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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살펴보면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나한텐 밤 9시의 커피가 그 중 하난거 같아. 이 어메이징한 커피, 밤 9시의 커피야! 난 이렇게 멋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어. 이게 내 대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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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노떼를 사랑하는가!('레알' 야구를 보고 싶다면...) | 바람구두 이야기 2010-09-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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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을 응원한다는 건,('국가'가 아니다!)
한 생애를 '완전 연소'하는 것과 같다.

마음을 바쳐 응원해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어떤 감정을 동반하며, 어떤 행동을 야기하는지.
불완전 연소 따위는 끼어들 여지도 없이, 그 순간만큼의 생애는 오롯하다.
고로, 목숨을 거는 일이다. 한 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나는 사랑을 하면 그렇게 한다.
당신을 만나 사랑할 수 있는 생애, 고맙다. 너에게 나를 바친다.   

내게, 사랑은 그런 것이다. 한 팀을 응원한다는 건, 사랑하는 것이다.
너를 위한 그 한 생애를 온전히 완전하게 연소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어제(9/29), 가을이 열린 쌀쌀하고 맑은 날의 준플레이오픈 1차전.
승부 자체도 짜릿한 명승부였지만, 생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겹친 시간.

야구력 30년, 야구장력 28년, 짧다고 볼 수 없는 시간.
생애 처음!
적진에서, 그것도 적진 한 복판에서 직관(직접 관람)했다.
재미나면서도 묘한 감정이 오가면서, 소심하게 입과 몸을 놀려야하는 상황.

적군의 심장부에서 적장들의 눈총을 받으며, 
내가 늘 있었던,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바라만 봐야만 하는,
그러니까, 전장에서 포로가 돼서 아군을, 내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
내 심장을 벌떡벌떡 뛰게 만드는 저 곳의 함성과 몸짓에 닿지 못한 안타까움.


그런 것도 있고,
아, 내가 싸질렀던 몸짓이 여기선 이리 흡수·반사되는구나. 재미난 핑퐁질.
여기선 이런 노래, 행동, 몸짓, 퍼포먼스, 응원도구들이 사용되는 구나.
미처 알지 못한 세계를 소심하게 두리번 거리면서 신기해한다.

여하튼, 그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적진에 함께 뛰어든 한 형은 내게 꾹꾹 다짐한다.
"적진 가운데서 목숨 걸고 응원한다. 무조건 이긴다."  

 


알다시피, 
노떼팬이란 야구인, 준우앓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짜릿한 축포.
가을은 노떼의 짜릿한 승리로 열렸다.
"이 맛이 야구다"를 절로 나오게 하는 명승부.

 

 

자, 개종할지어다. 노떼로 개종하면, 완전 연소가 가능하다.

'레알' 야구가 알고 싶고 보고 싶다고?
노떼 야구가 '레알' 야구다!
내 힘껏 도우리다.  

왜 노떼를 사랑하냐고?
어제 게임으로 그 이유, 충분하다. 하이라이트라도 꼭 보시라.

 

어제 적진에서 챙긴 전리품. 함께 간 형이 전리품을 들고 있다!

미안하다, 뚱산. 니들은 스파링 파트너다!! 

 

한국시리즈 우승한 마냥, 야구장 밖에서 축제 한 마당을 펼치는,
우리의 노빠(노떼 자얀츠 빠돌이)들! 난리도 아녔다.


나는 오늘도 야구장으로 향한다.
나의 가을은 야구장에서 숨쉰다.
노빠(노떼 자얀츠 빠돌이)라서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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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내가 낙심하지 않는 이유! | 북카페 2010-09-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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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숲에게 길을 묻다

김용규 저
비아북 | 2009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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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편안하고 좋다고만 생각했던 '숲'을 다시 바라보고 생각하게 된, 이유.

알면 달라진다. 달라지면 사유하게 된다. 사유하면서 세계는 새롭게 혹은 넓게 열린다. 
김용규 선생님 덕분이다. 숲 덕분이다. 

이제 숲과 합방을 하면, 김용규 선생님과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숲이 떠오른다.
좀 더 숲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계기였다.

지난해 4월, 그러니까, 봄. 
책을 읽고 용규 선생님을 뵙고, 말씀을 나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선생님과 경희궁 부근의,
아는 사람만 아는, 운치 있고 정겨운, 멋들어진 카페에서 낮술(맥주!)을 마셨다.
숲사람과 함께 한, 숲길을 거닌 듯한 상쾌함. 캬~, 이 낮술이 맥주다!
당신도 원한다면, 이곳으로 안내하겠다. 대신 낮술은 당신이 쏴~:)

그리고 나 역시 낙심하지 않았다.
물론 도시에선 이것이 쉽지 않지만,
잘 찾아보면 도시에도 숲이 있고, 자연이 있다.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거든 낙심하지 마라. (괴테)

질경이는 여러 해를 사는 다년생 풀입니다.
주로 길의 가장 자리나 빈터 등 다른 풀들이 살기 어려운 자리에서 자랍니다.
길 위의 수레바퀴 위에서 자주 발견된다 하여 한방에서는 잎을 차전, 씨앗을 처전자라 부르며 약용합니다.
녀석의 살아가는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 볼 때마다 나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누간가는 혁명을 얼음 위에 불을 피우는 일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을 전복해야만 겨우 가능해지는, 실로 어려운 일이 혁명일지도 모릅니다.
질경이는 그렇게 어려움이 많은 혁명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들풀입니다.
녀석은 주로 옥토보다는 비전박토의 척박한 딸을 골라 자랍니다.
왜 옥토가 아닌 박토의 땅을 골라서 자랄까요?
그것은 누구도 침범하기 힘든 자신만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숲에게 길을 묻다》(p.124) -


그러니까, 아래는 그 만남의 기록이다.
글 첫머리의 '봄'은 '가을'로 바꿔도 좋겠다.
아, 선생님 숲을 만나러 가기로 했는데, 아직 못갔다.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

========================

 

숲에서 건지는 희망과 소망, 그리고 나
[인터뷰]『숲에게 길을 묻다』 저자, 숲생태전문가 김용규

의심할 여지없이, 봄이 내렸다. 더할 나위 없이, 당신도 함께 내린다면야 더 좋겠지만, 그건 잠시 묻어두자. 지금은 봄의 지저귐에 귀 기울일 때다. 물론 좀 과잉이다 싶게, 후끈 달아오른 감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은, 봄이다. 설마 당신, 컴퓨터 앞에 코 박고, ‘오로지 일!’만을 사수한답시고 디지털 사막에서 허우적대는 건 아니겠지?

아마도 당신은 봄을 만끽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 목련의 야릇함과 물오른 초록이 흥건한 버드나무의 살랑거림, 그리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벚꽃과 분홍빛의 알싸한 유혹적 자태를 드러낸 철쭉의 향연.

그렇다. 일찍이 괴테선생 가라사대.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거든 낙심하지 마라.

하지만 알다시피, 대부분의 도시생활은 괴테선생의 이런 속삭임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도 그랬다. 숲생태전문가 김용규. 그는 한때 도시에서 한 모험기업의 CEO(최고경영자)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선망하는 자리였지만, 그는 맞지 않는 옷 같았다. 더구나 도시와 자본의 욕망을 뒤치다꺼리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이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그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겠다며 CEO자리를 내던졌다. 허섭한 욕망이여, 안녕~
 

그리고선 숲으로, 농촌으로, 발걸음을 뗐다. 『숲에게 길을 묻다』(김용규 지음/비아북 펴냄)는 그래서 나왔다. 그는, 더 이상 도시와 자본의 욕망에 부대껴야 하는 CEO가 아니다. 숲생태전문가이자 농부. 그러니까, 당시 이런 것.

“바이 바이 바이 정든 도시여 굿바이/ 너를 두고 나 돌아간다…♩ 논 갈고 밭가는 나의 진짜 집으로 나 돌아간다/ 도시여 안녕♪ 촛불하나 밝히는 나의 진짜 집으로 나 돌아간다/ 도시여 안녕~♬”(조영남 ‘도시여 안녕’)


지난 6일 경희궁의 낮. 녹음은 짙음을 더해가고 있었고, 햇살은 따사롭다 못해 따가웠다. 도시의 비슷비슷한 얼굴들 틈에서 산속 사람의 포스를 지닌 한사람. 모처럼 충북 괴산의 오두막에서 서울 나들이에 나선 그를 만났다.

영락없는 산사람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일종의 표식이자 징표였다. ‘더 이상 이 도시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지 않겠어’라며 숲과 합궁하기로 결정하면서 길렀던 머리. 단정하게 매만졌을 CEO의 헤어스타일은 과거일 뿐. 그는 이미 그렇게 숲의 일부가 돼 있는 듯 했다.


그리하여, 아래는 숲생태전문가이자 농부, 김용규와 나눈 숲의 대화다. 9가지 열쇳말로 본 그의 이야기. 어쩌면 당신과 나, 우리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에 둥지를 튼 어떤 희망과 소망, 용기의 속삭임. 

나를 만나는, ‘숲’

우선, 숲으로 향하기로 마음먹은 출사표를 보자.

“나는 이제 나답게 살 것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인가? 그것은 돈이나 출세 때문에 비굴해짐이 없는, 자존과 자립으로 가득한 삶. 나의 편리를 도모하고자 타인의 이익을 빼앗지 않는, 죄짓지 않는 삶. 숨 막히는 도심에 갇힌,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 놓고 채울 수 있는 고삐 풀린 삶. 모색하고 싶으면 싶은 대로, 그만두고 싶으면 싶은 대로, 그렇게 가슴이 시키는 대로 창조의 자유를 벅차게 누리는 삶.

그리하여, 마침내 마음이 두어 뼘 더 자유롭고 평화로워지는 삶. 이 모든 것으로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는 삶. 내가 나답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이다.”(p.174)


나이 마흔 살. ‘도시여, 안녕’을 고하기로 마침내 마음먹었다. 2년을 준비했다. 혼자서 숲을 공부했고 1년여는 집중적으로 숲생태전문가 양성과정과 필드강사 등을 거쳤다. 살 곳을 찾기 위해 1년여 강원도를 헤집으며 돌아다녔다. 한군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자금 마련 등으로 아쉽게 사흘 차이로 놓쳤다.

그리고 결정된 곳이 충북 괴산. 우리 기술로 지은 수력발전소가 있는 괴산댐 주변이었다.


숲에 들어가기로 결정하기 전, 6개월 동안 산 구석구석을 누볐다. 새벽, 한낮, 저녁, 비 등등 각기 다른 조건과 환경의 모습에서. 산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나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답이 당장에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죽나무가 말을 건넸다. “나를 베지 마라.” 귀가 번쩍 뜨였다. 두 번째로 숲과 교감한 경험. 그러니까, 숲의 조건부 승낙이었다. ‘나를 받아주겠다는 거구나. 베겠다는 내 마음을 질책하는 것이구나.’ 일단 저지르고 보자, 더 필요하면 배워보자, 의 마음이었다.

아 참, 첫 번째 교감은 국립광릉수목원에서였다. 전나무길이었는데, 누워서 20여분을 있으면서 무아지경을 경험했다. 온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도 없고, 세상도 없는 첫 경험. 지금도 그런 경험은 어려울 정도로 놀랍고 신비로운 것이었다.

“숲에 기대어 사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숲은 나에게 스승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것은 다만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술과 기교를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p.39)

직장과 도시 ‘탈출’

도시에 사는 모험기업의 CEO. 힘겹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오십견까지 올 정도였다. 학교 졸업 후 유학을 생각하고 유학비를 벌기 위해 들어간 것이 회사였는데, 어떡하다보니 모험기업의 CEO까지 오른 터였다. 그러면서 꿈도 잊고 회사에 짓눌려 있었다. 더구나 기러기 아빠.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길은 주말마다 가는 산이었다. MTB를 타고 오르내렸다. 힘들어서 찾기 시작한 그곳에서 생명력을 느끼고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왜 이렇게 휘었을까’ ‘이 나무는 어떻게 바위틈에서 자라는 걸까’ 신기했다. 그렇게 숲의 생명들이 주변과 관계를 맺고 자기를 실현하는 모습에 점점 빠져들었다. 식물이름과 같은 분류학보다 생명 그 자체가 주는 신비와 생태에 매혹됐다.

그러면서 마음의 소리를 듣고 느꼈다. 산에 있으면 행복하고, 좋았다. 숲의 생명도 보게 됐고 산의 몸짓과 바람결 등이 뭔가를 말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래 나 아닌 옷을 입고 살고 있었구나. 가야겠다, 도시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절로 생겼다.

여느 도시의 우리들처럼 그에게도 도시는 이랬다. “도시는 도무지 휴식을 모르게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빈한하면 빈한한 대로 고달프고, 풍요로우면 풍요로운 대로 고달프기 쉬운 곳이 그곳이었습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우리의 삶은 쉼표를 만들기가 참 어렵습니다.”(p.180)

문제는,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구본형 선생은 이런 말을 건넸다. “아내를 설득할 수 없는 꿈은 꿈이 아니다.” 설득과 회유. 협박 아닌 협박(?)까지 섞어가면서 그야말로 강온양면정책. ‘사오정’과 같은 직장 정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따져보면 나름의 ‘카드’였다.

“요즘은 45세에 떠나는 사람이 많아졌어. 나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 이건 무능이 아닌 사회구조야. 그러니까 지금 숲에 가면, 나중에 나랑 손잡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숲도 보고 근시안적 행복이 아닌 롱런의 행복을 누릴 수 있어.”

쉽지 않았지만, 도시형 여성이었던 아내도 차츰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는 나름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양평을 제안했다. 집 지을 땅을 사서 조직에서 좇아내면 그때는 거기에서 살아보자고. 양평이 일종의 중간거점이 됐다. 땅을 놀리느니 농사를 짓자고 했다. 고추와 고구마 등 농사를 지었다. 희한하게도 아내가 일을 더 잘했다.

친구들도 일부 규합했으나, 그들은 이내 포기했다. 기름값이 많이 든다며. 그때 알았다. 기름 값은 농사와 치환되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확실히 알았다. ‘자기가 땀 흘린 만큼 생명과 애정이 싹트는구나. 이건 돈으로 치환되는 것이 아니구나.’

“학교나 학원, 혹은 유명하다는 전략 강좌 따위에서는 ‘나’답게 살 수 있는 어떠한 지혜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삶을 조금 더 편하게 다룰 수 있는 도구만이 있을 뿐, 나답게 나를 꽃피우며 사는 데 필요한 가르침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폭풍우나 가뭄, 혹은 혹한이 우리 삶을 가로지르며 끼어들 때 그동안 배웠던 도구와 기술과 지식은 무용했고, 더러 짐이기까지 했습니다.”(p.27)

즐거운 나의 오두막, ‘백오산방’

그의 숲 하루를 잠깐 들여다보자.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이곳 오두막에서 지내는 나의 하루는 철저히 해의 길이를 따릅니다. 해가 뜨면 하루의 삶이 열리고 해가 지면 하루의 삶이 닫힙니다. 그것은 마치 나무들의 하루와 같습니다. 낮은 노동과 창조의 시간이고 밤은 휴식의 시간입니다.
 
날이 밝으면 깨어나 숲과 들을 들러보고 끼니를 먹는 것으로 하루를 엽니다. 낮이면 곡식을 돌보거나 집을 고치거나 정리할 곳에 손길을 줍니다. 숲 속을 거닐며 수많은 생명들을 만나고 살피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도 중요한 일과입니다. 때로 땔감을 줍고 장작을 패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는, 궂은 날과 추운 날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고 운동이기도 합니다. 약간의 시간을 떼어 읽고 쓰는 작업도 지속합니다.”(pp.177~179)

백오산방. 오두막 이름이다. 살 곳을 결정하기 전, 구본형 선생에게 요청했다. 가죽나무가 말을 걸어온 충북 괴산의 산에 함께 가서 봐달라고. 그런데 막상 가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산세가 험한 까닭이었다. 바깥에서 보면 막혀있고 험한 산이었다. 내부에 들어가 바깥을 봤건만, 무엇보다 나무가 말을 걸어준 곳이건만, 그 내부의 속살을 엿보지 못한 사람에겐 당연한 반응이었다. 구 선생은 차라리 괴산댐 어귀의 다른 곳을 권하기도 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하늘에 물어보자는 구 선생의 전화. 약속을 잡고 갔더니 역술인이신 초아 서대원 선생(『주역강의』의 저자)이 나와 계셨다. 술 한 잔 걸치고 지어준 호가 백오(白烏). 흰 까마귀. 왜 하필 까마귀, 그것도 흰 까마귀인가 했다. 고구려의 시조새가 까마귀, 즉 삼족오였고, 그 중에서 흰 까마귀는 상서로운 길조란다. 그리고 돌연변이. 상서롭긴 하나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돌연변이. 자신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상서롭고 사람 시각으로 보면 외롭지만 원래 무엇이나 홀로 사는 건데, 자기 길을 뚜벅뚜벅 걸으며 하늘을 나는 자유로운 새”가 바로 백오 아니겠나.

그리고 초아 선생을 모시고 애초 눈여겨 본 그곳을 보여드렸다. 말을 건 나무를 짚으시고는 예견을 하셨다. 이곳에 둥지를 틀면 변화가 많을 것이라고. 백오산방은 그렇게 탄생했다. 마을에서도 1km 떨어져 있지만,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고라니가 일주일에 한 번씩 보이는 즐거운 나의 집.

집을 찾아 돌아다닐 때도 좋았지만, 백오산방에서 잠들고 깨어나고 일하면서 정말 살아있구나를 느낀다. 과거에 대한 회상은 있으나 회한은 없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어 걱정으로 불변하는 밤도 없다. 나무 심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죽은 나뭇가지를 주워 구들방을 데우는데 그때마다 역시나 느낀다. ‘아 온전히 나는 살아있구나. 이 순간을 살아가는구나.’

소망과 교감이 있는 ‘공동체’

숲에서 새로운 희망과 빛을 찾고 싶은 사람들, 지혜를 찾고 싶은 사람들 6명이 모인 공동체가 있다. 이름 하여 ‘행복숲 공동체’. 말하자면 모험공동체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다. 도시 등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심리적 툴을 통해 진단하고 어루만지는 ‘포레스트 테라피’가 이뤄지는 행복학교 설계부터 가족대상의 캠프, 창작공간 마련, 유기농 재배 등 다양하다. 무엇보다 도시와 농촌 간에 놓인 다리를 놓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곳은 그러니까, 교육, 창작, 도농교류 배양․확대 등이 이뤄지는 공동체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연대와 관계를 통해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는 일. “생명은 오직 연대와 관계 속에서만 생명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p.108) 도시에서는 공생과 연대가 허물어지거나,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자본의 방해공작이랄까.

“사회적으로 중심에 있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을 죄처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구조가 강화되고 확산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며, 재생산하는 것이며, 그리고 우리의 이웃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공생에 대해 연구하는 톰 웨이크퍼드의 이 말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p.110) 

그렇게 만들어가는 지점. 수많은 사람의 꿈과 소망이 담겨 있는, 함께 만들어 놓는 정원. 그것이 또한 꿈이요, 소망이다. 아는 사람들이 이미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따뜻하고 좋았다며 작은 성의를 보이고 싶다는 기부금을 내겠다는 독자도 있었다. 그러나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 차라리 나무를 심는 게 어떠시냐고 권유했다. 이번 일요일에 나무를 심기 위해 백오산방을 찾아오시기로 했다.

그렇다. 그렇게 소망을 담은 나무들이 모여, 소망을 품은 숲이 될 터. 이야기가 흐르는 숲이 될 것이다. 자연성과 생명력을 회복하면서 건강한 농산물이 도농 간에 교류되는 우리들의 공동체. 그냥 무작정 숲으로 들어간 것만은 아니다.

또한 숲 강의와 사람과 자연과의 교감 등을 통해 가능성도 엿보고 있다. 숲 학교를 사회적기업 형태로 모색하는 것. 지금 이 시대에 소망 하나 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너, 나가’ ‘너, 해고야’ 하면 쫓겨나고 방황해야 하는 공포와 불안이 지배하는 시대. 숲을 통해 배우고 기록하고 돕는 일을 통해 각자가 소망을 품는다면 사회적 문제가 조금이라도 줄고, 이 사회도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행여 소망에 참여할 수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나무를 심도록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심은 나무 한 그루가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심어줄 수 있다면, 숲이 건네 준 선물.

잃고 모색하면서 찾는, ‘길’  

나답게 산다는 것. 숲에서 사는 것이 나다운 것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길을 잃어봤기 때문이다. “‘나로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길을 잃을까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생명 모두는 언제나 길을 잃음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길을 찾기 때문입니다. 헬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처럼 “길을 잃어 보기 전에는, 다시 말해서 세상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찾아내지도,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와 자신이 맺고 있는 무한한 관계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입니다.”(p.29)

수많은 모색이 필요하다. 길을 잃어봐야 내 길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 징표는 그것이다. 그 일로 기쁘고 행복하고 창조로 연결될 수 있는 것, 사회에 아름답게 기여할 수 있는 것.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뚜벅뚜벅 걸어봐야 한다. 이 책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길 위에 서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길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책의 서문) 

그래서 택했던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더 이상 희망일 수 없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 위에 서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업이라는 조직을 떠나기로 했고, 도시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삶의 굽이를 따라 흐르다가 까맣게 잊었던 꿈, 버려야 했던 꿈을 되살려 불러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pp.11~12)

죽을 때가 되면 누구나 삶이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죽음에 대해 장기기증을 서약하면서 정리를 해 보기도 했지만, 책이 ‘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 것’을 은유처럼 제시한 것은 생명의 큰 흐름을 다루고 싶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얼마나 큰 아파트에 살고,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느 직장에 있는 것이 죽음 앞에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것보다 살면서 나를 모색하면서 아름다운 변화에 기여했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가시 있지만 향기와 바람을 담은, ‘음나무’

도시생활, 음나무처럼 가시가 많았다. 그렇지만 가시를 많이 뺀 지금도, 음나무와 스스로가 닮았다고 생각한다. 성목이 된 음나무도 큰 줄기에서는 가시가 떨어지지만, 새 가지에는 가시가 있다. 음나무는 무엇보다 향이 좋다. 그 고유의 향기가 깃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과하지 않은 꿈을 품고 말이다. “우리의 꿈이 빛을 탐하는 식물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식물들에게는 과한 꿈이 없습니다. 나무와 들풀은 오로지 자신을 꽃피우려는 꿈, 그래서 어떻게든 열매를 맺는 것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를 증명하려 합니다. 나무는 숲을 모두 지배하려는 욕심을 품지 않습니다. 들풀은 제 자리가 아닌 곳을 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갖는 꿈도 그렇게 나무를 닮아서, 들풀을 닮아서 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p.68)

숲을, 세계를 형성하는, ‘관계’

숲에 오기까지, 아니 와서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받고 있다. 서대원 선생과 구본형 선생은 물론이요, 많은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숲 생활과 일상을 짓고 있다. 책을 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책이 나오자, 과거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홍보를 해 주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과거 그들과 같이 일하고 있을 때, 그런 말을 듣곤 했다.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 같다. 왜 학교를 안 갔느냐”고. 모험기업을 하면서 어려움을 함께 넘나들던 이들이었다. 사업상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해고시켜달라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숲을 보러 다닐 때, 눈치 보지 않게끔 적극 밀어줬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만났다.

다른 곳에 돈 투자한 것을 빼서 도와 준 사람. 오두막을 지을 때 밑의 마을에서 건축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흙건축연구사무소 ‘아키떼르(www.architerre.org)’의 생태건축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혼자 짓기에 가장 유용하고 집 방향, 창문, 지붕 등을 생태적으로 짓도록 설계를 거의 헐값에 해주기도 했다. 대신 품앗이 개념으로 대학 강의 때 생태특강을 해주는 그런 조건으로.


그렇다. 사람이 사는 도시도 하나의 숲이다. “사람의 숲에서도 이따금 질경이나 생강나무를 닮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길을 기꺼워하고, 타성을 쫓기보다는 차라리 창조적인 진화를 선택하는 사람. 타인이 닦아놓은 길을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길을 내는 사람. 그 대가인 외로움과 고난과 위험을 삶의 안주로 삼을 줄 아는 사람. 육신의 고달픔을 택할지언정 영혼은 결코 꺾이지 않는 사람…… 나는 늘 그들의 삶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p.129)

자립할 수 있는, ‘농부’

농사, 농업, 농부. 세상에서 이미 저 멀리 한 켠으로 밀려난 이름들.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지금 이 엄혹한 시대에 다시 그 이름을 불러야 할 이유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자립할 수 있으며 비굴해지지 않아도 되고, 착취당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 바로 농부다. 귀농운동본부에서 알았다. 나로 살면서 더불어 살려면 자립, 생태가 필요하고 발자국을 덜 남기는 것이 이로운 것임을. 도시가 아닌 자연에서 이루는 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조직과 도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스스로 설 용기와 스스로 설 수 없다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비어 있는 농촌이지만 개인들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 기업이 들어오는 것은, 반대다. 농촌이라는 영역은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 자주 변하는 것보다 자주 변하지 않는 것이 어울리는 법이다.

“내 내면의 깊은 곳에 닿아 있는 나다운 꿈은 사라지고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적 가치에 대한 열망만이 나를 깊숙이 좀먹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 쉽게 변하는 것보다는 잘 변하지 않는 것,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작고 소박한 것, 나 하나만을 살찌우는 것보다는 모두를 살찌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색하고 연구하기 시작하고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는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p.68)

고마운, ‘가족’

열두 살 난 딸이 한번은 물었다. 아빠 직업을 뭘로 해야 돼? 당시 김매고 있을 때라, ‘농부’라고 알려줬더니, 잠시 답이 없다. 어린 그 딸에게도 ‘농부’는 뭔가 망설이게 하는 직업군이었던 것이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숲생태전문가’라는 말이 어떠냐고 했더니, 작가라고 쓰고 싶었나보다. 탈고를 하지 않은 상태라 그건 좀 그렇다고 했더니, 숲생태전문가가 좋겠단다. 

딸에게 아빠랑 농사짓자고 하니까, “아빠와 나는 꿈이 다르”단다. 농촌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나중에 영국을 가고 싶어하는 딸은 ‘해리 포터’의 창조주, ‘조앤 K. 롤링’이 자주 갔다는 커피하우스를 꼭 가보고 싶단다.

무엇보다 책이 좀 팔리면 일본을 가고 싶다. 아내를 위로하고 싶은 것도 있다. 마침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다. 이 책이 그렇게, 지금 거닐고 있는 길이 사막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이라는 첫 번째 증명이길 희망한다. 일본의 숲도 거닐어 보고 싶다. 일본 숲은 자연치유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유기농이 발달해 있다.

물론 여전히 숲과 더 많은 이야기와 교감을 해야 한다. 이미 8년 전에 전원으로 돌아간 큰 형님은 아직 농부가 덜 됐다며 종종 나무라신다. 서울에 오기 전에도 형님 집에서 품앗이를 하고 왔다. 휴대폰도 통하지 않는 형님 집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숲사람이 어차피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나. 

다음 책? 겨울 농사하는 셈치고 책을 짓고 싶다. 겨울에 산속 생활을 하다보면 게을러 질 수 있는데 스스로를 정리하는 개념으로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 이곳 생활을 통해 생명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움직이고 모색하는지를 벤치마킹하면서 탐색하는. 가제는 ‘숲에서 듣는 희망의 노래’. 물론 언제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른다. 우리 삶이 왜 생태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좀더 자연스럽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담을 것이다.

그리고 아동용 책도 짓고 싶다. 딸을 위해서, 딸과 함께 짓고 싶다. 딸이 글 쓰고 읽는 일을 좋아한다. 딸과 이메일을 주고받는데, 책도 그렇게 딸과 함께 공유하는 방식으로 쓰고 싶다. 딸 또래의 아이들에게 자연과 숲에 대해 친근감과 호기심을 갖게 하고 꿈을 자극하는 그런 책. 숲은 그렇게 가족과 함께 꾸는 꿈이다.

당신의 소망과 꿈은, 안녕하신가.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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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저/고상숙 역
김영사 | 200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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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독자가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에 따라서도 빛깔을 달리한다.
책의 가치가 한 독자에게 고정불변이 아닌 까닭이다.

죽도록 자기개발을 명분으로 한 삽질만 하다가 뒤지라고 권유(!)하는,
혹은 지 잘난 맛에 똥오줌 못가리고 무책임하게 싸질러 쓰레기 같은,
(물론 누군가에겐 고민 해답, 삶에 대한 지침이 될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
 자기개발서를 혐오하는 나로선 보기 드물게 만난 책이,  
2009년 봄, 일 덕분에 읽은,《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사실 이 책, 딱히 자기개발서로 규정짓지 않아도 되지 싶었다.
흥미롭고 매혹적인 여행기가 섞여서 여행인문학 비스무리 볼 수도.

이말, 아마 나를 훅~ 끌어당겼을 말.  
“인생의 대부분은 산이 아니라 사막을 닮았다.”(p27)

그러니, 방황은 자연스러운 것. 효율성 절대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그 방황, 용납못해도.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방황에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는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산의 가치관을 변화의 사막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문화에서는 방황이 일종의 성년 의례로, 젊은이는 혼자서 사막을 헤매고 다미며 자기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장점을 깨닫는 과정을 거친다.”(p.51)

물어봤다. 자신에게. “나는 지금 산을 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사막을 건너고 있는가? 동시에 이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었다. “사막을 건널 때와 산을 탈 때는 걷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딱딱한 등산화를 신고 끝없이 모래가 쌓이는 뜨거운 사막을 건너면 발에 물집만 생길 뿐이다.”(p.29)

덕분에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일부를 교정할 수 있었다.
나의 사막이여, 나의 나침반이여. 인생이라는 사막을 여행하는데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아는 것이다. 제 아무리 나이 먹어도 이걸 모르는,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사막에 빠져 허우적 거릴 뿐,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    

물론 명심해야 할 것. 나침반이 항상 ‘옳은’ 길만 가리키는 것은 아님! 마음의 소리라고 언제나 맞는 것이 아니듯. “지구 자기장의 편차에 따라 수정을 해주어야 하는 나침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내부의 나침반이 항상 진실된 방향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p.52)

역시, 그해
봄에 만난 사막 종단자 '스티브 도나휴'의 말을 기록했다. 
내겐 아주 색달랐던, 자기개발서에 대한 편견을 일부 불식시켜줬던 만남.  


"현재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일단 채무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가될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고, 그 와중에 많은 여행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목적지를 접어두고 나면, 매일 수입의 범위 내에서 적당히 지출하고, 버는 것 이상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사실 바로 그것이 나침반 바늘이 될 수 있다. 또는 눈높이를 낮추어 수준에 맞는 생활을 하면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돈이 아닌 다른 종류의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는 새롭고 더 심오한 나침반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나침반 바늘을 따르면 어떻게 될까? 비금전적인 풍요함을 맛보면, 가장 중요한 관계를 가꾸고 자기 주변을 둘러싼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며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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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같은 인생에선 꽃보다 나침반 아니, 지도보다 나침반!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스티븐 도나휴’ 방한기념 독자 만남

이렇게 가정해보자. 당신은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다. 아니, 굳이 나이는 상관없겠다. 그냥 지금, 당신의 나이다. 어느 겨울, 파리에 머물고 있는데 그 매서운 추위에 갑자기 질렸다. 따사로운 햇살이 막막 당긴다. 이 겨울만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서아프리카 해변에서 보내리라 다짐한다. 친구와 함께 떠난다. 돈이 없어 약간의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 탄다. 따뜻한 남쪽 해변으로 간다는 목표 외에는 없다. 계획? 일정? 그런 건 다른 나라 얘기다. 그리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다보니, 지구에서 가장 큰, 면적은 미국과 맞먹는 사하라 사막을 관통하고 있다. 중간 정도나 왔을까.


진짜 얘기는 좋아, 이제부터. 그 사하라. 차량도 없다. 둘만 덩그러니 사막에 있다. 있는 건, 오직 짐과 잠을 청할 수 있는 캠프. 태양이 잦아들고 밤은 뱀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뭔가가 다가온다.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다. 아니, 이 사막 한가운데, 인적이라니. 옷과 움직임을 보니 유목민 같다. 어느 책에선가, 여기 유목민들은 10인치 가량의 단검을 들고 다닌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검이 사람의 배를 족히 뚫을 수 있다는 사실도.
 
그런 얘기가 떠오르는 마당에, 그 유목민이 오더니, 소금을 달란다. 있는 대로 다준다. 그랬더니, 간다. 안도하는 한편으로 또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친구에게도 얘기한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후,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헉. 다시 등장한 그 유목민. 이번에도 손을 내밀더니 후추를 원한다. 굉장히 공손하지만, 그 와중에 탐색하듯 우리를 훑는다. 그 시선에 온몸이 오그라든다. 아마 우리가 또 무엇을 갖고 있는지 살펴본 건 아녔을까. 세 번째로 온다면, 그때는 아마도…

다시 재깍재깍. 30분이 흐른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기분이 여전히 찝찝하다. 눈을 들었는데, 헉. 다시 그 사람이다. 캠프사이트 바깥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아무 말이 없다.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더니, 따라오란다. 뭐냐. 이 시추에이션. 겁난다. 따라갔더니 그 원주민들 모두 칼을 품고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첩첩산중이다. 당신, 어떻게 하겠는가. 따라갈 것이냐, 도망갈 것이냐,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확률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겠는가. 아, 햄릿의 고민이 이랬을까.

북치는 강연자, 스티브 도나휴의 등장

스티브 도나휴는 스무 살 때, 실제로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다. 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했을까. 아니, 아직 위험이 닥친 건 아니니까, 어떤 발걸음을 옮겼을까. 어디선가 익숙한 상황이라고? 맞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스티브 도나휴 지음|고상숙 옮김/김영사 펴냄)을 읽은 사람이다. 

저자 도나휴가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지난 3일 서울 과학기술회관에서 YES24 독자들과 만났다. 다음 작품 준비를 위해 다큐 감독 피터 캠벨과 동행했고 그는 이날의 강연을 캠코더에 담았다. 

느닷없이, 예정에 없던 아프리카 드럼을 치면서 강연장의 시선을 모은 그는, “고맙습니다. 저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한국말 좋아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우리들의 사막으로 들어왔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3가지. 첫째, 한국에서 책이 성공한데 대한 감사하고자. 둘째, 한국에서 책이 성공하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한국의 문화 등을 배우기 위해. 셋째, 사람들과 만나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상호 어떤 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선 다시 드럼을 치면서 박수를 유도한다. 앞서 언급한 사하라 사막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사막을 어떻게 건너는 것이 좋을지 얘기하고 싶단다. ‘아니, 한국에 무슨 사막이 있다고 그래? 미친 것 아냐?’라고 갸우뚱하진 마시라. 그가 말하는 사막을 건너는 건 이런 거다. “목표가 애매모호하거나 또는 최종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정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사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p.17)

더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 “인생과 변화의 사막에는 항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이 산들은 그때 그때 우리가 해내야 하는 과제나 프로젝트, 그리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꿈, 우리가 열망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최종 결과물들이다. 직장을 옮기는 것은 산이지만 직업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사막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산이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사막이다. 꿈에 그러던 집을 짓는 것은 사막이다. 암을 이겨내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만성 질환이나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p.29)

그러니까 인생은 앞서 언급한 상황과 같다 이거다. 정답도 없고, 도망가든 따라가든, 어떻게 해야 할지 당최 알 수 없는 상황. 인생에 미리 짜놓은 계획도 없고, 지도도 없을 때, 아니 짜놓고 지도가 있다손, 그대로 간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 자, 준비됐나요? 사막을 건널 준비! 자, 함께 발을 뗍시다.

나침반,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

도나휴는 묻는다. “아까 그 상황에서 지도에 의존하면 알 수 있을까요? 지도가 있어도 도움이 안 돼요. (사막은) 지형 자체도 계속 움직이고요. 누군가가, “323 모래둔덕에서 돌아가세요”라고 알려준들 그걸 따라 갈 수 있을까요? 인생이 바로 이런 상황과 비슷해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죠. 지금만 봐도 경제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어요. 그러나 어느 누구도 경제위기라는 사막을 건널 수 있는 해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렇다. ‘인생은 사막’이라는 비유, 살다보니 충분히 동의할 만하지 않는가. 그리고 인생의 지도가 있다손, 그 지도대로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나. 얼마 전, 프랑스 배우이자 아마도 세상 모든 감독의 뮤즈인 줄리엣 비노쉬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뭐가 일어날지 모른다. 촬영에 들어가면 그 장면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그게 바로 인생 아닌가. 삶의 순간들이 바로 그러하다.”

도나휴는 그래서 지도 아닌, ‘나침반’을 권한다. 우리가 의지해야 하고, 각자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나침반. “중요한 것은 방향감각이다. 먼저 자신을 안내해 줄 내부의 나침반부터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명하게 보일 때까지 목표나 도착지는 염두에 두지 않아야 할 것이다.”(p.44)

도나휴가 전하는 나침반을 따라가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준다.
둘째. 나침반을 따르면 어떤 기회가 있을 때, 이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셋째. 나침반은 길만 따르는 게 아니라 방향을 크게 보면서 위험․기회를 다 볼 수 있다.

그리고 경제위기가 때론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자신의 경험으로 설명했다. “북미에서 나의 생업은 강의다. 2001~2002년 북미지역의 경기가 크게 후퇴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때 내 할 일도 팍 줄었다. 그냥 손놓고 놀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 내 안의 나침반을 따라 가보니, 그동안은 청중과 내 얘기를 공유했는데 책을 통해서도 공유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냈다. 여기 온 여러분들도 책을 읽게 된 셈이고. 아마 지도만 따라갔다면, 강의, 강의, 강의였을 것이다. 그러면 책도 쓰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침반은 만사형통일까. “나침반을 따라가면 목적지를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가다보면 지도상의 목적지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 사실 나침반을 따르는 건 굉장히 어렵다. 감도 잡기 어렵고.” 그는 책에서도 이렇게 설명한다. “지도보다 나침반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목표나 목적지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 또는 존재하는 방법을 담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인생의 사막을 건너서 따라가는 방향은 깊은 의미가 있고 명료해야 한다.”(p.40)

내 안의 나침반을 찾는 방법

내 안에 나침반이 있다는데, 어디서 찾을 것인가. 도나휴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가 갖고 태어났단다. 존재 자체를 정의하는 나침반이 있단다. 그러면서 자신 안에 있는 나침반 하나를 끄집어낸다.


“내 안의 나침반 하나는 (남과) 달라야 한다는 나침반이다. 오늘 보여준 드럼이 바로 그런 것인데, 어느 누구도 강의를 하면서 드럼을 연주하지 않는다.(웃음) 나는 항상 독특하고 별다른 존재였다. 어머니한테 어릴 때를 물었더니 이런 사진을 보여줬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의 어릴 적 포즈와 표정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4살 때인데, 나는 절대 평범한 사진을 못 찍는다. (운전면허증과 같은 공식적인 사진 등에서도 그는 별의별 표정을 지닌 사진으로 승부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따르고 있는 나침반이다. 물론 이것을 따라하라는 것은 아니다. (웃음) 모든 사람은 각자의 나침반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먼저 아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겠나. 내 마음의 움직임, 혹은 소리를 따르는 것. 나침반은 내가 나를 아는 일에서 제대로 작동을 시작하지 않을까.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것은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것이 나침반을 찾는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는, 살면서 조그마한 것이라도 성공한 일이 있으면 심사숙고를 하고 파악해 보란다. 그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면 자신의 특징․재능이나 성공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 난다. 작은 성공이라도 그것을 생각하면 또 다른 성공으로 갈 수 있다.”

세 번째는, 길을 잃어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렵고 아무 것도 몰라서 지도가 도움이 안 될 때가 바로 나침반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란다. 가령, 아이를 낳고 나면, 지도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인데, 나침반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낫단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어릴 때는 아이들 옆에 있는 것이 나침반이라면, 크면 아이들과 최대한 접촉을 피하라는 쪽으로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뀐단다.

그리고선, 2년 전, 나침반을 찾았던 경험담을 얘기한다. 스무 살이 된 자신의 딸이 여행을 떠났다. 그의 생일 즈음, 호주를 여행 중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일 축하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남자친구와 호주에서 결혼을 하겠다는 선전포고(!)가 날아 들어왔다. 두 사람이 사귄 기간은 고작(?) 5개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란다. 호주로 가서 딸을 당장 데려오는 것도 생각했지만, 당장 대책이 안 섰다. “딸의 남자친구인 댄은 좋은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핑하는 녀석이었다. (웃음) 그때 든 생각이 ‘나침반이 필요해’였다.”

결국 그는 찬찬히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좇은 결과, 그들이 결혼하는 그곳에 가기로 했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결혼식이 있었고, 한국에 오기 2주 전, 호주를 들렀는데, 손주를 안아보기까지 했다.

“결혼식을 가야겠다고 결정하고 갔더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 결혼식 직후 온 가족이 식사를 하게 됐다. 그것은 11년 만이었다. 딸 애 결혼식을 통해 전 가족이 모이게 된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좋은 결과들과 맞이하게 된 거다.”

또 하나. 책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사하라 사막을 함께 건넌 친구 탤리스는 배 안에서 만난 친구다. 당시 도나휴의 애초 계획(지도)은 유럽에 가서 1년 동안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 안에서 탤리스와 친해졌고, 1주일을 지낸 어느 날, 잠에서 깼더니 배 안에 아무도 없었단다. 탤리스도 없고. 배는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상태. 원래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를 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쩌다 프랑스에 머물게 됐다. 일주일을 파리에서 보내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중간에 약간 시간이 남아 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지하철역에서 내릴까 말까 망설였단다. 나갔다 다시 오면 지하철 요금이 더 들어간다는 생각과 구경하고 가자는 생각 사이에서 망설이던 즈음, 해당 역에서 문이 열리는데, 갑자기 그냥 박차고 나갔다. 그때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그곳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 탤리스였다.

“지하철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았다면 사하라 사막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을 바꾼 것이다. 책에는 이 얘기를 넣지 않았지만, 아주 작은 사건 하나가 우리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 순간이 얼마나 큰 위력이 있는지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준비되지 않은, 예고 없이 닥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마음가짐과도 통할 수도 있겠다. “캠프파이어 곁을 떠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신조는 ‘Semper Non Paratus(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기)’이다.… 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다는 것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무책임하거나, 알면서도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책임감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줄 새 시대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캠프파이어에서 벗어나서 인생이라고 하는 사막의 불확실성을 좀더 쉽게, 덜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대담하게 맞는 마음가짐이다.”(pp.162~163)

안정된 캠프에서 벗어나 세상과 만나기

아까 언급된 사막으로 돌아가자. 원주민의 따라오라는 수신호에 도나휴는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불 옆(캠프파이어)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탤리스가 따라가고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모래언덕에는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앞서 가던 유목민이 어느 한 곳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따라 갔더니, 그곳엔 8명의 유목민이 더 있었고 1명은 큰 칼까지 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다. 두려워서 온 몸은 딱딱 굳어졌다. 어찌해야 할지 짱구를 굴리는데 단서는 후각을 통해 찾아왔단다. 요리 냄새가 아주 끝내줬단다. “큰 칼을 든 사람은 바비큐를 먹기 좋게 자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소금과 후추를 줘서 우리를 초대한 것이었다. 같이 먹자고. 결국 그렇게 따라가서 수많은 별들 밑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축제와 같은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그의 결정에 흡족해하고 있었다. 원주민을 따라 캠프를 벗어난 것을.

“모든 사람들에겐 이런 캠프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캠프에서 떨어져 봐야 한다. 내 본거지는 북미다. 한국에 온 것은 캠프에서 떨어진 것이다. 오늘  밤 지나면 이곳도 캠프파이어의 한 곳으로 목록에 오르겠지만, 안락한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갈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올 것이다. 당시 그 유목민들은 (축제를 함께 보낸 뒤) 길까지 안내해줬다. 그러면서 트럭을 얻어 타고 사하라를 건넜다.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곳의 운송수단이 상상과 다를 수 있지만 방향이 같다면 타고 가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해변에 도착했다. 나침반을 따르면 목적지를 모른다고 했지만, 멋진 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 “우리의 머리 위에서부터 저쪽 하늘 끝까지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습기나 공해, 또는 도심의 불빛에 오염되지 않은 별 하늘이 도시 생활의 안락함과 캠프파이어를 뒤로 할 용기가 있는 사람을 위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p.149)

묻고 답하기

Q. 여행하고 나서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전과 어떻게 달라졌나.
A. “사하라를 건널 때 나는 젊은이였고, 그때 의식적으로 깨닫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주는 여행길이 됐다고 생각한다. 사하라 사막을 건넌 뒤, 나는 진짜 성인이 된 것이다. 물론 또 다시 건널 필요는 없는 것이, 인생 자체가 사막이다. 그 인생의 사막을 건너면서 더 성숙해지는 것이고.”

Q. 차가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 바람을 빼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타이어 바람을 뺀 사례를 알려 달라.
A. “살면서 사막에 갇히면 빠져나가기 위해서, 사막에서 무데뽀로 차를 밀듯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차를 미는 것은 멈춰야 한다. 방법을 찾지 못했음을 깨달을 때, 상황이 보이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아까 얘기했듯, 딸이 5개월 전에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가 그런 상황이었다. 처음에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내 자의식임을 깨달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정답을 알지 못하겠다. 정답이라고 알아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Q.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길 강요받는다. 젊은이들에게 사막을 건널 수 있도록 도움 줄 말이 있다면.
A. “책에 산에 오르고, 사막을 건넌다고 한 것은 은유다. 나도 산을 오르는 것처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수록 산에 오르도록 요구받는다. 그러나 나이들수록 인생이 산이 아닌 사막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도 목표가 있다. 여러분도 목표를 갖고 노력해라. 그러나 산 올라가듯 목표를 향하면, 인생 자체가 사막으로 보인다. 젊은이들은 목표를 두고 나아가되 남이 아닌 나를 목적으로 두고 나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살다보면 목표가 자신이 처한 문제의 해결도 아니고 행복하지도 않고 사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사막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Q. 한국에서는 많은 경우, 산에 오르도록 교육한다. 경험적으로 이럴 때, 어떻게 나침반을 찾을 수 있을까.
A.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을 알아봤더니 산이 많더라. 산에 오르도록 교육 받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웃음) 그동안 한국이 이만큼 성공한 이유에는 산에 오로도록,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교육을 받은 것도 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면서 목표 외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목표를 마음속에 지우는 것도 좋다. 나침반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지금은 보수를 받고 일을 하는데, 보수를 받지 않고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생각해보라. 그것이 나침반을 찾는 방법이 될 수 있다.”

Q. 다른 책을 쓰고 싶다고도 했는데, 어떤 내용인가?
A. “현재 나는 나침반을 찾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 첫 책은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얘기했는데,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나침반에 대해 질문하더라. 그래서 두 번째는 나침반을 찾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 인생의 방향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인생의 나침반을 찾는 방법 등이다. 나침반은 선택이 아닌 타고 나는 것이고, 자신에 대해 파악한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 책이 나오면 살 건가? (웃음)”

그리고, 후기

대체로 산을 올라가는 마음은 ‘정상’에 꽂혀 있다. 그리고 다그친다. 어떻게든 그곳을 정복하라고. 우리 사는 이곳은, 대체로 그렇다. ‘무한경쟁의 장’이며 ‘정글’이라고들 한다. 사람들은 윽박지르듯 강변한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목표로 둔 정상까지 쉼 없이 일하고 자신을 불태우라고. 그러나 그것은 이미 용도폐기돼야 할 전근대적인 산업화시대의 구린내 나는 유산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도나휴의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사하라 사막에서 꼭 오아시스에 멈추어 쉬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셋째. 오아시스에서는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잘 아는 거라고? 어? 그렇게 잘 알면서도 왜 멈춰서 쉬어가질 않지? 도나휴는 이런 말을 건넨다. “문제는 우리가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생각하며 산다는 데 있다. 우리는 정상을 다다르기 위해 안달하는 열병을 앓고 있다.”(p.65)

그리하여, 카르페디엠(carpe diem). “이렇게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사막을 여행하는 마음 자세이며 그 덕분에 우리의 여행이 더 풍요로워 진다.”(p.49)

덧붙여, “사막에서 휴식을 취하면 사막 자체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휴식을 취하는 오아시스건, 사색을 하는 오아시스건, 또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오아시스건 모든 오아시스는 매순간에 충실하게 사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깊고, 즐거운 순간은 종종 이 오아시스에서 일어난다.… 오아시스는 온전히 현재에 사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 준다”(pp.90~91)


그리고 이른바 ‘디지털시대’라는 세례명(?)을 받은 지금-여기의 우리는 어떤가. 컴퓨터, 인터넷 덕분에 진짜 일이 줄었는지, 내게 더 여유가 생겼는지, 과거를 돌이켜보라. 과연 그럴까. 편리함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걸. 오아시스는 멀리 있지 않다. “하루종일 컴퓨터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디지털 사막이다. 이럴 때는 화단의 비옥한 토양에 손을 담그고 꽃의 화려함에 취해 보는 것이 바로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p.79) 우리, 이 봄을 그냥 넘겨선 안된다. 

도나휴는 이런 마음가짐을 권한다. “인생을 산이 아니라 사막으로 보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뿐 아니라 중요한 관계까지도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p.66)

부디, 산보다는 사막을 닮은 우리네 사람살이. 사막을 건너는 당신의 건투를, 빈다!
더불어 나의 건투 또한, 빌어주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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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 조금 끼쳐도 괜찮아~ | 바람구두 이야기 2010-09-2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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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폐를 끼치는 일이다.
지구에게나, 다른 생물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다른 물질에게나.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리 된다. 의도와는 무관한 폐까지 끼치게 되니까.

내가, 일본보다 인도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말이 있다. 일본의 한 트위터에 올라왔다는 글이다.

일본의 부모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인도에서는 "너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며 살고 있으니, 남들도 용서하거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전자는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후자는 "후유"하게 된다. 폐 안 끼치고 살 방법은 없다.

日本の親は、「人に迷惑かけちゃダメですよ」と教えるが、インドでは、「お前は人に迷惑かけて生きているのだから、人のことも許してあげなさい」と教えるそう。前者は、息苦しさを、後者には、ホッとするものを感じる。迷惑かけずに生きられるわけない。


그러니까,
나는 민폐 좀 끼치고 산다. 억지로 폐 안 끼치려고 애쓰지 않겠다.
당신의 너그러운 용서를 바랄 뿐이다. ^^; 

당신이 끼치는 민폐도 괜찮다.
너무 폐 안 끼치려고 애 쓰고, 과도하게 미안하다고 조아리지 마라.

당신이라서 괜찮아. 또 괜찮아.

산다는 건, 역시나 폐 끼치는 일이다. 

나는 민폐준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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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생각 | 카페 놀멘놀멘 2010-09-2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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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연극 [광수생각]_

장르 : 연극       지역 : 서울
기간 : 2010년 09월 15일 ~ 2011년 02월 21일
장소 : 신연아트홀

공연     구매하기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 은 많은 경우가 '첫사랑'이 아닐까.
사랑이 뭔지 알 턱이 있나. 느닷 없이 사랑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내 알기로, 사랑을 방비(
防備)하는 경우는 없다. 무방비다. 사랑을 배운 적도, 익힌 적도 없다. 사랑은 그렇다. 더구나 첫사랑. 느닷없는 감정의 파고에, 쩔쩔 맬 수밖에 없는 쑥맥인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아, 어쩌란 말이냐.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다.
사랑 앞에 용기를 내느냐, 그렇지 않느냐. 아니, 그 전에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스스로 정의 혹은 최면을 내리는 것이 우선이겠지. 이젠 각자의 성격이 나온다. 풋풋한 시절(첫사랑은 대부분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하더라!), 첫사랑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사랑대세). 말하고, 고백하고, 다가서는 사람, 사랑이 꽃피는 나무. 말 못하고, 고백은커녕, 뒷걸음질만 치는 사람, 사랑이 운다.
"이 여자가 내 여자다, 왜 말을 못해!"
이런 말, 던져주고 싶다. 여기 이십대의, 세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만화가, 광수에게. 그는 후자의 인간이다. 사랑이 운다. 사랑에 운다. 좋아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쭈뼛쭈뼛, 엉거주춤, 머뭇머뭇. 답답해, 답답해. 물론, 남의 이야기니까. 어느덧 광수에게 감정이입 됐다. 누구에게나 그런 쭈뼛거린 첫사랑이 있었으니까. 누구에게나 지현이(광수의 첫사랑)가 있었으니까.
 
'저건 내 얘기야', 하고 마음속으로 외칠 법한 사람도 있겠다.
'소리 없이 내 맘 말해볼까. 비 맞은 채로 서성이는 마음의 날 불러주오, 나지막이. 가진 건 마음 하나로 한 없이 서 있소. 내 맘은 언제나 하나뿐.' 노래만 흥얼거리지.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이 있었을까. 썼다 지웠다, 애꿎은 편지지만 꾸깃꾸깃, 밤에 혼자 부풀어올랐다 아침이면 펑 터져버리는, 풍선 아니, 애드벌룬 같은 내 마음이여. 지현이에게 선물을 보내놓고도, 그게 나야, 라고 말 못하는 광수야, 광수야, 사랑이 아프다. 흙...

이 악물고, 마음 굳게 먹고, 고백하기로 한다.
거울 보고 연습했다. 대사도, 표정도. 꽃도 준비했다. 이제 말만 하면 된다. 연기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사랑은 미끄럼틀이다. 슝~ 친구면 뭐해. 내 마음도 몰라주고. 구일이 놈, 나쁜 쉐이. 숙자는 왜 또또또. 이 엇갈린 갈지자여. 아, 사랑의 미로야~~ 재수 없는 잘난척쟁이 민혁이는, 변칙성 작업과 느끼함으로 지현에게 다가가고. '광수 생각'은 깊어만 간다.  

2006년11월 초연한 연극<광수생각>은 리콜(앵콜)을 거듭하며 롱런중이다.
롱 런의 비결? 별 것 아니다. 누구나 가짐직한 첫사랑의 두근거림, 말하지 못하는 내사랑, 의 기억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맞다. 특별한 내용도 아니다. 그럼에도,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에 공감을 얻는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끄집어내는 '빨대'이기 때문이지. 돌쇠형 일편단심, 광수였든 아니든, 내 마음의 복고가 풀풀 날린다. 그러니까, 이건 정서의 문제다.

그 옛날, 만화 <광수생각>이 지난 정서가 그런 것이었다.
대단한 것도 아니, 특별한 것도 아니, 가장 보편적으로 우리에게 내재된 마음과 기억 끄집어내기. 극중 무대와 인물이 바뀌는 암전, 만화 <광수생각>이 틈입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아하, 맞아 맞아. 광수가 어떻게든, 오해와 헤어짐을 거쳐 첫사랑과 다시 해후하리라는 것, 스포일러도 아니다. 그건, 이미 <광수생각>이라는 타이틀에서부터 예견된 바다.

손발 오그라들어도, 첫번째 첫사랑은 그렇다.
'첫'이 주는 그 기묘하고 신비로운 마음의 각인. 광수가 역시나 오그라들게 한다. "한낱 떡볶이도 잊지 못하는 내가 널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아무렴. 어.떻.게.에 방점 쾅. 잊을 수 있는 게 따로 있지. 어딜. 물론,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내게도, 모든 첫사랑이 똑같은 비중으로 있지 않다. 거기서도 첫번째는, 남다르다 하겠다. 나는 그날 맞닥뜨린 햇살의 온도까지도 기억한다. 그날의 풍속과 기압, 지구의 자전까지도. 떡볶이도 잊지 못하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킁킁.
모름지기, 사랑 앞에 주저만 주저만 하는 것도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닌법.
사랑이라면, 2% 부족해도, 다가서라. 사랑한다면, 표현해라. 그것이 연인이건, 친구이건, 가족이건.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바빠서, 수줍어서 등의 핑계를 대는 것도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서툰 사람이라는 것 알지만, 서툼이 언제나 면죄부가 될 순 없다. 사랑을 놓치고 후회하느니, 말은 일단 꺼내놓고 후회하는 것이 747배쯤 낫다. 물론, 서툰 이들에겐 이것 쉽지 않다. 알면서도, 입이 떨어지는 건 마음과 별개라는 것. 아, 입이 안 열려서 슬픈 짐승이여. 아우~~~

다만, 크게 기대하지 말지어다. 빅재미, 빅감동은 없다.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등 기대고 옛 추억도 살포시 떠올리면서 광수를, 과거의 나를 만나라. 배우들의 연기도 등락이 크지 않다. 특히 조연들의 1인2역(1인다역)은 부족한 인원을 채우는 것과 동시에 같은 사람의 다른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 고백하건대, 광수의 동생, 현수 역을 맡았고, 간호사·교사로도 활약한 민수진에 나는 흠뻑 빠져있었다. 여신 포스! 알잖아~ 나란 남자, 여신 앓이. 끙끙. 같이 본 친구에게도, 민수진 알흠답지 않냐고 블라블라 호들갑(?)을 떨었더니, 인정한단다. 흠, 좋아한다 말할까?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고로, 나는 당신이, 참 좋다. 꺄아아아아아아~ 좋아해~~ :) 민수진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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