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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살펴보면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나한텐 밤 9시의 커피가 그 중 하난거 같아. 이 어메이징한 커피, 밤 9시의 커피야! 난 이렇게 멋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어. 이게 내 대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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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빠진날 : 생일 축하해 | 바람구두 이야기 2010-01-29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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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노래. 

눅눅한 피곤에 절은 이밤. 한없이 나를 안아주고 감싸준다. 

내 생일도 아니지만, 꼭 생일축하 받는 느낌까지.

기분이 참참참 좋아. 이 노래. 마음이 방실방실.


내가 사랑하는 당신(들)의 생일에, 꼭 이 노랠 불러주고 싶어.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생일 축하해.
정말이지, 콱 깨물어주고 싶을만큼 사랑스런 당신을 위해 말이야.  
 
얼마 전, 생일을 맞았던 내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도...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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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 말하는, 『공무도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김훈 | 바람구두 이야기 2010-01-2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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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베인 듯, 그렇다고 깊은 자상은 아니지만,
살짜기 나간 살점이나 마음점이 어쩔 땐 더욱 쓰라릴 때도 있잖나. 
말하자면,
《칼의 노래》가 그랬다.
글이, 글자가, 글씨가, 그리하여 문체가 그리도 날카로울 수 있다는 것, 처음 실감했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아, 뭐랄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래서, 다른 김훈의 소설 읽기를 꺼렸다.
에세이는 상관 없었지만. 

그리고, 《공무도하》를 봤다. 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고, 읽어야만 하는 상황. 
음, 달랐다. 《칼의 노래》와 다른, 이닝을 마무리하는 묵직한 돌직구 같은 느낌.

'김훈답게' 싸인도 간결했다.

이름 하나, '님'자도 붙이지 않고, 날짜, 김훈의 낙인. 꽝.

군더더기로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는.


몇 차례 광화문 언저리에서 스쳤던 김훈 선생. 교보문고와 길에서.
스스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지만, 글쎄, 마냥 그런 것 같진 않다.
뭐, 내가 재단하거나 왈가왈부할 건 아니고.

5공 부역(신문지상에서 전비어천가를 부르짖은) 때문에라도, 그를 존경하진 않지만, 

대신 그를 존중한다. 그의 글쓰기 방식.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생존방식. 

지난해 10월, 가을밤.
글 끝머리에도 썼지만, 나는 그의 흰 머리칼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를 만나러 가던 길. 일상에, 하루에 허덕인 채 파김치가 돼 있던 나는,

그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깊어가는 밤의 선율에 맞춰 삶의 하중이 덜 느껴지고 사는 게 덜 힘들었다.
물론 단지, 밤이었기 때문이지만, 그때 그 마음점은, 희한하게도, 아직 기억이 난다.


=====================

 

 

김훈이 말하는, 

『공무도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김훈
 


그랬다. (할 수)없는 것은 (할 수)없는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 성립되지 않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신문에 쓸 수 없는 것들, 써지지 않는 것들, 말로써 전할 수 없고, 그물로 건질 수 없으며, 육하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다가갈 수 없고, 긍정할 수 없는 죽음도 있으며, 해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죽음도 있었다.


바다사자는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일어설 수 없는 몸을 일으키려는 몸부림도 쳤다. 아들의 개죽음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오금자도 있었고, 딸의 개죽음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방천석도 있었다. 추적할 수 없고 전할 수도 없는 세상을 말할 수밖에 없는 문정수도 있었고,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노목희도 있었다.

『공무도하』(김훈 지음/문학동네 펴냄)는 그랬다.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억지로 설명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폭력적이 되곤 한다. ‘나를 설득해 봐’라며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요하기도 하지만, 책은 그런 태도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어쩐 일인지, 뜬금없이, ‘세상에 해가 되는 일을 하느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경구가 떠오르기도 하는.

지난달 26일 서울 홍대부근의 ‘카페 홍’에서 『공무도하』 출간 기념으로, ‘김훈, 소설가로 사는 법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독자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아주 분명하고, 의심이 없는 태도로 일관했던 그는, 좋아하지도 않을, 힘들었을 이 만남을 감내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행사는 출판사의 상업적 동기가 있다. 책을 써서 원고를 서랍에 넣어둔 게 아니고 출판사에 넘긴 것도 상업행위에 가까운 거다. 왜냐면 나는 소설을 썼을 때 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잖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업적 유통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럴 때 상업적 유통망은 건전한 거다. 상업적 동기가 있다는 것도 건전한 거다. 상업적이라고 해서 비루하고 추잡한 게 아니다. 이런 자리에 나온 것이 비루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물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상업적 동기를 놓고, 비루하다, 고매하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상 속에서 필요한 것이다.”

나 역시 이것은 삶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 쪽도 편들지 않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당신의 마음에 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않는다. 독자들과 김훈 작가가 나눈 만남을 그저 나의 시선으로 전할 뿐. 독자들이 던진 비슷한 류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묶었다. 막막하긴 해도, 최소한 치사하지는 않아서 나는, 썼다. “그래도 기사는 쓰지 마. 치사해. 막막한 쪽이 치사한 쪽보다는 견딜 만할 거야.”(p.129) 당신이 싫어도, 나는 어쩔 수 없다. (※ 사진제공 : 문학동네)

『공무도하』, 40여년을 묵혀둔 발효소설

『공무도하』는 40여년 마음에 남아있던 것을 끄집어낸, 말하자면 ‘발효(숙성)소설’이다. 언젠가는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알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공무도하가>라는 고전가요에서 비롯됐다.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고에 대한 이야기. 출전문헌인 『고금주(古今注)』는 이렇게 전한다. 어느 날, 백수광부가 강에 뛰어들어 죽고, 백수광부의 아내가 함께 죽었다. 그 광경을 뱃사공인 곽리자고가 보고 자신의 아내인 여옥에게 이야기했고, 여옥이 그 여인의 슬픔을 ‘공후(箜篌)’라는 악기에 맞춰 노래한 것이 공무도하가이다.


“(백수광부) 부인의 죽음은 백수광부를 말리려다 그런 것인지, 백수광부가 죽은 것이 슬퍼서 투신자살한 것인지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 그 경위가 항상 궁금했다.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슬프다. 여옥이는 뱃사공 아내인데, 공후라는 하프 같은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이는 일반 가정에서 보기 어려운 악기였을 텐데 뱃사공 아내가 그걸 탔고, 노래는 삽시간에 동네에 퍼져, 매우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책을 읽고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에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노목희, 장철수, 박옥출, 오금자, 방천석 등. 마침 한 독자가 물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에 특별한 이유라도? “사실 이름을 짓기 싫어서 아무렇게나 했다. 특별한 느낌을 갖는 이름은 공을 들여 짓기도 한다. 노목희라는 여자의 목자는 먹일 목(牧)자다. 목동 할 때, 가축이나 짐승을 거두어 먹인다는 뜻이고. 희자는 계집 희(姬)자. 나머지 이름은 대충 지은 거다. 이름 짓기는 정말 싫다. 특히 여자 이름은 더 그렇다. 소설에 여자가 나오면 이름을 짓는데 너무 힘들다. 나오더라도 처음에 빨리 죽어야 돼. (웃음) 여자가 없어지면 소설 쓰기가 편해. 되도록 안 나오게 하려고 했는데, 앞으로는 나오게 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 노목희는 언제나 문정수를 먹인다. 늦은 밤, 갈 곳을 찾는 어린 양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하사하는 존재. 짐승을 거두어 먹이는 목희. 그렇구나.

『공무도하』의 끝을 놓고, 희망과 절망 중 어느 것에 가깝냐는 질문에 그는, “희망이나 절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일상”이라고 답했다. 그는 수평선 너머 등대의 불빛처럼 인간이나 인류를 인도하는 희망 따윈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상처럼 무서운 운명은 없다고 본다. 그 안에 희망도, 절망도 있는 거다. 동양인들에겐 등댓불 같은 희망은 없다. 그런 희망이 없어도 건전한 사회일 수 있다. 동양인이 생각하는 희망은 인의예지로, 참 아름다운 것이다. 멀리 있는 오랜 생명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 쟁취해야 될 목표나 도덕이 아니고, 이 자리에서 우리들 사이에서 실현되어야 할 덕목이다. 희망의 등대와는 전혀 다르고 고귀한 것이다. 일상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 다음 소설에는 약간의 희망을 말하고 싶다. 물론 그 희망이 일상의 구체성을 배반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고 당신은 바뀔 수 있는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바뀌지 않는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걸까. 그는 주희의 『근사록』을 꺼낸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주희가 제자들에게 그런다. 논어와 맹자를 읽고 나서 읽기 전과 마찬가지 인간이라면 구태여 그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너 자신이 (책을 읽고 나서) 변화를, 새로움을 이뤄낼 수 없다면 그 책은 무의미한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는 거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책 읽기가 필요하다는 것. 지식이나 오락을 위해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책을 통한 존재의 바뀜, 실존적인 변혁이 보다 근본적으로 요구된다는 것. “나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길을 본 적이 없다. 책 속에는 글자가 있다. 말의 구조물이 있는 거다. 지식은 있으나 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길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땅 위에 있는 거다. 나와 자식, 친구, 이웃 사이에 길이 있는 거다. 책 속에 길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길은 있으나 마나다. 책 속에 있다는 길을 이 세상의 길로 끌어낼 수 있느냐, 내가 바뀔 수 있느냐가 문제다. 혹시 말을 잘못 알아듣고 김훈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쓰는 사람은, 정말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웃음)”

그런 한편으로 ‘지금’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필사적으로 온 힘을 바쳐서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답한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온 나라가 개탄하는데, 그들은 근본적으로 대중문화의 권역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것은 매우 건강한 삶의 태도다. 책 보다는 음악이나 영화에 빠져 있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본다. 꼭 책을 읽어야 건전한 거라고 보진 않는다. 소설을 보면서 현실의 의미를 돌이켜 볼 수 있도 있겠지만, 극단적으로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고 본다.”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파브르의 곤충기와 식물기, 그리고 장자란다. “요즘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데, 곤충과 식물에 대해 그렇게 스토리텔링이 잘 되고 재미있게 쓴 책은 처음 봤다. 장자도 뛰어난 스토리텔러고. 그래서 요즘은 스토리텔링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 중이다. 여러분도 한 번 봐라.” 아울러, 과학기술과 관련된 책을 보는 것을 즐긴단다. 서점에 가면, 항해사, 조종사, 소방관 등의 자격시험 문제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그는 가령 항해사 자격시험문제집을 보면서, 배가 깜깜한 밤에 바다를 뚫고 나가는 것을 본다. 그리하여, “서정시집을 보는 것보다 그게 더 문학적이다.”

김훈에게, 글을 쓴다는 것

그는 기자를 직업으로 가졌고, 기행문 혹은 에세이를 썼고, 소설을 지었다. 글로 벌이를 하면서 살았고, 살고 있다. 방송작가를 하고 있다는 한 독자가 그 차이점과 어떤 직업을 가졌을 때 유쾌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은 분명하다. “직업은 유쾌한 것이 없다. 밥벌이는 지겨운 거다. 정말 징글징글한 거다.” 그건 결코 변하지 않을 세상의 진실이자, 그의 진심이 아닐까.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그는 이것을 말한 바 있다. 


“나는 신문기자를 25년 쯤 했는데, 왜 기자가 됐고, 왜 에세이를 쓰냐고 물어보는데, 그런 질문은 질문으로서 성립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소설 쓰냐고 하면, 그것이 밥을 벌어먹고 사는 생계의 수단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저속하고 속물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건전하고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돈을 벌어 밥을 먹기 위한 목적을 향해서 글이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걸 써서 밥을 먹을 수 없다면 나는 안 한다. 왜? 딴 것을 해서 밥을 먹어야 하니까. 그건 정당한 생각이다.”

누군가는 밥을 굶어가면서 목숨을 바쳐가면서 글을 쓰고, 소설을 짓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도 있겠지만, 그는 “나는 그런 선배를 존경하지만 뒤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자가 됐던 것 또한, 군대를 제대하고 길바닥을 헤매다가 취직한 곳이 신문사였단다. 배가 고파서! “돌이켜보니 그렇더라. 그런 세계를 과장하고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글 쓰는 것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잘 쓰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의 삶은 저속하고 진부하고 일상적인 것과 싸우면서 이뤄진다. 유쾌한 직업은 없을 거다.” 

한 독자는 그의 글에는 냄새에 대한 묘사 많은 것 같다며,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그에게 냄새는 아주 중요한 감각이다. 이성적인 감각기관인 시각에 비해, 냄새는 짐승에 가깝고, 본능적인 것으로 그것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중시한단다. 개는 사람보다 후각이 200배 이상, 청각은 50배 발달했는데, 사람보다 수 백 배 많은 삶의 체험과 질감과 느낌이 축적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언어가 없어 표현하지 못할 뿐. 개만도 못한 것이 사람이지만, 말을 하기 때문에 개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우리말은 냄새를 표현하는 말이 너무 빈약하다. 비린내, 구린내 등 대여섯 어휘밖에 없다. 모든 냄새를 다른 사물을 이용해 표현할 수밖에 없다. 썩은 고깃내, 꽃향기와 같이. 맛도 그렇다. 프랑스 말을 잘하는 친구에게 와인 맛과 향기를 표현하는 어휘를 모아달라고 했더니 300개를 모아왔다. 오랫동안 와인을 마셔서 발달했겠지만, 된장, 김치를 수 백 년 먹었으면 그만한 어휘가 발달해야 하는데 우린 없다. 우리말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섬세하며 과학적이라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우리말을 폄하하는 게 아니고, 한국어는 한참 더 보완하고 많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야 할 미완성의 언어다.”

아울러, 그는 우리 언어가 대역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설이나 문학을 쓸 수 있는 글, 문학적 어휘가 따로 있다고는 생각 안 한다. 내 소설에는 모든 기술용어, 외래어, 은어가 서슴없이 들어가 있다. 앞으로도 많은 외래어 등을 쓰려고 한다. 많은 외래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넓어져야 한다. 한글로 좋은 말을 쓰려면 한문이나 외국어를 잘 해야 한다.”

다만, 젊은 세대들이 많이 쓰는 말줄임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자기네들끼리 쓰는 암호처럼 돼 가고 있다. 그건 잘못된 거다. 말은 교양과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을 말을 통해 감정이나 느낌에 대한 표현은 잘해도 사유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미숙한 것 같다. 점점 깊이가 없어져 간다.”

김훈이 말하는 김훈


한 독자가 보수․마초적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과히 틀린 것 같지 않다. 보수는 경험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다. 멀리서 비추는 희망의 등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삶이 더럽고 비루해도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보수적인 기질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지만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보수의 틀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나의 성향이고 정서다. 또 마초라고 하는데, 그런 소리 들을 만하다. 여성을 그릴 때 나는 여성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젊은 여성의 생명력은 아름답고 건강하다. 생명을 다루다보니, 짐승 같은 거다. 나의 작가적 미숙함 때문에 마초로 오해를 받는데, 어떤 여자들은 마초가 좋다고 그러대. (웃음)” 

아내의 영향에 대해 묻는 질문에도, 그는 아내의 영향이 별로 크지 않고, 스스로 가부장적인 남자라고 단언한다. “그건 아버지, 집안의 혈통에 유전되고 있는 가부장적인 질서에 의한 거다. 그게 편안하다. 절대 여자를 무시하지도 않고, 다치게 하지 않게 한다. 여자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쓰는 것은 건달이다. 가부장은 여자를 보호하면서 지배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평화와 행복이 있다. 내 아내는 그런 가부장적인 질서 아래 사는 여자인 셈이다.”

독자와 김훈 작가의 관계는 어떠할까. 서운한 독자가 있을지 몰라도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어느 연령대 독자가 많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독자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단다. 인터넷에 연재를 하면서도 댓글을 쓴 적이 없고, 그것이 설혹 독자에게 무례한 처사일 수 있지만, 독자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태도다. “소통은 끌어안고 뒹굴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고, 독립된 이성을 가진 개체들이 적당히 아름다운 거리에 떨어져 있을 때, 소통이 가능하다. 여러분과 다른 생각일지는 몰라도, 군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은 구호를 외치고 뒤엉키는 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젊은이라고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지도 않단다. “50대와 20대가 인류학적으로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젊은 독자들이라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는 젊은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워하거나 무시하지도 않는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건 나도 좋아할 수 있지만, 젊은이들을 보면 내가 저렇게 무질서하고 계통이 없는 나이를 지나갔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젊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런 나이를 지났다는 것에 크게 안도하고, 여러분을 보면 아름답고 발랄하나, 어떻게 늙어가나 하고 걱정도 된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좋다.” 

재미있는 질문이 있었다. 김훈에게 사랑이란? 그는 소름이 끼쳐서, 닭살이 돋는 것 같아서 글을 쓰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단다. 왜냐면, “그 단어가 너무 사회적으로 타락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단어가 그렇게 무참히 타락해버리다니...”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과 아집에 대해, 남발된 사랑에 넌더리를 쳤다. “대표적인 게 우리나라 주부들의 모성애인데, 그게 나라를 망쳐가고 있지 않냐. 학교에서 치맛바람 일으켜 사교육비를 올리고 사회적 폐해를 일으키면서 우리 사회가 진화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내 자식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도 개들도 다 한다. 인간의 모성애가 위대할 수 있으려면 옆집 자식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학시험 보는데 엿 붙여 놓고 빌고 그러잖나. 그것이 사랑이라는데, 그건 사랑이 아닌 정신병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도 그런 게 있을 거다. 욕망과 아집을 사랑이라는 것으로 위장해서 미화하는 게 있을 거다. 사랑을 부정하는 게 아니고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폐해를 말하는 거다. 대중가요 대부분이 사랑 노래잖나. 꼭 연애중독자 세상 같다. 대중 정서가 어찌 사랑뿐이겠냐. 연애중독자의 세상이 된 거다.”


신문기사의 스트레이트 문장처럼 쓴 사랑, 연애, 치정의 소설을 보고 싶다는 바람도 나왔다. “스트레이트는 정말 쓰고 싶고 좋아하는데 자신이 없다. 스트레이트 문장에는 엄청난 에너지 내장돼 있다. 『공무도하』를 쓰면서도 그런 걸 해 보려고 애를 썼는데, 뜻대로 안 됐다. 연애는 심정묘사여야 하는데, 남녀관계를 스트레이트 쓰다가 실패한 흔적이 나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남녀 간 연애 속마음이 꼼지락거리는 거, 속살 떨리는 거, 못 쓰겠다. 잘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난 못할 것 같다.”

무엇이 행복인지도 물어보자. “나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진 않았다. 그렇다고 불행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꾸역꾸역 산다. 그래야지 무슨 수가 있겠나.” 그는 강 냄새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글에서 강을 묘사한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상류를 좋아한단다. 연어처럼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강물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들고, 노을이 지는 강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면 노을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새로운 시간이 몸속으로 들어와, 지나간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것 같다. 그 때가 제일 신바람 난다. 강에서 놀 때, 저녁이 오고 별이 뜨면 참 좋다. 사는 게 덜 힘 든다. 삶의 하중이 덜 느껴진다. 나도 글이 안 써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일 안 한다. 그냥 논다. 나는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잘 놀아야 조화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꾸역꾸역, 다시 일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홍대 부근은 번잡했다. 그날 내겐,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삶이, 일상이, 미화되거나 과장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시큰둥한 삶에도,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절실한 무엇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은 언제나 늦게 찾아온다고도 생각하지만, 삶이 지속돼야 할 이유가 굳이 따로 있다고 여기진 않는다. 그냥 사는 거다. 그게 삶이니까. 부모 잘못 만난 죄, 그따위도 없고,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불행, 그따위도 없다.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것이 내겐 일상이자 삶이다.

김훈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가 장철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노목희에게 “난 아무래도 이 세상을 단념할 수가 없어”라고 말을 건네던. 또 “세상을 긍정하니까 단념할 수 없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런 세상은 아니야”(pp.30~31)라고 말을 잇던 그 장철수. 무엇보다 장철수가 장례식에서 읊었던 이말.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p.35) 곧, 그것은 김훈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독자와의 관계에 대한 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소통’을 거들먹거리며 공허한 말의 유희로 누군가와 꼭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이 삶은 아니니까, 소설가의 임무도 아니니까. ‘작가의 말’에서 그는 표현했다.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때론 나는 외롭다고 징징대면서 타인을 욕망하는 인간들이 역겹다.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나도 그럴 때가 있으면서도. 『공무도하』의 어떤 인물들은 그래서 좋았다. 공연한 일로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지 않아서. 나는 간혹 누군가로부터 듣는 “모든 인연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말도 허풍이고,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그 천연덕스러운 거짓에 배시시 웃고 마는 나도 개 같은 놈이지만.

사실 나는 김훈 작가의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흰 머리칼이 가장 부러웠다. 그의 어떤 말이나 글보다, 그 흰머리가 주는 시간의 체적과 일상을 견딘 흔적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것이야말로 일상이 아니겠는가. 대항할 여지고 없고, 벗어날 틈도 없는, 일상의 그 무엇. 하다못해, 국가가 그렇게 요구하고, 혹자는 이걸 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말하는 결혼도, 실상은 ‘감정을 죽이고 일상이 강해지는 그런 것’ 아니겠나.

일상은 그렇게 힘이 세다. 나는 또 하루를 버텼다. 일상을 건넜다. 나는 강을 건넌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나라는 인간은 읽기 전과 마찬가지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삶의 하중이 덜 느껴지고 사는 게 덜 힘든 밤, 그것이 궁금해졌다. “강경감의 말처럼, 해망은 해망의 방식대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p.320)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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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히스레저를 만나고 커피 한 잔... | 바람구두 이야기 2010-01-2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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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친구들 중에 나를 간혹 '준쉐이(혹은 준셍이)'라고 부르는 넘들이 있다.
당연히 영화(<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처럼 간지나고 잘생겼기 때문이지.
라고.................................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첫사랑을 오매불망 잊지 못해 그녀를 품고 세월을 버티는 순정남이라서.
라고..................................해도 끔찍한 뻥이야. OTL

이유? 단순하다.
그저 내 이름 중에 '준'이 쏙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지.
간혹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생각난다. 내게도 있었던 아오이(들).
풋풋한 스무살 시절, 준세이와 10년 약속으로 손가락을 걸었던 여인.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에서 해후하면서 옛사랑을 복원했던 준세이와 아오이.


어제 밤, TV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를 방영했다.

영상보다 음악이 더 도드라졌던, 
원작(책)보다 밀도와 질감이 미치지 못했던 영화를 다시 응시하면서,
이번에는, 준세이와 아오이보다 다른 인물들에 눈을 맞췄다.

 
운명(으로 포장된) 사랑을 위해 들러리를 서야 했던,
바퀴벌레 한쌍의 작당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 메미와 마빈.
메미는 (아오이 없는) 준세이의 연인이었고,
마빈은 (준세이 없는) 아오이의 연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정작 마음은 저 멀리 가 있는 연인 때문에 가슴은 가슴대로 앓고,
눈물은 눈물대로 흘려야 했던 그네들.
단지, 주인공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두 주인공이 덧칠하는 옛사랑의 복원 때문에 동원됐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들이라고 왜 마음이 없겠는가. 사랑을 왜 지키고 싶지 않았겠나.
그럼에도 주목받지 못한 채 스크린 뒤로 물러서야 했던 그네들의 마음.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제목은,
주인공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아오이와 준세이가 복원하려는 사랑이 열정이라면,
그 틈바구니에서 외면당해야 했던 마빈과 메미는 그야말로, 냉정.

누구나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다.
메미와 마빈에게도 마음이 있고, 사랑이 있다.
조연이라고, 들러리라고 무시하지 마시라.

히스 레저.
어제, <브로크백 마운틴>을 돌려보고 싶었다.
동료에게 그 말을 했다. 카페에서 그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어제 1월22일이 그의 2주기라서.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집의 DVD 플레이어는 고장났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삽입해도 소용이 없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도 보고 싶었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

히스 레저를 생각하면,
그냥 딸 마틸다가 눈에 밟힌다.
내 딸도 아니고, 아무 연관도 없는 아이임에도.
올해 여섯 살이 되었을 마틸다.
아빠의 존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느닷없이 곁을 떠나야 했던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부디 마틸다 레저가,

세상의 악행과 슬픔을 잘 견뎌나가길.

거칠고 더러운 공공연한 비밀을 품은 세계를 헤쳐 나가길.  
어느날, 훌쩍 커버린 마틸다를 보곤 '잘 컸구나'하는 탄성을 뱉을 수 있길.


오늘, 봉춘이가 결혼했다.
녀석. 이렇게 훅~ 가게 될지는 우리 친구들 아무도 몰랐다.
다들 놀랍다는 말 한 마디씩 덧붙인다.
원투쓰리(1월23일). 꾹꾹 눌러담은 그 말로 결혼식에 와 달라던 녀석.
몰래 사랑도 아니고, 알기론 너무 미적지근한 사이였음에도,
그렇게도 결혼은 한다. 나로선 의아한 일이긴 해도, 녀석은 녀석의 방식대로!

내가 녀석에 대해, 녀석의 결혼에 대해 재단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행복하길. 아니 녀석에게 행복이 작은 한뼘이라도 늘어나길.

몇 남지 않은 미혹 혹은 비혼에게, 어떡할거냐는 진부한 타박(?)도,
나는 열외인종. "쟤는 그냥 재껴놔." 친구들마저 이젠 인정한다.
뭐 내 의도와는 무관.
나는 독신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혼주의자도 아닌, 회색인간, 열외인종.

그래도, 커피가 나를 달래준다.
메미와 마빈, 히스 레저와 마틸다까지.
아름다운 여자만큼 커피가 좋은 이유. ^.^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지만,
마음의 있을 곳이란, 커피 한 잔에도 있단다.

어쨌든 5월25일 피렌체 두오모에는 갈 테닷!
피렌체 두오모에서 커피 한 잔 마실테고.
그 순간, 당신이 함께였으면 좋겠다. :)

 

5월25일, 당신의 가슴 속에도 누군가가 있는가...

▶◀ 안녕, 에니스... 안녕, 히스 레저...

우리, 히스 레저 배웅할까요~

히스 레저, 그리고 우리들의 '다크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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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와 영향을 주고받은, 비 오던 그날 밤의 이야기 | 약속의 장소 2010-01-21 12:48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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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0일.


2009년 그날 불길이 치솟은 이후, 우리는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권력과 이권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의 야만을 너무 뼈 아프게 절감했다.

정확하게 1년을 버틴 날 내리는 비는,
아마도 1년 전 그 화마와 불길을 기억해서일 것이다.
이 비로도 야만의 시대와 동물의 세계를 씻겨내릴 수는 없다.
아마도, 그날을, 그 참사를, 우리의 발가벗은 몸을 잊지 말라는 뜻일 게다.

이 개좆 같은 세상.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아직 이 세계가 살아갈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거든,
혹은 우리 사는 세계의 누군가를 아직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고 김연수는 말한다.

비, 용산, 노력...
지난해 9월에 만난,

김연수를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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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와 영향을 주고받은, 비 오던 그날 밤의 이야기

[독자만남] 『세계의 끝 여자친구』 저자 김연수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날, 내 일터이자 서식지로 향하는 버스 안, 김연수의 새 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고 있었다. 그 무렵, 내 서식지에선 용산참사 현장에서 주워온 냉장고, 간판, 문고리, 숟가락, 도마, 컵, 선반 등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예술가들의 현장작업이 결합된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영정도 있었고, 고인과 유족들의 일상이 깃든 사진도 있었다. <용산포차, 아빠의 청춘>이라는 이름의 전시. 200일이 넘었지만, 다섯 분의 철거민과 한 분의 경찰관이 죽었지만, 진상규명은커녕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시대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함이자, 그들을 위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날 마침, 이 전시의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막걸리와 빈대떡 등을 파는 일일 포장마차를 운영, 수익금 전액을 용산 참사의 유가족들에게 전하기 위한 행사. 그 행사를 향해 가던 버스 안, 나는 해당 소설집의 단편,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를 읽고 있었다. 우연찮게 그 단편은 용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온 동료들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는 걸 보고 내가 화면을 끌 때까지, 거기에는 타오르는 불꽃과 시커먼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가 침묵의 공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 새벽, 거기서 여섯 명의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는 건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p.107)



읽고 있던 와중에 나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보아오던 영정과 가족사진, 이 아이와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는 생각이 미쳤다. 윤현구군이 아버지에게 썼다는 편지가 나오는 구절에서, 내 눈물샘은 무방비였다.


“그리고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내가 떠올린, 그날 새벽의 타오르던 붉은 불꽃과 시커멓게 피어나던 검은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하얀 물줄기들에 대해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읽게 된 편지의 구절들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빠에게"라는 구절로 시작해서 "아빠,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 지금은 이 마음 하나뿐이야.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꿈속에서라도 한번 나와 줘,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빠한테 말할 거야,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2009년 1월 용산참사로 숨진 윤용헌씨의 장남 윤현구군이 쓴 편지 중에서)로 끝나는. 아까 내가 울었던 건 그 편지의 구절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얘기했다.”(p.114)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할 빚. 2009년 1월20일 이후로, 내게 용산은 더 이상 ‘전자상가’로 대변되는 장소가 아니었다. 용산은 이 시대의 몰염치와 패악이 집중된 참사현장이자 아픔이 됐다. 김연수의 글은, 그 전시와 함께 어느 새 용산과 시대의 야만을 희미하게 희석시키고 있는 내 기억과 신경의 나태함을 건드리고 있었다. ‘케이케이’를 사랑했던 미국인 작가(「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마냥, 정말이지, 나도 그랬다.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한, 좌충우돌의 도시’에서 떠나고 싶다. 지금 당장.” (p.20)


아니 그런데, 너는 용산참사와 아무 관계없는 놈 아니었냐고? 참사의 희생자들 가운데 알거나 관련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 그렇다고 막장식 살인진압을 지휘하거나 감행한 국가권력과도 연관을 지은 것도 아니면서, 무슨 얘기냐고?


글쎄,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한번 들어보자. 용산참사의 현장을 접했던, 망설였으나 글을 통해 이를 말할 수밖에 없었던 김연수의 이야기. 지난 21일 가을비 내리던 저녁, 대학로의 연우무대에서 독자들과 함께 공기를 나눈 김연수의 이야기. 때로는 모노드라마처럼 관객석에 앉은 독자들을 향해 연기를 하는 것 같았던 김연수의 이야기. 한편으로 함께 호흡하면서 저녁시간을 공유한 우리의 이야기. 그런 우리가 정말, 용산참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까.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이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저 안드로메다와 지구 사이의 거리만큼 떨어진 광년에서 숨 쉬는 것일까. 일단 들어보자.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에는, 책 뒤표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무슨 교과서 혹은 꼰대 같은 말이냐고? 그러게 말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모범생 같고 성실하다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사실, 난 모범생이 아니다. (웃음) 처음 이 문장을 소설에 쓰고픈 생각은 없었다. 무슨 교장선생님 말씀 같지 않나? 다들 노력하는 거, 별로잖나. 누구든 노력 안하고 뭐든 성취했으면 싶고...”



김연수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였다. 판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날. 그랬기에 명절이 끝날 무렵이면 상실감이 몰려오곤 했다. 친척들과 막상 헤어지게 되면 속상하고 맘이 아파서, 정작 방에 박혀서 혼자 슬픔을 감내하던 소년. 어릴 때는 참으로 궁금했다. ‘좋았던 시간들은 왜 끝나고 마는가.’ 살다보니 그런 고민들은 이어지게 마련이고, ‘차리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김연수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소설을 쓰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 삶을 보면 괜찮은 것 같다. (웃음) 다른 사람들을 (소설 속에) 쓰긴 쓰는데, 왜 이렇게 사나 싶다. 최근에 그런 주인공들이 많아졌다. 이상(주. 『꾿빠이, 이상』)도 마찬가지였다. 천재였을 것 같지만, 이상은 나랑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았을까, 싶고. 『밤은 노래한다』에서도 그렇고, 지금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소년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여기서도 그렇다. (주인공들이) ‘어떻게 불합리한 자신의 삶을 납득하게 됐는가’를 따져보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의 그 말,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는, 최근 5년 동안의 그런 생각들이 농축된 것이다. 자기를 견디는 일에 대한. 자기를 사랑하게 된다면, 자기 인생의 빛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통 속에서 자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그렇게 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살아가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하고 노력하고 살아간다. 비루한 일상을 버티고 견딘다. 사랑한다면, 그렇게 노력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어떻게 나왔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는 얘기는 할 수 없고, 아는 얘기만 하겠다는 김연수. 이 소설집의 크게 두 개의 부류로 나뉜단다. 2005년 5월 출간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그 경계다. 그 책을 다 쓰고 여력이 남아 쓴 3편의 단편(「기억할 만한 지나침」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이 있고,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이후에 썼던 소설은, 지금의 상태와 유사한 소설이라는 것이 김연수의 설명이다.


어쨌든 김연수에게는, 소설을 쓰면서 변화가 생겼다. “정확히 무슨 변화인지는 모르겠는데, 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게 아닌가 싶다. 2007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쓰고, 소설을 쓴다는 것에 정리를 다 했다. ‘그래 이거야. 더 이상 고통은 없어.’라면서. (웃음) 더 이상 쓸게 없더라. 추리소설을 쓸까, 판타지나 SF를 쓸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케이케이의…」는 당초 원제가 ‘거무스름한 불’이었다. 편집부에서 제목을 바꿔달라고 해서 바꾼 것이 지금의 제목이었는데, 다시 원제로 바꿔달라고 했다가, 편집부에서 지금의 제목이 좋다고 주장해서, 최종 낙찰됐다. “(이 글을 쓰게 된) 최초의 동기는, 꽤나 의욕적이었는데, LA폭동에 대해 쓰겠다는 것이었다. 르포도 찾아보고 자료 수집을 하면서 반년이 지났다. 그러다 어느 날, 김중혁과 차를 타고 일산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유로에서 검은 연기가 보였다. 가봤더니, 트럭에 불이 붙어서 타고 있더라. ‘트럭에 불이 났구나’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어느 순간, 열기가 확 들어오더라. 유리창을 뚫고. 그 열기가 되게 인상적이었다. 물론 김중혁은 그것을 (소설로) 쓰지 않았고, 나는 썼다. 감수성의 차이지. (웃음)”


소설은 대개, 마지막 부분부터 쓴다는 김연수. 특히 단편소설은 더욱 그렇단다. 그래서 그 열기를 느끼면서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이 소설을 쓸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LA폭동과 교포들의 정체성 등을 쓰려고 했는데, 그렇게 나오진 않았고, 뜻하지 않게 상실의 이야기로 써졌다. 그러다보니, ‘영향’이라는 문제가 생기더라. 정말 살다보면, 전혀 관계없을 법한 것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 그 소설을 다 써갈 즈음, 숭례문이 불탔다. 마감하면서 봤는데, ‘영향을 받는다’라는 명제를 확신했다. 숭례문에 난 불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뀔지 모르고, 삶은 그렇게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 다 쓰고 나서도 잘 몰랐는데, 이렇게 책이 나오고 보니 확실해진다.”


“나는 숭례문의 그 불꽃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았다. 미신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p.317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p.32)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나는 유령작가…』의 여력이 남아, 소설적 도전을 많이 할 시기에 쓰인 단편이다. “여성화자에 도전할 때였다. 당시는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은 화자에 가닿을 수 없다고 보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거지만, 그 실패가 날 유혹했다. 여성화자로 쓰고 싶다는 생각에 한창 많이 썼는데, 그 중의 하나다. 그런데 정작 여성분들은 이럴 수 있을까, 이러더라. (웃음) 어쨌든 도전해보고 싶어서였고, 열여덟 여자를 주인공으로 했다. 한창 소녀들에 빠져 있을 때였다. (웃음) 문학작품의 소녀들이 어떤 행동방식을 보이나 조사도 했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소설이나 롤리타와 같은. 그때 알게 된 소녀들의 비밀을 이 소설에 쓴 거다.(웃음) 말이 되나?”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시작은 전적으로 노래 때문이었다. 무척 좋아하는 노래 세 개 가운데, 밝고 맑으며, 달리기를 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 노래. 그리하여, 일산의 호수공원을 달리기하다가, 기념식수를 여러 번 보면서 뭐가 되겠다 싶은 직업의식도 발동하고. 부근의 자주 찾아가는 마두도서관의 설립 초기, 책이 부족할 무렵에 기증됐던, 기증자 이름이 박힌 책도 그를 자극했다. 일산 라페스타 근처, 그의 작업실이 있는 곳엔 신호등이 많은데, 그 신호등을 피해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단다. 그 기분 좋은 메타세쿼이아 역시, 소설에 한몫했다.


“이렇게 노래부터 기념식수, 기증자의 책처럼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 때가 있다. 메타세쿼이아에도 뭔가 있을 것 같아서 조사를 했더니 소설에 들어있는 그 사실이 있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 얼마나 확신을 가지겠나. 소설가라면 지어서라도 써야하는데, 이렇게 역사적 사실까지 있다니. (웃음) 쓰고 나서 되게 기분이 좋았다. 원고를 보내고, 일산주민들을 위한 낭독회가 있어서 읽어주기도 했는데, 배경이 주변에 있는 일이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음악이 감춰진 기억을 끄집어내서 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는, 용산참사를 접한 뒤 나온 단편이다. “지금도 고민이다. 예를 들어 동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소설로 형상화할 때, 어디까지, 어떻게 할 수 있나,를 고민한다. 올 1월 용산을 보고 충격이 엄청났다. 그 이후도 다 충격이지만. 용산 지날 때마다 거대한 물음표가 생긴다. 쓸 수 있다, 없다,를 넘어 벽이자 난관이었다. 그걸 쓴다고 했을 때, 쓸 수 있을까. 처음에는 없다고, 결코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쓸 수 없다고 결론을 냈지만, 그럼에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이렇게 나왔다.”


그가 용산을, 담는 것과 별개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녔을까. 그는 촛불을 이야기했다. 촛불시위 때 많이 나갔다는 그는, 그곳에서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감정을 새삼 실감했다. ‘같이 겪고 있구나.’ 국가권력이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을 때도, ‘이게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이고, 경험하고 있구나’하는. 같이 물을 맞고 같은 감정을 겪는 느낌, 그래서 되게 따뜻했던 느낌.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쓸 때, 고민이 많았고,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고, 아직까지 고민 중이다. 좋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 기간 생각해보면, 촛불, 용산, 대통령의 서거 등 우리는 많은 사건과 감정을 공유했다. 그런 공유지점이 많아서 지난 2년을 생각하면 내 얘기를 해주고 싶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이는 그에겐 큰 변화의 징후를 거친 시기였다. 대화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김연수였다. 그러나 이 시기를 관통하면서 소설을 통해 말을 걸고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물론 통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존재해야 하는데, 그 2년은 신뢰를 쌓게 한 시간이었다. “아직은 자신 없지만,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각각의 삶은 하나씩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돼 있으니,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더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다.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한쪽 끝이 떨린다. 그 공명과 공감 속에서 예수 시절 이래의 ‘정의와 아름다움’이 이어져올 수 있었다.”(pp.294~295)


김연수, 묻고 답하기



처음 제목을 봤을 때, 하루키의 소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 생각났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가 가장 좋았는데,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가 생각나기도 했다. 일말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음악에서 이름을 빌려온 거라서 하루키 생각은 안 했다. 딱 떠오른 느낌은 여자의 세계의 끝까지 간다는 것. 한 여자와 갈 수 있는 먼 세계의 끝이 어딜까 생각해봤다. 그건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감정적 장소일 것 같다. 그래서 제목을 빌려왔는데, 사람들은 하루키의 소설을 이야기하더라. 하루키 소설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 읽고 있는 『1Q84』를 보면 좀 이상해졌다. 할아버지가 됐는지, 굉장히 멋진 얘기를 한다. 방향에서 보자면, 여전히 사람에 대해 쓰고 있고. 참, 우리나라 평론가나 언론이 말하는 하루키는 대중소설가적인, 한국소설을 망치게 한 주범이다. 그런 의미라면, 누가 하루키를 좋아하겠나. 내가 보기엔 그는 괜찮은 사람 같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2년 동안 좋은 일, 안 좋은 일 겪으면서 공감되는 사람도 찾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화해할 수 없는 사람도 보이더라. 그러니까,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최’ 같은 사람. 그런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


나는 편애하는 게 좋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그냥 예의만 지키고 살고,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지적하고. 안 맞는 사람도 많은데, 싫어할 이유는 없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되지 않을까. 글쎄, 답을 잘 못하겠다. 잘 알지도 못해서. (웃음)

 


그 질문 사이에서, 나는 어떤 ‘이해’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생각했다. ‘이해한다’는 흔한 말, 그럼에도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진짜 가능할까라는 의문.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p.81)


「기억할 만한 지나침」과 같은 여성화자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선 여자인 나도 이렇게 여우 같이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웃음) 혹시 아저씨가 바라본 시선 아닌가. 그리고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에 공감이 참 많이 됐다. 삼십대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억할 만한…」의 열여덟 소녀는, 내가 만나보고 싶은 소녀 얘기를 한 거다. (웃음) 사실 그런 십대 여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내가 만든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당신들 모두 …」는 쓰고 나서 좋아한 소설 중의 하나다. 찌질한 삶의 양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고…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비장하게 돈이나 벌자, 소설 같은 거 말고, 이렇게 생각하고 출근을 하게 됐다. 일산에서 3호선을 타고 동국대까지 출근을 하는데, 너무 놀랐다. 아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근을 하는지, 진짜 감동적이었다. (웃음) 술을 새벽까지 늦게 마시고, 다음날 제 시간에 출근도 하는 거다. 정말 대단했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뭔가 만들잖나. 이런 삶을 반복적으로 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마인드도 있구나 싶었다. 삼십대 초반에, 인생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았다. 부탁이 있다면, 삼십대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심각해도 바뀌는 게 없다. (웃음)


그렇다. 비장하지 말기. 나는 너무도 비장하게 살아가라고 다그치는, 나잇대에 따라 사람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그런 것들이 싫다. 미래를 위해 현재는 희생하고, 한 우물만 파서 그러면서, 종국엔 ‘대박’나라고 외쳐대는 꼬라지가 싫다. 그런 책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을 것처럼 말한다. 아니 죽어 마땅하다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댄다. 왜 우리는 좀더 재밌게 살면 안 되나. 꼭 심각해야 제 맛인가. 우리에겐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가 책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든가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등의. 그게 역사서든, 과학서든, 철학서든, 일 년 동안 닥치는 대로 책을 읽은 뒤 그가 알게 된 진리는 그처럼 단순했다.… 도서관에 있는 그 어떤 책을 들춰봐도 거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또 노인이 다시 젊어져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삶은 단 한 번만 이뤄질 뿐이며, 지나간 순간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그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은 말하고 있었다.”(pp.169~170)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음흉하고 음침한 역할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김연수 작가에게 실망해서 오늘 이 자리에 오자고 하니까, 싫다는 변절자(?)도 있었다. 역할이 마음에 들었나? 다시 또 제의가 오면 영화 찍을 건가?


좋아할 리가 없지. (웃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1999년에 직접 만난 적은 있는데, 이번에 조감독이 전화가 왔더라. 시나리오를 살 리는 없는데, 출연을 요청하더라. 처음에는 일 없다고 끊었다. 그런데 도와주고 싶고, 기념도 될 것 같아서 다시 내가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건대로 갔다. 연기를 해 보래. 설정을 주고, 열심히 노력했다. 처음에는 소설가로 나가는 줄 알았다. 스탭들이 비열한 배역이라고는 하던데, 알다시피 홍 감독 영화는 시나리오가 늦게 나오잖나. 그저 실수만 안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사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장면이 있다. 애로배우와 풀장에 뛰어들어서 ‘저 잡아보세요’하면 ‘좋아 좋아’ 박수를 치면서 손잡는 장면이었다. 나왔으면 얼마나 추했을까. (웃음) 다음날 김태우 씨가 그 배우에게 그러더라. 지난주엔 원빈과 키스하고, 이번 주엔 김 작가랑 손잡고...

(웃음) 


그 영화, 다시는 안 보고 싶다. 드릴 말씀이 있다면, 김태우, 엄지원, 고현정 씨 등 실제로 보면 되게 예쁘다. 그런데 홍 감독 영화에선 찌질하게 나오잖나. 일반인들이 나온다면 오죽 하겠나. (웃음) 홍 감독의 영화는 카메라가 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고 왜곡시켜 보여준다. 어쨌든 순전히 기념으로, 홍 감독 영화여서, 궁금해서 출연을 한 거다. 다시는 출연 않을 거다.


문장이 즉흥적이라기보다 평소에 아이디어를 저장했다가 내놓는 것처럼 치밀하다. 문장을 쓸 때, 차곡차곡 쌓아서 하나 아니면 즉흥적으로?


문장을 쓸 때, 반복해서 쓴다. 한 번에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다른 것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특히 음악. 소설에서 잘 쓴다는 건 다르다. 소설가가 지어낸다기보다는 등장인물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경험 등이 조합돼서 나온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감정이입을 위해 음악을 이용하거나 자료조사도 한다.


괜찮다는 지점에 이르는 것은, 막힘없이 간다는 느낌이 들 때다. 그 때는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화자가 쓰는 것이다. 소설가는 소설에 들어가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거고. 그 다음에 문장이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1인칭을 선호한다. 문장 쓰기가 용이해서. 그런데 3인칭을 가면 문장 쓰는 것이 달라진다.


「달로 간 코미디언」을 여러 번 봤다. 그렇게 보면서 사람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 쓰는 사람도 그런가.


쓸 때마다 달라진다. 소설을 쓰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전에 나는 되게 이상하고, 남 탓만 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사람을 믿지 않았다. 책 한권을 쓰는 건, 큰 변화는 없다. 그런데 약간 변한다. 1년 정도 되면 창피할 때가 있다. 그걸 느끼면서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최근에는 변화되는 폭이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초지일관’ 이런 것을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는데, 소설가가 되고 나서, ‘조삼모사’ 이런 것을 좋아하게 됐다. 다른 사람이 약속 안 지키고 그러면 예전에는 화를 내고 그랬는데, 이제는 뭔가 일이 생겼나보다 싶고. 뭐 내가 바뀌니까,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웃음)


끝나지 않은 용산, 김연수와 우리의 고민


누군가는 오늘 이 자리, 가을비가 드문드문 내리던 어느 저녁에 김연수를 만난 것을 기화로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시간의 체적이 폭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향’은 그런 것이다. 한 연인이 198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시합을 하다가 링에서 쓰러져 죽은 권투선수(고 김득구) 때문에 서로 사랑했고,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빌딩 때문에 헤어졌듯(「달로 간 코미디언」), 용산참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연수와 나는,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그렇게 빚을 지고 있다. 동시대를 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빚이다. 삶의 터전을 빼앗겨 살 곳을 묻는 이들에게 국가가 폭력으로 대답하는 시대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빚. 창을 뚫고 우리에게도 확 들어온 국가권력의 화염과 열기. 우리는 최소한 이것을 뚫고 나가야 한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그 처절한 싸움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고, 그 흉포한 만행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임을 우리는 전해야 한다. 김연수는 여전히 그것을 고민하고 있고, 그가 할 수 있는 방법(글쓰기)으로 그 고민을 공유하고자 하고 있다.


김연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리도 각자의 방식대로 그에 화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돼 있고,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별들이니까.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이야기들이고서로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별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각자 고독하게 달로 가지 않고 모두 함께 복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메리 올리버가 가르쳐준 대로 말이다.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는 동안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기러기」)”(p.313 해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중에서)


모든 삶을 어떻게든, 불합리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납득해야한다. 굳이, ‘착해지지 않아도 돼/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의 첫 문장) 어쩌면 훗날, 바로 지금 이후 발생하는 일의 어떤 근원에 용산이 버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pp.63~64)


일일 포장마차는 다행히 용산을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성황리에 마무리됐고, 나는 윤현구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아빠를 뺏기지 않으려는 아이의 안간힘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빠를 안을 수 있는, 아이의 그 사소한 행복조차 지켜주지 못한 이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이 사회는 대체 무엇일까.


“불편한 자세로, 우리는 물속에서 서로 껴안고 있었다.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물에 젖었건 땀에 젖었건, 내가 사랑한 케이케이의 몸은 언제나 젖은 몸이었다. 나는 케이케이의 젖은 몸이 내 몸에 닿는 게 좋았다. 그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랐다. 그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랐다. 한없이 부드럽고 또 연약했다. 소년의 몸. 가만히 두면 물에 풀리는 물감처럼,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젖은 몸. 나는 그걸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한사코 케이케이에게 매달렸다. 내가 아는 행복이란 그런 것이었다.”(p.21)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일지라도, 잊지 말아야겠다고. 이 흉포하게 구획된 질서에서 피 흘리는 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질서에 순응한다는 것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살인에 동참하는 것임을. 잊지 않고, 그 흉포한 질서에 사소한 것이라도 불복종을 해보는 것.


비 오는 가을 밤, 우리는 그날 그렇게 만났기에, 김연수와 같은 동시대의 고민을 나누었기에, 나는 그 만남을 엄중하게 담았다. “헤어진다고 하면 그저 멀리 떨어져 지낸다는 걸 뜻할 뿐,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에 사는 게 아니겠느냐던 안이한 생각이 일순간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의 엄중함이랄까, 그런 삶의 무게를 새삼 느꼈다고나 할까.”(pp.100~101)


그리하여, 세상 수많은 아픔 앞에서 고개 돌려 외면하지 않기. 나하곤 상관없어,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라며 지나치면 이 졸렬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아니, 그 전에 아무런 악의도 없는 누군가에게, 시스템에 의해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를 일.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우리 서로의 얘기를 하고 듣자. 그렇게 우리 노력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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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1년, 불길과 빗물 | 구름의 저편 2010-01-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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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20일.
불길이 치솟았고, 여섯 명이 죽었다.

딱 1년, 2010년 1월20일.
빗물이 내린다. 최근 가까스로 장례를 치른 다섯 명의 눈물일까.

꼭 의미를 부여할 것 없이도 내렸을 비다.
그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오늘로 1년이 됐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그냥 좀 마음이 그렇다.
지진으로 육신과 마음 모든 것이 파괴된 아이티의 참사.
1년이 됐고, 우리에게 마음의 빚을 남긴 용산 참사.
참사로 뒤범벅된 세계.
그럼에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우리들.
커피 한 잔에 담긴 내 마음은 그냥... 그렇다.

박래군.
이권과 권력의 횡포 앞에 인권과 사람을 위해 늘 투쟁했던 그 이름. 
"이행자 시인이 “박래군 같은 사람이 다섯 명만 있었다면 나라 꼴이 이 지경은 아닐 것!”이라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그는 ‘타고난 활동가’이자 ‘운동진영의 보배’로 손꼽혀왔다."
그저 활동가·투사인 줄로만 알았던 그는, 한때 문학소년이었다.
야만의 시대는 문학소년마저 투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 래군이 형 (한겨레, 김별아)

아울러, 김진숙.  ≪소금꽃나무≫. 달라진 것은 없다. 별일 없이도 산다.
그냥 이 비가, 마음을 건드릴 뿐이다.
☞ 용산 참사 1년, 김진숙을 읽고도 별일 없이 산다

 

 

이윤엽의 <용산 부활도>

 

부디, 이 다섯 분이 웃음처럼 환하게 부활하시고,

국가에 의해 희생 당한 경찰 한 명도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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