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외로워도, 그걸 친구 삼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밤 9시의 커피
http://blog.yes24.com/jslyd012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밤9시의커피
세상엔 살펴보면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나한텐 밤 9시의 커피가 그 중 하난거 같아. 이 어메이징한 커피, 밤 9시의 커피야! 난 이렇게 멋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어. 이게 내 대답이야.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1·2·3기 영화

6·7·8기 대중문화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5,489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My Own Coffeestory
밤9시의 커피
그녀에 빠지다 그 커피
366 Diary
너 없이 산다
너 때문에 산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함께 살자!(공유와 공동체)
시네마가 있는 풍경
바람구두 이야기
내 여친 소개받을텨?
나의 리뷰
북카페
시네마카페
카페 놀멘놀멘
사랑
자본주의
교육
나의 메모
한뼘 이야기
투덜이
태그
갈가요 노래가삶을지탱하고사랑을유지하다 걷는듯천천히 좋은사람이되고싶다는생각을갖게만드는커피를내리는사람이나였으면 KTX승무원들에대한빚 첫번째첫사랑이안겨준선물 낭만불가 쿠바커피연수보내주시오 쿠바협동조합연수도좋아 혁명보다뜨겁고천국보다낯선쿠바
2009 / 0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새로운 글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우연의 만남

2009-01 의 전체보기
2009 아빠선언 | 바람구두 이야기 2009-01-27 17:17
http://blog.yes24.com/document/123843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2009년 설날, 또 다른 새해의 벽두. 느닷없는, '아빠' 선언.
인터뷰 들어갑니다.

안상태 기자 : 아니, 새해 정초부터 뭔, 쥐박이가 쥐새끼 잡아먹는 소린가.

쭌 : 호들갑 떨 필요없을 뿐이고! 일단 캄다운 캄다운. 워워.

안 기자 : 아니, 뭣보다 '결혼'도 안한, 아니 못한 주제에, 무슨 아빠란 말인가. 결혼 소식도 없었잖은가 말이다.

쭌 : 난~ 단지 결혼 못했을 뿐이고! 애를 갖지 못할 자격이 없는 건 아닐 뿐이고!! 결혼해야 아빠가 될 수 있단 법도 없을 뿐이고!!!

안 기자 : 아~ 짱난다. 말 돌리지 말고 속시원히 깨배라. 그렇담 이른바 '미혼부' 아니 당신 말대로라면, '비혼부'라도 됐단 말인가.

쭌 : 난~ 결혼 제도에 편입하지 않고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상상도 아주 간혹 할 뿐이고! 하나의 방법을 찾았을 뿐이고!! '아빠' 앞에 단어 하나가 생략됐을 뿐이고!!!

안 기자 : 그건 또 뭔 뚱딴지 같은 소린가. 생략이 됐다니!

쭌 : 아빠 앞에 '작은'이라는 말 하나만 붙이면 될 뿐이고! 올해 내 사랑하는 친구와 형이 아이를 낳을 뿐이고!! 핏줄은 아니지만, 조카를 두게 됐을 뿐이고!!! ^.^;;;;;;;;;;;;

안 기자 : 에잇, 정초부터, 썅~ 안해, 안해, 이 인터뷰.


헉, 정초부터 낚이셨다면, 죄송합니다.ㅋㅋ
뭐, 저 같은 체제순응자가 무슨 결혼도 않고 애를 낳을 배짱이 있겠습니까.^^;;
인터뷰(?) 그대로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오늘 한명 낳았고, 5월에 아이를 낳습니다.

물론 정확하게는 제수씨와 형수님이 낳는 거죠.ㅋ

기분 좋습니다. 핏줄은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조카들이 이렇게 생기다니. ^.^
맘 같아서야 에드벌룬이라도 띄워,
지구인들에게 조카들이 태어났다고 자랑하고 싶다는.ㅋㅋ

문득, 2년여 전, 캐나다 밴쿠버공항에서 눈물 짓게 만든 두 조카들도 생각납니다.
당시 4살짜리 찬이와 2살짜리 준이.
역시나 제가 사랑하는, 캐나다로 이민 간 형을 만나러 간 짧은 여행 길.
그때 저는 '삼촌'이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달았습니다.

처음 만난 그 사랑스런 조카들은 처음 본 이 삼촌이 그렇게 반가웠나봅니다.
아이를 좋아라하는 저로선,
그 조카들과 함께 방을 난장으로 만들면서 짧은 추억을 나눴습니다.

'삼촌', '삼촌' 불러대며 녀석들은 지저귀고, 함께 있을 때 끊임없이 말을, 장난을 걸어왔죠.

그렇게 지내다가
아쉽고 또 아쉬웠지만,
녀석들과 함께 한 그 시간들을 뒤로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죠.

밴쿠버에서 지옥행(?)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짧은 여행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고 형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형이 잘 가라고 전하면서, 찬이가 일어나보니 삼촌 없다고 울고불고 했다고 했다더군요.
애들 깨기 전 아침 일찍 나왔거든요.

그리고 전화 상으로 '삼촌 안녕'이라는 말을 건네줬습니다.

울컥했습니다. 나 없다고 울어준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때문에.
그때, 밴쿠버공항에서 찔찔 눈물 짜고 있던 삼십대의 찌질한 아저씨를 보셨다면,
바로 접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건넬 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작 4살 아이가 그런 걸 갖고 뭘 그리 감격하느냐, 고 타박하거나,

그 아이가 크면, 그런 사실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빈정거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그 벅찬 행복감이란.
그 여행의 마지막을 행복함으로 장식해준 내 조카들.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날 위해 울어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조카들이 그걸 기억하건, 그렇지 않건. 하하 ^^

찰나처럼 다가온 행복감을 기적이라 부르지 말란 법, 없지요.
그래서 저는 그 순간을 '기적'이라 명했습니다.

아마 그렇게 당신 없다고 울어줄 사람이 있다면, 당신 역시 행복한 사람일 겁니다.^^

어쩌면 지옥 같은 일상,
저는 올해 태어난 조카들에게서 한줌의 위안과 구원을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방금 친구녀석이 애를 낳았다고 알려왔습니다. 당장 축하전화를 걸었습니다.
기분 좋습니다. 정초부터.
저는 이 행복감을 품고 하루를, 한해를, 일상을, 사람살이를 견디고 버티겠죠.
그것이 제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That's my life! ^^

좋은 삼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록 녀석들의 엄마, 아빠만큼 그 아해들을 사랑하고 돌보진 못하겠지만,
그 조카들에게 좋은 삼촌이 있다는 것을 마음에 품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이 엄혹하고 비정한 세상에 역행하는 것일지라도,
돈 보다 더 좋고 훌륭한 가치들이 있음을 알려주고, 
'별들 사이에 길을 놓아주'는 좋은 삼촌이 되고 싶습니다. ^^
아니, 사실은 그냥 함께 놀고 싶습니다.
함께 캐치볼하고 야구장도 같이 가고, 소꼽놀이도 같이 하고.

제가 정신연령이 좀 낮아서.^^;;

쨌든, 제 사랑하는 조카들이 훌쩍 클 때, 삼촌이 줄 수 있는 최상의 커피를 주고 싶습니다.
별들 사이에 길을 함께 놓으면서요.

뺑률아, 축하해~ㅎㅎ
호돌형, 미리 축하해요~ㅎㅎ
사랑한다, 조카들아. ㅎㅎㅎ
훌쩍 큰 찬이와 준이도, 삼촌이 보고 싶단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3)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히스 레저, 그리고 우리들의 '다크 나이트' | 구름의 저편 2009-01-25 01:48
http://blog.yes24.com/document/123678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지난 22일, 히스 레저의 1주기.
좋아라~하는 호돌 형과 술 한잔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를 꺼냈다.
형은 그런 말을 했고, 나는 맞장구를 쳤다.
이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할 사람들은 일찍 죽고,
일찍 뒤져야 할 놈들은 떵떵거리며 뻘짓거리 해 댄다고.
이 국가가 저지른 용산 참사와 맞물려, 우리는 괜히 눈시울 붉히며 술잔을 꺾었다.

죽어서도 그는 어떤 울림을 가져온다. 남은 자들은 그의 이름을 명명한다.
지난 11일 골든글로브 시상식.
그는 <다크 나이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도 같은 상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엊그제, 그의 기일과 맞물린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발표.
그는 역시 남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때론 감동 섞인 드라마 같은 일을 즐기는 아카데미에서는,
세상에 없는 그를 다시 한번 명명하지 않을까도 싶다.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어떤 면모를 다시 엿볼 수 있었다.
1년 전 떠난 히스 레저를 추모하며
<스파이더 맨> 출연 기회를 거절했다는 그 어떤 일화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수상을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는 일화에서,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새삼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그의 강력한 포스를 확인할 수 있는 이 19장의 사진들.
In Memoriam: Heath Ledger

미국에선 사망 1주기를 맞아 <다크 나이트> 재개봉에 들어갔고,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2월19일부터 재개봉에 들어간단다.
<다크 나이트> 재개봉

그때까지 기다리질 못하겠다.
이번 연휴 때, 집에서 가까운 CGV왕십리 아이맥스관을 찾아야겠다.
레저와 함께 짧은 레저를 즐겨야겠다.
아주 가끔은, 그가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이젠 어쩔 수 없이 그와 맞물려서 떠올리게 될,
국가의 살인으로 죽음에 이른 나의 가여운 이웃들.


잊지, 않겠다.
'석기'시대로 시계를 되돌린 명바기의 만행.
지금-여기를 고담시 혹은 '다크 나이트'로 만든 MB의 똘짓.
죽고 없는 조커를 대신해, 숱한 악행을 저지르는 살인귀 이명박의 연기.
아카데미위원회가 올해 '화염상'을 만들어 박이한테 화염을 수상하면 딱 좋겠다.
젠장, 슬픔이, 분이, 안 풀리네. 그 정도론 너무 약해서. 쯧.

이래나 저래나, 슬프고 분통한 일이다.
히스 레저를 1년 전에 떠나 보낸 것도,
공권력과 용역(깡패)의 협잡으로 용산에서 철거민과 경찰관을 보내야 했던 일도,
무엇보다 내 나라의 대통령을 죽일 놈마냥 잘근잘근 씹어야 한다는 사실이.
이명박, 똘갱이 쉐이. 내 같은 찌질한 놈한테도 이런 쌍욕을 듣다니... 
누군가의 말을 약간 바꾸자면, 이렇게도 가능하겠다.
"대통령에 대한 존경이 없는 사회의 대통령은 불행하다.
그러나 존경할 수 있는 대통령을 갖지 못한 국민들은 더 불행하다."
아, 나는 어쩔 수 없이 불행한 국민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전쟁으로 피폐한 사람들의 마음에 힘을 불어넣은 디바, 디나 워싱턴 | 구름의 저편 2009-01-23 16:59
http://blog.yes24.com/document/123544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전쟁으로 피폐한 사람들의 마음에 힘을 불어넣은 디바,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 (1924.8.29~1963.12.14)


 

세상엔, 훌륭한 재즈 디바들이 많죠.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니나 시몬(Nina Simone),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

그 가운데, '블루스의 여왕(Queen of the Blues)'이라 불린 디나 워싱턴은,
가스펠풍의 독특한 창법으로 재즈를 소화한 최고의 디바 중 한명이었습니다.


디나의 본명은 '루스 리 존스(Ruth Lee Jones)였어요.
고향은 앨라배마주 터스컬루사지만 어릴 적 가족이 이사하면서 시카고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성가대에서 가스펠을 노래하고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등,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다고 전해집니다.

15세 때 리갈 극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우승했고,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샐리 마틴의 가스펠 그룹과 순회 연주를 다녀오는 등 운신의 폭도 넓혔죠.

그런 디나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음악관계자 조 글래저에게 발탁됐습니다.
1942년 디너 워싱턴이라는 예명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라이오넬 햄프턴 밴드에 들어가 1946년까지 활동하면서, 음악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이윽고 때가 왔습니다.
1946년에는 솔로로 데뷔한 그는,
블루스,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부르는 한편 열정적인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죠.
《베이비 겟 로스트(Baby Get Lost)》(1949), 《트러블 인 마인드(Trouble in Mind)》(1952), 《디스 비터 어스(This Bitter Earth)》(1960) 등이 대표곡입니다. 특히 1949~55년 그의 음반은 R&B순위에서 연속적으로 10위권 안에 드는 등,
그에겐 '할렘 블루스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사라 본, 카멘 맥레이와 함께,
40~50년대 모던 재즈시대를 대표한 보컬리스트였어요.

무엇보다 디나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의 혼란스럽던 시절,
피폐하고 신산한 사람들의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줬습니다. 
라이벌이었던 사라 본이 부드러운 선율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섰다면,
디나는 강렬하고 박력 있는 고음의 목소리로 사람들을 휘어잡았습니다.
가사 하나 하나에 힘을 줘 또박또박 발음하는 그의 노래는,
앙칼지면서도 전율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물론 디나가 재즈에만 매달린 건 아니었어요.
재즈의 인기가 퇴조하면서 1950년대 말엽부터 R&B스타일에 좀더 힘을 쏟았습니다. 그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What a difference a day makes'는 1959년 팝차트의 톱10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로도 많은 골드 레코드를 내놓으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영예와 인기가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1963년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로 그는 사망하고 말았어요.
강렬하고 다이내믹한 목소리로 세상을 휘어잡고, 
아홉 명의 남편을 맞이할 정도로 정력적이었던 그의 삶도 죽음 앞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후에 추모 앨범 <The Dinah Washington Story>가 팬들의 가슴을 적셔줬고,
199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로큰롤에 영향을 미친 자' 부문으로 그의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참고자료 : 『Queen: The Life and Music of Dinah Washington』(Cohodas, Nadine, Pantheon Books), 두산백과사전

 

[위민넷 기고]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친구의 힘! | 바람구두 이야기 2009-01-22 17:19
http://blog.yes24.com/document/123432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어제 저녁, 학습(?) 삼매경에 빠져있을 즈음, 녀석들에게 연락이 왔다.
두 넘이 술 마시고 있는데, 낑기란다.
학습 중이라고 했다. 끝나고 연락하란다.
수업이 약간 일찍 마쳐서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오란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별 생각 없이 갔다.

녀석들, 버스정류장에서 나의 행차(!)를 기둘리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빵을 사들고, 실실 쪼개면서 나의 하차를 축하한다. 부라보~ 
그리고 호프집. 오랜만이다. 녀석들과의 술 한잔.
각자의 결혼생활을 영위하느라, 오랜만의 술.

그넘들은 안다. 내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생의 한 변곡점을.
추진 상황을 묻는다.
사실, 그 정국구상이 현재 시점에선 정체 상태다.
실천 시기가 연기됐는데, 요즘 그래서 어긋날 경우의 서브 시나리오도 구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걸 얘기했더니, 
이 녀석들 냉큼, 준비라도 한 양, 이것저것 간략 묻더니, 
힘이 돼 주겠단다. 
깜짝 놀랐다.  

물론 확정된 것은 아니다.  
좀더 면밀하게 나의 계획을 들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고,
녀석들도 그렇게 하겠지만,
왠지모를 충만감이 내 안에서 새록새록 피어났다.
'아, 내게 친구들이 있었지.'

나는 녀석들에게 그걸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고,
그들이 나의 개념과 컨셉에 동의하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혼자 헤쳐나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가 내 마음의 연못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넘들 앞에서 덤덤한 척 했지만,
정말이지 무척 고맙다.
설혹 그것이 실현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 고마운 녀석들.
그래, 내겐 친구들이 있다.

인생은 가끔 그런거다.
또 언급하지만, 병적인 유머센스가 그렇게 튀어나온다.
집으로 향하는 길. 히죽히죽.
그렇게 별이 내 마음을 스치면서 빛을 내고 있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6)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마르크스를 만든 결정적인 동반자, 예니 마르크스 | 구름의 저편 2009-01-20 13:17
http://blog.yes24.com/document/123167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가난과 질병, 정치적 박해 속에서도 빛난 카를 마르크스의 절반,
예니 마르크스(Jenny Marx)
(1814.2.12 ~ 1881.12.2)

마르크스를 만든 결정적인 동반자


"카를 마르크스의 절반이 여기 잠들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경제학자이고 혁명가로서 『자본론』의 저자인 카를 마르크스의 부인이자 혁명동지인 '예니 마르크스'의 묘비명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절반. 카를의 명성과 업적에는 예니의 몫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표현이죠.
혹자는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평생을 추방과 가난에 시달린 마르크스에게 힘의 원천은 예니 마르크스였다."

과연 예니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독일의 트리어의 명문귀족가에서 태어난 그는 진보의 기운을 받고 자랐습니다.
트리어는 당시 독일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곳이었으며,
한때 프랑스 혁명군이 점령해 진보적인 이념을 퍼뜨려 놓은 곳이었습니다.
아버지 또한 진보적인 사상을 지닌 사람이었죠. 예니가 지적이고 개방적인데다 낭만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분위기 덕분이었습니다.
카를과도 아버지 간의 친분 덕으로 어릴 적부터 소꼽친구로 자랐죠.
카를이 4살 어렸지만.

예니는 실로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빛나는 여성이었습니다.
'트리어 제일의 미인' '무도회의 여왕' 등이 그에게 붙은 별명이었다죠.
그를 묘사한 이런 문구도 있어요.
"녹색 눈빛, 갈색 머리, 달걀형 얼굴, 하얀 피부를 가진데다가 유머와 재치가 넘치고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녀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선녀나 다름없었다."
시인 하이네도 이렇게 감탄했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마력적이다."

예니 마르크스와 남편 카를 마르크스


그랬던 예니가,
돈 없고 당시 시시한 문필가에 불과했던 카를과 결혼을 결심합니다.
집안끼리 친분이 있었다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카를의 재능을 높이 사긴 했어도,
좀더 나은 상대를 바랐던 그의 집안에서는 '이 결혼, 반댈세'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심을 꺾을 순 없었고,
비밀 약혼에 이어 1843년 두 사람은 결혼을 '감행'했습니다.
행복했겠죠? 그런 고난을 겪고 이룬 사랑이다 보니.
파리로 간 그들, 행복했나 봅니다. 첫 딸 예니도 낳았고.

그러나 그 행복한 시간도 잠시, 그들은 줄곧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카를은 '경제학'에는 능통했어도, '돈벌이'에는 무능했습니다.
예니는 남편이 건사할 수 없었던 집안을 대신 책임져야 했습니다.
이상적인 남편은 아녔지만,
예니는 남편의 일을 인정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한 것 같습니다.
그는 남편 곁에서 집필을 돕고, 용기를 북돋워 줬으며,
남편이 정립하는 혁명사상에 적극 동참하고 이해하는 동지로 자리했습니다.
두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된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이상을 놓치진 않았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덕목을 묻는 딸의 질문에 '소박'이라고 답할 정도로.

예니는 무엇보다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가 없었다면,
카를의 이론은 대중과 만나지 못한 채 사장됐을 거라고 여겨질 정도죠.
그의 지혜와 문학성이 악필이자 거친 카를의 원고를 대중이 알아보기 쉽게 바꾸고, 설명까지 곁들인 덕에 카를의 사상이 전파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카를 자신도, "예니의 의견이나 비판을 받지 않고는 어떤 원고도 인쇄에 돌리지 않았다"고 고백할 정도였죠.

하지만 불운이 예니 곁을 쉬이 떠나진 않았죠.
대부분은 정치적 박해를 받은 남편 때문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파리로, 파리에서 다시 브뤼셀과 런던 등지로 옮겨 다녀야 했고,
어떨 때는 기본적 생필품을 구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 가난, 혹독했습니다. 셋째 딸 프란치스카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죽었는데,
관을 마련해 줄 돈조차 없었답니다.

일곱 자녀 중 네 명을 굶주림과 질병으로 잃은 예니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먼저 보내야했던 어머니 예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빚쟁이들에게도 시달리는 등 참혹하고도 잔인한 생의 현장에서,
그는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물론 그도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졸도, 발작, 질병, 도피 등에 대한 기록도 있다고 알려졌으니까요.
무엇보다 카를이 가정부 헬레네와 외도를 해서 아이까지 뒀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위기 앞에서 예니가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기록돼 있지 않다고 하네요.

인류에는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가정적으로는 지은 죄가 많은 카를은,
예니에게 이런 절절한 사랑이 담긴 편지도 써서 보냈지요. 

"…세상에는 정말 많은
여성이 있습니다. 또한 그중 정말 아름다운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얼굴 하나하나의 곡선이, 심지어는 주름 하나하나까지 제 생명 중의 가장 강렬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디서 당신과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안녕, 내 달콤한 사랑.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당신과 아이들에게 키스를 보내며." (카를이 예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귀족가문의 영애였던 예니도 결국 끊임없이 닥치는 고난이 힘겨웠던지,
간암에 걸렸습니다.
카를은 그를 어린애처럼 돌보면서 쾌유를 기원했지만,
"카를, 나는 더 이상 기운이 없어요"라고 속삭이고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카를과 예니의 혁명동지 엥겔스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이제 마르크스의 삶도 끝났다!"
동지를 잃고 생을 지탱할 동력을 잃은 카를도 1년 3개월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만하면,
예니는 그렇게 세계를 뒤흔든 사상의 절반을 만든 여성이라는 사실, 아시겠죠?

(※참고자료 : 『예니 마르크스 또는 악마의 아내』(프랑스와즈 지루 지음/이정순 옮김/성현출판사 펴냄),『커플 : 클라시커 50』(바르바라 지히터만 지음/ 해냄 펴냄), 위키백과)

[위민넷 기고]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1 2 3 4 5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성적 결합을 원하는 곳
"잘 쓰는 방법이 아니라 전보다 낫게 쓰는 방법에 관해 말하고자 합니다."
야간비행 저 너머 세상을 향하여
대중문화 감수성으로 해석하는 한국 사회
최근 댓글
진짜 그렇게 번성했던.. 
저도 일본 작품을 보.. 
가을이 되면. 떠오르.. 
그죠, 송호창 의원에.. 
잘 들었으며 잘 읽었.. 
트랙백이 달린 글
우리안에 있는 ‘공유경제..
[함께 보아요] 마을감수성..
나카야마 미호, 애잔한 사..
[밤9시의 커피] '하쿠나 ..
[밤9시의 커피] 6월25일의..
많이 본 글
오늘 79 | 전체 1511496
2006-07-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