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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잘 버티고 견뎌요... | 약속의 장소 2007-12-3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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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좋은 집이라는 건,

좋은 블로그라는 건,

 

으리으리하고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저택 같은 것도 아니고,

눈 띵~그래질만큼의 놀라운 이야기와 자기 자랑이 범벅된 저장소가 아니라,

 

항상 사람들이 찾아주는 집이라고,

다른 블로거들이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는 블로그라고, 생각합니다.

 

 

... 내년에도 제가, 서툴기는 하지만,

성심성의껏 요리를 대접하겠습니다. 필요한 요리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제 못된 성정 탓이겠지만,

여기서까지 연말연시의 클리셰들을 남발하고 싶진 않기에,

 

저는 당신들 모두가,

복 많이 받고, 행복하고, 건강하란 말은 않을래요.

 

사실,

행복은 찰나고, 우리가 발 디딘 이 세계는 우울하고 슬픈 것 알잖아요.

그저 저는, 당신이 그 일상을, 그 세계를 잘 버티고 견디길 바란답니다.

그건 물론, 나에게도 하는 말이구요.

 

그러니까, 우리 찾도록 해요.

복도 받기를 기다리기보단 찾고,

행복도 떨어지기를 바라기보단 찾고,

건강도 저절로 지켜지기를 원하기보단 찾아요.

 

... 저는, 당신이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딘다면,

당신에게 충분히 감탄할 준비가 돼 있답니다.

나는, 내년에도 당신을 그렇게 감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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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인물, '조병준'... 고맙습니다... | 바람구두 이야기 2007-12-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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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쏟아지는, 연말 특집.
올해의 사건사고('10대 뉴스'란 익숙한 제목!), 올해의 인물,  그리고 이런저런 명목의 시상식. 그렇다면, 나도 살짝 걸쳐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나도, 칼 하나를 뽑았다. '올해의 인물'.


지극히 편협하고, 사소한 취향의 끌림에 따르고, 누구의 압력도 받지 않은 선정. 이른바 '내 꼴리는대로'. '타임'에서 뽑아대는 인물만이, '올해의 인물'은 아니올시다. 전 지구적 지명도나, 지구를 구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하지 않아도 된다. 뭐, 유명세 같은 것도 노 필요.

 

두두둥. 그래서,
조.병.준.


선정배경이 궁금하다규?
올해 숱하게 만난, 이 사람 저 사람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만남'이기 때문이다. 뭐, '의미'라는 레토릭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의미있는' 대신에, '즐거운' '행복한' '알싸한' 등으로 바꿔도 무방하니까. 아니면, '기억에 남는'이라던가. 어떤 레토릭을 붙여도 좋지만, '올해의 인물'은 어쨌든 조.병.준.

 

찬바람이 슬슬 불어오던 때였다.
조병준 선생님을 처음 눈 앞에서 만난 것은. 11월13일. 그날은 또한, 전태일 열사의 37주기였다. 임종진 선배의 첫번째 개인 사진전을 보러갔던 날. 뒷풀이가 진행되고 있었고, 불쑥 우리 자리에 나타난 한명의 자유인. 처음엔 몰라봤다. 내가 좋아하던 작가 조.병.준.인줄 몰랐다. "그러고도 팬 맞아?"하고 깔깔대도 할 말은, 없다.^^; 10년 가량, 마음 속에서만 좋아하던 작가를 눈앞에서 알현하다니.

 

질펀한 술자리에서 나는 즐겁고 또 즐거웠다.
글과 마찬가지로, 조병준 선생님의 영혼은 자유로웠다. 나는, 그 알싸한 자유의 냄새에 흠뻑 잦아들었지비. 또한 유쾌했다. 구린내 나는 권위 같은 건, 시궁창에 내던진 예술가의 향취랄까. 선생님은 얼마전 생애 첫 시집을 냈고, 여전히 지긋지긋한 글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광석을 따라 불렀다. 선생님에겐, 여전히 여행이 묻어있었고, 사랑이 방글방글. 결혼하지 않은, 비혼 노총각의 아우라도 이리 아름다울 수 있으니. 내 마음이 충만했던, 아름다웠던 시간.

 

선생님을 만난 건, 올해가 준 선물.
선생님의 덜렁덜렁한, 슬렁슬렁한, 그러면서도 섬세한 마음 씀씀이가 나는 좋았더랬다. 나는 교과서를 좋아하지 않지만, 조병준 교과서라면 우적우적 씹어먹어도 좋으리. 사람 만나기의 즐거움은, 이런 경우 아니겠는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런 말,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아. 개나 소나 만난다고 다 좋은 건, 누구를 만나도 좋지 않다는 말과 똑같은 게지. 새 친구를 만나 사귀는 기쁨을 알려준 선생님에게 감사.

 

조병준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후, 저녁 한끼 먹자는 말씀에, 외할머니 제사 때문에 못했지만, 나는 다시 선생님을 만날 설렘을 갖고 있다. 다시 만날 때 부끄럽지 않아야할텐데. 부디 2008년에도, 그 경쾌함과 자유의 냄새를 흠뻑 흩뿌려주시길. 세상에 뿌려진, 조병준만큼~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셔야 해요~

 

참, '올해의 인물' 수상자에겐 무엇을 시상하냐고? 뭐, 그냥 내 고마운 마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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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하게 '안녕...' | 북카페 2007-12-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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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작별

정이현 저
마음산책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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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 무엇을 떠나보내고 싶어서였을까. 무엇을 정리하고 싶어서였을까. 누군가 그러더라. 연말, 소득공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안에 가득찬 미련한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흠, 그럴 듯하단 생각이 들긴해.

 

사실, '작별'이란 제목이 냉큼 마음으로 들어왔다. '이별(離別)'이 아닌, '작별(作別)'이어서 좋았달까. 그게 뭐, 별다른 차이냐고 투덜거리면, 할말은 없어.^^; 순전히, 내 억측이지만, 작별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위라면, 이별은 왠지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야. 이별은, 쓸쓸한 느낌이 더해.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그러더라.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 또는 그 인사', 이별은 '서로 갈리어 떨어짐. ≒별리·상별'. 내겐, 혀에서 구르는 '작별'의 어감이 더 좋아.

 

정이현은, 말하고 싶어했어. 나직하게. 나는, 그 말을 조근조근 듣는 아이가 됐어. 별다른 이유가 있겠어. 진짜, 작별할 시간이잖아. 2007년에게. '마지막'이라는 말이 주는, 이 묘한 감상들. 당신도 알잖아. 말끝마다, 마지막, 마지막 하면서 사람들은 어떤 주술을 외지.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어느 순간에 대해. 나는, 그 순간을 나누고 싶은 책으로 <<작별>>을 고른 게지. 나에게도, 영영 작별을 고하고픈 2007년의 어떤 순간들이 있으니까.

 

정이현은, 7개의 감정을 분절해 놨어. 외롭게, 가득하게, 어른스럽게, 자연스럽게, 사랑스럽게, 뼈아프게, 당혹스럽게. 덜그럭덜그럭. 정이현은, 균질하지 않아. 감정의 결은 출렁거리면서도 켜켜이 생의 결을 쌓아가고 있더라. 굳이 어렵게 따라갈 필요는 없더라. 자신을 증명하면서 타인과 소통하고픈 욕망에 시달리면서도, 타인과의 부대낌에 에라이,하고 고독을 택하고픈 소망 사이에서 외줄을 타기도 한다.

 

나는 처음, 정이현을 읽었다. 대체로 <<작별>>은 나른하고 미끈해. 섬뜩한 귀기나, 감정의 파고가 벅차 오르는 클라이맥스는 없어. 이 글에는, 도시 중산층, 큰 굴곡 없이 사랑받고 자란 사람의 향기가 은연 중에 뿜어나오더라. 뭐, 그것이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그런 말은 아니야. '마지막'을 레떼르를 붙이고 보기엔 무난하단 얘기. 2007년12월31일과 2008년1월1일이 사실 다를 건 없지만, '작별'은 12월31일에 어울리는 인사가 아닐까. 정이현의 '단칸방'에서 나온 지금, 나는 그냥 '90년대'가 아른거린다. 보고 싶거나, 그리운 그런 것은 아니고. 작별도 제대로 할 필요가 있지. 발길에 걷어채는 과거 때문에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다고? 발목을 친친 감으면서 매달리는 미련과 후회 때문에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겠다고? 그래도 우린, 거닐어야 한다는 걸 알잖아. 생은 그래도 지속됨을 알잖아.

 

그래, 2007년의 '균열'은 뒤편으로 밀어넣고. 2008년을 향한 '항해'가 기다리나니.

 

그래,

작별은,
'뜨거운 안녕'보단 '나직한 안녕'이 어울린다.

 

안녕...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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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0일, 매염방을 떠올리다... | 구름의 저편 2007-12-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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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0일. 한해에 '안녕'을 고할 시간.

 

그리고, 4년 전, 별 하나가 하늘로 솟았다. 매염방(메이옌팡). 앞서 8개월여 전, 스스로 안녕을 고한 절친한 친구, 장국영의 뒤를 이었다. 자궁경부암이라고 했다. 2003년은 그랬다. 장국영, 매염방... 나는, 내가 관통한 어떤 시대가 접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내 홍콩영화의 한때와 궤를 같이했던 스타였다. 그들의 몸짓과 솰라솰라에, 나는 눈과 귀를 쫑긋거렸다.

 

매염방은, 어째 좀 무서웠다. 인상이 강렬해서였을까. 왕조현, 종초홍, 장만옥, 임청하 등에 비해 호감도는 솔직히 떨어졌다. 그래도 꾸준히 내가 만난 영화에서 그는 등장했다. <인지구> <반생연> <미라클> <홍번구> <심사관> <신조협려> <영웅본색3> <금지옥엽2> 등등. 그리고, 우연찮게, 국내엔 개봉도 않은, 마지막 유작이 된 <남인사십>을 봤다. 그는, 내 호감도와는 무관하게 홍콩에서, 아시아에서 대스타였다. 한국에도 1번 왔었다. 88올림픽이 열리기 전의 행사에서. 그는 결혼을 않았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단다. 죽기 전 2003년 생애 마지막 콘서트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는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남겼단다.

 

그런 그는 생전,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단다.
"내가 이일을 그만둔 후에 나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지 모르겠어요.
내 소망은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볼 때 내이름을 떠올렸으면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는, 소망은 이룬 셈이겠다. 오늘 누군가는, 차가운 기운 속에서 별을 보며, 매염방을 떠올릴 테니까. 저 구름 위에서, 절친한 오누이 사이같던 장국영과 함께, 구름 아래를 쳐다보면서 웃음 지을지도...

 

아래, 3년 전, 그의 1주기를 맞아 긁적였던 글. 다시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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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한해. 13월, 14월이 아닌 이제는 2005년이라는 새로운 주기를 맞이해야 할 길목. 더 이상 디딜 곳도 거의 남아있질 않고 지나간 날들에 대한 기억들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시기다. 가는 해를 잊기 위한 사람들의 들뜬 몸부림과 외침, 그리고 오는 해를 맞이하려는 설렘과 기대가 교차하는 즈음.

 

12월의 끝머리는 그런 시기다. 1년 전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의 마지막을 하루 앞둔 날, 바다 건너 해외에서 온 소식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한 시대의 접힘에 방점을 찍었다.

 

'2003년 12월 30일 홍콩 배우 매염방 사망'

 

달뜬 세밑 풍경 속에서 홀연히 날아든 그녀의 죽음. 그해 봄 장국영의 죽음에 이어 그녀가 2003년을 마무리 지었다. 한해가 지나고 또 다른 해를 맞으며 자연스레 먹는 나이는 그저 숫자가 쌓이고 있다는 관념일 수 있다. 오히려 아이의 성장과 누군가의 죽음이 내게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곤 한다. 두 배우의 죽음이 겹쳤던 2003년의 풍경은 그래서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한 시대의 영화를 풍미했으며 학창시절과 함께 했던 그들의 죽음 앞에 문득 ‘나이듦’에 대한 단상이 뽀로롱 피어나기도 했다.

 

4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매염방(1963년 출생)은 1982년 홍콩의 대중음악 경연대회인 신수가창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84년부터 영화 출연했고 1987년 장국영과 함께 나온 <인지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해 <영웅본색3> <심사관> <금지옥엽2>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그녀 역시 1980~199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자궁경부암에 걸린 사실이 알려졌고 결국 그 해의 막바지 41살의 나이로 장국영의 뒤를 따랐다.

 

<연인>, 매염방을 기억하다

 

그리고 1년. 그 흔한 세밑 풍경 속에서 그녀를 떠올리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1년 동안 그녀의 빈 공간을 느꼈던 적도 있다. 장이모우 감독의 <연인>은 엔딩 크래딧에서 ‘매염방을 추모한다’는 글귀를 아로새겨 놓았다. <연인>에서 비도문의 두목 역은 애초 매염방의 몫이었다. 지병을 앓고 있음에도 그녀는 마지막 연기 투혼을 불사르고 싶어 했다. 장이모우 감독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중요한 배역을 맡겼고 함께 캐스팅된 유덕화도 그녀에게 찬사를 보냈다.

 

힘겹지만 최선을 다해 촬영에 나섰던 매염방이었지만 병세 악화 앞에 도리가 없었다. 촬영 도중, 그녀는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매서운 겨울바람 앞에 그녀의 의지는 눈 녹듯 스러졌고 장이모우와 유덕화의 우정도 더 이상 그녀를 지탱하기엔 힘겨웠다. 그리고 수많은 팬들에게 슬픔을 선사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연인> 제작진은 매염방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고 한다. 중요한 배역이었음에도 대역을 구하자는 의견에 <연인> 제작진은 비도문의 두목에게 삿갓을 깊게 눌러 써 얼굴을 보이지 않게 했다.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까지 그녀의 혼을 남겨두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그녀가 <연인> 속에서 살아있게끔 만들었다. 필름 어디에도 그녀는 남아있지 않지만 연인의 제작진은 그녀가 <연인>에 출연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는 말은 그렇게도 적용된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어쩌면 또 다른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인>의 내러티브가 휘청거린 것도 어쩌면 그녀의 부재가 한몫했다는 것이 그래서 수긍이 간다.

 

살아생전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그때…


그리고 우연찮게도 200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남인사십>이 그녀의 유작임을 알았다. 물론 이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았다. ‘영화제’란 통로를 통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런 영화들이 있는데 <남인사십> 역시 그랬다.

 

홍콩 뉴웨이브를 이끈 대표적 여성감독 허안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홍콩 느와르의 한 축을 담당했고 ‘4대 천황’의 한명이었던 장학우, 그리고 매염방이란 타이틀에도 불구, 이미 꺾여버린 홍콩영화의 위상과 영화가 가진 톤을 감안하면 국내 극장 개봉은 어려울 듯싶었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옛 사랑의 그림자 속에서 가냘픈 한숨을 내쉬던 매염방의 모습이 아로새겨진 영화였다.

 

영화는 그랬다. 그냥 우울했다. 평온한 가정에 불현듯 엄습해온 과거의 그림자와 새로운 사랑에 중년의 남녀는 흔들린다. 호수처럼 잔잔한 일상에 던져진 돌은 두 남녀의 안온한 일상에 금을 긋는다. 세월을 머금은 장학우와 매염방은 어느덧 원숙함을 드리우고 있었고 그들을 통해 나는 세월과 사람살이를 엿보았다. 그리고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오곤 하는 세월의 무심함도 느껴야했다.

 

남자 나이 ‘40’. ‘불혹’(不惑),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 20∼30대 불안과 열정의 시기를 넘어선 자들에게 붙는 타이틀이다. ‘중년’이란 이름으로 그들은 청년과 장년의 시기에 이음새를 매듭한다.

 

그런데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 40대란 시기가 좀 우울하다. 40대의 돌연사(과로 등에 의한), 암 발병률 등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는 통계에서부터 가정과 직장의 압박. 사회제도와 별다른 마찰 없이 살아왔다손 치더라도 40대가 가지는 일상의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

 

이와 함께 ‘중년의 위기’란 말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위기의 시기에 닥치는 유혹은 과연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야 할까. 대개의 40대가 지닌 위치는 사회적으로나 가정에서나 왠지 샌드위치처럼 압박을 받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유혹과도 절연하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불혹’이란 타이틀은 뼈있는 농담일까, 그렇지 않으면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한 구닥다리 지칭일까.

 

<남인사십>은 제목 그대로 40대에 접어든 남자에게 닥치는 일상의 변화를 담담하게 담고 있다. 뻔하디 뻔하게 중년 남자가 여자의 유혹과 맞닥뜨린다는 진부한 통속극을 떠올릴법한 상상이 들만도 하다. 하긴 일상 속에서 떠돌면서 접하고 듣고 보았던 것도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남인사십>, 그녀의 눈빛은 슬픔을 품고 있었다.

 

40대 남자에게 닥치는 일상의 변화

 

하지만 영화의 톤은 무심할 정도로 고요하다. 격정적인 중년의 깨우침이나 삶의 변화를 유도하는 동인은 없다. 무기력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인공들은 오르막이나 내리막 없이 평지만 거닐 뿐이다.

 

설혹 그런 길이 있었어도 그들은 평지와 똑같은 속도로 걸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야를 거침없이 뛰어다니던 청년의 시절은 어느덧 속도를 조절하는 중년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무척이나 성실하고 담담한 일상을 가꾸는 40대의 남자. 고등학교 선생님인 람유곽(장학우)은 직분에 충실하고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부자 친구가 쏘겠다는 식사도 더치페이하자고 할 정도로 고지식하고 자신의 중심을 지켜나가는 그에겐 부인, 만칭(매염방)과 두 아들에게도 자상한 남편이자 따뜻한 아버지다.

 

하지만 평온하기 그지없는 일상의 창문으로 불어 닥치는 바람은 예고가 없다. 안팎으로 한꺼번에 닥칠 때 일상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아내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의 제자가 사랑을 고백한다. 이거 웬 로망스인가 싶을지 몰라도 그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그러나 아내, 만칭에게 첫 사랑의 그림자가 다가선다. 고등학교 시절, 두 사람의 스승이었지만 불치병을 지닌 채 다시 만칭을 호출했다. 당시 만칭은 유부남인 선생님의 아이를 임신했고 그녀를 짝사랑했던 람유곽은 출산을 돕기 위해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결국 결혼에 이르렀던 것.

 

그리고 아내는 옛 사랑에 대한 마지막 정리를 위해 봉사를 자원하겠단다. 람유곽은 이를 허락했지만 마음은 마냥 그렇지 않다. 분노와 동정심, 혼란이 가중된 그에게 제자는 점점 더 거리감을 좁힌다. 람유곽 역시 그녀의 솔직함과 자유분방함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람유곽은 간혹 스승을 회상한다.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일깨워주고 인정해 주던 사람. 하지만 세월은 어느덧 스승의 나이만큼 그를 이끌어갔고 석연찮은 재회의 순간까지 도달했다. 스승과 아내 그리고 자신과 제자, 세월은 그렇게 반복적인 길을 재현하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느덧 연륜이 쌓일 만큼 쌓인 장학우와 매염방의 연기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가슴에 품는다는 것

 

허안화 감독은 되풀이되는 사랑이야기에 숨결을 불어넣었지만 어쩌면 세월은 모질고도 가혹하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음인지도 모른다. 대만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서도 이 같은 그림이 연출된다. 과거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고픈 주인공에게 현재도 비슷했을 뿐이라는. 악보에 나와 있든 그렇지 않든 사람살이는 되돌이표의 연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하지만 그들은 각자 자신의 길에 대해 후회할 수 없다. 선택의 순간에 있어서도, 선택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스스로 자유로워지지 못함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매염방의 죽음이후 느낀 것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올 시간들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4살에 시작돼 거의 전 생애를 보낸 연예계 생활. 화려하지만 쓸쓸했을 법한 그녀의 모습이 길게 한숨을 내쉬는 만칭과도 겹쳐졌다. 세밑 풍경은 또 한번 그렇게 곡예를 넘는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가슴에 품는 일로 인해 내 가슴 속에도 세월이 켜켜이 나이테를 그려내고 있는가보다.(2004.12.30 국정넷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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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통제력이 없다... | 한뼘 이야기 2007-12-2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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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포 선셋

리차드 링클레이터
미국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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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난, 우리가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닥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타인과 사건에 반응하는 데 써요. 부모에게 반응하고 소속된 집단에 반응하고 교육에 반응하죠. 의식적으로 믿는 것과 달리 우리는 삶에 대해 '통제력' 비슷한 것도 발휘하지 못해요... 모든 교차로마다 맞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 씨네21 '에단 호크' 인터뷰 중에서 -

 

그랬다.

어릴 적, 나는 자동차의 '깜빡이'가 자동인줄 알았다.

차가 운전자의 마음을 읽고, 깜빡이를 켜줌으로써 차의 방향을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인공지능. 또 말하자면, 키트(전격Z작전).

이 생각은 꽤나 오래갔다. 아마 중학생이 되어서야 나는 알게 됐던 것 같다.

'깜빡이'는 다른 차량을 배려한 운전자의 행위란 것을.

나는 교차로에서, 그렇게 헤매는 아이였다...

[출처]씨네21 633호 '에단 호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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