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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프라하에서의 마법 같은 하루 - 이지혜 | 기본 카테고리 2009-06-1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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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작가와 떠나는 세계여행

이런 아침

프라하의 새벽

전날 밤 커피를 마신 탓일까.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다가 잠에서 깼다. 새벽 4시. 창문은 골목의 가로등 불빛으로 주홍색이다. 빗소리가 들린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조용한 민박집의 새벽을 울리는 유일한 소리다. 조용히 일어나 창문을 열고 얼굴을 창밖으로 내민다. 빗물을 머금은 촉촉한 새벽바람이 귓불에 속삭인다. 안녕.

보통, 한국에서 출발하는 프라하행 비행기는 프라하 시간으로 저녁 이후에 도착한다. 짐을 찾아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나면 지쳐 잠이 들기 마련. 하지만 시차 때문인지 깊이 잠들지 못하다 새벽이면 눈이 떠진다. 그러고 나면, 제일 먼저 말을 걸어오는 건 언제나 프라하의 새벽 공기다. 그리고 숙소 창 밖으로 보이는 동네 골목길. 이럴 때 비라도 온다면 더 없이 낭만적이다.

여행인데 하필 비가 내린다고 인상 찌푸릴 필요는 없다. 변덕스럽고 비가 잦기로 명성이 자자한 유럽 아니던가. 여행은 비행기에 있는 순간에만 해당되는 단어고, 내리는 순간 모두가 현지인이 되는 거다. 지금이라는 순간에 숨쉬는 곳이 사는 곳이니까. 우리는 어차피 오늘을 살고 지금 존재하는 거니까. 나는 프라하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여행은 더없이 여유로워진다. 인생 자체가 여행이고 여행은 또 다른 일상이다. 일상에는 비가 오는 날도 있고 화창한 날도 있다. 찰칵. 창 밖으로 보이는 비 오는 프라하의 골목을 카메라에 담는다.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을 따라 이런 저런 기억들이 지나간다. 잠옷 바람으로 시작한 프라하의 첫 관광은, 민박집 창 밖. 어느새 새벽 5시다.

비 오는 골목과 야간 트램

어차피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를 메고 새벽 거리로 나간다. 손에 쥐고 있는 지도 위에 표시한 민박집 위치를 확인하며 좌우로 두리번거린다. 골목 끝에서 큰 길이 이어진다. 아직 캄캄한 새벽, 비에 젖은 돌바닥 길 위로 트램이 지나간다. 프라하에는 24시간 트램이 다닌다. 조금 전에 트램이 멈춰 섰던 정거장으로 가서 운행 시간표를 확인한다. 카를교로 가는 다음 트램이 올 때까지 15분 더 기다려야 한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마치 시 한 편 같아 감격해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 본다. 건너편 정거장에 멈춘 트램도 찍고, 비에 젖은 돌바닥도 찍고, 간판도 찍고…….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비 내리는 새벽 냄새는 마음에 고이 담아둔다. 가이드북의 사진에서 본 트램 승차권 기기가 보이지 않는다. 이 새벽에 검표원이 있을까. 용기를 내어 무임승차하기로 마음먹는데 트램이 온다. 목적지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새벽 무임승차와 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 그리고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

새벽의 카를교

프라하의 주요 관광지는 프라하 성과 구시가 광장, 그리고 카를교다. 프라하 중심을 가르는 블타바 강의 여러 다리 중에 가장 오래된 다리가 바로 카를교다. 예로부터 중심 상업 지구였던 구시가지와 프라하 성 아래에 위치한 말라스트라나 지구를 연결했던 다리로, 보행자 전용 구간이다. 옛날에는 통행세를 받는 곳이었다는 카를교 양 끝의 탑문을 통과하면 마술처럼 갑자기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주황색 지붕들로 연이어진 말라스트라나 언덕과 그 위의 프라하 성이 블타바 강과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놓여있다.

프라하 성

디즈니의 트레이드마크인 성이 바로 이 카를교에서 보이는 프라하 성을 모델로 만든 것이란다. 꿈과 상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마크가 실제 사물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니. 프라하 성은 그 안에 들어가서 직접 보는 것보다 카를교에서 볼 때가 가장 아름답다. 프라하 성이 아름다운 것은 그 주변에 블타바 강과 말라스트라나 언덕과 맑은 하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새 새벽 6시가 다 되어간다. 여러 장비로 무장한 두세 사람이 삼각대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있다. 동트는 새벽. 카를교 사진이 가장 멋지게 나오는 타이밍이다. 무엇보다 뜨는 해와 함께 드러나는 갖가지 색상의 건물들과 언덕의 숲이 그야말로 마법 같다. 다리 위의 여러 동상 중에 성 네포무크 동상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한다. 정말 여긴 마법의 공간일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동상에 손을 대고는 막상 한참을 그대로다. 바랄 것도 참 많은 욕심쟁이처럼.

배는 고픈데, 카페와 식당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대로 민박집으로 돌아와 차려진 아침을 먹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억지로 현지 시차에 맞추느라 피곤해하지 않기로 한다. 서둘러 관광을 떠나는 민박집 동기들을 배웅하고 천천히 침대로 돌아와 아침잠에 빠져든다.

어떤 오후

꾸물거리며 일어나니 어느새 정오. 새벽 내내 비가 내리더니 햇살이 화창하다. 자외선차단제를 두텁게 바르고 나와 점심부터 먹기로 한다. 지도는 접어두고 발길 닿는 대로. 프라하 시민처럼 내 멋대로 걸어간다. 마치 길을 아는 것처럼 그렇게 걷다보니 관광객으로 붐비는 신시가지의 시작점인 국립 박물관과 바츨라프 동상이 나타난다. 숙소가 시내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프라하라는 도시가 이렇듯 자그마하다. 웬만한 관광지역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위해 차는 통제된다. 유난히 많이 걸어야 하는 까닭에 편안한 신발은 필수다. 신시가지 관광의 중심지인 바츨라프 광장의 대로에는 눈에 쏙 들어오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왠지 관광객이 많은 그곳은 지금 나의 현지인 기분과는 맞지 않을 것 같아 중심에서 갈라지는 길가로 들어간다.

식당 입구

루체르나는 프라하 최초의 다목적 멀티플렉스 건물이다. 1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영화관이며 여러 카페와 가게, 댄스홀과 전시관까지 모두 훌륭한 품격을 갖추었다. 건물 내부 홀에는 바츨라프 광장의 바츨라프 동상을 거꾸로 본 따 만들어 천장에 달아놓은 동상이 많은 서양 관광객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이 건물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중심지에서 몇 걸음 벗어나 있을 뿐인데도 관광객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다. 이 건물 지하에 있는 레스토랑을 발견. 호스뽀다 루체르나. 식사로는 체코 전통요리인 끄네들로-젤로-베프로를, 물 대신 맥주를 주문한다.

식당에서의 점심 식사

체코는 맥주 원조 국가라더니, 모든 테이블 위에는 짙은 황금색 맥주가 담겨진 두꺼운 유리잔이 놓여 있다. 맥주는 금방 나오고 식사는 늦게 나오다 보니 맥주 500CC 한잔을 거의 다 비울 무렵에야 식사가 나온다. 거품 가득 진짜 생맥주가 여행의 긴장을 설렘 100퍼센트로 바꿨나 보다. 프라하에서는 낮술, 마실 만하다. 요리에서 끄네들로는 팥 없는 찐빵 같은 체코 전통 빵이고, 젤로는 절인 양배추, 베프로는 구운 돼지고기다. 왠지 식사가 맛있고 푸짐한 맥주 안주 같다. 사람들이 물 대신 맥주를 마시는 이유를 알겠다.

성비타 성당

새벽에 멀리서 본 프라하 성을 다음 목적지로 잡는다. 트램 22번을 타고 프라즈스키 흐라드 역에서 하차. 프라즈스키는 프라하의 형용사형. 흐라드는 성이라는 뜻이다. 프라하 성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인 흐라드차니는 말 그대로 성 주변이라는 뜻이다. 카를교에서 바라볼 때 보이는 성이 흐라드차니. 그 아래로 이어지는 언덕이 중세부터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던 말라스트라나다. 성을 둘러본 이후 말라스트라나 언덕 위에 있는 페트르진 공원으로 산책을 가야겠다. 일단은 프라하 성으로 고고씽. 성으로 가는 길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벨베데르 여름 궁전. 마침 개방을 하고 있어서 옛 왕실의 여름 정원을 둘러본다. 나무들이 인위적으로 손질되어 있지 않은 점이 흥미롭다. 일일이 깔끔하게 손질하여 가꾸는 프랑스의 정원과 확실히 구별된다. 프라하를 ‘중유럽의 파리’라고 하지만, 그 둘은 확실히 다르다. 프랑스와 체코의 정원은 어쩌면 일본과 한국의 정원과 비교될 수 있지 않을까.

프라하 전경

프라하 성 왕궁에는 지금도 체코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다. 첩첩이 경호원을 세우고 수비하는 대통령 집무실만 생각하던 나는, 관광지 한복판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광고에도 등장하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 비타 성당. 그 높은 꼭대기에 오르는 계단에서는 국적을 초월해서 사람들 모두가 같은 소리를 낸다. 헉헉. 땀에 온몸이 흠뻑 젖고 더 이상은 못 오르겠다 싶을 때 시원한 바람이 어디선가 들어온다. 다 올라왔다. 그러고는 말없이 나만의 황홀한 자유에 빠진다. 높은 성당 탑 아래로 보이는 프라하 전경이 마음에 있던 모든 굴레를 밀어내고 들어온다. 눈이 머무는 곳마다 그 위를 날 듯 내 맘은 자유롭다.

중고 서점

프라하 성을 다 둘러보고 페트르진 공원을 가기 위해 말라스트라나 언덕을 오른다.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 그리고 눈에 들어 온 중고서점. 들어가자마자, 오래된 책 냄새가 몸과 맘을 짜릿하게 한다. 오래된 옆서 뭉치들도 있어서 살펴보니, 예전에 실제 누군가가 보내고 받았던 엽서들이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씨지만, 가만히 손을 대고 느껴보면 전해져온다. 전쟁터에서 애인에게 보낸 엽서, 출장 중에 가족에게 보낸 엽서…….

서점 아저씨

정성스레 붙인 우표와 그 위에 남아있는 우체국 도장이 타임머신이 된다. 무섭게 생긴 서점 아저씨는 막상 말을 거니, 웃는 모습이 무척 순수하시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수줍게 웃어주신다. 체코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런 꾸밈없는 순수함이 내재되어 있다. 겉으로 잘 다듬어진 예의로서의 친절이 아니다. 강대국 틈에 당하기만 한 역사 속에 더 깊이 숨어들어간 원초적인 순수함이, 그들 속에 있다. 그 점이 우리 한국 사람들과 참 많이 닮아서, 우리는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점을 나오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카페로 들어간다. 전형적인 체코 건물은 외관보다 내부가 더 화려하고 복잡하다. 겨울이 길고 추운 나라들은 대개 실내 생활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왔기 때문이다. 정원도 앞뜰이 아닌 뒤뜰 중심이다. 카페의 딱딱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찾다가 미로처럼 꾸불꾸불 길게 한참을 들어가 카페 뒤뜰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창문이 열려 빗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커피 한 잔을 다 비우고 나니, 비가 그친다.

페트르진 공원

언덕 정상에 있는 정원

다시 페트르진 공원으로 가는 길. 숲 속의 나무들이 비 때문에 그 녹색 향기를 더 짙게 풍긴다. 가벼운 등산을 하듯이 그렇게 페트르진 공원을 산책하며 정상에 있는 그 정원에 들어간다. 모든 아름다운 장면들이 예고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프라하 관광의 묘미다. 서로 다른 두 모습이 연결 개체 없이 붙어 있다. 원초적인 숲, 그 자체와 잘 가꾼 정상의 정원. 벌써 오후 5시. 소나기로 흐려졌던 하늘에 다시 저물어가는 해가 비취면서 페트르진 정원 정면에 무지개가 생긴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지만 무지갯빛이 잘 담기지 않는다. 사진으로 남기길 포기하고 무지개를 정면으로 하는 계단에 앉아서 온 몸에 그 장면을 담아둔다. 무지개가 사라지기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기로 한다. 무지개에 취해 있는데, 커다란 강아지가 옆자리로 와서 장난을 건다. 강아지 주인이 웃으며 걸어오고, 영어를 할 줄 아는 그 체코인과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 오는 날이면, 페트르진 정원에서 이렇게 무지개를 볼 수 있단다. 혼자 오르던 언덕을 셋이서 내려간다. 방금 사귄 체코 친구와 강아지, 그리고 나.

좋은 저녁

친구와 강아지

끄네들리키

말라스트라나를 함께 내려오며 체코 친구와 나는 어느새 꽤 친해진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온 친구처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하고, 친구는 국립극장 옆에 있는 카페 슬라비아로 데려간다. 블타바 강변을 향해 전면 유리로 되어있는 널찍한 카페는 예로부터 명소란다. 중앙에는 피아노 연주가 울리고 있다. 체코 전통요리인 스비치코바를 시키고 또 맥주를 주문한다. 거품 가득 모든 갈증을 씻어내는 쌉싸름하게 톡 쏘는 넘김이 일품이다. 아마도 한국에 돌아가면, 이 맛이 너무도 그리울 것이다. 스비치코바는 얇은 소고기 스테이크에 특유의 갈색 소스가 덮여져 나온다. 그 위에 레몬과 생크림과 산딸기가 놓여있고, 소스를 찍어 먹을 빵이 함께 나온다. 이 빵이 점심에 먹은 요리에도 나왔던 끄네들리키로, 영어로는 덤플링이라고 하는 하얀 찐빵 맛이다. 우리네 밥이나 김치처럼, 그렇게 식사마다 등장한다.

프라하의 밤거리

구시가와 바츨라프 광장

골목

식사를 하고 또 맥주를 마시며, 새로운 친구와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2차를 가기로 한다. 재즈클럽 매트로폴리탄. 프라하에는 구글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몇 유명한 재즈바가 있다. 매트로폴리탄은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지하의 작은 재즈카페다. 빨간색 의자와 테이블은 앙증맞게 작아서 꼭 난쟁이 집에 온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곳의 연주자 할아버지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더 시니어스 윙거스. 할아버지 재즈 연주자들의 그룹 이름이다. 할아버지들의 평균 나이는 70세로, 각자의 악기들이 그분들 신체의 일부인 듯 그렇게 보인다. 연주하시는 곡마다 평생을 거쳐 연주한 사람들만이 낼 수 있는 그런 소리가 난다. 지금까지 그렇게 편안한 재즈는 처음 들어본다. 피아노를 연주하시는 할아버지는 무의식적으로도 손가락이 절로 움직이는 사람처럼, 표정은 마치 졸고 계신 것만 같다. 그들에게 반해버린 나는 연주가 쉬는 시간에 다가가 말을 건다. 피아노 치는 할아버지는 다행히 영어를 하실 수 있었다. 아기를 늦게 낳아서 나와 동갑인 어린 딸이 있다며 반가워하신다. 전쟁 통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미군 재즈 음악에 매료되어 그대로 흉내 낸 것이 할아버지 재즈 레슨의 전부였단다. 그러고 보니, 더 시니어스 윙거스의 연주는 옛 영화에서 흐르는 음악을 닮았다.

할아버지 재즈 연주가들

그들에게 매료된 나

연주에 맞춰 모라비안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나니, 나는 어느새 프라하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졌다. 체코는 크게 보헤미안 지방과 모라비안 지방으로 나뉘는데, 모라비안 지방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마실수록 매력적이다. 친구와 나와 강아지는 밖으로 나와 한참을 걷는다. 구시가지 골목골목과 광장. 그리고 또 골목을 지나 카를교로. 프라하는 원래도 밤이 아름다운 도시라지만, 술에 살짝 취하고 나니 그야말로 내 마음을 다 가져가 버리는 듯하다. 천 년간 그대로 머물고 있는 구시가의 골목들에서 나는 모든 현실감각을 놓고 맘껏 환상에 잠긴다. 중세의 집시처럼 자유를 만끽하며.

밤에 다쎽 찾은 까를교

프라하 성의 야경

새벽에 왔던 카를교를 밤에 다시 찾는다. 대체 이 녀석은 몇 가지의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너무 벅차게 감동받을 때는 담담히 좋다, 라는 한마디를 내뱉게 된다. 다리 위의 은은한 가로등 조명과 저 멀리 빛나는 프라하 성은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데 내가 알아온 현실과 너무나 다르다. 이곳에서는 누구라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 우리 앞에서 어떤 연인이 키스를 나눈다. 새벽에 소원을 빌던 동상에 가서 다시 소원을 빌어본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곳에서 키스를 나누기를. 사랑하고 싶다면 프라하에 와 볼 일이다. 사람이 아닌 한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나를 채워주고 뜨겁게 만드는 같은 사랑이 된다.

산다는 건 어디서나 같은 굴레로 돌아간다. 낮에는 하루 세끼를 먹고 밤에는 잠에 들면서. 하지만 어떤 하루는 여러 다른 하루들이 이어질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어쩌면 프라하에서의 하루가 그런 마법을 지니는지도 모르겠다.


이지혜
『프라하 홀릭』
한양대학교에서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전공했다. 여행을 떠나면 그곳에 눌러앉는 습성을 타고난 그녀는, 가끔 떠난 여행에서 쉽게 돌아오지 못해 졸업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졸업을 했다. 이후 현실적인 이유로 공기업에 취직했으나, 2년 만에 처음 떠난 프라하 여행에서 지난 습성이 되살아나 사표를 제출하고 프라하로 날아갔다. 이후 프라하에서 1년 동안 행복한 장기 체류를 감행했다. 너무 아름다워 잔인한 프라하에서 첼로를 배우고 체코어를 배우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친구를 만들었다. 항상 느리고 엉성한 스스로를 걱정했지만, 80년에 태어난 또래의 평균 수명이 120살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직 자신의 인생이 90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희망을 얻었다. 프라하의 기운을 받아 묻어두었던 글쟁이의 꿈이 되살아났고 다시금 행복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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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 소설이 나”를 선택하다 | 기본 카테고리 2009-06-0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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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뚜루와 함께 고고씽~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윌리엄 포크너 저/김명주 역 | 민음사

20세기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문제작. 미국 남부의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시골 아낙의 죽음과 그녀의 가족이 겪는 슬프면서도 기묘한 장례 여행을 통해 삶과 죽음, 선과 악, 운명과 욕망에 대한 무거운 성찰을 담고 있는 포크너의 초기 걸작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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