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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이건희 회장이 사는 길 | 耽讀 쓴 기사 2007-10-3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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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어둠은 영원히 자신이 어둠으로 존재하리라 믿는다.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은 언제나 진실을 덮어둘 수 있다. 어둠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치부와 거짓을 통하여 세상을 지배한다. 하지만 빛을 만나는 순간 생명력을 상실한다.

 

삼성은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한 경제공동체다. 경제공동체라 함은 삼성 안에 거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통하여 얻어진 자본은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국에 입성하는 데 어느 대기업보다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삼성'과 다르다. 대한민국과 국민, 언론, 경제그룹들이 지금까지 삼성과 이건희를 동일시 했다. 특히 삼성과 삼성인들은 이건희와 삼성을 영원히 함께 가야만 하는 존재로 오해했고, 착각했다. 이것이 삼성공화국, 삼성제국까지 이르게 된다.

 

이제 우리는 삼성을 살리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한 중요한 길목에 섰다.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시키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이건희 회장도 산다.

 

삼성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을 대한민국 앞에 내놓았다. 그가 삼성에서 어떤 일을 했고, 무엇을 했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는 고민했을 것이고, 어둠 속에서 영원히 자신의 양심을 속이면서 물질적인 풍요와 높아진 사회적 지위를 통하여 대한민국 주류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양심은 김용철 변호사를 용납하지 않았다. 어둠게 갇혀 살아가는 주류를 버리고 빛으로 양심을 선언하라고.

 

우리는 지난 날 수많은 삼성에 관련된 사건들을 접했다. 하지만 이 땅의 언론과 권력은 침묵했다. 돈과 명예를 위하여 어둠을 동반자 삼아 영원히 자기들만의 영원한 제국을 구축하여 암흑세상을 꿈꾸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김용철 변호사 개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양심 앞에서 어둠보다는 빛을 택했다는 것이 대한민국 미래에 새벽놀이 비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경제 때문에 또 덮어주자고 하다가는 모두가 망한다. 가장 크게 망하는 자가 이건희 일가임을 명심해야 한다.

 

어둠을 걷어내는 첫 시작을 내딛은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게 박수를 보내고. 모두가 진실이 밝혀지기를 힘써야 한다. 시민도 이에 한몫해야 한다. 특히 언론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일에 주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틀 간 보도행태를 보니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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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 호 희망을 주는가 | 耽讀 쓴 기사 2007-10-3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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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게 두 달은 길지 않은 시간이다. 8월 23일 문국현 후보가 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 한 후 두 달 만에 <창조한국당>을 창당하여 문국현 호가 출발했다. 다음 달 4일에는 문국현 예비후보는 창조한국당 대선출마자로 지명된다. 개인 '문국현'에게는 두 달이 정말 길었을 것이다. 유한킴벌리 사장 13년 생활보다 어쩌면 더 길었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준비와 자격, 능력은 중요하다.

 

30일 창당 선언을 하면서 문국현 후보는 "창조한국당은 교육을 국가 전략의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하며,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도 교육과 학습을 통해서 독일과 같은 강한 중소기업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몸 담았던 '유한킴벌리'에서 실천했던 말이다. 유한킴벌리와 대한민국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기업 하나하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면 실천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그렇게 하면 대한민국 전체를 교육과 학습을 통하여 대기업 중심 경제체제가 가지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어 대한민국 경제체제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창조한국당은 창당선언문을 보면 "제도적으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생산적 복지를 구축하여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겠다. 자연과의 상생적 순환을 추구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오마이뉴스 '출항한 문국현 신당, 거친 파도 넘을 수 있을까').

 

창조한국당이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정책기조와 별 다르지 않다. 생산적 복지 개념은 국민의 정부가 만든 용어다. '자연과 상생적 순환을 추구'는 유한킴벌리에서 자연친화적 기업을 운영했던 문국현식 경영철학을 담고 있다는 느낌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국가정책사업-새만금, 천성산 터널-에서 환경단체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집행했던 것과는 다른 환경을 중시하는 정책기조를 읽을 수 있다.

 

또 강령을 보면 ▲사회적 연대 가치 구현 ▲지식·창의의 경제기반 조성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 회복과 평화통일 ▲생산적 복지실현와 삶의 질 향상 ▲지속가능한 사회 구축 ▲공교육 내실화와 평생교육 체제 완비 ▲다원적 가치와 소수자 권리 증진 ▲점진적 군비축소와 동북아 경제협력을 담고 있다.

 

이념이 좌파 중도라 할 만큼 혁신적인 강령이다. 민노당에 가까운 이념지향인데 어떻게 경영인 출신 정당이 이런 강령을 만들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창조한국당이 집권하고 강령대로 정책을 입안, 확정, 집행한다면 대한민국 63년 역사 지배자 중심의 사회 구조를 인민 중심의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령들이다.

 

하지만 창당은 창당, 후보는 후보, 강령은 강령일뿐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창당은 아니지만 문국현 정도의 자격와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창당과 후보, 강령을 통하여 국민을 설득하여 청와대에 입성해야 한다. 청와대 입성까지는 문국현 후보가 갈 길이 너무나 멀다.

 

먼저 지지율이다. 언론이 무관심한 것도 있지만 다른 후보보다는 훨씬 낫다. <오마이뉴스>는 언론이 아닌가? 인터넷 언론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오마이뉴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에 언론 무관심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지율이 확실하게 10%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단일화 후보 중심에서는 10%초반이다. 응답율 가지고 지지율 의미를 평가절하하면 안 된다. 모든 여론조사가 10%을 넘지 못한다면 현지지율이 문국현 후보 지지율이라고 보면 된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청와대 입성은 힘들다.

 

창조한국당 창당과 후보자 지명이 확정된 후 다음 달 10일까지 20%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유권자는 냉정해진다. 새로운 후보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은 아니지만 차악을 선택한다. 선거는 심리가 많이 작용한다. 그러므로 11월 10일 전까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20%을 넘어야 한다. 앞으로 보름이 50일을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강령을 보면 민노당과 흡사한 점이 많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현실과 동떨어진 강령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 65년 역사는 보수중심사회였다. 그러기에 진보정당과 진보정책이 뿌리를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복지를 원하지만 복지는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가능하다. 우리 국민들은 양면성이 있다. 복지를 원하지만 자기 주머니 돈은 아깝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복지 정책이 신자유정책이라고 비판하는 민노당과 진보세력, 평등에 치우쳤다고 비판하는 보수세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사회연대 가치 구현, 공교육활성화, 다원적 가치와 소수자 권리 강화, 중소기업 체질강화 등은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보수세력의 엄청난 비판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가 복지정책을 강화할 때마다 보수세력은 비판에 직면하여 많은 정책이 후퇴했다. 강령을 정책으로 입안, 집행하기 위하여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보수언론과 대결에서도 이겨야 한다.

 

그리고 문국현 후보 개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권력의지'가 강해야 한다. 이명박, 정동영 후보를 보면 권력의자가 강하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보기에 문국현 후보는 겸손하고 착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권력의지는 겸손과 착함이 아니다. 냉정하고 단호해야 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거짓말과 유권자를 속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이유는 어느 누구보다 권력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권력을 손에 쥐겠다는 신념이 불굴의 의지가 되어야 한다.

 

개혁세력은 고민 중이다. 다음 5년 동안 수구세력 집권을 막고, 개혁 세력이 집권하여 더 나은 사회, 평화체제, 인민이 함께 삶을 공유하는 사회, 약자가 어깨에 힘을 주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그 책임을 <창조한국당> '문국현 호'가 실천해주기를 원한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직접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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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 耽讀글방 2007-10-3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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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리스도의 십자가

존 스토트 저
IVP | 200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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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자가의 섬광을 언뜻언뜻 포착하고 했으며-이것은 반드시 예수가 달린 십자가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 전신주 위에 우연히 엇갈려 못질된 두 개의 나무 토막이었으리라-그럴 때면 나의 심장이 갑자가 정지되곤 했다. 어떤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나는, 우리의 좋은 대의가 아무리 존경할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 대의보다 더욱 중요하고. 더욱 우리를 격앙시키고, 더욱 격정적인 어떤 것이 문제가 되고 있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강박적인 관심이었음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직접 나뭇가지를 십자가 모양으로 고정시키기도 하고 멍청하게 앉아서 종이 위에 십자가를 낙서하기도 했다. 우리 가정에서는 보잘것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이 상징이 그러면서 또한 소망과 갈망의 초점이었다.

 

 이것을 기억하노라면 나 자신의 실패에 대한 의식이 납덩이처럼 나를 누른다. 나는 그 십자가를 내 심장 위에 입고 다녔어야 했다.그 귀한 상징, 그것을 지니고 다니면서 결코 손아귀에서 빠앗기지 말아야 한다. 내가 넘어 지더라도, 그것만은 높이 쳐들고 있었어야 했다. 그것이 나의 숭배자, 나의 제복, 나의 언어, 나의 생명이 되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나는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가 그것을 몰랐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외면했던 것이다.  56-57쪽

 

교회가 십자가를 상실했다.

돈과 권력, 인본주의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십자가 네온은 화려하지만

껍데기만 화려할 뿐이다.

죽은 십자가를 고이 모시는 교회다.

십자가 없는 교회가 무슨 생명력을 발휘하겠는가?

[출처]그리스도의 십자가 56-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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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참된 세계다 | 耽讀글방 2007-10-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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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니체

뤼디거 자프란스키 저/오윤희 역
문예출판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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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참된 세계다. 음악은 또한 괴물이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존재를 확인한다.바로 이런 방식으로 니체는 음악을 경험했다. 음악은 그에게 전부였다. 음악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음악은 멈추었으며, 사람들은 음악이 없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음악으로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하 나는 구역질과 혐오감을 느끼네. 만하임 공연을 다녀온 후, 나는 밤새도록 이상스러울 정도로 일상적 현실에 대한 고양된 전율을 느끼네. 왜냐하면 현실적인 모든 것이 더 이상 사실로 느껴지지 않고 허깨비처럼 보이기 때문이네.

 

사람들이 음악이 없는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사실이 바로 니체가 끊임없이 고민한 점이었다. 음악이 끝난 후에도 삶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견딜 수 있을까?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음악이 어렵다. 음악을 잘하지 못한다. 음악을 알지 못한다. 음악에 조예가 없다. 니체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의심한다.

[출처]<니체> 문예출판사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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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키스트 | 정치 2007-10-3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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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조세현
책세상 | 200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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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한번쯤 이들의 사상을 동경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로 불리워진 이들의 삶의 족적을 가기를 원했다. 군부독재가 인간 본성과 양심을 억압한 것을 경험했던 대한민국을 살아간 일부는 저항정신이라는 명목으로 '아나키스트'를 동경했고 그들의 사상을 체화(體化)하는데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키즘, 아나키스트의 개념 정립을 명확히 내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단순히 그들을 그냥 무정부주의, 무정부주의자로 결론지었고, 오늘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도 국가와 정부가 자신을 옥죄고 있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의 삶을 따라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29' 조세현의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을 만나보시라.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에 대한 이해가 우리에게 얼마나 빈약한지 채찍질하고 있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아무도 아나키즘이란 용어를 독점할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는 아나키즘을 어느 누구도 명확히 정의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세현은 아나키스트와 아나키즘을 서양의 시각이 아니라 동아시아 시각에서 보았다. 그는 동아시아의 아나키즘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동아시아 아나키스트의 극적인 삶을 알아보고 싶은 충동 때문이다. '나의 양심은 나의 것이고, 나의 정의는 나의 것이고,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라 선언했던 역설의 명수 푸르동(Pieer Joseph Proudho), 자유에 대한 열정을 안고 '파괴는 새로운 창조'라면서 바리케이트 위에서 반역을 꿈꾸었던 바쿠닌(Mikhail Bakunin), 민중은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숭배하지는 않는다'며 민중을 무한히 신뢰하고 사랑했던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양 아나키스트들의 삶은 한결같이 매우 열정적이다. 이런 모습을 동아시아의 아나키스트에게서도 찾아 그것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었다."(7쪽)


 


인간 자체를 지독히 사랑했다. 체제와 구조,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독히 사랑하면서 다른 이가 가는 그 길을 막지 않았고, 다른 이가 가진 신념을 존중했다. 그 신념이 인간 자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본의 아니키스트 '고토투 슈스이'는 사회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변화한 사람이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다른 신념으로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자들로부터 '변절'의 표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선거를 통하여 권력을 창출하려는 의회주의를 비판하고, 직접 행동하기를 원하다 '대역 사건'으로 죽임을 당했다. 고토쿠는 일본의 애국주의를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애국심이란 국민의 허구와 미신의 결과이며, 애국주의란 야수의 천성이자 미신이요, 광란이자 허구이며, 호전적인 마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국주의와 애국주의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로 보아 함께 부정했고, 세계주의에 기초해 민족과 조국을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를 강조했다."(28쪽)


 


'단일민족' 개념이 철저한 우리에게 고투쿠 슈스이 발언은 이해할 수 없다. 국가주의 망령을 비판하는,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이들도 애국심에는 관대하다. 국가주의가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것은 '국기에 대한 맹세'다.


 


얼마 전 문구를 조금 고쳤지만 아직도 양심과 사상을 옭아매고 있다. 모든 행사에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필수다. 거부하면 국가를 반역했다고까지 비판을 받아야 한다. 체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양심과 종교에 따라 국기에 대한 맹세는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의 코투쿠 슈스이가 지금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신채호는 과연 아나키스트인가? 민족주의자인가? 이승만과 안창호의 외교론과 준비론에 동의할 수 없었던 민족주의자 신채호! 그가 어떻게 아나키스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많은 논의와 논쟁이 있다. 아나키스트는 민족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럼, 신채호는?


 


한국의 아나키스트에게는 민족주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고 크럼은 비판했다. 그는 그 원인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있다고 했다. 한국의 아나키즘은 민족주의에서 출발했고, 민족주의 때문에 타락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서양의 아나키스트들에게는 매우 예외적이다. 국제주의를 옹호하는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조세현은 말한다.


 


"근대민족주의는 영토와 국경을 확장하는 침략적인 제국주의로 나타나기도 하고, 타민족의 간섭을 반대하는 민족해방운동으로도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민족주의가 무척 다의적인 개념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118쪽)


 


공산주의자가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다. 아나키스트도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자도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다. 즉 민족주의는 일차적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이차적인 개념일 수 있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02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에서 전재호는 민족주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민족주의는 다른 이데올리기와 결합하여 자신의 목표를 구체화시킨다. 둘째, 민족주의는 진보와 반동이라는 양면성, 이차성을 갖는다. 이런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신채호가 민족주의자이면서 아나키스트로 전향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의 자유, 평등의 세상을 꿈꾸면서 어떤 때는 폭력을 정당화했던 그들, 권력자·민족주의자·공산주의자의 경계의 대상이었던 그들, 어느 누구에게도 동의받지 못하였던 그들. 이제 그들의 사상이 새로이 날개짓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의 일극주의, 국수주의, 폐쇄적 민족주의가 다시 창궐하는 현상 앞에 우리는 다시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를 생각하고 조명할 필요가 있다. 국가체제를 완전히 부정하고, 민족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우리는 분명 한 개인의 무한한 자유와 양심을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파괴하는 일을 존중할 수는 없다.


 


개인의 자유를 갈구했던 아나키스트들이 걸어간 삶을 다시 반추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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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하여 | 耽讀글방 2007-10-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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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상의 거처

김남주 저
창비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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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하여

 

할머니는 산그늘에 앉아 막대기로 참깨를 털고

어머니는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호미로 고추밭을 메고

아버지는 이랴 자랴 소를 몰아 논수밭에서 쟁기질을 하고

나는 나는 학교 갔다 와서 산에 들에 나가

망태 메고 꼴을 베기도 하고 염소를 먹이기도 했지요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깨를 터시다 말고 막대기를 훼훼 저어

모밀밭을 해치는 산짐승을 쫓는 시늉을 하는 것을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김을 매시다 말고 사금파리를 주워

고춧잎에 붙은 진딧물을 긁어내는 것을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쟁기질을 잠시 멈추시고 꼬챙이를 깎아

황소 뒷다리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내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시에는

그 시절 우리 식구들이 미워했던 것들

산짐승 진딧물 진드기 같은 것이 자주 나오지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시에는

그런 것들을 내치느라 일손을 잠시 놓으시고

우리 식구들이 대신 들었던 것들

막대기 사금파리 꼬챙이 같은 것이 많이 나오지요 8-9쪽

 

 

시는 자기를 말한다. 남을 말하지 않고

시는 경험을 말한다 들은 이야기를 말하지 않고

시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자기를 말하지 않고 남을 말하고

경험을 말하지 않고 들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이 아니라 자기 말을 할 때 시는 시워지고

누구가 읽을 수 있다.

 

[출처]사상의 거처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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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좋은 것인디 | 耽讀글방 2007-10-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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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나님이냐 돈이냐

쟈크 엘룰 저/양명수 역
대장간 | 199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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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위선의 가면을 쓴 재물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덕망 있는 부자로부터 이 위선의 실례들을 자주 본다. 행실이 좋다고 하여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부자는 그 의로움에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그런 부자의 의는 불의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자가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부의 전체를 하나님께 돌리고 가난해질 때 그리고 하나님을 모든 재물의 주인되심을 인정할 때다.

 

우리는 돈과 재물이 하나님께 속한 것을 시인하든지 아니면 부인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됨을 알 수 있다. 57쪽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이런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돈 노예가 되어 돈이 자기 주인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선한 부자가 없다는 엘룰의 경고는 두렵다.

[출처]하나님이냐 돈이냐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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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풀 없는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일까? | 耽讀글방 2007-10-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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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야생초 편지

황대권 글,그림
도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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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운동장에 나가 보니, 세상에! 화단에 심어 있던 풀들이 마구 뽑혀져 땅바닥에 뒹글고 있는 게 아니겠어? 한 3분의 1 정도는 되는 것 같더라. 알아보니 교도소 구내 청소하는 사람들이 잡초 제거를 하다가 화단에 나 있는 풀을 멋도 모르고 그만 뽑아 버린 거야. 멍청한 양반들 같으니라구! 둔덕을 만들어서 화단으로 꾸며 놓은 걸 보면 몰라? 일부러 키우고 있는 걸 그렇게 무자하게 뽑아 버릴 수가 있는가 말이야. 아무리 잡초라 해도 그렇지.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우울하게 지냈다. 30쪽

 

잡초를 제거해본적이 있는가? 이 놈들을 좋아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제거하지 않으면 알곡을 먹을 수 없다.

알곡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잡풀이 정말 쓸모 없는 것일까?

잡풀이 사라지면 알곡만이 자랄 수 있을까?

[출처]야생초 편지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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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비하게 하는 교리 '인간의 전부 부패' | 耽讀글방 2007-10-2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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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간의 전적타락

아더 핑크 저
청교도신앙사 | 199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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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전적 부패 교리는 매우 '겸비하게'하는 교리다. 그 교리가 말하는 바는, 인간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으니 다른 쪽을 받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또는 인간이 그저 무식하니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리도 아니다. 사람이 쇠약하여졌으니 원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파멸된 상태에 처하여 있으며 타락하고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이 인간의 전적 부패 교리다. 따라서 인간은 '힘' 없는 존재다. 자신을 선하게 할 능력이 전혀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 받으심직한 일을 한 가지라도 할 능력이 없다. 성경의 모든 체계는 바로 이 점을 전제하고 있다. 구속의 전체계는 바로 이 점을 전제하고 있다. 19쪽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것은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인간은 존엄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리와 인간 이성은 여기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출처]인간의 전적타락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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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 | 耽讀글방 2007-10-2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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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설교자의 열심

박영선
규장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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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성의껏 주시는 분입니다. 긴 서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듭거듭 계속해서, 반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성의가 있고 우리가 이해할 여백을 항상 남겨주십니다. 그것이 진리요 사실이라는 한 가지만으로 막 밀고 들어오지 않고 이해에 필요한 긴 시간을 주십니다. 우리가 반발하는 것을 용납하고 이해하십니다. 이런 부분이 계시 이해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전지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모든 일의 유일한 계획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만이 앞날을 계획하시는 주재자입니다. 예정론은 우리가 빼도박도 못하게 구원받았다는 식의 고정된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인격적으로 계획하셨다는 뜻입니다. 16-18쪽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시는 데 우리는 욕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망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내가 구원받았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출처]16-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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