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耽讀
http://blog.yes24.com/kdssae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耽讀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0월 스타지수 : 별5,995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Wish List
My Story
My Favorites
耽讀 쓴 기사
오마이뉴스기사
대한민국
성경읽기
노무현
창비주간논평
사색의 향기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성약출판사
耽讀
MB
미디어
남북관계
정치기사
사회기사
국제
경제기사
4대강
천안함
김대중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당
세종시
한국교회
인사청문회
문재인과 민주통합당
질매섬과 네 동무의 5.18
박근혜정부
박정희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리뷰
역사
인문
음반
문학
사회
소설
에세이
정치
어린이
기독교
자연과학
경제
인물
gift
문화
예술
DVD
나의 메모
耽讀글방
耽讀메모
태그
간디의길 새인물 양향자 김빈 더불어민주당 인물영입 황주홍 호남팔이 더민주당 구정치인
2004 / 0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2004-07 의 전체보기
소명자는 죽지 않는다. | 기본 카테고리 2004-07-03 16:01
http://blog.yes24.com/document/594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

옥한흠 저
국제제자훈련원(DMI) | 2003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인간이 근본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 하나님의 존재를 결코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자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 일등, 일류, 최고만 대접받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낮은 자와 약한 자, 배우지 못한 자, 소외된 자, 없는 자가가 살아가기 힘든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이럴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자녀라 말하는 이들이 만들어 가는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하는 곳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지극히 낮은 자와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명령을 하지만 그 말씀을 순종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모인 교회까지 이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살아가는 오늘의 세상에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는 이 시대의 교회와 구성원과 지도자들에게 자신을 반추하게 합니다.

세속과 한국교회에서 보면 ‘강자’의 세계에서 사는 저자의 글이 어쩌면 배부른 자, 강자의 변명 정도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이는 저자가 속한 교회가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속의 눈과 한국교회가 보기에 약자가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지극히 약한 자라 말할 수 있지만 다른 이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는 약간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배부른 자의 배부른 이야기로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속한 교회가 족쇄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약한 데서 심히 큰 능력’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소박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소박하다는 것은 그의 글이 기름진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이 기름지면 가식의 냄새가 나며, 그 글은 생명성을 잃은 죽은 글입니다. 죽은 글은 많이 팔일 수는 있지만 이미 공해가 되어 글을 읽는 사람들을 황폐화시킵니다. 사실 강자가 말하는 약자를 향한 긍휼의 마음은 가식이 첨가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는 가식의 기름을 첨가하지 않은 소박함으로 약자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이유는 그의 인격 이전에 하나님이 약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약한 자의 충성을 통하여 자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상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일은 부족한 것이 우리들 자신의 현실이며 특히 저자와 같은 환경에 일하는 분들은 어려운 일입니다. 저자는 어떤 경험을 한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얻어진 지식을 넘어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분명 하나님은 결코 자신이 강자라 말하는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와 약한 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심을 말입니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교회는 이미 죽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죽음의 교회’로 변질시킨 이들이 우리임을 지적하는 것은 결코 듣고 싶지 않는 경고입니다. 하지만 사실임을 저자뿐만 아니라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글입니다. 심장병이 든 사람에게 물파스로 치료하겠다는 생각이 지금 우리들 바로 목사들의 생각입니다. 이 얼마나 오만과 교만과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부족한지 알 것입니다. 더 문제는 우리 자신이 이런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부인하고,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처럼 현장을 직시하고 현장의 처절함을 자기의 것으로 안고, 진리를 중심에 두고 진리를 지키는 방벽을 쌓고,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저 병 고침과 돈 버는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하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능력이 되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것을 외면하고 성령 하나님을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도구로 생각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성령 하나님을 나를 위한 도구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에 성령을 구하는 이는 많지만 진정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적습니다. 즉,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한다는 그릇된 신앙이 팽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자기만이 할 수 있다는 오만과 교만의 극치입니다.

말씀은 저버린 이스라엘 망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는 강한 군대와 경제적인 부흥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이스라엘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제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야 할 나라를 군대와 돈으로 다스린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예수님 이 시대 종교 지도자들은 껍데기만 남은 장로의 유전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조상과 자신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하는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된 지식과 지혜가 없었기에 그들은 메시아로 오신 주님을 죽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 시대에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매주 오만개가 넘는 교회에서 선포되고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와 죽음이 두룬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정직하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하나님의 은혜의 크심과 영원하심과 충만하심을 가장 사실적이고 놀라움을 금할 수밖에 없도록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은 하나님 은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는 자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는 자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 받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목사가 바라는 삶의 목표와 가치는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목표가 크다는 것은 대형교회를 꿈꾸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10만원 짜리 십일조 인생에서 100만원 짜리 십일조 인생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가 큰 자의 이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며 그 분이 가진 길을 가며 그 분이 이루신 일을 믿으면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들이 이제 한국교회를 살려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고난이지만 십자가 자체는 영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과 영광이 함께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영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3정 31절 이하,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영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버림을 통하여 이루어진 영광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말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교회, 십자가 없는 성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우리는 십자가 없는 교회와 십자가 없는 성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독교 근본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교회는 바벨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님만을 위하여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 시대에 예수님만을 위하여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굉장히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한 가운데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면서 죽었습니다. 스데반을 본 받자고 말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가 그가 간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실 그가 이룬 일은 세속의 가치로 볼 때에는 정말 허망합니다. 일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에 맞아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먼저 주님을 위하여 죽은 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바로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조금은 뭐 하지만
눈을 조금 넓히자!
나라사랑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글쓴이는 철새에 대해.. 
wkdf qhrh rkqlsken 
멋집니다!! 
저도 윗분의견 공감. .. 
이 글 쓴 사람 지금쯤.. 
오늘 43 | 전체 2222788
2004-11-1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