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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바람을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 | 시네마카페 2015-01-31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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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이란/프랑스 | 2005년 09월

영화     구매하기

걷기 얘기부터 꺼내야겠다. 이 영화는 걷기를 충동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걷기를 사유하도록 만든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걷고 있었는지를 묻는다. 걷기는 직립보행하는 인간의 정체성이다. 


걷는 인간 죽어도 안 걷는 인간 》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농업혁명 이후에는 비록 정착된 생활을 했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은 끊임없이 걸어야 했다. 농경사회에서의 노동력이란 다름 아닌 무언가를 나르고, 심고, 뽑고, 수확하는 등 모근 것이 '걷기'를 바탕으로 한 노동력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된다. 걷지 않아도 노동을 할 수 있고, 걷지 않아도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노동 환경과 이동수단의 변화가 '걷는 인간'을 '걸을 필요가 없는 인간'으로 바꿔 버렸다.(중략) 정보화 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은 더욱 걸을 필요가 없어져만 가고 있다. 산업화 시대가 물려준 혜택을 고스란히 받았고, 거기다 훨씬 고도화된 문명과 기술의 발전이 주는 혜택까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걷기가 일상이 아닌 특별한 '운동'으로 돼 버린 현실이 문득 떠오른다. 2010년대 전후로 불었던 걷기 열풍의 이면에는 '걸을 필요가 없는 인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걷기, 명상을 추동하다 


근육과 관절로 발을 내딛고 끌어당기는 걷기는 지금 우리에겐 별반 의미 없는 행위가 되고 말았다. 혹은 특별하게 의미를 만들어야만 가능한 무엇이 됐다. 따라서 발은 더 이상 주요 이동 수단이 아니게 됐다. 걷기는 한편으로 천덕꾸러기 같다. 사람들은 운동의 목적이 아니고서는 굳이 걷는 일을 택하지 않는다. 왜. 그럴 필요도 없고 귀찮으니까. 사람들은 걷기로부터 그렇게 점점 소외돼간다. 사람들이 걷기를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를 걷다 보면 그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을 때가 있다. 과거 도보 여행을 할 때가 그랬다. 매년 길을 이어서 걷고 또 걸으면서 나는 걷기에 대해 새삼 생각할 수 있었다. 땅을 딛고 근육과 관절로 발을 내디디면서, 혹은 오랜 걷기로 통증이 엄습할 때마다, 나는 걷기가 노동의 본질이며,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 중 하나는 직립보행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물론 길이 있기에 가능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아, 길은 명사라기보다 동사구나! 그 길은 내 가슴 속에도 있지만 그 길 역시 자신과 교감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길도 생로병사를 닮았다. 다시 나와 만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그 길이지만 걸을 때만큼은 내 몸과 교감했었다. 그러하기에 그 길도 내 몸과 걸음을 품고 있을 것이다(라고 여기고 싶다).  


내 몸의 일부는 그렇게 땅과 마주대하면서 길의 기억을 품었다. 그 땅도 그 길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길과 내가 만났다는 사실만큼 그 순간에서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 질감은 다른 누군가에겐 설명할 수 없는 우리만의 것이었다. 그것은 걷기를 잃은 곳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자동차에 살해당하거나 짓눌려 사는 서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무엇. 자동차의 바퀴들만 흔적을 남기는 서울의 길에는 그래서 사람의 발에 대한 기억이 없다. 기억을 잃은 도로, 기억을 가질 수 없는 길의 비극이다. 


그렇게 걷기는 힘든 만큼 좋았다. 땅이 발에 저항으로 작용하지만 발은 그 저항을 뚫고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생명력을 느꼈다. 발이 땅을 딛고 나아가는 것에서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내 몸과 대지의 합주는 불협화음이지만, 그것이 묘한 화음으로 변주된다. 불협화음의 화음. 생의 많은 부분은 그렇게 이뤄지는지도 모르겠다. 


걷기를 통해 극기와 국토 사랑을 배운다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것은 생짜 거짓말이다. 멋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몇 년 전까지 매년 시행됐던, 한 드링크제를 만드는 제약회사에서 매년 여름방학에 대학생들을 모아 '국토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한 이벤트가 있었다. 한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이었던가. 앵커의 말이 "극기와 국토 사랑을 배운다"는 것이었다. 코웃음을 쳤다. 육신의 고통과 조국 사랑을 결부 짓는 건 개발 독재 시대에나 건넬 법한 넌센스다. 한마디로 후지고 낡아빠진 이념의 과잉이다. 하긴 지금이라고 다를 쏜가. 아버지의 개발 독재를 물려 받은 '무지 협잡'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바람을 타고 구름 속을 산책하듯 거닐었던 행로 속에서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그때 그 시절, 내 걷기의 전성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바람도 자고 가는 시골마을의 풍경 


서른둘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진 이란의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 

그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라는 詩에서 이렇게 읊었다. 


그대의 손, 그 불타는 기억들을 내 부드러운 손위에 얹고

생명의 온기로 충만한 그대의 입술을 

내 갈망하는 입술에 맡기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마치 낙엽에게 그러하듯이


그리고 그의 詩를 좋아한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詩 제목을 그대로 빌어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만들었다. 제목만큼이나 영화는 여유가 충만하다. 배경은 한적한 시골의 어느 마을이다. 지도에도 없는 외딴 마을 '시어 다레(검은 계곡)'로 들어선 베흐자드 일행은 마을 사람들에게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이다. 이들은 마을 최고령 할머니의 장례식을 취재하기 위해 들어온 촬영팀이다. 장례 때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여인들이 얼굴에 상처를 내는 이색적인 의식을 취재하고자 이곳에 왔다. 


이 촬영팀은 그러나 목적을 잃고 헤맨다. 사람의 죽음을 놓고 펼쳐지는 의식을 몰래 담아내고자 왔지만 마을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과 넉넉한 자연 앞에 빠져 자신들이 찾아온 목적을 깜빡깜빡 잊는다. 특종을 잡기 위해 왔건만 베흐자드 일행은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기다리면서 서서히 변화한다. 걷기의 속도에 천천히 스며든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재촉하기만 하던 일상에 익숙했던 그들에게 달팽이마냥 느려터진 마을은 신기한 체험이다.   


타자기가 그러했고, 컴퓨터가 그러했으며, 인터넷 또한 그러했다. 스마트폰은 거의 그것의 총합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일을 처리하고 되도록 많은 일을 처리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폭력이자 일상이다. 3일 만에 마을 장례식을 취재하고 돌아가 방송을 틀겠다는 베흐자드의 욕심은 지금 우리의 일상적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우리네 풍경이다. 


평화롭고 여유가 넘치는 산기슭


걸을 때 나는 한층 여유로웠다. 어딘가에 꼭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도 없었고, 걷기 자체가 주는 여흥을 즐겼다. 여유로움이 나를 채워 넣고 있었다. '타기'가 아닌 '걷기'가 준 선물이었다. 이동의 수단을 바꾸니 나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마을에 스며든 베흐자드 일행의 변화에 그래서 충분히 동감할 수 있었다. 나는 걸을 때 대지의 촉감을 느꼈다. 자동차의 바퀴 위에 앉아 있었다면 느낄 수 없는 무엇이었다. 발로 땅을 밟았기에 채울 수 있는 감정. 세상은 띄엄띄엄 듬성듬성 엄벙덤벙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세상은 그걸 용납지 않으려 한다. 촘촘하게 빡빡하게 가열차게...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여백을 알려주는 영화다. 산들바람에 몸을 뉘이는 벼 이삭들의 몸놀림을 관조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할머니의 죽음을 학수고대(!)하던 베흐자드는 확실히 변한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조차 없던 그는 한 사람을 구출하기까지 한다. 이전과 달라졌다. 그러니까 시어 다레 마을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사건'이 됐다. 나의 도보 여행길도 그랬다.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갈라진, 앞서로 돌아갈 수 없는 하나의 사건. 



삶은 계속된다


북한산 관통도로를 내기 위한 터널공사를 놓고 왈가왈부한 적이 있었다. 지율스님은 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 중단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자본이 승리했다. 국가의 승리가 아니라 자본의 승리였다. 경제적 효율성과 편이성과 실용성만을 따지고 계산하는 삶의 방식이 이겼다. 그 후안무치가 도룡뇽의 생을 파괴하고 우리의 마음을 지운다. 남은 것은 오로지 경제적 가치와 자본의 계산이다. 짐승적 편리와 특정 계층의 주머니만 채워졌다. 


인간의 욕심은 '령'을 빼앗아 갔다. 몇 년 전 죽령, 이화령, 대관령에 터널이 뻥뻥 뚫렸고 좀 더 빨리 목적지에 가려는 인간의 욕심은 더 많은 '령'들의 가슴을 계속 뚫어놓고 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길'은 점점 더 인간에게서 멀어진다. 인간의 길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우릴 데려다줄 수 있는 여건도 척박해지고 있다. 


나는 걷기에서 멀어진 일상을 다시 살고 있다. 전쟁터가 아닌 지옥에서 밥벌이의 힘겨움과 지겨움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하루를 산다. 걷기의 사유를 통해 얻었던 고즈넉함과 여유, 느슨함은 마음의 기억에서만 작동한다. 물론 나는 그런 마음의 기억을 통해 바람이 데려다 주었던 길을 떠올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 서 말했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중략)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중략)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나 역시 그처럼 밥벌이를 지겨워하고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 십분 동의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가끔 바람을 원한다. 내 등 뒤로 불어오는 바람결을 느끼면서 황금빛 밀밭 풍경을 눈 가득 담을 수 있는 그런 순간. 걷기에 충만하게 채울 수 있는 그런 순간을 말이다. 가끔 나는 그렇게 그런 순간을 만난다. 다행이다. 나는 아직도 바람을 맞을 자격이 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무들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에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_ 걷기 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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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게끔 만드는 것에 대하여 | 약속의 장소 2015-01-2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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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자가 주인인 우리의 회사 '이피쿱'이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협력코디네이터 기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센터 등과 논의 과정이 남았지만, 이제 곧 서울 사회적경제의 심장부에서 이피쿱과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이피쿱의 맛있는 커피 향미는 덤이요~!

나를 비롯해 이병욱, 오승준, 최연식 등 이피쿱 조합원들이 함께 힘을 모았고, 이 쪼매난 이피쿱과 고맙게도 협력하고 연대하겠다고 손을 덥석 잡아준 미디어콘텐츠창작자협동조합, 모두를위한극장, 해피브릿지(HBCC) 덕분에 뽑힐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언컨대, 이피쿱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이피쿱이 회원사로 속한 대안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에서도 협동과 협력, 연대의 움직임이 있고, 이곳저곳과 협력하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서울 사회적경제의 심장부에서도 흥미롭고 재밌는 협동 플랫폼을 함께 잘 만들고 싶다.


이뤄질 수 없는 숱한 공상과 몽상, 낭만 속에서 허우적거리겠지만,(그게 나다!) 

협동을 통해 일군 작고 사소한 성공의 흔적을 새기고 싶은 작은 욕심이 있다.(큰 욕심인가?!ㅋ)

어떻게하면 협동을 잘 할 수 있을까. 협동의 문화를 어떻게 몸에 배게끔 할까.

여전히 쉽지 않다. 나는 여전히 독고다이 기질이 강하고 편협하고 편파적이며 편중된 인간이다.


그럼에도 태도!!!  

최소한 협동 코스프레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협동할 줄 아는 태도(애티튜드)를 갖추는 것. 

태도가 단순히 사람의 자세나 행동만을 뜻하진 않는다. 

태도는 오랜 생각과 습관의 표현이다. 

자신에게 다가온 일이나 사안에 대해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기는 삶의 방식이다. 좋은 사람은 좋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좋은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르트르는 태도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협동을 잘 하겠다는 표현보다 협동의 태도를 제대로 몸과 마음에 배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인생이라는 이 고차방정식은 누구 말마따나, 일어난 10%의 일에 그 일에 대한 반응과 태도 90%로 구성되니까. 즉, 사람을 사람이게끔 만드는 것은 태도일 수 있다.



2. <K팝스타>에서 유희열이 뮤지션 이진아에게 말했다.


"지는 게임에도 잘 하고 떨어져야지."


타인의 평가에 스스로를 맞추고 옭아매기보다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키라는 뜻도 포함돼 있겠지. 이 생은 어떻게든 지는 게임일 수밖에 없다. 내 걸 하고 떨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게 내게 허락된 세상인 것을.


그런데 사람은 재밌다. 

때론 지는 줄 알면서도 부딪히고 맞장을 뜬다. 그게 사람이다.



3. 며칠 지나서 하는 얘기지만, 

지난주 네버 메인에 이피쿱이 덜컥 오르고 내 사진이 게재돼서 심히 놀라고 좀 부담스러웠다. 한참 지난 이야기가 어쩌다 저렇게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는 걸 보니 네버는 역시. 그래도 살다살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싶어서 캡처로 남겨 뒀다. 


나, 네버 메인에 잠깐 올라간 듣보잡이야!!ㅋ 

나, (정)우성이형과 동급이야!!(물론 얼굴은 반의 반도 안 되지만ㅠㅠ)

나, 앞으로 동우성(정우성과 동급)으로 불러주~


불편한 게 있긴 해도 저렇게 올라가니 신기한 것도 사실이다. 나란 사람이 그렇다.ㅋㅋ



4. 박재동 화백님을 마주한 시간은 늘 행복하고 유쾌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순 없겠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도 한다! 옛 연인들이 그랬었다!!)


그런 좋은 에너지를 가진 분과 함께 시공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복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이다.


플루트를 통해 음악 선율이 공간을 감싸고, 

그 선율에 심취한 예술가가 그 행복한 공기에 연주를 덧붙인다.

아름답다는 말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아.름.답.다.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화백님의 말씀에 덧붙여,

그런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순간에 이게 사람이 사는 거구나 싶은 감정이 인다.


찰나에 느낀 아름다움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나는 기적을 만난 것이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줄 아는 어른으로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감각이 무뎌지지 않도록, 아니 어쩔 수 없이 무뎌지겠지만 천천히 그리 되도록 감각의 근육을 계속 훈련시켜야겠다. 인간이라면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없지, 아무렴.


다가오는 봄, 

화백님과 출판사와 갑님과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봄날의 어느 주말, 봄나들이 오시라~



5. 며칠 전, 박노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진정한 능력은 남들과의 경쟁적 비교가 아닌 남들과의 연대, 그리고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창성으로부터 비롯된다. 획일적 '성적순'으로 재단되는 '실력'의 저주에서 벗어나 남들과 연대하면서 자기만의 길로 가는 것만이 인간이 살 길이다."


연대하면서 자기만의 길로 가는 것.

아, 좆나게 어려운 게 인간의 길이구나.


오늘의 선곡은 그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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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봄의 땅과 함께 협동 완생을 | 함께 살자!(공유와 공동체) 2015-01-2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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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협동 완생.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그럼에도 이런 소.박.한 꿈이라도 품지 않고 어찌 살겠는가.



2010년의 내 첫 영화였었던 <더 로드>(코맥 맥카시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절망을 스크린으로 보자니 그 또한 먹먹했다. 가끔 울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뭔 짓이든 저지르는 미래의 인류는 지금의 은유였다. 미래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건 현재였다. 


길을 걸으면서 아들은 끊임없이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우린 좋은 사람들인가요?"


인간이 인간을 먹는 흉포한 현장. 아들은 끊임없이 아빠에게 묻고 또 묻는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아빠, 우린 좋은 사람들인가요?" 아빠는 그런 아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그래, 우린 좋은 사람들이야.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도 안 잡아먹어." 아니 그것은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대답이라기보다 자신을 향한 다짐 또 다짐이었을 것이다.


아들의 질문은 아빠를 계속 좋은 사람으로 남게끔 유도하고,

아빠는 아들의 질문을 통해 자신을 다스렸다.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무엇.


협동에 완생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완생을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협동하고 또 협동하라. 어려운 일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일만큼이나.

협동조합 내에서 협동하고, 다른 협동조합과 협동하고, 다른 조직과 협동하고. 

아, 세상과 협동하고? 흠, 주류 (개판)세상과 협동(협잡)하는 일은 피하고 싶다만.


이피쿱 조합원 변동이 있었고, 협동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협동하기 위해선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할까. 협동은 어떤 조건에서 가능해지는 것일까. 협동은 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틈입하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협동 코스프레'는 하지 말아야 겠다. 


협동조합으로 출발했다가 결국 완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식회사로 조직을 꾸린 회사의 대표를 만났다. 짧게 이야기를 나눴던 지라 속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아직 우리의 몸과 마음에 익지 않은 협동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고단함도 한 몫했으리라 지레짐작도 해본다. 나중에 들어봐야지. 


사흘 동안의 협동 완생. 나름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아들은 아빠에게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 "아빠, 협동 완생이 가능해요?"

아빠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


아, 까먹을 뻔 했다. 

엄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커피는 이피쿱이지. 늘 그랬듯이."



2. 강민수 쿱비즈 대표님의 협동주옥 같은 글이 눈에 반짝. 

<성공이냐 실패냐 분수령에 선 한국의 협동조합>


미국의 쿡이라는 협동조합 학자가 언급한 미국 협동조합의 5단계 발전사를 언급하면서, 자본 부족 문제나 조직구조 전환 등을 얘기했다. 그리고서 방점은 이렇게 꿍야!


"협동조합의 자유로운 설립, 실패를 줄이는 운영, 개별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을 돕는 협동조합 생태계의 구축 그리고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협동조합교육,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을 넘어서는 협동조합 업종의 문제는 한국의 협동조합을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사람 모두의 공동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제 협동조합을 하는 사람 모두 다 한 배를 탄 동지로 서로를 보듬고 가야 한다."


아, 공동의 과제. 한 배를 탄 동지. 

아직은 공개할 수 없지만 조만간 본격적인 출정을 준비할 '달달한 협동 플랫폼'에 대한 단초를 얻었다.



3. 오늘,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 공정무역 생두를 무려 세 파렛이나 질렀다.

작고 쪼매난 이피쿱으로서는 크나큰 결단이자 결정이다. 이제 남은 건, 커피 생산자들의 노동과 대자연의 노동을 우리의 노동을 통해 제대로 향미를 내고 사람들로 하여금 맛보게 하는 것. 알싸하고 풍미 좋은 커피의 향을 만나게 하는 것.


이윤선 테라로사 대표님에게 '영원한 봄의 땅' 과테말라 이야기를 듣는데, 어찌나 흥미진진하던지. 머리에선 과테말라의 풍광과 마야 문명이 뭉게뭉게 피는데, 그곳이 정말로 가고 싶어졌다. 해발 1900미터의 땅에 서서 커피를 따고 볶으며 마시는데, 아 띠바 여기가 천국이구나.


결심했다. 'El Pais de la Eterna Primavera' 영원한 봄의 땅, 과테말라의 우에우에테낭고에 가기로 했다. 가야겠다. 가지 않으면 병이 나겠다. 


맛있고 향긋하게 드릴 터이니, 

자, 이피쿱 커피 많이 사주시라. (나를 과테말라에 보내주~) 

협동해주시라! 협동완생합시다!


그리고 당신에게 맛있는 커피를 건네며 말을 건네겠소. 

<더 로드>에서 아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던 아들처럼, 

'커피를 마시기 전에 물어야 할 질문들'을 할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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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홀리, 22년, 로맨틱, 성공적 그리고 용산 | 시네마카페 2015-01-20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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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티파니에서 아침을

블레이크 에드워즈
미국 | 2011년 08월

영화     구매하기


카페 문을 열었다. 

문 리버(Moon River), 새벽 5시45분, 맨해튼, 티파니, 커피 한 잔, 데니시 페스트리, 오드리 헵번...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그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첫 번째 싱글걸'이 그랬던 것처럼 첫 손님에겐 커피 한 잔과 데니시 페스트리를 건넨다.


그리고 이날의 커피 메뉴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오드리 헵번 때문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오드리 헵번. 문 리버의 달콤한 선율. 그것으로 충분했지만 오드리가 분했던 홀리 골라이틀리. 그 흥미로운 전복적 공기 때문이다. 모던 싱글걸의 탄생, 그리고 여성상에 대한 전복. 홀리는 당대의 공기를 바꾼 장본인이었다.


미국 이야기지만, 물론 한국에선 이것도 한참한참 뒤의 이야기지만,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전에는 나쁜 여자들만 섹스를 즐길 수 있었다."


영화학자 샘 왓슨의 책 [오드리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했던 전언처럼, 195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 '혼자 사는 여자'는 배드걸이었다. 말하자면, 싱글걸은 색안경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오드리 헵번의 홀리 골라이틀리, 

이 배드걸을 굿걸로, 더 나아가 '워너비'로 만들었다!

영화감독 빌리 와일더는 "혼자 힘으로 풍만과 육감의 시대를 바꿨다"고 표현했다.


대개의 경우, 시대가 여성상을 만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백은하 기자의 말마따나, 어떤 여성들은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열어젖힌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홀리가 그랬다.


한 마디로 홀리는, 

예기치 않게 자유와 반권위의 60년대를 열어 젖힌 아이콘 중 하나가 됐다. 이전에는 없던, 아니 있었으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억압 당했던 여성(상)을 봉인에서 풀었다.


당연하게도 오드리 헵번이 아니었으면(마릴린 먼로가 캐스팅 0순위였다),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베스파를 전 세계로 퍼뜨린 귀여운 공주로 나온 <로마의 휴일>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을 더 좋아하는 이유다.


커피쟁이로서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가 나온 1961년은 에스프레소 머신의 레전드인 Faema E61이 등장한 해다.


간략하게 Faema E61은, 

지금 볼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원형이다. 9Bar 정도의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추출이 가능해졌다. 그룹 헤드 형태가 나타났고, 기존 보일러의 결점이 극복된 이중 보일러가 사용됐다. 수직구조였던 머신을 수평형으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도 됐다. 커피사업의 대형화, 프랜차이즈를 가능하게 만든 계기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니, 

1월 20일의 커피는 Faema E61에서 뽑아낸 커피 한 잔과 데니시 페스트리, 그리고 티파니와 함께(음, 티파니는 비싸서 어렵겠군ㅠ).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같이 로맨틱, 성공적, 이면 더욱 좋겠고.


오드리와 함께 티파니에서 커피를. 

모쪼록 이날의 커피를 만들면서 작은 바람이라면, 

훗날 새 시대를 열어젖히는 홀리 같은 여성에게 커피를 건네는 것. 

문 리버를 배경음악으로 커피를 내리는 것. 


아 물론, 

함께 기억해야 할 사람이라면, 트루먼 카포티. 영화의 원작자.


망원역 가까이에 '오드리 헵번' 카페가 생겼다. 

이곳엔 1월 20일 어떤 '특별한' 메뉴가 나올까. 오드리가 22년 전 떠난 오늘. 

1993년 이날, 일찌감치 영화계를 떠나 유니세프 대사로서 인권운동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아동인권 보호를 위해 헌신했던 오드리는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3월 8일까지 동대문 DDP에서 열리는 오드리 헵번 전시회 ‘뷰티 비욘드 뷰티’에 가는 것도 강추. 특별히 22주기인 오늘,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천원만 기부하면 전시회에 입장할 수 있다. 모금된 금액은 전액 오드리 헵번 어린이 재단에 기부된다.


지금 이 시대, 

노동 윤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내일을 위한 시간>이 3만을 돌파했다. 

주연인 마리옹 꼬띠아르는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마리옹은 정말 예쁘다. 내게는 포스트 오드리 헵번이다. 

마리옹이 아카데미상을 탄다면, 그녀만을 위한 커피를 만들고 싶다.


무엇보다 잊지 말 것. 용산. 6주기. 

오드리도 용산에게 추모와 애도를 보냈을 것이다. 지금은 하늘에서 함께.

오드리와 함께 용산에서 커피를.


오늘도 그렇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쓴다.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일과 기억하는 방식이다.


나는 그렇게, 당신과 커피 한 잔을 나눈다. :)  

당신은 내게 홀리 같은 사람이니까. 오드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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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란 여자 | 북카페 2015-01-1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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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저
민서출판사 | 2002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책을 읽으면서도 덮고서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십대의 나는 그렇게 전혜린에 매료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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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직 여자(들)만 생각했다. 특히 여자 둘. 

대학로 학림다방을 갔어야 했지만, 가진 못했다. 이 여자들을 떠올리기에 그만한 곳은 없다. 커피를 마시며 두 여자를 떠올렸다. 커피향에 어울리는 여자들이다. 떠난 여자들이지만. 


두 여자는 이른바 '센' 여자들이었다. 

매력이 넘쳤고, 뇌든 외모든 패션이든 각자의 것으로 섹시한 여자들이었다. 

대부분은 그렇다. 시대가 여성상을 조각하거나 만든다. 이들은 달랐다. 자신만의 것으로 시대를 연 여자들이다. 그것도 거의 혼자의 힘으로. 


1월 10일은 그렇게 두 여자, 전혜린과 코코 샤넬. 


코코 샤넬은 커피 만드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융숭시킨 시발점이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핸드백에 끈을 달아서 두 손을 자유롭게 만들어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두 말하면 잔소리. 저지드레스, 카디건 슈트, 샤넬 슈트, 나팔바지, 단발머리, 트렌치코트, 터틀넥스웨터, 리틀블랙드레스, 샤넬 No.5... 


기자들이 마릴린 먼로에게 물었었다. 밤에 뭘 입고 주무세요? 물론 말초적이고 선정적인 답변을 기대했겠지. 먼로는 그런 기자들에게 한 번 씨익 웃어줬겠지. 우문에는 현답. 샤넬 No.5를 입어요. 빙고. 그렇게, 샤넬의 시대였다.  


샤넬은 명품이라기보다 스타일의 시작이요, 독창적인 시그니쳐 룩이다.  

불필요하고 허세 가득한 쓸모없는 복장은 꺼져라! 

샤넬은 20세기 복식 혁명을 일군 장본인이다. 

여성을 옷뿐만 아니라, 시대의 속박으로부터도 해방시켰다. 그것이 샤넬 스타일이며, 당신에게 샤넬 제품이 없을지 몰라도, 샤넬 스타일은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프랑스의 시인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장 콕토는 카페 동료였던 샤넬에 대해 이런 평을 남겼다.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잔인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자. 분노, 변덕스러움, 친절함, 유머, 반짝이는 생각, 검소함, 그리고 관대함이 샤넬이라는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의 모든 것이다." 


세상에, 이런 찬사라니. 세상에 다시 없을 찬사를 받은 여자, 코코 샤넬. 

장 콕토가 샤넬에게 했던 말을 한국에 적용하면, 전혜린이 아마도? 


전혜린은 "1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평가에 비해 그가 세상에 남겨 놓은 유산은 터무니 없이 부족해 뵌다. 지나치게 견고했던 세상은 그를 감당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세상은 대범하지도, 과감하지도 못한 쫌생이였다. 


그는 스스로 휘발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잘나고 멋진 여성을 품지 못한다. 그의 선택을 나는 비난하고 싶진 않다. 떠난 이의 내적 동기를 단정짓기도 어렵고, 그가 품은 세상에 대한 불화는 또 얼마나 부대꼈을까.  


서울대 문리대생이었던 전혜린의 단골 커피하우스가 학림이었다. 그가 떠난지 50년이 됐다. 그가 죽기 하루 전, 1월9일 그는 학림다방 오른편 맨 구석 창가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그 자리,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학림을 갈 때마다 그 자리부터 눈길을 둔다. 


두 여자는 여전히 낙후되지 않았다. 여전한 낭만이다. 죽은지 50년이 지나고, 44년이 흘렀지만 두 센 여자의 스타일은 여전하다. 1월 10일은 두 여자를 위한 커피를 만들고 마실 때다. 영하의 날씨에도 그들이 품은 낭만과 스타일은 후끈하다. 


전혜린을 이야기하고 나눴던 그 여자도 떠오르는 밤이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스물을 넘기고 만났던 이 책은 멍청하게 웃자란 소년에게 벼락처럼 다가왔었다. 

놀라운 책이었다. 한국에 그것도 60년대에 이런 여자가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부터 그 사유는 깊고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였었다. 물론 내게 전혜린은 당시 허세였을 것이다. 여자들이, 특히 문학소녀를 꿈꾸던 소녀들이 들먹이던 그 이름이 궁금해서였다. 그리고 똑똑하고 예쁜 여자들이 전혜린을 언급하는 것에 솔깃해서 책을 머나먼 땅까지 굳이 들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정부분 먹히기도 했다. 


그리고 전혜린은 여전히 학림다방의 존재처럼 살아 있다. 50년. 살아 있다면 81세. 글쎄 서른 하나의 나이 '세코날 마흔 알'로 생에 종지부를 찍은 그이였지만, 그는 언제나 어른이었던 것 같다. 심장이 사랑하는 것으로 매순간을 끊임없이 채우고 싶어 했던 영원한 낭만주의. 그것이 죽어도 죽지 않은 전혜린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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