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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걸 갖추는 것, 글을 제대로 쓰기 위해 꼭 필요한 것! | 바람구두 이야기 2011-09-2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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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1년에 한 두번 뵙는다. 주로 행사를 통해서다. 나, 행사 뛰는 사람은 아니나, 그가 있는 행사에 나도 간혹 그 자리에 있다.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다. 나 혼자 알고 흠모한다. 강신주다. 신주 단지 모시듯 그를 모시는 건 아니지만, 그는 철저히 현실에 발을 붙인 철학자다. 하긴, 현실에 발 붙이지 않은 철학자는 철학자가 아닐 것이다.
 
강신주는 철학자다. 재밌다. 작년, 《철학 VS 철학》을 통해 처음 알았고, 첫 만남이 있었다. 어쩌다 내게도 말을 붙여주셨는데, 나는 그 순간이 참 재밌었다. 타닥타닥. 타자기 치는 소리. 소리가 그때 있었다.

그리고, 올해 현재까지 2번. 나야 그냥 인사하는 정도지만, 지난 4월의 성미산마을극장에선 어디서 본 적 없느냐고 말씀까지 건넨다. 깜딱이야. 별 임팩트 있는 모양새도 아닌데, 어찌 기억을. 아냐. 워낙 흔하게 생긴 탓 아닐까? 

위안이고 위로였다. 힘든 것, 기다리는 것, 서러운 것은 옳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신주는 그랬다. 아마, 그럴 것이다. 4월의 봄날, 강신주는 그랬다. 내년엔 또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내년, 어디에 있을까. 지난 4월, 강신주를 만난 기록이다.



옳은 걸 갖추는 것, 글을 제대로 쓰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1. 투표하자고 외친다. 그것의 진정성을 모를 바는 아니나, 내가 겪은 한 투표는 세상을 바꾸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믿고 정치적 권리를 맡겼건만, 세상은 거의 한결 같았다. 혁명은 오지 않았고, 혁명 같은 변화도 없었다. 투표를 의심했다. 내 정치적 권리에 대해서도 의심했다. 고로, 대의민주주의를 의심했다. 이른바 ‘대표자’는 진짜 맞나? 지금의 선거 제도는 옳은 것, 맞나? 그래서, 투표하지 않을 권리, 투표하지 않는 것에 담긴 함의와 목소리를 생각했다. 물론 투표 자체가 가진 목소리를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달 27일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투표하자’는 말이 빗발쳤다. 당연, 관심은 있었지만 ‘투표하자’는 말 뒤에 있는 다양한 함의가 무엇인지, 나는 그 맥락을 알고 싶었다. 단순히 투표하자는 말로만 세상을 읽어선 안 되니까. 투표율이 높은 때문인지, 집권 여당은 패했다. 야당 가운데 의석수가 가장 많은 정당은 희희낙락했다. 서식지가 다른 탓으로 투표를 하진 않았지만, 궁금했다. 과연 뽑힌 저들은 메시아라도 될까? 투표 외에는 거의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은 과연 옳은가.


#2. 멕시코 치아파스 사람들의 커피. 커피 만드는 사람인 내가 현재 다루고 있는 공정무역 커피 중의 하나. 물론 공정무역 커피면서 혁명단체인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Ejército Zapatista de Liberación Nacional, EZLN)과 관련 있다는 점이 이 커피를 다루게도 했는데, 치아파스 역사에서 (투표에 대한) 자각이 있었던 한 지점. 사파티스타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1994년 1월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효력을 발휘하면서였다.


사파티스타는 지주들이 고용한 사병(私兵)의 폭력에서 농민을 보호하던 활동을 펼치던 단체였다. 그러다 1988년 선거에서 큰 부정이 발생하면서부터 농민들의 신망을 폭넓게 확보했다. 선거를 통한 권익 확보가 힘들다는 자각 덕분이었다. 선거․투표가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는 깨달음.


그런 와중에, NAFTA는 농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멕시코 정부는 자국의 국민이자 기반을 버렸다. 커피가격 보조금 등 농민의 기본적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포기했고, 1917년 혁명헌법이 보장했던 제27조 공동토지소유 조항도 폐지했다.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에르네스토 세디요는, 이듬해 사파티스타 근거지에 대한 공격을 단행, 내전이 벌어졌다.


재밌는 것은, 같은 해 8월, 사파티스타는 정부협상을 앞두고 민중투표를 실시했다. 정부와 싸울 것이냐, 멈출 것이냐. 직접 투표였다. 3천여 원주민 부족민들이 일일이 투표했다. 수개월에 걸친 직접 투표, 사파티스타가 정치세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중단과 원주민 자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터져 나왔다. 아, 나는 이런 지역의 사람들이 다루는 커피를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강신주와 이권우의 만남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이자 철학자 강신주의 귀띔이었다. 그는 대의민주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아름다운 서재>6호 발간 기념으로 열린 ‘철학에 이르는 길’ 강연회에서였다. 강신주와 도서평론가 이권우가 더블 포스트로 독자들이 함께 ‘철학과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름다운 서재>는 책으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의 회원사들이 한 해 동안 정성들여 만든 책들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는 도서목록으로, 이번 강연과 함께 했다. 우선 이권우가 물었고 강신주가 답했다.


강신주는 왜 철학을 하게 됐는가?


정전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보통 대학 3학년2학기에 취업을 했는데, 나는 당시 울산에 있던 유공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전기가 나더라. 처음엔 짜릿,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스파크가 나더라. 당시 지방으로 내려가면 호텔을 잡아줬다. 호텔에서 직장생활 해 봤나? (웃음) 정전기가 왜 났을까 알아봤더니, 내가 너무 작아져 있었던 거다. 부당한 것에도 바로 위 대리랑도 맞장도 못 뜨고. 당시엔 돌 던지는 게 일종의 유행이었는데, 나는 책을 더 강하게 읽었던 학생이었다. 그러다 취업을 하니 정전기가 일어났고, 그래서 대학원을 준비했다. 


처음에 철학을 했던 이유는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다. (웃음) 어려워서 매력적이었다. 지금 하라면 안 한다. 사회학, 정치학, 소설 다 쉬웠는데, 네(철학)가 얼마나 어려운가 보자, 해서 철학을 시작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건 30대 후반이 돼서 였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역시 정전기가 났다. 정전기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서 학교를 나왔다. 내겐 이것이 생물학적 반응이다. 지금도 정전기가 나면 안 한다. 사소하지만, 내겐 바로미터다.


어렸을 때도 철학책을 읽었나?


100% 추리소설을 읽었다. 철학책은 안 읽었다. 철학을 제대로 하게 된 건, 성장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학부를 철학과에 갔어도, 이리 안 됐을 거다. 나는 그렇게 철학이 절실했는데, 지금 철학과를 가는 건 대부분 대학보고 가는 거잖나. 나는 억압된 사회를 통과하면서 나중에 철학 공부를 했다. 조건이 좋았던 거다. 어렸을 때도 주변에 철학책이 없었던 것도. 어렸을 때 철학책을 안 읽었으면 좋다,


철학을 너무 크게 봐선 안 된다. (철학이) 굉장히 훌륭하게 대접받는 것 같지만, 사실 철학처럼 폄하되는 학문이 없다. 나처럼 매사에 정전기가 난다면 철학할 수밖에 없다. 사는 게 힘들지 않으면 철학하지 마라. (웃음)
 



동양철학을 전공하려 대학원에 간 건가?


우리가 가진 동양정신으로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본 동기는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고, 하루에 논문 3편을 읽으면서 대학원에 붙었다.


지금 철학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권해주고픈 순서가 있다면?


김용옥(도올)이 가장 낫다. 독창적이진 않지만 레토릭(수사학)이 독창적이다. 그의 책을 다 봐라. 다른 사람이 그를 질시하는 건, 스타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정통적으로 배웠고, 그래서 보수적이다. 그가 있다는 건, 우리에겐 축복이다. 신영복 선생의 동양철학은 깊이에서 좀 떨어진다. 『여자란 무엇인가』를 권한다. 그걸 읽으면 훅 간다. (웃음)


(단점은 하다 만다는 건데, 인문서는 서문이 중요하다.) 프롤로그는 최강이다. 재미있다. (좋은 인문서는 서문만 봐도 좋다. 동양철학 입문으로는 김용옥이 좋고 재밌다.) 도올의 하버드 논문엔 통찰력이 부족했으나, 중요한 건 안목이다. 김용옥은 글로 평가해야 한다. 평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책을 보면 좋을까?


내 책을 봐야지. (웃음) 『철학 vs 철학』에서 동양철학을 서양철학과 맞장을 뜨게 한 건 자랑스럽다. 김용옥의 책은 주석이 되게 길다. 주석이 한 권의 책 같다. 동양철학 고전은 철학책이 아니어도 좋다. 가급적이면 번역이나 한문투는 제외하고 대화의 문맥이 잘 나온 책을 봐라.


고전은 갖은 주석이 달리지만, 주석이 없어도 읽힌다. 고전이 왜 살아남느냐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충실한 우리말로 된 책을 봐라. 나도 15권을 썼지만 계속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이 어려운 문체는 국어를 못해서다. 서문이 충분히 읽히면 좋은 번역서다.


장자가 전문인데, 비트겐슈타인도 공부를 하고...


한계를 직감한 사람이 자유를 알고, 자유로워 본 사람만이 구조를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자유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한계를 발견하고 한계를 발견하는 순간 좌절하거나 넘어간다. 박사과정 대부분은 비트겐슈타인에게 할애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서늘하다. 말할 수 없으면 침묵하라고 한다.


논문으로 장자를 선택한 건, 지도 교수가 장자 전공이라서. (웃음) 장자를 좋아하나 가장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영원히 그를 신봉하면 종교가 된다. 그는 친구였고, 논문을 쓸 때도 즐거웠다. 지금은 헤어졌는데, 삶에서 헤어진 건 아니고.


지금 가장 관심이 있는 건, 개개인이 정치 주체로 거듭나서 혁명까지 가능해질 수 있을까, 이다. 옛날에 책을 너무 안 읽은 게 지금에는 무척 좋다. 안 읽어본 책이 많아서, 읽어볼 책이 많아서 좋다.


고전, 프랑스 현대철학, 인문서 등으로 좋은 책이 있다면?


프랑스철학 입문서로는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책이 좋다. 데카르트 전공인데, 김수영 관련한 글도 많이 썼다. 『해체론 시대의 철학』은 체계적이지 않아서 매력적이다.


우리나라 서양철학에서 자기 글을 쓰는 사람은 김상봉, 김상환 정도다. 나머지는 앵무새다. 김상환도 최근 책보다는 교수가 되기 전까지의 책이 특히 반짝반짝 빛난다. 특히 김수영과 데리다에 관련한 책은 최강이다. 김상환의 글은 또한 아름답다. 이 두 사람이 무척 중요하고.


현대 프랑스철학의 원전이자 정수로 들어가려면, 들뢰즈가 지은 『프루스트와 기호들』을 통과해야 한다. 20세기의 탄생과 파국을 다룬 세 명을 꼽자면, 프루스트, 조이스, 카프카가 있다. 나는 카프카 전집을 권하고 싶다. 카프카가 이솝 우화처럼 읽히는 날, 우리는 시대를 견딜 수 있다고 본다.


딱 한 권만 고르라면 『프루스트와 기호들』을 꼽겠다. 20세기 인문학의 핵심을 가로지를 수 있다. 프랑스 철학의 중심은 들뢰즈다. 국내에선 열화당에서 나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는데, 완역이 안 됐다. 2/3 정도 번역됐는데, 프랑스에서도 잘 됐다는 소문이 났고, 이 책을 봐도 좋다.
 



철학을 이렇게 보자, 하는 게 있나?


철학은 포커스가 엄청 많다. 앵글 조정을 잘 하는 게 철학자다. 조국 교수는 법, 장하준 교수는 경제로만 이야기한다. 원래 철학은 종합이고, 철학자는 포커스를 잘 맞춰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세상을 하나로만 보는데, 법이나 경제로만 모든 것의 초점을 맞출 순 없다.


철학이 언제 필요하냐? 한 치 앞도 못 나가고 길을 잃었을 때, 제자리를 맴돌 때다. 뭔가를 해결하려면 초점과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 셔터를 누를 수 있다. 김수영은 그랬다. 나의 시가 끝나는 순간은 행동의 계시를 완료하는 순간이다. 이건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레임을 못 잡고 있다는 거다.


철학은 프레임의 자유다. 조국과 장하준이 때론 필요하고 맞지만, 때론 위험하다. 실천을 유발하는, 포커스가 맞는 그림을 던져줘야 한다. 철학은 그런 것이다. 매순간, 한걸음씩 내딛을 수 있는 놀라운 감수성.


독자들과 나눈 대화


직장생활을 하면서 철학을 가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철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에 대해.


직업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철학으로 빠질 수 있다. 철학은 한걸음 내딛게 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를 얘기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면 그게 뭔가. 진짜 알고 보이는 사람은 걸어간다. 철학을 종교로 활용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 인문학의 적은 종교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절이나 교회로 간다. 자본은 원래 적이었다. 진짜 적은 종교다. 한 사람이 죽어갈 때 종교적 프레임은 필요하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때릴 때 기도가 뭐가 중요하나.


철학자를 맹신하면 안 된다. 왜 혁명을 할 수 없는지 아나? 아직 소련식의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인문학은 문제를 직면하고 한걸음씩 거닐도록 한다. 인문학은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 중요하다. 옳은 길이 중요한 게 아니다. 등이 가려운 사람에겐 등을 긁어줘야 한다. 철학‘관’을 가진 사람은 위험하다. 그건 종교다. ‘관’이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작년에 삼성이 『논어』를 읽는다고 하면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이건희, 그렇게 나쁜 사람이 없다. 이건희에게 욕 못하는 사람은 상태가 안 좋은 것이다. 나쁜 놈은 나쁜 놈이다. 돈이나 권력이 잇다고 나쁜 놈이 좋은 놈이 되진 않는다.


학교에서 철학세미나를 하려고 한다. 어디서 시작하면 좋은가?


친구들이 대화를 하는 건 이유가 있다. 각자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세미나가 스터디처럼 합의를 보자는 모임이라면 때려 쳐라. 남들이 하니까 하자는 것이면 왜 하나? 김수영을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아나? 그는 인문정신의 정수이자 핵심이다.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 솔직함으로 세계를 본다. 반팔 메리야스를 입고 아우라가 나오는 남자는 김수영밖에 없다. (웃음) 나도 해봤는데, 안 되더라.


(이권우 보충 : 인문학이 유행이 되거나 당장의 필요 때문에 하지는 말라는 얘기다. 서로 토론하면서 다른 의견도 받아들이고 모임을 만들어 봐라.)


정직하게 성실하게 일해도 뜻대로 되지 않고, 패배감에 휩싸인 직장 동료가 있다. 어떤 이야길 해주고 싶나?


축하한다고. 사람이 힘든 건, 옳은 걸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옳은 걸 끌고 가기 때문이다. 김수영의 「거미」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든 건, 기다리고 옳은 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버리면 돌멩이가 된다. 기다림이 있어서, 옳은 게 있어서 힘들고, 옳은 게 있어서 행복해질 거다. 그 친구를 어린애처럼 보면 안 된다. 살아있는 거다. 우리는 죽어가는 지도 모른다. 바라는 것도, 옳다는 것도 없어서 힘들어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모든 글은 기대하는 것, 옳은 것에 대한 글이다. (장 자크)루소는 옳은 것을 끝까지 갖고 갔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강렬하다. 그건 자신의 경험에서 옳은 것에 대한 기다림에서 나온 책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옳은 것을 하나씩 지우고 사는 거다. 옳은 것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연애가 안 될 때, 글을 쓴다. 연애가 잘 되면 편지를 안 쓴다. 생각해보라. 언제 글을 쓰나. 안 되니까.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사회계약론』을 쓴 로크나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비겁하다. 나는 허점이 많아서 김수영을 좋아한다. 김수영은 일찍 죽은 게 복일지도 모른다. 기다리고, 서러웠던 것도 많았던 사람이니까.


옳은 것, 기다리는 것, 서러운 것, 그런 게 없으면 어떻게 글을 쓰나. 울분도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쓰나. 인문학은 절규다. 김수영이나 카프카가 무슨 스토리텔링인가. 글을 제대로 쓰고 싶으면 옳은 걸 갖고 있어야 한다. 인간은 기다리고, 옳은 걸 끌고 가는 거구나. 좋은 사람들은 다 힘드네.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
 



철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듣고 싶다.


내가 옳은 걸 가지고 있느냐의 바로미터는 힘들고 서러운 게 있느냐, 이다. 진리는 여러분을 들들 볶을 거다. 힘들고 서러우면, 옳은 게 있어서 그렇다. 돌아가서 눈 감으면 ‘오늘 하루 잘 살았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선거는... 참여하지 마라. 나는 사람이 대표성이나 정치적인 권리를 양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표자를 뽑는 순간, 자신의 권리를 다 넘겨주고 노예가 되는 거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권리를 남에게 넘겨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거라는 ‘쇼’에 불만족이 크다. 대의민주주의는 투표율을 떨어지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자유로운 공동체는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에서 나온다. 가령, 교육감 선거라고 하면 아이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당당해지겠나. 투표장에 가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같이 살아가면 투표해야 한다. 아이들 교육 문제에 왜 아이들이 참여 못하게 하나. 왜 학부모가 교육감을 투표하나. 약속의 주체와 약속의 객체가 같은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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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커피! | My Own Coffeestory 2011-09-2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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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5억잔.
전 세계가 마시는 커피 잔수다. 
나도 늘 일정부분 기여를 해 주시는데, 

오늘 마신 커피.
경주에서 맡았던 커피 향. 

아마도 오늘 하루,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커피!

어떤 초절정 고수나 커피 끝판왕이 내린 커피보다,
가장 내 마음을 따듯하고, 향기롭게 감싸주던 가을날의 커피가 있었던 하루.

사는 게 참 행복하다조중의 선생님댁을 찾았고,
손님 왔다며 옆집 사모님이 정성스레 내려준 에티오피아 커피 한 잔이 행복했다.

직접 볶고 내린 커피 한 잔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마음 한 잔이,
내겐 가을 한 잔처럼 다가왔다.

아, 이게 가을 한 잔의 마음이구나. :)
커피 한 잔이 주는 위로와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커피 한 잔이 참 행복하다!

시골의 햇살 한 스푼까지 더해져서 따닷해지는 마음. 

그리고 역시, 가을 오후 햇살 좋은 날의 Cafe Id.
포항시청 옆에 아이 없는 부부가 운영한다는 조 선생님의 단골집.

볼리비아 커피를 고른 것은,
순전히 체 게바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음달 9일이면, 44주기를 맞이하는 체 형님.
볼리비아라고 적힌 메뉴판을 보는 순간, 
볼리비아라고 쓰여 있었지만, 체 게바라라고 속으로 읽었다. 

묵직한 신맛의 혁명적 향기가 스멀스멀 내 마음을 감싸던 시간.
 
여자 사장님은,
리필이라는 부탁에 서슴 없이 에티오피아를 내려주셨다. 
시골인심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나는 그것을 마음으로 읽었다. 
에티오피아의 자연과 커피생산자의 노고와 Cafe Id의 마음이 버무러진 커피 한 잔의 고마움.

커피는 그렇다.
이성의 각성만큼이나 감성의 감동을 돕는다.
마음이 흘러내린 커피는 어떻게서든 티가 나고 향기롭다.

참, 고마운 일이요, 고마운 하루다.
이 거칠고 엄한 세상도 이렇게 향기로운 친절로 나를 달래고 감쌀 때가 있다.
변덕쟁이 세상 같으니! 가을의 햇살이 아름다운 이유.

나 같은 회의론자에게, 세상은 어떤 치부에도 얼굴색마저 바뀌지 않는 철면피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이 땅에 혁명은 없을 것이다. 야만도 쉬이 진압되지 않을 것이다. 
자본과 권력은 야합과 난교를 거듭하며 무간지옥의 질긴 생명력을 연장해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붙잡을 수 없이 스치는 찰나의 행복과 향기로운 친절과 고마움에, 
어설픈 커피쟁이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커피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조중의 선생님이 쓰고 계신 동학의 혁명적 순간을 다룬 장편소설이 잘 됐으면 좋겠다.
옆집 사모님이 하루 두 테이블 예약손님을 받아 마음 담은 요리를 선보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Cafe Id의 향기로운 커피가 좀 더 포항시내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결혼을 하고 싶은 아는 사람도 좋은 사람을 만나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오늘,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커피가 준 내 마음의 가을이다. 

동양학자, 조용헌 선생은 이 험한 세상, 내공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 네 가지를 말씀하셨다.
당신도 함께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우리, 이 세상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것일테니 말이다. 

혼자 자연 속에 머무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며,  
좋은 소리나 음악을 들어야 하는 한편, 
생사의 갈림길을 돌파해본 사람들과 만나 차와 식사를 함께 하라. 

오늘 나는, 이 네가지를 한 것 같다.
조금은 더 세상을 버티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이다. :) 
 
오늘의 노래 선물인데, 노래는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 
뮤직비디오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닭살 돋는 행각을 꼭 보시라.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참고로, 남자는 나 아님! 아니, 제목이 장가갈 수 있을까? 내 주제가 아니냐고? 에이, 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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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길, 평화의 소원 | 시네마카페 2011-09-2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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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오세암

성백엽
한국 | 200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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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이전, 내겐 <오세암>이 있었다. 
대중적으로 그닥 호응을 얻지 못한 작품이었지만, 당시의 시대상에 비춰, 이 애니는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카우보이 전쟁광의 온당치 못한 침략전쟁이 일단락됐던 시기였다. 인류사가 지속되는 한, 전쟁은 ‘끝’이란 단어를 쉬이 허용하지 않을 터이지만, 당면했던 전쟁의 포성은 멎었다(고 여겨졌다).


21세기에도 야만이 계속되고 있음. 그것을 증명했던 전쟁이었다. 명분이야 그럴듯해도, 결국엔 이권을 위한 다툼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이권과 폭력이다.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 존재인지 확인하는 과정은 길지 않았다. ‘꽃보다 아름답고 픈’ 바람도 욕심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했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던 부르짖음도 공허한 메아리이자 거짓이었음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꽃이 사람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자위할 수는 있어도. 


문명의 발전이 곧 인류의 진보를 보장하거나 확언하지는 않는다. 문명이랍시고 시작돼 늘 그래왔듯, 세상은 가혹할 뿐이다. 인간은 그런 세상을 조장하거나 혹은 세상에 공조해 왔다. TV브라운관을 통해 나타나는 전쟁이후의 혼란상을 보자니, 상반된 감정들이 파편처럼 흩날렸다. 더 이상의 피를 보지 않고 끝난데 대한 안도감. 그리고 오만한 카우보이 매부리코를 꺾지 못한데 대한 안타까움 혹은 아쉬움.


당시 나는 전쟁을, 파병을 반대한다고 떠들어 댔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목소리를 냈지만, 현실은 바람과 다른 방향이었다. (세상을 바꾸지 못한) 자잘한 메아리들이 희망의 지푸라기를 부여잡게 해 줬지만, ‘힘’과 ‘다수’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던 현실은 존재의 미욱함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나마 전쟁의 포화가 멎었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내 마음의 야비함. 평화를 부르짖었지만 결국 평온함을 갈망했을 뿐인 이기심.


나는 궁금했다. 정말 마음을 다해 부르면 평화가 올까. 알다시피,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그 천인공노할 무력에 흠집조차 낼 수 없는 나의 무력함. 팔다리가 잘려나간 이라크 아이들의 상처입은 눈망울을 향해 눈물밖에는 짜낼 게 없는 허탈함. 분노와 슬픔은 관념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구호와 시위 속에 던져졌지만, 그것은 평화와는 무관했다.


그리고 그 피흘림이 채 마르기 전에 우린 ‘핵’이란 위험에 직면했다. 어디 하나 마음 편히 둘 곳 없이 불안을 품고 살아가야 할 현실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과 역시나 하는 마음의 교차로는 위태로운 사람살이의 풍경을 가감없이 보여줄 따름이다.


그렇듯 마음의 위무가 필요한 시기. 위태롭게 출렁이는 현실의 강 위에서 무엇이 평정심을 안겨다 줄 수 있을까. 슬픔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그런 힘을 가진, 차가운 금속성의 첨단 무기들이 박힌 시신경에 따스함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그런 상상의 세계가 그리워지는 나날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지만...


그런 시절을 위로하듯, 그땐 고 정채봉 동화작가의 따스한 감성을 담은 《오세암》이 스크린에 부활했다. 작은 위안이나마 얻을까하고 담채화 같은 풍경을 눈에 넣었다.


영화 <오세암>은 남매의 엄마찾기 여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얼핏 ‘엄마 찾아 삼만리’를 연상시킨다. 맞다. 엄마를 찾아 길 떠나는 길손이와 감이의 여정은, 어쩌면 그보다 더한 ‘슬픔’을 동반한다. ‘세상에 없는’ 엄마를 찾아야하니까. 문득, 어른들의 전쟁 때문에 엄마아빠를 잃은 이라크의 아이들이 중첩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세암>의 동심은 ‘엄마’라는 거부할 수 없는 소재로 그리움을 덧칠한다. 다른 이름도 아닌, 엄마니까. 다섯살배기 개구쟁이 길손이와 눈 먼 누나 감이, 세상에 둘밖에 남지 않은 오누이. 그들의 여정은 이미 슬픔과 신파를 동반하고 있다. 두 사람의 상황을 보자. “하늘처럼 생긴 물이 꼭 보리밭처럼 움직인다”며 바다의 모습을 길손이가 묘사하면, 누나는 귀를 통해 이를 형상화하면서 세상을 마주대한다. 아름다워서 슬프고, 슬퍼서 아름다운. 이런 형용모순의 순간. 


그러나 뭣보다 감이는 엄마를 보는 것이 소원인 길손이에게 차마 불길에 엄마를 잃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못한다. 세상에 없는 엄마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게 떠돌던 오누이는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설정스님을 따라 절간에서 겨울을 나기로 한다. 개구쟁이 길손이는 절간을 자신의 놀이터로 만들고 악동짓을 해댄다. 그것이 결코 밉지 않다. 그 천진난만한 동심에 깃든 애틋함이 충분히 보이기 때문이다.  


길손은 그것이 궁금하다. “자신보다 나쁜 아이들에게도 있는” 엄마가 자기에겐 없다는 것. 마음의 눈을 뜨면 무엇이든 볼 수 있다는 스님의 말에 길손이 혹하는 건 당연하다. 설정스님을 따라 길손이 암자로 들어가는 건, 눈 먼 감이가 엄마를 보고도 놓쳐버릴까 걱정이 돼서다.


문제는 거기서 또 발생한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터로 내려간 설정스님은 거친 눈보라를 만나고, 발을 헛디뎌 의식을 잃는다. 비극이 깃든다. 홀로 암자에 남은 길손. 스님을 기다리다 지쳐 관세음보살과 대화를 시작하고,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엄마를 애타게 찾던 아이는 마음속에서 엄마를 만난다. 다섯 살 아이가 부처가 된 암자, 그래서 ‘오세암’은 탄생한다. 


<오세암>은 이렇듯 길손이 부처가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았다. 굴곡도 별로 없고 클라이맥스의 극적인 구성도 없다. 다만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감성을 자극하고 동심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의 한 자락을 건드릴 뿐이다.

느린 구성과 듬성듬성 드러나는 어색한 신들은 관객의 감정폭을 극대화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할 것을 권유하지만 어른도 아이도, 불교적 해탈이나 기적에 대해 쉽게 동화하기 어렵다. 길손의 바람이 이뤄졌다는 기쁨보다, 마무리가 느닷없이 빠르게 치달음으로써 관객들에게 감정의 파고를 조정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라는 <섬집아기>의 선율이 가슴속에 몽클하게 접근하고 한 폭의 수묵 담채화같은 스크린 속 빛깔이 미덕이 될 순 있지만, 이것이 완성도를 보장해 주진 않는다. 한국형 애니메이션을 표방했지만, 일본과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길들여진’ 관객의 눈길을 돌리기엔 힘이 부친다. 


어른이나 아이, 모두에게 일정 간격의 틈을 둔 <오세암>은, 다만 꽃(?)같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동심을 접하고 싶을 때, 미덕이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런데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는 현실에서 그렇게 잠시나마 발을 빼고 싶어하는가. 인간은 이미 주변부로 내몰렸음은 부인할 수 없다. 애국심으로 포장된 패권주의가 피를 튀기고 사람을 살육한다. 국가의 이기심은 현대판 흑사병과 같은 사스(SARS)가 창궐하도록 방치한다. 되레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국가의 시스템이자 체제다. 실체도 없는 국익논쟁은 또 어떤가. 거기에 개인은 없다. 인간은 없다.  


서로를 불신하고 피하게끔 만드는 세상의 이기는 점점 파괴력을 키운다. 자본은 교묘하고 이권은 폭력을 수반한다. 그것들은 정감 있고 따스한 세상에 대한 기대는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게끔 유도한다. 무력함을 심어주는 가장 극악한 방법. 주변에서 힘을 북돋아주기보다 이를 바득바득 갈아서 타인을 짓밟고 가도록 만드는 것들이 더 많은 현실. 영화는 동심은 과연 탈출구가 될까. 정말, 마음을 다해 원하면 세상의 평화가 올까.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 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고 정채봉 작가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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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부산 싸나이의 초상 | 시네마카페 2011-09-1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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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부산

박지원
한국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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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고. 영화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내용임!, 굳이 말하자면 인물리뷰가 되겠다~)



1. 나는 한때, 이'동원'이었다. 
누구도 그렇게 날 부르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지칭했다. 야구를 할 때, 마운드에 섰을 때, 나는 본디 이름이 아닌, 이동원이었다.

맞다. 최동원 때문이었다. 금테 안경을 끼진 않았지만, 소년 이동원은, 최동원의 역동적인 투구폼을 따라 온 몸을 비틀면서, 힘껏 야구공을 뿌렸다. 최동원의 투구폼을 아는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나는 투구폼뿐만 아니라 표정도 따라했다. 앙 다문 입술로 눈 앞의 타자를 제압하겠다는 번뜩이는 눈빛.

비록, 나의 공은 대부분 그곳이 아닌 저 어딘가, 를 향했지만. 땡깡을 부려 마운드에 오른 포볼 공장장이었지만. 나는 그때만큼은 최동원이고 싶었다. 그렇게 강속구를 뿌려댔으면 하는 바람. 아리랑볼 같은 마구로 타자를 꼼짝 없이 묶고 싶었다.

야구소년에겐 다른 뭣이 필요하랴.  
최동원.  
동네에서 야구놀이 한답시고 꼼지락대던 야구소년에게 그 이름은 '야구 그 자체'였다. 그땐, 야구라고 쓰고, 최동원이라고 읽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1984년은 그런 해였다. 초딩 낮은 학년부터 야구 스크랩을 하던 내게 진짜 야구의 알싸한 맛을 알게 해 준,  진짜 부산 싸나이의 태도를 알려준.

불 같은 강속구도, 뽕삘 나는 아리랑볼도 없는 내가 야구를 하고 싶었던 건,
온전히 최동원 때문이었다. 그때 그 시절, 최동원은 야구의 다른 이름이었다.

2. 신은 부산에 최고의 팬과 최악의 팀을 주셨다. 
노떼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팬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 문구. 최고의 팬?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는데, 사직 야구장에 가서 노떼 경기에서 자체발광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면 단박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최악의 팀이라는 지칭은 노떼 프런트 때문이다. 동원이 형의 이른 죽음에 노떼 역시 책임이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올해로 프로야구 30년. 노떼는 쌈썽 라욘즈(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연고지나 팀이 바뀌지 않은 유이한 구단이다. 여지껏 꼴랑 2번 우승한 팀 치고는 팬들의 열광이나 응원은 다소 의아한 측면이 분명 있다.  

첫 우승은 84년이었다. 열혈 그 이상의 폭풍팬들이 몸과 마음을 기댄 곳이 노떼다. 나도 노떼팬이지만, 그 생리는 참 묘하다. 애증 그 이상이다. 84년 우승으로 노떼의 건국 신화가 비로소 세워졌는데, 그건 동원이 형의 몫이 가장 컸다. 쌈썽의 져주기 추태로 노떼와 쌈썽이 한해 우승팀을 가리는 코리안시리즈에서 맞붙었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코리안시리즈를 앞두고 노떼 선수단이 결의를 다지는 회의를 했다. 당시 강병철 영감(감독)은 선수들에게 7차전까지 갈 생각하라는 말과 함께, 동원이 형에게 1, 3, 5, 7차전을 준비하라고 했다. 한 마디로, 그건 "너 죽어라"는 말이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혹사 명령이다.
 
그해, 정규시즌의 절반 가량을 나온 철완이었다지만, 동원이 형이라고 뜨악하지 않았겠나. 되물었다. "감독님, 너무 무리 아닙니꺼?"
(동원이 형의 1984년. 총100경기 중 51경기 출장, 284.2이닝 투구. 27승13패6세이브)

잠시 생각하던 강 영감의 답변이 또한 가관이었다.  
"동원아,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이번에도 니가 해줘야겠다! 독이 들었지만 마셔줘야겠다)"

뭐라고 답했느냐고? 동원이 형의 반응은 짧고 굵었다.
"네, 알았심더. 한번 해보입시더." 독이 든 성배를 그는 기꺼이 마셨다.

나는 그 말을 했을 동원이 형의 앙다문 입술과 표정이 떠올랐다.
'완전연소'가 아니라면 차라리 사라지고야 말겠다는 승부사의 단호한 표정.

알다시피, 동원이 형은 1, 3, 5, 7을 넘어 1, 3, 5, 6, 7차전을 나왔다.
1패가 있었지만, 4승을 거뒀고, 노떼의 첫 우승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미친 짓이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스포츠춘추의 박동희 기자가 물었다. 분명히 후유증이 왔을 텐데?  

물론 이상이 찾아왔고, 무리는 대가가 있게 마련이라는 답변을 동원이 형은 내놓는 동시에,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나는 뻑 갔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난 1차전부터 7차전까지 던질 거다.
왜냐? 그게 최동원이니까."


이게 바로 동원이 형의 실체다. 
그런 동원이 형이 최고의 팬을 낳았다.
노떼 팬은 동원이 형에게 일정부분 빚지고 있다.
 
노떼 팬들, 8888577 그 저주의 숫자를 뚫고, 지금도 미친 듯이 노떼를 열광한다.
왜냐? 그게 노떼 팬들이니까.

3. 1984년 최동원의 호투가 없었다면. 당신은 야구를 사랑할 수 있었겠는가.
박동희 기자는 그렇게 물었다.

나는 답할 수 있다. 아니, 최동원 때문에 야구가 가슴에 팍 들어왔다.
세살배기 야구가 국민스포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최동원이라는 불멸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동원이 형은 피하지 않는 남자였다.
지승호씨의 표현이었던가. 단 한 번도 치사하지 않았던 남자, 라고 했다.

그도 홈런이나 안타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았고 되레,
다음 타석에서 똑같은 구질의 공을 던지며 윽박을 질렀다. 칠 테면 쳐봐라.

동원이 형을 묘사할 때, 자존심이 강했다는 말을 빼놓질 않는다.
그 말도 맞지만, 나는 그것을 자존감이라고 봤다.
모르긴 몰라도, 자아존중감으로 충만한 야구인, 그리고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마지막 로망이 있었다.


 
4.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감독!
나는 그것을 강력하게 바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노빠(노떼 빠돌이)였다.
동원이 형 또한 그것을 오매불망 바라고 있었다.  
 
선수협의회 결성 등으로 그를 쫓아낸 노떼.
그런데도 그는 고향팀의 감독을 꼭 한 번 하고 싶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팬들도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원하고 있었다.

그에게 부산은 어떤 곳인가, 물었다.
"차를 몰고 부산 요금소에 들어서면 기분이 참 묘하다. 따뜻한 촉감의 무언가가 몸을 감싸는 기분이 느껴진다. 그러면 속으로 '이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고향집에 찾아가 어머니를 뵙고 나를 기억하는 고향 팬들과 만나면 늘 뿌듯하고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고향을 위해, 야구를 위해, 노떼를 위해,
동원이 형은 그것을 하고 싶었고, 그것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결국 노떼 구단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뒷끝 작렬이었던 것일까. 동원이 형이 그나마 코칭 스태프로 머물렀던 곳은 한화 이글스였다. 롯데 자이언츠가 아니라!

제기랄, 지랄한다. 노떼. 최악의 팀, 개버릇 남주지 않는구나.



5. 대한민국은 죽어서야 대접한답시고 깝친다.
그래, 어딘들 안 그렇겠느냐마는. 노떼의 호들갑은 넘사스러운 데가 있다.

노떼 자얀츠 구단은, 불멸의 야구인이 숨을 거둔 직후에도 대체로 묵묵부답... 
팬들의 원성이 끓어오르고, 동원이 형과 노떼 구단의 불편한 관계가 널리 알려지자, 슬슬 움직이는 듯한 액션을 취했다.

그 높디높으신 신 회장님의 재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겠지.
바지사장 따위가 뭘 결정하겠나.

동원이 형의 등번호 11번을 이제야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고,
9월30일을 최동원의 날로 정해 추모행사를 준비한단다. 
살았을 적, 제대로 영웅을 대접하지 않은 것이 찔렸는지, 팬들의 성화에 밀렸는지,
동원이 형을 명예감독으로 추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단다.

늘 죽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고 뭔가한다고 깝치는 버릇. 씨발.
살았을 적에 노떼의 진짜 레전드, 한국야구의 레전드에 대한 예우나 제대로 하지. 

노떼는 동원이 형이 암 투병할 때, 제대로 문병이나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5. 노떼와 쌈썽은 둘 다 쪼잔하다.  
양준혁에게 성대한 은퇴식 치뤄줬다고 '역시 삼성~'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던데,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를 알면, 절대 그런 말할 수 없다. 
쌈썽이 그렇게 하는 건, 분명 바람직하고 잘한 일이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선수들의 진짜 권익이다.
노떼와 쌈썽이 최근 돌아가신 두 레전드(최동원, 장효조)에게 행했던 작태는, 두 재벌의 실체와 다르지 않다. 두 레전드가 노떼와 쌈썽에서 선수생활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 아이러니한 면도 있다.

두 구단은 노조를 용납하지 않으며, 직원들의 권익 따위, 그들의 (육체, 감정)노동 따위로 깝치지 말고 백기 들고 투항하라는 식이었다.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를 트레이드한 건 팬들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처사였다.

노떼는,
선수들 권익을 위해 선수협의회 결성에 앞장 선 최동원을 삼성으로 트레이드했으며, 쌈썽은, 
역시 선수협 결성에 나서고 연봉문제로 늘 부딪히는 장효조를 롯데로 보냈다.   

고향팀을 떠나 몸에 맞지 않는 유니폼을 입자니, 열정이 자연 식어갔을 거다.
진짜 문제는 이들로부터 야구를 앗아갔다는 거다. 병이 안 생기고 배겨?

두 쪼잔한 재벌들이 그들에게 암을 발병할 바이러스를 투하한 셈이다.  
이 연놈들은 나중에도 비슷한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들에게 괘씸죄를 부여한다.
나는 선수협 문제로 간판타자 마해영을 트레이드한 노떼 때문에,
노떼를, 마침내 야구까지 한때 버렸던 적도 있다. 

이 개새끼들, 야구판에서도 암적인 존재들이고,
사회에도 그렇다. 쌈썽이나 노떼는 같은 피가 흐르는 족속들이다.

6. 부산 남자가 가고, 부산 남자가 온다!
부산하면 최동원이었고, 최동원 하면 부산이었다. 노떼하면 최동원이었고, 최동원하면 노떼였다. 그런 부산 남자가 갔다. 하늘에선 공을 만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슬픔은 고스란히 남은 자들의 것이다.  
지난 14일 저녁 세브란스 병원을 뺑과 함께 찾았었다.
동원이 형이 환하게 웃는 영정사진 앞에서 눈물이 울컥 나오려고 했다. 

나도 한때 저런 부산 남자가 되고 싶었다. 
홈런 따위 맞아도 괜찮아. 난 너와 정면 승부를 하겠어. 어디 칠 수 있으면 쳐봐라. 

그날, 뺑과 나눈 얘기였지만,
동원이 형은 한국 야구사상 '최고의 투수'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강렬하고 최고의 기억을 안겨준 투수는 없다. 
선동렬도 박찬호도 하지 못한, 류현진과 김광현도 하지 못할, 전무후무한 투수.

그는 한편으로 스토리텔러였다. 
이보다 더 짜릿할 수 없는 환희의 순간을 만들어낸 동시에,
역경과 비난, 좌절이 범벅된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맞다. 최동원이니까! 
그는 다시 태어나도 1차전에서 7차전까지 던질 테고, 
트레이드를 거부할 것이며, 먼길을 돌고 돌아 노떼 감독이 되는 순간을 기다릴 것이다. 단 하나 바뀐다면, 그가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된다는 것. 

동원이 형이 진짜 '부산 싸나이'였던 것은, 실력 때문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올림픽이다 뭐다 흥청망청 거품이 부풀던 시절,
당대 최정상급 투수는, 야구만 잘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을 불태우지 않았다.
당연 야구만 잘해도 충분했을 테지만, 스스로의 필요성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주변을 볼 수 있었던 눈을 가졌던 것이다.

1988년 해태 타이거스의 투수 김대현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선수 보호는 물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동료들이 보였다. 아, 이래선 안되겠구나. 팬들에게 좀 더 좋은 야구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좀 더 야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러면 안되겠구나.

이른바 있는 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만 신경을 쓰지만, 이 부산 싸나이는 달랐다.
한 달에 20만원을 받는 2군 선수들의 애환이 시렸다.
동원이 형은 야구선수협의회를 추진했고 초대 회장이 됐다.   

그것이 그를 마운드에서 내려가게 한 결정적 이유가 됐지만, 
그는 부산 싸나이의 기질을 결코 버릴 수 없었다. 야구계를 은퇴하고, 
1991년 초대 광역선거에서 부산 서구 지역구에 출마했다. 
고딩이었던 나는 그의 선거 사진을 기억한다. 야구판에서만 보아오던 얼굴이 선거벽보에 붙은 것을 보니, 희한했다.



어쨌든 그 판에서도 그는 남달랐다.
대통령 병에 걸린 김영삼의 중고등학교 후배였지만, 3당야합으로 이뤄진, 부도덕한 민자당 후보로 나서지 않았다. 3당야합에 반대하고 노무현이 주도한 꼬마민주당의 후보였다. 민자당 후보로만 나서면 당선 확정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진짜 부산 싸나이였다.

"선수협 등을 거치면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그래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꼬마)민주당 후보로 당선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에 민자당에서도 제안이 있었지만 민주당을 택했어요. 그것도 일종의 반골기질 이었는지 모르죠. 하지만 그래야 진정성을 이해 받을 것 같았어요."

당시 노떼 자얀츠 구단 주식의 일정 부분을 시민 공모주로 바꿔 시민구단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동원이 형은 그런 싸나이였다.

선거에서 떨어진 뒤, TV예능프로에 패널로 출연하거나 의류사업 등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야구판에서 멀어진 야인 생활을 했던 영웅의 시련.

지승호씨의 표현은 딱일 것이다. 단 한 번도 치사하지 않았던 사내.
불이익이 충분히 예상됐던 일 앞에서도 그는 무릎을 꿇거나 피하지 않았다.
아마 홈런을 맞고도 똑같은 공을 던져댈 정도의 배짱과 자존감을 갖춘 최동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부산 싸나이가 갔다. 노무현에 이이서 최동원도 갔다.
바보 같았으나 영웅이었던 부산 싸나이들.  
그라운드만 지배했던 것이 아닌, 누군가의 마음을 지배했던 영웅, 최동원.

누가 그들의 향기를 이어줄까 두리번 거렸더니,
대번에 레이더망에 걸리는 부산 남자(들)가 있다. 안문조.
안철수요, 문재인이요, 조국. 넓게는 박원순까지. 이른바, 부산(경남) 남자들.



물론, 그들은 각기 다르다.
프레시안은 최동원, 노무현을 '아들 삼고 싶은 남자'라면,
안철수, 문재인, 조국은 '사위 삼고 싶은 남자'라고 표현했다.

재밌는 표현 같은데,
글쎄 나는 마초향 나는 앞선 남자들에게 더 끌린다.
최동원의 강속구에 꽂힌 내 유년시절의 기억 때문이리라.

영화 <부산>의 리뷰가 아님에도,
부산을 끄집어낸 이유를 말미에서나 말하게 됐다.
영화 <부산>의 리뷰가 아니면서 치사하게 낚았다고 날 탓해도 어쩔 수 없다. ^^;;
그저, 부산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나는 부산 남자니까!

나는 이제 더 이상 이'동원'이라고 스스롤 지칭하지 않는다.
야구를 하기보다 보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한 나이가 됐고,
내 이름에 더 책임을 질 나이가 됐다.

그럼 같은 부산 남자인 너는 어디냐고?
에이, 부산 남자가 딱 저 두 부류만 있는 건 아니다. 
영웅을 추모하고 떠올리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남자를 지지하는 소시민도 있다. 

그러니까, 아들도, 사위도 아닌,
친구 삼고 싶은 남자, 애인 삼고 싶은 남자, 그게 바로 나다. 하하하.
(물론, 나는 까칠하고 편협해서 아무나 친구 삼고, 애인 삼지 않는다~ ^^;;)

부산 싸나이들이 가고, 부산 남자들이 온 시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만, 가을에 내 피를 끓게 해줄 것은 이것.
가을야구. 지독한 습관이며 운명인 노떼 자얀츠의 가을야구다.
동원이 형을 위해서라도 세 번째 우승(V3)을 해야 할 때다. 나의 30대를 빛내달라.
나는 부산갈매기다~ 끼룩.



안녕, 나의 우상, 나의 영웅, 나의 야구, 나의 부산, 동원이 형...
당신 덕분에 행복했던 시절이 있어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혼과 불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당신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내게 야구였고, 부산이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조만간 개봉하는 <투혼>과 조승우가 당신 역할로 나오는 <퍼펙트 게임>.
전자는 노떼 자얀츠와 부산이, 후자는 당신과 선동렬의 혈투(?)가 벌어지는 야구영화니만큼 당신을 다시 기억할 것 같아요. 보고 싶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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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 바람구두 이야기 2011-09-17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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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파파팡, 터질 뻔 했다. 후지와라 신야였다.
마흔줄 앞둔 노총각이 지하철에서 책을 보다가 우는 장면, 흔하진 않을 테니,
그렁그렁하다가 말았지만.

동티모르에서 인도방랑을 끼고 있을 땐,
쿡쿡 찌르면서도 뭔가 붕 떠있는 관념의 정념 같은 기분도 들었는데,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는 구체적 실존들이 스멀스멀 삼투하는 듯했다.
삶의 구체적인 질감들이 손에 잡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아마 나와 같은 소시민들의 사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들 때문이었을 거다.
후지와라 신야가 아닌 내가 그 소시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느낌.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서로의 슬픔에 공명하는 느낌.

일본 아마존 독자의 한 마디는, 딱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살아가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슬픈 일도 점점 많아진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리얼리티 넘치는 응원가를 들려준다."

책 뒤표지의 문구는, 김연수의 것과 조응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당신과 내가 사랑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면!"(김연수는 이리 말했더랬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 책을, 후지와라 신야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슬픔 또한 풍요로움'이라는 감성을 서로에게 조금씩 불어넣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랑.

다시 이 책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슬픔 덕분에 가슴이 편안해진다.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을 것 같아서.
제목 하나는 정말 예술이다. (원제는, 코스모스 그림자 뒤에는 늘 누군가 숨어있다)

그리고,
너라는 슬픔이 돌아봤을 때, 언제나 내가 있으면 좋겠다.
그토록 아름다운 순간을 다시 만나면 좋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순간이 멀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울러, 커피로 만난 우용이 형은, 참 좋은 인연인 것 같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커피를 통해 세상의 잇닿아 있음을 공명하는 사람이라니. :)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 만나는 게 피곤해지는데, 그 와중에도 즐거운 사람들이 나를 구원해준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 놓고 울기가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제 (최)동원이 형 문상을 갔다. 영정 앞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곤, 울컥했는데, 결국 삼키고야 말았다. 오늘, 그는 영영 떠나갔다. 누군가의 가슴에만 남은 채.
안녕, 나의 야구, 나의 영웅, 나의 에이스, (최)동원이 형.


(옥의 티.
다만, 번역자의 이런 말은, 왠지 너무 상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글을 읽다보면 격정의 시대를 지나, 삶의 원리를 터득해 관조의 단계에 들어선 작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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