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쓰응
http://blog.yes24.com/jinvhee
리스트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쓰응
쓰응의 다락방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월 스타지수 : 별966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태그
내용이 없습니다.
2009 / 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월별보기
나의 친구
최근 댓글
내용이 없습니다.
오늘 6 | 전체 1678
2008-07-24 개설

2009-02 의 전체보기
[스크랩] [일곱 번째 맛] 뉴욕에서의 구정, 떡국 대신 소바 - 소바야Sobaya | 기본 카테고리 2009-02-10 12:00
http://blog.yes24.com/document/125556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채널예스 > 김지원의 Tasting NYC

새해의 정의는 누가 내린 것일까? 1년을 365일로 나누어서 언젠가가 일 년의 시작이, 또한 끝이 되는 것은 명백한 일이지만, 왜 1월 1일이 1월 1일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명백한 답이 없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따르는 보통의 신정도, 달의 주기에 따르는 구정도 어느 것도 새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8월의 영어 이름인 august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던 것처럼, 새해 첫날도 그 당시 처음 달력을 만들었던 사람 마음일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처음 달력을 만들었던 사람이 그러했듯이, 본인이 스스로 원하는 날을 새해로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구정은 음력 설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만 쇠는 명절로 물론 뉴욕에서도 구정은 아예 달력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뉴욕의 구정에도 어김없이 수업으로 가득했다. 뉴욕에서 따지는 휴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괜히 쉬지 못하는 것에 몸이 근질근질했다. 한국에서는 휴일이 아닌 미국 국경일에는 신이 나서 놀아놓고서도 말이다.

New Year’s Eve Ball
뉴욕은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설을 지내고, 설 당일 보다 새해 전날에 더 큰 의미를 두어 new year's eve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날 파티를 하거나 축하를 한다. 한국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듯이 Times Square에 모여 “Ball Dropping”을 하는데 2007년에 100주년이 되었을 정도로 역사를 자랑하는 행사이다. Ball dropping이라는 말 그대로 5,386kg에 3.7m크기가 되는 크리스탈공이 낙하하면서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을 일컫는데, 이때 사방으로 꽃종이가 날리고 사람들은 “happy New Year”를 외치며 축제 분위기로 접어 든다.


한국에서는 설날, 즉 새해에는 떡국을 만들어 먹고, 종교 문제나 가족 문제가 아니라면, 친지들이 모여 차례를 지낸다. 구정이라는 휴일에 다시 한번 새해의 시작을, 빛나는 새벽 공기와 함께 다짐할 수 있으니, 구정과 새해를 모두 지내는 것도 좋은 관습이라고 생각한다.

맨 위부터 중국의 쟈오즈, 일본의 떡국 조니, 오세치 요리, 자루소바
설날이면 떡국이지만, 한국을 벗어나서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에 새로운 설날 음식을 맛보고 싶었다. 그러나 설날에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는 문화는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동양 문화에서는 더 많은 설 음식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만두를 만들어 먹고, 일본에서는 새해 전날에 소바를, 그리고 설날에 조니(일본식 떡국)나 오세치 요리(5색, 5미, 5가지 방법의 요리로 만든 도시락요리)를 만들어 새해를 기념한다.

중국의 만두도 친숙하지만 한국과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고, 일본의 ‘조니’나 ‘오세치’요리도 궁금했지만 실제로 레스토랑에서 만날 수 있는 메뉴는 아니었다. 결국에 소바를 택한 건 실은 소바를 좋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도 있지만 일본식의 소바로, 새해를 맞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소바는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국수 또는 모밀국수라고 불리는 면 요리의 한 종류이다. 처음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일본과 우리나라의 메밀국수에는 차이가 있다. 먼저 면을 낼 때 우리나라에서는 면을 가지런히 모아 둥글게 말아서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에서는 면이 한 올 한 올 떨어져서 퍼져 있어야 맛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면 자체도 한국에서 먹는 한국식 메밀국수는 부드럽고 혹은 쫄깃하기까지 한데에 비해 일본은 정통으로 만드는 곳의 소바는 평양냉면처럼 뚝뚝 끊어진다. 면을 찍어 먹는 국물도 한국이 훨씬 달달하고 묽다. 일본 음식이 더 달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일본 음식은 생각보다 간이 센 경우가 많다. 한국식 메밀국수를 생각하면 너무 짜고 퍽퍽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일본식 소바를 좋아한다면 한국식 메밀국수는 맹맹하고 너무 부드럽다. 뭐 모두 개인 취향이고 같은 음식도 간과 익힘 정도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소바야. 이름에서도 바로 알 수 있는 이 식당은 East village에 자리 잡고 있는 자그마한 소바 전문점이다. 입구에서부터 일본을 느끼는 독특한 분위기를 띠지만 왠지 모르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쉬이 지나칠 수도 있는 곳이다. 길에 튀어 있는 기분이 아니라 잘 묻혀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처음 이곳을 만난 것은 뉴욕에 살기 전, 요리학교를 알아보기 위해 잠시 들렸을 때였다. 여름이었지만 싸늘한 공기에 하루 종일 학교와 집을 알아보느라 지칠 대로 지친 하루, 집 밥이 너무나 그리운 저녁이었다. 무척이나 피곤해서인지 무얼 먹을지도 생각이 나지 않던, 무작정 East Village로 향해 거리를 걸어가 보랏빛과 붉은 노을이 어우러져 어디든 쉬고 싶었던 저녁이었다.


좁은 골목에서 만난 소바야는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따뜻한 불빛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북적이는 사람들과 함께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역시 주요 메뉴는 소바로 직접 소바를 만들어 파는, 작지만 그 열정이 돋보이는 가게였다. 마치 집에서 만들어 주는 듯한 그런 맛으로 그날의 피로를 씻은 듯이 가셔주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뉴욕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집 같은 편안한 따스함을 주었던 가게였다.

새해에는 하루 쉬는 날이라 떡국을 해 먹었지만, 구정은 뉴욕에서는 쉬지 않기에 떡국이나 새해를 챙기기에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에는 서운한 게 한국 사람인지라, 꿩 대신 닭으로 떡국 대신 소바를 맛보러 East village로 총총걸음을 옮겼다.

바쪽 자리에는 어머니가 만드신 듯한 반찬이 놓여져 있다

언제나 흔쾌히 외치는 ‘이랏샤이마세’는 한국어로 ‘어서 오세요’이다. 일본 가게는 종종 손님이 오면 이랏샤이마세를 크게 외치는 곳이 많은데 괜히 반겨주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른 저녁 시간에 가지 않는다면 언제나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은데 그건 주메뉴인 소바뿐 아니라 반찬이나 간단한 요리도 모두 맛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바 맥주와 기린 맥주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대로 먼저 음료를 주문하고 천천히 메뉴를 구경했다. 소바 종류는 친절하게 사진으로도 보고 고를 수 있는데, 차가운 소바와 뜨거운 소바가 각각 20가지에 가까운 종류가 있어 고르는 데도 큰 즐거움이 있다. 음료메뉴를 구경하다 문득 소바맥주라는 신기한 음료를 발견해 하나 주문해보았다. 소바로 만들었다는 맥주 아니 소바주는 보통의 맥주보다 조금 다른 향이 진하게 퍼진다. 그 맛이 독특해 이날 이후로 맛보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 맛보기에는 아깝지 않은 맥주였다.

일본식 오징어 순대 조림

음식은 소바 이외에도 요리나 반찬이 많이 있는데 만약 맥주를 좋아한다면 이 오징어조림을 꼭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 오징어순대처럼 삿징어 몸통 안에 밥을 꽉 채워 달콤 짭짜름한 간장에 절인 요리인데 반짝 반짝거리는 모습이 오징어순대와는 또 다르다.

연근 매실 무침과 우엉 풋콩 조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반찬류인데 일본 가정에서 반찬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장조림이나 감자볶음 같이 집에서는 먹지만 따로 사먹기는 힘든 그런 것이었다. 소바야에서는 그날그날 바 자리에 한 그릇 가득히 만들어 놓고 올려져 있어 자꾸만 생각이 나는 메뉴이다. 뭔가 나라는 다르지만 집에서 만들어주는 소박한 반찬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김 대신 유자가 올라가 있는 유자 소바

소바는 차가운 소바나 따뜻한 소바 모두 좋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소바는 가끔 특별메뉴로 맛볼 수 있던 유자소바였다. 직접 면을 반죽하여 뽑기 때문에 가끔 반죽에 장난을 치기도 하는데 면 안에 유자 제스트(껍질의 노란 부분만 아주 고운 강판에 갈은 것으로 요리에 향을 더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를 넣고 반죽해 씹을 때마다 유자향이 번지는 소바였다. 먹는 방법은 보통의 자루소바와 마찬가지로 국물에 넣었다가 건져서 맛본다.

연어알과 성게알, 참마가 얹어진 소바

또한 연어알과 성게알, 그리고 참마 갈은 것을 더한 소바로 이건 소바 위에 재료가 얹어져 있기에 면을 국물에 따로 담갔다 먹지 않고 국물을 면에 부어서 먹는다. 그래서 그릇은 우동그릇처럼 사발에 담아져 나오는데 연어알과 성게알의 비릿하고 참마의 비릿한 맛이 딱딱한 소바와 짭짤한 국물과 무척 잘 어울린다.

따끈한 냄비 우동

소바가 지겹거나 뭔가 더 따끈한 음식이 끌린다면 냄비우동도 추천한다. 내 지인 중 하나는 이곳에 소바가 아닌 우동을 먹으러 간다니, 따끈하고 푸짐한 냄비우동의 맛은 그 말로 보장이 되리라. 튀김과 어묵, 야채가 푸짐히 담아져서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뚝배기에 담아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갈 맛보면 기분 좋은 따끈함이 몸 안으로 스며든다.

오른쪽 위편의 사각 주전자에 든 면수를 국물에 타서 마신다

참. 자루소바 등의 국물이 따로 나오는 음식에는 식후에 까만 주전자가 나온다. ‘컵도 주지 않고 이건 뭐지?’라고 생각할 법한 이 주전자에는 바로 국수를 삶은 물이 담겨 있다. 일본에서는 직접 면을 뽑는 소바집에서는 면수를 식후에 내주는데, 이 면수를 남은 국물에 부어 연하게 만든 후 입가심을 한다. 처음에는 묽어진 맹맹한 국물 맛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몇 번 맛보다 보면 소바를 먹은 후 면수에 탄 국물이 그리워질 것이다.

항상 많이 먹어 배부른 배를 움켜쥐고 거리로 나오면 다시금 낯선 뉴욕이다. 뉴요커들에게는 새해는 이미 지난 듯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만의 새해에, 나는 일본의 설 전날 음식을 먹으며 나의 새해는 내일부터라고 우스운 다짐을 해본다. 매일을 새해에 마음 먹는 것처럼 마음을 다지며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 미리 말했듯이 언제든 마음먹는 대로 새해의 시작은 달력 위의 1월 1일이, 구정이, 혹은 오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새해가 지난 오늘, 첫날의 결심이 흐려졌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스크랩] 고통과 고민이 없는 삶은 죽음과도 같다 - 일본어 학습책 낸 조혜련 | 기본 카테고리 2009-02-10 11:58
http://blog.yes24.com/document/125556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채널예스 > 만나고 싶었어요!
사람의 체온은 36.5도지만 열정의 온도는 모두 다르다. 유난히 그 열정의 온도가 뜨거운 여자가 있다. 대학 재학 중에 개그우먼으로 데뷔한 조혜련은 17년 동안 시청자들에게 변함없이 진한 웃음을 선사했고, 개그의 영역에서 멈추지 않고 텔레비전에서 하루라도 그의 얼굴을 보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 가수로 데뷔했고, 태보 다이어트 비디오도 냈다. 도대체, 그의 열정은 얼마나 뜨겁기에 저렇게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걸까.

마흔의 조혜련, 일본으로 진출하다

그런 그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욘사마나 지우히메처럼 한류 스타가 되어 건너간 게 아니다. 맨 밑바닥에서 신인 취급을 받으며 일본 방송에 데뷔했다. 일본어 회화는커녕 히라가나도 모르던 그가 6개월 동안 일본어를 공부한 후 일본 방송에 데뷔했고, 데뷔 2년 만에 NHK의 <니혼쓰 리스트>의 공동 진행자를 맡게 됐다.

“관광을 하러 가면 그렇게 곰살맞고 친절할 수 없는 일본인이지만 일을 할 때는 정말 그렇게도 철저하고 냉정할 수가 없다”고 말한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대중을 상대로 방송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도전에 있어서는 성격이 단순한 사람, 앞만 보는 사람이 유리하다. 이것저것 재다가는 버스를 놓친다. 조혜련의 성격이 그렇다. 일본 진출도 요모조모 재고 따져서 결정한 게 아니었다. “가족들과 일본 여행을 갔는데 일본에서 한류가 대단했어요. ‘이참에 나도 한번 해 봐?’ 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기초 일본어 책을 사왔어요.”

그는 부러워하기보다는 설사 실패하더라도 직접 해보는 걸 택하는 사람이다. 다이어트 비디오도 그랬고 가수 데뷔도 그랬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경험은 고스란히 남잖아요. 일본 방송계에 진출 못 한다고 해도 일본어 실력은 남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죠.(웃음)” 일본어와 일본 방송과의 사투를 담은 『조혜련의 박살 일본어』는 그 2년 6개월 동안의 열정의 기록이다. 곧 2권도 나올 예정이다. 2권은 조혜련의 개인적인 추억과 일본어 단어를 결합한 책이라고. “일본어 공부를 하고 일본에 가서 실제로 생활하면 ‘아, 이런 걸 가르쳐줬으면 좋았을 텐데’ 싶을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가타카나. 일본어 수업을 들으면 히라가나만 배우고 가타카나는 잘 안 쓴다고 그냥 한 번 훑고 넘어가요. 그런데 일본에 가면 텔레비전에도, 편의점의 과자 봉지에도, 거리 간판에도, 어딜 가도 가타카나가 나오는데 눈에 익지 않으니 힘들었어요. 그래서 가타카나에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방법을 책에 썼죠. 그리고 꼭 필요한 문법만 정리한 책과 일본어 한자를 쉽게 배우는 책도 앞으로 낼 생각입니다.”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라

어학 공부만큼 정직한 게 없다. 외국어를 쉽게 익히는 요행이나 비법이 판을 치지만 정직하게 단어를 외우고, 테이프를 듣고, 꾸준히 회화 연습을 하고, 해당 외국어로 쓰인 책을 읽는 것 말고는 그 언어를 정복하는 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렇게 성실하게 일본어를 공부했다. 단어를 외우고, 일본 드라마 받아쓰기를 하고, 쪽팔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본인과 대화를 하면서 그의 일본어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학창시절에는 어학보다는 수학 쪽을 잘했어요. 졸업한 후에 외국어 공부를 하지 않다가 처음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얼마나 어렵고 힘들던지. 그나마 일본어는 한자도 어느 정도 알고, 어순도 비슷해서 제일 숙달도가 빠른 외국어라는 데도 힘들더군요. 일본 방송에 진출하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아마 중간에 그만뒀을 거예요.”

그렇게 고생 끝에 일본어를 어느 정도 숙달한 지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다들 외국어 배워 두면 좋다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데, 정말 제가 배워보니까 그 말이 뭔지 알 것 같아요.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하나 더 펼쳐진 기분이에요.” 그러면서 한국에 번역 안 된 일본 소설책을 읽는 재미가 각별하다고 덧붙였다. “요즘은 소설책을 읽고, 블로그에 일본어로 글을 올리며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책을 내고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학 공부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조혜련을 기쁘게 했다. “제가 궁극적으로 바란 건, 사람들이 책을 읽고 뭔가 자기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하는 거였어요. 특히, 나이 많으신 분들이 제 책을 읽고 ‘아 조혜련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학원에 등록하셨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 기뻐요. 나이 들어서 어디 써먹으려고 어학 공부를 하냐고 자식들은 타박하잖아요. 그런데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부를 하는 과정 자체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혼나는 건 당연하고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에서 조혜련은 길에서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인이지만 일본에서 조혜련은 무명이었다. 방송이 끝나면 반성회에 가서 그날 잘못한 것을 지적받고, 매니저에게 갓 데뷔한 풋내기 신인처럼 야단을 맞으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일본에 간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혼나는 건 당연한 거고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지만 처음에는 두 시간만 비행기 타고 가면 인정받는 방송인인데 여기서는 사소한 것 하나도 다 지적받고 고쳐야 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 때마다 여기에 놀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오지 않았냐고 마음을 다독거렸어요. 일은 당연히 제 기준이 아니라 그쪽 기준에 맞춰야 하는 거고, 그쪽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정말 힘들 때마다 ‘이건 일이다, 이건 일이다’라고 주문이라도 외듯 중얼거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속이 상했지만 그때마다 ‘고치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배운 것도 많았어요. 나이가 들면 유연성이 줄어들고 지금 모습에 만족하고, 새로운 것을 잘 인정하지 않잖아요. ‘됐어,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새로운 방법으로 바꿔?’ 이렇게 생각할 텐데 일본에 가서 완전히 신인 대접을 받으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걸 새롭게 익히게 됐습니다. 또, 자존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고요.”

이전까지 조혜련은 자존심이라면 자기주장을 하는 것,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에 가서 부딪치면서 진정한 자존심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추고 타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흔히 목소리 크면 이긴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은 상대를 해주지 않아요. 직선적으로 무 자르듯 이건 이거야, 라고 말하는 것도 싫어해요. 배려심 없는 사람이라고 찍히죠. 질릴 만큼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라 답답하긴 해도 한국 사람이 배울 점이 있어요. 이야기를 하려면 내 목소리를 낮추고, 그쪽이 하는 말부터 들어줘야 해요. 아, 그쪽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쪽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구나, 하는 걸 안 후에 내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러면서 진정한 자존심이라는 것은 남을 배려하면서 나도 배려하는 거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일본 활동으로 얻은 소중한 것들 한국에서의 일, 가족, 친구들

일본 활동을 결심했을 때 가장 마음에 걸린 건 아이들과 남편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좀 편하게 살아라’라는 말에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한참 엄마 손이 필요할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남편의 말에는 갈등이 됐다. “처음에는 아이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엄마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이 되더군요.” 그 말처럼 아이들은 엄마의 공부하는 뒷모습, 텔레비전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잘 챙기는 아이로 자랐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들만을 위한 시간을 내서 ‘엄마는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단다’라는 걸 느끼게 해주려고 애써요. 특별한 것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같이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면서 놀거나 함께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지요. 그런 질적으로 충만한 시간을 나눠서 그런지 아이들이 생각보다 외로워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남편과도 떨어져 있어보니 더 소중하고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주변 사람에 대해서도 그래요.”

일본에서 활동한 후 조혜련은 한국에서 방송할 때 ‘예전보다 훨씬 열심히 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었다고 했다. “저는 잘 몰랐는데 주변에서 그런 말을 많이 해요. 아마, 한국에서 제가 받는 대접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일본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저를 위해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당연한 게 아닌 걸 알았어요. 방송할 때 사람들이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이 났어요. 역으로 일본에서 방송하면서 저는 한국에서의 활동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것 같아요.” 또, 한국과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점도 일본 활동으로 얻은 것 중 하나다. “뭐든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어요. 사람이든 일이든.”

조혜련은 고민이 없는 게 싫고 편안한 것보다 고생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후배들과 일과 관련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해요. 그때마다 ‘그게 제일 행복할 때야.’라고 말해 줘요. 넘어야 할 벽이 없다면, 해결해야 될 고민이 없다면 행복할 것 같죠? 고민이 없는 사람이 건강한 것 같죠? 그런데 완전히 그 반대예요. 고민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건강해요. 고민과 벽은 도전과 희망이라는 동전의 뒷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삶은 헤엄치지 않는 물고기와 같아요. 저에겐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죠. 고민이 있으면 ‘아 나는 해결해야 될 고민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구나.’하고 생각해요. 이 고민을 해결하면 훨씬 더 성장해서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니까. 그런데 넘어야 할 벽 바로 코앞에 있는 사람은 벽 너머를 모르고, 올라가야 할 산 초입에 서 있는 사람은 정상의 풍경을 모르죠. 그래서 먼저 넘어 보고 올라선 선배로 인생의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 벽을 넘으려고 고민하는 그대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지를, 그리고 당신은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힘을 분명 가지고 있다는 것을요.”


☞ [아름다운 서재]조혜련이 추천하는 책
☞ [아름다운 책 人터뷰]조혜련식 일본어 학습법 강연회에 초대합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스크랩] 사진과 함께 한 젊은 날을 위하여 - 포토그래퍼 백성현 | 기본 카테고리 2009-02-03 11:04
http://blog.yes24.com/document/124681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채널예스 > 만나고 싶었어요!
어이구야. 백성현의 포토 에세이 『당신에게 말을 걸다』를 처음 집었을 때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코요태의 래퍼 빽가가 책을 냈다고 해서, 사진 좀 찍는 연예인이 사진집을 냈구나, 심드렁한 기분으로 책을 들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책은 묵직해서였다. 의욕과 욕심이 느껴지는 무게였다. ‘그저 그런 사진 에세이집이라고 생각하지 마시라.’는 걸 주장하는 듯한 무게감에 진지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사백 페이지를 훌쩍 넘긴 책에는 사진을 사랑하는 스물아홉 청년의 이십 년 사진과의 질긴 인연과 자기 일상을 열심히 살기 위해 발버둥친 이야기가 글과 사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성실하게 자기 인생을 사진과 글로 복기하면서, 상처도 실패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의 사진들은 보는 사람 안에 있는 희로애락을 깨운다. 사진이라는 창을 사이에 두고 그가 느꼈던 감정을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진을 찍을지 궁금해지는, 그런 재능이 그의 사진에는 깔려 있다.

생애 첫 책(『당신에게 말을 걸다』)을 냈다. 아무래도 사진전을 할 때나 자기 사진이 잡지에 실리는 것과는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책이 나온 후에, 주변에 티를 내진 않았지만, 감격스러웠다. 출판사에서 갓 나온 책을 손에 쥐는데, 가슴 한쪽이 뻐근하더라.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

책이 꽤 두껍다.

원래는 그것보다 훨씬 원고가 많았는데 30% 정도를 덜어냈다.

어떤 내용이 빠졌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 스튜디오를 내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빠졌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는데 분량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빼게 됐다. 다음 기회에 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책에서 어려웠던 지난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았다. 부모님께서 마음 아파하시지 않던가?

엄마가 책을 보고 울면서 전화하셨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대학 못 간 이야기, 이런 형편에 무슨 사진이냐 싶어서 남대문 시장에 가서 사진기를 판 이야기, 어렵게 사진을 다시 시작했는데 사진기자재를 도둑맞은 이야기…… 처음엔 쓰기 싫었다. 집 형편이 어려운 게 자랑이 아니지 않나?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책에 쓴 이야기 중에서 친한 친구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많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건, 내가 그 시기를 벗어났고 그 때의 상처가 아물었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앞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요태 래퍼 빽가의 사진집인 줄 알았는데, 포토그래퍼 백성현을 만난 기분이다.

많은 분들이 그래 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코요태의 래퍼 빽가가 낸 책이 아니라 사진가 백성현이 낸 책이니까. 처음 사진가로 활동할 때 가장 속상한 것이 사람들이 나를 사진가로 보지 않는다는 거였다. 사진 찍는 사람이니까 사진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건 상식적인 요구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 처음에는 고민도 많이 했는데, 시간과 내 노력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한다. 십 년쯤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 자연스럽게 나를 사진가로 받아들여주겠지.

앞으로 연예 활동을 할 생각이 있나?

나는 코요태 활동을 할 때도 연예 활동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예인을 특별하게 취급하지만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 이전에 댄서와 모델로도 일했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진은 좀 다르다.


고등학교 때 사진을 전공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사진은 운명이다. 내 인생을 지탱해 준 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가족, 두 번째가 사진이다. 엄마는 굉장히 생활력이 강하고 다부지고 자식이 잘못하면 호되게 야단치는 분이시다. 그에 비해 아버지는 엉뚱하고 기발하시다. 아버지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끔 못 따라간다.(웃음) 두 분은 자식들에게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고 하셨고, 그렇게 살고 계시다. 그런 부모님이 있어서 나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진. 사진은 내 평생의 연인이다. 한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나 더 애틋하다. 사진기를 처음 잡았을 때가 아홉 살 때였다. 장롱에 숨겨진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를 엄마 몰래 들고 나와 친구들을 찍었다. 야단을 맞아도, 두들겨 맞아도 ‘다시는 사진을 안 찍겠다’는 말을 안 했다. 맞는 것보다 사진을 못 찍는 게 더 슬펐으니까. 결국 엄마가 졌다. 우는 나를 데리고 사진관으로 데리고 가 필름 현상을 맡겼다. 아홉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취미가 없다. 술도 잘 안 마시고, 당구도 안 친다. 게임도 못한다. 사진을 찍는 걸 빼고는 하는 게 없는 셈이다. 아마, 내 인생에는 ‘사진’이라는 두 글자 말고는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대부분을 사진이 차지하고 있는 셈인데……. 물론 좋아서 하고 있겠지만 분명 사진 때문에 희생되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겠지. 사진 하느라 있는 돈은 다 사진에 쏟아 붓고 남들처럼 연애도 못하니까. 그렇지만 사진을 찍는 그 기쁨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 삼사일 동안 꼬박 밤을 새면서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방송 나가서 몇 시간 수다 떨어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사진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일은 계속하고 있지만.(웃음) 그렇지만 아주 잠깐동안만이다. 그건 몸이 힘들어서 드는 생각이지 사진 때문에 드는 생각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 스스로 운명이라고 생각한 일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포토그래퍼로 자신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굳이 말하자면 포트레이트 사진을 잘 찍는 것 같다.

책에 실린 사진 중에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 사진이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참, 밝고 환하게 웃고 있더라. 열일곱의 순수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스물아홉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없다. 그 사진은 그때에만 찍을 수 있는 순간을 잡았다. 사진이 좋은 점이 이런 거다. 몇 십 년 후에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감정과 느낌과 기억이 재생된다. 많은 것을 잊고 살지만 사진 한 장으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이런 점도 사진의 매력 중 하나다.

스튜디오는 언제 오픈했나?

재작년에 열었다. 전 재산을 쏟아 붓고 빚까지 져서 낸 스튜디오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안간힘을 썼다. 공사도 전부 내 손으로 했고, 원목을 사다가 테이블을 만들고, 하다못해 전선이나 전구도 다 내가 발품을 팔아 사 온 것이다. 겨울에 공사를 해서 무척 추웠지만 매일 매일 파이팅 했다. 그렇게 힘들게 낸 스튜디오라 그런지 여기만 나오면 힘이 난다. 작업이 힘들어도, 사진이 잘 안 풀려도 여기만 오면 기운을 내게 된다. 여기 있는 작은 것 하나하나도 다 내 손을 거친 것이라 애착도 크다.

나중에 유명해져서 훨씬 더 좋은 스튜디오를 가진다고 해도 이곳만큼은 특별하진 않을 것 같다.

누구나 처음은 특별하니까. 가수들도 첫 무대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잊어버리지 않지만 열일곱 번째 무대를 기억하진 못한다. 이곳은 내가 살면서 계속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더 좋은 스튜디오를 갖게 된다고 해도, 이 스튜디오를 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십 대의 내가 부러울 것 같다. 스물아홉의 내가 해맑게 웃는 열일곱의 나를 부러워하듯.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일반인들도 전문가 못지 않은 사진을 찍고 있다. 프로페셔널한 포토그래퍼가 볼 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가장 큰 차이는, 프로는 돈을 받고 아마추어는 돈을 받지 않는다.

굉장히 명쾌하고 단순한데…….

아마추어는 자기가 원하는 사진을 찍으면 되고 프로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 프로의 사진과 아마 사진 사이에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만큼 잘 찍는 아마추어도 많다. 다만, 프로는 좀더 능숙하겠지. 프로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사진을 찍는 데 문제가 없어야 된다. 기계적인 것에서 클라이언트와의 의사소통까지. 그렇다고 내 개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내 개성을 조화시키는 것도 프로라면 할 수 있어야 한다. 상의를 해서 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거절한다는 게 내 나름의 원칙이다.

그러면 일하기 어렵지 않나?

세상에는 포토그래퍼의 수만큼 개성이 있다. 그 개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존재 이유가 있는 거다. 어떨 때는 이 개성이 필요하고 어떨 때는 저 개성을 원한다. 그래서 그 많은 포토그래퍼들이 밥을 굶지 않고 산다.(웃음) 사진은 테크닉이 아니라 개성이고 감성이다. 테크닉적으로 완벽한 사진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테크닉은 누구나 3년 정도만 하면 거의 다 익힐 수 있다. 그 다음은 감각 싸움이고, 크리에이티브로 자기가 얼마만큼 역량을 가졌는지에 달려 있다. 사진 속의 무언가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되는데, 그것이 개성이고 감성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나 사이에 사진을 접점으로 뭔가를 느끼고 환기하게 되는 거다. 내 사진을 원하는 건 내 감성과 내 개성이 그쪽에 원하는 이미지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접점이 없으면 사진 작업하기가 힘들다. 나도 그쪽도 서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으니까. 다행히 아직까진 큰 마찰 없이 일해온 것 같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배웠으니 필카 쪽에 더 애착이 있을 것 같다.

일로 하는 건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개인적인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찍는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배워서 그쪽이 더 익숙하다. 디지털 카메라는 찍고 지우고, 찍고 지우고 하는 데 비해, 서른여섯 장의 필름을 가지고 찍을 때는 최선을 다해 셔터를 누르게 된다. 디지털은 사진을 찍은 후에 수정할 수 있지만 필름은 그럴 수 없다. 찍는 순간에 집중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사진 자체가 날아가 버린다. 집중해서 셔터를 누를 때의 그 느낌은 디지털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인화해서 사진이 나올 때까지의 기다림, 기대감도 있다. 디지털은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덜하다. 나는 앨범 세대, 필카 세대라 그런지 디카로 사진을 찍어도 꼭 인화를 한다. 손을 만질 수 있고, 앨범에 끼워 펼쳐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을 사랑한다. 디지털도 디지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나는 필름 카메라가 좋다.

디지털로 찍으면서 수정은 많이 하는 편인가?

꼭 필요한 부분에만 하려고 한다. 수정하는 걸 좋아하는 사진가는 없다. 일단 힘이 너무 들고.(웃음) 나는 필름 카메라 느낌이 나도록 수정하는 편이다.


지금 가장 찍고 싶은 사진은 어떤 사진인가?

이십 대의 내가 찍을 수 있는 사진…… 창의적이고 신선하고, 거칠지만 새롭고 영감을 주는 사진을 찍고 싶다. 나는 아직은 연륜이나 깊이보다 젊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에 도전하고 싶다. 완벽한 사진보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사진 말이다. 나에게 사진은 감성의 고유이며 타인과의 소통이다. 내가 사진을 찍으며 느꼈던, 사진에 담으려고 했던 감성을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 나는 자기만족을 위해 사진을 찍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봐 주는 사진, 보고 좋다고 느끼는 사진을 찍는다. 이것은 내가 나이를 더 먹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10년 후쯤에는 뉴욕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싶다. 이건 아마 이룰 수 있을 거다. 뉴욕에 있는 에이전시 여덟 곳에 사진을 보냈는데, 네 곳에서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아마, 이중 한 곳과는 계속 일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모든 사진작가들의 꿈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내 사진을 싣고, 퓰리처상을 받는 것. 나는 일부러 목표를 높이 잡는다. 목표가 높을수록, 이루기 힘들수록 더 많이 노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네가 그걸 할 수 있겠어.’ 하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 목표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 [아름다운 서재]백성현이 추천하는 책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1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