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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아오이... 그리고 <좋아해> | 시네마가 있는 풍경 2007-06-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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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미야자키 아오이)의 꼼지락 대던 손길이 문득 떠올랐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은 채 아주 작은 몸짓으로 그것을 보여주던 그. 그것은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미야자키의 몸짓은 그 작은 몸과 함께 좀더 큰 공명을 주고 있었다.

 

'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을 읊조리는 듯, 그들은 그저 맴돌기만 한다. 그저 (옆에서) 바라보고만 있지. 그저 눈치만 보고 있지. 그저 속만 태우고 있지. 사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좋아해'라는 말 한마디다. 그러나 그들은 그걸 입밖에 꺼내지 못한다 아니 않는걸지도. 그들의 몸짓과 분위기에서 서로 좋아함을 유추할 뿐. 답답하리만치 긴 침묵의 연속. 그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로 끊임없이 나오는 푸른 하늘. 맑았다가 흐리다가를 반복하기도 하고. 끝맺지도 않고 계속 같은 부분만 튕겨내는 기타의 멜로디와 흥얼거림은 그들 입안에서만 맴도는 그 말(좋아해)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대사가 없다고 지루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 주변의 하늘, 강변, 노을, 어둠... 그 모든 것이 그들의 감정과 함께 공명하고 있더라. 그 모든 배경은 그 감정을 위해 복무하고 있었다. 짧은 대화 속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 유(미야자키 아오이)와 요스케(에이타)는 그렇게 애틋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를 읊고 있었더랬다. 아, 그렇구나. '좋아해' 이 한마디는 정말 어려운 거구나. 나는 그걸 알 수 있었다. 내게도 그 말은 그렇게 어려운 한마디였으니까... 하긴 첫번째 첫사랑은 서툼 투성이야. 어쩌면 서툴기 때문에 더욱 애틋한.

 

특히나 기억나는 건, 첫 키스후 유의 울먹임. 나는 같이 울고 있었다. 그의 작은 몸짓에 완전 동화되고 있었다. 어깨의 들썩임과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유의 표정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17년. 17살의 그들은 34살이 돼 있다. 그래 지금 내 나이도 서른넷.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을 기꺼이 말해도 좋을 기간은 17년일까. '좋아해' 그 말 한마디를 위해 17년을 흘러보낸 그들. 여전히 그들은 말을 아끼지만, 드디어 마음에 담아둔 그 말을 건네고...

 

아 이 아득한 첫 사랑의 기억이여... 나도 보고 싶어. 11년 전 내 첫사랑.

 

 

나는 미야자키 아오이를 그렇게 만났다. <좋아해>(好きだ, 2005)는 또한 그렇게 내게 아스라하고 애틋한 영화가 됐다. 그래 난 이 영화 좋아해. 너무도 평범하고, 감정과잉의 시대에 별반 대수롭지 않게 내뱉을 이 말이 나는 너무도 소중한 것임을 알았다. 그저 그들의 마음결을 따르다보면 그걸 알 수가 있다.

 

<좋아해> 일본 공식 홈페이지

 

미야자키 아오이는 말보다 더 좋은 표정과 몸짓을 갖고 있는 배우였더랬다. 그런 그가 아주 순간적으로 날 멈칫 거리게 만들었다. 입적 소식.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는 군. 이렇게 일찍 결혼을 할 거라곤 생각을 안 했으니까. 후후. 日 여배우 미야자키 아오이 결혼

 

<나나>도 봤지만, 그건 패스하고. <좋아해>이후 작년에 본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폐막작,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ただ、君を愛してる)에서의 미야자키도 참으로 좋았다. "좋아하는사람이 좋아하는사람을 좋아해야하는거야"라는 시즈루(미야자키 아오이)의 말, 인상적이었지.

 

축하해. 미야자키. 7년을 서로 좋아했다는데. "좋아해"란 말, <좋아해>에서처럼 아끼고 숨죽이며 어렵게 꺼내지 않았을까, 하는 내 생각. 그들도 서로 '이찌고 이찌에'(いちご いちえ, 일생에 한번 만나는 인연)이길 바라고 있으리라. 그래, 미야자키도 '좋아하'는 다카오카 소우스케(<박치기>의 주인공)과 행복하길.^.^ 

 

 

 


미야자키는 <좋아해>의 감성을 지배하는 칸노 요코의 <Dear Blue>를 함께 들으며 행복해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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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생일 축하!!! | 구름의 저편 2007-06-1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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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구름의 저편에 있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

 

오늘은 그의 생일. 79번째 생일.

 

이렇게 많은 체 게바라.

Yes24에서 체 게바라를 검색했더니...

 

 

 

체를 꿈꾸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세르나. 본명보다 훨씬 더 알려진 또 다른 이름은 '체 게바라'.
1928년6월14일 혁명가 '체'의 탄생일. 80년에서 한해가 빠진다. 그리고 10월이면 서거 40주기.

IT혁명이니 정보혁명이니 하는 따위는 사실 말 장난이고.
진짜 혁명은 체 게바라의 죽음과 함께 사그러들었다.
이 21세기에 혁명이란 가당키나 한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내 서명의 한켠엔 자리잡은 체의 일갈.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Seamos realistas, realisemos lo imposible!)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낸 체의 마지막 편지.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깊이 분노할 줄 알아야한다.
그게 어떤 불의이고 어떤 사람에게 저질러진 불의이건 간에 상관없이.
이것이야 말로 혁명가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불가능한 꿈도, 분노하는 법을 차츰 잊고 있다.
꿈보다는 현실에, 분노보다는 타협과 무관심에 더욱 익숙해지고 있다.
한때 전복을 꿈꾸며 혁명의 역사를 가진 이들을 부러워했던 시절,
체는 정신이고 바이러스였다.


 

체와 미디어

체와 미디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체의 살아생전, 쿠바혁명은 미디어의 힘을 적극 활용 혹은 이용하면서 본격화됐다.
현재의 미디어환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매스미디어를 통해 혁명은 힘을 얻었고 세를 뻗쳤다.

 

1957년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혁명에 불을 당긴 해.
1월 '라 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은 최초의 승전보였다.
"게릴라군은 이 라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으로 다수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체 게바라 <쿠바혁명전쟁의 회고> 중에서)

 

그러나 쿠바 정부는 더 이상 게릴라군이 존재 않는다고 선전했고.
이에 혁명군은 2월 시에라 마에스트라 게릴라 기지로 허버트 매튜즈 뉴욕타임즈 기자를 불러
인터뷰를 했고 기사가 나왔다. 미디어를 통해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며 뒤집은 것이다.
또 4월에는 미국의 방송도 활용했다. 인터뷰 장면이 방송을 통해 나갔다.
게릴라군의 존재감은 일거에 확대됐다. 세력 확장의 계기가 됐다.
혁명의 기운은 그렇게 고조됐다. 혁명이 미디어의 조력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여기의 많은 미디어는 체를 그저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소비하고 있을 따름이다.
살아생전 혁명의 기운을 고조시킬 수 있는 조력자였지만,
죽어서 체는 미디어에 의해 상업적인 상품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다.
상업적인 딜레마에도 불구, 맑은 눈을 지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체의 혁명적 이상을 수혈받고 각성을 하기 때문이다.

 

 

체! Happy Birthday Day

  한 포털의 인물정보는 체를 '정치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체의 직업을 정치인보다는 '혁명가'라고 명명하련다.
체는 사실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도 포섭당하지 않았다.
체를 붙잡은 것이 있다면 그건 민중이었다.


민중을 위한 혁명과 이상국가의 실현이 체의 모든 것이었으리라.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음에도 체의 국적은 라틴 아메리카였다.
아니, 체는 국적따윈 없는 세계인이었다.

 

오늘 하루, 체의 생일을 축하해줘도 좋으리라.
그리고 사그러든 혁명의 꿈을 잠시나마 펼쳐도 좋으리라.

 

다시한번, 체! Happy Birthday Day!!


 

참조)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 Ernesto Che Guevara,1928~1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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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라이프가 2% 부족하다면…<브리짓존스의 일기> | 시네마가 있는 풍경 2007-06-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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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결혼식보다 아이 돌잔치가 많다. 확실히. 뭐 그거야 거부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겠거니 한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 '짝짓기'에 한시름을 던 친구, 선후배들은 이제 '아이 돌보기'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그들의 관심은 이제 연인보다는 아이에 더 쏠려 있어 뵌다.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DNA의 '이기심'인가보다 한다. 그게 이른바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이라 일컫는 수순 아니던가. 결혼(식)이나 돌잔치 모두 사회적인 하나의 '절차'다. 그깟 형식 혹은 의식들, 굳이! 꼬옥! 반드시! 필요한가 싶지만, 그것 역시 사회적 성장을 상징하거나 대변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뿌리박혀 있다. 못(안)하면 이상한 눈초리를 일단은 피할 수 없는. 우라질.

 

1000억원대 재력가의 데릴사위 모집을 놓고 난리다. 허허. '1000억'이 우선 눈에 띠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게 범인들로선 상상이 가는 수치냐. 숫자에 우선 압도되고 볼 일. 한 결혼'기생'업체(그들은 결혼에 대한 진짜 '정보'를 주기보다는 '결혼'을 숙주로 삼고 기생하는 건 아닐까,하는 혼자(!)만의 생각)에 의해 이 모집 공고가 나왔는데 언론이 이런 '낚시'에 걸려들지 않을리 없지.

 

"회원들만 주로 방문하는 홈페이지에만 공개했음에도 이렇게 반응이 높을 줄은 예상 못했다"는 이 업체의 멘트(스포츠조선)는 순진함을 가장한 거짓이거나 멍청한 멘트고. 이걸 그대로 받아 적은 매체 역시 마찬가지. 결국은 이 땅의 미디어들이 적극 나선 결과지. 업체에서 보도자료를 뿌렸는지는 모르겠지만(노이즈 마케팅을 했다면 나름 성공했군), 게재 판단은 결국 언론이 하는 게지. 더구나 신청자가 언제까지 얼마나 되고, 이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이 어떻다고 중계보도까지 해 주는 '친절한' 언론들의 행태. 역시나 멋지삼!!! 진짜 궁금하냐? 누가 데릴사위가 될지...

 

과연, '백마 탄 공주'를 차지할 데릴사위는 누구?
부잣집 데릴사위 “저요 저요” 하루만에 200명 줄서

 

나도 사실 처음엔 솔깃하더라, 뭐. 1000억원. 언감생심. 넘보다간  롯데자이언츠가 결국 꼴찌 언저리까지 떨어질만큼, 이내 허울뿐이지만, 그 미욱한 존심마저 꼬꾸라지게 만들 것 같아서 '깨몽!', 그러고 말았지만.ㅋㅋ (사실 조건도 맞는게 없더라. 우라질!!!) 그냥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그 재력가의 딸은 아버지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알 수가 없지. 며느리는 알까! 사실 이렇게 투덜대는 것도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될 수 없기 때문에 샘내는 거지. 투덜이 스머프!

 

투덜이 스머프는 또 나름의 논리를 편다. 기독교 '맹신' 전도사들의 구호(교회 천국, 불신 지옥)마냥, 한편으론 이런 이야기는 결혼 '맹신' 전도사들이 만들어낸 작품 같다. 우선 그 아버지는 세속 나이, 서른 여덟 딸내미의 자기결정권이나 자기완결성을 무시한 것 아닌가. '결혼 천국, 싱글 지옥'이라 이건가.

 

결혼기생업체나 미디어가 굳이 이걸 공표하고 확산하는 건 뭔가. 결혼기생업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미디어들은 가끔 '싱글 라이프'의 삶을 미화하지도 않았던가. 뭐 하긴 결혼이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라고 생각지도 않을텐데 굳이 '결혼' 혹은 '비혼'(미혼)을 '논조'로 삼을 까닭은 없겠지. 그렇다고 '노처녀'라는 딱지를 붙여준 건 '통념'에 따른 것이라지만, 너무 가볍지 않아?

 

좋아. 그리고 결혼'기생'업체들은 그 무궁한 영업을 위해서라면,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의 '결혼'도 법적으로 가능하도록 로비라도 해야지.(음 T는 빼자. 리수 언니도 했고 경우가 있으니까) 그래야 나와바리도 넓어질 거 아냐. 아직 배가 덜 고파서 그런거야? 지금으로도 충분히 배부르고 등 따셔서 그래? 그래서 이성 아닌 사람들까지 '결혼'시키면 얼마나 좋아. 이런 건 문어발도 아니고 핵심역량 강화잖아. 안 그러우?

 

뭐 괜한 태클이었다. 1000억원대 데릴사위에는 비길 바는 아니지만, 이런 기사도 나와주는군.
결혼,연봉 9700만원 오르는 효과

 

근데 정작 기사를 보니 '결혼'보다 '동거'의 상승효과가 더 크잖아. 제목을 저리 잡은 건 결국 이 사회 통념상 '동거'보다는 '결혼'이 더 안전빵이니 그랬겠지. 1억 크다.

 

우연이겠지만, 오늘 결혼을 앞둔, 결혼식을 일주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친구를 만났다. 1000억원 데릴사위의 기회는 놓친 거겠지만(물론 아직 시간은 남았어!) 1억원의 연봉이 오르겠군. 그래서 오늘 니가 쏜거야?ㅋㅋ 술 마시다 녀석에게 (결혼할 사람을) 사랑하냐고 물었다. 대답이 어째 약간은 뜨뜻미지근하더라. 그 오랜 시절부터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싶어하던 녀석인데. 뭐 물론 녀석의 스탈이 그렇게 호들갑 치는 녀석이 아니니깐 그렇다 치고. 함께 있던 결혼한 친구도 그러고, 저 멀리 캐나다에 있는 우리들의 형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오 그런다. "인생의 무덤." 그래 그 무덤은 그냥 결혼과 함께 하는 쉬운 레토릭이다. 무덤이 누군가에겐 좋을 수도 있잖나. 안 그래?

 

집에 오다가 이미 결혼한 녀석에게 물었다. 녀석도 비슷하게 말하더니 나중에 문자 한통을 때린다. "그래도 한번은 해볼만하다. 재밌다"고. 웃긴 넘.ㅋㅋ

 

난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은연 중에 혹은 대놓고 '결혼'을 강요하는 사회는 별로 재미없다. 결혼(제도)이 가져다 줄 세계의 확대는 분명 인정하겠다. 하지만 결혼 여부로 '정상' 여부로 판단하는 시선엔 동의 못하겠다. 그건 폭력이지. 결혼도 준비하는 사람의, 결혼 덕분에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의 몫이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 뭐 이것도 금방 바뀔 수 있다. 난 변덕쟁이니까.

 

이달에만 결혼식이 2건이다. 1건은 지났지만, 가야할 1건. 밥이나 잘 나왔음 하는 나의 소박한 바람. 쫑아 ㅊㅋㅊㅋ.

 

브리짓존스가 문득 떠올랐다. 그를 바라보며 느꼈던 3년 전 감상. 아직 여전하네. 싱글에게 혹은 솔로에게 희망을... 하긴. 그도 극 중에선 결혼을 하진 않았다. 그저 사랑을 찾았을 뿐! 그런데 스타워즈의 한 솔로는 '솔로'가 아니었잖아.^^;;(구래 그냥 넘어가라. 썰렁한 넝담이닷 -.-;;)

 

 

<브리짓존스의 일기> ... 싱글라이프 + 2%

 

봄은 일찌감치 문을 두들겼다. 잔인한 4월을 넘어 5월이 노크를 한다. 바야흐로 ‘웨딩시즌’, 결혼이야기가 지천에 깔려있다. ‘5월의 신부’가 곳곳에서 웨딩드레스를 하늘거린다. 봄은 그렇게 익어간다. 여름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봄날의 어느 한 풍경이다.

 

이런 시기, ‘5월의 신부’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처절하게 ‘All by myself’를 립싱크하고 있는 그 여자. 혹시 아는가. 그렇다. 맞다. 브리짓 존스! 이 알록달록한 웨딩시즌에 그녀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건 어떨까. <브리짓존스의 일기>. 33살 되던 해 새해 소망을 담으며 시작한 이 일기장은 -그녀 스스로 바보같은 낙서를 했다고 자평하지만- 참으로 유쾌하고 따뜻하고 쫀득쫀득한 영상일기다.

 


노처녀(?)의 사랑만들기

 

‘노 처녀의 사랑만들기’, 결코 참신하지 않은 소재다. 그럼에도 멀찌감치 떨어져 그녀의 일기장을 들추면 생각이 달라진다. 32살에 ‘노처녀’라는 어줍잖은 딱지에 기울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과 ‘사랑, 연애, 섹스’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 한장 한장 넘어가는 일기장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누군가는 정말 “딱이야” “정말 내 얘기 같애”라며 숨을 넘길 것도 같다.

 

 


브리짓존스(르네 젤위거)의 새해 소망은 의미심장하다. ‘술·담배 끊기, 헛소리 안하기, 특히 완벽한 남자를 만나 진실한 사랑을 하겠다’는 결심. 그런데 이 결심은 보드카와 ‘All By Myself’라는 처절한(?) 노래를 립싱크하는 모습과 함께다. 순탄치 않은 한 해를 알려준다. 콤플렉스 덩어리에 실수투성이, 변기에 머리를 박지 않을 정도의 주정꾼, 노친네 옷을 입고 줄담배에 헛소리를 가끔 내뱉는 그녀. 브리짓은 어쩌면 ‘결혼하지 못할 조건’을 줄줄이 달고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마크 다아시(콜린 퍼스). 무뚝뚝하고 차가운 표정에, 재미라곤 눈곱만큼도 없을법한 남자, 한마디로 뚝배기 그 자체다. 극중에서 연적으로 나오는 바람둥이 편집장 다니엘(휴 그랜트)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마크는 그러나 한방이 있다. 다니엘이 전부 잘하다가 한번 잘못해서 퇴짜 맞는다면, 온통 찍힌 그는 결정적인 한번으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마크가 알려주는 ‘사랑의 기술’은 딴 게 아니다. ‘결정적인 한 방을 타이밍에 맞춰라.’ 이혼남이라는 극중 조건은 ‘기술’ 앞에 별 거 아닌 것 같다. 처음 다니엘에게 끌려 다니던 브리짓의 좌충우돌 연애기는 마크의 한방에 순식간에 진압된다.

 

한편으로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와중에 브리짓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마크의 감정이 다소 뜬금없이 보여 극중 짜임새가 흐트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있는 모습 그대로가 좋다’는 마크의 말은 그런 흐트러짐을 진압할만한 ‘힘’이 있다. 사랑은 그렇게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사실. ‘이유 없는 사랑’에 브리짓은 ‘사랑’의 고개를 넘는다. 그리고 가혹한(!) 현실에서 ‘독신(주의는 아니지만) 싱글 여성(혹은 남성)으로 산다는 것’을 담은 이 일기는 특정한 경험이나 느낌을 가진 관객에게 ‘공감’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한 장면. 떠난 줄 알았던 마크가 귀환했으나 브리짓의 일기로 인한 오해가 발생한다.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 마크를 잡기 위해 눈이 펑펑 쏟아지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밤거리에서 ‘크레이지걸’ 소리를 들어가며 호피무늬팬티로 뛰는 브리짓의 모습. 그 모습은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없는 브리짓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브리짓존스의 일기>가 지닌 매력은 전적으로 ‘르네 젤위거’에게 기댄다. <제리 맥과이어>에서 톰크루즈의 애인으로 눈도장을 찍은 이 배우는 <미, 마이셀프 앤 아이린>이나 <너스 베티> 등에서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브리짓존스의 일기>이후에 나온 <시카고> <콜드 마운틴>을 통해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배역을 위해 10kg이나 몸을 불려 철저하게 망가진 모습을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구사한다. 더구나 영국식 발음을 위해 교습까지 받는 등 캐스팅에서 완벽한 성공을 엿보게 한다. 그녀 아닌 브리짓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결혼하지 않은 자들에게 희망을…

 

그런데 브리짓이 지닌 ‘노처녀’라는 타이틀에는 별로 공감하고 싶진 않다. 브리짓의 어머니나 이웃 사람들이 가진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시선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대사를 떠올려보자. “일정한 나이를 지난 여자가 제 짝을 찾을 가능성은 원자폭탄 투하 뒤 살아남을 확률보다 낮다.” 브리짓도 이 대사에 휘둘려 있는 듯하다. 그건 한편으로 스스로를 동정하게 만드는 독이다. 술을 애인 끼고 살면서 <위험한 정사>의 악녀가 되는 악몽을 꾸게 하거나 30대 노래를 들으며 찔찔대게 조장하는 사회의 고약한 한 단면. ‘결혼’이란 어쩌면 제도와 관습의 굴레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현실은 가정을 꾸리지 못한 ‘싱글’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대개 치부한다. 선택은 ‘칠칠맞지 못한 외톨이 노처녀(노총각)’이거나 ‘화려한 더블’ 사이다. 과연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자는 절름발이로 인식돼야 하는지. 좀 더 생각해볼 여지는 있지 않을까. 사랑은 하되 결혼은 하지 않는 삶의 방식은 어떤가.

 

누군가 그랬다. 독신자는 △비전 있고 열정을 다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 △탄탄하고 독립적인 경제력과 엄격한 자기 통제력에 확신이 서 있는가 △모(부)성애의 자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강한 독립심과 결단력의 소유자인가를 필요충분조건으로 갖춰야 한다고. 그렇지 않다면 자유분방함과 나태에 빠져 어떤 긴장감과 자극에도 반응하지 못하고 자신 안에 갇힌 채 내일도 오늘처럼, 오늘도 어제처럼 지낼 수 있다고. 만약 독신자생활이 2% 부족하다면 당신의 그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랑을 찾으라고.

 

당신은 어떤가.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현실과 맞장 뜨는 건 힘이 드는 군’하고 한숨을 쉴 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사랑한다면 브리짓과 마크처럼’ ‘있는 그대로의 이유 없는 사랑’을 해보는 건 어떤가(물론 힘든 일이다). 그 사람이 술고래, 골초에다 삐져나오는 살덩이를 보유하고 있을 지라도 이것을 커버할만한 솔직함과 사랑스러움이 있다면, 혹은 치마가 훌러덩 올라가 전국방송에서 망신을 당하거나, 똥꼬치마에 가슴살 꼭꼭 눌러 토끼걸 의상을 입었을지라도 이를 누를만한 귀여움이 있다면 말이다. 있는 그대로는 그 사람을 인정해 준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굳이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재단할 필요는 없단 얘기다.

 

한편으로 일기장을 새로 사거나 써 보는 건 어떨까? 쳇바퀴같은 삶의 일상을 끊어버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기는 묘한 마술을 선사하기도 한다. 특히 사랑을 찾는 싱글들에게.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이 없어 쓰지 못했던 일기, 그 일기를 미리 써 볼 수도 있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덧 일기 속을 헤집고 다닐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니면 브리짓처럼 매일같이 몸무게를 써놓거나 담배 개비, 술잔 수를 적어놓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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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겪은, 그러나 다시 사랑할 사람들을 위해...<봄날은 간다> | 시네마가 있는 풍경 2007-06-0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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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YES24 블로그 축제 참여

봄이 으스러질 즈음엔, 늘 이 영화가 떠오른다. <봄날은 간다>.

 

사랑하는 날을 '봄날'이라고 표현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생명이 약동하고 신록이 화창함을 자랑하는 시기, 사랑은 그렇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웃음은 끊이질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봄날이다.

변덕 심한 봄날마냥 가끔 비가 오고 바람이 불더라도.

사랑은 그때만큼은 분명 삶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백신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봄날이 언제나 지속되는 건 아니잖나.

계절은 바뀌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바뀐 계절에 맞춰 옷을 바꿔입어야 한다.

 

삶에는 그렇게 불가피한 것들이 있다.

생이나 죽음이 그러하듯,

사랑도, 이별도 그러하다.

봄날이 가면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대개의 생이다.

그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봄날은 간다>는 그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얼마 전 허진호 감독이 결혼을 했다.

그도 지금 봄날이겠지?

<8월의 크리스마스><봄날은 간다><외출> 등

그는 이들을 통해 느닷없이 생에 끼어든 사랑과 이별의 방정식을 보여줬다.

그 시선들이 나는 참으로 좋았더랬다.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그의 넉넉하면서도 쓸쓸한 시선 같은 것들.

 

다시 봄날이 지나간 즈음, <봄날은 간다>를 꺼내볼 때다.

상우와 은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면서.

3년 전 상우에게 썼던 편지.

문득 또 꺼내본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들을 가장 좋아한다.

사랑에 달뜬 사람들의 꾸밈없는 양태라고나 할까.^^;;

 


 


 


 


 

회사 직원들과 회식하던 상우 이놈. 사랑 앞에 회식 에티켓이고 뭐고 내팽개친다.

회식하는 가게 밖 창문에 쪼그려 앉아 은수와 통화하면서 “보고 싶다”고 옹알대더니

버럭 택시를 부른다. 그리고선 다짜고짜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아이씨~ 강릉”하며 외친다. 황당했지만 친구의 택시더라. 친구의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친구의 그리움을 알아본 친구는 한달음에 강릉까지 내지르고.

어스름 짙은 도로의 가로등 불빛 아래 은수도 나와있다. 

택시 문을 열고 나온 상우는 은수를 와락 와라라락 뼈가 으스러질 것처럼 안아준다.

(아, 안습 ㅠ.ㅠ)

그리고 “좋다!”고 외친다.  

그 짧은 말 속에 드러나는 사랑의 달뜸. 그리움의 홍수.

이보다 행복한 연인이 있을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순간.

허허 그것이 사랑이여.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굽이굽이 숨차게 달려가던 그 어느해 겨울의 영상.

아, 옛날이여~~~

 

 

상우에게

 

짧은 봄, 5월이 갔다. 신록의 계절도 더 이상 곡예를 넘지 못하고 여름에 바통을 넘긴다. 그냥 상우(유지태), 네 안부가 궁금해졌다. ‘봄날이 가는 구나’라는 계절의 바뀜을 아쉬워하는 소리를 곳곳에서 들은 까닭일까. 문득 상우, 널 떠올렸다. 갈대숲에서 소리를 채집하던 너의 마지막 모습. 괜찮은 거지? 어떻게 지내? 은수(이영애) 없다고 이젠 울고 그러지 않지?


이젠 너도 훌쩍 세월을 머금고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겠지? 그런 니 모습에 실망할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이젠 다른 여자 앞에서 “우리 헤어지자”는 말을 툭툭 내뱉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도 해도 모를 것이 사랑이라지만 니가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같은 신파조의 대사는 더 이상 읊조리지는 않을 것 같다.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너의 사랑의 숲속에서 그 기억을 따로 떼어내거나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진 않으니까. 사랑했던 날은 잊혀지는 게 아니고 묻어두는 거니까. 그냥 난 네가 당시의 은수처럼 돼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그건 첫 사랑의 열병이지. 맹목적이고 앞뒤 두서 가리지 않는, 그래서 나중에 더더욱 아픈. ‘그 땐 참 좋았는데…’하면서 말끝을 흐려버리는 게 우리네 첫 사랑 아니겠냐. 또 사랑과 아픔은 동전의 양면 아니겠냐. 좀처럼 깨질 것 같지 않은 달콤한 나날도 변해가는 사람 앞에, 세월의 흐름에, 추억이란 이름으로 탈색될 수 있는 법이야.

 

 

사실 널 지켜보는 나도 같이 아팠다. 사랑을 앓고 지난 봄날을 되새김질하는 기억 때문에. 생채기처럼 남아있는 기억의 결은 대나무 숲 바람소리, 하얀 파도소리, 보리밭 어우러진 소리, 연인의 허밍소리 등과 함께 시작에서 끝까지 감정의 골을 깊게 파고들더라. 사랑에 아파했던 기억을 가진 이에겐 한 가닥 떨쳐버릴 수 없는 앙금이 남아 있거든. 머리 속에선 사랑을 정리해도 가슴 속에선 앙금이 남는, 사랑의 분열된 모습도 있지.


반면 은수는 그게 아니었잖아. 독하더라. 그리고 충분히 자기를 방어하면서 욕망에도 충실하고. 아니, 그게 어쩌면 현명한 건지도 모르지. 한편으로 웃기긴 해도 말이야. 지 멋대로 선전포고하고서도 되돌림표를 그려 넣으려던 은수. 그 여잔, 이미 사랑을 아는 여자잖아. 너랑은 체급이 달랐어. 하하….


내가 이 얘길 꺼내서 멋쩍냐? 뭐 그래도 이젠 너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웃어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누구는 너의 순정과 순수가 때를 탔다고 타박할지는 몰라도 어차피 그건 성장통 아니겠어? 설마 한 큐에 사랑의 완성을 꾀한다거나 절대 울지 않고 탄탄대로 순항만 할 거라고 기대했던 건 아니겠지? 아니 혹시 그랬을지도 모르겠군. 넌 정말 아무 것도 모른 채 은수의 손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목각인형과도 같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짜식. 넌 참 바보 같았지. “라면 먹고 갈래요?” “자고 갈래요?”라고 은수가 노골적으로 유혹을 하는데 진짜 그러려니 생각했던 것 같았으니까. 하긴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을 수 있지. 버겁도록 순수할 수 있는 그런 시절. 그러다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그 시절에도 이물질이 끼고 또 다른 껍질을 깨야 할 때가 오는 법이지.

 

한편으로 지독한 순수는 오히려 불순함보다 못할 때가 있어. 불순함이란 건 내성을 길러주거든. 그건 과정이야. 성장을 위한.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야. 네 순수가 갉아먹은 흔적들을 봐. 직장도 때려 치고 직장 형한테도 ‘띠바’라고 욕지거리나 내뱉어 그 좋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어 놓고, 남의 차를 긁어놓질 않나. 네 일상이 엉망진창이었던 걸 생각해봐. 물론 전적으로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사랑의 열병을 그렇게 앓는 것도 네 인생의 중대한 사건이자, 너의 삶을 구성하는 피와 살이 될 테니까. 갈대숲에서 소리를 채취하던 모습에서는 훌쩍 커버린 널 느꼈다.

 

 

어때? 당시 은수를 너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니? 운명적인 사랑을 믿고픈 사람들도 물론 많지. 운명 같은 사랑을 그렇게 그리는 사람들도 내 주변엔 많거든. 그래서인지 은수의 운전 연습을 시키다가 멈춰선 언덕의 봉분 앞에서 은수가 “우리도 죽으면 저렇게 같이 묻힐까”라던 속삭임은 짠하더라. 은수, 그 여자 당시에는 진짜 그랬을 거야. 사랑한 후의 결과가 어찌됐건, 사랑했던 당시에는 진정성이 분명 묻어나는 법이거든.


솔직히 네가 부럽고 짠하기도 하더라.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가 갈비 집 창문 아래서 전화기에 대고 ‘보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다가 친구의 택시를 타고 서울에서 강릉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던 너. 그 달뜬 사랑의 표정하곤….

 

또 바다를 옆에 낀 도로에서 가로등 불빛이 서울과 강릉의 거리만큼 강렬한 너희 둘의 포옹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광경도 말이야. 봄날의 감흥이 이렇게도 표현되는구나 싶더라구. 사랑은 두 마디로 충분하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지. ‘보고 싶다’와 ‘좋다’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랑’에 혹하지 않는다면 과연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싶더군.


그러나 사랑도 운명보다는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리는 감정임을 아는 경험자들에겐 너처럼 ‘변하지 않는 사랑’을 믿었던 순수론자는 피곤해. 인생에 있어 사랑은 분명 윤활유고 한때 전부라고 여겨질 때도 있으며 그걸 하지 않는 자는 유죄이지만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순 없어.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말은 너무 고리타분하고 적나라하지만 맞아.


어쨌든, 난 네가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해. 넌 이미 ‘예전’의 상우가 아니니까. 이제 징징대면서 헤어지자는 여자 앞에서 땡깡 부리고 그러지 않지? 그래도 솔직히 가끔 너와 은수를 보면 눈물이 나. 머뭇거림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랑이 봄날에 나누는 서로의 미소로 바뀌고, 빗소리의 처량함이 눈물로, 태연히 손을 내밀어 악수로 마무리하는 너희 둘, 그 엇갈림의 궤적을 눈에 넣을 때마다 말이야. 참내, 나도 한심하지. 후후 별 수 없긴 없나봐.

 

 

그냥 봄이 지나는 길목에서 너희 둘의 지난날을 다시 봤어. 그리고 갑자기 편지가 쓰고 싶어진 것뿐이야. 봄은 가고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그러겠지. 답장은 쓰지 않아도 좋아. 언젠가 다시 편지를 쓸 지도 모르겠다. 영영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 후후. 안녕….

 


봄날은 간다 OST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TOY 김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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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명명하는 이름, <후아유> | 시네마가 있는 풍경 2007-06-0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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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YES24 블로그 축제 참여

 

“청춘은 아름답다”는 식의 청춘예찬은 결코 식상해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어떤 낯두껍을 하고 있어도 청춘은 한없이 투명에 가깝다. 누가 청춘을 비하해도 그건 진심이 아니다. 청춘은 그 이름만으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 머리끝까지 피를 역류시키게 만든다, 식은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건 청춘이기 때문이다,라는 이유밖에 없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숱한 경구로 장식된 ‘청춘’의 이름은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일정 시기의 청춘을 특정한 말로 규정하고픈 욕망이 꿈틀거렸다. X세대, N세대, W세대, P세대 등등 청춘은 시시각각 다른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각종 문구는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바뀌는 청춘의 빛깔을 대변한다.

 

그런데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규정짓거나 정의하는 것과 별개로 ‘정체성’은 청춘의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들어찬 화두다.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을 되묻는 과정은 통과의례이며 위태로운 외줄타기 또한 타당한 수순이다.

 

<후아유>는 그런 청춘의 한 단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팔딱대는 청춘의 감성을 길어내 스크린 상에 펼쳐놓는 감각은 예사롭지 않다. 아바타, 채팅, 게임 등 네트워크 세대의 아이콘을 소재로 활용해 사이버와 현실의 간극 속에서 ‘정체성’을 되묻는 작업까지. 아날로그적 정서와 디지털 감각의 융합이 돋보인다. 복합적인 청춘의 정서를 ‘딱히 이것이다’라고 정의 내릴 순 없지만 말이다.

 

그런 한편으로 청춘의 한켠에 자리한 흔들림도 함께 포착된다. “불안하다. 내 미래가, 내 인격이, 내 사랑이... 다 불안하다”는 대사는 청춘이 맞닥뜨린 현실과 불안감 등을 집약한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변덕스런 청춘의 자화상, 맑음과 흐름이 수시로 교차하는 청춘의 날씨는 머나먼 항해를 떠나는 선박이 만나는 바다의 표정과도 같은 것이니까.

 

 

사이버상에서 아바타를 만들어 ‘또 다른 나’를 만드는 ‘젊은 세대’의 감성은 디지털과 어떤 동고동락을 이룰까? 인주(이나영)와 사이버 분신(ID 별이), 형태(조승우)와 사이버분신(ID 멜로) 사이를 오가는 사각관계의 영상은 신선한 감각의 멜로영화를 표방하는 상징이다.

 

‘1인칭과 2인칭의 3각관계 4랑법’이란 독특한 카피를 통해 <후아유>가 되묻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답변. 네 가지 미션.

 


미션1. 준비하시고 쏘세요. - 파트너 선택, 자기소개하기

 

◎ 디지털로 대변되는 21세기, 네트워크의 확산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을 어떻게 형성하고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게 되는 거지?

 

★ 별이 : 글쎄,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코드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늘려놓은 것 같아.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나를 대신하고 아바타로 ‘또 하나의 나’를 상징하게끔 하는 거지. 나를 표현하는 다양한 기호들 속에 숨거나 갇혀버릴 수도 있고 자아가 확장되거나 혹은 변질되는 경험도 가능하게 된 거지. 일상에서의 나와 사이버에서의 나를 분리하느냐 동일시하느냐의 문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어쨌든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이 대면접촉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가능한 기회는 늘어난 셈인데... 만남의 진실성은 보장받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는 것 같아. 사람과 사람사이에 다리가 더 놓여졌지만 어느 다리가 튼튼하고 건너기가 좋은 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 멜로는 어쨌든 사이버상이지만 내 힘든 과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날 이해해줬다는 생각이 들어.

 

♥ 멜로 : 별이와의 만남은 우연이야. 별이가 베타테스터로서 ‘후아유’게임을 비방하는 글을 적었는데, 이런! 같은 빌딩에서 근무하네. 한 건물에서도 모르고 사는 게 대개의 사람살이일 뿐인데 괜히 호기심이 가더라구. 결국 사이버상에서 발견된 그런 작은 요인들이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는 작은 요인이 된 셈이지.

그런데 그 캐릭터가 승부욕에 불타고 있더구만. 매일 30층을 뛰어오른다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별이가 궁금해졌어. 다른 건 없어. 우연한 네트워크상의 만남으로 서로를 알게 되는 과정을 겪었고 감정의 변화를 겪었을 뿐이야. 오프라인상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미션2. 꽂히셨나요? 데이트를 시작하세요 - 커플게임 선택하기

 

◎ 그럼 현실과의 차이는 어때? 서로간 정보가 불평등하게 형성됐는데 사이버에선 둘도 없고 현실에선 싸우고 엇갈리고... 그건 서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거 아냐?

 

★ 인주 : 현실과의 차이는 별로 고려하지 않았어. 세상 모든 것과 헤어진 3년 전 그 날부터 자폐소녀였던 내가 멜로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과거를 열었어. 목표가 생기면 씩씩해지지만 난 청각장애라는 것 때문에 누군가의 동정을 받고 싶진 않아. 사이버에서 난 청각장애가 아냐. 그래서 현실과는 약간 달라.

 

누군가에게 일부러 과거를 알려줄 필요는 없지만 투명인간 친구를 가지고 싶었어. 만나는 것도, 전화도 안돼, 그러나 사이버에선 곁에 있을 수 있는. 굳이 현실과 사이버에서 똑같아지려고 애 쓰진 않아. 전적으로 한 쪽에 기울어진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멜로는 훌륭한 투명인간 친구였어. 샅샅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날 잘 알고 내 힘든 고백을 처음으로 들어줬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거지.

 

♥ 형태 :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사이버와 현실 양쪽에서 그녀를 동시에 알아가는 게 불평등한 건 분명하지. 어쩌면 현실에서 그녀를 알지 못했고 그렇게 이쁜 여자가 아니었다면 접근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과거 역시 한 몫 했을 테고. 솔직히 얘기하면 우리가 커플이 된 건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빚어진 나의 작업의 결과였을 지도 몰라.

 

인주에게 사이버에선 선택됐지만 현실에선 돈만 아는 속물로 받아들여지는 웃긴 관계야. 사이버상의 멜로를 현실의 내가 질투한 거야. 현실과 사이버를 오가며 겪은 삼각사랑! 웃긴 일이야. 나는 하나인 데 상대방에겐 난 두 존재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만도 하지.

 

 

미션 3. 둘만의 공간을 원하시죠? - 아지트 만들기

 

◎ 사랑하는 사람들, 아니 사람들은 주변에 되묻지. “날 잘 알아?” 그리고 그렇게도 요구하지. “널 알고 싶어”라고.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다른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어떤 거지?

 

♥ 형태 : 글쎄, 다른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만큼 나를 아는 일도 만만치 않아. 누군가에겐 곤혹스럽기도 하고 당연히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지. ‘나와 너’는 도대체 누구이지? 그리고 우린 자신을, 서로를 얼마나 아는 걸까? 혼란스럽긴 매 한가지야.

 

하지만 이건 확실해.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부분 중에 ‘사랑하는 너’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너의 정체성에도 ‘사랑하는 나’가 있었으면 한다는 것. 내가 보지 못하는 뒤통수를 넌 볼 수 있듯이, 너의 뒷모습에서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 인주 : 멜로는 그랬어. ‘투명하게 다가서고 싶은 날, 하고 싶은 말이 터져 나오는 날, 나를 불러’라고.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기뻤어.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알지 못할 수도 있어. 현실 속에 있는 내가 진짜라고 믿고 싶지만, 넷상의 나를 ‘저건 내가 아니야’하고 단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어. 어차피 난 단 하나의 단어나 문구로 명확하게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야. ‘난 이중인격자가 아닐까’하는 자괴심이 들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아.

 

♥ 멜로 : 인정해. 내가 비록 형태의 사이버 ‘분신’이자 ‘아바타’라고 하지만 형태와 별개로 생각할 순 없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천만에! 다만 형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야. 어느 쪽이든, 그것은 다 한 사람이 가진 분신이자 아바타인 것을 인정하면 되는 거지.

 

한 사람을 단 한마디로 단정 짓는다는 건 웃기고 건조해. 상대적인 데다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각자의 해석일 뿐이고 겪어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거나 선입견을 가지는 건 우스운거야. ‘걘 이래’라고 말해서 그렇게 규정된 상태에서 ‘이렇지 않은 것’을 했을 때 용납하기 어렵게 돼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잖아.

 

★ 별이 : 정말 착한 것이 어떤 것이고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해. 단순히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잘해준다고 해서 ‘착해’라고 규정하는 것보다는 평소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도 살피면서 다른 사람의 평가도 들어보는 것. 그것이 다른 사람을 알게 되는 방법이고 나의 정체성을 살피는 한 방법이 아닐까도 싶어.

 

 

미션 4. 진짜 사랑을 시작하세요 - 밤새 채팅하기

 

◎ 불안한 청춘들의 행로가 위태로워도 자리를 찾아가는 건 이상이나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 꿈을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사랑이 늘 감미롭고 달콤한 것만은 아니란 것도 젊은 날의 통과의례지. 어정쩡한 3각관계 4랑법을 관통하는 기분은 어때?

 

★ 인주 :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인 ‘티티카카’에서 수영하고 싶다던 내 얘기... 거기서 수영하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수영하는 셈이잖아. 그건 이상을 가지고픈 젊음이 품은 이야기야. 이루기 힘들기 때문에 매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젊은 날의 한 자화상 같은 거.

 

내가 청각장애인인 건 사회적으로 ‘장애’를 얘기하자는 의도는 아냐. 어쩌면 혼란스런 청춘의 시기에 앞선 세대가 만들어놓은 세상과 단절될 수 있는 현실 속에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을 상징한 거지. 하지만 마냥 그러진 않아. 형태와 내가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에선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젊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 형태 : 돈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어. 하지만 이른바 대기업이란 안정된 생활을 떠나 벤처에 뛰어든 건,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도전하고 싶었어. 미래가 불안하지만 내겐 꿈이 있고 도전하고 싶은 가치가 있으며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 싶은... 완전한 건 없잖아. 그냥 자아는 죽을 때까지 형성되고 만들어가는 거지.

 

사랑도 마찬가지. 노래방에서 “사랑하고 싶어 이젠, 사랑하고 싶어라”며 불러 제낀 것도 사랑이 주는 달콤함을 그리는 한편 현실은 마냥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야. ‘여자들은 절대 떠나는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는 내 경험도 이미 생채기가 된 채 마음 깊은 곳에 둥지를 튼 아픔이지. 잊은 듯 지내지만 불쑥 불거져서 마음을 태풍처럼 긁고 지나가는 그런 사랑의 기억들...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춘의 시기에도 꿈, 이상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팍팍한 일상의 굴레가 수시로 젊음을 몰아세우는 한이 있어도 스스로 선택한 꿈의 색깔 앞에 꼬꾸라질 이유는 없어야 할 터이니.

 

‘내’가 ‘나’라는 사실조차 낯설었던 소년(소녀)시절을 지나 청춘의 그림을 그리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닥친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내가 내 꿈을 꾸는 것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 청춘은 여러 빛깔의 홍역을 치르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보유한 채 여러 굴레를 넘나든다. 그럴 때 이런 한마디씩은 어떨까.

 

“Good Luck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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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는 방법이 아니라 전보다 낫게 쓰는 방법에 관해 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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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감수성으로 해석하는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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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