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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권정생 공저
양철북 | 2015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도반이라면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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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대문호 알베르 카뮈는 자신의 글쓰기를 의심했다. 그래서 그와 편지를 주고받던 장 그르니에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솔직히 제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스승격이었던 그르니에는 카뮈를 다독이고 독려했으며, 카뮈는 그에 고무받아 글쓰기를 계속해 나갔다. 그르니에가 아니었다면 이방인》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17세의 소년 카뮈와 32세의 장 그르니에는 1930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한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로서 처음 만났다. 카뮈가 폐결핵으로 한 학년을 꿇으면서 우정이 급속도로 발전한 두 사람은 19세와 34세 때부터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계기는 카뮈가 읽었던 한 책으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1930년 출간된 그르니에의 》을 읽고 그는 자신의 책 서문에 이렇게 적은 바 있다.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두 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을 관통하고 있는 그러한 영혼의 떨림은 어쨌든 첫날부터 나의 경탄을 자아냈고 그리하여 나는 그 떨림을 모방하고 싶었다."


계시. 두 지성의 만남 역시 계시에 의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카뮈가 47세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서신을 주고받았다. 28년 동안 오간 235통의 서신을 모은 것이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이었다. 이 편지라는 형식으로 채워진 내밀한 대화는 사랑과 신의에 기반한 영혼의 교감임을 엿볼 수 있다. 카뮈는 이 사제 관계 이상의 우정에 대해 "예속도 복종도 아닌 대화요 교환이요 상호대조였으며, 영적인 의미에서의 '모방'"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요즘은 어떠하십니까》를 보면서 그런 관계가 한국에도 있음을 알았다. 띠동갑이었던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 1973년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그해 1월부터 2002년 11월까지 30여년 간 편지를 주고받았다. 놀라웠다. 서로 좋은 관계를 맺고 오랫동안 우정을 지킬 수는 있겠으나 그 오랜 시간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테니. 


아동문학에 종사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선생님의 편지글은 시종일관 한국 아동문학과 아이들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그 와중에 서로를 향한 신의와 믿음이 행간마다 묻어 있고, 서로를 돌보며 건강을 염려하는 애정 또한 그득하다. 무엇보다 서로가 있기에 그들 각자는 존재한다. 카뮈와 그르니에처럼 권정생 선생님과 이오덕 선생님의 관계는 특별하다. 


"전에 선생님께서 전화로 말씀하시길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듯이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뎌 가기로 했습니다."(권정생, 1998년 9월 22일)


권정생 선생님은 "역시 생각이란 것이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모양"(99쪽)이라고 언급하는데, 그것은 같거나 비슷한 생각이 아니라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사람은 좋지만 만나면 대화가 막혀 버리는 그런 관계가 아닌 그리움과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 편지에서 두 선생님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저도 선생님을 결코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이오덕, 1973년 2월 14일)


"선생님을 알게 되어 이젠 외롭지도 않습니다."(권정생, 1973년 3월 14일) 

"저는 선생님만은 믿고 의지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을 알게 된 것만으로 더할 수 없이 기쁩니다. 앞으로도 역시 제가 쓰고 있는 낙서 한 장까지도 선생님께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권정생, 1974년 4월 13일)

"선생님은 찾아오시지 않아도 항상 제 곁에 계신답니다."(권정생, 1974년 8월 23일)


이것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인가. 물론 우정이라고 말해도 좋겠지만, 두 선생님의 관계의 밑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도 있겠지만, 아이들과 아동문학, 더불어 세상에 대한 사랑. 그것은 또한 태도다. 살아가는 태도, 벗을 대하는 태도. 


편지를 엿보면서 '붕우책선(朋友責善)'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벗끼리 서로 좋은 일을 권한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만큼 두 선생님의 관계에 어울리는 것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책 띠지에 나와 있는 그림은 정말 좋다. 길을 따라 두 선생님이 함께 걷는 그림이 모든 것을 다 함축하는 듯하다. 


이런 도반, 평생의 축복이 아닐까. 

지난해 가을,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도반들을 만났다. 내가 기획에 참여했던 행사의 연사로 한국을 찾은 릭 페이저와 빌 메어스는 오래된 마을 친구로서 커피산지의 굶주림 해결을 위해 좋은 생각과 활동을 함께 하고 있었다. 20년 이상 친구로 지내면서 뜻하는 것을 위해 누군가 먼저 제안을 하고 그것에 거들면서 함께 나가고 거니는 도반이었다. 두 사람의 공저인Brewing Change : 로스 메세스 플라코스, 커피 산지의 굶주림》도 그렇게 나온 것이었다.

[출처] BREWING CHANGE|작성자 임기영[출처] BREWING



그들이 한국을 떠나기 전날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처럼 좋아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많이 부러웠다. '진리의 길을 함께 걷는 벗'이라는 거창한 뜻이 아니라도 옆에 저런 도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은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집니다. 어디서 무엇부터 해 나갈지, 아무도 방법이 없는가 봅니다. 결국 제가 바라던 그런 세상은 오지 않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아무 데도 마음 붙이고 살 수 있는 곳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1993년 7월 5일 편지에 저렇게 말씀하셨다. 행간에는 이오덕 선생님밖에 마음 붙일 곳 없는 심정을 드러낸 셈이다. 


권정생 선생님의 8주기 무렵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천천히 숙독했다. 그래야만 했다. 서둘러 페이지를 넘길 수도 있었지만, 두 선생님의 흔적을 찬찬히 따라가고 싶었다. 오래 전, 편지쓰기를 즐겨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감정도 꿈틀거렸다. 그보다 앞서 편지를 주고받을, 함께 거닐 수 있는 도반부터 찾을 일이다. 


권정생 선생님을 세상에 알리고자 온 힘을 다한 이오덕 선생님, 그런 이오덕 선생님의 노력과 애정에 답하고자 죽을힘을 다해 동화를 썼던 권정생 선생님. 사람과 사람 사이, 아름다움이 있다면 이런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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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뭐라고!!! | 바람구두 이야기 2015-05-2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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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희일비 않겠다고 다짐하건만,


주변에서 방방 뜨면 일희일비 말자며, 

이기고 지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고한 척 조언하지만,


띠바 어찌할 수 없이,

나는 야빠(야구빠돌이)다. 자빠(자이언츠빠돌이)다.


이기면 좋아 죽고, 지면 세상 개짜증이다. 야구가 뭐라고! 

자얀츠 한 게임 한 게임에 지킬과 하이드를 오고가는 변신괴물.


정훈, 사랑한다. (내일 실책하면 지기삔다!) 

피곤하고 또 피곤한 오늘, 너 때문에(덕분에) 내가 살았다. 


그의 자얀츠 2루 직속 선배 조성환의 말에 내가 다 울컥했다. 

"정훈이라는 선수는 네 생각보다 훨씬 좋은 선수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408677&redirect=false


좋은 선배를 둔 너는 자이언츠의 2루수다! 지금 나의 2루수다!!


아, 야구가 뭐라고ㅠㅜ

잠실아, 목동아, 기다려라. 내가 곧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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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이오덕 그리고 편지 | 구름의 저편 2015-05-2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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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내겐 오월의 책이었다. 

다른 이유 없었다.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달이니까. 


올해 8주기. 

책을 샀고, 서서히 더디게 숙독하며 읽었다. 5월 17일, 권정생 선생님의 8주기 즈음부터 읽기 시작, 노무현 아저씨의 기일즈음에 끝을 냈다. 나는 노무현보다는 권정생이니까!


두 선생님의 마음을, 행간의 의미를 읽고자 곱씹으며 읽었다. 물론 한 번으로 끝낼 것은 아니다. 내가 감히 두 분의 마음 깊은 곳까지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나. 


더불어 두 선생님이 주고받은 편지글을 만나면서,

오래전 나도 저렇게 누군가(들)과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의 설렘과 충만함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설레며 써댔던 편지들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따지고 보면 펜팔로 쌓은 편지도 꽤 많았구나. 


책을 읽고선 나도 권정생 선생님을 향해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일단 지금은 안부 인사만! 


권정생 선생님, 저 하늘에선 어떠하십니까.

더 이상 이승에서처럼 편찮으시진 않으시죠?!

선생님이 그렇게 염려하셨던 아이들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포악하고 흉포한 욕심이 아이들을 집어 삼키고 있는 탓이죠.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데, 나빠지는 것 자체를 뒤집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그걸 늦추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요. 저 하늘에서도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아마 답을 찾을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 말이죠!  



초등학교 동창인 노건호가 신문과 TV, 인터넷에 잔뜩 나오고 있다.

문득 녀석이 안 돼 보였다. 아버지 후광때문에 자기만의 삶을 살긴 글렀구나.

광남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비치아파트 공터에서 공 던지고 치고, 공 차고, 그리고 광안리에서 낚시할 때가 참 좋았다. 그때 내 편지를 받은 소녀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손편지를 써야겠다. 

아니 그 전에 손편지를 주고받을 상대부터 찾아야겠다.

권정생처럼, 이오덕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사람을 깊게 만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손편지를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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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지성에 대하여 | 시네마카페 2015-05-27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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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최고의 지성'이라는 레떼르를 붙여도 좋을 수전 손택(Susan Sontag)을 다큐로 만났다. <수전 손택에 관하여(REGARDING SUSAN SONTAG)>.


텍스트와 사진으로만 만났던 그를 다큐를 통해 만난 경험은 새로웠다. 애초 나를 매혹시켰던 만들었던 그 형형한 눈빛과 강렬한 은발은 스크린을 통해 더욱 빛났고, 그 목소리 또한 그의 아우라를 뒷받침하기에 제격이었다(이미 후광효과가 빛을 발하고 있는데 뭘해도 손택은 아름다운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미 내겐 콩깍지가 씌여 있었다는 얘기다).


이 다큐영화를 함께한 사람들은 거의 손택 빠돌이, 빠순이인 듯한데,
다큐는 '손택빠'들의 사랑과 열망을 채우는데 충분히 좋았던 듯싶다.


다큐 속 손택은 텍스트로 드러난 그보다 훨씬 입체적이었다. 

맞다. 인간적이었다는 얘기다. 사랑 앞에서 투정도 부리고, 억지도 드러내면서 변덕스러운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가족, 친구, 연인, 동료 등을 통해 드러난 손택은 이성적이고 지적인 지성인 영역 외의 모습을 지닌 '보통 사람'이다. 아픈 그를 간호하는 연인에게 "난 이렇게 죽어가는데, 그런데 넌 사니?"라는 독설을 쏘아 붙인다. 사랑하면서 싸우고 지지고 볶는 과정이 그라고 피해갈 리는 없다. 

 

그러니 (내가 알지 못했던) 손택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것도 좋았다. '지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때문에 저 높은 만신전에 모셔놓고 올려만 보다가 땅에 발을 디딘 그를 보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운 지점.


그리하여,

마침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아는 사람과 다큐 상영이 끝난 뒤 얘기를 나누면서 의기투합한 것이,

"손택과 사랑했던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손택 정도 되니까 봐주겠지, 여느 보통 사람이었으면 저걸 어떻게 견뎌?"


그러면서, 다큐를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역시 사람은 사랑을 해야 해! 사랑 없이는 삶이 아니란다!!


손택의 지성의 원천은 바로 사랑이었다.

그는 사랑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고, 사랑이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그 대상이 앎이든 사람이든. 사랑밖에 난 몰라. 자신에게 다가온 것 그리고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관심을 가진 그가 사랑에 대한 질퍽한 에세이 하나 남기지 않은 것은 하나의 아쉬움이다. 물론 소설가로서 정체성을 가졌다는 그가 소설을 통해 사랑 역시 다뤘겠지만(아직 손택의 소설은 읽어보질 못해서!) 사랑에 대한 입체적인 시각을 담은 손택의 책이 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진지하자, 열정적이자, 깨어 있자."


수전 손택의 삶의 좌표는 이처럼 명확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랑했으며 세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는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작가를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고 기득권의 지배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마음의 목록을 지닌 사람’이라고 일컫는다면, 손택은 127% 작가였다.


하나의 에피소드. 손택은 9·11에 대처하는 부시행정부와 당시 미국 사회에 불어 닥친 반이성적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평소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이들은 그에게 “애국심이 없다” “미국 정부에서 하는 일이면 무조건 비판만 한다”며 공격했다. 그러나 손택은 꺾이지 않았다. 다큐는 손택과 보수 인사들의 논쟁을 통해 손택이 왜 비판적 지성일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큐 상영회는 그래서 특별했다. 레드빅스페이스 상영장은 손택을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로 꽉꽉 들어찼다. ‘정신의 뜨거운 고양’을 꾀하고 싶은 이들과 함께했던 상영회는 11년 전 세상을 떠난 손택이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한 시간.


이날 사회를 맡은 사회학자 노명우의 말에는 그런 벅참이 묻어 있었다.
“세상의 글 쓰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잘난 사람이 있고 똑똑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 잘난 사람의 글을 보면 글 자체에만 관심이 갈 뿐 책을 덮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해선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이라면 다르다. 텍스트를 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이런 사유나 생각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내게 수전 손택은 후자다. 인간으로서의 손택은 어떤 사람이며, 말할 때 어떤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목소리로 말을 할까 궁금하다. 오늘은 그런 궁금증과 그리움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이날 행사 부제를 붙이자면 ‘우리가 사랑했던 수전 손택에 대하여’가 아닐까. “살아 있어서 기뻐요.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어서 행복해요”라고 손택의 목소리로 시작한 다큐는 단순히 그에 대한 찬양으로 채우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입체적인 탐구로 손택의 면모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생생한 그의 육성 인터뷰는 우리가 사랑했던 손택을 한뼘 더 가까이 느끼도록 만든다.


세상에 대한 관심. 손택이 작가여야 하는 이유이자, 손택을 작가로 만든 원천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통해 처음 만났던 손택에게서 느껴졌던 그 아름다움은 결국 세상에 대한 관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요.”([수전 손택의 말], 29쪽)

이 여자,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실은, 난 이 여자의 외모부터 반했었다. 지성은 그 다음이었다!)


너에게 손택을 권한다.
6월 10일, 앵콜 상영회가 열린다. 마음산책에 문을 두드려 만나보시라.
http://maumsanchaek.blog.me/22036730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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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망한 명백한 이유 | 북카페 2015-05-2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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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회적 인간의 몰락

김윤태 저
이학사 | 201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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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인간은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함께' 우리는 고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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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플라톤(고대 그리스)에서도 '말세' 타령은 있었고 그것은 단 한 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젊은것들은 단 한 번도 싸가지가 있었던 적이 없으며 망할 징조는 끊이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 한국(사회)은 망했다.

 

그게 무슨 망발이냐고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면, 나는 일백만 스물두 가지의 이유를 댈 수도 있다.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지나치게 흘러 넘치며 망조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조용하다.

 

각설하고 한국이 망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사회적 인간'의 멸종을 들 수 있겠다. 사회학자들은 모든 개인이 사회에서 서로 연결돼 있고,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인간이 사회를 구성·유지·운영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사회는 그래서 독립된 실체로 존재한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은 다르다.

이기심을 가진 개인이 모여 사회가 이뤄졌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은 대놓고 "사회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들만 있을 뿐"이라고 외쳤다.

 

이 책은 '사회적 인간'을 내려놓은 대신 고립되고 원자화된 '경제적 인간'이 확산되는 사회적 현상을 진단한다. 어느 누구도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고, 남의 노동으로 내가 살고 나의 노동으로 남이 살고 있음에도 꾸역꾸역 사회를 밀어내고자 하는 우리를 보여준다.

 

우리가 독립적이고 생각하는 시민 대신에 선택한 것은 개인과 소비자다. 돈만 있으면 추앙받는다는 착각 속에 자신에게만 몰두한다. 허울만 좋은 자기계발서에 끌려다니고 그러면서 상처 받았다고 힐링을 갈구한다. 모든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뿐이다. 병의 원인을 찾지 않고 진단만 해댄다. 나만 힘들어죽겠고, '우리'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고작 찾은 우리라고는 가족 뿐이다.

 

사회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사회적 인간이라는 레떼르는 그저 오래되고 묵은 박제품이 됐다. 그런데 사회를 잃은 개인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책은 조곤조곤 우리가 망했음을 사회적 근거를 들어 보여준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나만 살겠다는데 다른 인민들과 이땅에서 함께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 망했음을 확인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망했으니까 조용히 죽을 날만 기다리면 될까? 자본의 노예로 자본의 지배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 될까?

 

이 책은 그 오래전 묵은 단어인 '함께'를 꺼낸다. 에게? 고작 그거, 라고 말하기 전에 협력하고 협동했던 기억이 얼마나 있는지 떠올려보라. 공동체를 가져본 적이 있는지 둘러보라. 저자가 강조하는 신사회운동에 사회적경제도 묻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몰락하고 망했다고 그것이 끝이 아니다. 사회적경제가 몰락한 사회적 인간에 심폐소생술을 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함께'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그럼에도 함께가 아니라면 우리는 도대어디서 구원받아야 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회적 인간의 회복.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자. 함께 머리를 맞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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