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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와 반정의 시대 | 역사 2008-01-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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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화와 반정의 시대

김범 저
역사비평사 | 2007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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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 연산군 · 중종은 뚜렷이 대비되는 왕들이다. 성종과 연산군은 아버지와 아들이지만 그토록 대비되는 부자관계도 조선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다. 중종은 반정을 통하여 집권한 왕이지만 반정에 실질적 역할이 없었기에 통치기간 내내 별다른 왕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사화와 반정의 시대>는  조선 최초의 사화와 반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화두로 던졌다. 3대 75년간은 정치적으로 안정과 불안정이 서로 교차되면서 후대 사람들이 그 시대를 읽고 평가 인식하는데 많은 흥미를 가져다준 시대임을 역설한다.


 


성종은 13살 어린 나이에 조선 왕에 오른다.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과 장인 한명회의 세력을 등에 업고 어린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든든한 정치배경은 재위 7년만에 친정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정치적 안정을 보장받았을 수있었다.


 


성종은 친정을 시작하면서 강력한 대신-의정부와 육조- 정치세력을 축소시키는 작업을 했다. 왕권 회복을 위한 방안으로 승지원을 정비, 원상제-의정부와 승정원 기능을 합친기구-를 혁파했다.


 


성종이 특히 왕권 강화를 위하여 대신을 견제하기 위하여 대간-사간원, 사헌부-에 홍문관을 통하여 삼사제도를 적절하게 활용한 것은 매우 적절한 방법이었다. 대간은 대신들의 탄핵하고, 간쟁을 통하여 견제세력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대간이 대신견제세력뿐만 아니라 왕권을 침해하는 월권을 보이면서 왕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권에까지 간섭하자. 불편함을 피력한다.


 


"대간은 참으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간은 능력 있는 사람을 한 자급 올리라고 명령하면 반드시 부당하다고 논박하면서 작은 일까지 거론하면서 우길 뿐 어진 사람의 침체와 정칙의 문제점, 국가의 대계같은 것은 말하지 않으니 매우 한탄스럽다.(64쪽)


 


하지만 성종은 대간의 이런 간섭에 대한 반응을 비폭력적 유교정치의 수행으로 행사했음에 눈길을 가져야 한다. 그는 왕권 강화를 지향하면서도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비폭력적 방법을 통하여 정치력을 발휘했다. 이는 <경국대전>이라는 법체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종이 <경국대전>에 규정된 각 관서의 기능을 최대한 보장하는 수준 높은 유교정치를 궁극적인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어떤 정치세력에 대한 심각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자제한 결과라고 판단된다.(99쪽)


 


하지만 연산군은 달랐다. 조선 어느 역대 왕보다 연산권은 왕권 강화에 힘을 드렸다. 연산군은 왕권 강화를 정치적인 방법으로 찾아야 했는데 비정치적인 사건을 통하여 왕권 강화를 시도함으로써 대간을 견제하려했던 무오사화에서 대신과 함께 그들은 견제, 제거했지만 결국은 대신들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치세 9년 2월 양기를 돋우기 위해 백마 고기를 진상케 한 연산군은 넉달 뒤 정업원에서 여승들을 범했는데, 이것이 본격적으로 음행을 자행한 발단이 되었다. 관청의 어린 계집종이 양민의 딸을 선발했고, 해금 잘 타는 기생을 일반인과 구별되지 않도록 편복을 입혀 입궔키도 했다. 특히 일반 관원은 물론 승지와 재상, 대신들의 부인이나 딸들까지 들게 했는데 이런 조처들은 일반적인 정치적 사안들보다 신하들의 반감을 증폭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131)


 


우리는 일반적으로 연산군을 폭군으로 규정한다. 김범의 말대로면 연산군은 도덕적인 폭군의 면모도 있었지만 그가 국왕으로서 정치적 사안과 비정치적 사안을 구별 못함으로써 스스로 무너져 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연산군이 아버지 성종처럼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엄격한 법 적용을 통하여 국왕과 대신, 삼사가 서로 견제, 비판하면서 정치력을 발휘했다면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지도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판단력이다.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사를 강화시키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연산군은 스스로 무너져버린 것이다.


 


세조 때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이 발단이 된 무오사화는 김종직 일파에 대한 처벌이 삼사에 대한 탄압으로 확대되었다고 본다. 삼사에 대한 능상을 행동을 멈출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목적으로 보았다.


 


특히 <사화와 반정의 시대>에서 김범은 지금까지 무오사화를 '사림세력'과 '훈구세력'에 일어난 사건으로 규정하는 일이 적절한지 반문한다.


 


"'사림세력'의 종장으로 평가되는 김종직의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면모가 훈구세력과 그리 다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많은 친연성을 갖고 있었다는 지적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123)


 


김범이 주장한 이 내용을 깊이 논의해볼만한 사안이다. 비정치적 사안과 정치적 사안을 구별하지 못한 연산군은 결국 조선 최초의 반정에 의하여 파국에 이르게 된다. 정치적 중흥을 위하여 반정이 일아났고 중종이 등극한다.


 


하지만 진성대군이 반정에 처음부터 개입한 것이 아니라 추대된 형국이기에 중종은 왕권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성종 초반 정희왕후 수렴청정과 원상 제도처럼 중종조 초반은 정국공신들이 정국을 주도했다.


 


정국공신 중심 시대가 지나면서 기묘사림이 등장한다. 기묘사림은 개혁성과 급진성을 가졌지만 정치력은 부족했다. 하지만 기묘사림의 중심인 조광조는 대신 중심의 정치 운영을 원했다. 그는 성리학을 아는 사람을 등용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이런 주장은 현재 통설인 '훈구세력'과 '사림세력'이 서로 이질적인 존재라는 학설과는 조금 다른 견해다.


 


"기본적으로 그는 신진과 구신의 재주와 덕행이 비슷하면 구신을 써야 하고, 반드시 대신과 상의해 일을 결정해야 조정의 기강 설 것이며, 육조 판서 위에서 삼정승이 결정권을 행사함으로써 대신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조광조의 태도는 '훈구-사림세력'의 차별서을 강조하는 현재의 통설에 재고의 여지가 있음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190쪽)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은 기묘사화와 김안로 권신정치를 거치면서 말년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신임하는 인물 중심으로 정치를 했다. 즉 제도화된 정치력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정치를 함으로써 왕권의 핵심적인 권능인 정치적 조정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종이 연산군과 다른 점은 왕권 강화를 위하여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연산군이 비정치적 사안과 정치적인 사안을 구별하지 못하고 왕권 강화에만 몰두하다가 결국 파멸을 겪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았을 것이다. 대신과 삼사 역시 서로 적절한 견제을 넘어서면 모두가 파국에 이르는 길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화와 반정의 시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정치에는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가 강력해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왕권 국가인 조선도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았다. 국왕도 대간들의 간쟁과 간언을 받았으며, 대신들도 대간의 탄핵을 통하여 견제를 받았다. 국왕과 대간, 삼사는 적절한 방법으로 서로를 견제했다.


 


하지만 연산군은 이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지엽적인 문제에 함몰되어 결국 파멸되는 비운을 맞는다. 우리 시대 역시 모든 정치 세력이 적절한 견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조선이 국왕과 대신, 삼사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 군신정치를 이룩한 것은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조선은 전제왕권 시대였지만 대신과 대간이 함께 정치를 한 또 하나의 민주주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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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 耽讀메모 2008-01-3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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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저
미래사 | 199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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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白 (독백)

나는 살련다, 나는 살련다.
바른 맘으로 살지 못하면 미쳐서도 살고 말련다.
남의 입에서 세상의 입에서
사람 靈魂(영혼)의 목숨까지 끊으려는
비웃음의 말이
내 송장의 볼상스런 그 꼴 위로
소낙비가 치내려 쏟을지라도-
짓퍼부을지라도
나는 살련다. 내 뜻대로 살련다.
그래도 살 수 없다면-
나는 제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벙어리의 붉은 울음 속에서라도
살고는 말련다.
(원한)이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장마진 냇물의 여울 속에 빠져서 나는 살련다.
거기서 팔과 다리를 허둥거리고
부끄럼없이 몸살을 쳐보다
죽으면- 죽으면- 죽어서라도 살고는 말련다.
[출처]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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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사망 | 耽讀메모 2008-01-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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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저
미래사 | 199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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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사망>

 

- 가서 못오는 박태원의 애틋한 영혼에게 바침 -


죽임일다 !
성난 해가 이빨을 갈고
입술은 붉으락푸르락 소리없이 훌쩍이며
유린당한 계집같이 검은 무릎에 곤두치고 죽음일다.

만종의 소리에 마구를 그리워하는 소 -
피난민의 마음으로 보금자리를 찾는 새 -
다아 검은 농무(濃霧) 속으로 매장이 되고
천지는 침묵한 뭉텅이 구름과 같이 되다 !

「아, 길 잃은 어린 양아, 어디로 가려느냐.
아, 어미 잃은 새 새끼야, 어디로 가려느냐.」
비극의 서곡을 리프레인하듯
허공을 지나는 숨결이 말하더라.

아, 도적놈의 죽일 숨 쉬듯한 미풍에 부딧혀도
설움의 실패꾸리를 풀기 쉬운 내 마음은
하늘 끝과 지평선이 어둔 비밀실에서 입맞추다

죽은 듯한 그 벌판을 지나려 할 때 누가 알랴.
어여뿐 계집의 씹는 말과 같이

제 혼자 지절대며 어둠에 끓는 여울은 다시 고요히
농무에 휩싸여 맥풀린 내 눈에서 껄떡이다.
바람결을 안으려 나부끼는 거미줄같이
헛웃음 웃는 미친 계집의 머리털로 묶은 -
아, 이내 신령의 낡은 거문고 줄은
청철(靑鐵)의 옛 성문을 닫힌 듯한 얼빠진 내 귀를 뚫고
울어들다 울어들다 울다는 다시 웃다 -
악마가 야호(野虎)같이 춤추는 깊은 밤에
물방앗간의 풍차가 미친 듯 돌며
곰팡슬은 성대(聲帶)로 목메인 노래를 하듯........

저녁 바다의 끝도 없이 몽롱한 먼 길을
운명의 악지 바른 손에 끄을려 나는 방황해 가는도다.
남풍에 돛대 꺾인 목선과 같이 나는 방황하는도다.

아, 인생의 쓴 향연에 불림받은 나는 젊은 환몽에서
청상(靑孀)의 마음 위와 같이 적막한 빛의 음지에서
구차를 따르며 장식(葬式)의 애곡을 듣는 호상객처럼 -
털 빠지고 힘없는 개의 목을 나도 드리우고
털 빠지고 힘없는 개의 목을 나도 드리우고
나는 넘어지다 - 나는 꺼꾸러지다 !

죽음일다 !
부드럽께 뛰노는 나의 가슴이
주린 빈랑(牝狼)의 미친 발톱에 찢어지고
아우성치는 거친 어금니에 깨물려 죽음일다 !

[출처]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20-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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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耽讀메모 2008-01-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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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저
미래사 | 199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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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맡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혼자 온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를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마라

옷지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게 웃네. 

고맙다 잘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기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깜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이가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다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므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았겨

봄조차 빼았기겠네.

[출처]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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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 소설 2008-01-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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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황석영 삼국지 세트

나관중 원저/황석영 편역/왕훙시 그림
창비 | 200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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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헌아! 아니 막둥아!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구나. 왠지 너만 보면 마음이 아프다. 아직 글도 잘 모르고, 수학 계산하는 방법도 잘 모르고. 다른 동무들보다 키도 작아 학교에 들어가서 동무들과 잘 어울려 놀 수 있을지 아빠는 걱정이 많다.

 


하지만 우리 막둥이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원 다닐 때보다는 더 많은 동무들을 만나게 되고, 전혀 다른 세상이 네 앞에 펼쳐질 것이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은 두려움이지만 또 다른 도전이다. 사람을 새로운 도전을 통하여 배우고, 자란다. 어려운 도전이지만 막둥이는 분명 이기고 나갈 것이다.



체헌아! 새로운 세상이란 선생님, 학교, 동무들만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책은 사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사회와 공동체를 알게 하는 중요한 배움터다. 책은 어떤 것보다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체헌이에게 아빠가 읽는 책 중에 <삼국지>라는 책이 있어 소개한다. 아직 너는 읽을 수 없는 책이지만 언젠가는 읽어야 할 좋은 책이다. <삼국지>는 1800년 전 중국에서 일어났던 역사 이야기이므로 체헌이의 시간 개념으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할까? 하여튼 오래된 역사 이야기다.
 


약 1800년 전 중국은 한나라였다. 나라 이름은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면 바뀐다. 우리나라에 고구려․백제․신라․고려․조선이 있었듯이 말이다. 옛날에는 황제가 나라를 다스렸다. 요즘은 대통령은 국민들이 선거로 뽑지, 얼마 전 이명박씨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뽑혔다.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이지만 한 달 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는 선거가 아니라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세습'으로 황제가 되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었다. 황제는 '천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늘이 세우신 분이므로 모든 백성들은 충성을 다했다. 지금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졌던 황제지만 시간이 흐르면 황제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황제가 되는 꿈을 꾸었다. <삼국지>는 바로 새로운 황제가 되기 위한 사람들이 싸웠던 역사 이야기다.


 


황제가 되기 위하여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조조․손권․유비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황제가 되기를 원했지만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은 바로 이 세 사람이다. 한나라 황제는 권위와 힘이 없어서. 황제가 임명한 제후와 장수가 있었지만 그들은 황제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했었다.


 


조조는 위나라를 세우고 중원을 통일하고자 했다. 특히 조조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지만 한나라 황제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중원 통일 이루는데 가장 앞서 나간 사람이었다. 특히 많은 장수와 군인, 지식과 학식과 지혜가 깊은 책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조조는 뛰어난 머리와 유복한 환경, 문학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조조를 속임수를 많이 쓰는 간사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조조만큼 인간미 넘치는 사람도 없다. 조조가 조금 더 신중하고, 다른 사람들을 안아 줄 수 있었다면 역사는 조조 편이 되었을 것인데 그는 역사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유비는 한나라 황족으로 한나라를 다시 회복시킨다는 명분에서 어느 누구보다 앞서 나갔다. 특히 그는 의형제를 맺은 관우 장비라는 출중한 장군,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책사였던 제갈량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명분과 능력을 다 갖춘 유비는 촉나라를 세웠다. 후세 사람들은 유비를 가장 존경한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황족이라는 명분은 유교주의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황족 출신이지만 황제가 될 수 있는 능력, 곧 제황학이라는 능력은 조조에 미치지 못했다. 황제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결국 개인적인 자질과 능력, 황제가 될 그릇이 반드시 필요하지. 가장 중요한 장수와 참모를 가졌던 그였지만 이런 한계가 유비에게 있었다. 그는 중원을 통일하지 못했다.


 


손권은 오나라를 세웠다. 손권은 조조처럼 황제를 모신 것도 아니고, 유비처럼 황족 출신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지방 호족들의 연합체를 형성하여 이룬 나라였다. 처음에는 그는 조조와 유비처럼 중원을 통일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조조, 유비, 손권 어느 누구도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다. 위나라 3대 황제 조방(曹芳)과 4대 황제 조모(曹芼)를 폐위시킨 사마의의 아들인 사마염이 천하를 통일했다. 나라를 세워 천하를 통일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다 사리지고 결국 사마염이 통일을 이룬 것을 보면 역사는 참 재미있지. 


 


아빠가 체헌이에게 <삼국지>를 소개하는 이유는 중원 통일을 이룬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삼국지>가 담고 있는 어떤 사상을 말하고 함이다. <삼국지>를 읽어가면서 아빠가 깨달은바 중 하나는 사람들 중심에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라를 세우고, 일으키면서 항상 하는 말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세계 중심을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삼국지>가 바로 이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삼국지>에는 중요한 사상이 하나 더 있는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다. 앞에서 아빠가 조조와 유비를 말하면서 '황제'를 모시고, '황족'이라는 명분을 가진 사람들이라 말했지. 속으로는 자신의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겉으로는 한나라를 다시 세우려고 했다.


 


이것은 단순히 한나라만이 아니라 중국은 세계 중심이라는 '중화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특히 <삼국지>에서 유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한나라 황족과 그가 중국 민족이 '한족'이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무너져가는 세상 중심의 나라 한나라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을 유비로 삼았으므로, 유비는 형제애와 인간애와 충성을 견지한 인물로 그렸다. 중국인들이 지금도 유비와 함께 했던 장비 관우 제갈량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중화주의를 이룩하고자 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보기에 유비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이 황제로 등극하는 것이었다. <삼국지>는 중국이 세계 중심이라는 '중화주의' 자신이 중국의 중심이라는 '자기중심주의'가 공존하는 작품이다.


 


아빠는 체헌이에게 중화주의와 자기중심주의가 과연 너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삼국지>에 내재되어 있는 중화주의는 그들만이 세계의 주인이며, 중심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과 나라는 이방인, 오랑캐라는 생각을 하지. 그 중 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중화주의는 중국 인민들 속에 내재되어 내려 왔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사상이다.


 


이런 중화주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요즘 미국이 자신들을 세계 중심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과 비슷하다. 지구를 지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편에 서면 '선'. 미국 편이 아니면 '악'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고 어떤 때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빠가 읽은 <삼국지>도 이런 생각을 하게 하였다.


 


'여포'라는 훌륭한 장군이 있다. 여포는 용맹하고 대단한 장군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간사한 방법으로 죽였다. 아빠가 매우 분노했다. 왜 훌륭하고 용맹한 장군을 죽였을까? '여포’는 중국사람, 즉 ‘한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포는 정말 능력과 지혜가 있는 뛰어난 장수였다. 이유, 곽기, 맹획 이런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여포와 비슷한 경우로 한족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떠나갔다.
 


여포는 지금도 훌륭한 장군으로 존경받고 있지 못하다. 참 답답한 일이다. 한족이 아니면 ‘오랑캐’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사람의 존엄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가장 완악한 모습이지.


 


계속 미국을 예로 들지만 18-19세기 미국이 흑인을 노예로 삼아, 백인들보다 못한 3등의 인간으로 취급했다. 자기들이 기르는 애완용 개보다 못했지. 요즘도 백인들은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의식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런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하는 일이기 때문에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중화주의가 지배하는 중국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나라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강해지면서 옛날 자신들이 누렸던 영광을 되찾고자 한다. 되찾는 방법이 역사를 통해서 찾았다. 요즘은 뜸하지만 '동북공정'을 통하여 우리 고대 역사-고구려, 발해-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 중심의 세계 지배 전략의 기초 작업이기에 위험한 생각이다. 너무 비약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북공정 같은 역사 왜곡은 중화주의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삼국지>같은 경우도 이와 맥을 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태어나서 <삼국지>를 세 번은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기에 호응하면서 <삼국지>를 많이 읽고 있다.


 


하지만 <삼국지>는 중화주의가 녹아 있는 책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 알아야 한다. <삼국지>를 읽어야 하지만 그 사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중화주의에 서서히 빠져 들어갈 수 있다. <삼국지>를 읽지 않으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기에 읽어야 할 책이지만 우리는 그 뿌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읽어야 한다.


 


체헌아! ‘황제’는 무엇일까? 왜 조조와 유비, 손권은 그토록 황제가 되기 위하여 노력했을까? 황제가 되기 위하여 수많은 백성들은 피를 흘렸고, 그들의 생명은 보잘 것 없었다. 황제가 되려고 했던 그들은 백성의 생명을 황제가 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백성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한 번 전투에 몇십명이 아니라 몇천명, 몇만명이 죽어가는 모습은 쉽게, 짧게, 어떤 때는 언급도 하지 않지만 훌륭한 장수들의 죽음 앞에서는 통곡했다. 가슴 아파했다. 훌륭한 장수와 이름 없는 민중의 죽음은 같을 수 없을까? 같은 사람이라도 다르게 취급받는 것 같다. <삼국지>뿐만 아니라 많은 역사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달리 취급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럴지라도 사람 생명이 존엄하다면 장수와 일개의 병사의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것은 아빠가 인정할 수 없다. 이름 없는 인민의 죽음은 조조와 유비와 손권, 장비, 관우, 제갈량의 죽음에 비하면 황제를 꿈꾸는 일들을 위한 사사로운 죽음이다.


 


아빠는 체헌에게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존귀하며 그 가치는 같다고. 같다는 생각이 없으면 자기 이익을 위하여, 자기보다 조금 못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게 된다. 너는 그 길을 가면 안 된다. 그렇게 가면 결국 자기의 생명까지 빼앗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비극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존귀하다면 다른 이의 생명도 존귀함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아빠는 체헌이가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다른 이도 존귀하며, 사랑하는 대상임을 알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삼국지>에는 또한 '죽임'이라는 잔치가 벌어진다. 많은 전쟁, 권모와 술수를 통하여 적을 죽이는 장면들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살림’의 잔치는 <삼국지>에서 정말 찾아 볼 수 없다.


 


참 이상하다. 죽임의 잔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 바로 '대의'다. 한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 자기가 황제가 되는 일이 대의다. 원래 대의란 큰 의라는 말이다.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나라와 공동체를 위한 거룩한 마음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 거룩한 뜻을 이루면서 왜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할까? 그들은 말한다. 그 죽음도 대의를 위한 죽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그들이 죽임의 잔치를 하면서 하는 말이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야. 


 


이런 대의 사상은 오늘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라, 나라를 위하여 손해 보라고 말한다. 몇 년 전에 김선일이라는 사람이 이라크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우리나라가 해준 일은 없었다. 대의를 위하여 우리나라에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나라에 군대를 파견한다. 정말 답답한 일이다. 체헌이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할까? 아빠에게 묻고 싶다고 아빠는 네가 스스로 깨달았으면 좋겠다. 생명을 존중하라는 말을 아빠는 하고 싶다.



중화주의, 대의, 자기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삼국지>는 한 번은 읽어야 한다. 좋은 책이다. 읽을만한 책이다. 언젠가 네가 <삼국지>를 읽게 된다면 오늘 아빠가 너에게 쓴 글을 가슴에 묻고 읽으라. 그래 정말 생명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네가 되기를 바란다. <삼국지>가 담은 중화주의, 대의, 자기중심주의를 정확하게 안다면 역설을 통하여 바른 깨우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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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대 중 최고다. | gift 2008-01-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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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GIFT][무료배송]고급 명품 아더 독서대

독서대
| 200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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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하면 항상 부담되는 일은 목이 아픈 것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 목이 자라목이라 피곤함은 다른 사람보다 두 배는 더 한다. 독서대를 사용하면 피곤함을 조금은 덜 수 있기 때문에 독서대를 구입했다. 독서대 구입은 책읽기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다.


 


하지만 구입하면 얼마 쓰지를 못했다. 부러지거나, 흠이 생겨 1년을 제대로 사용해본 적이 없다. 튼튼한 독서대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좋은 독서대를 찾을 수 없었다. 좋은 독서대라고 하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어느 날 예스24에서  '에이스독서대- 명품 아더' 우연히 만났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30% 할인된 가격이 63,000원. 1만원 하는 책을 여섯 권이나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아무리 독서대가 필요하지만 언듯 구입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몇 날을 고민했다. 독서대 하나에 63,000원이라는 가격은 허비와 사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민이 거듭될 수록, 생각을 하면 할수록 구입하려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결국 결단했다. 구입하기로.


 


규격을 보고 구입했지만 눈으로 본 순간 매우 크다는 느낌이다. 가로 49,5센티미터. 세로 32센티미터는 의외로 컸다. 아이들 책상에는 도저히 올려 놓을 수 없는 크기다. 내 책상 길이가 1미터 80센티미터 정도 되는데도 좁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게는 2866그램이다. 거의 3킬로그램이나 나간다. 두꺼운 책 한권을 놓고 들면 정말 묵직한 느낌이다. 일반 독서대가 주는 크기와 무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반 독서대가 합판이나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왠지 가벼운 느낌이지만 에이스독서대- 명품 아더는 원목이기 때문에 묵직하고 중후한 감을 경험할 수 있다. 원목이 주는 독특함 감촉과 냄새는 친근감을 더했다. 처음 접하는 순간 쉽게 부서지거나, 금방 버릴 수 것 같은 느낌을 전혀 없다.


 


일반 독서대 받침대는 나무재질이다. 하지만 에이스독서대- 명품 아더는 받침대가 유리로 되어 있다. 5밀리미터 이기 때문에 상당한 두께다. 독서대에 이렇게 두꺼운 유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용하면서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유리를 바쳐주는 나무틀이 옛날 우리나라 문틀이나, 창틀처럼 되어 있어 유리를 통하여 비쳐지는 나무틀은 옛선비들이 느끼는 감정까지 경험할 수 있다. 나무만으로 되어 있는 일반 독서대와 다르게 책 뒤편을 볼 수 있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는 새로운 맛이다.


 


유리를 고정시켜주는 고무패킹은 세심한 배려다. 책 읽는 독자가 아무런 부담없이 책을 얹어 놓고 읽을 수있게 만들었다. 비싸게 한 번 팔어 먹고 마는 그런 제품은 아니다. 독서대는 책을 읽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


 


사람들은 독서대를 그냥 쉽게 사는 경향이 있지만 오래 시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구입해야 한다. 일년 정도 사용하다가 버려도 되는 제품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독서대도 이제 책을 읽는 중요한 소품이다. 소품이라고 해서 싸게 구입하고 금방 버리는 제품이 되면 안 된다. 독서대는 책 읽는 사람에게 책만큼 중요한 소품이다. 에이스독서대- 명품 아더는 이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제품이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일반독서대처럼 각을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의 45도로 고정되어 있다. 물론 각을 조정하려면 번거럽고, 중후한 느낌을 줄 수 없을 수도 있다. 간단하고 간결한 모양이 품격을 더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단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좋은 제품이다. 가격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하지만 사용하면 가격이 결코 비싸지 않음을 분명 경험할 수 있다. 63,000원 아깝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독서대를 언제까지 쓸지 모르지만 쓰는 그날 까지 참 잘 구입했다는 생각은 변함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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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실로 | 耽讀메모 2008-01-0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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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저
미래사 | 199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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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실로> 이상화

 

-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만 있어라

 

마돈나’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挑)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덴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욱---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촉(燭)불을 봐라.

양털같은 바람결에도 질식(窒息)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 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에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으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내 침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출처]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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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풍경 | 耽讀메모 2008-01-0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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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저
미래사 | 199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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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풍경

                                              - 이상화(李相和) -


  맥풀린 햇살에 번쩍이는 나무는

선명하기 동양화일러라.

  흙은 아낙네를 감은

천아융(天鵞絨) 허리띠같이 따스워라.

                                                  무거워 가는 나비 나래는

드물고도 쇠하여라.

  아, 멀리서 부는 피리 소린가?

하늘 바다에서 헤엄질치다.


  병들어 힘 없이도 섰는

잔디풀---나뭇가지로 

  미풍의 한숨은

가는[細] 목을 매고 껄떡이어라.


  참새 소리는

제 소리의 몸짓과 함께 가볍게 놀고

  온실 같은 마루 끝에 누운

검은 괴의 등은 부드럽기도 기름져라.


  청춘을 잃어버린 낙엽은

미친 듯 나부끼어라.

  서럽고도 즐겁게 조을음 오는 적막이

더부렁거리다.


  사람은 부질없이 가슴에다 까닭도 모르는

그리움을 안고

  마음과 눈으로 지나간 푸름의 인상을

허공에다 그리어라

 

<가을의 풍경>  15쪽

 

[출처] 가을의 풍경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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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역사관 | 소설 2008-01-0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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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천도룡기 세트

김용 저/임홍빈 역
김영사 | 2007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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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편지을 쓸 때마다 고민입니다. 만날 ‘사랑’한다는 말만 쓸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고민 고민하다가 오늘은 내게도 생소하고, 당신은 더 생소한 무협소설을 읽고서 ‘역사’에 대한 짧은 소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단재 선생님이 규정한 ‘아’와 ‘피아’의 투쟁으로 본 역사관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듭니다. 나와 너의 관계입니다.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단재 선생이 살았던 일제강점기와 지금의 관계는 분명 다를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아와 피아는 다르게 규정될 수 있습니다.


 


무협 소설을 읽고 역사를 논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만 한 번 규정해보는 일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끝없는 관계가 역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지요.


 


당신이 말했지요. “당신도 무협소설”을 다 읽느냐고. 그래요 당신과 혼인하고 책을 많이 읽었지만 무협소설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남자들 중 학생 때 무협소설 한 두 번 안 읽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김용 선생이 쓴 <의천도룡기>입니다. 김용 선생은 중국 분입니다. 그 분 책 중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사조삼부곡'이라 합니다. <사조삼부곡>은 송-금-원 교체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조삼부곡'의 마지막 책이 <의천도룡기>입니다. 무협소설을 읽은 지 오래 되어 문파와 권법을 독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부록을 참고하여 읽으면서 어릴 때 영웅전으로 명명되어 나와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 흥미와 재미가 더하였습니다.


 


이 책은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중원의 패권이 넘어가는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넘어가는 당시 우리나라는 고려에서 조선입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서로 역사의 전환점을 맞은 것이지요. 우리 역사와 중국 역사를 비교해보는 일도 재미있겠지만 <의천도룡기>가 우리나라를 다루고 있지는 않아 약간 아쉬웠습니다.


 


오랑케가 지배한 역사가 원나라입니다. 원나라 역사를 중국인들은 중국사라 하지만 엄연히 다르지요. 오랑케 역사에 한족 역사로 다시 태어나는 시대를 그리면서 픽션과 논픽션이 절묘하게 교차하면서 중원의 주인인 바뀌는 과정을 그려 가는 장면은 김용 선생 필력이 어떠한지 깨닫게 합니다.
 
아마 그는 원나라가 중원을 지배한 역사를 그리는 것이 심연에서 고통으로 자리 했을 것입니다. <의천도룡기>에서 중화주의를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 역시 한족 중심 역사관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습니다. 오랑케인 몽골족이 지배한 원나라를 정복하고 대명을 세우는 일을 위하여 투쟁한 이들을 담았습니다.


 


중화주의를 극복하는 흔적은 발견되지만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인공은 소봉을 제외하고는 한족입니다. 한족 회복 운동이 중심임을 행간은 말합니다. 문파와 권법, 주인공 각자의 내밀한 성격과 관계를 설정하고 있지만 마지막은 역시 중화주의입니다.


 


하지만 중화주의가 남아 있지만 김용 선생은 역사 발전을 민중, 즉 인민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장무기, 곽정, 곽양, 조민보다는 못하지만 이름 없는, 이름이 높지 않은 이들을 통하여 역사가 진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 진보는 반드시 강자만이 아니라 민중과 인민에 의해서도 발전할 수 있음을 김용은 직시하였습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항상 깨닫는 것은 우리는 강자 중심 사고에 철저히 매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관우, 조조만 존재하는 <삼국지>는 삼국지가 아닙니다. 원래 대의란 민중을 위할 때 대의할 수 있습니다. <의천도룡기>에서는 이것이 보입니다. 삼국지를 읽을 때 민중을 통하여 역사를 읽는 눈을 가질 필요성이 있듯이 <의천도룡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의천도룡기>의 역사 배경은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중원 패권이 바뀌는 격변기입니다. 명나라 주인이 누구였습니까? 주원장입니다. 그는 귀족이 아닙니다. 천하디 천한 자였습니다. 그가 중원패권의 주인 자리에 앉았습니다. 역사가 새롭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기층 민중이 천자가 될 수 있는 역사 격변이 보입니다. 


 


여러 인물 중 곽정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장무기라는 주인공이 있지만 곽정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는 위국위민의 힙지대자로 불리웠습니다. 즉,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는 위대한 협객입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헌신, 그것이 김용이 말하는 역사가 아닐까요? 항몽, 즉 원나라를 극복하고, 또 한족이 중원을 지배하는 중국이 되고자 했습니다.


 


하자만 곽양은 다릅니다. 반전통적인 인물입니다. 항몽 대열에 참여하지만 곽정과는 반대 방향이지요. 장무기는 이 곽양을 따르지만 곽양을 극복하려 합니다. 김용이 <서검은구록> <벽혈검>과 달리 <의천도룡기>에서 한족 중심 역사관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역사 갈등을 장무기를 통하여 밝히는 것 같습니다.


 


장무기는 주원장에게 자리를 내줍니다. 왜 그가 자리를 내줄까요? 그도 황제가 될 수 있었지만 자리를 주원장에게 줍니다. 장무기 성격이 우유부단할 수 있지만 김용이 말하고자 하는 역사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역사는 큰 사건을 통해서만 변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과 큰 것이 함께 가지요. 김용의 <의천도룡기>에서 역사는 무엇일까요? 권력욕과 명예욕을 가진 이들이 패권을 다투는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김용 선생은 역사를 이렇게 규정했습니다.


 


“장무기와 같은 사람은 제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소유했다 하다라도 종국에 가서는 정치적으로 위대한 영도자가 되지 못한다. 하기야 그 자신도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영도자 노릇을 해보려는 생각이 없었던 만치, 설령 억지로 영도자가 되었다 해도 마지막에 가서는 필경 실팼을 것이 분명하다.


 


중국 3천년의 오랜 정치 역사가 진작 그 결론을 명확히 제시해놓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에서 성공한 정치지도자의 첫 번째 조건은 '참을 인'이 글자다. 두 번째 조건은 ‘명쾌한 결단력’이다. 세 번째로는 극도로 강한 권력욕이다.”<의천도룡기> 8권 563쪽


 


중국을 지배한 역사관입니다. 정치지도자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 속에 감추어진 역사관이 아닐까요? 김용 선생은 의협을 강조합니다. 의협이란 자기 이익이 아닙니다. 자기가 속한 집단과 국가까지도 아닙니다. 의리상 꼭 해야 하는 일을 말합니다. 보수와 대가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의협은 원나라가 아니라 명나라에 의해서 세워진 것 아닐까요? 아직 김용 선생이 한족 중심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장무기가 주원장과 끝까지 황제 자리를 놓고 다투지 않았던 것을 김용은 말하고 싶어하지요. 이는 서양 역사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의천, 하늘에 의지하여, 도룡, 뛰어난 재능을 지니다입니다.


 


몽골 곧 원나라를 이기기 위하여 싸우는 명교의 영수가 장무기입니다. '몽골'로 상징되는 조민이 '한족'으로 상징되는 명교 교주 장무기에게 조국에 대한 모든 것, 심지어 아버지인 여양왕과의 부녀관계마저 떨쳐버리고 사랑을 바치는 장면은 아마 김용 선생 역사관의 핵심이 아닐까요?


 


결국 한족이 몽골족에게 승리합니다. 장무기가 주원장을 대신하여 명나라 황제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요. 황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족이 다시 중원의 패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조민을 왜 한족에 동화되는 인물로 묘사할까요? 조민은 몽골, 원나라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었지만 그는 배반했습니다. 나라를 버렸습니다. 중국은 현대사 가까울 수록 이민족 침략을 받았습니다. 명나라가 원나라를 극복하였지만 260-70년 만에 다시 만주족에게 중원 패권을 넘겨 줍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서구 열강에 의하여 중국 본토는 나누어집니다. 나라 전체가 서양에게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게 땅을 내어줍니다. 나중에는 일본에게까지 치욕을 당합니다.


 


김용 선생은 복잡했을 것입니다. 중화중심이 갈수록 무너지는 아픔을 그는 겪었습니다. <의천도룡기>에서 각 문파들이 싸우는 장면에서 중원을 두고 열강이 다투는 모습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사파와 정파가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열과 이민족의 침입으로 치욕을 당한 중원 회복입니다.


 


김용 선생은 결국 <의천도룡기>에서 중화중심주의를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중화주의는 김용 선생뿐만 아니라 중국인민 전체 속에 내밀화된 개념입니다. 역사가 무엇인지 <의천도룡기>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와 피아와의 끝없는 투쟁이 <의천도룡기>에서도 읽혀집니다. 순진한 나만의 생각이면 좋겠습니다. 김용 선생은 중화주의를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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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單調) | 耽讀메모 2008-01-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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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저
미래사 | 199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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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單調)

                                        - 이상화(李相和) -

비 오는 밤

가라앉은 하늘이

꿈꾸듯 어두워라.


나뭇잎마다에서

젖은 속살거림이

끊이지 않을 때일러라.


마음의 막다른

낡은 뒷집에선

뉜지 모르나 까닭도 없어라.


눈물 흘리는 적(笛) 소리만

가없는 마음으로

고요히 밤을 지우다.


저편에 늘어섰는

백양나무숲의 살찐 그림자는

잊어버린 기억이 떠돎과 같이

침울 --- 몽롱한

캔버스 위에서 흐느끼다.


아, 야릇도 하여라

야밤의 고요함은

내 가슴에도 깃들이다.


병아리 입술로

떠도는 침묵은

추억의 녹 낀 창을

죽일 숨 쉬며 엿보아라.


아, 자취도 없이

나를 껴안은

이 밤의 홑짐이 서러워라.


비 오는 밤

가라앉은 영혼이

죽은 듯 고요도 하여라.


내 생각의

거미줄 끝마다에서

젖은 속살거림은

줄곧 쉬지 않더라.

[출처]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단조'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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