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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춤으로 세상을 홀리다, 이사도라 던컨 | 구름의 저편 2008-09-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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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희진의 댄스콘서트를 봤다.
현대무용과 스토리텔링이 결합한, 또한 콘서트가 합쳐진 현장.
나는 '몸의 미학'에 쉽게 넘어가곤 하는 편인데,
그 댄스콘서트에서도 나는, 현대무용가 김희진의 몸짓에 매혹됐다. 
춤은 무용은 댄스는 그런 것이다.
세상을 홀릴 수 있는 것, 우주를 홀릴 수 있는 것.
또한 세상과 우주를 넓힐 수 있는 것.
그리고, 나는 이사도라 던컨을 생각했다.
역시나, 나는 춤꾼들을 사랑한다.
나도 그렇게 춤꾼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역시 간지가 따르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타고난 것인지라.
나는 원망했다. 그놈의 간지를...ㅠ.ㅠ


 
창조적인 춤으로 세상을 홀리다,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8.5.27~1927.9.14)


여기, 춤으로 세상을 홀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교차했습니다.
창작 댄스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인물인 그, 이사도라 던컨입니다.

지난 1968년에 만들어진 이사도라의 전기영화, <맨발의 이사도라 (Isadora/The Loves Of Isadora)>는 주인공을 맡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였어요.
그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뉴욕비평가상 여우주연상 수상을 비롯,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굳이 비약하자면,
이사도라의 생이 그만큼 극적이었기에 그만한 열연이 나온 것도 아닐까 싶어요.

이사도라 던컨. 그에 대한 풍문은 참으로 다양하고 많습니다.
‘현대무용의 어머니’라는 레떼르는 가장 무난하면서도 그를 잘 드러내는 것이죠.
자유연애는 물론, 자신의 육체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그것을 무기삼기도 했으며, 
자신감과 정열로 똘똘 뭉쳐 에너지가 넘쳤으며,
깊이가 없고 어리석은 여인으로 비쳤던 여인.
어쩌면, 그 모든 풍문을 뒤섞더라도 그가 뛰어난 예술가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같아요.

이사도라의 예술가 기질은 타고난 것이었을 겁니다.
어머니는 음악선생이었고 아버지는 시인이자 은행 출납계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두 사람의 이혼 뒤, 어머니는 이사도라를 포함한 사남매를 교양을 갖추되 관습이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심어주면서 키웠습니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춤을 췄다고 전해지는 이사도라는 언니 엘리자베스와 십대 때부터 동네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 생계를 도왔다는군요.
또 고전발레의 엄격함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율동으로 춤을 표현하는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브람스·바그너·베토벤 등 고전음악가들의 작품을 춤으로 해석할 때도 그런 방식을 택했고요. 


춤으로 돈벌이를 하던 이사도라였지만, 그는 좀더 넓은 무대를 원했습니다.
유럽으로 눈을 돌린 그는 돈이 없어 가축운송선을 타고 남매들과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런던 사교계에 소개되는 과정이 전설처럼 전해지는데요,
달빛 밝은 밤에 춤을 추다가 당시 정상의 배우인 패트릭 캠벨의 눈에 띄어 데뷔를 하고,
파죽지세, 탄탄대로를 달리게 됐다는.

그는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사지를 드러내는 얇은 의상을 걸치고, 맨발로 자유롭게 걷고 달리고 뛰고 구르며,
풀어헤친 긴머리를 나풀거리며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나요.
내면의 정서와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이사도라의 몸짓은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거칠 것이 없었던 시기였죠. 1903년 그리스에서 일 년 내내 마음껏 춤추며 지냈고, 1904년에는 독일에 학교를 세워 빈민층 소녀들을 가르치며 순회공연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무용수로서의 그는 탁월한 재능에 걸맞는 노력으로 무용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파도나 바람에서 영감을 얻고, 고대그리스 조각에서 인체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며,
고전적인 춤사위를 자신의 방식으로 삼는 한편,
니체의 사상을 통해 춤이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예술임을 확인한 이사도라.

그의 무용철학은 가령, 이런 것. “무용수는 오랜 연구와 기도와 영감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육체가 영혼의 빛나는 표현임을 터득한다. 그의 몸은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면서 보다 심원한 세계로부터 오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게 된다. 이런 무용수야말로 진정 창조적인 무용수이다.”
하지만, 그의 생이 무용만큼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용에서 금기를 파괴하는 것은 파격과 혁신으로 화제를 모으지만,
사생활에서 세간의 금기를 거부하는 것은 입방아를 찧는 일.

그럼에도 사랑을 빼놓고 그를 얘기하는 건, 실례가 아닐까 싶어요.
부모의 이혼을 보고 열두 살의 나이에 독신을 맹세한 그였지만,
무용만큼이나 사랑은 그의 본능이 아니었나 싶어요.
마찬가지로 결혼을 혐오한 무대디자이너 고든 크레이그와 사랑에 빠져 첫 딸을 낳았고,
미국 재봉틀 회사 상속인이자 탁월한 예술후원자인 파리 싱거에게선 아들을 봤습니다.
그러나 그 두 아이와 유모가 탄 자동차가 세느강에 빠져 익사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이후 세 번째 아이를 사산했고, 1920년 모스크바 무용학교 설립을 위해 러시아에 초빙된 그는 17세 연하의 천재시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에세닌을 만나 결혼합니다.

그런데 에세닌과 함께 미국 땅을 다시 밟은 것이 화근이었죠.
‘공산주의의 위협’에 민감하던 미국은 이사도라에게 ‘볼셰비키’라는 낙인을 찍었고,
할 수 없이 미국을 떠나면서 그는 말했다죠. “미국이여 안녕, 다시는 너를 찾지 않으리라!”
정말로 그는 미국을 찾지 않았지만, 유럽을 떠돌던 그에게 불행은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에세닌은 유럽생활에 적응을 못해 러시아로 돌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거죠.

뛰어난 예술가의 숙명이었던 걸까요.
그의 말년은 그렇게 왕년의 예술적 성과와는 무관하게 얼룩이 많이 묻었습니다.
특히 그의 마지막은 더욱 비극적이었죠. 프랑스의 리비에라 해안의 니스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그에게 그를 숭배하는 한 청년이 드라이브를 권했습니다. 다소 차가운 날씨, 그는 쇼올을 둘렀습니다. 꽤나 길고 붉은 비단 쇼올이 그를 잡았습니다. 차가 출발하면서 그 긴 쇼올이 바퀴에 말려들어갔고, 그의 목을 졸랐습니다. 그 아름다운 춤사위를 더 이상 볼 수 없게된 마지막 순간.

춤을 통해 세상의 인습과 관습을 흔든 춤혁명가, 이사도라 던컨.
춤을 통해 세계와 세계를 잇고 싶었던 예술소통가, 이사도라 던컨.
하지만, 그런 그를 받아 줄만큼 세상은 너그럽지 않았나봅니다. 역시나, 혁명은 저 너머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미국 정부가 볼셰비키 혁명에 대해 어떤 동정심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항상 진정으로 위대한 나라는 혁명으로 시작되었다고 배웠는데 말입니다. 나는 마음속에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미국에 왔습니다. 러시아의 의식을 전하고 두 위대한 나라의 수교를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가 현재 일하고자 하는 곳은 바로 예술 분야입니다. 정치도 아니고, 선전도 아닙니다. 러시아는 미국과 그 국민들에 대해 연구하는데 있어 몹시 굶주리듯 열광하고 있습니다. 예술이 미국과 러시아의 우호 관계를 위한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 러시아에서 순회공연을 위해 미국에 들어왔을 때, 이사도라가 한 말 -


(※ 참고 : 위키백과, 브리태니커백과, 『길을 찾아 :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최애리 지음, 웅진씽크빅 펴냄), 『이사도라 던컨』(이사도라 던컨 지금|구히서 역 / 경당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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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의 공포, <미드나잇 미트트레인 (Midnight Meat Train)> | 시네마카페 2008-09-2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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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기타무라 류헤이
미국 | 200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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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의 공포, <미드나잇 미트트레인 (Midnight Meat Train)>


여름의 끝물이라고? 천만에. 여름이면 만끽해야 할 공포를 제대로 맞보지 못했다면, 여름은 끝이 아니다. 아니 더 사실을 말하자면, 광우병 공포로 열어젖힌 지금-여기의 여름이 아니던가. 그 공포는 현재진행형이기에, 비약하자면 우리는 여전히 호러썸머시즌의 자장 안에 있다. 벌건 대낮에 공영방송 사장 목을 날리는 ‘임명권자’의 ‘무어처구니 슬래셔’까지 감안한다면, 올 여름의 공포는 여느 해보다 극강이다. 그 임명권자는 올 여름, 상복이 참 많다. 최고의 피바다 미학 연출상, 최고의 사이코패스 호러지휘상, 덧붙여 최고의 (국민)고문호러 감독상까지. 자국의 국기까지 거꾸로 들고 흔드는 코미디까지 감안한다면, 호러코미디에도 일가견 있음이 분명하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풍경과 맞아떨어지는 이 호러의 풍경은 또 어떤가. “광기와 암흑, 그리고 모든 금지된 것으로의 가차 없는 하강.” 헉, 지금-여기의 풍경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이 오싹함. 호러 작가이자 호러영화의 고전 <헬레이저>의 감독 클라이브 바커는 자신의 단편소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Midnight Meat Train)》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이 단편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가 선보인다. 이런 절묘한 타이밍하곤. 그것도 뉴욕을 배경으로, 일본인 감독이 연출했다. 허허. 지금-여기의 공포 상황을 어떻게 그들이 예견하고. 놀랍고도 섬뜩한 예지력?

그렇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새로운 호러 심볼의 호러 만신전 등극을 예고한다. 그 주인공은 ‘마호가니’(비니 존스). 뉴욕의 야간 지하철에 서식하는 연쇄살인마다. 그는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탑승객을 상대로 가르고 베고 짓이기고 벗겨낸다. 또 발목에 갈고리를 꿰었을 때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지, 손톱을 뺐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등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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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사롭지 않다. 유혈낭자와 도살도령의 풍경이. 마호가니의 쇠망치는 오대수(<올드보이>)보다 확실히 더 직접적이다. 그래서 덜 위험하긴 하다. 쇠망치에 족족 쓰러지는 더미(인형)의 훼손된 육체는 살풍경을 즐기는 호러 팬에겐 축제가 될 수도 있겠다. 두근두근 쿵쿵이다. 한편으로 혹자에겐 현실세계의 풍자되겠다. 마호가니를 보자면, 딱 누군가가 떠오르겠다.

이 마호가니를 쫓는 또 하나의 축인 사진작가 레온(브래들리 쿠퍼)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 되겠다. 기이한 도착증에 사로잡힌 그의 렌즈를 보자면, 지금-여기의 어떤 미디어가 연상된다. 그래서 기시감 투성이의 영화라고 투정할 수도 있겠다. 단, 원작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결말의 반전은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이 영화 보고, 새벽 2시6분에는 지하철 타지 않는 것이 좋겠다. 왜?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될지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여기에는 2시 넘어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 마호가니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 그러나 대낮에도 여기저기서 보이는 그놈이 문제지. 쯧. 마호가니 같은 그놈. 현실과의 싱크로율 109%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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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리고 무엇보다, 70~80세대에게 반가운 소식. <블루 라군>의 브룩 쉴즈가 오랜만에 스크린에 도달한다. 레온을 지하철로 몰아넣는 갤러리 관계자 수잔 역. 오랜 만에 인사해도 좋다. ‘롱타임 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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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를 생각한다... | 약속의 장소 2008-09-2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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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인이다.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를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다.(1971년)
그는 공산주의자다.
그는 좌파다.
그는 정치인이다.
그는 외교관이다.
그는 혁명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사랑을 알았던 사람이다.
인류에 대한 사랑보다 더 힘든, 인간에 대한 사랑.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것이 내가 아는, 그다. 파블로 네루다(1904.7.12~1973.9.23).
오늘은 그가 떠난지 35년이 되는 날.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렇다.
그를 통해 나는 칠레의 굴곡진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았다.
그래서, 그는 내게 세계를 넓혀준 사람이다.
칠레의 9월은 혁명의 스러짐을 맛봤다.
살바도르 아옌데도, 빅토르 하라도 1973년 9월에 스러졌다.
칠레의 혁명은 그렇게 미완성인 채로 피를 흘렸다.
피노체트, 그 뒤의 미국이 칠레의 혁명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것은,
아마도 피노체트의 쿠데타 때문이었을 것이다.
네루다의 장례식 공개거행을 피노체트는 막았지만,
칠레인들은 그럼에도 군사독재정권 최초의 항거를 하며,
그의 떠나는 길을 밝혔다고 한다.

혁명은 때론 그런 것이다. 김수영(푸른 하늘을)이 그리 말했듯.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나는 오늘, 그를 생각하며 칠레도 떠올린다.
언젠가, 나는 칠레를 찾아,
파블로 네루다의, 살바도르 아옌데의, 빅토르 하라의, 흔적을 만나고 싶다.

오늘, 파블로 네루다를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파블로 네루다)

나는 생각한다 키스와 침대
빵을 나누는 사랑을

영원한 것이기도 하고
덧없는 것이기도 한 사랑을

다시금 사랑하기 위하여
자유를 원하는 사랑을
찾아오는 멋진 사랑을
떠나가는 멋진 사랑을

그리하여, 나는 모든 이를 위해 노래한 그를, 또 생각한다.

모든 이를 위하여 (파블로 네루다)

내가 그대에게 말해야 할 걸
문득 말할 수 없을 따름이다,
친구여 용서해다오; 그대는 안다

그대가 내 말을 듣지 못할지라도
내가 잠들었거나 눈물 속에 있지 않앗다는 것을,
오랫동안 그대를 보지 못했어도 나는
그대와 함께 있고 또 끝까지 그러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나는 안다.
"파블로는 뭘 하지?" 나는 여기 있다.
그대가 이 거리에서 나를 찾는다면
그대는 내가 바이올린을 갖고 있는 걸 알 것이다,
노래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죽을 준비가 되어.

내가 이 사람들이나 그대에게가 아니라
다른 누구를 향해 떠나야 한다는 건 별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는 잘 들을 것이다, 빗속에서,
들을 것이다,
내가 오가며 떠도는 것을.

그리고 그대는 내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안다.
내 말이 그걸 모른다고 해도
확언하건대, 나는 떠난 사람이다.
끝나지 않는 침묵은 없다.
그때가 되면, 나를 기다려다오,
그리고 내가 내 바이올린을 가지고
거리에 도착하고 있음을 알려다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영화 <일 포스티노>도 권한다.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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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여권신장론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구름의 저편 2008-09-2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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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여권신장론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4.27~1797.9.10)

지난 8월에 소개했던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 '메리 셸리' 기억하시죠?
그에 대한 이야길 나누면서 잠깐 언급했었습니다.
메리 셸리가 페미니즘을 다룬,
19세기 남근중심의 시대에 저항한 요인 중 하나로 지목했던 것이 그의 어머니였죠.

열혈 여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였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번엔 그 울스턴크래프트를 얘기해보죠.
그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18세기 영국의 작가 겸 여권신장론자'입니다.
우선 첫째 방점은 18세기에 찍힙니다.
그때는 여성이 사람이 아니었던, 사람취급을 못 받던 시절이었어요.
태어났으나 여성에게 자체발광은 언감생심.
남성의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했던 것이 여성의 운명인양 취급됐던 시대.

울스턴크래프트는 그 엄혹한 시대에, "세상은 반은 여자"라며 여남평등을 부르짖었습니다.
한마디로 그건 미친(?) 짓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여성의 권리, 여권(女權)에 대한 자각을 외치다니.
물론 그런 주장에 우호적인 시대여건이 조성된 측면은 있어요.
앞서 왕과 귀족에게 침탈당한 인권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던 18세기 유럽.
진보적 지식인을 중심으로 인권이 중요한 사상적 테마로 간주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당대의 '인권'이 온전한 인권이었느냐.
절래절래, 아니올시다. 인권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이론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지지를 받았으나, 그들이 내세운 인권은 '여성' 아닌 '남성'만 포함된 절름발이였습니다.
아무도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존재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당대 가장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일컬어지던 루소나 로크도 그랬습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약하고 열등한 존재로 남성과 평등해질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더랬죠.

그러한 때, 울스턴크래프트의 주장은 한마디로 천지개벽할 일이었죠.
여성도 인간이며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한
『여성권리옹호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1792)의 발간.
인류 최초로 여성의 권리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분석한 책이었죠.
그렇다고 당대, 남성들이 패권을 쥔 시대에 순순히 먹혀들어간 건 아니었습니다.
한 사회평론가는 책이 나오고, 그에 대해,
"패티코트를 입은 하이에나"라고 원색적인 욕을 해대기도 했으니까요.

울스턴크래프트이 여성과 남성 간의 평등을 주장한 배경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한 몫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대혁명을 보기 위해 파리로 건너가 미국인 사회평론가 길버트 이무레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 그는 딸까지 낳았습니다. 그러나 불화가 생기고 그는 버림받습니다. 자살까지 시도합니다.
남녀 간 불평등한 애정관계가 빚은 비극. 사랑했던 남녀의 헤어짐 이후 여성에게만 닥치는 비참함과 따가운 시선을 몸소 체험한 그는 여권 신장문제에 더욱 파고들어갑니다. 

그러다 런던에서 급진주의자 모임의 일원에 참여하면서,
오랫동안 우정을 나눈 아나키스트이자 사회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가까워집니다.
고드윈은 울스턴크래프트의 상처를 달래줬고,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다는 전제 하에 이뤄지는 사랑을 제안하게 되죠.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프로포즈였고, 망설이던 울스턴크래프트도 이를 받아들입니다.

둘은 결혼했지만, 여느 부부와 달랐습니다.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의 작업에 간섭하지 않는 결혼생활.
각자를 독립된 인격체이자 성인으로서 대접하고,
타인을 얽매거나 행동을 구속하지 않고 개인적 행동의 자유를 보장한.

와, 18세기에 이런 결혼생활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결혼 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런 말을 했다는군요.
"나는 여전히 독립적이라고 느낀다. 나는 앞으로 내 자신의 생각과 원칙들을 발전시킬 것이고
남편이 거부한다고 하여도 그것들을 내 아이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 덕분인지, 그의 두 딸은 어머니의 유산을 잘 물려받았습니다.
비록 메리 셸리를 낳고서 열흘 만에 사망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자각과 자유로운 사상은 두 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죠.
첫째 프랜시스는 시인 바이런의 애인이 돼 문학과 사상을 논하면서 자신의 삶을 꾸렸고,
둘째 셸리 역시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사랑하고 예술적 영감을 공유하면서 탈관습적인 삶을 살면서 작품 활동을 펼쳤습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을 깔보는 시대적 분위기 탓에 당대에 크게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또 19세기에는 그의 지성적인 면을 무시하고 사생활에 초점을 둔 전기 등이 활개쳤습니다.
20세기 여성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하고 재평가됐습니다. 마거릿 조지의 『한 여성의 상황 One Woman's Situation』(1970), 엘리너 플렉스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Mary Wollstonecraft』(1972), 클레어 토멀린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삶과 죽음 The Life and Death of Mary Wollstonecraft』(1974) 등이 그를 다룬 책입니다.

(※ 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브리태니커백과, 주간한국) 

 

 19세기 남근중심에 저항한 작가, 메리 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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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 항상 머물다, 프랑수아즈 드뮐데 | 구름의 저편 2008-09-2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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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 항상 머물다, 프랑수아즈 드뮐데(1947~2008)


얼마 전, 종횡무진 전장을 누빈 포토저널리스트 마가렛 버크화이트를 소개해드린 적이 있죠.
사회적 불평등에 저항하는 사진을 통해 현실참여에도 적극적이었던 그의 활약상은 후대 여성들의 큰 귀감이 됐을 겁니다. 아마도 그를 보면서 꿈을 키운 여성도 있겠죠?


 


여기, 이 사람도 어쩌면 버크화이트를 역할모델 삼아,
전장에 카메라를 들이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아즈 드뮐데.
지난 3일 향년 61세, 심장마비로 타계한 프랑스의 종군 사진기자입니다.

그는 채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열아홉의 나이에 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1960년 베트남전쟁이 시작되고, 미국의 참전으로 점차 전쟁이 격화되던 시기,
프랑수아즈 드뮐데는 카메라를 둘러매고 현장에 뛰어들었던 거죠.
무엇이 그를 베트남으로 이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레바논, 이란과 이라크 등 아시아와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분쟁이 터지는 곳이면 어디든 발을 디디고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생명이 위협받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그는 셔터를 계속 누르면서 현장을 담았습니다.
그의 사진은 프랑스 언론을 비롯, <타임> <라이프> <뉴스위크> 등을 통해 전세계인의 눈과 가슴 속에 뿌려졌습니다.
그 덕분인지, 그는 1976년 세계보도사진전에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성 사진기자로는 최초였습니다.

드뮐데는 20세기 후반에 벌어진 전쟁과 분쟁 지역을 누비면서,
인류의 야만성이 발현되는 현장과 참상을 고발했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언론인인 주느비에브 라무루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프랑수아즈 드뮐데는 항상 전선에 머물렀으며 동료 사진기자들부터 과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참고 : 연합뉴스)


 

사회적 불평등·차별에 저항한 포토저널리스트, 마가렛 버크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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