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耽讀
http://blog.yes24.com/kdssae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耽讀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0월 스타지수 : 별5,343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Wish List
My Story
My Favorites
耽讀 쓴 기사
오마이뉴스기사
대한민국
성경읽기
노무현
창비주간논평
사색의 향기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성약출판사
耽讀
MB
미디어
남북관계
정치기사
사회기사
국제
경제기사
4대강
천안함
김대중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당
세종시
한국교회
인사청문회
문재인과 민주통합당
질매섬과 네 동무의 5.18
박근혜정부
박정희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리뷰
역사
인문
음반
문학
사회
소설
에세이
정치
어린이
기독교
자연과학
경제
인물
gift
문화
예술
DVD
나의 메모
耽讀글방
耽讀메모
태그
간디의길 새인물 양향자 김빈 더불어민주당 인물영입 황주홍 호남팔이 더민주당 구정치인
2007 / 0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2007-01 의 전체보기
이놈 멋쟁이고 품질도 우수하다 | gift 2007-01-31 21:21
http://blog.yes24.com/document/61225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문구/GIFT]파버카스텔 그립2011 샤프(블랙)

샤프
FABER CASTELL | 2006년 04월

품질     디자인/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거나 쓰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 볼펜은 불편해서 연필을 쓴다. 연필을 쓰면 자주 깎아 주는 것이 싫어 샤프를 사용했다. 문제는 샤프심이 잘 부러진다는 것이다. 조금만 힘을 가하면 툭툭이다. 급한 성격이라 다시는 사프를 쓰지 않겠노라 마음먹지만 타고난 천성이 책을 읽을 때 연필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샤프를 썼다.


 


잘부러지지 않는 샤프심을 구해보려고 팔방으로 노력해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1000원 하는 샤프를 몇 번이나 바꾸었다. 하지만 결과는 뻔했다. 툭툭이다. 샤프심만 여러 통이 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그런데 우연히 예스24에서 그립2011을 보게 되었다. 리뷰 내용을 보니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구입을 결정했다. 이왕에 사는 것 아내에게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가격. 아무리 좋다고 하지만 샤프 하나가 만원이 넘는다는 것은 마음에 부담이었다. 그래도 결행했다.


 


일주일 정도 사용했다. 정말 품질 하나만은 탁월했다. 삼각모양은 사람 손가락이 가장 편안하게 하는 느낌이다. 박혀있는 그립들은 미끄럼을 방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디자인 면에서 좋다. 옛날 샤프들은 심심하면 부러졋다. 하지만 이 샤프는 일주일이 넘었지만 아직 한 번도 부러지지 않았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아내도 좋아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던가. 그 역시 샤프연필을 좋아했다. 하지만 부러지는 샤프심에 불만이 많았다. 그립2011이 반갑고 고마울 수밖에 이런 제품이 있었다니. 감격했다. 아 그리고 아내에게는 이 샤프가 5000원이라 했다. 이는 비밀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5        
낯선 두 여인 | 기본 카테고리 2007-01-21 19:25
http://blog.yes24.com/document/60703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기대어 앉은 오후

이신조
문학동네 | 1999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낯선 두 여인. 50대 중반과 20대 중반. 20대 중반은 50대 중반을 비웃는다. 50대 중반은 20대 중반을 부러워하면서 약간은 시기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의 한 모습들이다.

기대어 앉은 오후 역시 그런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은해와 윤자는 같은 아파트에 서는 여성이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느낌으로 알고, 느낌을 더 하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 50대 여성 윤자는 손을 한 번씩 다른 방향에 둔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남편과 아들의 아침상을 통하여 반역을 꿈꾸지만 남편과 아들의 반응을 신통치 않다.

은해는 최대리에 대한 감정을 가진다. 최대라의 콤프렉스를 알아 차린 결과다. 최대리도 반격을 하여. 그의 이름을 은혜가 아닌 은해라 한다. 한 밤에 꿈을 꾸었지만 은해는 결국 최대리를 갖지 못한다.왜 그럴까 결국 그는 아버지의 가죽장갑과 수영강사를 통하여.

 

요즘 소설이 다 그렇지만 자기 혼자만의 세상을 이야기 한다. 남을 대하는 성격이 영 불만이다. 과연 수영강사는 은해를 어떻게 보았을까? 최대리는 은해를 어떻게 보았을까? 남편과 아들은 윤자를 어떻게 보았을까? 윤자와 은해가 가졌던 생각을 그대로 가졌을 수 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약간은 유치 | 기본 카테고리 2007-01-21 15:15
http://blog.yes24.com/document/60694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어느덧 일 주일

전수찬 저
문학동네 | 2004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약간은 유치하다. 설정이 그렇고 그렇다. 유부녀와 총각, 남편이 떠난 공간에 청년이 개입한다. 물론 그 전부터 개입했다. 총각도 유부녀 남편을 전부터 알고 지냈다. 일주일 간 일어난 유부녀와 총각 사이의 일 가운데 몇몇이 개입한다. 신호, 기연씨 오빠, 과장, 노숙자 아저씨.

일주일 동안 일어난 그네들의 사건 속에 개입된 이들을 다 설명하고자 하니 단조롭다.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들이 준태에게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지 도지 모르겠다.

요즘 소설은 다 이런가? 그저 생각없이 읽을 수있게 하는 것이 글쓰는 이들의 일상인가? 독자들도 그것을 원하는 것일까?

글이란 구로와 같다. 구로하는 여인의 경험을 통한 글이 아니고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우리 모두가 바나나맨은 아닐까 | 기본 카테고리 2007-01-20 17:00
http://blog.yes24.com/document/60651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지구영웅전설

박민규 저
문학동네 | 2003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박민규 소설은 조금 어렵다. 어려운 소설가 중에 박상륭씨가 있지만 그와 다른 의미에서 어렵다. 어렵다는 말은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지 고민이라는 뜻이다.

 지구영웅전설은 우리가 그 옛날 만났던 수퍼맨, 배트맨, 언더우먼, 아쿠아맨 등등이다. 가만히 이들의 면면을 보면 역시 지구방위특공대 미국이 만든 것들이다. 요즘 뿐만 아니라 그 때 역시 지구는 미국이 지켰다.

 '나'는 미국인이 될 수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인이 아니기에, 그가 바나나맨으로 거듭났지만 언더우먼의 생리대 선물을 할정도이다. 과연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박민규도 그에 대한 질문을 가졌기에 이런 류의 소설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답을 가지고 있을까?

 한미에프티에가 한창이다. 후세인은 이미 생을 끝마쳤다. 이란은 핵을 가질 수없다고 한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원인과 이유에는 모두 미국이 있다. 그리고 미국이 곧 정의요 선이다.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이 기준에 부합하기 위하여 전세계는 오늘도 미국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으면 이 땅의 군상들 역시 미국에 조아리기 위하여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서울시청 광장에서 모여 성조기를 태극기와 동등하게 아니 태극기 위에 두고 미국을 지켜달라, 악의 세력에서 이 나라를 지킨 미국에 경의를 표한다.

 지구영웅전설을 읽어면서 미국의 반대한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이미 미국을 어쩔 수 없이. 싫어하지만 미국을 거부할 수없는 우리 현실을 반추했다. 박민규 역시 미국을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존경과 비판 중 어느 하나에 둘지 모르고 있음을 느꼈다. 미국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가득했지만 그렇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을까 | 기본 카테고리 2007-01-19 15:15
http://blog.yes24.com/document/60583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저
문학동네 | 2005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읽으면서 약간은 부담스러웠다. 나를 파괴할 권리가 과연 나에게 있을까? 모든 인간이 이 문제에 고민하면서 세상과 자기가 살가는 공간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한편으로는 동의할 수 있겠지만 선듯 동의할 수 없었다.

 작가 역시 '이 소설은 혹시 당신 내면에 숨어 있는 살해 충동의 문화적 표현입니까?'라는 질문에 들켜버린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 인간 모두는 내심 살해 충동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결행할 마음이 없었고, 결행 후에 닥칠 법적 규제와 자기와 같은 인간의 눈초리 때일 것이다.

 k와 c는 한부모의 핏줄을 이어받는 이들이지마 자신만의 세상을 꿈꾸고 있다. 이 생각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 여인을 두고 자신의 몸을 탐한다. 한 사람은 밋밋하지만 한 사람은 밋밋한 상대를 이해할 수없다. 물론 그도 아버지의 장례식에 몸을 적나라한 쾌락에 던지기도 한다.

 이런 인생살이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일상이기도 하다. 밋밋한 사랑을 하고, 자기 쾌락을 위하여 핏줄의 슬픔을 외면하기도 한다. 콜라만 마시는 홍콩에서 온 여인, 과연 그가 홍콩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왔다니 온 것이지. 그 여인은 자기를 돈으로 산 남자의 정액을 마시면서 구토가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남자의 정액을 마시면서 구토한 것은 그가 자기를 잉태게 한 아버지의 거부일 수있다. 남자는 정액을 통하여 쾌락을 일삼을 수 있지만 내심 자기 종족을 번식시키는 원초적 본능을 소유한지이다. 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부정은 자기가 경험하고, 의식한 부정일뿐 남자라는 인간은 근본은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경험들이 나를 파괴할 권리일 수 있지만, 신을 믿는 이들에게는 또한 부정이기도 하다. 신을 부정하는 이들이 이를 동의할 수 있지만 신을 믿는 이들에게는 또한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우리를 말하는 문자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시대 | 기본 카테고리 2007-01-06 20:25
http://blog.yes24.com/document/12382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저
밀리언하우스 | 2006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우리는 끊임없이 알고자 한다. 우리 시대는 더 과하다 할 정도로 앎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하지만 나를 아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뿌리깊은 나무를 읽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다. 세종은 나를 알고자했다. 나를 아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문자였다. 나를 말하고, 표현하는데 문자만큼 근본적인 것은 없다. 하지만 세종과 조선에게는 문자가 없었다. 자기를 말하고, 표현하는, 조선을 말하고, 표현하는 자기 문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한 지식과 이상을 가졌을지라도 그 지식과 이상은 중국의 문자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종과 당시의 수구세력의 대결은 여기서 시작된다. 세종은 나를 알고자 했고, 수구는 내가 아니라 상국을 섬겼다. 이는 단순히 기득권 유지차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기가 되고자 하는 근본마음이 없었다.

누가 죽고, 몇 명이 죽었고, 어떤 원리가 숨어 있는지, 채윤과 최만리의 두뇌 싸움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나를 아는 것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의 싸움도 아니다. 나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문자임을 책은 묵묵히 말하고 있다. 이 시대 우리는 우리를 말하는 문자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만원짜리 인물에만 머물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왜 예술이라는 말을 붙이는지 | 나의 리뷰 2007-01-05 19:35
http://blog.yes24.com/document/59466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예술음악과 대중음악-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예술음악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예술 영화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사실 음악과 미술, 영화에 ''예술''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모든 음악이 예술이고 미술이 예술이고 영화이다. 예술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무리들은 어쩌면 자신들을 조금은 더 고상한 무리라 규정하고 싶은 이들이다. 지극히 고상한 이들 말이다.

콩나물 대가리만 조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이 책을 읽어면서 느낀 것은 예술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고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데카르트의 말이 생각난다. ''가장 단순한 것에서 출발하라'' 하지만 합리성, 근대성에 목숨을 거는 이들은 이를 복잡함으로 변절시켰다. 그래야 자기들이 계급구조하에서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어니까?

언제가 모임에서 이런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몇 백만원짜리 오디오에 ''뽕작''을 듣는 사람보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그런 오디오는 고상한 ''클래식''을 들어야 한다고. 나는 그 때 말했다. 그런 구별하지 말라고. 그것은 그가 음악을 좋아하는 방법일 뿐, 클랙식은 고상하고 뽕짝은 저급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실용음악과 순수음악. 1980년대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논쟁이 있었다. 그런 구별이 무에 중요한가? 문학을 하는 사람 자체가 중요하다. 문학과 글쓰기를 하는 그 사람 자체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순수문학이네 하면서 글쓰면 그 문학은 글이 아니다. 참여문학을 쓴다고 말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이제 다양한 음악의 장르, 장르에 따라 고귀함은 구별되지 않는다. 음악 자체를 사랑한다면 예술이네 대중이네 말하지 말고 음악 자체를 사랑하자.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시장이 만능이 더려면 정직해야 한다 | 기본 카테고리 2007-01-05 19:34
http://blog.yes24.com/document/1375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관치 청산 - 시장경제만이 살 길이다

유정호 저
책세상 | 2004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유정호의 [관치 청산-시장경제만이 살 길이다]는 왠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말이기에. 얼마나 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외쳤던 말인가/ 시장에 맡겨라. 시장을 믿어라. 하지만 그들은 먼저 신뢰를 보여 주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 개발 독재가 나은 병폐가 분명있다. 관치의 열매가 어쩌면 1997년의 아이엠에프 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책임은 없는가? ''관치''라는 말 자체가 풍기는 늬앙스는 굉장히 악의적인 표현이다. 왜 시장주의자들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가장 적절한 단어일 수 있기 때문에. 관치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관치가 시장을 왜곡하고, 시장의 주체들과 결탁하여 나은 결과들이 문제이다.

관치와 그들과 결탁한 일명 시장의 주체-자본가들- 사실 우리나라에 시장의 주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일들도 많은 모양이다. 시장에 맡겨라 하지만 시장을 자기 집 가계부 정도로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관치가 문제라면 시장경제의 주체, 곧 자본과 경영가들도 시장이 요구하는 원칙과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과연 그들이 그렇게 했는가? 한보,대우를 알고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삼성이 비판 받고 있는 여러 이유들, 과연 삼성은 유정호가 말하는 시장경제 정말 충실한 재벌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국가는 개입할 일이 있으면 개입해야 한다. 관치 때문에 시장경제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했다고 정부를 비판하지 말라. 시장경제 다운 시장경제를 먼저 자본과 경영가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시장은 아직 정직하지 못하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개혁을 외치는 자들도 서울대 보내더라 | 나의 리뷰 2007-01-05 19:33
http://blog.yes24.com/document/59465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정진상 저
책세상 | 2004년 10월

구매하기

[서울대학교]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학이다. 이 명패 하나면 최하 50점은 먹고 들어간다. 그럼 다른 사람은 경쟁 자체를 할 수 없다.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전형이 발표된 후 논술이 본고사다. 아니다 논쟁이 한창이다. 사실 이는 우끼는 논쟁이다. 본고사면 어떤가? 아니면 어떤가? 문제의 본질을 애쓰 외면하는 언론과 이 땅의 기득권, 자칭 서울대 동문들.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서울대가 대한민국에서 사라져야 이런 논쟁이 사라질까? 사라지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고. 그럼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이지만 아시아에서도 명함 한 번 내밀기 힌든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서열화체제를 깨야 한다.이는 서울대를 나오지 못한 이류, 삼류들의 열등감이 아니다. 하기야 대통령이 대학 출신 아니라고 비웃는 정당의 대변인이 있는 이상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정진상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입시 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에서 우리나라의 구조적 병폐를 단호,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지방국립대학 교수의 억지 주장이 아니다. 한 번 시험에 5000등 이내에 들면 앞날은 탄탄대로이다. 물론 공부 잘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시험이 평생을 일등, 이등, 삼등 인생으로 가르는 일은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책 내용은 대통령과 교육부총리, 교육공무원이 한 번 진지하게 정말 사심 없이, 학부모와 학생들이 한 번 읽고 진지한 토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교육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토론하여 많은 시간을 가지고 읽고 토론하고 미래를 위하여 정말 좋은 책이다.

교육 개혁을 정말 원하는가 그럼 한 번 읽어보라. 정말.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프랑스는 제국주의가 아니였던가? | 기본 카테고리 2007-01-05 19:32
http://blog.yes24.com/document/4293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누구를 위한 협력인가

박지현 저
책세상 | 2004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프랑스하면 파리, 예술, 드골, 나치 부역자들을 청산, 자유주의,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혁명 등등이다.

비시정부가 무슨 정부인지 잘은 모르지만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독일에 부역한 정부로 알고 있다. 그러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나는 비시 정부가 나치 부역 정부인지, 민족혁명을 통하여 새로운 프랑스를 재건하고자 했던 것인지, 민족 혁명을 통하여 독일 협력을 숨기고자 했느니, 나치주의의 변종인지 잘모르겠다.

모든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비시정권이 프랑스 인민 자체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프랑스 인민을 위하여 어쩌면 변절과 부역을 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기 전까지 그들은 좌파, 우파, 극우파, 급진파, 파시스트 의 논쟁이 있었다.

"혁명은 장난이 아니다. 강철 같은 법의 지배를 받는 가차 없는 행동이다." "정당은 죽었다, 국가와 정부와 진영에서 통솔하고 선동하고 지지하는 일당 독재 체제를 세워야 한다."

"자연은 개인들을 통해 사회를 창조할 수 없다. 자연은 사회를 통하여 개인들을 창조할 수 있다." 페텡은 말하고 있다. 개인의 권리보다 집단적 인간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의 비시정부가 부역 정권인지, 나름의 정통성을 지닌 정부인지 그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평가할 일이다. 그런데 독일은 프랑스를 점령했을지라도 프랑스의 정신과 식민지를 점령하지 않았다는 저자의 결론은 새로웠다. 우리와 일제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프랑스는 식민지를 가진 제국주의였다. 그들도 사실 아프리카에서 수 많은 나라를 찬탈한 제국주의였음을 프랑스인들을 인정하고 있을까? 나는 항상 이런 것이 궁금하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2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조금은 뭐 하지만
눈을 조금 넓히자!
나라사랑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글쓴이는 철새에 대해.. 
wkdf qhrh rkqlsken 
멋집니다!! 
저도 윗분의견 공감. .. 
이 글 쓴 사람 지금쯤.. 
오늘 136 | 전체 2222229
2004-11-1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