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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살펴보면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나한텐 밤 9시의 커피가 그 중 하난거 같아. 이 어메이징한 커피, 밤 9시의 커피야! 난 이렇게 멋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어. 이게 내 대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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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 그대로의 쫄깃한 매력 | 시네마카페 2014-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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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긴 어게인 (디지털)

존 카니
미국 | 2014년 08월

영화     구매하기


이건 음악의 서정이다.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와 댄(마크 러팔로)이 뉴욕의 밤거리를 거닌다.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알려주며 함께 듣는다. 별과 함께다. '길 잃은 별'이 그들의 음악에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 그 시끌복작한 클럽에서도 클럽의 음악이 아닌 그들만의 음악만을 듣는다. 아, 나도 그들의 음악적 서정에 함께하고 있는 것 같다. 들썩들썩. 내 몸은 그들의 음악에 맡겨진 채다. 


어쩔 수 없었다. 내 이성으로 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내건 음악들은 하나 같이 내 감성을 집어 삼켰다. 음악의 힘이다. 내게 음악만큼 힘이 센 것은 없다. 나를 무방비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좋은 음악은 나를 황홀경에 빠뜨린다. 그리고 세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레타 혹은 데이브(애덤 리바인)가 "청춘은 왜 청춘에 낭비되어야 하나요?(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하고 '길 잃은 별들(Lost Stars)'의 한 부분 가사를 읊을 때, 나는 기성세대의 협잡에 꽉 막힌 이 시대의 청춘들을 생각했다. 조지 버나드 쇼가 건넨 말이기도 한 이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는 존 카니 감독의 인장이 단단하게 박혀 있다. 전작 <원스>로 음악과 영화의 조율미를 보여준 그는 음악에 대해 헌사를 바친다. 댄의 가사를 통해서도 그것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 그게 바로 음악이야."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어떤 음악을 듣는지 알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지."


물론 음악이 그 사람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음악을 통해 그 사람의 취향이나 관심사, 세계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협동을 떠올렸다. 음악이야말로 협동의 힘이구나. 재능 있는 한 사람의 힘이나 능력이 아닌 조화된 화음으로 엮는 협동의 결정체가 (잘 만들어진) 음악이구나. (직업병인가?ㅋ0


재능을 볼 줄 아는 눈 밝은 프로듀서부터 작곡에 뛰어난 뮤지션과 그를 뒷받침하는 밴드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나를 내내 붙들어맸다. 


꼬옥 안아주면서 놓아주고 싶지 않은 그런 영화와 음악이다. 음악의 힘을 새삼 절감하고, 음악이란 협동의 합주체임을 확인하면서, 여성주의와 성장담이 적당히 버무려진 참으로 사랑스러운 음악과 영화. 의도한 서툶과 날것 그대로의 매력이 나를 사로잡았다. 정확하게는 뉴욕의 공간 곳곳에서 뉴욕의 소음과 모습을 함께 담아내는 순간부터 나는 빨려들어갔다. 음악에 나를 온전히 맡겼다. 날것 그대로의 매력이 온전하게 발산됐다. 


그리하여, 


아, 다시 뉴욕의 땅을 밟고 하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밴드(음악)라는 협동이 하고 싶어졌다. 그냥 날것 그대로. 

공존공생 팟캐스트도 저렇게 만들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무엇보다, 사랑스러워 마구 껴안아주고 싶은 지지리궁상들. 바로 우리들. 

사랑에 속고, 결혼에 치이고, 일은 잘 안 풀리는 날이 훨씬 많고, 조화로운 날은 좀처럼 도리도리.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은 일상다반사고, 상처는 일용할 양식을 배급받듯이 받아야 하는 우리네 삶. 그럼에도 음악이 있어서 견디는 찰나의 행복. 


사람살이의 모든 협동도 < 비긴 어게인 >처럼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도 '아,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이지'하면서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던 어떤 영화의 기억이다. 


노래 참 좋다. 

마룬5의 애덤 리바인, 역시. 연기도 괜찮아. 키이라 나이틀리, 이 멋진 여자사람. 웃을 때 덧니가 어찌나 매력적인지. 앙. <슈팅 라이크 베컴>때부터 알아봤다니까! 마크 러팔로. 섹시함을 죽인 배불뚝이 술주정뱅이 연기, 짱! 무엇보다 억지 로맨스로 빠지지 않고, 대자본 레이블의 유혹을 뿌리치고 스스로 (협동의 밴드가) 노래의 주인임을 선언하면서 선택하는, (어쩌면 다소 작위적인) 결말도 내 구미에 달짝지근하게 흡착. 


<비긴 어게인>. 

이 꽃 같은 세상도 때론 음악 하나의 달큰한 위로만으로도 충분하다. '길 잃은 별들(Lost Stars)'의 유일한 위안이 음악이라면 당신은 믿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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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발자크가 커피를 마신 이유 | 밤9시의 커피 2014-08-2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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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엔, 그리고 우리 커피하우스 단골 중엔 무명의 소설가가 있다. 아니, 무명(無明)이 아니지. 이름이 없다는 말, 내가 싫어하는 표현이니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가 있다. 그럼 어떤 소설을 펴냈느냐? 없다. 그의 가슴과 머리에, 그리고 이른바 '습작품'만 있다. 굳이 따지자면, 그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그는 에스프레소를 즐겨한다. 그것도 리스트레또로. 더 나아가, 리스트레또를 아메리카노 잔에 마신다. 한 번 오면 죽치고 앉아 대여섯 시간을 노트북과 씨름하다가 간다. 아마도 어떤 소설을 쓰고 있으리라. 그런 그를 위해 두세 번 정도 리필을 해 준다. 그는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한 달에 자신이 먹을 만치의 계산을 한다.


오늘, 그를 위해 특별히 준비했다. 커피 이름은,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그를 위한 커피 메뉴다. 커피를 건네면서 메뉴 이름을 말해줬더니, 눈치를 챘는지, 그가 말한다.


"이거, 발자크 맞죠?"


하하. 들켰다.


"역시 소설 쓰는 사람이라 다르네요. 조심하세요. 독해요."


"전 심장 발작(발자크)을 일으키지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 하하."


프랑스의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그는 '소설의 교과서'로 불린다. 발자크의 소설이 보여준 섬세한 구조와 사실적 묘사, 인물에 대한 탐구 때문인데, 그의 걸작 《고리오 영감》이 그것을 대변한다


발자크, '커피 애호'를 넘어 '커피 중독'이었다. 독일엔 'BALZAC COFFEE'라는 커피 프랜차이즈(1988년 시작)가 있을 정도다. 프랑스 아닌 독일에서 그의 이름을 딴 커피 프랜차이즈가 있을 정도니, 의아하면서도 말 다했다.


발자크는 커피에 죽고 살았다. 하루에 30(50~60잔에 달했다는 속설도 있다). 평생 3만 잔을 마셨다고 추정되는데, 그는 커피 없이 못 살았다. 그는 이른바 '소설 노동자'로 불렸다. 하루의 태반을 소설 쓰는데 썼다고 한다. 14~15시간을 소설 쓰는데 투여했다는 그는 그만큼 다산(多産)했다. 74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숱하게 많은 단편을 내놨다.


물론 그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빚을 갚아야 했다. 이른바 '생계형 소설노동자'. 여러 사업에 손을 댔으나 하나 같이 망했다. 사업가적 기질은 꽝이었으나 글쓰기만큼은 잘 했다. 미친 듯이 '이야기하기'를 써댔다. 그것을 위해 '커피'는 반드시 필요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한밤중에 일어나 여섯 자루의 촛불을 켜고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시작이 반. 눈이 침침해지고 손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4시간에서 6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간다. 체력에 한계가 온다. 그러면 의자에서 일어나 커피를 탄다. 하지만 실은 이 한 잔도 계속 글쓰기에 박차를 가하기 위함이다. 아침 8시에 간단한 식사. 곧 다시 써 내려간다. 점심시간 때까지. 식사, 커피. 1시부터 6시까지 또 쓴다. 도중에 커피."


"제가 보기엔, 발자크는 커피를 마시려고 소설을 쓴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게 말이 돼요? 커피가 소설인 이유죠. 죽음보다 지독한 서정이었고요. 하하. 이 정도면 덕후죠, 덕후. 커피 덕후. 커피 오타쿠."


"발자크에겐 커피라는 존재는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창작의 동력. 뇌 주름을 깨우고 상상력을 발동하고 생각의 엔진을 돌리기 위한 심장의 검은 석유죠. 근데, 전 아직도 궁금해요. 커피 때문에 정말 죽었을까요?"


글쎄, 나도 모른다. 그는 심장질환으로 죽었다. 너무 지나치고 과도한 커피로 인해 심장병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다. 말하자면, 커피가 '발작'을 일으킨 셈인가?


"그럼 행복했을까요?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고 예찬하던 사람이 커피 때문에 죽었으니. 어떤 사람은 커피 애호가다운 죽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발자크가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커피도 너무 지나치면 독이 된다. 그 지나침은 물론 보통의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한 방에 80잔을 들이키면 훅~ 간다. 카페인의 분자식은 ‘C8H1ON402’이다. 이것 10그램을 한 방에 먹으면 황천길이다. 카페인 10그램은 일반 커피 잔으로 80잔 정도다


김갑수 선생은 《지구 위의 작업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250밀리그램 이상의 카페인을 먹었을 때 10퍼센트 정도의 사람에게서 불안, 초조감, 안절부절못함, 홍조, 다한증, 손발의 따가운 느낌, 구역, 구토증 등이 나타난다. 1그램 이상의 카페인을 먹었을 때는 극도의 불안, 초조감, 정신착란증, 환청과 부정맥이 있을 수 있다. 10그램 이상에서는 전신발작, 호흡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영혼의 상처 없이 문학은 가능하지 않다. 말하자면 커피는 한잔의 문학이다.”


“커피 하는 입장에선 어때요? ‘커피질도 발자크처럼 하면 정말 쩌는 것 아니에요?”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덕후질도 저 정도면 확실히 쩐다. 뻬쩨르부르그 사람들이 이리 주장했다는데, “사상보다도 예술보다도 돈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지독한 액체, 그것이 바로 커피.” 커피가 서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수가 없다. 발자크에게도 그랬으리라.

“커피, 정말 지독해요. 커피가 없었다면 발자크가 소설을 저렇게 쓸 수 있었을까요? 빚 때문에 죽으려고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 죽음보다 더 지독한 액체죠.”


커피는 한편으로 불행을 극복하는 액체다. 그러니, 만날 빚더미에 눌린 발자크가 이렇게 읊어댔겠지. “불행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되라. 어떠한 지혜로도 불행을 미리 막을 도리는 없다. 그러나 그 불행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은 우리에게 있다.”


홍대 부근의 한 카페, ‘무슈발자크라는 커피가 있다. 무슈는 프랑스 사람, 파리라는 뜻이기도 하고, 아저씨라는 뜻도 있다는데, ‘발자크 아저씨라는 그 커피 역시 진한 에스프레소가 아메리카노만큼 담긴다. 이 커피 주인장 역시 뭔가를 아는 사람인지라, 무슈발자크라는 메뉴 이름 옆에심장 주의라는 경고(?)를 달았다. 이 커피를 100잔 마시면 소설가가 된다는믿거나 말거나까지 말해준다고 한다.


나는 바란다. 부디, 이 소설가에게 나의 커피가 동력이 되길. 발자크에게처럼 커피가 발작을 일으키는 대신, ‘심장이 건너뛴 박동으로 그만의 소설을 완성하길. 나의 커피가 그의 서정과 서사를 온전하게 결합하는데 도움이 되길.


소설가의 표정이 오늘 따라 밝다. 심장이 건너뛴 박동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밤9시의 커피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커피를 만들고 내린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커피가 위 속으로 미끄러지듯 흘러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각이 전쟁터의 대부대처럼 몰려오고 전투가 시작된다. 추억은 행군의 기수처럼 돌격해 들어온다. 기병대 군인들이 멋지게 달려 나간다. 논리의 보병부대가 보급품과 탄약을 들고 그 뒤를 바짝 따라간다. 재기 발랄한 착상들이 명사수가 되어 싸움에 끼어든다. 등장인물들이 옷을 입고 살아 움직인다. 종이가 잉크로 뒤덮인다. 전투가 시작되고, 검은 물결로 뒤덮이면서 끝난다. 진짜 전투가 시커먼 포연 속에서 가라앉듯이.” (발자크, [커피송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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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그리고 박재동 화백님 | 바람구두 이야기 2014-08-2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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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을 거치며,

갑자기 되고 싶은 게 하나 더 생겼다. 그래서 세 개가 됐다.


그 이전까지는 이 두 개였다.

-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

- 만남보다 이별을 더 잘하는 사람


하나 더는 교황이다. 교황. 교황. 교황. 

교황은 황제 냄새가 나서 '교종'이라고 부른다는. 

(으응? 미친 거야? 너무 일이 많아서 드뎌 미친 거야??)


맞다. 프란치스코 교황 때문이다. 

그 미친 인기 오래지 않아 수그러들 거라며 겸손해 했다는 교황.


그냥 교황이 되고 싶다. 인기가 부러워서도 아니고, 간지가 부러워서도 아니다.


낮은 곳, 어두운 곳, 소외된 곳으로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눈길을 돌리는 그 모습. 내가 죽을 때까지 교육 받고 훈련 받아도 되지 못할 그런 경지.


뭐, 나 같은 하류인생이 그런 고상한 이유 때문일리는 없고, 

살면서 누구나 영원히 영글지 못할, 혹은 맺지 못한 사랑 하나쯤 갖고 있잖나.


그런 것처럼 죽을 때까지 그것이 될 수 없으나, 되고 싶은 하나쯤 가지는 것. 그것도 좋지 아니한가! 나는 그것을 교황으로 하기로 했다. 앞선 두 개는 어떻게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교황은...ㅋ


아울러, 나이 들고부터 사람들은 묻지 않더라.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릴 땐 아주 쌩지겹도록 뭐가 되고 싶느냐고 묻더니. 그래서 앞으로 누군가 뭐가 되고 싶느냐고 물으면 "교황"이라고 답할 것이다. 묻는 사람, 당연히 없겠지만.ㅋ


그래서 너에게 묻는다. 

넌 뭐가 되고 싶니?



그나저나 제대로 나이를 야금야금 먹는 것이 나의 로망인데. 

그런 면에서 오늘 봰 박재동 화백님은 좋은 본보기다. 꼰대의 징후를 스스로 성찰하시면서 스스로를 주변에 맞출 줄 아신다. 늘 뵐 때마다 감탄하는데, 놀라운 능력이다. 


오늘 락커처럼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오셨는데, 다시 보니 화백님 옷이 꼭 신부님 옷 같아서 재림한 교황 같다고 말씀드렸다. 껄껄껄껄.


덕분에 즐거운 대화 나누면서 내 마음속에 목련꽃이 피었고 8월의 눈이 내렸다.(함께 있었던 사람만 알 수 있는~) 향긋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별은 그만한 능력과 감각을 갈고 닦은 사람에게만 가능한 무엇이다.


나이 먹는다면 박재동 화백님처럼. 

그리고 나는 교황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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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하는 것이 인간, 그러나 쉽지 않은 협동 | 북카페 2014-08-1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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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구의 정복자

에드워드 윌슨 저/이한음 역/최재천 감수,해설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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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하니까 인간이다. 그럼에도 협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한 능력을 배양한 사람만이 가능한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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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자(그를 이 레떼르에만 가두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에드워드 윌슨은 저서 <지구의 정복자(The Social Conquest of Earth)>에서 인간에 대한 낙관론을 편다. 

윌슨에 의하면, 인간은 협동하고 협력하는 동물이어서 '위대'하다. 이 위대한 동물은 더 나은 문명을 위해 더 큰 사회적 협동과 협력을 부단히 지향한다. 그리하여 협동, 공감능력, 관계망 패턴이 집단의 경쟁력을 좌우하며 이런 형질은 유전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이것을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고 표현했다. 집단 구성원이 이타적 협력을 한다는 뜻이다.)

그가 이런 희망 섞인 전언을 하게 된 것의 기저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자고로 세상은, 인간은 질문 없이 한치도 나아갈 수 없는 법이다. 고갱(의 그림)의 역작이자 대작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 going?) 건강 악화, 생활고, 딸의 죽음 등이 겹치자 고갱은 죽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그리겠다고 다짐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남은 모든 힘을 이 작품에 쏟아 부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고갱의 그림이 어떤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질문, 문자가 생기고 언어가 사회적 약속으로 자리잡으면서 인류가 영원히 품고 갈구해야 할 질문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윌슨의 주장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에 지금 우리의 삶과 일상은 너무 변태적이다. 윌슨은 '정상적인 사람' 누구나 양심에 이끌리며, 비겁한 행위보다 영웅적 행위에, 기만보다 진실에, 발뺌보다 헌신에 더 끌린다고 말했다. 

진정? 그럼 이 사회는 왜 그런가? 양심은 청계천 인공호수에 흘려 보내고, 영웅은 스크린에서나 대면할 뿐 비겁은 일상다반사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고, 무엇보다 인간은 눈에 띄지 않고 또 발뺌의 여지만 있으면 대부분이 남을 속인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정상적인 사람이 소수이다보니 이 모양 이 꼴? 

윌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매일 광화문 광장을 지나칠 때마다 심장은 벌렁거리고 눈시울은 노을빛을 닮는다. 매일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으며 돌아가면서 단식에 동참한다. 서로를 껴앉아주고 광화문 광장은 헌신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권력은 그러나 묵묵부답이다. 그들에겐 권력은 곧 봉사라고 했던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은 미친 개쌍소리니까. 

물론 윌슨이 보는 인간은 모순된 감정을 지니고 있다. 집단을 위한 행동과 개체를 위한 행동이 부딪칠 때 끊임없이 딜레마에 시달린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협동조합도 그런 인간이 만든 제도이자 기업형태이다. 

글쎄. 나는 여전히 협동조합이, 노동자협동조합이 최선이라고, 한 번 해보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협동조합은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일상의 자세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선택지라고 (대외적으로) 씨부렁거리지만, 씨바 '인간이 진짜 협동이 가능해?'라는 질문에 늘 봉착한다. 협동노동, 말은 좋은데, 손에도 마음에도 아직은 쉬이 안 잡힌다. 

노동자협동조합밖에 없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변덕이 한여름 날 스콜과 햇빛이 교차하는 날씨 같다. 

그러니 혼자 위로한다. 아, 인간적이다! 
협동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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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없는 세상 | 시네마카페 2014-08-13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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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죽은 시인의 사회

피터 위어
미국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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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를 통해 그 소식을 듣자마자 심장이 덜커덕 내려 앉았습니다. 따가운 여름 햇살이 심장을 바짝 쫄이는 그런 느낌. 쫄깃해진 심장을 부여잡고 할 말을 잠시 잃었습니다. 그리고 "아..."라고 터져나오는 장탄식. 8월 12일, 어느 여름날 불현듯 불시착한 비보였습니다.  


캡틴이 떠났습니다. 


오 캡틴, 마이 캡틴. 

다시 한 번 그 말을 나지막이 내뱉아 봅니다. 


젠장젠장젠장. 사실 쉽게 수긍이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추정이라니. 그는 캡틴이었는데 말입니다. 캡틴이 스스로 죽은 시인이 되는 건, 쉬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거부합니다. 


로빈 윌리엄스. 명배우. 더 이상의 수식어가 그닥 필요하지 않는 그입니다. 


영원히 내 머리속에서 잊히지 못할 장면으로 각인된 그입니다. 그가 교실을 떠나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 되고야 맙니다. 눈물 그렁그렁하며 시인(학생)들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가득한 어떤 애정. 


붙잡고 싶었으나 잡을 수 없어 떠나 보내야 했던 키팅 선생처럼, 그 역시 붙잡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 교실에서 책상 위로 올라설까 말까 우물쭈물하는 학생이 된 기분이랄까요. 

그러다 마침내 책상 위로 올라섭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오 캡틴 마이 캡틴. 벌떡 영화관에서 일어났던 고등학생 2학년 소년을 기억합니다. 울먹이며,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을 생각도 않고 떠나는 캡틴을 함께 배웅하던 그 소년. 한국의 좆 같은 교육 현실에 그저 묵묵하게 침잠해 있던 소년에게 그것은 하나의 계몽이자 계시였습니다. 캡틴은 '시적 정의'를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소년에게 선생의 바람직한 기준은 키팅 선생으로 세팅되었습니다. 물론 전과 후로 그는 키팅 선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운이 없었던 것이겠죠. 드물게라도 한국에도 키팅 선생이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고딩 시절 잊을 수 없는 잔상을 남긴, 내 마음속 캡틴 키팅 선생을 그렇게 떠나 보냅니다. 안녕, 키팅 선생님. 땡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키팅 선생의 모습을 보니 왜 그리 짠한지요. 잊지 못할 이 장면,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이 장면.  




그는 따지고 보면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피터팬으로 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키팅 선생이 남긴 그 인장이라는 것이 워낙 강렬했었거든요. 더구나 그 사춘기 시절, 오죽했을까요. 늙지도 않고 교실을 떠났던 그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던 우리 로빈 아저씨. 


<후크>에서 피터팬(이 늙은 모습)으로 등장했던 그를 기억합니다. 아마 로빈 아저씨는 이제 지구가 아닌 네버랜드에서 영원히 살겠지요. 어쩌면 가야 할 곳으로 간 셈인가요.ㅠㅠ 

좋아하는 이들과 로빈 윌리엄스 영화를 함께 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른 사람들이 <굿모닝 베트남> <굿 윌 헌팅> <패치 아담스> <후크> <패치 아담스> 등 각자 보유하고 있는 로빈 윌리엄스 가지고 와서 함께 그를 그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무엇보다 캡틴을 위해 

'천국보다 아름다운' 커피를 볶아 제공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캡틴을 그리며, 책상에 올라서게 될까요. 그리곤 외치게 될까요. 


오 캡틴 마이 캡틴.

   

'천국보다 아름다운' 곳으로 가셨기를 바랍니다. 그곳이 네버랜드여도 좋고, 산 시인의 사회여도 좋습니다. 그곳에서도 <굿모닝 베트남>에서처럼 흥겹고 신나는 방송을 하면 좋겠습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재단이 캡틴의 죽음을 독특하게 애도했네요. 공식 SNS에, "지니, 당신은 자유요(Genie, you're free)." 캡틴은 애니메이션 <알라딘>에서 램프의 요정 지니의 목소리 연기를 했었고, 이 말은 알라딘이 지니에게 건넸던 말이었죠. 


하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캡틴은 그렇게 자유를 이야기했었죠. 진짜 자유. 내가 찾는 자유.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뭐라 비웃든 간에."


고맙습니다. 캡틴 덕분에 웃고 즐겁고 행복했었습니다. 내 청춘의 일부분은 캡틴과 함께였다는 사실, 잊지 못할 겁니다. 


오 캡틴 마이 캡틴.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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