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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살펴보면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나한텐 밤 9시의 커피가 그 중 하난거 같아. 이 어메이징한 커피, 밤 9시의 커피야! 난 이렇게 멋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어. 이게 내 대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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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지랄 | 너 없이 산다 2014-10-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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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단정하거나 확신하고 사는 편이 아닌 내게도,

내 인생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 혹은 확신하는 일이 하나 있다. 

돈지랄 맞는 일!

이십대 초반, 허구한 날 술을 퍼마시면서 일찌감치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런 걸, 숙명이라고 한다지. 돈지랄 맞을 걱정 없는 숙명! 물론 돈지랄 풍년 정도는 아녔지만, 세간의 기준으로 돈을 잘 벌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 옷도 결국은 내 옷이 아니었다.


최근 출판계와 사회적경제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었다. 

한 책(의 전질)은 매일(매달이 아닌!) 6천만원씩을 출판사 통장에게 꽂는단다. 

한 사회적기업의 제품은 매일 1500만원씩 매출이 발생하고 있단다. 

우와 우와 우와. 

어떤 회사는 한 달에 1500만원도 못 버는데, 

하루에 1500만원, 6000만원씩 팍팍 꽂힌다니, 부럽다.


오늘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외식창업센터(HBCC) 오픈식에 가서, 문득 돈 한 번 벌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어떤 돈이냐, 어떤 사회적 이윤인가가 중요하겠지만. 20년 가까이 지켜온 숙명을 거슬러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역시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노동 유연화. 노동의 자기결정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노동자가 자신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 

노동이 상호 협력하고 협동하는 것. 

기업 아닌 노동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노동을 플렉서블하게 다루는 노동시간결정권. 

돈지랄 대신 노동시간 결정권. 

그것은 삶의 자기결정권과도 통하는 것. 

저녁이든 주말이든 내 삶의 시간과 요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 

나는 소망한다 세상이 내게 금지시킨 것을.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1919.html?_fr=mt1r


그러니까, 어지간하면 알아야 하는 것. 

마왕 덕분에도 알았던 것.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보고 싶다. 해철 형아. 

매일 한 두사람씩 연락 온다. 내가 해철님을 교주로 모셨던 것을 아는 사람들이.

고마운 일이다. 띠바, 그러게 왜 그렇게 간 거요. 이 가을에. 리버 피닉스가 갔던 때와 비슷한 이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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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원한 기사, 신해철 | 카페 놀멘놀멘 2014-10-2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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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신해철 2집 - 서곡


대영에이브이 | 199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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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음악의 잉태는 '마이 셀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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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2014년 10월 27일.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 느낌으로 알았으면서도 그 상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 간절하게 일어나기만을 바랐던 신.해.철. 입니다.  


며칠 전부터 아침과 저녁으로 해철 형님의 안부가 궁금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 형님의 안부를 검색할 때마다 방망이질을 쳤습니다.    


행사 준비 등 산적한 일을 하면서 <일상으로의 초대>를 듣고 있던 10월27일의 가을밤이었습니다. 일상으로 해철 형님이 돌아올 기대를 품고 말입니다. 그러다 심장에서 뭔가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비보. 친구 녀석의 문자가 잇따랐습니다.  


"우리 시대의 한 추억이 아프게 가는구나. 니가 좀 많이 아프겠다."


고등학교 동창인 녀석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신해철이라는 가수에게 열광하고 빠져 있었는지. 우리는 매일 같이 신해철이라는 노래를 함께 듣고 부르며 열렬히 좋아했었습니다. 제가 <신해철 2집 My Self> LP판을 보물처럼 들고 다니던 모습을 녀석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해철 형님은 그렇게 내게 우상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가수는 있었다손, 그토록 멋진 가수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매일 나는, 

나에게 쓰는 편지를 불러 제쳤고,

재즈카페를 흥얼거렸으며,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내뱉았습니다.  


우린 그렇게 신.해.철.이라는 존재에게 빠져 있던 빠돌이였었죠. 


그러니, 알고 있었으나 바라지 않았던 그 소식이 들렸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씨바. 

심장이 서걱서걱, 덜거덕덜거덕.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가고 있음을, 언젠가는 생이 끝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손, 지금 해철 형님의 죽음은 너무 이르잖아요. 이건 아니잖아요.   


내 청춘 한 자락이, 내 눅눅하고 날선 청춘을 지탱하던 한 기둥이 뚝 부러졌습니다.

그것이 슬픈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내 한 시절이 지나갔음을, 

내 추억 한 켠이 접힌다는 느낌이 슬픈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굿바이 얄리. 굿바이 해철. 

해철 형님은 나의 영원한 기사였습니다. 

우상이었으며, 내 젊은 날의 데미안이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싱클레어였던 시절, 해철 데미안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삶에 대해 고민했었습니다. 눅눅하고 축축했던 청춘의 한 시절도 그 노래들을 통해 위로 받았습니다. 그 고마움을 아직 다 전하지 못했건만. 


26년입니다. 단 한 번의 후회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마왕의 팬이며, 해철 형님의 싱클레어라는 것이. 

내게도 선택은 항상 해철 형님이었을 겁니다. 


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 주어지고, 

그것이 언젠가는 끝날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으며, 

모든 생은 그 자체만으로 평등하고 아깝고 덜 아깝고는 없겠지만, 


이른 죽음에 도달한 어떤 생에 대해선 유난히 안타깝고 슬프고 비통합니다. 


모든 것은 자주 접하면 익숙해지지만, 

죽음만큼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내겐 그렇습니다. 

어떤 죽음이든 개별적인 것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앞으로, 

해철 형님의 목소리를, 그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내 생이 끝날 때까지도 안타까운 한 가지일 것입니다. 


세상엔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어도 그 죽음이 죽도록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유명인이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가 세상 곳곳에 뿌린 그의 흔적들 때문일 겁니다. 


눈물 나는 가을밤입니다. 

리버 피닉스의 기일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런 즈음, 

세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 잠을 자고 눈을 떠 노동을 해야한다는 것. 참 슬픕니다.

회사 일 따위 모든 것을 작파하고 온전하게 슬픔을 누리지 못하는 내 신세도 참 가련합니다. 슬픈 가을밤, 나는 마왕을 이렇게 보냅니다. 


마왕의 명복을 빕니다. 불멸을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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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마지막 낭만주의자 | 카페 놀멘놀멘 2014-10-2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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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넥스트 IV - Lazence-A Space Rock Opera

넥스트
대영에이브이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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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낭만이 최대로 달한 극대점. 지구를 구하는 라젠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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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난 희망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살면서 어쩌다 희망 같은 걸 슬쩍 걸어본 적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세상은 폭력과 이권이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새삼 확인하는 것은 한국은 '마피아 천국'! 모든 분야에 마피아가 있더라~)


희망은 개뿔. 패배는 기본. 세상은 조까라마이싱.


여러 요인이 짬뽕돼 있겠지만,

그가 뿌린 씨앗도 있었다. 그는 잘 생기고, 멋지며, 낭만적인 허장성세 교주였다.

(나는 옛부터 잘 생기고 예쁜 사람에겐 유독 정신줄을 놓았더랬다. 쥐에게 개뿔이 달렸다고 해도 믿었다.)


그의 허장성세가 좋았다. 똥폼 개폼 잡아도 내 눈엔 하트가 뿅뿅.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간 듯, 허세는 그의 잘남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노래 가사마다 구비구비 박힌 허세와 목소리에 들어간 뽕은 어린 날의 나를 매혹시켰다.


사춘기와 스물 언저리의 내게 그의 노래는 곧 계시였다. 

허구한 날, 그의 노래를 틀었고, 흥얼거렸으며, 노래방에서 불러 제쳤다. 

계시를 읊조리고 조아리는 것이 교주를 향한 신도의 기본 자세 아니었겠나.


어떤 뮤지션도 그와 같지 않았다. 

그는 대체불가능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라고 말랑말랑한 사랑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은 아녔으나, 


그는 대체로 염세적이었다. 무엇보다 내 기억에 그는 가요계에서 처음 '실존'과 '자아'를 드러내고 '자아와 세상의 불화'를 다뤘다. 자의식의 발현. 그것은 자주 과잉됐고, 오버했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을 향해 칼끝을 겨눴다.


세상에, 요즘 어느 가수가 이런 가사를 읊을 수 있을까.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에게 쓰는 편지>)


"아직 단 한번의 후회도 느껴 본적은 없어 다시 시간을 돌린대도 선택은 항상 너야"

맞다. 많은 이들이 달달한 사랑 노래라고 생각하는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는 당시 '동성동본 금혼법'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한 응원가였다.


그의 도저한 낭만은 또 어떻고.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and Love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Here I Stand For You>) 누가 그의 낭만에 견줄 수 있을까. 염세이며, 절망이었고, 타락이었지만, 그는 낭만 그 자체였다. 그는 내가 아는, 20세기 마지막 낭만주의자였다. 라젠카를 통해서라도 지구를 구하고 싶었다(라젠카 세이브 어스). 낭만주의자의 언설은 '먼 훗날 언젠가'로 귀결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 배웠다.


마왕 신해철. 

그는 내게 '해철님'이었다. 

그는 내게 어른이었고, 형님이었고, 교주였다. 

그는 내게 무엇보다 ‘히어로(the hero)’였다. 뾰족했던 턱선은 두툼해졌고, 몸은 퉁퉁 불었으며, 카리스마는 수더분함으로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내게 영웅이다.


그런 영웅 하나 품고 있는 삶,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나도 어른이 되어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이 내게 가르쳐준 모든 것을 가끔씩은 기억하려고 해.”(<히어로>)


내 영웅인 허세낭만주의자가 이틀째 의식불명이다.

수술에 수술을 거듭 했지만, 허세낭만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노래를 주야장천 흥얼거리며 들으면서 그의 쾌유를 빌고 있다.


20세기가, 1990년대가 정리해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아직 그를 보낼 순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한 그의 노래는 <절망에 대하여>였다. 


단순 유흥의 자리에선 절대 부르지 않고, 

내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만 부르는 나의 깊은 절망의 노래.


아직 사는 날까지 살아야 하는 낭만마왕이다.


눈물 흘리며

몸부림 치며

어쨌든 사는 날까지 

살고 싶어


그러다 보면 

늙고 병들어

쓰러질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냥 가보는 거야

그냥 가보는 거야




그리하여 어서 그가 놀랬지? 하고, 나타나주길 기다리고 있다. 

그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다. 마왕, 얼른 오시오잉.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가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줘


Here I stand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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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시 하늘동의 은임씨, 듣고 계세요?” | 구름의 저편 2014-10-1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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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학은 누군가에게 부치는 연애편지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은 문학이었습니다. 은임 누나는 “OO씨 듣고 계세요?”라며 늘 이름을 불러주곤 했었죠. 누나는 영화를 통해 음악을 통해 그리고 라디오를 통해 그렇게 우리에게 연애편지를 부쳤습니다. 그리고 받기만 했던 우리가 이제 정든님에게 연애편지를 부칩니다. 


“우주시 하늘동의 은임씨, 듣고 계세요?”



누나가 떠나던 날,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라는 칼럼을 썼어요. 뭣이든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절한 사람에게 붙이곤 하는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꽃을 먼저 꺾어 식탁을 장식하듯, 신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데려가 천국을 장식하신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영원히 변치 않을 사실을 품은 것이 사람살이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떠난 누나를 붙잡고 싶었어요. 그렇게 보내긴 너무 싫었어요. 정은임이라는 이름, 정영음이라는 브랜드는 하나의 계시이자 세례였거든요.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에게 《섬》의 작가 장 그르니에가 그랬던 것처럼요. 


누나, 그것 알죠? 살아가는 동안, 계시는 매우 드물지만 그 계시를 받는다면 삶은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기도 합니다. 누나에게도 그런 계시가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 계시를 접하고선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가 없잖아요. 물 찬 장화처럼 눅눅했던 청춘이 버틸 수 있었던 한 축은 새벽의 그런 계시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은임과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은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죠. 아주 소수를 빼고는 광고와 의미 없는 수다만 난무하는 지금의 라디오 방송과는 달랐어요. 1992년, 첫 방송에서 20년이 지났지만 그 가치와 따스함은 여전합니다. 지금 들어도 여전히 현재성을 띤 것 같은 방송입니다. 남겨준 방송을 들으면서, 추억을 돌리고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품습니다. 우리 귓가에 머물러줘서 늘 고마울 따름입니다. 누군가에겐 지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었던 방송이기도 했고요. 정은임과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 품은 감성과 따스함은 지금 어떤 방송에서도 느낄 수 없는 소중한 날의 꿈이었습니다. 


살면서 누나를 단 한 번도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라디오를 통해 늘 가까이 있는 것 같았어요. 옆집 누나에게 이것저것 털어놓고,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그것을 해주고.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 그랬습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했어요. 그리고 우리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것 같아서 그것이 정말 좋았어요.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들어 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던 지요.



‘On Air’라고 새벽 별빛이 들어오는 네모난 박스 안에서 사람들에게, 이 사회에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던 정은임이라는 아나운서를 여전히 기억합니다. 누군가 써 준 멘트를 앵무새처럼 읽는 많은 아나운서와 달리 세상을 향해 자신만의 길을 조금씩 걸어갔던 누나에게서 나는 조금씩 영향을 받았나 봅니다. 누나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어떤 엽서를 보내도 더 이상 소개를 안 해주겠지만, 남겨진 방송을 통해, 정은임이라는 목소리를 통해 나만의 세상을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누나가 그렇게 좋아하던 리버 피닉스의 요절에 대해 누나는 방송을 통해 이렇게 말했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특히 아주 젊어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 여러 가지가 있죠? 그들은 더 이상 실수나 과오가 없을 테고요, 또 배신도 변절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너무 변하는 세상, 믿지 못할 사람들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참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나가 했던 말이 누나에게 똑같이 적용될지는 몰랐죠? 실수나 과오가 없는 것은 물론, 배신도 변절도 하지 않으며, 너무 변하고 믿지 못할 사람들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을 그 사람이 정은임입니다. 문득문득 누나가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나가 남긴 방송을 듣고, 지금 우리 사회를 생각합니다. 그럴 때면 누나는 어떤 말을 할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해요.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다.” 누나는 여전히 내 가슴에 우리 가슴에 있습니다. 있을 곳에 있는 것이죠. 그래요, 2004년 마지막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지금 뒤늦은 고백이라도 해야겠어요. 함께 있을 때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누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가슴을 영원히 따뜻하게 지펴줄 것 같아요. 누나가 읊어줬던 나희덕의 ‘서시’가 생각나는 가을날의 오후입니다. 이름을 한 번씩 다 불러주고 싶다는 누나에게 이젠 제가 누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요. 


“우주시 하늘동의 은임씨, 듣고 계세요?”


은임씨,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저 FM영화음악의 청취자 김이준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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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을 그리워하는 '기억의 숲'에서 | 구름의 저편 2014-10-1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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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항동의 푸른수목원, 해 지는 노을이 끝내줍니다. 그 노을빛으로 이 가을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요. 그런 곳에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정은임 아나운서를 떠올리는 '기억의 숲'이 무성하게 잎을 피웁니다. 

기억의 숲이 무성하게 잎을 피울 무대는 단촐하며 정든님 정은임을 이야기하기 딱 좋아요. 크거나 거대하지 않아서 좋아요. 조곤조곤 속삭이기 좋은 무대와 넓지 않은 풀밭. 


19일(일) 오후 5시 푸른수목원에서 정은임과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눕니다. 정든님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정도 나누고 기억과 추억을 공유합니다.


더불어숲 축제 전체를 연출하는 장주원 PD님의 요청으로 <기억의 숲 : 제 목소리 들리세요?_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기획하고 진행하게 됐습니다. 정은임을 기억하는, 매년 정은임 추모바자회를 여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기억의 숲>은 영화와 음악 그리고 사람과 사회를 담았던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을 기억하고 현재에 맞춰 재구성하는 시간입니다.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정은임 아나운서의 10주기, 46번째 생일(10월 13일)을 맞아 정은임이 누구인지,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왜 그를 여전히 품고 있는지, <정영음>의 현재적 의미 등을 공유합니다.   


그리하여, 1부 순서에는 ‘우리 마음의 공동체, 느낌의 공동체 <정영음> 그리고 정은임에 대하여’ 노래하고 이야기합니다. 왜 우리는 정은임과 <정영음>이라는 감성 브랜드에 열광하는지, 90년대 정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감성브랜드의 관점으로 [정영음, 정은임]을 말합니다.


알다시피, <정영음>은 단순히 영화음악을 전달하는 기능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청춘의 감수성을 짚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건넸다기보다 시대에 필요한 가치와 의미를 넌지시 생각해보게끔 만들었습니다. 


2부에는 '우리 목소리 들리세요? 정은임을 기억하는 현재에 대하여' 노래하고 이야기합니다. 정은임과 <정영음>은 여전히 우리 마음에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는 자리가 될 겁니다. 지금 왜 다시 '정은임'이며 <정영음>을 떠올리는지, 그 현재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주시 하늘동의 은임씨, 듣고 계세요?"라는 제목으로, 제가 은임 누나에게 보내는 연서를 낭독할 예정입니다. <정영음>에 단 한 번도 보내지 못한 엽서를 아주 늦게 보내는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정은임을 말하고,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시간입니다. 푸른수목원으로 오세요.  

 

<정은임의 FM영화음악> 팟캐스트 => http://www.podbbang.com/ch/1813


오시는 길 : 성공회대에서 가깝습니다. 푸른수목원 오는 길입니다.
http://parks.seoul.go.kr/template/common/park_info/location.jsp?park_id=pureun#use

저녁 무렵 되면 추울 수 있으니, 아니 분명 추울꼬야. 옷 껴입고 오세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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