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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춘의 이름, 제임스 딘 | 구름의 저편 2007-09-3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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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투에니포'(Yes24)에서 '제임스 딘'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 제임스 딘 검색결과

 

DVD(영화), 음반, 책 등에 이어 속옷회사의 물건들이 나오는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 건 <제임스 딘 콜렉션(6disc)>(DVD, 왼쪽)와

<<제임스 딘 : 불멸의 자이언트>>(책, 오른쪽) 2개.


사실 제임스 딘 빤스도 하나 있다. ^^;

 

 

 

 

 

 

검색하면서 보니, 책 한권이 더 있는데, 제목은 <<반항아 제임스 딘>>. 표정 쥑인다.

 

9월30일. 9월의 끝머리엔 결국 '제임스 딘(James Dean)'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지만, 내 방에도 지미(제임스 딘의 애칭)형의 브로마이드가 장식하고 있었지. 그의 어떤 영화도 제대로 본 적이 없고,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갖는지 알지도 못하던 소년의 방으로까지 파고들었던 그 청춘. 나는 그저 반항끼 줄줄 흐르던 그의 간지와 눈빛에 매료됐었던 것 같다. 더구나 포르쉐(!)를 몰다가 스물 넷에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이야기에 혹하지 않을 재간이 없던 나이 아니었겠는가.

 

스물 넷은 그런 나이일까. "아직도 내 자신의 몇 분의 일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에 설렘을 느낀다"던 지미 형이었지만, 죽음 또한 그보다 적지 않은 설렘을 안겨주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산화를 택했는지는 여전히 모를 문제지만,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차사고는 왠지 모르게 청춘의 작렬처럼 느껴진다. "빨리 살고, 일찍 죽는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남긴다 (It lives quickly, it dies early. It leaves a like that most beautiful love...)"고 말했다던 그의 어록에 기댄다면 말이다.

 

이렇게도 말했다고 하더라.
"사람이 진정으로 위대해지는 것은 한 가지 경우뿐이다.
만일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넘을 수 있다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빠른 속도로 살아야 한다."

 

그래, 빠른 속도로 시간은 세월을 집어삼켰고, 벌써 52주기. 1955년 9월30일 오후 5시 59분, 미국의 하이웨이 46과 41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24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 이번주 나의 영화주간엔 어쩔 수 없다. 지미 형.
☞ 제임스딘 홈페이지

 

 

죽음에 이르는 병, '사랑'

 

'제임스 딘의 순정'(리버룸) 이라는 블로깅을 보자니,
멋대로 추측하자면, 지미 형을 영원한 청춘의 초상으로 만든 결정적 계기 중의 하나는 결국 '사랑'이 아닌가 싶다. 덴마크의 사상가,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며, 절망은 자기상실이라고 했다. 연인이었던 '피어 안젤리(Pier Angeli)'를 타의에 의해 떠나보낸 뒤 상실감과 절망은 커져가고 있을 터. 더구나 그들을 떼어놓은 중요한 이유가 종교라니.-.-;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연인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로선 감당하기 힘든 노릇이 아니었겠소!

 

결국 지미 형에게 사랑은 '절망'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청춘은 과도한 속력을 냈고,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억측.^^; 그의 애마, 포르쉐는 그런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삐끗하면 와장창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공기를 가르는 강한 바람이 아니고서는 그 절망감을 씻을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 나는 한편으로 안타깝다. 종교적인 이유로 헤어짐을 강요받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 사랑을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비극때문에.

 

지미 형의 산화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모를 일이지만, 피어 안젤리는 그의 죽음으로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렸을까. 결국 지미 형 대신 선택한 사람과 이혼하고 39세의 나이로 생을 스스로 마감했단다. 피어는 죽기 전에 "진정 사랑했던 사람은 지미, 한 사람밖에 없었다"고, 살아 생전에도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가 지미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에휴. 대체 그 '사랑'때문에 몇 사람이 다친거여. 사랑했던 두 사람도 그렇지만, 결혼했다가 이혼한 피어의 전 남편은 또 어쨌을꼬. 두 사람의 사랑이야 세기의 사랑이니 뭐니하면서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겠지. 그러나 거기서 엉뚱하게 파편이 튄, 그들의 사랑의 신화를 공고하게 만들어준 들러리로 전락한, 그 사람의 마음에도 괜한 신경이 쓰인다. 그도 피어를 사랑했겠지. 그렇다고 피어의 마음을 모르지도 않았을테지. 상처 입은 그 마음. 누가 알아줄꺼나. 휘유~~~

 

어쨌든 사랑은 어떻게든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다. "우리 사랑하게 해 주세요~ 네에"라고 외친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복잡해 복잡해.

 

배우, 그 이상의 배우

 

사실 지미 형은 필모그래피만 놓고 보자면, 이렇게까지 추앙될 배우는 아니야. 생전 알려진 영화래야 고작 3편. <에덴의 동쪽> <이유없는 반항> <자이언트>. 그 중 두편의 영화도 사후에 개봉했었지. 그리고 TV 1편과 단역 2편 합쳐봐야 그가 출연한 필모는 많아야 6편.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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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 시네마가 있는 풍경 2007-09-23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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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는데,

오늘(9월23일)은 알다시피, '파블로 네루다'의 34주기잖아.

그렇담 온라인 서점이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한다면,

파블로 네루다 책을 메인페이지 등에 약간이라두 진열을 해두 좋잖아.

그건 기록이면서도,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기법이 될 수 있지.

이왕이면 파블로 네루다가 관련된 콘텐츠, 가령 영화로 보면 <일 포스티노>의 영화평이나 DVD, 음반 같은 것들. 아니면 황지우 시인의 '일 포스티노'라는 시가 담긴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은 또 어때?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콘텐츠들 놓치기 아깝지 않아?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으로 여기서 검색을 해두 이렇게 나오잖아.

☞ 응투에니포(Yes24)에서 '파블로 네루다'로 검색해보니... 

 

 


 


책도 올해 양장으로 새로 나왔네. 허허. 더구나 시집 세트까지. 이런 날 놓치는 건 좀 아깝지 않아? 안그래? 응투에니포? 아니면 출판사에서라두.

 

 

뭐 이제부터 본론. ^^;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세계를 넓힌다는 것과 때론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때가 있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 한편의 영화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진 않지만, 한 사람의 세계를 바꿔놓을 수는 있진 않을까.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지. 당연, 영화가 반드시 그래야할 이유는 없다. 영화는 때론 혼자만의 것이니까.

 

오늘 묵은 영화 한편을 꺼내는 건, 역시나 그런 의미다.
내 세계를 넓혀 준 한편의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떠들썩 하진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화지.
누군가는 '시와 음악이 물빛 그리움으로 번지다...'라는 시 같은 헌사를 바치드만.

 

메타포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일 포스티노>가 준 선물이었다. 그만큼 내 세계는 조금 더 확장됐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칠레의 명민한 좌파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처음 알았고,
좋아하게 된 파블로 네루다의 '詩'라는 시를 만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메타포(은유)를 느꼈다.

 

9월23일, 오늘은 파블로 네루다의 34주기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구름의 저편으로 몸을 숨긴 세계의 문인.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무엇보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의 낙원을 꿈꾼 민중의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계급적 근원을 알고 계급성에 기반해 자신의 문학과 언행을 펼쳤다.
노동자의 아들로서, 칠레의 명예영사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접한 부조리가,
절친한 동료시인들을 잃은 1936년 스페인 내란이 그의 정치적 태도를 확립시켰다.
칠레 공산당에 입당해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해 갖은 활동을 했지만,
네루다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생활을 하게 됐다. (<일 포스티노>에는 망명생활을 하는 파블로 네루다가 나온다.)

 

다시 돌아온 칠레였지만,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는 네루다의 희망을 꺾고 기력을 쇠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펜을 놓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엄청난 수의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인터내셔널가>가 울려퍼졌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그 광경은 참으로 벅찬 장면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정신과 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피노체트의 군부독재 마감에 일조를 했다는 말은 그만큼 칠레에서 파블로 네루다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방증하는 것이겠지.

 

사실 그는 '사랑'에 목마른 연애시의 대가였다.
약관의 나이인 20세에 낸 두번째 시집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로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된 그의 이력을 봐도 충분하지.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시를 쓰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찾게 된 이름이 체코슬로바키아의 하층민 출신 시인 '얀 네루다'였고, 그는 여러가지 필명을 쓰다가 네루다를 선택했다. "체코의 서민 시인이었기 때문에 계급적 동질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본명은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이름이다. 리카르도 네트탈리 레예스 바소알토. 휘유 -.-;;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 체 게바라가 죽기 전 필서하면서 들고 다니던 시가 파블로 네루다의 것이었다지? ☞ 게바라 죽는 순간도 ‘詩와 함께’

 

이걸 밝히면 더이상 비밀이 아니지만, 내 이력서에는 파블로의 작품 '詩'의 한 구절을 변용한 문구가 있기도 했다.^^;;

 

파블로 네루다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보고 싶다면,
☞ 파블로 네루다(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아마 3년여쯤 됐나. <일 포스티노> 감상기다. 가을, 편지,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이번 추석엔 <일 포스티노>를 다시 꺼내 봐야할 것 같다. '詩'를 한번 읊어봐야할 것도 같고. 지난해 타계한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 '필립 느와레'가 <일 포스티노>에선 파블로 네루다로 나온다는 사실. 필립 아저씨를 보고 싶기도 하고.

 

사실 <일 포스티노>가 한편으로 안타까운건,
우편배달부, 마리오 역과 각본을 맡았던 마시모 트로이시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이틀후 세상을 등졌다. 영화 촬영 전 두번의 심장수술을 했고, 영화를 찍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 그는 <일 포스티노>와 함께 했다고 한다. 영화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걸까.

이처럼, 나는 파블로 네루다, 필립 느와레, 마시모 트레이시의 이야기나 모습이 담긴 <일 포스티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은,
극중 베아트리체 루소에게 푹 빠진 일포스티노, 마리오가 파블로 네루다에게 사랑에 빠진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 물론 이건 영화를 봐야  좀더 확실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

 

"전 사랑에 빠졌어요"
"그건 심각한 병이 아니야, 치료약이 있으니까"
"치료약은 없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이 섬의 아름다움을 말해보겠나?"
"베아트리체 루소"

 

누군가 한국의, 서울의, 아니면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움을, 자랑을 묻는다면,당신은 반드시 지금 당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대라.
닭살이라고?
이봐이봐, 사랑은 원래 그런 거야.

그리고 그것이 또한 메타포라규.

 

나는 당신의 사랑을 지지한다. ^.^
그리고 올 가을엔 꾹꾹 눌러쓴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떻겠나.

<일 포스티노>를 함께 봐줘도 좋겠다.

 

아니면 황지우 시인의 '일 포스티노'(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 수록)를 읊어도 좋겠군.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히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 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 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숏, 롱테이크되고 ;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시와 편지 그리고 바다, <일 포스티노> (2004. 3)

 

편지. 참으로 먼지 폴폴 날리는 오래 묵은 골동품과도 같은 뉘앙스다. 이제 ‘편지를 쓴다’는 행위는 목욕재개하고 신실한 마음에서만 가능할 것만 같다. 벌써 향수가 된 건가. 내 안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떠오르지 않는 시상(詩想)으로 머리를 쥐어짠다. 그리고 또박또박 한자한자 꾹꾹 눌러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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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투사 '알리'를 권한다 | 바람구두 이야기 2007-09-1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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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알리, 맞다!

 

 

알리 아저씨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반가웠다. 나는 아저씨를 좋아한다. 권투선수로서 멋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몇년 전, <알리>란 영화를 보고 완전 좋아졌다. 현재 파킨슨병을 앓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멋진 투사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성화의 최종주자로서 점화를 하던 아저씨의 모습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저씨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건,
물론 그의 활동결과다.
미국 아동평화재단의 공동설립자로서, 흑인해방·평화·어린이권익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는 알리 아저씨.
☞ 무하마드 알리, 노벨평화상 후보에

 

아저씨는 2005년 유엔평화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은퇴 후 아저씨는 벌어들인 돈과 자신을 활용해, 세계의 빈곤과 장애인을 위해 앞장섰다. 파킨슨병을 본격 앓으면서도 빈곤층과 장애인들에게 열정과 신념의 바이러스를 유포했다. 그의 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인종차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저씨의 투쟁에 파킨슨병도, 나이듦도,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럴 자격은 없지만 ^^;) 나는 감히 아저씨에게 '투사'라는 칭호를 붙인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도, 헤비급 세계챔피언이어서는 아니다. 파킨슨병에도 꿋꿋한 아저씨의 노력을 경하해서만도 아니다. 아저씨가 걸어온 궤적엔 좀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하게,
노벨평화상 심사위원회가 아저씨에게 노벨평화상을 쥐어줄 것인지는 그닥 궁금하진 않다. 아저씨가 상을 안 타도 별로 할말 없다. 다른 더 적합한 사람이 그 상을 쥐었겠거니 한다. 그러나 심사위원회가 실수나 의도적 배제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언젠가 아저씨도 구름의 저편으로 가겠지만, 나는 아저씨의 바람대로, 아저씨를 기억할 것이다. 모든 이의 권리를 존중하는 유머 있는 흑인으로.

“나는 모든 이의 권리를 존중하는 유머 있는 흑인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또, 자유와 정의, 평등을 위해 싸운 인간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흑인이면서 장애인인 내가 희망의 끈을 높지 않고 싸워온 것처럼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맞서 승리하길 바랄 뿐입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성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당신들께 영감을 주었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는 너에게 권한다. 알리를. 세월이 흘러 때가 묻은 영화, <알리>라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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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센세이셔널한 사건은? | 바람구두 이야기 2007-09-18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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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끔 소품을 사러 들리곤 하는 '텐바이텐'에서 '책을 읽자'는 취지의 이벤트를 하고 있더라. 이번에는 <<SENSATION 센세이션展 : 세상을 뒤흔든 천재들>>이란 제목의 책. 걍 무심코 소개를 읽었는데 욕심이 났다. 책탐책탐...^^;;;

 

이벤트는 이렇게 묻고 있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센세이셔널한 사건은 무엇인가요?"

물론 이 책은 사회 전반에 뿌리박힌 고정관념에 딴지를 걸고 새로운 시각과 사고로 지각변동을 일으킨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책 소개는 이렇게 나와 있다.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있는 책. 이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은 예술적 관습을 뒤엎고 전통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낯설기 기법의 원조들이다."

이벤트 물음의 답변을 보자면,

신정아 사건이나 911테러 등을 들고 있는데,
나는 좀더 사적으로 접근했다.

뭐 남들이 동의하거나 말거나. ^^;

 

 

사랑!

사랑에 빠지는 사건이 가장 센세이셔널하지 않을까. 그건 어떤 다른 사건보다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가질 수 있는 사건이다.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 세계를 확장하게 되는 사건보다 센세이셔널한 것이 있겠는가. 사랑은 그렇게 다른 세계를 만나는 통로이다. 일생을 살면서 사랑은 한번이 올 수도, 몇번을 거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언제나 센세이션 그 자체다. 우리는 그 '사랑'때문에 행복도, 불행도, 기쁨도, 슬픔도, 희망도, 좌절도, 그 모든 감정을 느끼지 않는가 말이다. 사랑 때문에 우리는 변화하고 세계의 지평을 넓히고 극심한 아픔도 겪는다.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이 담긴 사랑이야말로 가장 센세이셔널한 사건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



당신이라면,
어떤 센세이셔널한 사건을 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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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 마리아 칼라스 30주기 : 죽어서도 '악녀'인 그 목소리 | 구름의 저편 2007-09-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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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필라델피아>(1993, 감독 조나단 드미)는 AIDS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한 사고를 제고시켜준 영화였다. 배우들의 열연도 한몫했지만, 이에 어우러진 한 목소리가 마음을 움직였어. 관객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정치적인 태도를 바꾸는데 이 목소리가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고, 나는 아직 믿고 있거든.

 

유능했지만, AIDS에 걸려 추락한 변호사 앤드류(톰 행크스)는 죽어가고 있지. 조(덴젤 워싱턴)은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앤드류를 변호하고 있고. 사실 조는 변호인임에도 앤드류를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야. 마지막 증인 심문을 앞두고 조가 앤드류를 찾았는데. 링거를 꽂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앤드류는 오디오 볼륨을 높이며 아리아를 배경으로 절규하듯 토로를 막 하지.
 
이 아리아는 둘의 정신적 교감에 절대적 역할을 한 듯 싶어.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오페라 아리아,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의 3막에 나오는 곡. 둘은 눈물을 흘렸고, 나 역시 두 배우의 열연과 아리아의 선율에 마음이 움직이더라. 눈물이 뺨을 적셨어.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2.2~1977.9.16). 나는 그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9월16일. 세기의 디바,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던 그가 생을 마감한 날이다. 1977년. 정확히 30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어. 54세. 심장마비라고 알려졌었지. 그리스계로서 뉴욕에서 태어난 디바의 곡절은 더 이상 연장되지 못했고.

 

나 같은 문외한이야, 그의 목소리가 매혹적이라지만, 솔직히 잘 모르지. 내가 겪은 매혹은 <필라델피아> 그 하나로도 충분하다(한국에서도 1974년 가을 두 번의 공연을 했다는데, 당시 공연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어딘가에 있겠지). 말하자면, 그의 목소리에 대한 매혹보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그의 흔적들에 더 놀랍고 더듬이가 움직였을 따름이야. 특히나 세기의 연애사 혹은 스캔들은 화제를 몰고다니는 셀리브리티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사진만 봐도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장난이 아냐. 너무도 강렬하기에 그 생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들더군. 선입견에 의한 것이지만. 그의 흔적을 훑어보자면, 성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완전속물의 행적도 뚜렷하지만, 그 수면 아래서 피똥을 싸댔을 모습 또한 그려지지. 엄청난 재능을 타고 났음에도 말이야. 그는 어쩌면 컴플렉스 덩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었기에 자신을 더욱 위악적으로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그냥 억측. '악녀' '팜므 파탈'이란 별명도 어울릴 듯한.

 

특히나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JFK의 부인이었고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재클린 케네디(재키)와의 삼각관계는 두고두고 회자될 얘기지. 그러고보니 재키는 세계의 권력(JFK)과 재력(오나시스)을 움켜쥔 남성들을 자신의 품안에 담았군. 후~ 남편까지 버리고서 오나시스에 올인했던 마리아 칼라스는 그러나 재키에게 밀린 뒤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혼생활 중 목소리에 금이 가면서 유산에, 자살기도까지도 하고. 예술은 그렇게 힘을 잃어갔고 여인은 윤기를 잃은 셈이지. 그렇지만 오나시스는 죽기 전, "진정한 연인은 마리아 칼라스였다"는 말을 남겼다는군. 재키의 낭비벽에 질려서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마리아 칼라스는 위안을 얻었을까.

 

어쨌든 마리아 칼라스의 공연 파트너였던 스테파노는 그의 죽음 이후 이런 말을 남겼다. "칼라스는 노래 잘하는 여자였지, 노래에 딸린 여자는 아니었다. 사랑과 성공의 인생을 살다 그걸 잃고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오페라에서의 'B.C.'는 'Before Callas(칼라스 이전의 시대)'를 뜻한다. 프랭코 제프리엘 리라는 이태리의 연출가가 한 말에서 비롯됐다지.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오페라의 디바는 쓸쓸히 세상을 떠났지만, 그 떠남도 30년이 됐지만 추모 열기는 뜨겁다. 마리아 칼라스의 힘 아니겠는가! 그리스는 올해를 '마리아 칼라스의 해'로 정했고, 아테네에서는 칼라스 기념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이태리 밀라노의 라스칼라에서는 오늘 '칼라스'라는 96분짜리 다큐영화가 상영된단다.

 

뉴욕 등지에서는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고 하고, 한국에서도 다음달 11일부터 11월10일까지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마리아 칼라스 페스티벌'이 열린단다. 유품 전시회와 성악가들의 공연. 휘유~ 마리아 칼라스는 확실히 악녀다. 죽어서도 자신을 사람들이 잊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얼마전 생일을 한달여 앞두고 71세로 타계한, 마리아 칼라스 이후 오페라 대중화에 가장 공헌한 성악가였다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생각이 나지만, 그에 얽힌 추모야 최근에 넘치고 넘쳤고. 그리고 파바로티에 대해선 내가 별로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 없거든. ^^; 쨌든 칼라스도 가고, 파바로티도 가고. 한창호 영화평론가는 그러더라. 이젠 오페라 같은 음악을 누가 보급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스타의 존재가 대중화에는 유리한데, 오페라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흠, 그럴지도 모르겠네.


뱀발.
신촌에 '마리아 칼라스'라는 가게가 있다. 꽤나 유명한 카페 겸 레스토랑인데, 그 언젠가 마리아 칼라스의 생을 접한 뒤 소개팅 장소로 삼았던 적이 있다. 성악을 전공한 주인께서 마리아 칼라스를 흠모하여 지은 이름이다. 진짜 언덕 위의 하얀 집인데, 주택을 개조했다. 유명 건축가 김중업씨가 지은 영국식 주택. 디자이너 안홍선씨의 아트 퀼트 또한 엿볼 수 있다. 1~2년에 걸쳐 만든 스타일과 스토리를 가진 퀼트다. 그 옛날, 영화 <겨울나그네>에서 다혜(이미숙)의 집으로 활용됐고, 이후 카페로 개조됐다. 메뉴 이름 역시 특이하다. '에르나니'(나의 사랑이여), '리골레토'(그리운 이름이여) 등 오페라 아리아 용어의 음식도 있고 요구르트의 이름도 '세리오조'(점잖게), '브릴리안테'(화려하게), '칸타빌레'(노래하듯이)등과 같은 음악 용어다.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다면, 이 곳 나름 괜찮다. 가고 싶어? 그럼 예약해. 홈페이지야. ☞ 카페 마리아 칼라스

 

참, 그때 그 소개팅 어떻게 됐냐고? 어이 이봐, 난 고백하러 간 게 아니었다규.^^;
이 정도면 답이 됐나? 궁금하면 따로 물어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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