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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나잇 스탠드’에서 ‘47년의 기다림’까지 | 시네마카페 2012-01-3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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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치코와 리타(디지털)

페르난도 트루에바
스페인, 영국 | 2012년 01월

영화     구매하기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난다.’

사랑의 ‘신화’를 완성하기 위한 전제다. <첨밀밀>이 그랬다. 처음으로 가슴 짠하게 알려준 명제. 만남과 헤어짐, 그 엇갈림과 반복. 한숨을 쉬었다 뱉었다, 내 마음은 그들의 발끝에만 매달렸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렇게 흔들리는 내 마음에 <첨밀밀>은 속살거렸다. “운명이라면 이 정돈 돼야지. 유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운명이잖아. 운명. 사랑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다.


나는 얼마 전, 또 하나의 운명을 접했다. 더 운명 같은 건, ‘쿠바’였다. 아직 발 딛지 못한 미지의 땅이지만, 언젠가 꼭 디뎌할 그곳. 혁명이 있었고, 커피가 있으며, 무엇보다 섹시함이 상존하는 곳.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면, 그곳이 쿠바라고. 그는 일체의 과장도 섞이지 않은 양, 단호하게 말했다. 오래 전부터 내겐 로망이었던 쿠바는, 이젠 지상의 천국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치코와 리타>는 쿠바에서 시작한다. 1948년의 쿠바 아바나. 피아니스트 치코. 보컬리스트 리타. 그들이 만난 밤, 음악이 꿀처럼 흐르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끌림’이었으리라. 끌림은 곧, 나에게 맞는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 사랑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리듬은 음악과 함께였다. 아마도 그때, 운명은 그들에게 속삭였으리라. 치코에겐 리타의 목소리가, 리타에겐 치코의 연주가 그랬을 것이다. 리타의 ‘베사메무쵸’에 혹했던 치코는, 그녀를 위해 ‘리타(릴리)’를 작곡하고, 리타는 그런 치코에 반한다. 


그러나 그것. 운명이라는 속삭임. 늘 정교하고 오차가 없는 것, 아니다. 운명도 수명이 있다. 차가운 유혹으로 끝나버릴 운명이 있는 한편, 그리움을 평생을 품을 운명도 있다. 운명이라는 속삭임, 마음은 쉽게 속는다. 그만큼 강한 끌림이 있을까. 영원하고픈 숙제, 사랑. 사랑의 시작도 언제나 운명에서 비롯되니까. “당신을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느낌”이라며 리타에게 처음 건넸던 말, 오글거렸지만 진심 같았다. 그때 카바레(살롱) 분위기가 그랬다.


어쨌거나 치코와 리타의 (음악적) 조건(?)은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씨줄과 날줄의 조화. 음악이 매개로 작용하는 순간, 사랑은 더 큰 열정을 동반한다. 약간의 옥신각신이 있었지만, 그들은 처음 만난 그날, 서로를 탐닉한다.

 

 

애니메이션이라지만, 리타의 몸은 팽팽한 활시위마냥 관능적이다. 애니메이션에서 관능미를 느끼다니, 처음 한 경험이다. 치코가 앞뒤 재지 않고 빠질만하다는 생각. 두 사람, 몸을 섞는다. 선율과 리듬의 합치처럼 두 사람은 합한다. 맥락 없이 그들을 봤다면, ‘원 나잇 스탠드’라고 애써 무시할 것처럼.


원 나잇 스탠드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사랑은 시작됐다. 허나, 사랑이 순탄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는 법인가보다. <첨밀밀>에서 이미 확인한 바, <치코와 리타>도 엇갈림을 동반한다. 관능의 볼레로처럼 터질 것 같은 그들의 관계에도 질투와 오해가 틈입한다. 사랑의 가장 큰 적이 질투와 오해라고 했던가. 수시로, 그들은 시험에 든다. 세상의 모든 운명적인 사랑이 그러하듯. 


전반부, 나는 치코의 우유부단함이 싫었다. 그는 뭔가 망설이고 주저한다. 첫 밤부터 그랬다. 당신이 걷는 땅에 키스라고 하고 싶었던 남자의 태도치고는 뭔가 부족했다. 그러니, 리타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녀는 치코를 믿는다. 남자가 여자보다 대범하고 마음이 넓은 양, 우리는 착각한다. 살아보니 마냥 그렇진 않다. 질투와 오해가 여성만의 것이라는 인식이야말로 착각이다. 리타는 그런 여자다. 한 남자를 품기에 더 없이 넓은 여자다.

 

주변 환경 또한 그들의 사랑을 질투한다. 아바나, 그들의 사랑이 시작된 공간이 뉴욕으로 바뀐다. 그들의 사랑도 바뀔 것임을 예고한다. 헤어짐이 당연하면서도 나는 안타까웠다. 결말을 알면서도 발을 굴러야 하는 상황 같은 것이니까.


뉴욕은 아바나와 다르다. 체제가 다르고, 관계가 다르며, 사람이 다르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사랑. 모든 것을 얻어도,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리라. 스타가 된 리타가 그랬다. 자신을 찾아 뉴욕에 온 치코에게 더 이상 아바나의 순진한 여자가 아니라고 쏘아붙이지만, 사랑은 운명을 거역하지 않았다. 맨해튼의 키스. 질투와 오해는 키스 한 번으로도 충분히 가실 수 있는 것임을.

 


 

부러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거부하지 않는 것. 사랑을 사랑 그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 뉴욕, 그들의 사랑은 더욱 힘에 겹다. 사랑을 온전하게 그들만의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자본이 개입하니까. 그래서 그들의 사랑, 거듭 어긋났지만, 영원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과거에 있다”고 말하는 여자에게서 나는 운명의 향기.


나는 그래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리타가 마침내 자신을 돌고 돌아 찾아온 치코에게 건넨 이 말. “47년 동안 기다렸어요. 당신이 이 문을 두드려주기를.” 그녀의 목소리는 과거의 것이 아니었지만, 사랑의 향기는 여전했다.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었던 세월.

 

문을 열어주는 것은 결국 운명이다. 사랑이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야 만다는 <첨밀밀>의 향기는 쿠바에서도 여전했다. 한창훈은 《향연》에서 그랬다. “기다리면 올 것은 온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 기다림, 그것은 때론 사랑의 다른 말이다.


<치코와 리타>.

모든 것이 음악과 함께한다. 리타의 노래와 춤, 치코의 연주, 그들의 사랑과 인생, 몸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을 그들은 음악을 통해 채운다. 마음이 교감한다. 그들의 사랑과 음악에 당신의 몸과 마음이 들썩이지 않는다면, 병원이 필요하다. 마음이 앓고 있다는 증거니까.

 

 

 

오늘, 눈이 펄펄 내린다. 눈이 쌓인다. 그들의 사랑이 눈과 함께 아른거린다. 오늘의 노래는, 베사메무쵸. 아, 관능적이다. 이 음악, 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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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지성과 감수성으로 인문고전을 논하다 | 북카페 2012-01-3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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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2011 선정도서 24권 리뷰대회 참여

[도서]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 저
문학동네 | 201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리딩하면 오바이트한다. 리딩하면 리콜하고 싶다. 리딩하면 리스키하다. 쉬레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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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노동. 엄청나다. 모든 지성과 땀이 총력을 다해 이룬 결과리라. 

그것은 저자 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책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 당사자들, 특히나 눈에 보이지도 않고, 기록으로 남을 수도 없는 사람들의 노고(노동) 역시 담겨 있다. 책은 단순하게, 지성만을 담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러니, 한 권의 책을 '까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안의 노동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러나, 노동 자체의 신성함과 별개로 노동의 결과물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노동과 그 결과물은 별개의 것이다. 영화가 그렇듯 책도 마찬가지다. 

 

사실, 좋은 것만 말해도 부족할 판국이다. 세상에 얼마나 좋은 책이 많은가 말이다.

나쁜 책 혹은 쓰레기라고 불려도 시원찮을 책까지 시간과 공을 들여 말하는 건, 피곤한 일일 수 있겠다. 

 

이 책, 《리딩으로 리드하라》. 그래도 말해야겠다.

저자가 나름 책을 위해 쏟은 시간과 노력, 노동은 분명 존재하고 인정하겠지만,

그 결과로 나온 이 책, 설익다못해 썩었다.

주장을 펴기 위해 조사하고 알아봤다는데,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조악하고 비약 투성이다.

 

특히, 위험하다.

불온해서 위험하다면야, 이 불한당 같은 체제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인가 해서 반가워하겠지만, 

이 위험은, 이런 경우다.

고기가 썩었는데, 어떻게든 팔려고, 나쁜 것을 감추기 위해 소스 등으로 간을 듬뿍쳤다. 

마음의 복통을 일으키고, 삶을 혼선에 빠트릴 위험.

고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도축업자가 아니라, 어설프게 칼만 들 줄 아는 정육점 종업원이 칼놀림을 하는 경우라고나 할까.   

 

그래, 왜 이런 비유를 했는지 나도, 근거를 들어야겠다.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그토록 강조하고자 했던 인문고전. 

요즘 이른바 '대세'의 일환으로 자리잡은 장르인데, 백번 양보해서 강조하는 것,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 방법론이라는 것이 어처구니 없다. 더 나아가, 알맹이도 없다. 

 

이 책, 지겹도록 '천재'를 들먹인다. 강박관념처럼 천재에 집착한다. 

우리가 그토록 천재를 열망했던가, 착각할 정도로, 이 책은 '천재 나팔수' 노릇을 한다. 

평범한 아이가 어떻게 천재가 됐고, 천재가 세상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데, 그 천재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거의 오롯이 인문고전. 다른 이유,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자신이 힘들게 찾아낸 결정적인 무엇도 아니요, 무조건 인문고전을 많이 읽었단다. 그것이 다다.

 

책의 너스레는 한마디로 호들갑의 극치다. 한 구절을 보자.

 

"...1만 엔권 지폐의 주인공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국민들로부터 메이지 유신의 아버지,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 게이오 대학을 창립한 위대한 교육가로 칭송받고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열네 살이 되도록 전형적인 시골 촌놈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스물 다섯에 에도(동경)에 게이오 대학의 기원이 되는 학당을 열 정도로 진보한 지식인으로 변신했다. 약 10년 사이에 바보에서 천재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는데, 비결은 다름 아닌 지독한 인문고전 독서였다." (p.48)

 

하급무사의 아들. 전형적인 시골 촌놈의 삶. 이것들이 어떻게 '바보'로 단정지어질 수 있는지, 모른다. 저자만 알려나?

 

그리고 게이오 대학의 기원 학당을 연 진보한 지식인. 그것을 천재로 단순 설명한다. 그가 말한 천재가 당최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이렇듯 엉뚱한 논리와 결론으로 늘 치닫는다.

우리 교육의 문제를 들먹인다. 초중고 12년 교육을 받고도 지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되기는커녕 바보가 되어 사회에 나오는 문제.

배우면 배울수록 무능한 사람이 되고, 시키는 일만 하는 바보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둔 잘못을 지적하면서, 책이 내린 결론은 고작 이렇다. 

"학교는 다녀야 한다. 그것도 될 수 있으면 최고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

 

시스템을 거론하는가 했더니, 그 결론이라는 것이 최고의 학교를 다니라는 충고다.

돈과 권력이 있어야면 이른바 '명문'도 다닐 수 있는 현실을 모르는 건지, 한심한 충고다.

책은 아예 맛이 가기로 결정한 양, 한 방 더 날린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는 없다!"

 

빈민들을 위한 인문고전 독서교육 프로그램인 클레멘트 코스의 사례를 들면서 책은 아래와 같은 억지주장을 편다.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문맹을 천재로 만든다.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지능이 낮은 아이를 천재로 변화시킨다.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평범한 학생들을 아이비리그 졸업생들보다 뛰어난 인재로 만든다.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둔재를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다. 

 

나는 이 책이 말하는 '천재'라는 단어가 무엇을 가르키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둔재고 지능이 낮아서 그런가 본데, 책에 의하면, 나는 인문고전 독서가 부족한 탓일 게다.

 

그러면서, 책이 내놓은 확신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만일 철학고전 독서교육이 제대로 정착하면 우리나라는 유대 민족보다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함은 물론이고 천재들을 지속적으로 길러내게 될 것이라고."(p.84)

 

철학고전 독서교육이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정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것이 천재, 노벨상 수상자와 어떤 관련을 맺는지, 알 수가 없다. 책은 그저 우격다짐이다. 

 

아울러, "인간은 본래 천재로 태어난다는 것이 교육학의 정설"(p.92)라고 주장하는데,

교육학 전공한 분들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진짜 그런지, 나는 궁금하다.

 

이 얼치기 인문고전 동기부여 책은 천재 타령을 부자 타령으로 옮기며 자폭한다. 

 

돈, 지금 시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책은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인문고전 독서와 돈을 결부시킨다.

저자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자본주의니 부자니 투자니 하는 말을 싫어함을 전제로 하고 이 말을 꺼낸다.  

 

"세상에는 인문고전 독서에서 얻은 사고력과 통찰력을 '돈'과 관련된 쪽으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이 세계 경제학계와 금융계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을."(p.113) 

 

인문고전을 통해 사고력과 통찰력을 기르고 얻을 수 있겠다. 

그러나 돈과 관련된 쪽으로 그것을 활용하는 것, 다른 문제다. 그런 사람들이 경제학계와 금융계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 그게 인문고전의 사고력과 통찰력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인문고전이 그저 '클렌징 폼'이거나,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포장'일 수도 있다.

 

인문고전이 돈을 벌게 해 준다는 식의 주장은, 인문고전의 힘을 강조하거나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인문고전의 힘을 개무시하고 되레 좁게 만드는 것이다.

 

책은 이렇게도 비약한다.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이 인문고전 독서광이자 저자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문고전 독서로 다져진 사람들의 두뇌에서 나왔다. 이는 인문고전 독서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돌아가는 방향을 알 수 없고, 부를 쌓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p.114)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 지금 그 부작용이 '미친놈 널뛰기'하듯 불거져 나오는 상황이고,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면서 새로운 시작이 요구되는 시점인데, 책은 오히려 그런 움직임에서 역행한다.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의 본질조차 모르는 '무식쟁이'임을 스스로 토로한 셈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자세와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또 있다.

  

우리가 맞닥뜨렸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책은, IMF가 이런 시절부터 인문고전 독서광이었던 천재 경제학자의 머릿속에서 탄생했단다.

그래서, 그 경제학자 이상으로 인문고전 독서에 미친 경제학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IMF위기 때 우리나라가 그리 허망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거란다.

기똥차다. 이런 논리의 비약, 인문고전 독서가 알려준 혜안인가?

 

물론, 커밍아웃이 없는 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맹렬한 신도임을 고해성사한다.

신자유주의의 거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 대한 반쪽 평가('현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철인적 지도자')만 언급하고선, "신자유주의의 역사는 곧 인문고전 독서가들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책은, 욕 먹는 한이 있어도 외치겠다고 부득불 우긴다.

우리나라 경제학자들, 왜 케인스나 하이에크보다 더 위대해지거나 동등해지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서구 경제학자들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섬기는 데 만족한 듯한 모습을 보였느냐고.

서구 경제학보다 우월하거나 동등한 한국만의 경제학을 만들지 못하면 영원히 금융 종속인 상태로 살아갈 거라고.

 

"한국 경제학계의 을지문덕이나 강감찬 또는 이순신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 영웅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주제넘은 이야기들을 했다. 혹시라도 반감을 가진 독자들은 내 치우친 열정을 용서하기 바란다."(p.125)

 

그건 열정이 아니다. 과도한 비약이다.  

또라이도 불온하면 좋은데, 이건 불온이 아니라 체제순응적 깔때기 짓이다.  

 

나는 의심까지 한다. 재벌가에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은 설마 아니겠지? (실제로 저자는 강연에서 재벌그룹 일환에게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책은 이병철, 정주영을 제대로 섬긴다. 이병철이 '인재경영'이란다. 『논어』에서 비롯됐단다.

정주영은 '의지경영'으로 추켜세운다. 『채근담』과『대학』 등의 고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단다.

그리고 경영자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이병철, 정주영 이상의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것은 인문고전을 읽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이상한 주장은 곳곳에서 등장한다. '천재'만큼은 아니겠지만, 인문고전 쫌 읽었다는 양반이, "수신修身은 내팽개친 채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바뀌어야 한다는 식의 어려운 주장을 내세우는"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공부는 젬병이다. 그래놓고선 천재의 뇌구조를 들여다봐서 얻은 결론이, 고작 부자 되세요?  

 

그래, 책의 말마따나,

나는 '돈 있는 사람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부자는 갈수록 더 부자가 되고 빈자는 갈수록 더 빈자가 되는 우리나라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누군가'다.

떨리는 목소리로 감히 묻고 싶다고 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그래, 말해주마. "《리딩으로 리드하라》 읽고 있다. 토 나올 뻔 했다."

 

더 나쁜 건, 첩첩산중인건, 종교적 근본주의자 면모까지 덧붙인다는 거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고 천재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 중 불행한 삶을 산 이들은 『성경』을 부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p.103)

 

책은 그 예로, 감옥을 들락날락하고 여자를 사귀지 못하는 성격장애로 고생했다는 등의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를 든다. 더불어, 『성경』을 부정했기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시대의 천재들도 많다고 덧붙인다.

 

대체, 어떤 조사를 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가? 나는 책이 담은 멘탈을 심히 의심한다.

하긴, 이 책은 진짜 자신의 생각 따윈 없다.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주장을 자신의 주장인양 내세우고, 그것이 옳다는 것만 내세우고 싶은 거다.

인문고전을 읽는 것만으로 천재가 되고, 화폐를 긁어모으고, 리드할 수 있게 되는 사회?

조까라 마이싱. 인문감수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으면서 있는 척 위장하는 게 더 나쁘다.  

 

인문고전의 진짜 힘은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다.

뭣도 모르면서 찌껄이는 건 나도 매 한가지겠지만, 책의 주장은 한 없이 위험하다.

보아 하니, 꼴통 신자들 이미 양산해 놓고 있는 모양새다.

아마도 책이 말한 주장대로 따르자면,

이들이 이지성을 멘토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천재들이 될 터인데, 심히 관심 끊을란다.

리드 잘 해보시고, 나는 빼주시라.

 

마성의 김꽃두레(tvn 코미디 빅 리그 <아메리카노>의 안영미 캐릭터)가 말한다.

"이런, 리딩으로 초딩 되는, 허~접 같은 경우를 봤나~" (꼭, 꽃두레 톤으로!)

부릉부릉, 할리라예~

 

별 한 개도 아까우나, 백만 스물 두 번 양보하여, 인문고전 독서를 권장했다는 점에서, 에라~ 선심 썼다 

 

예스24 2011 올해의 책에 꼽힌 베스트셀러님을 이렇게 까고, 리뷰대회까지 참여하다니!

더구나, 세상에~ '주례사 리뷰'도 안 쓰면서 리뷰대회에 응모?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짓이 아니구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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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때문에 실종된 부모의 서사를 돌려다오! | 바람구두 이야기 2012-01-3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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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사십'(마흔)을 목전에 둔 동창들과 모임을 할라치면, 화제는 더 이상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 즉, 중년을 목전에 둔 우리들, '나'를 은폐엄폐하거나, 순정한 자신의 욕망은 골방으로 밀어넣는다. 아니, 실종됐다. 고작 말하는 욕망은, 따지고 들면 자신의 것이 아니다. 주류사회가 요구하는, 그래서 주입된 타자의 것이다. 

 

이제 그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류는, 집(아파트 시세)이나 직장(에서의 출세나 퇴직시점) 혹은 아이들에 대한 것이다. 좋은 아빠(의 조건 등)를 '드물게'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육, 아니 정확하게는 사교육 비중이 가장 높다. 영어유치원이 어떠니, 학원이 어떠니, 교육비가 어떠니, 등등이 물결을 치고 꼬리를 문다. 이것은 결국 집, 주식 등과도 불가피하게 연관을 맺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이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느냐, 대부분 그것도 아니다. 그저, 이러저러해서 돈이 얼마가 들더라, 이 정도다.

 

결혼도 않고, 자식도 없는 나로선, 그 대화에서 약간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온갖 걱정 앞에 내가 끼어든다. 사교육의 무쓸모, 선행학습의 폐단 등을 주창하는데, 그들은 늘 이렇게 종결한다. "니도 결혼하고, 애 낳아서 키워봐라."

 

철 없는 소리, 멋 모르는 소리 지껄이지 말라는 그들의 충고(?)다.

(이런 고마울 데가. 청순하게 욕 나와주신다. 샤방.)

 

그러나, 그들의 충고에 마냥 동의할 수 없다. 비록 나는 아이가 없어도, 그들의 아이들은 곧 나의 조카들이다. 나는 조카들이 이 무지한 아빠들의 손아귀에서 사육당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의 동창들이라지만, 그들은 깨놓고, 이미 사교육의 노예다.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으며 자신의 교육관을 갖고 있지 못하다. 생각하지 않는 죄. 

 

그들은 사교육이라고 일컫지만, 정확하게 그것은 사육이다. 학교로도 모자라, 세상이 아닌 학원이라는 사각의 프레임에 아이들을 가둔다. 그 아이들, 양계장에 갇혀 알만 낳는 난형성 닭과 무엇이 다른가. 거칠게 말해서, 자신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부모 맞나?

 

나는 그들 일부에게 이 책을 권한다.

 

너희들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보내는 학원, 그것이 과연 일류 아이를 만들까? 학원 끊어도 죽지 않아! 학원 다니지 않는다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좋아. 학원 다니지 않아도 성적이 내려가긴커녕 올라갈 수 있어.

 

그 명제, '거짓' 같다고? 아니 '참'으로 증명한 것이 이 책이다. 2010년 5월, 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진 위험한 실험. EBS 다큐프라임 < 공부의 왕도 >는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을까'를 놓고 4000시간에 걸쳐 실험을 했다.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지,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한, 21명이 참가한 담대한 실험이었다.  

실험은 학원부터 끊는 사교육 정리부터 시작했다. 학원에 길들여진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만들었다. 당연히 불안증 따랐다. 이땅은 남들 다 하는데 안하면 불안이 증폭되는 사회 아니던가. 학생뿐 아니라, 부모, 교사까지 사교육 불안증이 닥쳤다. 그렇다면 실험은?

결과는, 올레~ 아이들이 달라졌다! 교사도 달라지고, 부모도 달라졌다. 모두가 달라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달라졌다기보다 원위치를 찾았다. 학원을 안 가니, 어찌할 바 모르던 학생들이 스스로 움직였다. 공부할 이유를 찾았다. 자연 성적도 올랐다. 뭣보다 가장 중요한 결과가 나왔다. 아이들에게 미소가 퍼졌다.

이 실험, 사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공화국에 건네는 파열음이다. 책을 보면 학원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깊이 생각하면, 학원은 악(惡)이다. 아이가 스스로 서지 못하게 만드는 악. 그것은 결국 인생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그러니까 명백하다. 학원, 끊어도 산다.

 

아무리 그래도 학원 안 보내면, 뒤처지는 것 같다고? 책을 좀 더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책은, 그러니까 실험은 증명한다.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성적이 올랐다. 물론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개별 특성에 맞춰 자기주도학습을 하도록 만드는 것.

 

우리의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지쳐 있다. 세계 어느 나라 학생들보다 더 오래 교실에 붙잡혀 있는데도 학원까지 가야한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참으라고 하니, 대한민국은 점점 미쳐가고 늙어간다. 그러다보니 만날 필요한 것이 위로가 될 수밖에.

 

독학이 아니다. 자기주도학습이다. 삶은 스스로 감당해야 하고 자신이 꾸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부모들은 왜 그것을 잊고 사나? 시행착오도 삶을, 자기주도학습을 만드는 과정이다.

 

책은 자기주도학습의 목표도 뚜렷하게 제시한다. 그것은 단순히 성적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다.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이들의 생은 길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부모의 조급함이 아이를 미끄러지게 만든다. 시간이 필요하다. 책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으로 돌아가면 결국 시간 낭비. 성과를 얻기 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고 책은 강조한다. 긴 여정, 무수히 많고 다양한 일들이 생겨나겠지만, 그것 모두 인생이다.

 

나는 내 동창들이 자신들의 이야기, 즉 '나'에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곧 아이들이 스스로 생을 꾸릴 수 있게끔 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아이, 학원 보낸답시고, 자기들 등골도 휘어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망가진다. 이 무슨 '너 죽고 나 죽고'의 시나리오인가. 학원이야말로 지진성 '등골 브레이커'다.

 

남인사십.

그네들이 삶에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땅은 더 이상 지쳐선 안 된다. 학원부터 끊자. 아이들은 성적 오르고, 어른들은 성적(性的)으로 왕성해질 수 있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 성관계 횟수는 주 1.04회로 조사대상 13개국(34세 이상 남녀) 가운데 최하위였단다. 대한민국의 활력을 돋게 하기 위해, 학원을 끊자. 상관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자신에게 집중했던 동창들 좀 찾고 싶다. 예전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녀석들과 만나고 싶다. 그들을 학원에 뺏긴 현실은 슬프고 우울하다. 그들 대부분, 아직 모른다. 학원 때문에 자신의 생에서 그 자신이 유폐되고 실종됐음을. '나'라는 서사를 잃은 그들 때문에 나도 덩달아 슬퍼진다. 미친 존재감까지 바라지 않는다.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의 총명함을 되찾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 여기 있다'고, 그 존재만이라도 드러내다오. 

 

아 여보게, 정신차려 이 친구야~

우린,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고!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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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아닌 절망의 증거가 된 학교, 근본적으로 사유하기 | 북카페 2012-01-29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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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2011 선정도서 24권 리뷰대회 참여

[도서]학교란 무엇인가

학교란무엇인가제작팀 저
중앙북스(books) | 2011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지금, 학교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다.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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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구시렁거림부터.

이른바 (경제적으로) '쫌' 사는 나라들의 계모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뭔 국제적인 통계만 나온다 싶으면, 들먹이는 게 'OECD 중 몇 위', 이런 거다. 최근 몇 년 간, 우린 줄기차게 들었다. 또 듣고 있다. 인구 10만명 당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자살 사망률) 1위. 불명예뿐이랴, 슬프고 아프다. 겉으로 드러나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실체적 진실은 '사회적 타살'에 가까운 경우가 훨씬 많으리라. 아마도.

 

OECD의 저주(?)는 계속된다.

최근 보도를 보면, 한국 사람들, 여전하다. 죽어라 일'만' 한다. 놀 줄 몰라서, 놀면 죽으니까,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다. 이 사회가 가진 심약한 지점. OECD 나라 중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이 무려 2193시간(2010년). 1등 좋아하는 나라라고 티내고 싶은지, 10년째 1위란다. 참고로, OECD 평균은 1749시간이다. 25% 가량 더 일한다. 미친 거다. 대형마트는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설날에도 '정상'영업한다고. 이걸 떳떳하게 자랑질하듯 붙여놓은 '비정상'의 나라. 쉬파, 이땅엔 개미들만 사나?

 

뭐, 그게 끝이 아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도 최하위권이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의료비 기준은 58.2%. 칠레 47.4%, 미국 47.7%, 멕시코 48.3% 등을 제외하고 가장 낮다. OECD 평균은 71.5%. 쉬파, 아프면 죽으라는 거지? 비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죽도록 일한다. 병을 얻는다. 건강보험 혜택도 별 못 받는다. 뒤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나 더 들까?  

곧,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주역(?)이 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느끼는 행복수준 역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란다. 앞서 얘기한 것만 봐도, 그래, 아플만 하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아무리 '세상이 빅엿' 같아도 행복해야 할 아이들마저 이렇다는 건, 이 나라가 미쳤다는 거다. 전체가 병적인 불행감에 싸여 있고, 집단 우울증에 걸려있다는 징표다.

 

이 집단 우울증의 근원은 무엇일까.

물론 하나의 이유로 귀결하고 싶진 않다. 허나, 이것 하나는, 걸고 넘어져야 하겠다. 지금의 교육(이라 쓰고, 사육이라 읽는다). 그것을 대변하는 학교. 학교,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오로지 입시 위주로 세팅돼 돌아가는 그 시스템.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불행에 몰아넣는 구렁텅이.

 

누군가가 그러더라.

지금의 한국 교육 시스템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고진감래'라고. 빙고. 당신도 생각해 봐라. 중고등학교, 지금은 초등까지 포함해야 할 텐데, '대학만 가면 넌 자유야'라는 감언이설. 대학을 위해 '쫌만 죽도록' 고생하란다. 그러면 세상을 얻을 것인양 꼬드긴다. 그렇게 대학을 가면? 이젠 취업이다. 취업을 위해 또 죽도록 고생하란다. 어딜가도 낙원은 없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데 어디 낙원이 있단 말인가. 

 

이 말도 바꿔야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신분 상승이나 계층 업그레이드가 비교적 쉬웠던 과거엔 틀린 말,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바꿔야 한다. 고생 끝에 병이 온다. 시대에 맞춰 제대로 알려줘야 아이들, 착각하지 않는다. '고통 없이 무엇도 얻을 수 없다(No Pain, No Gain)'. 지금, 이건 나쁜 이데올로기다. 학부모나 교사, 학생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길들여졌고, 지금도 그리 길들인다. 그러니 고통은 당연한 것이고 즐기란다. 지겹도록 들었던 이 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개뿔. 고통이라면,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한다.

 

놀지 말고 공부하라.

대수롭지 않게 부모가 아이에게 툭 던지는 이 말.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고, 이 말이 그렇다. 왜냐!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 그것을 대립으로 놓는다. 잘못된 인식을 박아놓는다. 노는 것은 즐거운 것, 공부하는 것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그러니 이 말, 되레 위험하다. 즉, 아이에게 공부는 재미없고 괴롭지만 나중을 위해 참아 내야 하는 고통이 된다. '공부=고통'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 아울러, 가학적인 취향까지 곁들인다. 그 고통, 누가누가 잘 견디나 게임을 한다. 집단적으로 고문 게임에 빠졌다. 이 땅의 교육은, 미.쳤.다!

 

그래, 학교를 다시 생각해보자.   

학교는 근대의 유산이다. 큰 건물 하나에 벌집처럼 똑같이 생긴 방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아이들을 모아놓는다. 교사가 있다. 교육이 이뤄진다. 그리고 거기,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개입한다. 그 교육의 진짜 목적은, 임금 노동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국가가 개입하고 주도한 의무교육의 요체였다. 그것은 수리와 언어 관련 과목이 다른 과목보다 서열상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언어와 수리능력을 강조하는 것은 임금 노동자로서 요구되는 자질이다. 이른바 '문명'국들에선 하나 같이 비슷한 양상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자질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지만, 학교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더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학교는 곧, 관계(망)가 형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해관계가 철저히 얽힌 장소이기도 하다. 학교에 대한 고민,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학교란 무엇인가》는 학생, 교사, 부모 등 그 이해관계자의 고민을 담았다. 교육이 불가능해진 시대지만, 그렇다고 학교를 놓을 수는 없다. 임금노동자가 세상의 99%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EBS의 시도.

1년 2개월. 국내외 교육 현장 취재. 학생 200명 심리 실험. 현직 교사 혁신 프로그램 도입. 초·중·고를 포함한 4,000명 학생들의 설문 참여와 다양한 교육 실험. 늦었지만, 당연히 했어야 할 시도다. 우리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 교육현장에서 길어낸 이야기들은 그동안 자본(기업)과 권력에 의해 길들여진 (학교에 대한) 관성에 금을 가게 한다. 다큐로도 방영된 이 책의 미덕이다.

 

우리는 진즉에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교육이 불가능해지도록 우리는 무력했다.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만당했다. 끌려다녔다. 학교(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면서도, 우리에겐 우리의 시선이 없었다. 책은 그것을 다시 조명한다. 학생, 교사, 학부모, 각자의 관점에서 학교를 고찰한다. 재조명한다. 교육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점수에 목 매단 지금의 교육은 잘못됐다! 

 

사교육은 '배움'이 아니다.

지금의 학교를 무너뜨린 장본인 중의 하나, 사교육이다. 물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교육'이라고 일컬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건, '사육'이다. 국가에 의해 주도된 학교가 그나마 임금 노동자를 양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자본이 은밀하게 주도한 사교육은 '노예'를 길러내기 위한 것이다. 배움(의 즐거움)? 사(교)육에 그런 항목은 없다. 사육하면서, 사육당하는 것들의 권리와 입장을 생각하는 것 봤나? '배움의 역주행'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적절하다.

 

뭐어? 선행학습? 

개뿔이다. '선행'이라는 레떼르를 붙인 것은 앞서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그저 남들보다 앞서고, 남들을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가치관에 오염된 이들을 현혹하는. 내일을 위한답시고, 오늘을 지운다. 희망? 그전에 절망이 올 뿐이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 까닭이다. 불안을 심어주는 것이 권력자들의 간교한 계략이었다. 책은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불안한 학생들과 부모들의 실태가 드러난다. 불안한 부모들이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교육과 선행학습! 스스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 하라. 책은 그 당연한 것을 증명한다. 그렇게 되면, 사교육을 지금처럼 거대한 괴물 아닌 한갓 액세서리로 전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학교란 무엇인가》의 미덕, 이것으로 일단 충분하다.

사교육의 무쓸모를 자꾸 이야기해야 한다. 학교를 말하면서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분명하다. 악화가 구축한 양화. 그것에 금을 가게한다는 것. 나쁘지 않다. 물론, 칭찬의 역효과를 보여줘 양육에 대해 사유하게 하고, 부모와 자녀의 끈끈한 스킨십과 관계맺기(사랑)가 영재를 만든다는 것 등을 보여준 것도 미덕이다. 책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항목 또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책 읽기는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그것 자체로 목적이고, 더 넓은 세계를 항해하는 길임을 보여주는 것 또한 좋다. 무엇보다 알아서 훌쩍 크는 아이들. 교육이, 학교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대목. 남의 욕망이나 타인의 삶이 아닌, 나로서, 나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교육이어야 한다. 학교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 학교에게 의문을!

자꾸 물어야 한다. 학교야, 넌 무엇이니? 지금의 학교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거니? 산업혁명으로 임금 노동자가 탄생하고, 이어 등장한 근대교육, 특히 20세기 이후, 학교는 대인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잘못이다. 고대와 중세, 지금의 학교 형태는 아녔으나, 그것을 빼먹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그것은 이어지고, 그것을 핵심에 뒀다. 관계맺기. 즉, 대인관계를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으로 여겼다. 그래서 후세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도록 했다. 그것은 또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학교, 그것을 잊었다.

회피일까, 망각일까. 글쎄, 그건 모르겠다. 인간관계에 대한 교육을 상실한 지금의 학교는 폭력이 자연스럽게 고착화됐고, 분리하고 구획 짓는 것이 일상화됐다. 관계맺기의 파편화. 학교는 미쳤고, 서로 미워하고 무시한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지옥도, 그것이 학교에서 아이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뭔가 부족하고 답답한 느낌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땅히 배웠어야 할 관계맺기의 중요성과 기술에 대한 배움이 없었으니까. 대인관계 능력, 떨어질 수밖에!

 

나는 늘 이 생각을 한다.

교과 과목 바꾸기. 서열 뒤집기. 임금 노동자 양성을 위해 강조된 근대 교육의 핵심인 수리와 언어 관련 과목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이 아닌, 내가 원하는 과목은 이런 것이다. 사랑, 우정, 이별, 가족 등과 같은 관계맺기를 위한 과목과 더불어, 음악, 미술, 문학, 낭만, 아름다움 등과 같은 인생의 목적을 다룬 과목 앞세우기.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詩와 현재의 중요성(카르페 디엠)을 알려준 키팅 선생님은 극중에서 그랬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詩와 미美,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야." 영국의 교육학자 켄 로빈슨, 무용이나 미술이 주요 과목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학교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왜 인생의 목적인 무용이나 미술이 수학이나 영어만큼 강조되지 않는지. 그것은 과학으로도 설명된다. 다중지능이론에 의하면, 음악지능이나 신체운동지능, 시각지능 등 모두 다 독립된 인간 고유의 지능이며 동등하게 가치 있는 본성이다. 《학교란 무엇인가》는 말했다. "교육의 목표는 행복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이런 지능과 본성 모두를 훈련시키고 개발해야 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모두가 의사와 검사·변호사가 돼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학교에 의문을 제기하자. 그리고, 학교는 그 물음에 답해야 한다. 왜 지금 학교는 희망이 아닌 절망의 본거지가 돼야 하는가 말이다.

 

나는 학교가, 아프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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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안녕, 좋아서도 슬퍼서도... | 너 때문에 산다 2012-01-27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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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건재하도다. 이 씩씩한 언니.

어디선가 사회적 약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언니.

나, 김현진 팬! 새로 출간한 《뜨겁게 안녕》 독자만남. 응모했고 뽑혔다.

홍대의 커피하우스, 살롱드팩토리. 사실, 이곳의 커피는 내겐 별로지만.  

 

그녀, 여전히 멋있고, 아름답다. 

알코올 의존은 여전한 듯하며, 수줍고 여리고 참 약하면서도, 그래서 강한 여성.

 

뭣보다 김현진은 김현진이다. 다른 어떤 설명도, 사실 필요없다.

그녀는 그녀로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으로.

그래서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포장도 않는다. 거듭, 멋있다.

 

10여 년 전부터 기사나 글을 통해 보아온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산다. 온전하게.

당연, 인간적인 결함 있(을 것이)다. 변덕도 죽 끓으며, 우울도 달고 산다.

그래서 술은 그녀에게 좋은 친구다. 그게 뭐 어쨌다고!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녀를 향해 수근거린다.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김현진, 상처 입었고, 상처 입는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녀는 '자기마음주의자'.

많은 우리는 남들이 하는 뒷담화나 수근거림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사나.

그래서 끊임없이 포장하고 분장하고 변장하기 바쁘다. 마음도 성형을 하는 세상.

그녀는 자신의 본질을 숨기지 않는다. 가리지 않는다. 포장하지 않는다. 그냥 직구.

자신의 두 발로 또박또박 앞으로 나간다. 덤벼라, 세상아.

 

그녀(의 글)를 보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온전하게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타인 아닌 내 인생을 누리고 있는가.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는 많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 '진짜' 삶을 살고 있니?"

 

물론, 그녀는 그런 것, 의도하지 않는다.

김현진은 그저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니까.

 

아마도 그녀, 헤밍웨이의 이 말을 체화하고 있다.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느니, 나 자신으로 미움받겠다."

우리는 얼마나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고자 원하는가 말이다. 미친 듯이.

 

우산도 없이 빗속에 뛰어드는 마냥, '진짜' 삶으로 뛰어드는 그녀, 김현진 스타일.

쩐다! 간디작살. 아름다운 '김꽃두레'양 표현을 빌자면, 마~돈나 섹시해. 

 

소설을 쓰고 싶은 그녀, 언제고 소설을 낼 것이고, 꼭 그러길 바란다.

그 소설, 대중을 자극하든 아니든, 나는 그것이 한 인간의 기록임을 기억할 것이다.

'한 인간'을 벗어나 대중이 된, 지금의 인간에게 그녀는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왜? 김현진이니까!

 

김갑수 선생님이 피아니스트 리히터(리흐테르)를 경배하며 하신 말씀 인용하자면,

"대중의 사랑과 선망으로 높낮이가 구분되는 '인기'와는 다른 영역"에 김현진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녀는 '비주류'가 아니라, 대중 아닌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다시 김갑수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깊이, 인간의 크기'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녀의 애정, 서울과 술. 그것과 함께 영원하길.

2009년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 여전히 유효하다.

 

코시 판 투테(cosi fan tutte, 이것이 여자라는 것이다).

 

이 자리가 더 좋았던 이유.
내 이십대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남긴 고종석 선생님이 오셨고,

(고샘은 김현진의 아버지다. 문화적 DNA를 물려준 아버지. 부럽다!)

내 사랑하는 <씨네21>의 초대편집장이자 소설가 조선희 선생님도 오셨다.

(씨네21에 싸인을 받았다. 소설이 완성됐다고 들었다. 기대한다고 말씀드렸다.^^)

 

이 훈훈한 공기하곤.

나는, 남의 시선에 포박당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오늘, 그것을 확실히 느꼈다.

고종석 선생님도, 조선희 선생님도 그래서 좋아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니 다행이다.

 

언젠가는, '뜨겁게 안녕'할지라도!   

 

 

슬픔

그 어느 해의 마지막 날.

나는 한 커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그들은 이별을 택하기로 했고, 12월31일을 거사일로 택했다.

 

헌데, 그들은 증언자(?)로 나를 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내게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그날부로 헤어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애인이 한국 아닌 먼 곳에 있던 나.

함께하자는 제안에 고맙다며 굽신굽신, 종각에서 폭죽을 함께 즐기고 쏘다녔다.

뉴이어는 그렇게 밝아왔건만.

 

그리고 그들, 헤어졌다. 

내 대학시절 참 좋은 파트너였던 녀석은 다음날에야 그것을 실토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글쎄, 정확한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단 하나의 이유도 아닐 것이다.

다만, 내 어설픈 기억으로 당시 녀석의 집안형편이 큰 걸림돌이 됐다.

그렇게 죽자사자 붙어다니던 그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늘 보기 좋았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놈, 그렇게 허술한 것일까? 아니, 사랑이 아니었던 걸까? 

 

녀석은 상처가 깊었다.

녀석은 오랫동안 그녈 잊지 못했고, 그 사이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런 한편으로 녀석의 여자에 대한 불신도 깊었다.

일반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녀석의 상처는 오래 갔고,

다른 여자와의 관계는 서툴기만 했다.

 

그런 녀석이 한 달 뒤 결혼(식)날짜를 잡았다고 연락을 했다.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어어어~ 하다가 얼렁뚱땅 결혼하게 됐다고.

 

글쎄, 지금 여자와 녀석의 관계. 잘은 모른다.

다만 녀석의 말이 슬펐다.

"형, 결혼한 친구들 말 들어보니, 다 그렇게 어어~하다가 결혼하는 거라더라. 다 그리 한다 하더라. 뭐, 나도 그리 됐네. 하하."

 

내가 알던 녀석은 자신만의 생각과 삶을 살았던, '비주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녀석은 '주류'가 됐다. 

축복해야 하는데, 축하를 하면서도 나는 한켠으로 슬펐다. 녀석이 아팠다.

결혼이 아프고 슬픈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에 자신을 대입시킨 녀석이 슬프고 아팠다.

 

그래, 오해겠지만,

녀석은, 아직 그 상처에 휘둘리는 것 같아서, 그것이 나는 슬프다.

부디, 잘 살아라. SJ야. 그래도 나는 늘 네가 고마우니까.

너와 함께 꿈꾸던 그 시절을 나는 잊지 못하니까. 그건 내게 아직 유효한 꿈이니까.

 

그래, 뜨겁게 안녕.

우리의 뜨거웠던 청춘 1막은 그렇게 접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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