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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7 개설

2016-01-18 의 전체보기
사라바, 살아 봐 _ 니시 가나코 [사라바] | 리뷰 2016-01-1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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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라바 1

니시 가나코 저/송태욱 역
은행나무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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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나오키상 수상작 <사라바>의 제목 '사라바(さらば)'는 한국어의 '안녕, 잘 있어', 영어의 'Good bye'에 해당하는 일본의 인사말이다. 일본어를 아는 나는 <사라바>란 제목을 보고 '안녕' 그 이상의 뜻으로 해석하지 않았는데, 얼마 전 내 방에 들어오신 어머니가 책상에 놓인 이 책을 보고 "제목이 '살아봐'야? 재미있네!" 라고 말씀하신 걸 듣고 <사라바>가 '살아봐'로 읽힐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일본어로는 헤어짐을 뜻하는 인사말이 한국어로는 '살아봐'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로 읽히다니. 게다가 이 '모순'은 책 내용과 무관하지도 않다. 신기한 우연이다.


  주인공 아유무는 석유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로 인해 이란과 이집트를 오가며 남다른 유년 시절을 보낸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벅차고 친구와 정들면 헤어지는 상황이 힘들지만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누나 다카코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부모님을 자기까지 괴롭힐 순 없어 내색하지 않는다. 어쩌다 슬픔이나 분노가 느껴져도 자기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냈다가는 누나처럼 미움받고 괴롭힘을 당할 거라고 짐작하며 열심히 숨긴다. 그 대신 남들 눈치를 살피고 준수한 외모와 괜찮은 성적, 운동신경을 이용하여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남들 보기에 착한 아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말고 다른 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순조롭게 넘긴 아유무의 인생은 대학을 거치고 사회인이 되면서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한다. 자기감정을 감추고 남들만 따라 하다 보니 정작 소중한 사람을 찾고 직업을 가져야 할 때가 되자 사랑을 못 느끼고 몰입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한다. 그에 반해 누나를 비롯해 남들한테 폐만 끼친다고 미워했던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잡고 행복을 손에 얻은 듯 보여 아유무는 화가 난다. 걸핏하면 문제를 일으키고 이기적으로 굴던 사람들은 행복해지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기 위해 애쓴 자기는 불행해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가장 사랑했고 가장 아프게 이별한 친구를 찾아 떠난다.


  아유무의 삶은 언뜻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의 삶과 겹쳐 보인다. 아유무와 요조는 둘 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이다. 그런 속내를 가진 자기를 혐오하면서도 좀처럼 삶의 태도를 바꾸지 못하고, 결국에는 믿었던 친구들을 잃고 은근히 무시했던 여자에게마저 배신을 당하면서 인생의 밑바닥을 친다. 차이가 있다면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 같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망가지고 철저히 패배하는지를 그린 반면, 니시 가나코는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구는 대신 요조가 누리지 못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아유무에게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와 여행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실패하고 죽음까지 각오한 아유무는 글을 쓰면서 비로소 자기를 표현하는 도구를 얻고, 여행을 하면서 남들 보기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깨닫는다. 글쓰기는 자기감정과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자기 안을 깨끗하게 비우는 행위이고, 여행은 당연한 듯 보이는 일상으로부터 자기가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음을 자각하는 행위다. 자기를 비우고 심지어는 사라지게 하는 일이야말로 자기 존재를 깨닫고 확인할 수 있는 길이라니. 아유무가 그렇게 비우고 헤어지고 모든 것과 '사라바' 함으로써 좀 더 '살아봐'야겠다고 용기를 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헤어진 친구와 만나는 것이든, 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이든, 오랫동안 소원했던 가족과 친해지는 것이든, 그 어떤 믿음이든 실천하기만 한다면 결코 헛되지 않고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단, 무언가와 과감히 이별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헤어진 친구와 만나고 싶다면 만날 수 없다는 생각과 이별해야 하고, 소설 한 편을 완성하고 싶다면 완성할 수 없다는 생각과 이별해야 한다. 아유무가 한때 인생의 밑바닥까지 자기를 끌어내린 건 결국 자기가 그렇게 되리라는 생각과 이별하지 못한 탓이다. 반대로 인생의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올 수 있었던 건 자기를 붙들고 있던 생각과 과감히 이별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길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과 이별했을까. 남은 하루 동안 하나씩 헤아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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