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외로워도, 그걸 친구 삼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밤 9시의 커피
http://blog.yes24.com/jslyd012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밤9시의커피
세상엔 살펴보면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나한텐 밤 9시의 커피가 그 중 하난거 같아. 이 어메이징한 커피, 밤 9시의 커피야! 난 이렇게 멋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어. 이게 내 대답이야.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1·2·3기 영화

6·7·8기 대중문화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5,307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My Own Coffeestory
밤9시의 커피
그녀에 빠지다 그 커피
366 Diary
너 없이 산다
너 때문에 산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함께 살자!(공유와 공동체)
시네마가 있는 풍경
바람구두 이야기
내 여친 소개받을텨?
나의 리뷰
북카페
시네마카페
카페 놀멘놀멘
사랑
자본주의
교육
나의 메모
한뼘 이야기
투덜이
태그
갈가요 노래가삶을지탱하고사랑을유지하다 걷는듯천천히 좋은사람이되고싶다는생각을갖게만드는커피를내리는사람이나였으면 KTX승무원들에대한빚 첫번째첫사랑이안겨준선물 낭만불가 쿠바커피연수보내주시오 쿠바협동조합연수도좋아 혁명보다뜨겁고천국보다낯선쿠바
2012 / 0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새로운 글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우연의 만남

2012-03 의 전체보기
무역보다 미용! | 바람구두 이야기 2012-03-30 01:13
http://blog.yes24.com/document/625543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1. 무역보다 미용!

 

이발을 하다가, 헤어디자이너가 모발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나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보니,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미용학과 출신인데, 그 정도는 대학에서 다 알려준다면서 싱긋 웃는다.  

 

순간, 부러웠다. 그런 지식은 누군가에 도움이 된다. 

 

아울러 부끄러웠다. 내 전공과 FTA가 자연스레 맞물리면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무역을 전공했다(고 하나, 그때 수집한 지식은 쓰레기에 가깝다!). FTA 체결의 장본인 무역을 전공한 사람인 것만은 아니나, 내가 무역과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자유무역은 온통 선(善)이요, 미덕이었다. FTA는 자연 (강대국 혹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무엇이었다. 쉬파. 그땐 진짜 그런 줄 알았다. 아마 시험에서도 나는 그렇게 주입받은 대로 지껄였을 것이다.

 

무역보다 미용이 낫다고 했다.

무역을 배운 자들은 FTA로 세상을 망가트리지만, 미용을 배운 당신 같은 디자이너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니까. 누가 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지 보라고.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디자이너, 무척 고마워한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 처음이라면서. 신분에 귀천이 없다고 배웠지만, 자신은 미용이 정말로 좋아서 선택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 대개의 사람들 시선은 헤어 디자이너를 천대하거나 우습게 본다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쥐뿔도 몰라서, 그렇다고 해줬다.

FTA로 대다수 사람들을 수렁에 몰아넣는 것보다 자신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더 낫다.

 

그리고 커피 만드는 노동자인 나를 생각했다.

무역을 버렸지만, 나는 타인을 기분좋게 만드는 커피향을 선사하는 사람이 됐다.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무역을 완전히 버리진 않았구나. 공정무역!

 

아, 나는 헤어 디자이너 한 명을 마음으로 울리고야 말았으니, 나쁜 남자로다! 캬캬.  

 

 

2. 장하준

 

장하준 교수(+정승일 교수, 이종태 기자)의 기자간담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출간기념)를 정리하다가, 눈이 다시 멈춘 지점. 그는 그날, 젊은이들에게 사과를 했었다.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고 했다.

 

현장에서도 그것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정리하면서도 그랬다. 

 

그의 주장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장 교수는 '염치'를 아는 '진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기성세대의 가장 큰 문제는 염치는 없고, 위로랍시고 멘토질만 해댄다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이, 아직 니 시계는 아침 7시 몇 분에 불과하니까, 휘휘 에둘러 죽도록 노력하라는 멘토질 같은 것.

 

공허하다.

멘토질보다 더 앞서 필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향한 사과여야 한다. 

이따구 세상을 만든 세대로서 이런 세상에서 악전고투하도록 헛발질을 해서 미안하다고 진정한 사과가 우선이어야 했다.  

 

장하준 교수는 미안함 때문에라도 복지국가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짜 어른은 저런 염치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구나.

 

그런데, 나는 네 가지 없는 놈이니까, 어른이 되긴 글렀다. 허허. (나는 사과 안 해!ㅎㅎ)

주야장천, 염치 모르는 꼰대들을 향해 비수나 휘휘 날려야겠다. 

이런 허~접 같은 것들.(역시 김꽃두레 톤으로~)   

 

참고로,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장 교수의 답변은 이런 것이었다.

"미안하지. 40~50대의 많은 사람들은 잘한 것도 없는데, 좋은 시절에 태어나 적당히 공부하고 직장 얻어서 잘 사는데, 지금은 온갖 것을 다해도 취직이 어렵다. 어른들은 꿈이 없어서라고, 노력을 안 한다고 타박만 하고. 젊은 세대에게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온갖 노력을 해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 세대는 노력하면 100%는 아니지만 많은 보상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복지 이야기도 하는 거다. 그 문제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청년당은 계속 당원들이 탈당을 해야 하는데, 그런 당이 가능할까. (웃음)"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8)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2        
“냉장고에 에르메스 디자인했다고 가격이 껑충 뛰는 건 오버” | 북카페 2012-03-29 11:4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625295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디자인 캐리커처 2

김재훈 저
디자인하우스 | 2011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디자인이 왜 사회성, 공공성을 띠어야 하는지, 디자이너들을 통해 통찰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텍스트이자 그림이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디자인=돈? 맞다. (잘 된) 디자인이 곧 돈이 되는 시대다.

거부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거부할 수도 없는 현안이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도, 진짜 디자인에는 돈 이상의 무엇이 있다. 돈만으로는 길어낼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래서 김재훈 작가는 디자인에서 우리가 무엇을 성찰하고 길어내야하는지 단초를 제공한다.

아무렴. 디자인,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 제각각의 고갱이를 풀어놓은 이 책에서, 

내 눈을 가장 번쩍 뜨이게 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빅터 파파넥.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곤 각 지역 전통이나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디자인을 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고 한다. 하나의 디자인이 아니고, 각 지역의 특성이나 사람들에게 맞는 디자인. 모든 것을 관통하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이란 없다!

 

그는 발리에 가서는 버려진 깡통으로 9센트짜리 라디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외관 디자인은 원주민들에게 맡겼다.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스스로 해볼 것을 권했고,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해줬다. 그 라디오의 디자인. 형편없었을까? 그럴 것이다. 미학적으로 서툴고 투박한, 별 볼 일 없는 라디오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디자인의 외피를 입은 라디오. 9센트로 끝나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

지금 세태는 그렇다.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이 곧 명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값비싼 브랜드가 된다. 많은 사람들, 이에 현혹되거나 유혹당한다. 남들과 다를 바 없음에도, '구별 짓'고 싶은 욕망이 똬리를 튼다. 소비욕구가 발현하고, 이를 소유함으로써 선망의 대상이 된다.

 

허나, 빅터 파파넥. 그것을 거슬렀다. 그는 시민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믿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이 가진 의미를 생각하게끔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필요로 하는 디자인을 해보시오. 원주민들의 삶에 담긴 멋을 존중한 빅터 파파넥의 생각이다.

 

나는 그것이 디자인을 무조건 돈으로 치환하는 세태에 필요한 반골 정신이라고 본다. 아울러, 디자인에 담긴 사회성, 공공성이야말로 지금에서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디자인은 곧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혼자 소유하는 것, 거칠게 말해서 죄악이다. 아름다움은 공유되어야 하고, 함께 즐겨야 한다. 디자인이 사회성을 띠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다.

 

그래서 나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회 디자인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디자이너이자 사회운동가인 빅터 파파넥은 디자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정작 현대의 디자이너들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디자인 제품과 갈수록 주기가 짧아지는 최신 유행, 넘쳐나는 폐기물, 소외 계층의 개선되지 않는 삶 등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디자이너들에게 물었기 때문이다.”(p.134)

 

지난달 23일, 김재훈 작가를 만났던 기록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좋은 자리는 언제나 웰컴이다. 나의 세계는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사진: 출판사 디자인하우스 제공)

 

==============

 

 

 

“냉장고에 에르메스 디자인했다고 가격이 껑충 뛰는 건 오버”

『디자인 캐리커처2』 김재훈


이른바 디자인 시대. 모든 것은 디자인으로 통한다고 해도 틀린 말, 아니다. 서울의 많은 사람들은 ‘디자인 서울’이라는 말, 쉼 없이 만났다. 전임 서울 시장은, 따져보면 토건이나 보여주기에 불과했지만,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웠었다. 그것은 디자인이 그만큼 우리가 사는 곳 혹은 일상의 영역에 깊이 들어섰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은 화폐적 가치로 환산되는 무엇이다. 상품 가격을 높이고 그것을 소유한 나를 남들과 구별 짓도록 만드는 요인으로서의 디자인. 미학적인 것을 따지지만, 그 이면엔 자본주의적 박동이 똬리를 틀고 있다. 혹은 유행과 트렌드의 전위로 따르지 않으면 무시나 낙오의 대열로 떨어지게 하는 기표. 그러니 디자인의 사회성은 애써 무시당하거나, 존재감 없는 것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사물의 언어』의 저자이자 런던 디자인박물관 관장 데얀 수직은 디자인을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사물에 집착하는 이유를 디자인이라는 언어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곧 디자인에는 우리의 경제체제는 물론 삶과 영혼까지도 담겨 있다. 소비의 시대에 송두리째 마음을 뺏긴 우리를 보라. 우리가 디자인을 단순히 제품 외관을 둘러싼 무엇으로만 생각해선 안 될 이유다. 

 


만화가이자 맛깔난 글도 쓰는 김재훈이 그런 시대와 역사, 인간의 삶과 조응한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달 23일, 서울 장충동 디자인하우스. YES24와 함께 하는 예술 릴레이 특강 3탄으로 마련된 『디자인 캐리커처2』 저자 김재훈과 독자와의 만남이었다. 그러니까, 그 자리, 디자인이 있었다. 


디자인, 자본주의의 꽃


김재훈이 생각하는 디자인, 디자이너는 무엇일까.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끊임없이 소비를 하게 하기 위한 행위가 있고,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직업군이 디자이너다. 디자인에 대한 대중적인 안목이 높아졌지만, 타이포나 서체 등 많은 디자인 부분이 전문가 영역 안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그것을 평가하고, 우리 사회에 유익한가, 우리의 일상을 해치지 않는가, 파악해야 한다. 대중이 안목을 갖고 불합리한 소비를 하지 않도록 말이다.”

 


디자인으로 가득한 세상. 그는 우리에게 ‘통찰’을 요구한다. 디자인에 현혹되지 않기 위함이다. 그것은 곧 ‘돈’에 휘둘리지 않는 것과 동의어다. 왜냐하면, 디자인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 돈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돈을 빼놓고 디자인을 말할 수 없다.


“어느 디자인학과 교수는 심지어 돈을 좇으라고 말한다더라.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게 직업이며, 디자이너라고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한, 자신의 일을 더 증진시켜 재화를 획득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도 디자인이 더 특별하게 자본주의와 가까운 이유는 돈을 쥐고 있는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돈과 디자인의 밀접한 관계. 그것은 디자인의 역사에서도 확인되는 바이며, 디자인의 태생적 한계이자 배경이다. 김재훈은 디자인의 역사를 꺼냈다. 최근의 역사부터 언급하며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라는 미디어 학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디자인을 하는 이유


“미디어 학자하면, 마샬 맥루한이 많이 알려졌는데, 플루서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단히 의미 있는 학자다. 특히 디자이너에게 꽤 의미있다. 글도 유머러스하고 재밌다. 『디자인의 작은 철학』이라는 얇은 책에서 디자인에 대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디자인에 대해선 김민수 교수가 『필로 디자인』도 좋은 책이다. 디자인 어원을 말하면서 사기, 환각, 기만, 전략 등으로 푼다. 이건 내 책에선 뺐지만. (웃음)”


“가끔 디자인 관련 학과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폭을 넓히기 위해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맨 처음 이야기하는 것은 “김민수 교수가 쓴 《필로디자인》”이다.” (p.204)  


플루서는 『디자인의 작은 철학』에서 디자인을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한편, 미래는 디자인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디자인이 학문과 예술, 경제와 정치에서 생긴 새로운 사고들이 꽃을 피우는 지점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플루서는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 기술, 기계, 아르스, 예술 등의 단어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하나의 개념으로 볼 때 다른 것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내적 연관성은 오랫동안 (최소한 르네상스 이후) 부정되어 왔다.”


말인즉슨, 디자인은 예술과 마찬가지였다. 중세를 넘어서까지 예술가들은 프로로서 시장에 나와 자신의 재능을 파는 것이 아니었다. 교회를 위해, 기관을 위해 자신의 기술을 봉사한다는 개념이었다. 물론 돈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은 사례비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직업예술가가 생겼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생기고, 분리가 됐다.


“예술이 붕 하고 떠버렸고, 생활을 벗어난 차원이 됐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난 뒤, 의식주를 떠나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을 문화라고 한다. 그런 인식이 전문 예술가를 낳았다. 근대로 오면서 그것들은 다시 만난다. 그렇게 한 군데로 만난 것이 디자인이 나오면서 가능해졌다는 것이 빌렘 플루서의 생각이다.”


플루서는 “디자인은 장애물을 치우기 위한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김재훈은 자동차의 예를 들어 플루서의 말을 설명했다. 최근 자동차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눴다. 디자이너 왈. 자동차 전체 무게에서 사람을 태우고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무게는 얼마일까. 답.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문제 혹은 의문은 여기서 발생한다. 사람이 타기 위해, 이동하기 위해 만든 것이 자동차인데, 그렇다면 나머지 무게와 용도는 무엇인가. 디자이너 왈. 나머지는 안전과 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덧붙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실어 나르기 위한 용도를 넘어섰다. 


“플루서가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디자인은 사실 없어도 그만인데, 그런 생각도 했다. 설계를 디자인의 범위에 놓고 보면, 우리가 살다보면 필요한 것이 생기듯, 불편해서 이것저것 설계해서 물건을 만들어낸다. 그걸로 끝나느냐. 아니다. 그것이 방해가 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디자인한다. 진보를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끊임없이 방해물을 치우기 위해 디자인을 할 것이다.” 


가령, 가방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디자인은 끝도 없이 진보해야 한다. 이것이 디자인이다. 김재훈은 플루서의 이 말도 꺼낸다.

 

“현재 문화가 처한 상황은 우상(물건으로 매료되는 일용품)을 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를 하다 보니, 디자이너는 전문적인 디자인을 하게 되고, 디자이너는 물건에 집착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서 보람을 얻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더 좋게 하고, 예쁘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아는 디자인이 생겨났다. 더 예쁘게, 더 멋있게. 돈을 더 벌고 아니고를 떠나 물건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숙명이었다. 물건이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부터, 디자인은 태어났고, 끊임없이 진화를 해야 했다. 다만, 플루서의 말을 오해하지 말 것. 물건에 천착하는 것은 물건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뉘앙스는 비관적이 아닌 적극적인 접근이었다.


김재훈은 기능에 집착하는 건 선량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분명 과잉(오버)도 존재한다. 가령, 냉장고에 에르메스의 디자인을 입혔다고 가격이 껑충 뛰는 그런 것.


“관계를 생각하는 디자이너는 기능을 본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능을 잘 누리게끔 연구한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생긴다. 그러면 기능은 선량한 것인가.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수 있는 요소가 디자인에는 늘 있다.” 이젠 바우하우스(Bauhaus)로 넘어간다. 


바우하우스의 탄생 이면


디자인을 공부할 때 첫머리에 꼭 등장하는 존재가 바우하우스(Bauhaus)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제대로 된 디자인 교육을 최초로 시도했으며 중요한 성과를 달성한,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세워진 조형학교다. 건축가이자 초대학장 발터 그로피우스(알마 말러와 결혼과 이혼을 했던!)를 필두로 초창기 교수 면면이 화려했다. 요하네스 이텐, 라이오넬 파이닝거, 폴 클레, 오스카 슐레머, 바실리 칸딘스키, 등이 교육을 담당했다.


바우하우스 창립 당시 학생 모집 팸플릿은 ‘미래의 건축을 위해 조각, 회화와 같은 순수미술과 공예와 같은 응용미술이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즉, 예술의 총체적 통일을 주창한 것이 바우하우스였다. 

 

 

김재훈은 여기서 바우하우스 건학 배경을 꺼냈다. 대개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바우하우스의 건학이념에 숨겨진 뒷이야기.


“바우하우스가 왜 생겼느냐. 당시 영국이 독일보다 산업이 발달해 있었다. 국가 간 경쟁구도에서 보면, 낙후된 산업구조를 얼른 쫓아가야 했다. 바우하우스 초창기 멤버들은 대량생산시스템에서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바우하우스를 만들었다. 즉, 대량생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평균적인 모듈을 만드는 것이 바우하우스의 목표였다. 한 사람이 도제식으로 하면 디자인이 아니다. 디자인이 되려면 모든 것이 호환돼야 했다. 바우하우스는 표준화를 추구했다. 인체의 평균적인 수치에 입각해 활동할 때 평균적인 모듈을 만들어야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그러면 생활문화가 보편화되고, 그 이념을 추구한 학교가 바우하우스였다. 이에 새로운 생산방식에 따른 디자인 방식을 도입하고 공업화를 추구하면서 산업계와 제휴하기도 했다.


물론 표준화의 양면성이 있었다. 바우하우스 초창기 교수들은 표준화가 곧 민주화로 가는 것이라고 봤다.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였다. 김재훈은 표면적 정신에 입각해 디자인이 발달과정을 거쳤다면 에르메스는 나오지 않았을 것으로 봤다. 이어 꺼낸 인물이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였다. 공예운동가이자 건축가로서 근대적 의미의 디자인을 만든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가 남긴 말을 보자.


“오늘날 삶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것은 기계를 하인으로 삼지 못하고 주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연의 힘에 대한 통제력을 남을 노예화하는 목적에 사용하고 얼마나 그들의 생활에서 행복을 박탈하는가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 우리가 빠져든 무서운 죄악의 증거인 것이다.”


모리스는 대량생산에 염증을 느끼고, 분업화로 인간이 노동에서 소외된다고 봤다. 이에 사람은 노동의 즐거움, 창작의 기쁨을 위해 수공예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수공예에도 문제가 있었다. 가격이 비싸고, 모든 사람이 누릴 수는 없었다.


법복귀족(부르주아)에서 나온 디자인


시간을 더 거슬러,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1789년 프랑스혁명 전의 절대 군주정체로 구체제(舊體制)로 불리는 시절. 새로운 계급이 출현했다. 부르주아(bourgeois). 신귀족이었다. 왕이 끄집어 올린 이 계급은 기존 귀족계급의 권세를 눌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때, 관직을 파는 일이 허다했고, 이들 신흥귀족은 대물림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유지했다. 부르주아는 법복귀족이라고도 불렸는데, 정치적 용어 이전에 문화적 용어였다. 봉건귀족의 비아냥이 담긴 호명이었다. 혈통귀족이나 대검귀족과 달리 관직을 돈을 주고 샀는데, 법조계에 많아서 그렇게 불렀다. 봉건귀족이 자신들과 다르다며, ‘구별 짓기’를 위해 사용했다.


“법복 귀족. 귀족은 귀족인데 법복은 뭐? 법복 귀족이라 함은 앙시앵레짐 그러니까 프랑스 절대 왕정 시대에 왕권 강화와 세수 확대를 하기 위해 왕실이 명목상 신분 상승 혜택을 준 신흥 귀족 계급을 말한다. 관직을 돈으로 사서 신분의 경계선을 단번에 뛰어넘은 자들이었단 말이지.”(p.210)

 


“여기서도 표준화가 이뤄졌다. 회화기법이나 구도 등을 통제했고, 규격화시켜서 장신구 등을 만들었다. 절대왕정의 수공예품은 미학가치 등이 뛰어나서 한 역사가는 어느 시대의 것도 이때를 능가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부르주아가 고민한 것이 있었는데, 왕족이나 봉건귀족의 문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것이 문화였다.”


“조선시대 신양반들도 겪었던 원초적인 문제. 바로 문화적 아비투스의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정치력이든, 사회 권력이든 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제도권적 신분상승을 달성하는 기간이 짧다 보니 문화적 습관과 자연스런 취미의 우아함은 미처 체득하지 못했던 것.”(p.211)


김재훈은 부르주아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는 부분의 설명을 덧붙인다. “우리는 부르주아라고 하면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데 개념규정을 하면 그렇지 않다. 시민계급이라 불리는 부르주아도 과거 있었고, 자신의 처지와 정치적 상황을 타개할 잠재력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부르주아다. 가령, 촛불시위에 나가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계층이 부르주아다.”


디자인의 속성에 대한 김재훈의 마무리 발언이 이어진다. 오늘날 소비는 물건의 유익함만 갖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기호적인 속성을 갖고 소비한다는 것. 즉, 이 물건을 가졌을 때 내 위상이 어떻게 정립되느냐가 소비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 가운데 디자인의 비극적인 속성이 있다. 능동적으로 작은 데까지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다. 이런 것을 통해 디자인의 긍정적인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디자이너이자 사회운동가인 빅터 파파넥은 디자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정작 현대의 디자이너들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디자인 제품과 갈수록 주기가 짧아지는 최신 유행, 넘쳐나는 폐기물, 소외 계층의 개선되지 않는 삶 등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디자이너들에게 물었기 때문이다.”(p.134)


독자들과 나눈 질의․응답

 


디자인을 다소 부정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 아닌가 싶다. 디자인의 본질에 크리에이티브가 있고, 개천에서 용 날 수도 있다. 계급적 논리에서만 디자인을 봐야 하는지? 요즘 사회적 디자인이 대두하고 있는데, 창조를 통해 계급․계층을 넘어설 수 있는 것 아닌가?


한 사람 한 사람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다. 가령, ‘뽀샵’을 보자. 요즘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뽀샵을 하고 툴에 능숙해질 수 있다. 제각각 디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디자인에 대해) 나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SNS 등의 네트워크는 거기에도 힘이 있고, 그 속의 디자인도 긍정적이다. 단, 거대 생산을 통해 전체 소비자에게 배포되는 양상은, 큰 자본이나 중개인, 디자이너의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것에 대한 통찰은 필요하다.


대부르주아가 빈티지룩 같은 것을 입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학자들은 ‘전략적 처세’라고 부른다. 패션은 유행의 최첨단으로 상류층에서 (유행을) 만드나 보편적으로 입게 되면, 그들은 그것을 폐기처분한다. 가령, 상류층이 설렁탕을 즐긴다고 한다면, 구분짓기의 전략적 처세다. 문화 만들기는 구분짓기를 위한 전략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에 그런 내용이 잘 나와 있다.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Habitious)’라는 말이 있다. 그는 프랑스 교육개혁을 주창하면서 ‘구분짓기(구별짓기)’를 학문적으로 처음 사용했다. 『구별짓기』라는 책에는 최상류층이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해 문화적 취향을 어떻게 조장하고 일반인과 자신들을 어떻게 구분 짓는지 잘 나와 있다.


“권력이 바뀌고 상류층 명부의 인적 사항이 변해도 특권을 누리는 회원제 공간의 틀은 항구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부르주아들의 암묵적인 결론이었으며 시민법이 제정되고 왕의 권좌가 비어도 기득권, 특권층, 상류층이라는 용어가 존재하는 한 미래에도 엄격하고 신성한 상류 문화의 명예는 공고하게 지켜내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할 거라는 사실을 자신들에게 신귀족의 칭호를 허락해준 왕실과 전통 귀족의 사례를 통해 교훈으로 얻었을 것이다.”(p.212)


일반인들도 계속 디자인과 툴을 다룬다. 향후 디자이너는 자기 역량과 크리에이티브를 어떻게 만들면 될까?


디자이너의 비극이다. (웃음) 제품 디자인 군에선 자꾸 미니멀해지면서 디자이너가 할 것이 없어진다. 그래도 디자이너가 사실상 할 것이 없어질 정도까지는 아니고, 일반인과는 구분된다. 재미와 취미의 양상과는 구분되고, 일반인의 것을 편집․기획하는 능력은 있잖나. 직업의 위기로 느끼지 말고 일반인과 소통․공감해야 한다.


“대중의 지속적인 감정이입을 유발하는 품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련된 스토리를 탄생시킬 수 있는 인문학적 토대와 상상을 디자인하는 감성의 기술이 필요하다.”(p.36)

[예스24 기고원문]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새로운 것을 고민하는 순간, 작가가 된다” | 바람구두 이야기 2012-03-28 00:5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624789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새로운 것을 고민하는 순간, 작가가 된다”

『더, 일러스트』 잠산


(※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동에서 있었던,  ‘YES24와 함께 하는 예술 릴레이 특강’ 4탄 『더, 일러스트』 잠산 작가와의 만남을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나, 잠산이다.

누구냐고? 당신, 일러스트 모르는구나. 그래, 모를 수도 있지. 세상엔 일러스트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꽤 많거든. 가령, 구럼비 바위나 강정마을. 어쨌거나 좋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날 소개할게. 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며,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er)이자 콘셉트 디자이너야. ‘남중훈의 잠산 평론’에 나온 글 일부를 인용해볼게.


“대한민국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이 백남준이라면, 잠산은 일러스트의 상징이다. 상업성이 뛰어난 작품과 작가에 대한 모사와 벤치마킹이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 일러스트레이션 업계에서 잠산은 대체 불가능한, 선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칭찬해주니 참 기분이 좋은데, 얼마 전, 길벗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어. 제목은 『더, 일러스트』. 내가 일러스트에 대해 가진 생각들을 작품과 함께 보여주는 책이야. 내 이름이 박힌 책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어. 기분도 좋고. 뭣보다 내 얼굴도 들어가 있어. 하하. 그만큼 내 일러스트관이 잘 드러나는 책이야.


그림을 그린다는 것


나도 날로 여기까지 온 게 아냐. 잘 그리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어. 그림 그리는 사람은 잘 알 거야. 그림 그리는 사람, 연약하고 상처 잘 받잖아. 그지? 나보다 잘 그린다고 상처받고, 개성 있는 그림을 보고, 아이디어 좋다고, 나보다 잘 생겼다고 상처 받고. 하하. 그림 그리는 사람은, 내가 왜 상처 받는지, 이게 상처 받아야 할 것인지도 고민해봐야 해.


3~4년 전, 나도 무척 많은 사람을 만나러 돌아다녔어. 그게 참 힘들었어. 내성적이다보니 보여주기에 앞서 쭈뼛쭈뼛 거리기 일쑤고. 그렇게 안 생겼다고? 뷁! 어쨌든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실무하면서 업그레이드도 되고 변화한 거지. 계속 자극을 받았고, 새로운 스타일을 가미하고 피드백을 받았어. 그것이 날 발전시킨 거지.


실무를 하면 알아. 열에 아홉, 포트폴리오 할 때까지의 발전이 전부야. 일에 본격 들어가면 더 이상 고민을 않아. 직업으로서의 고민만 남아. 그림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사회생활 하다보면 이런 고민을 하게 되지. 내 것을 할 것이냐, 돈을 벌 것이냐. 두 갈래 길. 어디로 갈 것인가.


많은 사람들, 돈 벌잖아, 직업이잖아, 하면서 자기방어를 해. 허나, 마음으론 그것의 공허함을 알아. 그래서 10년차 정도 되면 내 것을 하고 싶어져. 시간이 갈수록 공허해지거든. 그러니 고민의 초점이 중요해. 현실과 이상, 갈림길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지만, 내 생각과 이야기로 가는 것이 당연한 거야. 내가 원하는 그림 스타일과 이야기를 그리면서 남들도 좋아하게 할까, 이걸 고민해야 해. 그래야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어. 행복하니까, 행복하려고 그림, 그린 거잖아. 안 그래?


내 얘기도 할게. 나, 10여 년 동안 실무하면서 이걸 고민했다. 이후에도 생각이 바뀔 수도 있어. 인정해. 상업성을 고려하진 않을 수 없어. 헌데 근본적으로 무슨 내용, 어떤 이야기냐가 더 중요해. 이야기가 너무 생소하면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아. 그럼에도 내가 생각하는 나, 나라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해야 해. 이건 정체성에 관련된 부분이야.


나의 느낌을 파고들다보면 내가 약하다, 사람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동질감을 확인하게 돼. 좋은 건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 그래서 고민의 초점이 중요해. 그 다음을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그걸 반복하는 거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야, 그건. 그래서 개인 작업이 필요해. 피드백을 받고, 고민이 필요해. 어떻게 하냐고? 인터넷 등에 올려서 물어봐. 내가 이런 느낌으로 그렸는데, 어떠냐. 이른바 ‘명화’라는 작품들. 그건 살아가면서 나오는 결과물이야. 명화를 그린 사람도, 그릴 때 명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리진 않아. 그림 그리는 사람이 예술이야, 하는 순간 그림을 못 그려. 직업이 돼 버리기 때문이야.


“중요한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작품 생활에서 ‘어떻게’ 그리는가의 문제보다 ‘무엇을’ 그리는가 문제가 더 많이, 자주 나타난다.”(p.18)


자, 생각해보자고. 일러스트레이터. 많은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냐. 그림을 고민하거나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쉽게 예술이라고 상정하기도 하지. 나는 그래. 고민에 대해 결정해야 할 상황이 오면 원래 시작점으로 가. 지금 고민이 맞는지 아닌지를 생각해. 그림이냐, 일이냐.


어려울 것 같지? 아니. 한쪽으로 가긴 쉬워. 현실과 이상, 한 방향으로 올인 하는 건 어렵지 않아. 그런데 두 가지를 잘 절충하는 건 어려워. 확실히 어려워. 개인작업 안에서도 마찬가지야. 지금은 틀 자체를 옮겨야 할 시기라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런 말을 했어. 요리사도 새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그릇의 크기에 따라 몇 백 번 재료 등을 조절한다고. 그림 그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여야 해.


데생력이 약한 사람이 더 잘 되는 이유


데생력이 있는 사람들은 아이디어 고민을 안 해. 그런데 재밌는 건, 상대적으로 데생이 약한 사람이 나중에 작가로는 인정을 많이 받아. 왜? 데생을 포기하고 아이디어로 승부하니까! 데생을 잘 그리는 사람은 서른 전에 그림을 포기하거나 다른 쪽으로 가. 계속 해도 이런 고민을 하더라고. 데생력을 버려야 하나?


왜 그럴까? 내가 보기엔 이래. 잘 그리는 그림이라는 기준을 못 놓아서 새로움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거지.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잘 그리는 건 포기하거든. 대신 계속 하면서 탄력을 받지. 내 생각을 옮기는데 더 집중하지. 내게 필요한 데생력이 만들어지니까 군더더기도 없어지고 나만의 데생력, 조형감 등이 생기지. 계속 하다 보니,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림도 점점 더 좋아지고. 그러니까 생각이 중요해. 생각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시대라고.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좋은 컨셉을 정확하게 파악했을 때 확신이 생기고, 그 확신은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 테크닉을 하나 익히더라도 동기와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다. 테크닉은 닥치는 대로 익히고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컨셉을 잘 표현하기 위해 익혀야 한다. 확신을 바탕으로 숙달할 때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p.23) 

 

많은 사람들이 “그림 어떻게 잘 그려요?” 물어. 나는 이리 답하지. 생각부터 하라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나에 대한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그것부터 생각하라고. 요리가 안 되면 식탁 위에 올라가지 못해. 기막힌 양념간장이라도 되려면 우선 완성형이 돼야 하는 거야. 아주 작아도 어떤 요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길이야. 


일러스트 전체 바닥이 어렵다는데,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 내가 일러스트를 시작할 때, 그 시작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어. 볼 수 있는 거라곤 외국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이 다였고, 우리나라에선 동화책의 일러스트가 전부였어. 불안한 요소? 많았지. 모든 것이 불안했지. 무조건 먹고 살자는 것만 있었어. 그렇게 일하다가 내가 재밌는 거, 선택의 갈림길에서 시작점을 생각했던 것을 생각하며 온 거야.

 


색에 대한 고민이 가져온 유레카


“잘 그리는 것은 간단하다면 간단할 수 있는 일로, 강한 의지만 뒷받침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든지 손동작이 원만해지고 기교적인 툴의 사용법을 숙지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숙련이나 숙달만의 문제가 아니다.”(p.24)


요즘, 마음이 편하나 긴장이 좀 느슨해졌다. 몰라서 헤매고 있는 건 아냐. 10여 년 전 이미 생각을 정리했고, 지금까지 그 생각으로 오고 있어. 나는 색을 잘 못 칠하는 사람이었어. 어떡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좋은 색을 쓸까, 고민에 고민을 했지. 조합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몇 달을 고민했어.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 거야. ‘좋은 색은 뭐야?’부터 시작했지. 그러다 좋은 색을 포기했어.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기준이 없더라고.


즉, 좋은 색에 대한 매치를 포기한 거지. 트렌드를 포기한 거야. 좋은 색에 대한 베스트 매치를 포기하고, 색이 갖고 있는 역할을 고민했어. 변치 않는, 시대에 상관없는 기준. 그것도 두어 달 고민하다가 포기 직전 찾아냈어. 구별한다. 대상과 대상, 요소와 요소 등 모든 것을 구별한다. 구별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을 대입한 거지.


그랬더니 어땠는지 알아? 반론이 별로 없어. 딱히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고. 구별한다는 건 색을 떠난 거야. 면과 선. 블랙과 화이트. 나만의 해석방법이 있는데, 블랙과 화이트만큼 극명하게 구별하는 게 없어. 우리가 아는 미술교육을 봐. 어둠을 많이 쓰지 말라고 주입해왔는데, 보면 반이 블랙이야. 그런데 어둡지 않아. 블랙과 화이트의 명도 차가 커서 시원함을 주는 거지. 그때부터 나는 색이 두렵지 않게 됐어. 유레카~! 빙고~!


나는 색을 포기한 거야. 구별만 잘하면 되는데, 명도 위주로 판단을 한 거지. 세련되고 극명하게 그리고 싶으면 서로 먼 색을 쓰기로 했어. 분위기나 그윽함 있을 때는 그 간격이 가까워지고, 세련되거나 사람들 시선을 잡으려면 명쾌해야 하는데, 그땐 간극을 크게 한다는 것. 예술이라고 생각하면 반론의 여지가 많지만, 상업미술에선 이만한 베스트도 없다고 생각했어. 아이러니하게 사람들이 색을 잘 쓴다고 하더라. 하하. 나는 명도만 잡고 색을 버렸는데 말이야. 참, 희한한 일이지?


옛날에 흑백을 바꿔도 무너지지 않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걸 몸으로 느낀 거야. 책보고 익힌 것은 잊히지만, 몸으로 느낀 것은 그렇지 않아. 그림은 계산할 수 없다고 하지만 대부분 그림은 계산이 돼. 자기 그림은 자기도 평가해야 해. ‘왜 못 그린 그림이 됐지?’ 생각하고, 잘 그리면 ‘왜 잘 그렸지?’ 생각해야 해.


콘셉트, 그림의 시작과 끝


나는 그걸 15년을 했어. 콘셉트가 좋으면 대부분 그림이 좋아. 생각을 해야 해. 그런데 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못 버려. 이걸 버릴 때는 엄청난 사람인데, 여태 딱 한 사람을 봤어. 이 사람, 몇 년 뒤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더라. 특이한 경우지. 바뀐 건 어떤 이유든 있기 마련이고.


기막힌 재료부터 모든 것이 다 돼도 시작할 때부터 왜 테크닉을 배우냐면 내게 확실히 가져갈 수 있는 카드가 없기 때문에 그래. 하나라도 우선 채우려고 하는 거지. 이렇게 가다가 돌아가는 사람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확률은 높지 않아.


거듭 강조할게. 모든 장르는 생각의 문제야. 생각을 하면 명쾌해져. 생각하는 의지의 문제야. 그림 그리는 사람이 순수하다는데, 꼭 그렇진 않고, 순진해. 그런데 상업(성)이 그것을 이용해 먹어. 우리가 아는 유명 작가들은 다 잘 먹고 잘 살았어. 그런데 우리 머리엔 고흐나 고갱이 들어있는 거지. 하하. 


슬슬 마무리를 할게. 예술가란 없다고 하자. 대신 창작자라고 하자고. 당신의 생각을 옮기는 것이 새로움의 하나야. 남들이 안 쓰는 재료를 쓰는 게 아니라, 감정 하나를 내놔도 창작이야. 15년 전, 나도 진짜 작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진짜 작가는 뭐야? 좋은 그림이야? 잘 그린 그림이야? 나는 생각이 바뀐 것을 솔직히 표현하면 작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요리사가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고, 헤어디자이너가 새로운 헤어를 고민하는 순간, 그들은 작가라고 생각해.


생각을 하면 많은 것이 심플해져. 복잡하게 생각을 왜 하냐고 그러는데, 그렇지 않아. 어떻게, 왜, 라고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가 남아. 나는 전문용어를 모르나 누구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어. 생각을 하는 것에서 모든 것은 시작하는 법이야.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노 젓는 배를 몰아야 한다고 칩시다. 목표는 없는 뱃사공은 아무리 노를 잘 젓는다 해도 무턱대고 노부터 움직이려 하기 때문에 제자리를 빙빙 돌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밤하늘의 특정한 별을 향해 노를 저어 가는 것, 이것은 특정한 목표를 가진 사람의 행동입니다. 누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확연하죠.”(p.24)

 


Q&A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재밌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지금 준비하는 것도 있는데, 일단 2년 동안 고민하면서 머리로는 더 명쾌해졌다. 개념미술 안에서 내가 개념을 가져갈 수 있는 게 생겨서 좋다. 이전에는 감성과 테크닉이 주였다면, 다른 분야에서 개념미술에 대한 것을 해보고 싶다. 그것도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그림으로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었다. 하나만 하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금도 이것저것 다 해보려고 하고 있다. 돈은 그 다음 문제다. 물론 현실은 유지해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데, 계속 다른 쪽을 함께 간다. 이게 자연스럽게 바뀌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전과는 또 달라진다.


100장 그려서 1~2장 건진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자료수집에 한계가 있더라.


자료수집, 하지 마라. 머리에서 대략 이런 느낌이라고 잡으면, 거기에 필요하다 싶은 자료만 구해라. 용을 그린다고 하면 실루엣을 구상하고, 찾은 자료는 참고만 해라. 사람들은 대개 그림 자료를 찾는데, 나는 그림을 안 본다. 도움이 안 된다. 나보다 못 그린 그림에서 자만심을,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상처 받거든. (웃음)


나는 차라리 디자인, 인테리어, 도예 등에 대한 서적을 본다. 같은 장르보다 다른 장르의 느낌을 내 작품에 가져오는 희열이 더 크다. 재료가 다를 뿐 같은 창작이라고 느낀다. 재밌는 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새로움을 도입한 창작자지, 카피한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른 장르의 것을 가져오는 사람이 새로운 것을 하는 사람이고, 레벨이 올라간다. 그렇게 칭찬을 받으면 존재감에 대한 확인을 받는다. 나, 태어나길 잘했나봐. (웃음) 그러면 건강해진다. 인정받으니까. 인정받고 칭찬 받으면 대의명분이 생긴다. 이쪽 분야, 알고 보면 체력전이다.


경쟁할만한 그림이 있나?


없다. 있으면 안 되지. (웃음) 건방진 얘기가 아니라, 안 보고 싶다.


생각하다가 답이 안 나오면 포기하고 싶어지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나?


이게 지겨워지면 다른 생각도 한다. (웃음) 재밌으려고 시작해서 고민도 그 과정의 하나라고 본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해보면 그걸 고민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지.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단어를 그냥 쓰지 않는다. 가령, 고독한 그림과 외로운 그림이 다르다.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잘못 캐치해서 산으로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명확하게 그린다. 종합선물세트는 개성이 아니다.


생각하고 그리라고 했는데, 생각을 하다 보면 한계를 느껴서 갇히는 순간도 있다. 그런 순간 어떻게 하나?


나는 그냥 논다. 혹은 다른 것을 한다. 잘 그리고 싶다는 것이 고민의 초점이 아니다. 어떻게, 왜, 가 중요하다. 나는 난초도 못 그리는 동양화 전공이다. 배운 게 없는데 전공이라고 공식적으로 나와 있는 거지. (웃음) 처음에는 힘이 든다. 고민하는 것도. 고민하다보면 알게 된다. 고민도 습관이다. 나이 여부와 상관없이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해보고, 어느 시점인지가 중요하다. 경험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이걸 그리는 게 재밌어? 하면서 작은 것에서부터 답을 찾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더 크고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지만, 그게 재밌어진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문]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6)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한국이 국적? 아니, 너와 나의 진짜 국적은 ‘세계’ | 시네마카페 2012-03-25 22:26
http://blog.yes24.com/document/624031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DVD]스페니쉬 아파트먼트 (1Disc)

세드릭 클라피쉬
20세기 폭스 | 2007년 10월

작품     디자인/구성     구매하기

내 나이 아니 내 국적을 묻지 마세요. 나는 지구인이고 세계시민이거든요. 그리하여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의 개념에 넘어가지 말 것.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얼마 전 맞이했던 설날, 생각해보자. (싫다고? 동의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명절’을 명분삼아 ‘고향’ 가는 길. 찾아갈 고향이 있건, 그렇지 않건 온 나라가 들썩들썩. 솔직히 고향 가는 길이 때론 ‘고역’이라는 사실, 가본 사람은 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잠시 떠나 ‘고향’을 갈구한다. 어떤 ‘이끌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무감’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안식처보다 전쟁터가 되는 고향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 고향, 지긋지긋하다. 가느니 안 가느니만 못하다. 고향이 때론 지옥이 되는 풍경. 안식처 아닌 전쟁터가 되는 풍경. 뭐, 누군가에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얘기다.

  

“일년에 두 번 있는 민족대이동으로 사람들은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는 TV뉴스 앵커의 멘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그냥 듣기 좋으라는 덕담이다. 물론, 내가 ‘시티 키드’로 살아와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에이, 솔직하게 말하자. 설날은 내게 그냥 ‘긴 휴일’일 뿐이다. 그것이 다다. 다른 건 없다. 물론 ‘고향을 다녀왔기 때문’에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나와 달라서 그렇지, 인정한다. 


좀 더 외연을 넓혀보자. 고향에서 조국으로. “대~한민국”. 익숙하고 입이 기억하는 외침. 그건 일종의 이벤트다. 조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나 애국심의 발로? 천만에. 그건 그저 (응원)구호다. 굳이 그 안에서 조국을 찾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란 말이 아직 유효하다지만(나는 아니라서 뭐!), 요즘은 “이민가고 싶다”는 쪽이 대세가 아닌가 싶다.((박)그네가 이리저리 설치는 것 보면 짱나는 사람 참 많더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국적이기에 안고 살아갈 뿐, 전통적 의미의 ‘국가’(nation)는 구닥다리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국가’라는 개념이 새로운 시험대에 들어선 유럽의 풍경을 다룬다. ‘어느 나라의 나’보다 ‘개인으로서의 나’에 비중을 두는 시대. 유럽은 또 하나의 시대적 징후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화두다. 과연 유럽인들에게 국적은 무엇이며 ‘유럽’이라는 한 몸뚱이는 개인의 삶과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  


멀리서 바라본 유럽은 ‘국적’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립했다. 물론 아직도 과거의 국적 개념도 살아 있다. 1953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6개 나라에서 시작된 유럽통합체의 시발은 1999년 유로화라는 통화통합을 거쳐 2004년 5월 1일, 25개국 4억5000만명의 ‘한’ 유럽으로 확대됐다. 유럽연합, EU의 탄생. 철강과 석탄 시장의 통합을 근간으로 한 경제통합체는 어느덧 국경을 없애고 사회와 문화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물론 문제, 많다. 통화만 통합하고 국경 개념만 희석시켜서! 유럽의 재정위기가 이를 방증한다.) 


어쨌든,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이런 시대를 포착한다. 제목은 프랑스 속어다. 여러 문화가 섞인 채 모든 법은 무시되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장소. 그 뜻에 맞춰 한 공간에 동거하는 이들의 국적, 하나같이 다르다. 각 나라의 스테레오 타입이 그대로 드러난 등장인물은 국제 정세의 메타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프랑스인 자비에가 유럽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실행되는 ‘에라스무스’를 통해 스페인에서 6명의 (다른 국적의) 학생들과 ‘동거’하는 것, 유럽의 현 상황과 다르지 않다. 키 높이가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한 우산에 들어간 모습이라고 할까. 그 모습, 생각해봐라. 좀 우습지 않나? 냉장고에 각자의 구획을 나누고, 전화기 앞에는 각국의 언어로 “지금 학교 가고 없다”는 말이 붙어있다. 각자의 방도 마찬가지다. 스테레오 타입화된 형태의 정리정돈과 방식이 좁은 숙소에 함께 둥지를 틀고 있다.

 


자비에는 이런 동거 숙소를 ‘문화의 용광로’라 부르지만 실상 ‘샐러드’에 가깝다. 녹아서 하나로 융합되는 용광로보다 각자의 모습대로 뒤섞이면서 맛을 내는 샐러드가 더 어울린다는 말이다. 그들은 억지로 ‘하나’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때론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지만 샐러드 맛이 변질되도록 수수방관하지 않는다.

 

그건 일종의 ‘지혜’다. 그곳이 공동체 공간임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단결보다는 느슨한 연대를 택하는 이들의 행동양식이다. 그들에게는 ‘단일민족’이라는 허황된 구호가 없다. 그들의 공간이나 구성원이 위험에 처할 찰나, 머리를 짜내고 함께 움직인다. 집 주인이 월세를 올리자 그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방이 없음에도 룸메이트를 뽑는다. 그리고 방이 아닌 침대를 나눠 쓰는 놀라운(!) 생활력을 발휘한다.

 

또 이런 예도 있다. 영국인 깍쟁이 웬디가 미국인 악사와 사랑을 나누고 있을 때 웬디의 남자 친구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파국을 막기 위해 똘똘 뭉치는 나머지 하우스 메이트들. 예기치 못한 해결책은 폭소를 유발하는 한편 빗나간 엇박자들도 앙상블을 이룬다. 흥미롭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우스 메이트, 국적은 달라도 마음은 통한다.  


자신의 경험과 여동생의 유학생활을 잠시 엿본 기억을 버무려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 유럽의 정체성을 굳이 한마디로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유럽화’라는 이름으로 어느 하나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혼란을 방치한 채 그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모습을 솎아낸다. (물론, 지금의 유럽은 경제 위기 앞에 조화를 이루지 않고, 형제국의 위기를 나 몰라라, 외면한다!)


감독은 은근히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를 비꼰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하나의 규범을 강조한 미국의 세계화는 곳곳에서 파국을 불러왔다.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로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불렀다. 자본주의의 위기. 결과는? 반세계화의 움직임! 극중, 카탈루냐어로 수업하는 교수에게 불평하는 동료에게 한 학생,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는 공동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정체성이 공존하는 거야.” 이것은 감독이 말하고 싶은, 유럽이 지향하는 한 우산 속의 공동체를 묘사하는 것이리라.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극 정성으로 조잘거린 한국 사회, 반성해야 한다. 세계화랍시고 뭘 했나 봐라. 고작 영어 잘 하는 것이 세계화? 미국식 아니 월 스트리트의 표준을 전세계의 표준인양 강조하는 사대주의!

  


2명 이상의 조직(혹은 사회), 아니 한 개인 안에서도 혼란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1년 동안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과 동거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자비에, 파리의 거리를 거닐며 자신을 성찰한다. “내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모든 것을 합한 것이 바로 나이다. 나는 혼란에 빠진 유럽인일 뿐이다.” 그는 한 뼘 성장했다. (물론 자비에가 은행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는 모습은 작위적이고 끼워 맞춘 혐의가 짙다! 그 정도는 충분히 눈감아 줄 수 있지만.)


나는 혼란이라는 단어를 억지춘향식으로 갖다붙여 대동단결을 외치는 일련의 구호를 이해할 수 없다. 때론 역겹다. 토할 것 같다. ‘국가’의 이름으로 ‘개인’을 짓누르거나 통합하려는 의도에도 동의할 수 없다. ‘국론 분열’이니 ‘국민 혼란’이니 하는 레토릭으로 하나의 노선만이 살 길 인양 호도하는 세력들, 에라이 침도 뱉아주마. 퉷. 개인의 지향성이나 신념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 나라 맞아?


국적에서 좀 더 거리를 둘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각자의 정체성을 간직하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새로운 통합 혹은 연대를 경험할 수 있는 그런 날. ‘한국인’보다 ‘세계인’이라는 단어가 더욱 자연스러운 그런 날. 국적을 묻는 질문에 세계 시민이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날.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에 묵고 싶은 그런 날. 여러 문화가 섞인 채 모든 법은 무시되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장소에서 사는 그런 날. 나는 그런 날들의 세계에 사는 자취생.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아니. 나는 대한민국민 아닌 세계시민으로 살고 싶다!

내가 공정무역 커피를 다루는 것은 그런 세계시민으로서의 활동의 일환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봄밤, 첫사랑들 | 너 때문에 산다 2012-03-22 01:41
http://blog.yes24.com/document/622653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의 첫사랑임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어야 한다.

 

잘 있나요? 내 첫사랑들.

 

                                봄밤을 함께 맞이했던 내 첫사랑들.

                                그리고 봄밤이 봄꿈이 되고 말았던 내 첫사랑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누군가의 첫사랑 덕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닥치고 사랑.

얼렁뚱땅 첫사랑.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1 2 3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성적 결합을 원하는 곳
"잘 쓰는 방법이 아니라 전보다 낫게 쓰는 방법에 관해 말하고자 합니다."
야간비행 저 너머 세상을 향하여
대중문화 감수성으로 해석하는 한국 사회
최근 댓글
진짜 그렇게 번성했던.. 
저도 일본 작품을 보.. 
가을이 되면. 떠오르.. 
그죠, 송호창 의원에.. 
잘 들었으며 잘 읽었.. 
트랙백이 달린 글
우리안에 있는 ‘공유경제..
[함께 보아요] 마을감수성..
나카야마 미호, 애잔한 사..
[밤9시의 커피] '하쿠나 ..
[밤9시의 커피] 6월25일의..
많이 본 글
오늘 2 | 전체 1511237
2006-07-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