과 결부되어 있는 특정한 느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포착하는 연출자의 섬세한 감각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래서 사전 정보라고는 하나도 없이 극장을 향했던 나는 이야기를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내 풍경의 침묵에 젖어들었다. 야심한 시각에 텅 빈 거리를 걷는 내 등 뒤로 영화의 그림자가 걸리길 바랄 따름이었다. 아마도 그 침묵은 호락호락 감상의 공동체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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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담벼락에 찌든 세월의 오줌 자국 | 영화일기 2012-02-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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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윤종빈
한국 | 201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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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국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시대를 전후로 아버지라는 짐을 지고 살았던 최익현의 인생을 비춘다. 그는 부산항 세관에서 일하는 평범한 공무원이었지만 부정과 비리를 이유로 생존의 위기에 몰린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쥔 마약을 처분하고자 조직폭력배의 두목인 최형배를 만난다. 충렬공파 최씨 집안을 들먹이며 조카뻘의 최형배를 단숨에 자신의 관계망에 올려놓은 그는 주먹의 세계에 서서히 발을 들인다. 최형배는 몸을 이용하고 자신은 머리를 써서 조직을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한동안 승승장구하지만 좋은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는 권력 지분에 대한 미묘한 대립각이 드리운 두 사내의 얼굴에서 그들을 잇는 우정이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질 것임을 예감한다. 결국 최익현은 등을 돌린다. 조직의 입장에서 그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배신이지만, 그것을 보는 우리는 어쩐지 짠하다.

 

국가의 수사가 강화되면서 나쁜 짓을 일삼았던 조직의 일원들이 하나둘 쇠고랑을 찬다. 물론 최익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처세술을 이용해 심지어 검사를 상대로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는 최익현의 처세는 생존의 문제에 시달리는 그 시대 아버지들의 안간힘이다. 뉴스에서는 그들을 무서운 존재로 비추고 있지만 제 영역을 침범할까봐 노상 주변 사람을 경계하는 모습을 낱낱이 본 우리로선 당시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감정을 느낀다. 때로 나쁜 놈은 슬픈 놈이다. 집에서는 제 자식이 본인처럼 살아서는 안다는 생각으로 직접 영어 단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최익현은 밥그릇을 쥐고 흔드는 이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세관원에서 반달로 변모한 그의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서 승자가 되는 것이다.


 

미간의 주름이 무장 어지고 이마의 더께가 시나브로 퇴적하는 아버지의 삶이란 늘 그렇듯 애잔하다. 그 남자가 사는 법을 보면서 웃기도 울기도 애매한 감정이 드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래된 담벼락에 찌든 세월의 오줌 자국 대하듯 우리는 아버지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아 외면한)다. 이는 검사가 된 최익현의 아들이 제 아버지를 대하는 어색한 표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감독은 스크린이 담고 있는 시대의 풍경을 사건의 갈등이 아니라 인물의 얼굴에서 찾는다. 우리는 그 얼굴에 패인 주름의 골짜기를 따라 풍문으로만 들었던 아버지의 흘러간 세월을 본다. 최형배가 최익현을 부르던 "대부님" 소리가 마지막에 불현듯 울려퍼진 것은 어두운 나날을 힘겹게 살아냈던 시대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위로인가 조소인가. 그들의 전성시대는 종언을 고했지만 아버지의 세계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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