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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성장 | 耽讀글방 2007-12-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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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저
해냄 | 199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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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땅이 풀리는 해토(解土)의 절기가 오면 흙마당가에 쪼그려 앉아
얼음발 속에 뜨겁게 자라는 여린 새싹들을 지켜보느라 눈빛이 다 시립니다
언 흙을 헤치고 나온 새싹들은 떡잎이 둘로 나뉘면서 자랍니다

나뉘어야 자라는 새싹들

그렇습니다 나누어야 성장합니다
커지려면 나누어야 합니다
새싹도 나무도 나뉘어야 자라납니다
사람 몸도 세포가 나뉘어야 성장합니다
커진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생명체의 본성입니다
커나가는 조직은 정보와 지식, 비전과 자유와 책임을 잘 나누어
함께 공유하는 만큼 멈춤 없는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눠야 커지고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나누어야 서로 이어지고 함께 모여들어 커질 수 있습니다
크다는 것은 하나를 이루어낸다는 것이고
큰 사람이란 나누어 쓰는 능력이 큰 사람이고
크게 나눔으로 하나를 이루어내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잘 나누어 상대를 키움으로 자기도 커나가는,
지공무사(至公無私)의 사람이 아닌 지공지사(至公至私)의 사람입니다
나누지 않으면 성장이 정체됩니다
시들어가고 뒤처지고 부패하고 적대합니다
나누지 않을 때 싸움이 생기고 분열이 생깁니다
나눔만이 나뉨을 막을 수 있습니다

나누려면 나눌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늘 새롭게 나누어줄 삶의 감동과 이야깃거리가 있어야합니다
새로 학습한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하고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보살펴줄 시간과 물질과 건강이 있어야 나누려는 마음도 자라납니다
함께 나눌 가치 있는 일과 희망이 능력이 생겨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눔과 동시에 자기를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크게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나눔과 함께
자기 자신이 세상과 이어지고 몸통하여
내 몸과 내 큰 몸이 하나로 창조적 맴돌이를 이루어야 합니다
천 골짝 만 봉우리 물을 받아들여 큰 물둥지를 이루어야
너른 들녘을 푸르게 피워낼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선 자리에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땀흘려 일하고 공부해야
자기 안으로 흘러드는 물길을 낼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맑은 눈뜨고 자기를 불살라가는 투혼의 불덩이어야
나눈 만큼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나눔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성공한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눔은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가난을 나누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나누려는 마음'이 가난하고,
'나누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성공한 다음에 나누겠다는 굳센 다짐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를 잘 나누어 쓰는 능력입니다
두텁게 언 흙을 헤치고 나온 저 작고 여린 새싹은
여유가 있어서 떡잎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기가 바로 살기 위해서, 자기가 바로 크기 위해서,
그 작고 여린 자기를 처음부터 나누는 것입니다
나누는 능력도 생명체와 같아서 쓰지 않으면 퇴화하고 잃어버리게 됩니다
나누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 돈을 많이 벌고 크게 성공했다 해도
그것은 삶의 외피와 삶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삶의 속살과 목적,
아니 삶 자체를 삶의 껍데기와 바꿔버린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 삶의 핵심 능력이고
인간성의 본질인 사랑과 영성을 성장시키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인간으로 바로 살기 위해서는, 내가 인간으로 바로 크기 위해서는,
내 삶의 핵심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바로 나누어야 합니다
가난함 그대로를 나누어야 합니다
나누는 능력이 커나가는 만큼 나눌 거리도 커지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고 참된 성취입니다
그것만이 멀리 가고 오래 남는 창조적 맴돌이인 것입니다

 
사랑이란 지금 그대로의 자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해 자기 자신이 성장하고 상대를 성장시키고
모두가 진보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나누어 자신과 상대를 함께 키워내지 못하는 것은
사랑도 정의도 진보도 아닙니다
함께 하나 되어서도 성장하지 못하고, 나누어도 성장하지 못하는 건
진보가 아닙니다
성장하지 못하는 나눔, 성장하지 못하는 성숙은 진보가 아닙니다
창조적 맴돌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눔을 통한 성장과 성숙의 긴장된 떨림,
그 살아 움직이며 이동하는 균형점이
참된 사람의 자리이고 진정한 진보의 자리입니다
잘 나누어 보살펴야 성장함으로 성숙할 수 있고
성숙함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눔의 손은 보살핌의 손이기도 합니다

자기를 다 나누고 마침내 고목처럼 부드럽게 쓰러지는 생이 있습니다
쓰러져 돌아감으로 다시 새싹처럼 부활하는 생,
그래서 죽음마저 최후의 나눔이고 사랑이고 희망인 생,
그런 일생이기를 기도하는 신생(新生)의 시간입니다
언 흙을 뚫고 치열한 숨결로 자라나는 새싹들을 바라보며,
나눔으로 빛나는 작고 여린 얼굴들을 묵묵히 들여다보며,
내 안에서, 세상에서, 나눔으로 자라나는 푸른 희망 하나 하나를
뜨겁게 지켜봅니다
고개 들어 해동청(解冬靑) 하늘 바라보는 눈빛 시려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나눔과 성장' 65-69쪽

 

[출처] <사람만이 희망이다> '나눔과 성장' 65-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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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초기 책벌레들의 사유한계 | 耽讀글방 2007-12-3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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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저
푸른역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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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태종, 세종, 조광조, 이황, 이이는 조선 전기 서적 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책의 생산과 보급, 그리고 독서문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다만 이들이 지향한 책의 문화는 궁극적으로 양반-남성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이 었다. 비록 거룩한 언어로 포장되어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조선조 서적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라고 생각한다. 17쪽

 

 

그들 의식 속에는 민중이 없었다. 지식과 사유를 논할지라도 그 사유는 민중과 인민을 위한 사유가 아니라 지배계층 특히 남성 중심 문화 유지를 위한 지적 사유였다.

그 사유는 결국 제한적이며 보편성을 상실한 사유였다.

[출처]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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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시가 | 耽讀글방 2007-12-3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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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상의 거처

김남주 저
창비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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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시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이나 끌기 위해
최신유행의 의상 걸치기에 급급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가
생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순수의 꽃으로 서가에 꽂혀
호사가의 장식품이 되는 것을
나는 또한 바라지 않는다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
형제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나의 시가
한과 슬픔의 넋두리로
설움 깊은 사람 더욱 서럽게 하는 것을
나는 바란다 총검의 그늘에 가위 눌린
한낮의 태양 아래서 나의 시가
탄압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기를
미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배부른 자들의 도구가 되어 혹사당하는 이들의 손에 건네져
깊은 밤 노동의 피곤한 눈들에서 빛나기를
한 자 한 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그들이 나의 시구를 소리내여 읽을 때마다
뜨거운 어떤 것이 그들의 목젖까지 차올라
각성의 눈물로 흐르기도 하고
누르지 못할 노여움이 그들의 가슴에서 터져
싸움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하기를
나는 또한 바라 마지않는다 나의 시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노래가 되고
캄캄한 밤의 귓가에서 밝아지기를
사이사이 이랑 사이 고랑을 타고
쟁기질하는 농부의 들녘에서 울려퍼지기를
때로는 나의 시가 탄광의 굴 속에 묻혀 있다가
때로는 나의 시가 공장의 굴뚝에 숨어 있다가
때를 만나면 이제야 굴욕의 침묵을 깨고
들고일어서는 봉기의 창 끝이 되기를

 

 <사상의 거처> '나는 나의 시가' 17쪽

[출처] <사상의 거처> '나는 나의 시가'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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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쓴 사람들 | 역사 2007-12-3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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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핀란드 역으로

에드멘드 윌슨 저/유강은 역
이매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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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있다. 19세기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까지 역사를 쓴 사람들이다. 사람이 사람 목소리를 내고, 인민이 세상의 중심되기를 원한 사람들이다. 미슐레, 비코, 르낭, 텐, 아나톨 프랑스, 바뵈프, 생시몽, 푸리에, 오언, 맑스, 엥겔스, 라살, 바쿠닌, 레닌, 트로츠키가 그들이다.


 


에드먼드 월슨이 지은 <핀란드역으로>에서 두 가지 철로를 통하여 역사를 써내려간. 미슐레와 비코, 르낭은 부르주아 혁명을 사람들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우리는 인민을 억압했던 과거 역사를 없앤, 상업문명을 폐기한 사람들, 역사상 최초로 진정한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그네들의 삶을 살기위한 노력을 만날 수 있다. 혁명은 그들에게 역사 자체였다.


 


프랑스 혁명을 “인간의 가슴이 그렇게 활짝 열리고 훤히 트인 적이 일찍이 없었다. 계급·당파·재산의 구별이 그렇게 완전히 사라진 적도 없었다”로 역사를 사는 길은 오직 삶이며, 행동으로 생각했다.


 


"오직 행동만이 우리를 달래준다. 우리는 정력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의무를 지고 있다-인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하등의 천지만물에 대해서도."(57쪽)


 


미슐레는 <프랑스 혁명사>에서 "민중이야 말로 주연배우다"로 표현한 것처럼 계급 타파와 민중이 주체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리라 낙관했지만, 아나톨 프랑스가 1871년 파리코뮌을 세운 민중을 두고 “쓰레기 같은 놈들, 흉측한 놈들”이 말함으로써 역사는 미슐레가 원한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역사 철로는 여기 멈출 것인가? 다시 프랑스 혁명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가 구호가 아니라 삶이라는 영역, 실제 영역에서 적용되기를 원했던 바뵈프, 생시몽, 푸리에, 오언이다. 바뵈프는 <인민의 호민관>을 통해서 보통 선거권을 폐지하고 선거 참여에 높은 재산 자격 조항을 부과한 1795년 헌법을  통렬히 비판한다. 그는 정치적 평등뿐만 아니라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면서 "굶주린 자들을 질식시키는 이 끔찍한 타협"보다는 내전을 원했다. 가진 자들이 동의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그는 투옥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평등한 사람들의 선언>에서 외쳤다.


 


"이제 토지의 개인 소유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토지는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프랑스 인민이여! 두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활짝 열어 완전한 행복을 맞아들이자. 우리와 함께 평등한 사람들의 공화국을 깨닫고 선포하자."(132쪽)


 


푸리에와 오언은 공동체를 통하여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들은 세속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산업과 상업으로 전 사회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얼마나 많은 악폐를 끼쳤는지 경험했기에 인간애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맨체스터 어느 방직공장 책임자가 되어 500명 노동자를 거느린 그였지만 생명 없는 기계는 끔찍이 아끼면서 생명 있는 인간은 경시하는 사회구조에 충격을 받았다.


 


인간 경시 풍조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동체를 통한 사회주의 건설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 평등 박애를 구호차원에서 실제 생활에서 적용하려 했지만 역사와 사회는 그들이 주장한 것들이 아직도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유토피아였기 때문이다.


 


공상에 가까웠던 사회주의 건설이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역사 철로는 아직 멈출 수 없다. 사회주의 건설에 가장 중요한 인물인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들 뒤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에게 인간의 권리를 주지 않으려는 세력를 평생의 적으로 간주하고 일생을 바친다. 궁핍과 망명자로 살았던 맑스다. 스물세 살 마르크스는 “파도는 왜 으르렁거리는가? 우레와 같은 소리로 절벽에 부딪쳐 깨지기 위해서요”라고 심연에서 이글거리는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207쪽)


 


이런 맑스의 시각은 <공산당 선언>을 통하여 “시종일관 고성능 폭탄 같은 힘으로 가득 찬” ‘부르주아에 대한 선전포고문’으로 드러나게 된다. 역사를 해석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인공으로 인민이 자리하기를 간절히 원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을 출간한 뒤 마르크스는 말했다. “내 건강과 내 삶의 행복과 내 가족을 희생시킨 작업”이었다고 술회했다. 말이 아니었다. 자본 1권을 17년 동안 쓰면서 런던의 빈민굴에서 세 아이를 병으로 잃었다.


 


이런 개인적인 고통을 겪으면서도 맑스는 자신이 가졌던 사회혁명이론에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서유럽을 뒤덮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예상은 빗나갔지만 사회주의 혁명은 러시아에서 이루어졌다. 핀란드로 망명했던 레닌이 4월 '핀란드 역'에서 돌아와 동지들 앞에서


 


"수병 동지 여러분, 저는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지만 여러분이 임시정부에서 내놓은 모든 약속을 믿는지 어쩐지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저들이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이것저것 많은 약속을 늘어놓으면서 여러분과 러시아 인민 전체를 속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민중을 평화를 원합니다. 빵을 원합니다. 그런데 임시정부는 전쟁과 굶주림만 줄 뿐 빵은 한덩어리도 주지 않습니다. -지주들은 여전히 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프롤레타리아트의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사회혁명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세계 사회혁명 만세"(640쪽)


 


그리고 그날로부터 일곱 달 뒤 11월 6일(옛 러시아력 10월 24일)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미슐레, 바뵈프, 오언, 푸리에, 맑스, 엥겔스가 이상을 역사속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이 이루어졌다.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90년이 되었지만 그들이 만들고자, 쓰고자 했던 역사는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그들이 역사를 쓰고자 했던 계급을 통하여 인민을 억압했던 구조는 아직도 해결 요원하다. 이념 시대는 지났다고 외친다. 이상이 아니라 망상에 가까운 것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레닌이 한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미적거리다가 승리를 놓친 혁명가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616쪽)


 


자신의 의지로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레닌이 한 말에, 사람은 유한한 존재라 믿고 있는 나에게는 오만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사마저 무시하려는 우리 시대 정신만은 재고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무시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 19세기 그들은 역사를 만드는, 쓰는 존재로 자신을 바쳤다. 미적거리다가 역사의 진보를 저버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핀란드 역으로> 가는 철로는 멈출 수 없다. 역사를 쓰기 원했던 그들의 사상과 집념, 삶에서 자신들을 드렸던 그들의 족적을 우리는 무시해서는 안 된다. 팍팍해진 삶은 물질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신이 메마르고, 어쩐 그들이 그토록 극복하고자 했던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핀란드 역으로>는 그것을 알려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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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야 말로 주연배우다 | 耽讀글방 2007-12-3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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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핀란드 역으로

에드멘드 윌슨 저/유강은 역
이매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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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이 역사책을 통해 분명히 밝혀질 터이고 또 어떤 측면에서도 보아도 진실인 점은 언제나 지도자들보다 민중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땅속을 깊이 파고들어가면 갈수록, 나는 가장 훌륭한 것들은 깊숙한 곳에, 어두운 구렁 속에 묻혀 있음을 더욱더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중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이 화려하고 유력한 연설가들만을 연극의 유일한 배우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그릇된 처사임을 깨달았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자극을 주었다기 보다는 다른 이들한테서 자극을 받은 것이다. 민중이야 말로 주연배우다. 민중을 다시 발견하고 그것에 적합한 역을 맡기 위해, 나는 민중이 그 실을 준중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우리가 찾아 헤매면서 역사의 비밀스러운 연극을 보았다고 생각한 야심적인 꼭두각시 인형들의 배역을 그것에 걸맞게 축소해야만 했다. <핀란드 역으로>  66쪽
[출처]<핀란드 역으로>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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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거처 | 문학 2007-12-3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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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상의 거처

김남주 저
창비 | 1999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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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시를 접할 때마다 독자는 통렬함을 느낀다. 시어(詩語) 하나 하나는 화살처럼 우리 심장에 꽂힌다. 김남주 시어는 책상머리에서 사유로 만들어 낸 말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읽혀지지만 삶을 동반했기에 독자가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에는 벅차다. 그리고 부담스럽다.


 

그가 삶은 삶을 흔적을 보면 <사상의 거처>를 발문한 김윤태가 말한대로 '온몸을 온몸으로 밀고 나간 시대'의 선지자다. 말로서는 자기 몸을 바치는 거룩한 희생을 요구하지만 자신을 던져 사회변혁의 과제와 성취를 이룩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온몸으로 혁명을 꿈꾸었고, 해방전사로서 시인의 삶을 살았다. 해방전사와 혁명 투쟁을 위하여 살았기에 그가 쓴 시어는 민중의 삶을 짓밟는 자를 역설과 촌철살인같은 표현을 통하여 통렬한 비판을 했다.


 


  바로 걷는 자와 함께 까막소에 넣었다
  바로 걷는 자의 가족 중 관직에 있는 자는 쫓아냈고
  그 자손들은 영원히 공직에 오르지 못하게 했다
  그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은 사법제도가 있었는바
  판사는 검사의 사돈지간이었고
  검사는 판사의 사돈지간이었다


  그 무렵에 성이 어(漁)가이고 이름이 무적(無跡)이란 자가 있었다
  성 그대로 이름 그대로 그는 바르게 걷거나 거꾸로 걷거나
  물고기처럼 뒤에 자취를 남기지 않는 신출귀몰한 재주를 가졌으니
  그는 그 재주를 믿고 할 소리 못할 소리 죄다 하고 다녔다
  그 소리들 중에서 한두 개를 골라잡아 여기에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놈이 그놈이고 그놈이 그놈이여
  정가가 최가이고 최가가 이가이고 이가가 경가이고
  성과 이름만 바꿔치기했단 말이여
  아니 무신정권 수십 년에 날강도 아닌 놈이 있었던가


  사기군 협잡꾼 정상모리배 아닌 놈이 있었던가
  왕궁이란 게 원래 음모의 토굴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고
  관가에 들락날락하는 놈치고 쥐새끼 아닌 놈이 없는 법이여
  보라고 저 쥐새끼들의 피묻은 주둥아리를
  그 주둥아리가 물고 있는 나락모가지를 그것은 다름아니고
  우리 백성들이 불볕에 땀흘려 키워놓은 바로 그 나락 모가지나니
  오 모가지여 모가지여 피묻은 나락모가지여
  그 모가지 언젠가 어느 날엔가는 왕의 모가지를 감을 밧줄이여


 


   - 모가지여 모가지여 부분


 


 그가 살았던 시대, 아니 인간의 역사는 분명 정의와 바르게 사는 자들보다는 그릇된 자와 불의한 자가 지배하는 역사였다. 검사와 판사가 사돈지간이 되는 웃음 나오는 일이지만 현실이 되어버린 현상을 그는 고통스럽게 외치고 있다. 인민 모가지에 피묻은 밧줄을 감아버리고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인민를 피를 뽑아내어 자신의 배를 가득 채우는 자들은 분명 인민에게 파멸되라는 확신을 가졌다. 역사의 반전을 믿었다. 그 모가지가 언젠가 어느 날엔가는 왕의 모가지에 밧줄을 감으리란 역사의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정의와 공의가 승리하라는 역설의 반전을 그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사상의 거처>에는 혁명과 투쟁만을 노래하지 않고 있다. 옥중 생활에서는 적대자와 투쟁에만 머물렀지만 출옥을 통하여 그는 다양한 인간이 살아가는 현장을 목격헸으리라. 흑과 백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님을 느꼈으리라.


 


   할머니는 산그늘에 앉아 막대기로 참깨를 털고 
   어머니는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호미로 고추밭을 매고 
   아버지는 이랴 자랴 소를 몰아 논수밭에서 쟁기질을 하고 
   나는 나는 학교 갔다 와서 산에 들에 나가 
   망태 메고 꼴을 베기도 하고 염소를 먹이기도 했지요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개를 터다 말고 막대기를 훼훼 저어 
   메밀밭을 해치는 산짐승을 쫓는 시늉을 하는 것을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김을 매시다 말고 사금파리를 주워 
   고추잎에 붙은 진딧물을 긁어내는 것을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쟁기질을 잠시 멈추시고 꼬챙이를 깎아 
   황소 뒷다리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내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시에는 
   그 시절 우리 식구들이 미워했던 것들--- 
   산짐승 진딧물 진드기 같은 것이 자주 나오지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시에는 
   그런 것들을 내치느라 일손을 잠시 놓으시고 
   우리 식구들이 대신 들었던 것들--- 
   막대기 사금파리 꼬챙이 같은 것이 많이 나오지요


 


    -시에 대하여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가 농부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그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투쟁과 적대세력이 없다. 소와 염소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다. 꼴을 베어 염소를 먹이는 모습에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과는 대비된다. 사람이 염소 꼴을 벤다. 아버지는 황소 뒷다리에 묻은 진딧물을 잡는다. 아버지와 황소는 하나가 된다. 사람이 이익을 위하여 사람을 적으로 삼는 것과 대비된다.


 


김남주에게 시란 결국 사람이다. 그 사람은 가지기를 탐하는 자가 아니다.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 것을 탐하거나 빼앗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란 함께 어울려 사는 자를 말한다. 황소 뒷다리 진딧물을 사람이면서도 떼어내는 자가 사람이다.


 


시대는 김남주 시인이 살았던 상황과는 분명 다르다. 계급투쟁과 혁명투쟁만이 최고 진리는 아니다. 다양성 시대다. 이제 시는 인민의 삶과 이념을 함께 아우리는 시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더 새롭고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재물과 권력만을 탐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비극이다.


 


  조상 대대로 토지 없는 농사꾼이었다가 
  꼴머슴에서 상머슴까지 
  열 살 스무 살까지 남의 집 머슴살이었다가 
  한 때는 또 뜬세상 구름이었다가 
  에헤라 바다에서 또 십년 배 없는 뱃놈이었다가 
  도시의 굴뚝 청소부였다가 
  공장의 시다였다가 현장의 인부였다가 
  이제는 돌아와 고향에 
  황토산 그늘에 쉬어 얹은 나그네여 
  나는 안다 그대 젊은 시절의 꿈을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으니 
  보습 대일 서너 마지기 논배미였다
  어기여차 노 저어 바다의 고기 낚으러 가자 
  통통배 한 척이었고 
  풍만한 가슴에 푸짐한 엉덩판 
  싸리울 너머 이웃집 처녀의 넉넉한 웃음이었다 


  그것으로 그대는 족했다  


  그것으로 그대는 행복했다


 


  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서도 
  선뜻 강 건너 마을로 들어서지 못하고 
  바위산 그늘에 쉬어 앉은 나그네여



  -나그네여


 


내가 어떤 삶을 살았던지 나는 결국 나그네다. 머슴살이, 굴뚝청소부, 현장 인부로 살았을 지라도 나는 나그네 인생을 산 것이다. 가진 것, 권력이 없어 고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위산 그늘에 앉아 버린 나그네이지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라고 해도 고향을 바라보면서 그늘에 앉은 이 나그네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이런 말은 신세 한탄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살이를 찬양함도 아니다. 그는 사람을 노래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 살았다. 나그네 인생이란 곧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다른 이와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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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 | 耽讀글방 2007-12-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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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믿음 그리고 행함

김영재 저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 2004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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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의 지혜와 지식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은 사람의 지혜와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참을 말씀하시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하여 지식을 얻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고백하고 찬양할 뿐이다.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이 그 분에 관하여 사색하고 논증하거나 토론을 일삼거나 자기 나름대로 상상하고 설명을 시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 분은 우리의 지혜와 지식을 초월하시는 분이므로 우리는 다만 그 분의 위대하심에 경탄하고 그 분을 경외하며 그 분에게 경배와 찬양을 드르야 마땅하다. 그 분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믿음 그리고 행함> 17-18쪽

[출처] <믿음 그리고 행함> 17-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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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리얼리스트 | 耽讀글방 2007-12-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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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상의 거처

김남주 저
창비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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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리얼리스트>
 
 
  시골길이 처음이라는 내 친구는

  흔해빠진 아카시아 향기에도 넋을 잃고

  촌뜨기 시인인 내 눈은

  꽃그늘에 그늘진 농부의 주름살을 본다

  바닷가가 처음이라는 내 친구는

  낙조의 파도에 사로잡혀 몸둘 바를 모르고

  농부의 자식인 내 가슴은 제방 이쪽

  가뭄에 오그라든 나락잎에서 애를 태운다

  뿌리가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른

  가난한 시대의 가엾은 리얼리스트

  나는 어쩔 수 없는 놈인가 구차한 삶을 떠나

  밤별이 곱다고 노래할 수 없는 놈인가 <사상의 거처>  16쪽
[출처]<사상의 거처>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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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무기 | 문학 2007-12-2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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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랑의 무기

김남주
창비 | 199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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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고,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남민전 사건으로 옥중 생활하였으며, 1994년 2월 13일 육신 장막을 놓은 김남주 시인을 시로 만날 때마다 왠지 마음이 아파 온다. 그가 잠든 망월동 묘비에 아로새겨진 글귀는 이렇다.


 

온 몸을 불 태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시인의 영혼 여기에 잠들다


 


온 몸을 불 태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이가 한 둘이 아니건만 그 만큼 민족과 나라를 사랑한 이도 드물 것이다.


 


<1990. 10. 29> 이제까지 내가 쓴 시 참 보잘것없다. 내 나이 마흔 다섯, 이제 시작이다 내년부터는 생활 속으로 들어가자. 거기 가서 끝간데까지 사랑하고 증오하자. 중용은 시가 아니다. 그것은 성자들이나 할 일이다. 시인은 성자가 아니다. 혁명하는 사람 그가 시인이다.


 


시인을 '혁명가'라 명명한 그에게 정말 묻고 싶다. '정말 시인은 혁명가입니까?'


 


혁명은 책상머리에서 고상한 척하는 이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 신념과 양심에 바탕하여 인민을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바치는, 인민과 시민의 인권을 압제하는 이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시인을 혁명가라 이름한 김남주님의 <사랑의 무기>를 접했다. 오랜만에 시집을 손에 잡으니 종이가 바랬다. 비록 빛 바랜 종이지만 시인을 혁명가라 이름한 님의 채취가 코끝을 자극한다.


 


저기 가는 저 큰애기를 보아라
새참으로
막걸리 든 주전자를 들고
보리밥과 김치로 가득한 바구니를 이고
반달 같은 방죽가를 돌아
시방 논둑길을 들어서는
부푼 저 가슴의 처녀를 보아라


 


마른 자리 반반한 풀밭을 골라
빨갛게 원앙을 수놓은 하얀 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들밥을 차리는 농부의 딸을 보아라
이 마을에 아니 이 나라에 하나뿐인
검은 치마 하얀 저고리를 보아라


 


- 아부지 그만 쉬셨다 하셔요
저만큼에서 허리 굽혀 나락을 베는 아버지 곁으로 가
아버지 대시 나락을 베고
- 아저씨 밥 한술 뜨고 가세요
지나가는 낯선 사람도 불러
이웃처럼 술도 한잔 드시게 하는
조선의 딸 그 마음을 보아라
마을에 하나뿐인 아니 이 나라에 하나뿐인


 


- '조선의 딸'


 


'조선의 딸'은 거룩하다. 조선의 딸은 아름답다. 막걸리와 보리밥에 김치만 가득한 바구니이지만 행동 하나 하나 마음 하나 하나는 아름답고 거룩하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섬김, 길손을 위한 마음은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농부의 딸은 실로 생명을 간직한 땅처럼 생명을 간직한 거룩한 딸이다. 


 


그들에게 노동자 농민에게 나는


위로의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소


나 자신이 누구로부터 위로받고 싶었소


그들이 돌아가고 나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소


이번에 싸움에서 이긴 것은


불의가 아니었다


이번에 싸움에서 진 것은


정의가 아니었다


선거에서 싸움에서 이긴 것은


돈이고 양키제국주의의 총칼이고 음모였다


정의와 싸움에서 불의가 이겼다고 해서


불의가 불의 아닌 것은 아니다


불의와의 싸움에서 정의가 졌다고 해서


정의가 정의 아닌 것이 아니다


 


- '그날' 중 일부



사람들은 불의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올해 대한민국 유권자 절반은 돈을 벌 수 있다면 부정직과 부도덕은 어느 정도 용납할 수 있다는 선택을 했다. 정의보다 불의를 택했다. 김남주님이 살아있었다면 2007년 대한민국 유권자 선택을 어떻게 받아드렸을까? 시인이 혁명가라 했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정의보다 불의를 택하지는 않았을까? 진보와 개혁도 보수보다는 덜 하지만 불의에 빠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의와의 싸움에서 정의가 졌다고 정의가 아닌 것은 아니다. 정의와 싸움에서 불의가 이겼다고 불의가 아닌 것은 아니라는 김남주 시인의 말에 우리는 눈을 고정시켜야 한다. 불의에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사랑하는 이여 그 누가 묻거들랑


당신 남편은 어디 가고 없냐고 묻거들랑


말해주오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 갔다고


 


사랑하는 이여 그 누가 묻거들랑


당신 남편은 어디 가서 무얼 하냐고 묻거들랑


말해주오 총칼 메고 싸움터 갔다고


 


사랑하는 이여 그 누가 묻거들랑


당신 남편은 왜 아직 돌아오지 않냐고 묻거들랑


말해주오 지금 그는 감옥에 있다고


서슴없이 자랑스럽게 말해주오


몸은 비록 갇혔어도 혁명정신은 살아 있나니


 


- '편지'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 가서 정의와 불의를 위하여 살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지 않음을 시인은 말한다. 인민을 압살한 권력이 자신의 몸을 가두었지만 혁명 정신은 살아있다는 외침은 시인을 혁명가라 이름지은 김남주 정신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사랑의 무기>에는 창작과 비평에 <진혼가>, <잿더미>을 통하여 문단에 등단한 1974년부터 출옥까지 시들을 모았다.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등 그는 소시민적 지식인적 것과 철저한 결별을 통하여 노동계급적 시각을 가진 시인임을 알 수 있다. 80년대 전형적인 민족민주시인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김남주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 자신을 다시 반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느슨해진 상태다. 정의와 공의, 민주주의를 외쳤던 때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의와 공의보다는 자본을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시인이 혁명가라는 규정은 80년대에는 적용될 수 있지만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시대가 변했다. 물론 우리 사회 체제가 과연 80년대와 전혀 다른가? 질문을 할 때 아니라고 단정을 할 수 없지만 이제 민족과 자주만을 외칠 수는 없다. 우리가 사회가 계급화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도식적인 규정은 문제가 있다.


 


우리가 도식화된 계급구조에만 머물지 않고 김남주 시를 우리 시대에 읽어면서 아직도 남아 있는 억압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민주와 자주, 평화통일을 재정립한다면 김남주 시는 결코 80년대에만 읽혀진 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랑의 무기>는 5부 71편을 묶은 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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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동자 대통령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 耽讀 쓴 기사 2007-12-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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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자가 재벌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친기업적 대통령"이라고 했다. 예상했던 발언이지만 씁쓸한 느낌은 든다. 대통령 당선자 입에서 나온 발언을 듣고 재벌 총수들은 "내년도 투자 계획도 확대하고 채용도 늘릴 것"이라 화답했으면 강력한 노동자 정책을 촉구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 이후 어느 대통령이 친기업적인 정책을 펴지 않은 대통령이 있었는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은 말할 것도 없이 김대중 대통령도 친기업적 대통령이었으며 노동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친노동자 정책을 폈던가? 아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가장 빨리 만나는 사람들이 재벌 총수였다. 그들을 만나면 대부분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했으며 총수들을 투자를 약속했고, 노동 유연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재벌은 규제완화와 노동 유연화 열매는 따먹으면서 투자는 애써 외면했다.

 

재벌총수는 더 나아가 비정규직법까지 재개정을 요구했다. 지금도 비정규직법은 기업에 유리하다. 총수들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재개정을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으므로 아예 기업들 마음대로 비정규직을 양성하고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재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란 무엇일까? 온갖 규제를 다 풀어버리고 시장에 맞기고,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임금은 적게 주고, 노동강도는 높이고, 해고는 쉽게 하는 것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일까? 모든 불법 파업으로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일까?

 

그렇지 않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란 경영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환경도 결국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다. 노동자가 자기 권익과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회사는 불만과 불안이 조성되는 환경이기 때문에 기업도 이윤을 남길 수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수 없다.

 

대기업 경영자 출신 대통령 당선자에게 친노동자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노동자 희생만을 요구하는 친기업 정책은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규제완화, 노동 유연화, 비정규직법 친기업적 재개정, 강도높은 파업 불법화라는 친기업 선물 보따리만 풀 것이 아니라. 경영 투명성, 출총제 폐지 재고,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 금산분리 등에서 시민단체와 노동자 단체가 요구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정책으로 입안하고 집행해야 한다.

 

재벌 총수, 기업, 노동자가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어야지 오로지 기업만을 살리기 위한 정책은 짦은 기간에는 기업을 살릴 수 있지만 나중에는 기업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1997년 IMF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안다면 친기업정책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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