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외로워도, 그걸 친구 삼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밤 9시의 커피
http://blog.yes24.com/jslyd012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밤9시의커피
세상엔 살펴보면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나한텐 밤 9시의 커피가 그 중 하난거 같아. 이 어메이징한 커피, 밤 9시의 커피야! 난 이렇게 멋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어. 이게 내 대답이야.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1·2·3기 영화

6·7·8기 대중문화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4,856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My Own Coffeestory
밤9시의 커피
그녀에 빠지다 그 커피
366 Diary
너 없이 산다
너 때문에 산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함께 살자!(공유와 공동체)
시네마가 있는 풍경
바람구두 이야기
내 여친 소개받을텨?
나의 리뷰
북카페
시네마카페
카페 놀멘놀멘
사랑
자본주의
교육
나의 메모
한뼘 이야기
투덜이
태그
갈가요 노래가삶을지탱하고사랑을유지하다 걷는듯천천히 좋은사람이되고싶다는생각을갖게만드는커피를내리는사람이나였으면 KTX승무원들에대한빚 첫번째첫사랑이안겨준선물 낭만불가 쿠바커피연수보내주시오 쿠바협동조합연수도좋아 혁명보다뜨겁고천국보다낯선쿠바
2015 / 0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새로운 글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우연의 만남

2015-07 의 전체보기
혁명, 그 이후의 얼굴에 대하여 | 시네마카페 2015-07-31 16:42
http://blog.yes24.com/document/813696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영화]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프랑스, 이탈리아 | 1996년 12월

영화     구매하기


지금 이 후텁지근한 여름의 표정을 꼽으라면, 활력이나 활기로 여름을 불사를 듯한 환희가 아니다. 물론 휴가를 가는 즐거움이 선뜻 내비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하수상한 시절의 땡볕 내리쬐는 여름의 표정을 꼽으라면 아마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폴(말론 브란도)의 얼굴을 들이밀 것이다. 


좋게 말하면 '시크'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진 않다. 축축 늘어진 채 감흥을 잃어버린, 한편으로 삶의 비루함을 담은 표정. 물론 그것은 브란도이기에 가능한 표정일 것이다. 그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것. 연이은 사건에도 무기력과 딴청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무력함과 뻔뻔함을 목도한 '헬조선'의 여름에서 우리는 폴의 표정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살한 아내를 둔 중년의 폴은 '이름도 성도 모르는' 잔느(마리아 슈나이더)와 밑도 끝도 없는 정사를 나눈다. 그 섹스, 참으로 건조하고 물컹거릴 뿐이다. 환희와 열락으로 가득 찬 섹스와는 멀어도 한참 멀다. 폴은 세상에 지쳤다. 모든 것을 잊고 싶다. 그야 말로 아노미. 그런 그에게 이름과 과거는 거부의 대상이다. 그래서 호구조사를 하려는 잔느에게 소리친다. "너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너는 이름도 없고 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 거야."


그건 절규였다. 모든 것은 무의미하고 무기력하다. 물론 그의 절규를 지금 우리의 상황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덧 폴의 표정과 절규에 가까운 모습과 얼굴이 드러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탈출구 없는 헬조선.    


기실 폴을 연기한 브란도의 표정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그의 얼굴은 혁명의 시대(68혁명)가 지나친 자리에 남은 공허함과 목표를 잃은 도시의 욕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뜨겁게 타올랐던 혁명의 깃발은 결국 공허한 외침으로 남았다. 더 이상 불타오를 욕망도 없다. 모든 것을 소진한 피로와 패배감만 남은 얼굴. 그런 그에게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여성과의 섹스도 탈출구가 되지 못한다. 파멸은 친구였고 녹슨 해방구만이 남아있었다. 처연한 고독과 적나라한 쓸쓸함만 나부낄 뿐이다.  


내가 한때 파리에 가고 싶다고 느낀 건, 사실 그 영화 때문이었다. 파리지앵의 우아하고 활기찬 자태나 흔적보다, 68혁명을 느끼고 싶다는 욕구보다, 수많은 사상을 잉태했던 카페에서 맡을 수 있는 사상가나 문예가의 향취보다, 파리로 와보라고 유혹한 건 브란도의 표정이었다. 어떻게 파리 같은 곳에서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지? 거의 모두 파리를 가고 싶어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인용했던 헤밍웨이의 아래 말과 너무도 다른 그 표정.


"만약 당신이 젊은 시절, 파리에 살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면, 당신이 평생 어디를 가든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다."(헤밍웨이) 


예찬 혹은 찬양의 파리에서 브란도는 왜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혁명(의 기운)이 사그라진 도시의 표정이 저러할까. 하지만 내가 갈 파리는 분명 그 시절과 달랐을 것이고, 이 영화를 보기 전 만났던 파리의 짧은 인상은 화사하고 반짝반짝 빛났었다. 


그러니 브란도의 이 표정은 지금 헬조선이 처한 상황과 오히려 맞물리는 것 아닌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국가적 성장과 발전의 발판을 이뤘다지만, 허술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네 기본기 덕분에 모든 것은 망가진 채,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칠 정도로 붕괴했다. 이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청년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어른들의 흡혈 정신은 어떻고. 


격렬하고 환희에 차야 할 섹스조차 무미건조한 몸짓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영화마냥 우리도 이제 절망을 인정하고 막장에 도달했음을 인식해야 한다. 희망은 절망의 인식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도저한 인식 없이 무엇을 개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쨌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브란도의 몫이었다. 앞으로 누구도 그 모습을 대체할 수도 없을 테고 그 표정을 재현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이 영화를 통해 파리의 또 다른 얼굴을 봤다. 도시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표정을 만날 수 있었기에 불만은 없다. 


하지만 가끔 궁금해진다. 우리는 더 이상 혁명을 꿈꿀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혁명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우리는 어떤 혁명을 꿈꿀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만난 적도 없는 혁명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영화를 통해 알았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다시, 8월, 정든님, 정은임 | 구름의 저편 2015-07-31 00:32
http://blog.yes24.com/document/813608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곧 8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정든님, 정은임. 


올해도 과꽃은 피었고, 정든님의 이름을 다시 호명한다. 

8월 4일, 11주기를 맞아 8월 1일(토) 아름다운가게 숙대입구점에서 추모바자회.


매년 8월 이맘때, 

내가 하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하는 일.

누군가 왜 이런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느냐고 말을 건네는데,

뭐 세상에는 '돈 되는 일'보다 '돈 안 되는 일'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 많다는 진실을 말해줄 수밖에!ㅋ 


혹시 1990년대와 2000년대 정든님의 세례(정은임의 FM영화음악)를 받았다면, 8월 1일 아름다운가게 숙대입구점으로, 오시라! 그녀가 진행하는 오래 전 그 라디오를 들을 수 있어!!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


제 이름이 발음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는 한 어른은요, 저를 정든님이라고 부르세요.

훨씬 부르기도 편하고 정이 간다고요.

정말 어떤 경우엔 별명이 본명보다 더 멋있을 때가 많죠.

_ <정은임의 FM영화음악> 1992.11.17. 방송 중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가 찾아온다. 지난 2004년 8월4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정은임 아나운서와 <정은임의 FM영화음악>를 기억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오는 8월1일(토) 아름다운가게 숙대입구점에서 추모바자회를 연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여는 이번 11주기 행사는 정은임(정든님) 아나운서의 팬으로 구성된 ‘정은임 추모사업회’(www.worldost.com)의 회원들이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한다.


1992년 11월 2일 첫 방송을 탔던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통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깊이 있는 분석을 만났던 팬들은 정은임 아나운서를 언니나 누나처럼, 혹은 동생처럼 친근한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정은임 아나운서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이들은 정은임을 기억하고 추모할 방법으로 매년 기일 즈음에 맞춰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다. 그녀가 진행했던 <FM 영화음악> 등을 통해 영화와 세상, 그리고 삶을 형성했던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그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지속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기억을 지속하기 위해, 그 목소리, 그 얼굴, 그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아름다운 하루’를 함께 보내고 있다.


추모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이뤄진다.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 숙대입구점에 모여 봉사활동도 하고 수집된 물품을 판매한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수익금은 아름다운가게에 전액 기부, 소외아동지원금으로 사용된다.


직접 매장에 올 수 없는 경우에도 참여가 가능하다. 기증하고 싶은 물품을 바자회 하루 전까지 숙대입구점으로 보내면 된다. <정은임의 영화음악>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그녀의 목소리를 접하면서 그리움과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다.


다음은 11주기 추모바자회 내용이다.

1. 행사일 : 2014년 8월1일 토요일 오전 10시30분 ~ 오후 6시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숙대입구점 (4호선 숙대입구역 6번 출구,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278-1(남영동66-4), 02-363-8778) 

3. 문의 : 김이준수 jslyd012@gmail.com


[관련 사이트]

http://www.worldost.com 정은임 추모사이트 ‘정든님’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그 사랑, 모든 것의 지배자 | 시네마카페 2015-07-29 23:55
http://blog.yes24.com/document/813480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영화]뷰티풀 마인드

론 하워드
미국 | 2002년 02월

영화     구매하기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의 칼 메닝거는 말했다. 

"사랑은 사람을 치료한다. 사랑을 주는 사람, 받는 사람 할 것 없이." 


H.D. 도로우도 마찬가지의 말을 남겼다. "사랑의 치료법은 더욱 사랑하는 것밖에는 없다."


사실 이들이 아니래도 '위대한 사랑의 힘'을 찬양하는 경구들은 차고 넘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만질 수도 없으며, 오염된 듯 말로만 된, 그 사랑 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사랑이다. 사랑을 해보고 하고 있는 우리는 안다. 사랑하지 않겠다는 거짓말. 사랑 때문에 울고불어도 사랑 없이는 삶이 아니다. 단순히 연인을 향한 것만을 사랑이라고 일컫진 않겠다. 사랑이 무엇보다 강력한 치료제이자 치유제이다. 바람이 불어도 살아야 하고, 죽어라 일하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는 사람살이에 사랑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어떤 사랑의 향기는 한 사람의 평생을 지배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죽음으로 건너가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건네는 최후 진술 거의 모두가 '사랑'이더라. 사랑은 죽음을 뛰어 넘고 죽음에 저항하고자 하는 욕망이기에 '아모르'(스페인어)라고 불리는 것 아닐까.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존 인물인 존 내쉬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듣고서 <뷰티풀 마인드>가 떠올랐다. 더 정확하게는 영화 속 사랑이 다시 그리워졌다. 실화를 가공한 영화였던 <뷰티풀 마인드>는 사랑 찬양가였다. 천재의 광기도 잠재울 만큼 사랑의 힘이 위대하다고 말한다. 천재지만 평생을 정신분열증으로 고통 받는 존 내쉬가 위대한 업적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사랑만한 묘약이자 명약이 없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의 환상을 채워준다.   


영화를 보는 중에는 영화의 장르가 궁금했다. 전반부는 냉전시대의 스릴러이자 미스터리물인 것처럼 외피를 덮었다. 그러다 눈앞에 보이던 현실이 허상으로 드러나면서 오싹한 공포물로 탈바꿈한다. 그것도 이내 멜로로 전환하는 변주곡이 연주된다. 라스트 신은 여기에 방점을 찍는다. 사랑의 힘! 물론 영화도 안다. 사랑은 시작보다 수성이 더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존 내쉬는 어디서든 숫자와 기호에 집착한다. 숨이 멎는 그날까지 인생의 성패는 속단할 수 없다지만, 스크린에 드러난 존 내쉬의 삶은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숫자와 기호에 대해선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재능과 수려한 외모를 지닌 존(러셀 크로). 그는 천재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나 홀로의 세계'를 갖고 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경제학을 뒤흔든 독창적인 이론(내쉬 균형)의 단서를 발견한 그에게 영광이 본격화되는 듯하지만 세상이 천재(의 삶)을 순탄하게 놔둘 리는 없다. 혼돈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존이 서서히 분열 조짐을 보이는 한편 알리샤(제니퍼 코넬리)는 그것에 대한 대항마다. 존이 괴로워할수록 알리샤의 사랑은 점점 더 빛을 발한다. 정신분열증이 도진 존의 위협에도 불구, 알리샤는 사랑의 힘을 믿고 의지한다. 그것은 또한 알리샤 스스로 자가 치료를 위한 방편 같다. 범인이 보기엔 어떻게 저것이 가능해 싶을만큼 알리샤는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기호와 숫자에 대한 존의 집착도 점차 사랑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존의 분열된 삶은 알리샤의 눈물겨운 헌신에 힘입어 차츰 봉합된다. 그리고 노벨상. 그 과정은 빤하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을 향한다. 그것이 사랑의 신화를 포장하기 위한 영화적 노력이라는 것도 알겠다. 그럼에도 거부하고 싶지 않다. 사랑이라서.  


노벨상을 수상한 존이 수상 멘트를 날리고,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알리샤의 표정이 교차하자, 나의 마음도 덜거덕거렸다. 허구와 과장을 알면서도 마냥 속아 주고 싶었다. 그것이 또한 사랑이라면. 


<뷰티풀 마인드>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간 승리의 전형적인 드라마일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치료의 묘약을 믿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일 수도 있다. 물론 그보다 아카데미(오스카)를 향해 쏜 연서라는 혐의가 가장 짙지만 말이다. 


사랑을 위해 과대 포장된 영화는 거듭 픽션이다. 존 내쉬의 삶과 <뷰티풀 마인드>는 꽤 크나큰 간극이 있다. 실존 인물을 빌렸을 뿐, 거의 만든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존은 극중의 '윌러 연구소'에 몸 담지 않았다. 실전에서 활용 가능한 핵전쟁과 게임이론을 연구하던 랜드연구소에서 일했다. 또 영화속 존 내쉬는 구소련 스파이에 매달리지만 실제의 그는 외계 암호를 찾기 위해 신문과 라디오에 매달렸다고 한다. 영화에선 언급이 없지만 존 내쉬는 양성애자였다. 수학과 동료나 후배들과 동성애 관계를 맺고 공공장소에서 외설죄로 연구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아울러 한 번도 존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영화 속 엘리샤와 달리 존의 정신분열증이 심각해지자 엘리샤는 1963년에 이혼을 했다. 그러다 그의 간청으로 2001년 6월 재결합했다. 아름답게 포장된, 아카데미를 향해 대놓고 구애한 <뷰티풀 마인드>는 2002년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글쎄 모르긴 몰라도, 아마 아카데미상 수상보다 사랑이 더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나는, 아모르 그란데 | 너 때문에 산다 2015-07-28 00:43
http://blog.yes24.com/document/813236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어떤 문장은 읽는 순간, 우주의 모든 것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한 순간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이 문장이 그랬다.


"가장 행복했던 나의 어느 날은 여름이었다."


버스 안에서 그 문장을 읽던 나는 그해 여름으로 타임리프. 

입가엔 배시시 웃음이 흐른다. 

그해 여름 나를 감싸던 공기, 냄새, 풍경, 바람 그 모든 것이, 

행복을 위해 블렌딩되고 있었다. 커피 향은 좋았다.


'가장'이라는 말은 단 하나의 것에만 붙일 수 있다. 

가장 좋은 것 중의 하나, 가장 행복했던 시절 중의 하나, 이런 것은 없다.

온리 원. 온리 유.


그리고선 다음 문장을 읽었다. 


"가장 절망했던 날도 여름에 속해 있다."


다시 타임리프. 그해 여름이 그랬다. 

그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다시 불어왔다. 

그 슬픔에 질식당하지 않으려고 나는 얼마나 애를 썼던가. 커피 향은 쓰디 썼다.



어느 독서클럽에서 나의 닉네임은 '아모르 그란데'였다.

아모르(amor)는 사랑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다. 

mor는 죽음, a는 저항. 즉, '사랑은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그란데(grande)는 '큰, 높은'이라는 말이니, 

아모르 그란데는 '큰 사랑'. 

실제로 큰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말을 알려준 풍류멋쟁이 소설가 한창훈 선생님은 이 단어(아모르)를 알고 나서야 독한 불면과 눈물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들이 거듭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모름지기 사랑은 여름에 빠지는 것이리라. 

그래서 태양은 죽음도 불사하고 저리도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일 테니.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를 하기에는 아무렴, 겨울보다 가을보다 봄보다는 여름이다. 

여담이지만, 요즘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노래를 매일 십수 차례 몸으로 흡수한다는 감성컨설턴트 강민수대표님의 계절을 꼽으라면 여름이 제격이겠다.



얼마 전, 뜨겁고 아름다운 여름날. 

협약증서를 받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좋았고, 바람은 후끈했으며, 함께 한 사람들은 맑았다.


좁다란 골목길을 헤매고 헤매다 찾아간 협약식 장소인 미나리하우스는 아름다운 나무와 싱그러운 푸르름이 가득했다.


그러니, 이런 다짐을 할 만도. 

암, 수출입은행을 사랑해야지! 함께일하는재단의 팀장님과 매니저님들도.

그리고 지원사업에 함께 노를 저어갈 사람들도. 나는 아모르 그란데이니까!


여름이로다, 여름. 

나는 여름을 살고 있다. 

내게 가장 행복했던 날도, 가장 절망했던 날도 여름이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름은 또 다른 여름이다. 내 생애 다시는 오지 않을 2015년의 여름.


자이언츠가 후반기 힘을 냈으면 좋겠다. 가을야구가 내겐 가을의 젖줄인데... 

그깟 야구가 뭐라고. 그깟 이기는 게 뭐라고. 어제 타이거즈를 천신만고 끝에 이기고 위닝시리즈를 가져가니, 눈물이 났고 행복했다. 개쉐이들.


"준비는 되어 있어. 자, 네 차례야. 잊지 못할 여름을 보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만화가 아다치 미쓰루의 [릴리프]는 그렇게 여름을 부추기고 있다.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잊지 못할 휴일을 보낸 계절도 여름이었다. 트립 투 이탈리아.


커피가 좋은 계절, 여름이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 여름이다. 

자, 우리에게 모두, 잊지 못할 사랑을 하자.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까데기를 아시나요? | 바람구두 이야기 2015-07-19 21:09
http://blog.yes24.com/document/812160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몇 명이서 와씁니꺼? 혹시 두 명이서 와쓰예?" 

"아니예. 다섯인데 지금 여기는 우리 둘만 이써예." 

"아 아깝네. 우리는 둘인데... 그래도 같이 안 놀란교?"


아, 이런 데자뷰. 귀가 번쩍 뜨인다. 쿠쿠쿠.

그렇다. 까데기다!(내 어릴 적, 부산 사투리다.) 


지난주 토요일 밤, 고딩 동창놈과 해운대에서 버스킹을 보고 있는데(그래 두 노총각은 청승 맞게 그리 산다ㅠㅜ) 옆에서 불쑥 생생한 부산 억양이 들린다. 새파란 두 수컷이 여인들에게 '까데기'를 치는 것 아닌가.


아, 추억이 몽글몽글. 

두 노총각, 키득키득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와~ 요새도 저러는 갑네. 까데기 치네." 

"구래, 여름은 까데기의 계절 아이겠나~ 사는 기 뭐시 다르겠노, 안 글나?"


까데기. 

설명하기 다소 까다로운 뉘앙스의 것이긴 한데, 

거칠게 설명하자면 작업 혹은 헌팅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토스테스토론이 과잉으로 넘치던 짐승의 시기, 까데기는 훈장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성도 없고 지적 능력도 형편없던 시기의 짐승들이 오죽했겠나. 광안리를 주무대로 놀았던 우리 짐승들은 전날 광안리에서 까데기 친 무용담을 뻥 튀겨서 풀어놓곤 했다. 나야 광안리 현장에서도 소심쟁이 여드름쟁이였으니 조용히 술만 조달할뿐 여자 앞에선 그저 쑥맥이었다.(믿거나 말거나! 시다바리였다는 거지~)


여튼 고1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광안리 방랑자객들의 까데기 타율은 높지 않았다. 이할대도 안 됐으니까. 술만 들어가면 까데기 치자며 발동이 걸렸던 아해도 있었다. 허허.


엊그제 옆에서 주워들었던 몇 마디에 그 숱한 까데기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벌써 20년도 더 된 그 추억의 조각. 그때 그렇게 광안리를 누볐던 짐승들과 소녀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태풍 영향권에서 해운대의 파고는 꽤나 높았다.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앞에서 많은 청춘들이 꺄꺄 소리를 질러대며 파도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내기를 하고 있었다. 참 보기 좋았다. 파도마저도 싱그러운 청춘들을 질투하는 것 같았다.


두 노총각은 그저 청춘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싱긋 웃을 뿐. 더 이상 까데기 같은 건 시도해 볼 생각도 못한다. 



노총각들의 다음 행보는 심야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꺄꺄 탄성을 질러가며 몰입했다. 역시나, 추억팔이. 터미네이터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와야 제맛인데, 뭣보다 사라 코너 역할을 한 에밀리아 클라크에 뿅뿅 갔다. 물론 사라 코너는 원래 멋지다. 남자의 들러리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강인한 여자다. 원조 사라 코너인 린다 해밀턴이야 짱 멋진 여자였고, 에밀라이 클라크도 그에 못지 않게 사라 코너를 연기한다. 나는 스크린속의 사라 코너에게 까데기를 치고 싶었다. 하하.^^;;


그런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압권은 이것이었다. 

늙은 아놀드가 분한 터미네이터 T-800이 친 대사인데, 

"난 늙었어. 하지만 쓸모없진 않아."


까데기의 시절을 건넌 중년의 귀에 쏙쏙 박힌 대사로다.ㅎㅎ


뭐 괜스런 추억팔이를 한 주말이 지나가자, 

반가운 소식 하나가 나를 까데기 쳤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탔다는 연락이 왔다. 내 생에 단 한 번도 최우수상이니 대상 같은 건 타보질 못했는데(우수상 아니면 장려상이거나 구분 없이 여러 사람 공동 수상) 최우수상이라는 걸 처음 타게 됐다. 덴마크 덕분이다. 이 영광을 덴마크에게!! 

[공지]《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독후감대회 수상작 발표

http://www.ohmynews.com/NWS_Web/bbs/bbs_index.aspx?pBOARD_CD=M0103&pBBS_CD=000001269626&mode=view&CMPT_CD=M0121


아쉬운 건, 부상으로 덴마크 망명이나 덴마크 이민 자격증 같은 걸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ㅋ 하다 못해 덴마크 탐방 기회라도!ㅎㅎ


덴마크를 책으로 누비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덴마크 인민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권리를 가지고 있기에 행복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사회복지 체계 등이 잘 마련돼 있기에 가능한 지점이기도 하다. 자기 삶의 선택권을 뺏긴 채 나이에, 자녀에, 가족에, 직장 등등에 끌려다녀야 하는 한국의 많은 인민은 선택권 없이 닥칠 미래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비극이기도 하다.


장강명의 '반체제, 탈주 자극'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이렇게 말하며 한국을 떠난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지독한 현실. 

지옥을 고가에 임대했으니 두려움은 필수인가. 

계나는 사라 코너가 아니지만 사라 코너와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선택한다. 운명보다 더 강한 자신의 의지로 뚜벅뚜벅 발을 내디딘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까데기가 여러 갈래로 새끼를 친다. 

생은 그렇게 늘 병적인 유머센스를 발휘하니까. 

지랄은 언제나 풍년이다. 한국에서 살아보니 그렇다. 지랄 풍년, 행복 흉년.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1 2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성적 결합을 원하는 곳
"잘 쓰는 방법이 아니라 전보다 낫게 쓰는 방법에 관해 말하고자 합니다."
야간비행 저 너머 세상을 향하여
대중문화 감수성으로 해석하는 한국 사회
최근 댓글
진짜 그렇게 번성했던.. 
저도 일본 작품을 보.. 
가을이 되면. 떠오르.. 
그죠, 송호창 의원에.. 
잘 들었으며 잘 읽었.. 
트랙백이 달린 글
우리안에 있는 ‘공유경제..
[함께 보아요] 마을감수성..
나카야마 미호, 애잔한 사..
[밤9시의 커피] '하쿠나 ..
[밤9시의 커피] 6월25일의..
많이 본 글
오늘 186 | 전체 1510990
2006-07-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