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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내들의 순정에 대한 찌질한 보고서(2) … <죽도록 사랑해> | 시네마가 있는 풍경 2007-07-2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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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당최 그런 말은 쓸 수가 없었다. 오히려 수수께끼였고 불가사의라고 여기는 편이 나았다. 불편하기도 했다. "왜 그러냐? 제발 정신 차려라!!!"(버럭) 내가 그 녀석 친구라도 그렇게 쏘아붙였을 것 같다. 아니, 두들겨패서라도 말려야겠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건 대개의 사람들 생각과 행동거지로선 외계의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속도전이 횡행하고 감정의 깔끔한 처리, 쿨함을 경배하는 디지털월드, 즉 21세기다.

 

 

"죽도록 사랑해!"라고 말하면 이 시대는 과연 얼마나 이를 믿어줄까. 그 당시에야 솔깃하고 좋아서 몸둘 바를 몰라해도 사람들은 조만간 현실을 얘기할 것이다. 그게 언제적 얘기였는가 싶게 말이다.

 

이 사내, 재섭(이훈)이 이 여우, 설희(장신영)를 만났다. 그리고 이 사내의 순정이 시작됐다. 그 순애보는 '죽도록 사랑해'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 사내, 도통 말을 꺼내지 않았다. 눈치는 까고 있었지만 이 바위같은 사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포커판의 히든카드였다.

 

다른 년놈들 있는 것 없는 것 다 홀라당 까뒤집어놓을 동안 그는 묵묵히 포커판의 동향만 보고 있었다. 답답했다. 멀쩡히 다 보이는데 혼자 품은 것처럼 숨기다니. 그런 녀석이었다. 보는 내가 "얼레리 꼴레리~ 재섭이는요, 설희를 사랑한대요, 사랑한대요~"하고 내지르고 팠다. 차라리 온 동네 화장실벽에다 써놓을까 보다. 콱!

그런데 이 사내,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내지르며 설희에게 내뱉었다. "사랑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나중에도 그럴 것이며, 지금도 그렇다"는 말과 함께. 물컹 눈물이 또그르르르 떨어졌다. 제길, 머리에서는 이해는커녕 화가 나는데 눈물은 왜 눈치없이 떨어지누.

 

그랬다.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더 이상 현실에서는 자취를 감춘 (얘기라고 여기고 있는) 순정남이 가슴 속에 콱 박혔다. 도저히 머리 속에는 강제 주입이 불가능한 이야기. 일편단심 민들레는 열광이나 폐인을 불러내지는 못하지만 가슴을 움직일 수는 있다. 앞선 시대의 촌스런, 일명 클래식한 사내를 나는 알았고 앞으로 그를, 그의 순정을 기억할 것이다.(물론 내가 그 순정을 따르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아니다. 다만 현실에 없을 것 같은 그 순정을 내 기억의 박물관에 박제해 놓겠다는 뜻이다)

 

나는 내심 마지막을 향해 치달을 때까지 그가 다른 여자(모시던 사장의 딸, 재섭과 선을 보기도 했던)에게 눈길을 돌리길 바라고 바랬다. 설희가 더 이상 망가질 수 없을 때까지 간 뒤 종적을 감췄을 때, 1년 후라는 시간을 건너뛰었을 때, 나는 내심 다른 여자와 함께 선 그를 기대했다. 바로 순정파의 변심을...ᄒᄒᄒ 호쾌하게 "그럼 그렇지"하고 무릎을 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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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내들의 순정에 대한 찌질한 보고서(1) … <죽도록 사랑해> | 시네마가 있는 풍경 2007-07-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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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는 아니지만... 내겐 인상 깊었던 한 드라마, 그리고 우리네 사람살이.

 

얼마전 읽은 글이었다. 거기엔 한 줌의 진실이 있었다.

연인에 대한, 사랑에 대한. 내가 알고 있는 한!
플로베르의 말이라는데, 아마 <<마담 보바리>>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일 것이다.

"두 연인은 동시에 똑같이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

 

"마음은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이지만 줄 수 있는 보물"이라고도 했던 플로베르임을 감안하면, 보물을 주더라도 똑같은 크기나 가치의 마음을 받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란 말이렸다.그건 어쩔 수 없이 진실(!)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롤랑 바르트도 그래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 이것 역시 진실.

 

책도 있지 않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아프게 한다>

 

사랑은 그렇듯, 늘 한사람이 약자일 때 생성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할 때, 그때에야 비로소 두 사람은 연인이 되고 사랑은 시작된다. 사랑의 전제조건!

 

내가 아는 두 사내가 있다.

동시에 똑같이 사랑하지 못한,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

더 많이 사랑했던 약자들.

 


두 사내는 이른바 '순정남'!
좋아서였겠지만, 그 고통과 상처야 말해 무엇하리.
뭐 좋게 말해 순정남이지. 나쁘게 말하자면 미친 게지. 사랑에, 연인에.
그래도 '사랑에 미치다'는 말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도 그땐 그랬지 않았던가! 

 

맑은 눈을 지닌 청년이었던 한 사내.

순정을 바쳤으나, 그는 결과적으로 버림받았다.

순정이 늘 좋은 결과를 보장하진 않음에도,

그 맑았던 눈에는 증오와 탁함이 자리잡더라. 에효.

사랑의 환상에 짓밟힌 셈인게지.


순정, 남자의 순정.

그건 말이다. 내가 보기엔,
국어사전에만 남아 있고 현실 세계에선 거의 멸종됐다고 학계에 보고된 희귀동물.
폐광 깊숙이 묻힌 채 탐사발굴팀이 연장을 들고 나서지 않는 이상 눈으로 확인키 어려운 존재다. 아님 말고.

 

그리고 또 다른 한 남자의 순정!

그 순정은 앞선 예와 달리 어쩌면 보상 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사실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이 미친 놈의 순정'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의.
그 이상한 순정에 빠졌던 기억. 순정의 주인공은 재섭(이훈). 
약 4년 전이네. '시청률'도 높지 않고 제목도 촌스럽게 '죽도록 사랑해'란다.
평소 주말 드라마는 잘 챙겨보지 않았으나 이 드라마는 왠지 나를 끌어당겼다.
이유는 딱히 꼬집을 수는 없었다.
그냥 복작복작하게 살아가는 그네들의 이야기가 깊이 박혔다.
그리고 아직까지 가끔 난 이 드라마를 그리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한 여자만 죽도록 사랑하는 바보같은 남자, 재섭
언제나 화려한 변신을 꿈꾸는 여자, 설희
그리고... 그 남자 주변의 땀내나는 이야기
"70년대 우리의 자화상, 죽도록 사랑해"

 

이것은 이 드라마의 카피다.

 

* 이 드라마. 그닥 알려져 있지 않다. 한마디로 시청률이 죽을 쒔다.

그렇지만 아는 사람은 또 안다.
이 드라마, 알게 모르게 좋아하는 양반들이 있다. 나도 거기에 속한다.
2003.3.1~2003.8.17까지 6개월여 방영됐다.
당시 마지막회를 보고 써내려갔던, 그 이상한 순정에 대한 기록.

 

순정 보고서(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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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미호, 오겡끼데스까~~~ | 약속의 장소 2007-07-0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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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타계가 날 슬프게도 만들었지만 이런 반가운 소식도 날아드는군.

흠, '오겡끼데스까'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랄까.
나카야마 미호, 연기자 복귀 선언

 

다시 이 얼굴을 스크린에서 만날 생각하니 가슴이 쿵쾅콩닥.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그 존재감을 뚜렷이 채우는 이 배우. 어느날 훌쩍, 결혼한다구 떠나버렸더랬지. 야속한 사람. 그의 남편을 알곤 놀라워했던 기억. 츠지 히토나리. 에쿠니 가오리와 공동 저작했던 <<냉정과 열정사이>>의 'Blu'를 썼던 작가. 남편에게 소설 작법을 배운다던 나카야마 미호. 어떤 이야기를 들고 관객 앞에 설까. 자신만의 소설작법은 완성했을까.

 

궁금하다. 나카야마 미호. 그의 화양연화는 뭐니뭐니해도 스크린에 있을 때 아니겠나. 다시 복귀하는 사연이나 이유야 어찌됐든 나는 반갑다. 스크린에서 다시 만날 그를 기다리는 이 심정. 당신은 아시려나. 유후~

 

아, 나는 역시나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러브레터>를 처음 봤던 그때, 감정이입이 불가피했던 탓도 있겠지만 설산에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던 당신의 모습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눈물 주룩주룩 훌쩍훌쩍 흘리며 봤던 바로 문제의 장면. 그랬던 내가, 당신을 보니 하고 싶은 말.

 

방가방가 나카야마 미호 누나. 오겡끼데스까~~~

 


 

러브레터. 그래 다시 누군가에게 러브레터를 쓰고 싶어졌다.

보내지 못할 지라도...

보내도 받지 못할지라도...


그는 나의 연인이었습니다.
당신이 그리워하고 있는 그는
제 기억속에 살아 있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추억을
저에게도 나누어 주세요.
기억 저편에 사라졌던 그의 모습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추억은 당신의 것이기에 돌려드립니다.
가슴이 아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2002년 나카야마 미호의 결혼 소식과 맞물렸던 어떤 단상. 그땐 우리의 보림극장이 없어졌고 장만옥은 이혼을 했던 시기로군. 이른바 '크로스오버 시네메모리'(이런 말도 안되는 조악한 조어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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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가지 영화와 관련된 일과 뉴스를 접하게 됐다. 대수롭지 않은 사적인 기억의 조각이 꿈틀거린 것에 불과하지만 가끔 그런 감상은 누구에게나 문을 두들길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굳이 보편성의 굴레를 뒤집어씌울 필요없이 개인사의 영역에서 형성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얼마전 고향을 '방문'(이런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나보다...)했다. 이미 가슴속에서만 넘실대는 파도의 이미지와 어린 시절의 흔적들이 고이 자리잡은 그 곳은 지난해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내질렀던 <친구>의 무대가 됐던 도시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발을 디뎠던 일부 공간은 내 흔적이 희미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 내게도 삼류(이른바 그렇게 불리워지는)극장의 추억이 있다. 싸고 나이를 초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질풍노도 시절의 까까머리들에게 삼류극장은 맛있는 불량식품에 다름 아니다.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만 있다면 연달아 생산됐던 산딸기와 앵두의 시식을 비롯해 무릎과 어둠의 상관관계를 파헤치거나 뼈와 살이 어떻게 타는지 살피는 일은 일종의 짜릿함을 동반하기도 했다.

 

삐질삐질 불완전하게 형성된 감수성에 불을 지피듯 했던 <천장지구>를 보고 의기양양하게 ‘깡패’가 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환상을 그렸던 시절이었다(<천장지구>에서 유덕화와 오천련이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세상과 맞장뜨는 장면은 그 극장 최고의 기억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영화관의 메뉴는 분명했다. 사춘기 소년들의 가슴을 자맥질하게 만들고 호기심 천국의 길목이기도 했던 에로영화 혹은 이미 개봉관에서 닳고닳아 비디오로 가기 전 마지막 통관의 절차를 거치는 액션영화들이 주메뉴. 골라먹는 재미?

 

간헐적으로 거치는 일명 짜바리(경찰)의 단속만 없다면 표를 끊어주는 아가씨나 입구를 멀거니 지키는 아저씨에게 주민등록번호는 대수롭지 않은 수치일 뿐이었다. 단지 그들에게 우리는 돈내는 사람의 일부였을 뿐이었을까?

 

무언가 음침하면서도 쾌쾌한 냄새가 대변하듯, 그 분위기는 어린 학생들에게 알 수 없는 범죄적 행위를 감행하고 있다는 은근한 스릴을 안겨다주곤 했다. 학교라는 꽉 막힌 울타리를 벗어나 일탈을 하고 있다는 묘한 감정은 영화관람의 정서를 좀더 업시키는 요인이 됐지 않았을까? 그땐 그런 모험(!)이 삐딱선을 탄 항해가 됐다. 다음날 친구들 앞에서 숨막히는 영화의 장면을 묘사하게끔 만드는 것은 특별부록. 우린 그렇게 스토리텔러가 되곤 했다. 없는 살까지 덧붙여서.

 

그런 기억을 뒤로 영화 <친구>에도 나왔던 극장 주변의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원래 명칭이 아닌 ‘보창’이란 -이유를 알 지 못한 채- 이름으로 일컬어졌던 한 극장이 문을 닫은 것 같다는 친구의 이야기로 잠시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졌다.

 

고등학교 이후 10여년의 시간동안 한 번도 입구를 열어보지 못한 채 게이들의 아지트가 됐다는 확인하지 못한 소식만 듣고 옆을 스쳐 지나기만 했던 그 추억의 장소. 기억의 숲 속에는 부지불식간에 이름 모를 수풀과 생물만이 곁가지를 치고 있었던 셈이다.

 

기억의 숲 속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린 추억은 왠지 짜하다. 욕지꺼리가 난무하고 바퀴벌레가 제 집마냥 활보하고 삐걱대던 의자에 기대었던 그림은 녹슨 해방구 마냥 빛이 바랜 건 사실이다.

 

그곳의 스크린을 통해 보았던 영화들의 감상을 끄집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 영화관 특유의 분위기나 사춘기시절 온당한 모험이었다고 여겨 고무됐던 치기어림이 감상의 저편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내 기억의 숲 속에서 이미 그 영화관은 잠식당했었다. 그리고 영영 깨어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도 그런 꿈을 꾸기도 한다. <시네마천국>에서 토토가 그랬듯. 토토는 어린 시절, 자신을 영화감독으로 길러준 극장을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와 복원시켰다. 그리고 홀로 그 극장에서 고인이 된 알프레도 아저씨가 남겨둔 필름 속에서 잊을 수 없는 키스장면을 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그 어느 날, 나도 기회를 만들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철 지난 산딸기와 앵두를 씹으면서 말을 사랑했던 한 부인의 이야기를 끄집어낼는지, 아님 오토바이를 타고 이미 고인이 돼 있을 지 모르는 유덕화의 모습에 찡한 기운을 느끼고 있을 지.

 

여하튼 내 사춘기를 관통했던 추억의 파노라마가 담긴 스크린은 일단 현실 속에서 묻혀버렸나보다.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 멀티플렉스에선 느껴보지 못할 조악한 감정의 덩어리들이 뭉게뭉게 구름처럼 흩날린다. 그닥 당시에는 유쾌하지 않았음직한 삼류극장에의 기억이 세월의 흐름에 깎여 애틋한 감정으로 승화됨은 또한 기억이 주는 하나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이런 극장 단상 외에도 두 여인에 대한 소식을 최근 들었다. 실루엣(Silhouette)을 통한 자태가 너무도 고혹적이었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며 독백하듯 말을 건네던 <화양연화>의 장만옥이 이혼을 했다는 것. 그리고 “오겡끼데쓰까∼”하며 눈밭에서 울먹이던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가 결혼했다는 것.

 

두 여인의 이혼과 결혼을 놓고 상반된 소식은 나를 미묘한 감정으로 밀어넣었다.

 

지난 96년 <이마베프>란 영화에서 배역을 맡아 감독이었던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함께 살아왔던 장만옥은 ‘우호적인 이별’을 했다고 전해졌다. 10년을 훌쩍 넘긴 시간, 성룡과 함께 <폴리스스토리>에 출연, 눈도장을 찍은 미스 홍콩은 멜로드라마의 정수, <첨밀밀>을 통해 뚜렷하게 각인됐고 <화양연화>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을 뿜어댔다. 우옷.

 

억척같이 살아오며 엇갈린 사랑의 흔적을 찾아 헤매이던 <첨밀밀>의 장만옥은 어느 덧 중년의 여인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 혹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란 뜻의 <화양연화>, 그리고 꽉 끼는 차이나 드레스, 뾰족한 하이힐, 곧추세운 머리를 지니고 있었던 이 여인. 아주 더디게 우아한 발걸음을 내딛고 사랑이라는 가변차선에서 멈칫멈칫 애잔한 눈빛을 내비치던 장만옥의 실생활에서의 이혼은 이 영화와 별개임에도 괜스리 오버랩됐다.

 

옆집 부부와 서로의 배우자에게 바뀌어버린 애정의 행로였지만 끝내 영화에선 이루지 못했던 사랑. 사회가 조장한 관습의 틈바구니에서 내면의 충동과 자존심 사이의 간극을 망설임으로 표현했던 장만옥. <첨밀밀>에서 결국 10년의 방황을 우연으로 기워냈던 그녀는, <화양연화>의 고아한 자태 속에 자신을 묻어버렸다.

 

내 자신의 사랑을 뒤돌아보기 위해서였을까. 10년 뒤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장만옥을 떠올릴 것이다. 과연 그녀는 그 미래에 어떤 자태를 띠고 있을까.

 


 

반면, 나카야마 미호는 현실 속에서 더 이상 러브레터를 쓰지 않을 것 같다. <<냉정과 열정사이>>로 국내에도 알려진, 일본의 인기작가인 츠지 히토나리와 최근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츠지에게서 소설 작법을 배우고 있다고 알려진 여인.

 

이미 하늘로 먼저 간 연인을 마음 깊이 담아둔 채 설산에서 그 미망을 떨쳐내기 위해 울부짖던 나카야마 미호는 현실 속에선 너무도 이쁜 신부였을 것 같다. 첫 사랑으로 각인됐던 사랑의 아픔은 <러브레터>에서 봉인돼 있을 뿐인 것을. 나말고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와 흔적을 품고 있는 타인을 통해 타임머신에 탑승했던 그녀는 그 존재감만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웠었다.

 

망자는 이미 세상과의 접점을 차단했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망자의 꼬리를 떨쳐내지 못하곤 한다. 그 사람을 편하게 보내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만나 잊으라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망자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있었던 것을 ‘바보같다’'고 치부하거나 이해 못할 바가 아니었다.

 

어쨌든 나카야마 미호는 결국 결혼을 선택했다. 매년 겨울, 하얀 눈과 편지를 떠올리며 비디오플레이어를 돌리는 <러브레터>를 다시 보게 되면, 그녀의 얼굴이 어떻게 반사될까. 그것이 궁금해졌다.

 

추신) 뒈길, 어줍잖지만 두 여인은 내게 영화의 이미지 자체로 담겨 있었나부다. 나야말로 바보같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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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에드워드 양 감독님... | 구름의 저편 2007-07-02 13:02
http://blog.yes24.com/document/69802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속절 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그냥 제겐 충격이네요. 사무실에 앉아 훌쩍거림과 함께 자판을 두드립니다. 창밖으론 비가 내립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땅으로 향하는 것이 진짜 비인지, 눈물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침 출근 길엔 분명히 비였건만,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물은 빗물 아닌 눈물인 듯 싶습니다.

 

7월의 시작부터 눈시울을 뜨겁게 한 소식은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타계 소식입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 고이 잠드소서


 

 

이렇게 훌쩍 가 버리실 줄 몰랐습니다. 7년의 투병생활. 대장암 합병증. 향년 59세. 그렇게 아프신 줄도 몰랐습니다. 고인께서 투병생활 중임을 대중에 알리길 원하지 않았답니다. 언젠가 그의 영화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감독님의 <하나 그리고 둘>이 제게 던진 여파는 그렇게 컸습니다.

 

<고령가 소년살인사건> 등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으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하나 그리고 둘>(A One And A Two) 이었습니다. 아마 그 영화가 국내에 개봉한 것은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덕분이었을 겁니다. 2000년 53회 칸 영화제. 그리고 그 해가 가기전 국내 개봉이란 절차를 밟았고. <하나 그리고 둘>을 본 것은 아마 대학로에 위치한 '하이퍼텍 나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별다른 기대감 없이 망막을 열었던 영화. 그러나 보는 내내 빨려들어갔었습니다. 거의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불구, 전혀 지루하지 않았을 정도로 내 모든 촉수와 뉴런은 스크린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내 오감도 활짝 열렸습니다. 이런 영화가 있나 싶게. 아니 그건 영화라기보다 하나의 현실이었습니다. 아프지만 묵묵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 별다른 클라이맥스도, 크게 굴곡진 이야기도 없는 흐름 속에서 나는 사람살이의 뒷모습을 봤습니다.

 

한 가족이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들은 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자 거센 풍랑을 겪으면서 씨줄과 날줄 엮이듯 만나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각자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서 생의 통찰과 지혜는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사려깊고 차분한 시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다른 사람의 뒷통수를 찍어대는 어린 소년, 양양은 에드워드 양 감독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영국의 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이런 말도 했었습니다. "전세계 영화 감독 중에서 현미경처럼 인간 삶을 관찰할 수 있는 이는 에드워드 양과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밖에 없다."고. <하나 그리고 둘>은 정말 그런 영화 입니다. 현미경처럼 인간 삶을 관찰하는. 보지 못하는 뒷모습 같은.

 


나는 <하나 그리고 둘> 덕분에 당시 날 붙잡던 미망에서 약간은 벗어날 수 있었고. 생을 새로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내게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여진이 워낙 컸던 탓에 당시 나는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눴습니다. <하나 그리고 둘>을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래서 당시 좋아하던 사람을 일부러 극장에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나네요. 덕분에 전 한번 더 보게 된 셈이죠. 그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상업영화에만 길들여진 그녀를, 에드워드 양 감독도, 하이퍼텍 나다도 몰랐던 그녀를, '좋은 영화'라는 우격다짐으로 데리고 갔었죠. 처음엔 지루해하던 그녀도 어느덧 그 영화에 빠졌습니다. 끝날 즈음엔 그녀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더랬죠.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그녀는 너무 고마워했고, 나를 보던 시각도 약간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오~ 니가 이런 영화를...' 거의 이런 분위기. 웃기지만 여자친구에게 점수를 따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했던 기억.

 

그랬습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내게 생에 대한 비타민이자, 좋은 미디어가 돼 주었습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님은 생을 탐구하는 저널리스트였고. 누군가 내게 내 영화리스트를 물을 때면 나는 <하나 그리고 둘>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영화를, 감독님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죠.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영화를 권했습니다. 꼭 보라면서 침을 튀기곤 했었죠. DVD도 샀습니다. 어느 해 <필름2.0>에서 부록으로 <하나 그리고 둘> DVD를 줬습니다. 그때 몇권을 샀습니다. DVD 때문에. 몇명에게 나눠줬습니다. 그리고 몇개 남겨뒀습니다. 내 좋은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나는 가끔 생이 버거울 때면 <하나 그리고 둘>을 꺼내봤고, 생을 감식하는 그의 시선에 늘 탄식했습니다.

 

내겐 그런 감독님이었습니다. 에드워드 감독님은 <하나 그리고 둘>을 만든 이후, 이런 토로도 했다더군요. 대만 사회에 대한 고찰에 많은 힘을 기울여왔음에도, 나이를 53이나 먹은 후에야 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역시 생이란 그만큼 풀기 쉽지 않죠.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 우리네 사람살이임을. 

 

이후 감독님의 <고령가 소년살인사건>도 봤지요. 영화가 좋긴 했지만, 당시 엄청난 무더위 속에서(에어컨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종로의 한 극장에 대한 기억이 우선이네요. 더구나 그 영화를 보기 위해 꽉꽉 들어찬 사람들의 열기 때문에 극장 온도는 더 올라갔던. 언젠가 쾌적한 환경에서 에드워드 감독님의 영화들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이렇게 가셨으니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회고전이라도 열려야 되지 않겠습니다. 그의 새로운 영화를, 생의 또다른 통찰을 볼 수 없음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흔적들을 통해 다시 우리네 일상의 뒷통수를 들여다 보고 싶네요.

 

감독님. 좋은 길 가세요. 당신의 타계 소식에 괜히 눈시울 적셔봤습니다. 하늘에서도 좋은 영화 만드실거죠? 저보다 먼저 그곳에 간 사람들을 위해 하늘에서의 <하나 그리고 둘> 역시 만들어 주세요. 저도 언젠가 그곳에 가면 감독님이 만든 영화를 볼 예비 관객이거든요. 집에선 다시 <하나 그리고 둘>을 꺼내봐야 겠습니다. 당신의 살아생전 흔적을 느낄 수 있겠지요? 그리고 평소 할머니에게 얘기를 않던 양양이 할머니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읊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봅니다. 제가 감독님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와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제가 하는 말은 죄다 할머닌 아시니까 안했어요.
할머닌 가셨는데 하지만 어디로 가셨죠? 아마 우리가 아는 곳일 거에요.
남이 모르는 일을 알려주고, 못 보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럼 날마다 재밌을 거예요. 할머니 계신 곳도 찾겠죠.
그러면 모두에게 말해서 함께 할머니께 가도 되나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특히 이름이 없는 아기를 보면.
할머니가 늘 늙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저도 늙어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안녕, 감독님...


 

에드워드 양을 만나다[1]

에드워드 양을 만나다[2]

"영화를 만드는 이유? 생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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