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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땡큐 포 더 무비] - 영화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 | 도서일기 2012-04-1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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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땡큐 포 더 무비

신지혜 저
시드페이퍼(seed paper)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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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말을 내뱉고 어떤 영화는 말을 삼킨다. 어떤 영화는 말을 늘어놓고 어떤 영화는 말을 삼간다.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이 내는 말소리의 많고 적음과는 무관하다. 입술의 움직임이 없어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러쿵저러쿵 말이 넘쳐도 도통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작품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영화가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좋은 작품을 만나려고 애쓴다. 그런데 말을 건네는 영화란 전적으로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나 기술적 완성도에 달린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특정 영화가 허락하는 감상은 누구에게나 똑같을 것이다. 훌륭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말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저마다 다른 무늬로 서로 다른 빛깔로 빚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고 꼭 버릇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점만 줄줄 벌이기 일쑤인 사람과 극장에 함께 가는 일은 몹시 짜증스럽다. 전반적으로 아쉬운 대목이 많아도 배울 점을 하나둘 발견하고 일견 나쁜 면이 있어도 남다른 요소는 기꺼이 끌어안는 사람과 영화를 보고 싶다. 특히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러한 태도와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영화가 건네는 말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친구 하나쯤 곁에 둔다면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훨씬 더 즐겁고 흥미로울 것이다.

 

 

신지혜 아나운서는 회사 책상 앞머리에 오래도록 "방송은 목표, 영화는 꿈"이라고 써 놓았단다. 무려 15년 동안 CBS 라디오 '신지혜의 영화 음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 때문일 터. 방송 일정이 빡빡해 좀체 시간이 나지 않던 때 부산국제영화제를 가고픈 마음에 고작 하루 영화를 보고자 비행기로 내려갔다가 밤차를 타고 올라온 적도 있었다고. 새벽에 곧바로 출근해야만 하는 상황이 그 시간을 더 소중한 추억으로 만든 듯하다. 그런 열정은 특별히 영화계에 종사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오랜 시간 영화를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현재 그는 앞서 언급한 라디오 진행은 물론이고 매달 정기적으로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다. 저자는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 늘 관객들에게 감상을 먼저 묻고 그 감상에서 가지를 뻗어 영화가 건네는 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대목을 찾고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목소리로 다시 듣고 새기는 일은 더없이 소중하다. 좋은 영화를 보고도 극장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더 이상 사유하지 않는 세태에 영화가 인간과 삶에 얼마나 밀접한지 살피는 일은 재미와 감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책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영화가 건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영화에 감사하는 마음이 여기저기서 묻어나는데, 그것은 남다른 감상이나 특별한 사연에서 길어 올린 게 아니라 그저 우리가 영화를 보고 흔히 나누는 이야기에서 포착한 것이다. 따라서 언제고 유명한 평론집이라든가 영화 관련 수필을 집어 들었을 때 자신이 본 영화가 많지 않아 감상의 접점을 찾기 어려웠던 사람이라면 책장을 펼칠 때 반가운 마음부터 들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화들이 누구에게나 비교적 친근한 덕분이다. 대중적인 영화와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화가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아나운서답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어 술술 읽힌다. 내용도 표현도 가까운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편안해서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영화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 누군가의 삶에 응원 한 조각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데, 그 소중한 말들을 주워 담고 그러모으려면 일단 영화가 허락한 감상을 마음껏 펼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혜를 넌지시 일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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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미묘한 시선 2 - 영화 [황해] | 영화일기 2012-04-0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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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황해

나홍진
한국 | 2010년 12월

영화     구매하기

 

 

구남은 조선족이다. 연변에서 택시를 몰고 있지만 빚더미에 앉아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면가의 제안은 절호의 기회다. 절박한 상황에 치달아 어쩔 수 없이 살벌한 제안을 수락하는 것도,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닌 지경에 이르는 것도 단연 돈의 유혹에서 비롯된다. 마침 구남은 돈을 벌고자 한국으로 떠난 아내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었던 터라 그 일까지 한꺼번에 해결하고자 비장한 각오로 배에 오른다. 물론 사람들은 일찍이 그의 운명을 예감했을 것이다. 초반에 개병을 운운하는 내레이션은 구남이 누군가를 물다가 결국 물려 죽는 개 같은 인생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는 것을 떡하니 일러바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초반에는 영화가 바다를 건넌 구남이 이 땅에서 쫓고 쫓기는 상황을 극적으로 만드는 데 대단히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개병'을 스크린에 현시하겠다는 의도가 아주 뚜렷하다. 개병의 악취가 풍기는 곳이 한국이라면 그 바깥에 머물고 있었던 구남은 절로 타자가 된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을 조선족으로 설정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를 지닌다. 단 한 순간도 긴장감이 느슨하지 않아서 경계인을 향한 그릇된 묘사가 끼어들 틈이 없는데, 그 덕분에 관객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인공이 어디에서 왔는지 전혀 의식하지 않고 구남을 따라간다. 물론 그는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고 다시 강을 건너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영화는 그렇게 생존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구남이라는 이방인을 내세워 헐벗은 인간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지금 여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구남의 눈이 아니라 구남의 몸이 깨달은 바다. 한마디로, 이 영화에서 구남의 체험은 곧 나의 체험이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구남이 저지르는 갖은 폭력적 행위는 생존을 위한 안간힘으로 보였다. 그러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뜻밖에도 일련의 행위가 모두 치정에 얽혀 있었던 것으로 마무리된다. 구남의 아내가 왜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는가를 뒤늦게 밝히면서 급격한 반전을 노리는 셈이다. 그것도 사회의 그늘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매서운 바다를 힘겹게 건너온 구남의 지옥 같은 시간들이 일순간 흐려지는 것은 어찌할 것인가. 이따금 아내에 대한 구남의 악몽을 이야기 중간중간에 집어넣은 것으로는 돈과 치정이라는 원인이 삭막한 결과를 낳는 하나의 그림에 적절히 균형을 이룬다고 볼 수 없다. 이렇듯 내레이션에서 언급했던 지독한 개병이 치정의 문제로 귀결될 때 영화가 취했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은 장르적 재미를 위한 도구로 그만 전락하고 만다. 더불어 주인공이 구태여 이방인이어야 하는 이유도 불분명해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을 그리고자 했던 과욕이 공들여 쌓은 분위기를 스스로 일그러뜨리는 격이다. 구남은 바다까지 건너와 도대체 뭘 한 거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내뱉은 것이 단지 영화에 몰입하지 못한 결과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일지 나는 오늘 내내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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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미묘한 시선 1 - 영화 [드라이브] | 영화일기 2012-04-0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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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이브

니콜라스 윈딩 레픈
미국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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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분위기가 근사하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극장으로 향했는데 참말이었다. 때깔 좋은 화면에다 자유자재로 덧입힌 톡톡 튀는 음악이 심장을 연신 두드렸다.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에 음악이 기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긴장감을 조였다가 푸는 기술이 제법이었다. 잔인한 장면을 눈 뜨고는 못 본다는 한 친구가 이 영화만큼은 몇 번 고개를 숙이긴 했어도 재밌게 봤다고 말한 것이 그제야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 어떤 작품 못지않게 가학적인 데가 있지만 원래 그것을 즐기는 관객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까지 스크린 앞으로 불러세우는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또한 유명한 영화에서 야금야금 가져온 몇몇 장면들을 이야기가 흐르는 곳곳에 촘촘히 새겨 놓은 모양새가 이불에 각양각색의 무늬를 자국이 남지 않게 누비질한 것처럼 깔끔하고 반드러웠다. 무엇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나 같은 관객만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영화 보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전문가들의 의견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누비질 솜씨를 탓하는 경우는 여지껏 보지 못했다. 칸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니콜라스 원딩 레픈이 선보인 그러한 재주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도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도 모두가 단번에 푹 빠져들 만큼 매혹적인 것이다. 따라서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기시감의 근원은 자연스레 긍정적 모방으로 이해되고 장르적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인용들이 어떤 의미를 이루지 못한 채 주인공의 복수에 멋을 더하는 쪽으로만 쓰인 것 같아 달갑지가 않다. 개운치 않은 느낌이 남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떤 평자는 드라이버의 배경이 드러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신화적 기원까지 들먹이지만, 그는 그 드라이브의 결과가 제 응어리를 푸는 데 그칠 뿐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에겐 하등의 의미를 전하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신화적 인물들은 헛된 일을 수행할 목적으로 탄생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웅처럼 위대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의 행동이 그 누구에게도 이로운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심지어 그가 목숨까지 내걸고 필사적으로 보호했던 여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 섹시하고 멋있는 드라이버를 보라. 그는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음의 준비를 사전에 끝내 놓고 상황이 무르익자 부지불식간에 혼자서 복수를 감행한다. 자기가 마음에 품고 있는 여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그녀와 협력할 의향이 애당초 없었던 것으로 보건대 사랑을 위한 복수가 아니라 복수를 위한 사랑처럼 보인다. 곤경에 처한 여자에게 자신의 도움을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은 까닭과 관련하여 한시가 급한데 언제 자초지종을 털어놓겠느냐고 말한다면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너 나 할 것 없이 멋있는 순간으로 손꼽는 엘리베이터 장면만 봐도 소름이 끼치는 복수를 위해서 이야기가 다소 희생되는 측면이 있다.

 

영화의 장르를 생각한다면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나 역시 시종일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들이 영화의 동력으로써 십분 이해된다고 하여 이야기의 동력으로도 충분해지는 것은 아니다.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보기에 썩 좋거나 아름답게 포장되는 경우라면 그것은 더더욱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로선 영화에 인용된 기존의 작품들과 견주었을 때 인물이 행사하는 폭력의 마땅한 근원을 좀처럼 찾을 수 없는데 평단에서 별로 지적하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 영화광을 위한 질주로써 그것이 퍽 훌륭하다고 해도 오로지 그 만듦새에 현혹되는 일은 폭력적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드라이브인가? 물론 드라이버는 자신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인물 가운데 나쁜 짓을 행하는 이들만 차례로 해치웠다. 그 지역에 퍼진 악의 무리만 깨끗하게 상대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에 녹아든 인용들이 죄다 도구적으로 쓰이면서 본디 지니고 있었던 품격을 얼마간 훼손한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드라이버가 입고 있는 옷에 새겨진 무시무시한 전갈이 그의 심장을 상징하는 존재라면, 마지막 순간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뚜벅뚜벅 발걸음을 다시 내딛을 때 영화는 더욱 섬뜩해진다. 나는 등에 붙은 전갈을 그가 스스로 도려냈으면 좋겠다. 감독의 차기작은 훨씬 더 폭력적인 장면으로 스크린을 물들인다고 알려졌는데, 그가 현명하다면 훌륭한 재능이 공허한 칼부림에 그치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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