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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 - 존재의 자취를 추억하는 삶과 건축 | 영화일기 2012-03-2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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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건축학개론

이용주
한국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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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오랜만에 애틋하고 감미로운 사랑 이야기를 만났기 때문일 터. 그런데 난 이 영화를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개 사랑과 건축의 의미에 주목하지만 상대를 잘 알아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건 그 둘의 유사성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맺는 모든 관계의 보편적 이치에 가깝다. 한편으로 그것은 지나치게 승민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일이어서 영화가 첫사랑의 실패를 돌아보는 방식이 일방적인 성질을 띠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서연은 왜 승민을 찾아왔을까? 그녀가 첫사랑의 추억이 담긴 빛바랜 물건들을 간수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뒤늦게 새로운 관계를 꿈꾼 것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련만 여자는 제 사정을 다 까발릴 위험을 무릅쓰고 남자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무게중심은 의외로 서연에게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가 과거를 불러들이는 동안 서연은 자신이 승민에게 집짓기를 의뢰한 이유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때와는 여러모로 변한 승민도 처음에는 그녀의 방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점차 그 의미를 자신의 삶에 반영하는 듯하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나.

 

영화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귀하게 여기는 세대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드나들 때마다 삐걱대는 초록색 대문이 엄마에게 절로 출입을 고했 정겨운 옛집일 수도 있고, 좋은 사진 한 장 박으려면 앞뒤로 이리저리 힘겹게 거리를 재야만 했던 낡은 필름 카메라일 수도 있고, 손꼽아 기다렸던 음반을 손에 쥐고서 친구와 이어폰 한 쪽씩 나눠 낀 채 느낌을 공유했던 추억의 가요일 수도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서연과 승민이 첫사랑을 추억하는 것처럼 첫눈이 내리는 날 서로만 아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면서 새끼손가락을 걸었던 가슴 떨리는 과거의 연인을 떠올리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감독이 지나간 시간을 스크린으로 끌어올 때, 관객은 자신의 과거를 머릿속으로 더듬을 것이다. 어쩌면 인물들의 이야기 사이에 관객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잡아당기는 힘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건축학개론 강의가 전공의 종류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제각각 추억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꿰고 엮는다. 이는 서연과 승민의 이야기를 기존의 멜로드라마와는 달리 극적으로 만들지 않은 대가다. 가만히 헤아리면, 영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이 아름다운 까닭을 아는 셈이다.

 

 

훌륭한 건축이 공간의 역사를 웅숭깊게 고려하듯 아름다운 삶은 존재의 자취를 근사하게 추억한다. 서연은 자신이 거닐었던 시간을 돌이키는 것으로 이혼의 아픔과 인생의 회의를 극복한다. 영화가 서연의 등장으로 시작해 서연의 퇴장으로 끝나는 것은 그들의 '과거'가 오로지 승민의 입장에서 회고되고 있다 해도 '현재'의 시선이 그녀에게 놓여 있음을 가리킨다. 시공에 착수한 승민이 자신의 터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려 할 때 영 마뜩잖았던 서연의 의중 역시 스스로 그 까닭을 명확하게 알았건 몰랐건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녀는 신축이 아니라 증축을 택함으로써 따로 또 같이 걸어왔던 소중한 시간을 기억의 공간에 그러모으는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것이다. 이렇듯 시공간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거나 흔들지 않는 것이 그예 이로운 것은 건축이든 삶이든 매한가지다그러한 의미에서 삶과 건축은 닮은꼴이다. 사람은 집을 짓고 집은 사람을 품는다 했던가. 승민의 엄마가 지긋지긋한 생활을 끝내고 아파트로 이사하라는 아들의 투정을 딱 잘라 거절하면서 집은 집이라고 말할 때, 영화는 존재의 자취란 세월이 흐르고 장소가 변해도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며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역설한다. 그것이 이른바 '기억의 습작'이겠지. 영화의 분위기를 관통하는 노랫말이 좀처럼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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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따뜻한 경쟁] - 어느 스위스 특파원의 지적인 기행문 | 도서일기 2012-03-2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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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따뜻한 경쟁

맹찬형 저
서해문집 | 201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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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속속들이 살펴보려면 그것으로부터 한발 떨어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여행이란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새롭게 만나는 일이다. 우리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면 유럽을 보는 것 못지않게 한국을 보게 된다. 무엇이 같은지 무엇이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일은 여행이 삶에 보탬이 되는 대목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오락과 휴식을 목적으로 비행기에 올라탔다고 할지라도 낯선 공기가 몸 안으로 스미기 시작하면 여행의 참다운 발견은 절로 눈을 뜬다. 그런데 그 풍경들이 내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나름대로 답을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먹고 마시는 일처럼 그때그때 이색적인 정보를 머릿속에 꾹꾹 눌러담기도 어렵고 특정 문화와 연결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물론 저자처럼 특파원으로서 다른 나라에 머물며 비교적 긴 시간 동안 그 나라의 문화를 꼼꼼이 살필 수 있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를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런 종류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관계가 깊다. 정보와 사실을 바탕으로 하든 주관과 감상을 중심으로 하든 기행문은 그 사람이 서 있는 곳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인문 서적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스위스 기행문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스위스에서 '따뜻한 경쟁'을 보고 들었다.

 

작년에 나도 스위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내 짧은 여행을 저자의 경험에 비하랴만 스위스가 다른 유럽 국가와 견주었을 때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구태여 땅의 경계를 인식하지 않았더라면 특별히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곳들과는 사뭇 다른 그 나라만의 독특한 풍경이 있었다. 아주 사사로운 것들조차 내 눈에 신기하게 비치는 것이 많았지만, 긴 여행길에서 귀한 정보를 살뜰히 읽거나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게으른 여행자가 으레 그렇듯 내일의 여정을 위한 휴식을 핑계로 미루거나 무시하기 일쑤여서 지금은 결국 어렴풋한 기억과 몇 장의 사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행하는 곳에 대한 공부가 꼭 출발하기 전에만 의미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더러 있다. 책을 읽다가 그림을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문득 그때 그 기억이 스르르 떠오르는 순간의 환희가 그 자명한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만드는 때다. 이 책은 내가 스위스에서 물음표를 그렸던 일들을 하나둘 끄집어냈다. 그리하여 나로선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스위스 여행을 다녀와서도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궁금증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체와 어투가 예리한 지적과 확고한 주장까지도 편히 받아들이게끔 하는데,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여행기로 여겨도 크게 무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가 품고 있었던 궁금증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기차를 타고 도심을 이동하거나 그 유명한 융프라우를 오를 때 책에서나 봤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데 스위스에서는 유독 개인 살림집에 있는 정원과 화단에도 다채로운 꽃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산을 알록달록하게 수놓고 있었다. 목가적 전원과 잘 어울리는 터라 처음에는 그저 그 화사하고 밝은 분위기에 한껏 취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하나같이 예쁘게 꾸며 놓았다는 것이 어쩐지 이상하게 생각되는 데가 있었다. 다들 집을 참 잘 가꾸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도시를 아름답게 설계하고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하는 데 시민을 활용한 셈이다. 정원을 매만지는 일이 곧 돈을 벌어들이는 일이라면 그들은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정원을 가꾸겠는가. 스위스에서 농업정책을 도맡은 정부 담당자는 국토라는 큰 화폭에 조화로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넓은 공원에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는 정원사와 같다. 좋은 정책 하나가 사람들을 두루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저자는 책에서 스위스를 여행하다 보면 푸른 초원 위에 소와 말, 양과 같은 가축들이 햇빛을 받으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내 경험으로 봐도 그것은 참말이다. 스위스에는 자연 상태로 방목하면 보조금을 주는 법률이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축을 들판에 마구 풀어 놓은 데서도 스위스만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냥 노닥거리는 게 아니라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열심히 근무하는 것이다. 그 보조금 규모가 우리 돈으로 무려 가구당 연평균 5000~6000만 원 정도. 이곳과 그곳의 물가가 다르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상당한 액수인 것만은 분명하다. 심지어 소를 방목하는 산비탈의 경사도에 따라 보조금이 차등 지급된단다. 그러잖아도 여행길에서 그것을 보고 산비탈에서의 방목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는데, 이 정도로 꼼꼼하게 지원할 줄이야. 관광산업과 농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영리한 정책이 돋보인다. 역시 스위스로군!

 

매년 5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는 한 달에 최소한 26일 이상, 해가 짧은 11월 1일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는 한 달에 13일 이상 초지에 방목하면 연간 마리당 180프랑(약 22만 원)을 준다. 암퇘지 두 마리를 매일 서너 시간씩 밖에 내놓고 키우면 1년에 360프랑(약 44만 원)을 주고, 닭 200마리가 낮 동안 자유롭게 닭장 안팎을 드나들며 모이를 주워 먹을 수 있게 하면 280프랑(약 34만 원)이 지급된다. 생태 친화적인 축사 시설을 갖춰도 돈을 준다. 가축이 2개 이상의 생활 공간을 오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고 최소한 15럭스 이상의 안정적인 자연광을 쬘 수 있도록 조명 설비를 갖추면 큰 소 한마리를 기준으로 연간 90프랑(약 11만 원)을 지급한다.

 

 

농업 활동이 이뤄지는 현장 자체를 관광 상품화한 사례도 있다. 책에서는 대표적인 행사로 매년 9월 마지막 주 토요일과 10월 첫째 주 토요일 아침에 커다란 워낭과 화사한 꽃으로 장식한 소들이 목동들과 함께 알프스와 주라 산맥에서 내려오는 하산 행렬을 제시했다. 고산지대 외에는 치즈를 생산할 수 없었던 기술적 한계가 스위스의 수직적 유목을 낳은 것이다. 작은 규모의 행사도 많아서 여름에도 볼 수 있다. 내가 여행한 시기가 7월이었는데 숙소에서 그런 행사가 있다고 귀띔해준 덕분에 산지로 올라가서 맑은 공기와 햇빛, 신선한 풀을 마음껏 즐긴 소들이 내려오는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하산 행렬이라 놓치기 일쑤인데 운 좋게 숙소 바깥에 있을 때였다. 화려한 꽃무늬 전통 복장을 한 목동과 소녀의 행진이 마을의 고요를 깨는 워낭 소리와 맞물려 여름날의 활기를 느꼈다. 이런 행사 역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꼭두새벽부터 소 떼를 기다리는 관광객이 있을 정도라니 관광 차원에서도 좋고 농사꾼에게 혜택을 줄 수 있어 농업 보호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스위스에서 내가 정말 의아했던 것은 마트들이 문을 하나같이 늦게 열고 빨리 닫는 점이었다. 늦은 시각까지 해가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가까운 상점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일찌감치 문을 닫는 터라 먹을거리를 미리 사놓지 않으면 야식 따위는 즐길 수 없다. 또한 여행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먼 곳으로 떠나고자 숙소를 나설 때가 많은데 간단한 요기라도 하려고 마트로 향하면 어김없이 문이 닫혀 있거나 영업을 준비하는 중이다. 작은 가게들은 크게 규정이 없지만 우리 식으로 말하면 대형 마트와 중소형 편의점의 영업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서 개점과 폐점이 철저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불편을 느끼지 않을 리 만무하다. 2010년 대형 마트의 영업시간을 한 시간 연장하는 발의안을 놓고 제네바 시민들이 주민 투표를 했는데,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훨씬 많았단다. 희한한 일이다. 분명 그들도 마트가 늦은 시각까지 문을 열면 좋을 텐데 왜 반대했을까? 이럴지니 여행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낱낱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2010년 11월 28일 제네바 시민은 대형 마트의 영업시간을 한 시간 연장하자는 발의안을 놓고 주민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반대 56.2%, 찬성 43.8%로 부결. 우파 정당이 주도한 이 발의안은 미그로와 쿱 등 대형 마트의 평일 폐점시간을 30분에서 1시간 가량 늘리고 소비자 편의를 고려해 일요일에도 개점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한 시간 더 여유롭게 장을 볼 권리보다는 노동자가 현행대로 퇴근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세상에나! 그러한 내용을 담은 발의안은 자주 나왔지만 번번이 부결되었다고. 이것이 이른바 똘레랑스 문화이다. 그들은 생산과 소비는 일관된 경제순환 과정의 두 측면일 뿐 각기 독립되어 있는 행위가 아니며, 소비자와 노동자의 관계 또한 각각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수시로 변한다고 인식한다. 한마디로 반대표를 던진 행위는 소비자와 노동자의 연대인 것이다. 만약 마트 직원이 한 시간 더 일을 해야 한다면 내가 장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연장되는 것이므로 나 역시 회사에서 일을 한 시간 더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먼 미래까지 내다본다. 스위스의 대형 마트는 작은 동네 가게와 영업시간을 적절히 조율하기도 한단다. 우리로선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제네바 지역 대형 마트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오전 8시~오후 7시, 목요일과 금요일은 오전 8시~오후 7시30분, 토요일은 오전 8시~오후 6시까지 개점하고 일요일은 쉰다. 대형 마트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문을 열고 일요일에 쉬는 대신, 동네 가게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문을 열고 월요일에 쉰다. 같이 살자는 거다. 거기에 더해 토요일과 일요일엔 여기저지 마을 광장에서 우리나라의 5일장 같은 장마당이 펼쳐진다.

 

대형 마트 미그로와 쿱은 행정단위인 코뮌에 한 개씩 있는 게 일반적이며, 한국의 홈플러스나 이마트처럼 각종 편의 시설을 복합적으로 갖춘 매장은 도시 외곽에 있다. 그러니까 서울처럼 대형 할인점이 도심 곳곳을 차지하고서 소상인의 목줄을 누르는 일이 없다. 또한 우리의 편의점처럼 24시간 논스톱 운영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직원과 소비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지 않는다. 스위스에서는 장을 봐야 한다는 이유로 회사원이 정시에 퇴근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전혀 우스갯소리는 아닌 셈이다. 스위스의 평화로운 공기는 그저 하늘이 내린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국가와 시민 모두 따뜻한 경쟁을 통해 다양한 행복을 추구하는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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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탁동시] - 국적 없는 존재들의 비애 | 영화일기 2012-03-13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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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줄탁동시

김경묵
한국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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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탈북 소년 준과 게이 소년 현의 삶을 다룬다. 1부는 준을 따라간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준은 밀린 임금을 받으려고 사장과 몸싸움을 벌이다 그의 성적 희롱에 괴로워하는 조선족 순희와 함께 도망친다. 그들은 서울을 여행하는 사람들처럼 관광 명소를 찾아다니며 비루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살 길이 막막한 준은 급기야 몸으로 돈을 벌기에 이른다. 2부는 현을 비춘다. 이곳저곳에서 몸을 파는 현은 유능한 애인 성훈이 마련해준 오피스텔에 거주한다. 죄를 지은 사람처럼 늘 갇혀 사는 데 싫증을 느낀 그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습관처럼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 서로의 상황을 끌어안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 현은 결국 폭발한다. 준과 현은 각자 그들이 숨쉬고 있는 고통스러운 시공간으로부터 환멸을 느낀다. 생의 무게를 덜어내고자 몸부림치던 그들은 마침내 위험한 선택을 한다. 그것이 영화의 핵심인 3부를 구성한다.

 

 

연탄불을 피우고 서로 목을 조르며 연극적 행위로써 자살을 감행하는 과 준은 안과 밖, 종과 횡, 남과 북, 밤과 낮  갖가지 상징으로 절묘하게 쌍을 이룬영화 속에서 그들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명료한 구조와 형식은 그와 같은 두 개의 점들을 모두 하나의 선분으로 잇게 만든. 그러나 현실의 공기를 담았던 1부와 2부가 한데 수렴하는 3부는 짧은 시간이나마 앞선 분위기와 사뭇 다른 몽환적 성격을 띠고 있어 일견 어지럽다. 중요한 순간임을 알리는 제목이 뒤늦게 스크린을 메우고 나서야 우리는 그들의 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현의 공간에 준의 시간이 잠입하는 것으로 추측하건대, 이야기의 줄기는 아마 2부에서 1부로 내뻗은 듯하다. 알게 모르게 현은 준을 잡아당긴다. 현을 향한 준의 걸음이 적막한 도심의 새벽 공기를 오래도록 가르는 장면에서 카메라의 속도가 걸음의 속도를 끝까지 유지하지 않고 화면 바깥으로 인물을 놓아 버리는데, 이는 환상의 시간으로 접어들 것임을 암시한 셈이다. 그러니까 3부는 더 이상 현과 준의 현실이 아니다.

 

한편 일찌감치 순희 해(현)와 달(준)을 연결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일러두고는 있지만, 두 인물 조우를 위해 몇 개의 활자로 그녀의 존재를 지우고 마는 것은 긴 시간 동안 조심스럽게 쌓은 영화의 주제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별다른 과정 없이 순희의 존재가 삽시에 증발한 데서 타자를 대하는 영화의 윤리는 다소간 희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순희가 사라진 대가로 현실의 공기에 짓눌린 현과 준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딱딱한 껍질을 깨뜨리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겐 어미 닭이 존재하지 않는다. 두 인물이 처한 상황은 이 땅에 발 디딘 자들에게 낯설지 않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속 현과 준의 사회적 정체성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지닌다기보다는 타자라는 대상으로서 기능한다. 탈북자와 성소수자의 커뮤니티에 특별히 호소력을 갖는 것도 아닐 뿐더러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사회적 현실을 말하지 않는 데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근래의 독립영화와 견주었을 때 적잖이 다른 점이다. 그래서 국적 없는 존재들의 비애와 그 생사의 비틀거림이 더욱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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