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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용어바로쓰기는 매우 어렵다. | 나의 리뷰 2006-09-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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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용어 바로쓰기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편
역사비평사 | 200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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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를 전공한 교수님께서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어와 단어의 개념 정립이라 하셨다. 기독교에서 ''기독교''와 ''그리스도교'' ''하나님'' ''하느님''의 용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쓸데없는 말다툼으로 볼 수 있지만, 정확한 단어와 용어 사용은 사상과 이념을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요 일이다.

우리나라 인문학계와 사회하계, 언론계 역시 자기들의 이념과 사상, 견해를 밝히는데 사용하고 있는 용어 역시 관습과 관례, 편리에 따라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통일된 용어 사용은 요원하다. 이런 때에 [역사용어바로쓰기]는 완전한 용어 통일은 어렵지만 혼란스러운 용어 사용을 어느 정도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삼국시대'' ''사국시대'' ''백성'' ''평민'' ''민중'' ''독립전쟁 ''민족해방전쟁'' ''동포'' ''''민족'' 등 한 가지 뜻을 표현하는데 두 가지 이상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어는 용어가 그 뜻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가를 쉽고, 간략하게 말하고 있다.

삼국시대를 사국시대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나라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로포괄적, 복합적, 거시적인 주제이다. 극동과 동아시아, 동북아시아의 용어는 사상과 이념적인 접근법이기보다는 ''지리적''인 접근법인 동시에 우리나라를 세계라는 공간에서 객체와 주체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서구사회가 우리 위치를 보는 관점이 아니라 우리를 중심으로 보아야 극동과 동북아시아라는 용어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용어들은 우리 역사와 미래, 우리를 세계라는 공간에서 주체로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것들이기에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민족문학, 국민문학, 민족주의문학, 순수문학, 재벌기업, 재벌총수 용어 정의는 매우 단순할 수있다. 지협적이며, 용어 통일을 완전히 이루지 않더라도 별 문제 될 것인 없다고 본다.

의사와 열사, 민족과 동포, 반탁, 친탁, 월북과 납북, 소군정, 독립운동, 해방운동, 친일과 협력, 을사조약과 한일외교권위탁조약안, 한국병합, 한일합방조약, 위안부, 정신대, 공창, 성노예, 왜정시대, 일제시대, 일제강점기 용어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 민족과 탈민족, 사상과 이념에 따라 위 용어들은 첨예한 대립을 낳을 수 있다. 이 용어는 특히 우리와 일본이 뚜렷하게 대립하고, 앞으로 대립의 강도는 더할 것이다. 용어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따라 법적으로 다시 일본에게 책임까지 물을 수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아나키즘, 자유민주주의, 부르주아민족주의, 우파민족주의, 문화민족주의 용어는 아직 우리가 분단민족, 특히 이념의 극한 대립이 있는 현실에서 가장 해결하게 어려운 용어일 수 있다. 다른 이들의 이념과 사상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이 용어들은 어쩌면 세계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전혀 가치 없는 용어일 수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는가? 민족주의는 더욱 강고해지고, 보수화는 위의 용어들이 통일되고, 통용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 다르다. 문제는 관점이 다른데 같은 용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성경무오''론이 있다. 이 용어를 모든 성경학자들이 쓰고 있지만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그러기에 역사 용어를 같이 쓴다고 해서 의미를 동일하게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자기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용어를 쓰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그 첫 시작이 [역사용어바로쓰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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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권력이다. | 기본 카테고리 2006-09-08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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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

장시복 저
책세상 | 200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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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무관심한 사람이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답답하다. [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 과연 세계화 시대에 ''초국적''이란 말이 적당한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자본에 국경이 없다는 말도 있다. 과연 삼성이 초국적 기업인가? 물을 때 학생들의 반응 뜨거웠다. 왜 삼성이 초국적 기업인가?

''다국적''보다는 ''초국적''이 장시복이 글을 전개하고자 하는데 더 나은 표현인 모양이다. 초국적 기업을 이렇게 말하면 ''본국의 기반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자본 축적을 하는 기업. 이런 말에 나는 동의하고 싶다. 삼성, 엘지, 에스케이가 본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자본을 모으고 있다. 우리는 그 자본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중 일부이다.

장시복은 이런 말도 한다. ''Made in Korea'' 보다 Made in Samsung'' 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정도로 우리가 목격하는 많은 상품들이 전 세계 초국적기업의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삼성뿐이겠는가? 코카콜라, 하이네켄 맥주, 노키아 휴대전화. 이들 모두가 초국적기업군들이다. 더 많다.

이들은 몸집 불리기고 잘 한다. 합병과 인수는 초국적기업이 잘하는 몸집불리기의 한 방법이다. 1999년에는 국제 인수 합병 금액이 720억달러라 한다.

금융 분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아이엠에프 이후 많은 은행들이 외국계 은행에 헐 값으로 팔렸다. 금융은 사실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 이윤은 생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가 있다. "꿀벌통에서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꿀이 없을 때 벌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것과 똑 같이 (화폐) 자본도 떼를 지어 이동한다. 그 중 일부는 새로운 집을 찾아 날아가는 것이다."

그럼 어떤 결과가 올까? 뻔한 것이다. 꿀벌을 생산할 집이 없어지면 다 죽는다. 망하는 것밖에 더 무엇있는가?

노무현대통령이 얼마나 이런 말을 했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이 말의 의미가 다양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미 초국적기업은 ''국가''보다 정보, 권력이 더 낫다는 것이다. 국가가 이들 기업에 예속하고 있다.

과연 대안은 있는가? 지역으로 돌아가자, 자율주의, 국제케인즈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세상을 바꾸자, 지역으로 돌아가자! 희망은 있는가? 헛된 선언이 아니라 이제 실질적인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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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주의가 중국을 살릴 수 있을까? | 기본 카테고리 2006-09-0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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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변화와 생존의 경계에서 선 중국 지식인

김태만 저
책세상 | 200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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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은 분명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가 보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에서 79권 중19권이 발행되지 않았으니까 78권 중 6권째로 김태만의 [변화와 생존의 경계어 선 중국 지식인]을 읽게된다.

''중국을 잘모른다.'' 말한다. 김태만 역시 중국현대문학의 이해도가 천박한 수준이었음을 고백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2025년쯤 되면 중국이 세계제일의 경제부국이 된다고. 그 때 가봐야 알 수 있지만, 중국은 지금 이렇게 성장하고 있다. 과연 중화인민공화국이 미국의 자존심을 뒤로하고 일인자의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약간 회의적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대하여 패권주의를 행사하여 자기의 의의 나라라 자랑하고 자기들 말을 듣지 않으면 짓밟는 잘못을 행하고 있지만 그래도 자기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한계는 있지만.

중국은 아직 아닌 것이다. 공산당 일당지배하의 정치체제, 1989년의 텐안문 사태가 중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경제적 발전은 돈을 얼마나 잘 버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다. 이런 중국의 지식인들은 과연 누구일까?

유가적 지식인은 ''안으로는 성인의 덕목을 실현하고 밖으로는 군주로서 소임을 대하며,'' ''하늘의 이치를 존중하는 반면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이를 말한다고 김태만은 쓰고 있다. 이 지식인들은 서구의 침략 앞에 혼란을 겪었다.

중국의 지식인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개인적 성찰의 전통을 거부하고 집단적 반성을 추구한다. 인간의 덕성보다는 체제의 도덕성을 강조했다. 지식인이 개인적 주체가 아니라 집단 또는 세력이되었다. 이것은 지식인으로서 존엄한 가치를 스스로 거부하였고, 전통적 지식인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1989년의 텐안문을 어떻게 생각할까? 모택동, 덩샤오핑의 시대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시장화와 상아탑으로 회귀, 영화, 사회의 변화와 분화, 자유주의, 신좌파 논쟁을 통하여 그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발견하고 있을까?

그런데 지금 중국은 ''중화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더욱 강화되는 형국이다. 개혁과 개방을 외치고 있지만 자국의 소수민족의 자치와 독립에는 강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류가 중국에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중국과 진정한 교류를 하는 계기로 나아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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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필연만 있다면 | 나의 리뷰 2006-09-0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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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 철학적으로 어떻게 볼것인가

이영호
책세상 | 200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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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객관적으로는 인간적 삶이 지나온 과정의 형식과 내용의 총화이며, 주관"적으로는 그것에 대한 반성이다." 이영호의 [역사, 찰학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던지 첫 화두이다.

사실 나는 ''객관적''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주관이 해석한 객관일뿐이다. 과거 인간의 삶이 지나온 과정을 역사라 할지라도 그 역사는 인민보다는 강자가 남긴 기록으로 객관하기에 역부족이다. 주관, 이를 역사에서는 사관으로 말할 수 있을까? 사관으로 과거를 본다. 사관에 따라 즉 주관에 따라 객관 역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비관해서는 안 된다. 경험하지 못하면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역사는 필연성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 우연이라면 비과학적일 수 있기에 관심이 없을까? 존중받지 못할까? 하지만 우연이 낳은 역사는 수도 없이 많다. 필연성만 역사를 정당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영호는 말한다. 53쪽 "인간 역사의 전 과정이 종교사의 일부인 것은 결코 아니다. 종교사야말로 인간의 본질적 소외에 기초한 비합리적인 자기 의식으로서 인간 역사의 한 측면에 불과하며, 따라서 비합리적 종교적 역사관은 과학적 역사 인식을 위해서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약간 불만이다. 종교사가 과연 비합리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가? 종교사가 아닌 정치, 경제 문화사는 과연 과학적 역사인식인가? 어쩌면 종교사보더 더 비합리적일 수 있다. 종교가 더 합리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과학적 합리성이 무슨 말인지 잘모르겠지만, 이는 그냥 자연과학을 말함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는 말하고 있다. 인간사를 말함에 있어, 인간이 애초부터 오늘날의 인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신에 의햐 만들어졌다고 하는 창조설은 한갓 신화로서, 인류에 대한 과학적인 상징적 날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이는 과학의 맹종에 불과한 주장이다. 고고인류학, 문화인류학, 고생물학이 남긴 자연과학 역시 추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화론 역시 가설이 불과하다.

종교는 과연 신기류에 불과할까? 기독교와 불교가 과연 신기류에 불과할까? 지배계급에 피지배계급을 통치하기 위하여 만든 거짓에 불과할까? 이영호가 그런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과학이 종교가 되고, 어떤 학문 분야가 종교화될 때 마찬가지이다. 철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민과 교감 없을 때 신기류에 불과하며 탁상공론이다.

역사의 미래는 어떨까? 지난 역사가 필연만이 아니라 우연성의 많은 산물이듯이 앞으로 역사 역시 필연성보다는 우연히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을 수있다. 그래 카아가 정말 말 잘했다. 역사란 끝 없는 대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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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만 두 얼굴일까? | 기본 카테고리 2006-09-0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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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북한 정체성의 두 얼굴

서보혁 저
책세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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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중으로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올까? 지난 6월 17일 이후 우리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북한이다.

서보혁은 [북한정체성의 두 얼굴]에서 한 세미나의 풍경을 통하여 북한을 말하고자 한다. 북한 알지 못한며서 북한을 평가하는 우리들 아닌가? 나의 잘못된 판단이 다른 이의 판단을 그릇되게 하고, 그것은 사회, 대한민국 전체가 잘못 판단할 수 있게 함을 경계한다.

북한은 권력구조면에서 일인집중, 사회적으로 동원되고 군사화된 사회 조직과 제도가 유일체제의 강력한 재생간 기반, 문화적으로 개인숭배 현상을 동반하는 나라라 말하고 있다. 북한은 항일무장투쟁, 한국전쟁, 집단주의 문화가 현 북한을 북한답게 한 정체성으로 또한 보고 있다.

북한은 민족주의적 정향과 독자적 사회주의의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북한 정체성은 나름대로 역사성이 있다. 하지만 결정과 집행에는 응집력과 경직성이 동반할 가능성, 상충할 수 있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실 유일한 정답은 없다. 대한민국을 우리는 정확하게 보고 있는가? 미국, 일본, 중국은 없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라는 체제-정치제도, 경제체제, 문화, 사상과 의식-가 결코 우리 중심으로 판단되어 북한은 이러니 틀렸다, 맞다로 결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북한과 교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부시행정부는 북한 김정일 체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화의 장을 열거나, 열려도 타협과 협상이 불가능한 것이다.

북한 변하고 있는데 어쩌면 우리는 변하지 않을 수 있다. 거기에는 미국과 수구세력도 한 몫하고 있지. 시간이 지나 정말 변화된 북한이 자신들 앞에 섰을 때 후회하지 말지라.

한 가지 불만이 있다. 왜 북한 ''문제''인가? 북한 핵 ''문제''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북한은 기본적으로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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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망한 것이라 할 수있을까? | 나의 리뷰 2006-09-0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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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사회주의가 문을 닫은지 15년이 흐르고 있다. 물론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가 진정 맑스가 말한 사회주의인지 의문과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그 후 사회주의는 별 인기있는 정치 경제 체제가 아니다. 미국을 중심한 신자유주의가 인간 본래의 심성을 자극하기에 더 나아 보인다. 인간은 원래 ''함께,'' ''공동,'' ''나눔''이라는 단어에 익숙한 존재가 아니다.

강성호는 무슨 생각으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라는 책을 썼을까? 보니 초판 1쇄 후 더 이상 책을 찍어내지 못한 것을 보니 사람들은 이제 맑스에 별관심이 없나보다. 좀 인기는 있는 책을 집필하여 돈도 좀 벌어야 하는데 말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위기라 한다. 사실 위기 아닌 정치체제, 경제, 사회 문화가 어디 있는가? 속류마르크스주의도 있단다. 이는 마르크스주의가 본질적으로 아니다. 사람들은 원래 진짜보다는 짝퉁을 더 좋아할 수 있다. 그럼 진짜는 문제가 없는가? 역사 현실을 너무 관념적으로 접근했고, 마르크스 역사학이 당과 국가에 종속되었고, 서구중심주의적 태도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 문화, 정치, 경제는 기계가 만든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60억이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는 지구라는 공간은 60억의 정치, 역사, 문화, 경제가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톰슨을 만났다. 문화와 경험으로 읽는 역사. 계급을 하나의 역사의 현상으로 이해한다. 정태가 아니라 동태적 시각. 인간의 능동성과 문화를 강조. 이는 마르크스의 본류와는 좀 다르다. 그렇다 마르크스주의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 기계적이다. 원시사회,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주의로 발전한다 스탈린은 너무 했다. 동양, 아니 아프리카와 인디언의 세계는 어떠했을까 고민은 한 번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말이다. 스탈린, 에드워드 톰슨, 구조와 행위의 이원론을 넘어 앤서니 기드슨. 일상생활로 보는 역사의 위르겐 쿠진스키, 이메뉴얼 월러스틴. 알렉스 캘리니코스. 에릭 홉스모. 이들을 자세히 모른다. 맑스, 레닌 이후 그들이 자신들 나름대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을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진 이 때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망하지 않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을 이루어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가 망한 것이 아니며, 틀렸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거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그러할지라도 마르크스역사학이 새롭게 변화하여 진정 인류가 가장 필요하고, 신자유주의 병폐를 고쳐주고 인류발전을 위하여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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