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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 | My Story 2008-03-3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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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부터 1997년까지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한 신학대학원을 다녔다. 학교 밑에 부대찌개를 아주 잘하는 집이 있었다. 아예 식당 이름조차 없는. 우리들은 그 부대찌개 집을 '할머니 부대찌개집'으로 불렀다.

 

집은 다 쓰러져가고, 의자도 없고, 앉아서 먹어야 한다. 옛날 온돌방처럼.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밤에 한 번씩 나가 먹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금요일마다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 한 분은 점심을 반드시 할머니 부대찌개 집에 드셨다. 매주 빠지지 않고.

 

부대찌개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부산물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 할머니 역시한국전쟁 직후 미군 부대 근처에 사시다가 부대찌개를 만들어 파시기 시작하였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수다. 그 집 육수 맛이 정말 기가 막힐 정도였다.

 

음식을 앞에 놓고, 다 끓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고역이었다. 신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당시 일인분에 4000원 정도였다. 몇 명이 어울려 먹으면 푸짐하고, 넉넉한 만찬이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술값으로 들어가는 것을 몇 인 분 더 시켜 먹을 수 있어서 양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할머니 부대찌개집에서 겪은 잊을 수 없는 추억 거리가 있다. 같은 반에 마음에 든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마음에 들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가장 순진한 방법인 편지를 썼다. 드디어 여학생이 나를 만나기를 원했다. 1995년 가을 어느 날 우리는 둘 만의 장소에서 만났는데 그게 바로 할머니 부대찌개 집이었다. 기대가 넘쳤다.

 

"동수씨 정말 끈기 하나는 대단하네요."

"……."

"보내주신 편지 잘 읽었어요.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맙고, 좋았어요.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니 정말 고마웠어요."

"00씨 일 년동안 지켜보면서 고민도 많이 했고, 앞으로 이 길을 가는데 동역자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원래 말도 잘 못하는 편이라,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동수씨 마음은 고맙지만. 제 마음은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편지가 부담스러웠다면 미안해요."

"저는 편지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동수씨가 나의 한쪽이 되는 것에 대하여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받고서부터 부담스러웠다는 것입니다."
"…?"

"진실한 마음을 가진 동수씨에거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하여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이예요.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잖아요."

 

할머니집부대찌개가 그날 만은 쓰고, 맛이 없었다. 수없이 먹었던 부대찌개 맛이 아니었다. 육수는 싱거웠고, 진한 맛이 전혀 없었다. 주인이 바뀌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 따라 부대찌개 맛이 없네요."
"당연하지요. 내 한테 완전히 차였는데."

 

그냥 웃고 말았지만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학교까지 올라가면서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와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후에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할머니 부대찌개 집을 찾지 않았다.

 

1997년 8월 한 여성을 만나 결혼을 했다. 1998년 2월 졸업을 위하여 학교에 다시 갔다. 아내에게 학교 앞에 제일 맛있는 부대찌개 집이 있으니 저녁은 거기서 먹자고 했다. 할머니는 안 계시고 며느리가 할머니 뒤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고 계셨다.

 

"이런 집도 장사가 되나요? 얼마나 부대찌개 맛이 있으면."
"한 번 먹어보면 알거요. 정말 두 사람이 먹다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어요."

"당신이 맛있다고 하는 집 치고 진짜 맛있는 집은 없더라."

"아차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났는데 해줄까요?"
"아 그 여자 전도사님?"

"응 바로 이 자리에서 완전히 차였지. 오늘 그 전도사님 만날 수 있을 거야."

"정말 보고싶다. 그 분. 당신 찬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한데요?"

"그때는 정말 눈물이 나더라. 부대찌개 먹으면서 짝사랑했던 사람에게 차인 사람도 별로 없을 거야. 술이라도 마실 줄 알면 정신없이 마시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나요."

"그 분도 대단해요. 차이고 나서 서먹서먹해서 어떻게 지냈어요?"

"응 그럭저럭 지냈지."

 

오래 만에 먹어본 부대찌개 맛은 할머니 때보다 조금은 못했지만 아직도 맛은 변함이 없었다. 그날 저녁 아내와 나는 나를 차버린 전도사님 댁에 가서 하룻밤을 잤다. 그 남편도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분이었다.

 

부대찌개가 생각나면 집에서 한 번씩 끓여먹지만 전혀 맛이 나지 않는다. 한 번은 진주 시내에서 부대찌개를 시켜 먹었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한 숟가락 입에 대고 식당을 나온 적이 있을 정도로 학교 밑 할머지집 부대찌개 맛은 잊을 수 없다.

 

할머니집 부대찌개는 맛도 잊을 수 없는 곳이지만 나를 차버린 여성과 아내가 된 여성과 함께 한 잊을 수 없는 맛집이기도 하다. 십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곳 할머니 부대찌개 집에  후배들이 계속 드나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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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멀리보면 보입니다] ⑮ 성장과 복지 | 노무현 2008-03-2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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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만능론’에서 ‘동반성장’으로 정책 패러다임 전환

참여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사회ㆍ경제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사회투자를 확대했다. 구조화된 양극화 극복을 위해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고용지원, 서민과 고령층에 대한 복지를 확대함으로써 경제 성장과 사회 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 전략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60년대 이래 30여 년간 고도성장을 추구하면서 알게 모르게 성장만능론에 젖어 있었다. ‘선성장 후분배’의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분배의 측면을 소홀히 다루어온 것이다. 동반성장은 ‘선성장 후분배’ 패러다임을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 기조로 전환해 양극화 극복과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모색하는 새로운 성장전략이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2만 달러 시대를 넘어 3만 달러, 4만 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 필요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사회복지투자 매년 22% 증가… 선진국 수준 갈 길 멀어

성장과 분배는 한 쪽이 기울어지면 잘 굴러가지 않는 수레의 바퀴와 같다. 복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이지만 단순히 선심성 지출이 아니다. 사회의 그늘을 없애고 수혜의 폭을 넓혀 함께 성장하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투자인 것이다. 복지는 성장의 밑거름이지 장애물이 결코 아니며, 사회적 비용이 아니라 동반 성장을 위한 선제적 투자이다.

사회복지 지출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란은 그간 끊이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선진국의 성장 단계별 사회지출을 분석해보면 사회지출 비중이 경제성장에 따라 오히려 높아지는 추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OECD 선진국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대 수준에서도 평균 20%대의 사회지출 비중을 유지하면서 2만 달러, 3만 달러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의 복지지출은 고작 8%대에 불과하다.

참여정부 들어 복지를 포함한 사회적 투자는 매년 22%씩 증가했다. 이는 정부 예산 평균 증가율 11%의 2배에 달한다. 그 결과 사회정책을 통한 분배 개선 효과가 2001년 4.7%에서 8% 수준으로 높아졌다. 사회적 투자의 확대를 통해 사회적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도 지속적으로 발굴해왔다. 이는 우리나라가 3% 중반의 실업률을 유지할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러나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는 아직도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복지 없는 성장은 지속가능한 발전 보장 못한다

고도성장을 추가하던 개발시대에는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따라서 당시 재정조세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물적 자본의 축적과 투자 촉진’을 주된 목표로 했다. 재원은 경제개발 분야에 집중 배분됐고, 조세지원도 물적 자본 축적에 집중됐다. 인적자원 개발이나 복지에 대한 재정투자는 턱없이 부족해 ‘성장속의 빈곤’을 초래했다. 양극화의 근본적 원인은 그동안 재정조세 정책을 통한 소득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성장 후분배’ 논리에 근거한 기존의 재정조세 정책의 틀을 바꾸지 않고는 아무리 개혁을 하더라도 복지와 소득재분배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나라 재정조세정책은 재정지출 규모면에서 여전히 국민의 필요에 미치지 못하고 복지재정 수준이 낮으며 조세부담률이 낮고 조세 형평성도 부족하다. 참여정부는 소득 재분배 기능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동반성장 패러다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재정조세 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 가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화ㆍ정보화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과 그에 따른 양극화를 체험하고 있다.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 시대로 발전하면 할수록 세계화ㆍ정보화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참여정부 들어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도 질 높은 일자리는 부족하고 복지는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먼저 경제를 성장시키고 나중에 치유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성장과 고용의 관계를 단선적으로 파악하는 위험한 주장이다. 질 높은 일자리가 부족하면 소득의 양극화가 생긴다. 이는 곧 소비 부진으로 이어져 기업의 경영환경 악화와 투자 축소로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일자리가 다시 줄어들고 양극화가 더 심화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게 된다.

양극화를 방치한다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양극화로 인한 서민들의 심리적 박탈감과 사회분열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2만 달러를 넘어 3만 달러로 가기 위해서도 양극화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동반성장 통해 ‘경쟁력 있는 민주복지국가’ 만들어야

이제 사회정책은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 경제가 고도화하면서 물량 투입 위주의 고성장 정책은 가능하지도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수단도 될 수 없다. 복지 없는 성장은 더 이상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 시장에서 경쟁에 실패하거나 뒤처진 계층에 대한 국가적 보호와 지원이 없으면 국가 공동체마저 위험하게 된다.

대한민국 발전의 핵심적 전략은 동반 성장을 통해 ‘경쟁력 있는 민주 복지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개방과 혁신’, ‘사회 투자’로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 동반 성장이다. 동반 성장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평화를 통한 번영’, ‘성숙한 민주주의’, ‘책임 있는 정부’ 등 지속적인 발전기반이 구축돼야 한다.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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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멀리보면 보입니다] ⑭ 묵은 과제 해결 | 노무현 2008-03-2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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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묵은 과제, 피하지 않고 해결했습니다

항만 노무개혁,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 용산기지 건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사법개혁, 종합적인 국가균형발전정책 추진, 부동산거래 투명화와 공평과세 실현….

참여정부는 오랫동안 숙제로 남아있던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과제들을 묵묵히 해결해왔다. 이는 모두 역대 정권에서 정책적 타당성과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해관계, 집단이기주의나 저항 때문에 수십 년 간 미뤄져왔던 국가적 과제들이다. 참여정부는 이를 회피하지 않았다. 갈등과 대립, 그리고 혼란도 있었지만 이는 묵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때론 시끄러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참여정부는 수십 년 묵은 과제를 후대에 넘기지 않고 참여정부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항운노조, 노무 인력 독점권 100년 만에 사라져

‘항운노조의 노무공급 독점권’은 무려 100년이나 이어져온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였다. 그럼에도 노조의 특권을 지키기 위한 반발과 저항이 심해, 심지어 군사독재 정권도 제대로 손을 대지 못했다. 참여정부 이전에도 ‘항만 노무 인력 상용화’를 추진한 적은 있지만 항운 노조의 반발, 대규모 보상금 요구 등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기존 항만 노무 공급체계는 항운 노조가 노무 인력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하역업체는 항운노조 측에 작업에 필요한 노무 인력을 건마다 수시로 요청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왔다. 이는 지난 100년 동안 관행으로 지속되어 왔다. 이로 인해 하역회사의 자율적인 고용권을 제한해 효율적인 항만 운영이 어려웠으며, 하역 현장에서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고착시켜 왔다. 또한 항운 노조의 배타적인 노무 공급권 행사는 우리 항만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동북아 물류 중심지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이에 따라 이를 개혁하는 과제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아 있었다.

참여정부는 2005년 12월 노조 집행부의 독점적 공급권한을 폐지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항만별 노·사·정 개편위원회를 구성한 후 대화와 합의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항만 인력관리를 노조에서 개별 회사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1898년 47명의 부두 하역 근로자들이 함북 성진에서 최초로 부두 노조를 결성한 지 100년 만에 항운노조의 노무 공급 독점권이 사라지게 됐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외국 항만에서는 강제적 구조조정으로 대규모 파업 등 극단적인 갈등이 발생했으나, 우리 항만은 물리적인 대립이나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 항만 노무인력 공급체계를 개편함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원만한 갈등 해결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줬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해양수산부 등 유공자들을 불러 “이번 항만 노무 공급체제 개혁이 외국과 달리 인위적인 구조조정이나 파업없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한 한국형 개혁모델을 제시한 대표적인 사례”라며 “노무 상용화를 통해 항만 효율성이 향상되면 우리 상품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지고, 항만에서의 물동량 증가로 결국 수출도 증가해 항운노조 조합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방폐장 문제, 19년만에 주민투표로 민주적 해결

이렇듯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갈등과제였기 때문이다. 방폐장부지 선정 문제도 대표적인 갈등과제 중 하나였다. 이는 정책적 타당성과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1984년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이 세워진 이래 19년 동안 7차례나 시도됐지만 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이를 주민투표를 통해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했다. 2004년 부안의 실패를 교훈삼아 2005년 11월 주민투표로 경주를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지로 선정함으로써 19년 묵은 과제를 해결한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시절부터 제기됐으나 20년간 끌어왔던 용산 미군기지 이전문제도 참여정부에서 비로소 마무리가 되었다. 용산기지 이전은 구한말 청군 주둔이후 일본군, 미군으로 이어진 120여 년간의 외국 군대 주둔의 역사를 청산하는 민족사적 과제였다. 1987년부터 미국과 협상을 시작한 이래 2003년 한-미 정상간 합의와 2004년 국회 동의로 결실을 맺게 됐다. 서울 중앙의 방대한 요충지가 국민의 품에 되돌려지게 된 것이다.

역대정부서 추진한 용산기지 이전, 전작권 환수, 사법개혁 등 마무리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20여년 된 해묵은 과제였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의 공약으로 처음 언급된 뒤 1994년 문민정부에서 평시 작전권이 환수되었고, 이후 한-미간 다각적인 연구 검토 끝에 2006년 확정됐다. 세계에서 자국군의 작전권이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우리 국군이 전시 작전권을 갖자는 것은 단순히 자주국가의 위상을 되찾자는 차원이 아니었다. 세계 6~7위로 성장한 한국군의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한미동맹을 새롭게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전략적 전환기를 맞고 있는 한반도 안보에 대처하고 동북아 안정에 주체적으로 기여하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는 시기상조, 북한위협 노출 등을 우려하고 있지만 자신의 운명을 다른 나라에게 맡기고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며 “우리 군은 이미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전시작전 통제권이 환수되면 한국군은 60여년 만에 자주 국방의 요체인 독자적 통제권을 회복하게 된다”고 강조 한 바 있다.

13년 동안 추진되었던 사법제도 개혁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사법제도 개혁은 문민 정부이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참여 정부는 행정부와 사법부가 처음부터 사법개혁을 위한 공동 작업을 합의해 추진했다. 그 결과 사법 민주화와 투명화, 사법 시스템 선진화를 위한 25개 법률안을 만들었다. 특히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로스쿨 법 등 사법개혁 3대 핵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중에 있다.

부동산거래 투명화, 공평과세 실현 등 부동산 문제 근본적 해결

또한 참여정부는 역대 정부의 숙원사업이었던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시스템을 확립하여 시장을 투명하게 하고 종부세를 도입하는 등 세제를 공평하게 바꾸어 부동산시장 선진화의 기본 틀을 확립했다. 특히 실거래가 신고 의무화와 부동산 통계시스템 구축은 부동산 거래시장을 투명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는 임기응변식의 단기적인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인 치료를 하겠다는 참여정부의 일관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아울러 참여정부는 부동산 세제 개혁과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 장치도 마련했다. 부동산 세제 개혁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손대지 못한 과제를 해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과표와 세율을 현실적으로 조정했고 보유세를 강화하는 동시에 거래세를 낮춘 것은 부동산 시장에 합리적인 원칙을 세웠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성과다.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고, 거래에 드는 비용은 낮춰서 시장의 거래를 활발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 이제야 우리 부동산 시장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70년대부터 심각성 드러난 국가불균형 문제, 국가적 과제로 추진

수도권 비대화와 지방의 급속한 몰락도 우리나라의 대표적 묵은 과제였다. 박정희정권 이래 수십 년 간 역대 정부가 그 심각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정치적 격변이나 저항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함으로써 국가불균형 문제는 이제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가로막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참여정부가 출범과 함께 국가적ㆍ역사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 정책이 국토균형 발전 전략이었고, 그 첫 번째 과제가 행정수도 건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행정수도 건설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반토막이 났지만, 행정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언젠가는 행정수도가 될 것으로 믿는다.

행정도시와 더불어 10개 혁신도시, 6개 기업도시가 확정되어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5~6년 후에는 행정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에 교육, 의료, 문화 등 고도의 정주 여건이 갖춰짐에 따라 지방화 시대가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울러 이미 발표된 서남권 종합개발 계획을 필두로 낙후지역 개발 계획이 순차적으로 추진되면 10~20년 후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발전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한반도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1970년대부터 과거 역대 정권이 수 십 년 외쳐왔던 수도권 집중 방지 대책과 지방 발전 대책이 제대로만 이행되었더라도 오늘날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부동산, 교육, 교통, 물류, 환경 문제의 절반은 해결되었을 것이다.

 

<노무현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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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멀리보면 보입니다] ⑬ 언론정책 | 노무현 2008-03-2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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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언론을 탄압했는가
다시 ‘책임 있는 자유’를 생각한다

일부 부처에서 기자들의 촛불농성이 있었다고 한다.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한 반발이다. 이들은 “정부의 취재통제안에 따른 기사송고실 강제 폐쇄는 명백한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한다. 일찍이 조선일보는 이렇게 언급했다. “언론 증오는 이 정권의 ‘청와대병(病)’이다.”(06.7.31 사설) 언론 증오, 통제, 탄압…. 과연 그런가.

독자 선택권 침해라던 가판 구독중단

노무현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2003년 2월 26일 청와대는 신문 가판구독을 중단했다. 다른 정부기관들 역시 다음달인 3월 가판구독을 모두 중단했다. 가판은 하루 전날 저녁에 나오는 다음날짜 조간신문이다. ‘관공서와 대기업의 로비나 압력에 따라 기사가 교체되는가 하면 신문마다 빠진 기사를 보고 뒤따라가느라 닮은꼴 신문을 양산해 `임시판', 혹은 `가짜판'이라는 뜻으로 가판으로 불리기도 한다.’(03.3.5 연합뉴스)

가판은 기사를 둘러싼 뒷거래의 시발점이라는 부작용을 안고 있었다. 정부에 불리한 기사가 실리면 통상 ‘기사를 빼 달라, 고쳐 달라’는 회유나 압력이 이어졌다. 가판구독 중단은 참여정부의 권언유착 근절 의지를 상징하는 조치였다. 곧바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언론의 속보성과 정보성을 무시한 일방적 제동장치에 불과할 뿐”(조선일보 사설 03.2.24)이며 “정권이나 친여세력이 독자의 신문선택권까지 침해하려는 발상이 무섭기만 하다”(동아일보 사설 03.3.3)는 것이다. 때를 같이해 한나라당은 “노 정권은 김대중 정권의 실패한 언론 길들이기 정책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논평했다. 2년 뒤, 두 신문은 이런 사고(社告)를 내보냈다.

“가판은 한국 신문의 오랜 관행이었으나, 지방동시인쇄 시스템과 운송 수단의 발달로 이제 그 의미가 퇴색했습니다.”(조선일보 05.3.1) “저녁 가판을 폐지하는 것은 한층 충실한 취재와 편집을 위해 제작시간을 늘리려는 것입니다.”(동아일보 05.4.1) 그해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세계일보 등이 줄줄이 가판을 폐지했다. 정부의 언론탄압으로 인한 결과였을까.

언론탄압에 맞서 불법경품 뿌렸나

‘자전거일보’ ‘비데신문’ ‘상품권일보’…. 불법경품으로 얼룩진 신문시장을 일컫는 말들이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신문고시를 개정해 위반사건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직접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신문시장 정상화 조치의 일환이었다. 신문고시는 연간 구독료의 20%를 초과하는 경품과 무가지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2005년 4월에는 불법경품 등에 대한 신고 포상금제를 도입했다.

<공정위가 ‘신문장악’ 위한 도구냐> (중앙일보 사설 04.8.3) <공정위의 본업은 비판신문 죽이기인가> (조선일보 사설 05.12.2) <비판신문 안방 뒤지는 공정거래위> (동아일보 사설 05.12.2) 어김없이 반발이 이어졌다. 이 같은 주장과 달리 신문고시는 이미 2002년 7월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론이 난 사안이다. 당시 헌재는 “신문고시는 신문업계의 과당경쟁을 완화하고, 올바른 여론형성을 주도해야 할 신문의 공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제정된 만큼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실제로 경향신문이 신문고시 개정 직후인 2003년 6월 각계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이를 ‘언론정책 중 가장 잘한 것’ 1위로 꼽았다. 성과도 긍정적이었다. 공정거래위의 ‘2006 신문판매시장 실태파악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새 신문 구독 때 경품을 받았다는 응답자는 9.9%였다. 2003년 조사 때 41.6%였던 것에 비하면 30%포인트나 줄어든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시장 정상화가 온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올 7월 4개 신문 160개 지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신문고시 위반비율은 조선일보 100.0%, 중앙일보 97.5%, 동아일보 95.0%로 나타났다. 이들 신문은 언론탄압 조치에 맞서 불법경품을 계속 뿌려대고 있는 것일까.

언론대응만? 수용현황은 안 보이나

2003년 4월 당시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은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 정권의 언론통제 기도가 갈수록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청와대의 언론보도 보고 지침이나 국정홍보처의 ‘오보대응팀’ 운영은 개별 언론의 논조와 지향점마저 체크해 정부 입맛대로 재단하겠다는 것으로 언론자유를 말살하겠다는 또 하나의 폭거다.”

정책기사점검시스템으로 정착된, 오보나 왜곡보도에 대해서는 적법절차에 따라 정정, 반론을 요구하고 타당한 비판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부 방침은 내내 이런 식으로 공격받았다. <편집광적인 정부의 언론 시비 걸기> (03.9.17) <권력감시보도를 ‘저주’로 보는 청와대> (03.9.23) <언론검열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 (05.4.29 이상 조선일보 사설) 등도 같은 맥락이다. <언론보도 법적대응 하루 1.75건> (03.8.4) <노정부 들어 702건 중재신청…2.4일에 한건꼴> (07.8.24 이상 동아일보) 식의 보도가 되풀이됐다.

이 같은 주장에는 항상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이 빠져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래 2007년 5월까지 정부는 언론중재위에 총 694건의 중재신청을 했다. 이 가운데 정정, 반론보도로 이어진 사례가 500건을 넘어 피해구제율이 76.1%에 이른다. 언론이 10건 중 7건 이상 정정·반론 등을 받아들인 것이고, 그만치 정부의 언론대응이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이루어졌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보도대응만을 해왔을까. 합리적이고 타당한 비판에 대해서는 항상 귀를 열어두었다. 이들 언론이 그 같은 사실을 외면했을 뿐이다. 실제로 정부가 언론의 비판을 수용해 법 개정, 제도개선 등으로 이어진 사례는 해마다 오보, 왜곡보도 대응사례를 상회했다. 건전비판 수용제도가 도입된 2004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전체 수용건수는 1672건으로, 대응건수 1276건보다 1.3배가 많다. 언론보도를 저주로 보고 편집광적 시비에 집착했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다.

‘5공 회귀’라던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

일련의 사실에도 불구하고 언론탄압 시비는 계속돼왔다. 처음과 마무리 시점에 기자실을 둘러싼 논란이 자리 잡고 있다. 2003년 3월 정부는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을 발표했고 같은 해 9월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언론탄압’ ‘알권리 봉쇄’ ‘비판언론 재갈물리기’ 등의 반발이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그해 3월 17일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말인가> 사설에서 “5공식 보도지침의 악령이 떠오르기까지 한다”고 했고, 동아일보는 3월 19일 시론을 통해 “(기자실 개방은) 조폭적인 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상은 어땠나. 인터넷매체를 비롯해 기자실의 문호가 개방됐고, 정보제공은 더욱 투명하고 공정해졌다. 폐쇄적인 출입기자단 중심의 운영으로 이른바 주요 언론사들에게는 정보 독점의, 부처에게는 ‘기자 관리’의 통로가 됐던 유착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2004년 6월 13일 <한국, 권언 유착관계 해체>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 권언유착의 상징이었던 출입기자단 제도가 해체되는 등 참여정부의 언론과 새로운 질서 모색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7년 5월 정부는 브리핑실 확대 개편, 부처별 대변인제 및 전자브리핑제 도입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개방형 브리핑제 시행 이후 일부 부처에서 기자들의 사무실 무단출입이 되살아나고 내실 있는 브리핑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는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였다.

2003년과 달리 대부분의 오프라인 매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끝내 기자실 대못질> <언론자유 조종 울린 날> <언론자유 자물쇠 채웠다> <알 권리가 로비로 쫓겨났다> <알 권리 폭압적 봉쇄>…. 지난 8월에는 47개사 편집·보도국장들이 공동결의문을 내고 “정부에 대한 취재 자체, 접근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조치” “군사정권 시절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11월 7일자 <장관 7명, 공무원 4000명 정부중앙청사…기자는 다 쫓겨났다> 기사에서 보듯, 언론은 기자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것처럼 보도했다. 대선 과정에서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뽑아내야 할 대못으로 취급됐다.

무엇이 군사정권보다 더 나쁜 탄압이었을까

기자들이 쫓겨나 갈 곳이 없는가. 아니다. 이미 정부청사와 개별청사에는 새롭게 단장한 기사송고실이 마련돼 있다. 단지 기자들이 이를 이용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무엇이 기자들의 이용을 막고 있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 언론자유에 조종을 울린 폭압적 봉쇄이기 때문인가.

정부는 지난 5월 발표 전후 이해당사자인 언론단체 협의 등을 통해 기자들의 요구를 수용·반영해왔다. 홍보담당 부서를 경유하지 않고도 정책 담당자를 만나 취재할 수 있도록 했다. 합동브리핑센터 출입증만 있으면 별다른 절차 없이 방문증으로 교환해 출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보접근을 보장하는 총리훈령도 만들어져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보공개법 개정을 통한 취재접근권 강화도 추진 중이다.

2003년부터 도입한 사무실 무단출입 금지를 여전히 문제 삼는다면, 이는 도리어 우리 언론의 인식과 태도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수차례 설명했듯, 절차에 따른 출입과 취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지 무단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진국 어디에도 사무실 무단출입을 허용하는 나라는 없다. 오프라인 매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네티즌 여론이 시종 냉담했다는 사실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2년마다 실시하는 한국언론재단의 2007년 기자의식조사에서 나온 참여정부 취재지원시스템에 대한 평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체 기자들의 평가는 10점 만점에 4.55인 반면 온라인 기자들은 이보다 높은 6.27이었다.

“군사정권 시절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언론탄압”이라는 편집·보도국장들의 결의문은 48년만의 모임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동안 언론사(史)에 어떤 일이 있었나.

1969년 신동아 1970년 사상계 1971년 다리 지(紙) 1973년 창조 지(紙) 등 필화사건, 1965년 경향신문 강제매각, 1974년 한국일보 언론노조 결성 방해, 1974~75년 동아일보·동아방송과 조선일보 기자 강제해직, 1970~80년대 보도지침 및 정보기관의 언론사 출입·상주…. 지난 10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공개한 군사정권 시절 정보기관의 언론통제 및 개입 사례들이다. 정부가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을 구속하고 대량 해직시키고 언론사를 강제 매각하고 노골적으로 보도를 감시·통제했다.

지금은 “한국은 이제 어떠한 제약도 없는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된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한국 신문의 사설들은 일상적으로 대통령을 ‘정신병자’로 칭”하며(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07.6.7) 정책 담당자들을 서슴없이 “사냥개 인간, 강아지 권력자”(조선일보 사설 07.12.18)로 지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정권 시절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언론탄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일까.

언론자유 제한하는 ‘진짜 요인’은 무엇인가

앞서 거론한 언론재단의 기자의식조사를 다시 펼쳐보자. 참여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3~4월 실시한 조사에서 기자들은 정치권력(60.3%)을 편집·보도국의 내적 구조(77.1%)에 이어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주요 요인으로 거론했다(3순위까지 응답).

반면 제한 요인을 세분화한 2005년 조사에서 기자들은 언론자유 제한 요인으로 광고주(60.2%)를 첫 손에 꼽았고 사주·사장(43.6%), 편집·보도국 간부(43.4%), 자기검열 및 조직 내적 구조(42.8%) 등 언론사 내부 요인을 지목했다. 정부·정치권력은 39.8%로 그 다음이었다. 2007년에 정부·정치권력의 비중은 34.3%로 더 줄었다. 여전히 광고주(61.0%) 편집·보도국 간부(51.2%) 자기검열 및 조직 내적 구조(42.2%) 사주·사장(40.3%) 등이 그 앞에 있다.

이 같은 통계는 지난 5년간 적어도, 정부와 언론 관계에서 긴장과 갈등의 진통을 겪으며 일궈낸 성과를 보여준다. 정부와 언론이 함께 이룬 소중한 진전이다.

참여정부는 과거 유착과 특권의 정언관계를 건전한 긴장과 책임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정부는 정부의 길로, 언론은 언론의 길로 가자는 것이었다. 시대의 흐름이자 회복해야 할 원칙이었다. 이를 위해 ‘캐시 앤 위스키(Cash & Whisky)’로 통칭됐던 유착과 뒷거래 관행의 근절을 선언하고 실천에 옮겼다. 시행착오도,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불편함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되돌릴 일은 아니었다. 참여정부는 그렇게 정부의 길을 갔다.

지난 5년 정부의 길, 언론의 길 제대로 갔는가

아울러 주장에 앞서 정확하고 공정한 사실을 존중하는 언론, 합리적인 공론을 모색하고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언론을 강조했다. 그것이 언론의 길이라고 봤다. 지난 5년 정부와 언론은 그 길을 충실히 걸어왔는가.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그 길이 아니라는 비난도 들린다. 여전히 언론탄압, 언론통제라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그렇다. 참여정부는 정말 언론을 탄압했는가. 그래서 언론은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가.

“언론을 향한 증오심의 마지막 발작, 병적 귀기(鬼氣)”(조선일보 사설 12.18) “언론 탄압 광기, 민주언론사를 유린한 망나니”(동아일보 사설 12.19) 공론을 위한 지면에 이런 식의 원색적인 비난이 들어차는 것도 자유라면 자유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책임 있는 자유’를 고민하기에 이른 때는 아닐 것이다.

 

<노무현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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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없고 권력투쟁만 있는 | 耽讀 쓴 기사 2008-03-2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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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 그토록 사무쳤는가? 좌파정권이 망친 나라를 다시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집권 한 달 만에 권력투쟁으로 혼돈 속에 들어갔다.

 

그들 모두 입에서 '국민'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 강재섭 대표, 박근혜 전 대표, 46명의 한나라당 후보들이 낸 성명서에도 국민은 있다. 다들 책임은 '내'가 아니라 '너'다. 이는 비극이다. 이들이 말한 내용을 살펴보자.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제가 속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쩌면 속을 줄 알면서도 믿고 싶었습니다. 약속과 신뢰가 지켜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속았습니다. 국민도 속았습니다." - 박근혜 전 대표

 

"제가 희생하고 출마하지 않겠다고 얘기 했으니까 계파적 시각에서 친박, 친엠비로 싸우는 것은 끝내고 상대방하고 싸우는 데 힘을 모으자." - 강재섭 대표

 

"나는 공천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한테 공천에 대해서 물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장·차관 (인사 개입) 그것도 나는 한 적이 없다. 나는 국정 개입도 한 적이 없고, 나는 (잘못이 없으니) 편안하다. 잘못했다면 내가 당연히 사과하지. 내 과거를 보면 나를 알지 않아요?" - '형님공천'으로 불출마 압박을 받고 있는 이상득 국회부의장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서민을 외면한 정책 혼선 의미가 퇴색된 개혁 공천 등에 대해서 우리 자신부터 진정으로 사과드리며 청와대와 당 지도부도 국민들께 사과할 것을 요구합니다. 형님공천 형님인사 등으로 주요 원인이 됐던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향후 일체의 국정관여 행위를 금해야 합니다." - 한나라당 수도권 공천자들 46명을 대표해 박찬숙 의원이 낭독한 내용

 

이명박 대통령이 530만표 차이로 이겼을 때 한나라당이 18대 총선에서도 과반은 물론 200석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대부분 언론들은 권력 집권 초반 6개월 정도는 허니문 기간이라 하여 새정부 출발의 부족한 부분을 비판하지 않고 조언과 격려를 해준다. 그러기에 집권 40여 일 후에 있을 총선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불거진 영어몰입교육 도입은 큰 흠집을 냈고,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장관을 검증도 되지 않았는데도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임명하여 3명이 낙마하는 정부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또한 18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벌어진 친박, 친이로 나누어진 계파갈등은 권력투쟁, 권력암투, 밀실 공천으로 인하여 '속았다', '형님공천', '불출마'만 난무하는 한나라당이 되고 말았다.

 

한나라당이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상황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난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이 발목을 잡거나, 언론의 폭로로 인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 스스로 모든 문제를 만들어냈다. 영어몰입교육, 각료인선, 공천갈등 이 모든 것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자신들이 만든 원인, 과정, 결과다. 어느 누구를 탓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 만든 위기를 서로 향하여 손가락질 하고 있다. 네가 잘못했다는 말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문제 있는 장관급 인사들 임명을 강행하거나 임명을 취소할 마음이 없다.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는 임명장도 받지 않았는데도 국정원 고위직을 교체하였고, 최시중 방통위원장 역시 임명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다.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한나라당은 이들을 문제없는 인사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자들을 임명 강행하면서 총선에서 과반을 얻겠다고 할 수 있는가?

 

민심이 어디서부터 떠났는지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정말 모르는가? 도덕성 심각한 문제가 있는 자를 임명하고, 당 내부에서는 공천을 통하여 권력암투와 투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스스로 빠져 들어갔으면서 서로를 향하여 책임지라고 외친다. 다들 자기들 책임이 아닌가?

 

책임지겠다고 한 사람은 강재섭 대표뿐이다. 하지만 총선 불출마가 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누가 속였는가? 형님만 공천받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불출마만 되면 과반수를 얻을 수 있는가? 아니 형님이 불출마해서 과반수를 얻게 된다 할지라도 지금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형태로 보면 끔찍할 정도다.

 

과반수가 안 된 상황에서도 이렇게 권력암투와 투쟁,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사람을 임명하는 이런 모습인데 과반수가 넘는 여당이 된다면 새로운 독재 시대를 열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국민은 없고, 권력투쟁만 있는 한나라당은 스스로 비극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원래 나라가 망하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다. 내부의 적이 망하게 한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리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집권 한 달 동안 보여주었던 국민을 무시하고, 안하무인격으로 보여준 행보를 고치지 않는 이상, 이번 총선에서 과반을 획득할지라도 앞날은 희망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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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는 정직한가? | 耽讀 쓴 기사 2008-03-2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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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자신은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 또 "한나라당 공천은 정당정치를 후퇴시킨 무원칙한 공천의 결정체였고 과거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해서 얻은 천금같은 기회를 날려버린 어리석은 공천"이라고 비판하면서 한나라당이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대선 후보경선 과정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 사이에 쌓여온 온갖 엉어리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발언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 발언 중 눈길을 끈 대목은,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에 어떤 도움을 줄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분들을 지원할 것은 없고 그분들은 억울한 일을 당한 분들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잘 되기를 바란다"고 한 점이다.

 

정말 무책임한 발언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정당이 만들어지는 웃지 못할 상황에서 자신은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고, 자신을 지지하다가 토사구팽당한 후보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라니. 정당 대표와 대한민국 대통령 예비후보와 대통령에 도전할 사람이 보여주는 행보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말 한나라당 공천이 잘못되었다면, 국민과 자신을 정말 속였다면 당당하게 한나라당을 탈당해야 한다. 이제 후보 등록을 나흘 앞두고(공천 마감일은 26일) 자신은 한나라당에 있으면서 당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사퇴하라고 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다.

 

특히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 문제는 누가 공천을 받고 못 받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유리하고, 불리했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이고, 우리 정치가 발전하느냐, 뒤로 후퇴하느냐에 대한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공천을 정치발전 관계에서 풀어가는 일은 맞다. 자신이 이번 공천 문제가 정치 발전을 후퇴시켰기 때문이기 당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이지, 자기를 지지했기 때문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있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억울하게 희생된 그 분들은, 당 지지도 7%를 50%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손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누빈 사람들입니다. 집권 여당과의 선거에서 40 : 0 의 신화를 만든 주역들이고10년 만에 정권교체까지 이뤄낸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공신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당을 나가도록 만들고, 그 뒤에 대고 "몇 명 나간다고 당이 안 깨진다, 은혜를 모른다"는 말까지 하는 것은 그 분들을 두 번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신들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결국 자파 계열에 섰던 인물들이 공천을 받지 못한 것을 두고 공천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분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감정을 섞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당원과 국민을 속이지 않았다. 이를 존중한다. 하지만 또 중요한 것이 있다. 자기 세력 중 공천에 탈락한 이들이 '친박연대' '무소속연대'라는 이름으로 한나라당과 지역에서 대결을 벌이는 일은 과정 정당한가? 또 그들을 향하여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고, 그들은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했다. 과연 이런 일은 정직한가?

 

공천 기준을 지키지 않는 것도 속이는 일이지만, 탈당한 자기 세력이 연대하여 정당을 만들고, 나중에 이기면 다시 한나라당으로 돌아오겠다는 것도 정직한 일이 아니다. 정말 정직한 박근혜 전 대표가 되려면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국민에게 심판을 받아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일회용 정당으로 국민을 속이려고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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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바닥에서 듣는 민심 | 耽讀 쓴 기사 2008-03-2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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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한우 농사를 짓는다. 한우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이 재개되고 있지 않지만 들어오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산 쇠고기와 경쟁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마릿수를 늘려 경쟁력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방법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어머니께서 목요일(20일) 축사 바닥에 콘크리트를 친다고 전화를 주셨다. 네가 도와주면 좋겠다는 은근한 압력인 것이다. 금요일(21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동생은 이미 축사에 가고 없었다.

 

마릿수가 조금씩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10년 동안 고생한 동생이 대견하고, 특히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거센 파도를 어떻게 이겨낼지 마음 한 구석이 막혀온다. 대견함과 답답함이 교차한다.

 

고향은 서부경남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어제 하룻동안 콘크리트 작업을 하면서 느낀 민심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함께 콘크리트 작업을 한 사람은 큰 형님, 작은 형님, 동생 장인, 동생, 나 이렇게 다섯 명이다.

 

콘크리트 작업이 힘든 일이라 당연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했다.

 

"이명박 대통령 일하는 것 보모 마음에 안든다."

"경제살린다고 찍어주었다가 아이가. 그라모 좀 잘 해야지."

"무조건 밀어붙인다고 되나."

"박정희식 밀어붙이기 경제를 지금도 한다 아이미꺼."

"그래요, 박정희식 경제체제와 지금의 경제체제는 엄청난 차이인데 무조건 밀어붙이면 되나요?"

 

"욕을 많이 들어먹어니까? 힘들기는 힘든 모양입니더?"
"얼마나 힘들었으모 20일도 안 되가꼬 6개월 정도 지난 것 같다고 했겠노?"

"노무현 전대통령이 퇴임한 날 '야! 기분좋다' 라는 말을 왜 했는지 아나?"
"니도 한 번 잘 해바라 이 말 아이가?"

"그래 누가 찍어주라고 했나. 내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상도당'이라꼬 무조건 안 찍었다."

"그것은 맞아요 찍어주고 잘 못하면 무조건 욕하는 것도 문제지요?"

 

말을 뒤섞여 나왔다. 이명막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과 답답함이 뒤섞이면서 절대적인 지지 지역도 서서히 민심 이반이 시작되고 있었다.

 

새참을 먹으면서 지역 국회의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지역은 한나라당 실세 중의 실세가 출마한 곳이다. 한나라당 경쟁이 치열한 지역이지만 유일하게 공천을 신청한 지역으로 그 만큼 경쟁자가 없을 정도다.

 

"한나라당 000는 선거를 해보나 마나 된다."

"왜 농민들이 민노당 000이를 안 찍는지 모르겠다."

"농민들 다 죽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농민들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안찍는 이유가 머꼬?"

"생각도 안 하고 무조건 찍는 거 아이가?"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지, 내는 절대로 그 사람 안 찍는다."

"되는 것은 힘들어도 30%이상만 얻어도 나중에 발언이 힘이 실릴 것인데, 정말 안타깝다 아이가?"

 

농민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가 출마를 했는데도 그를 지지하지 않는 안타까움을 그들은 토로했다.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내가 한 표 찍는다고 000가 될 수 있나 생각하지 마세요. 원래 한 표 한 표가 모여서 천 표, 만 표, 백만 표가 됩니다. 내가 찍으면 되겠나가 아니라 내가 찍으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농민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가 됩니다."

 

한나라당의 절대적인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지만 그래도 민심은 조금씩 변화고 있었다. 과연 내 고향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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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직 대통령 총선 개입 발언 적절치 않다 | 耽讀 쓴 기사 2008-03-2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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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시대가 끝났다고 하지만 아직 아닌 모양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의 부산 남구 선거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한나라당의 오만함과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22일 김덕룡 의원과 오찬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는  "한나라당이 교만한 것에 대해 국민들이 고쳐줘야 한다.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옳은 말, 정의로운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여 연일 한나라당을 맹공격하고 있다. 퇴임 이후 정치 일선에 이렇게 적극 개입한 적이 거의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직접 자신이 이번 총선에 관련된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최경환 비서관이 21일 자신의 이름으로 낸 성명에서 “김 전 대통령은 ‘당은 비리에 관련된 사람을 배제할 책임도 있지만, 억울하게 조작된 일로 희생된 사람의 한을 풀어줄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다”고 말함으로써 차남 김홍업 의원과 박지원전 비서실장이 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된 것을 두고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과연 두 전직 대통령의 발언이 적절한가? 각 당의 공천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한나라당 공천은 친이, 친박으로 나누어져 결국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무소속이나. 친박연대를 통하여 총선에 출마하는 분란을 일으켰다.

 

통합민주당은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의 대쪽 같은 기준으로 말미암아 김홍업 의원과 박지원 전비서실장, 신계륜 전의원, 김민석 최고의원, 이상수 전노동부장관 등이 고배를 마셨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서 일어났던 공천갈등을 두 전직 대통령이 강력하게 비판하고, 직접 선거사무실에 방문하여 강도높게 비난하고, 비서관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미 두 사람은 정치를 따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5년이 지났다. 자기를 따랐던 사람, 자기와 친분이 있는 사람, 동거동락을 했던 사람이 공천과정에서 배제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공천과정에 문제가 많았을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를 도왔기 때문에 떨어졌다고 의심을 살 수 있는 공천탈락자들도 있다. 개인적인 착복이 아니라 나랏일을 하다가 불법자금에 연류되었기에 억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전직 대통령들이 직접 나서서 각 정당의 공천과정을 비판하는 것은 좋은 선례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계파정치, 도덕성과 비리 전력자들이 공천을 받아서도 안 되지만, 정치 원로들이 직접 정치발언과 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2006년 가을 북한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을 했을 때 한반도가 위기국면에 빠졌을 때 김대중 전대통령이 강연과 발언을 통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 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평생을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살아왔던 분이었기에 발언에 대하여 공감하였고 지지하였다.

 

하지만 총선이나, 대선 등에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발언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 특히 김영삼전대통령의 강도높은 발언은 매우 적절하지 못하다. 군부 독재세력과 야합했던 사람이 과연 민주주의를 운운할 수 있는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선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에는 발언하지 말고, 한반도 평화와 안녕,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수구세력 도전에 대응하는 평화세력의 맏형으로 살아주시기를 원한다. 총선보다 더 큰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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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 아닌 늦둥이를 키우는 재미 | 耽讀 쓴 기사 2008-03-2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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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막내 동생의 아이 둘을 키우셨다. 제수씨가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거의 도맡아 키워주셨다. 칠 년 만에 동생네는 셋째 아이를 가졌다.

 

"옴마, 아기 낳으면 키워줄 수 있나?"

"하모! 내가 키우줄께?"

 

어머니는 막내가 딸만 둘이고 아들이 없기 때문에 셋째가 들어섰다는 것은 하늘을 나는 마음이셨다. 당신의 육신이 망가져도 키워주신다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작년 여름에 셋째 조카가 태어났다. 하지만 딸이었다. 어머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실망이 크신 눈치였다. 골다공증으로 뼈마디 마디가 망가졌고, 허리를 굽어 허리를 펴도 75도 정도 밖에 펴지 못한다. 그래도 동생네 셋째 아이를 온 몸으로 키우셨다.

 

막내네 셋째 아이를 맡아 키우다

 

마음과 몸이 하나 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께서 지난 가을 감나무에서 올라가셨다가 떨어진 이후 셋째 아이를 보는데 많이 힘들어했다. 동생과 제수씨는 마음이 번민되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어머니도 도저히 셋째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난 해 낙상 이후 척추가 무너지기 시작하여 이제 세 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통증을 연일 호소했다. 병원을 그토록 가지 않겠다는 당신께서는 스스로 병원 행을 탁하시기로 하신 것이다. 결국 수술을 했고, 통증을 가라앉았다.

 

그럼 셋째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제수씨가 회사를 그만 둘 수도 없고, 어디다 맡길 곳도 합당치 않았다. 동생과 제수씨는 고민에 고민을 했다. 지난 1월 16일 경기도 구리에 계시는 목사님 가정을 방문하기 위하여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전화가 왔다. 제수씨였다. 아내와 제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형님, 예설이 돌볼 수 있서예?"

"그래 동서 내가 보살펴 줄게."

"형님께 괜히 부담 주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더."

"부담은 무슨 부담. 지금 구리 올라가니까? 이번 주는 안 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때 데리고 오지."

 

동생네 셋째 아이를 우리는 이렇게 돌봐주게 되었다. 아내도 돌봐준다고 했지만 8년 만에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 여간 부담스러운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침마다 집은 분주했다. 어머니 집에서 우리 집까지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예설이는 새벽녘에 엄마와 함께 일어나 큰 엄마 큰 아빠 집에 온다.

 

사촌오빠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예설이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모든 사랑을 독차지 했던 막내가 자기 사랑을 빼앗아버린 예설이의 몸을 꼬집고, 누워있는 아이를 뒤집어 버리고, 머리를 눌렀다. 입학 전이라 선교원에 다녔는데 선교원에도 가지 않겠다고 우겼다. 예설이를 용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는 아이를 깨워 울리고 나서 하는 말은 이렇다.

 

"엄마, 예설이가 일어났어요!"

"네가 꼬집었잖아!"

"아니에요! 자기가 일어났어요."

 

엄마가 옆에서 지켜보았는데도 예설이가 스스로 일어났다고 우기는 모습을 보면서 한 편으로 마음이 짠했다. 자기 사랑을 다 빼앗아버린 예설이가 얼마나 자기 마음에는 미웠겠는가? 두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용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예설이 이 녀석도 재미있는 반응을 보인다. 그 반응이 용심인지 모르겠지만 오빠와 언니들이 돌아오는 오후 시간은 아예 잠을 자지 않는다. 오전에는 잠을 잘 자지만. 아내가 쓴 육아일기를 보자.

 

"강적 라이벌! 오빠가 선교원 갔다 오는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큰 엄마, 큰 아빠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눈치 백단 김예설! 너도 오빠를 이해해야 한단다. 그동안 체헌이(막내) 오빠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는지 아니! 오빠의 자리를 지금 네가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오빠가 네게 심술을 부리는 거란다. 오빠도 네가 제일 예쁘다고 하더라." (2008년 2월 16일)

 

아이 '넷' 데리고 다니는 우리 부부

 

우리 집 식구가 다섯 명이다. 우리 집 자가용이 프라이드다. 1995년 7월 산, '스리 도어 차'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타고 다니는데 불편이 없었지만, 우리 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3학년, 1학년이 되니까 좁아 불편했다. 예설이 까지 데리고 타면 여간 좁은 것이 아니다.

 

예설을 돌봐주기 시작하면서 재미있는 일이 많아졌다. 우선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가면 주유직원들이 웃는다. 프라이드 타고 다니면서 아이가 넷이니 자기들도 얼마나 우습겠는가? 시장을 보러 가면 사람들은 다 쳐다본다. 네 명의 아이들.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광경이다.

 

한번은 은행에 들를 일이 있어 갔다. 아이 네 명을 데리고 갔는데 지점장이 우리 가족을 보고 재미있고, 대견했던지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과자와 우리에게는 작은 손가방 세 개, 수건 세 개를 선물로 주셨다. 앞으로 아이들 잘 키우라고 하시면서. 예설 때문에 좋은 선물도 받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작은 거짓말을 한 셈이다. 업혀 있는 녀석이 조카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가족은 예설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정말 정이 많이 들었다. 어느 날 아내가 불쑥 말했다.

 

"여보 오늘 예설이 때문에 좀 섭섭했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내가 안고 있었는데 자기 엄마를 보자마자 나를 밀쳐내고 자기 엄마에 갔어요. 그리고 집에 갈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어요. 그 때 묘한 느낌이 들면서 섭섭했어요?"

 

그날  아내가 쓴 '예설이 육아일기'를 보았다.

 

"오늘은 예설이가 엄마를 따라 갈 때 서운함을 느꼈다. 큰 엄마가 아무리 예뻐해도. 엄마가 제일 좋지?"(2월 13일)

 

우리 집에 와서 예설이는 조금씩 자랐다. 배밀이, 손잡고 앉기, 스스로 앉기, 손잡고 일어서기, 아랫니 나기 등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설이는 요즘 큰 아빠와 큰 엄마가 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면 무조건 운다.

 

분유를 먹이는 일을 자주한다. 큰 아빠가 누워있으면 기어오른다. 얼굴을 만지고, 꼬집는다.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예설이 부터 찾는다. 곤히 자는 아이를 무조건 만지고 깨운다. 자다가 일어나면 얼마나 짜증나겠는가? 그리고 집안은 온통 예설이 울음소리다.

 

막내 동생 아이가 예설이 위에 둘이다. 그 둘은 그냥 조카려니 하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예설이를 두 달 정도 키워주고 나니 정이 많이 들었다. 조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한 번씩 튀어나오는 말이 "예설아 엄마다. 아빠다!"라고 한다. 그런 말을 하고 나서 아내와 나는 서로 쳐다보고 웃는다. 늦둥이가 예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늦둥이 아닌 늦둥이를 키우면서 우리 다섯 가족, 아니 여섯 가족은 오늘도 예설이 때문에 집안에 웃음과 울음이 넘친다.

 

'예설아 건강하고 자라고, 정직과 의, 거룩함과 정의, 평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면서, 이루면서 살아가기를 큰 아빠, 큰 엄마, 인헌이 오빠, 서헌이 언니, 체헌이 오빠는 원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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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금융사기 | 耽讀 쓴 기사 2008-03-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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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금융감독원·국세청·은행 등을 사칭하는 금융사기 사건을 뉴스로 많이 접했다. 이 모든 일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얼마 전 '우체국 등기'가 반송되었다는 ARS 전화를 받았다. 우체국 택배와 등기는 원래 ARS를 통하여 안내하지 않고 직접 배송한다. 아내도 이를 미심쩍게 생각하여 그냥 끊었다.

 

하지만 오늘(17일) 오후 5시 30분경 전화가 왔다. 우체국인데 '우체국 소포'가 반송되었다고 했다.

 

"우편물 반송물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0번'을 누르세요."

 

0번을 눌렀다.

 

"우편물이 반송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누구누구 맞습니까?"

"예, 그런데 어디서 보낸 우편물입니까?"

"예, '서울지방경찰청지능수사팀'입니다. 내용물은 저희가 확인할 수 없으니까 내용물 확인을 위하여 서울지방경찰청에 팩스로 보내겠습니다. 휴대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서울경찰청에서 전화를 주실 것입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서울지방경찰청지능수사팀입니다. 누구 되시죠. '○○○씨'를 아십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선생님께서 3억7천만원 사기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기를 칠 수 있습니까?"

"그럼 한 가지 묻겠습니다. 혹시 신분증과 통장을 분실한 적이 있습니까?"

 

작년 추석 연휴 때 집에 도둑이 들어 통장과 신용카드를 분실한 사실이 생각났다.

 

"예 작년 추석 연휴 기간에 잃어버렸습니다."

"지금부터 신분 확인을 위한 조사를 하고자 하오니 거짓없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거짓이 판명되면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농협 BC카드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른 통장과 카드는 있습니까?"

"예, ○○은행 ○○카드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사기를 당하신 것은 지난번 분실 사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은 선생님 통장으로 돈세탁을 하였습니다. 잠시 후 금융감독원 직원이 전화를 주실 것입니다. 혹시 농협은행이 가까이 있습니까?"

"예 5분 거리에 있습니다."

"현금지급기에 가서 저희가 알려주는대로 하셔야 피해를 보지 않습니다."

 

정신이 혼미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내와 함께 갔다. 휴대전화가 왔다.

 

"지금부터 현금지급기까지 갈 동안 절대로 전화를 끊으면 안 됩니다."

 

시간은 오후 6시를 넘기고 있었다. 현금지급기에 도착했다.

 

"현금지급기에 도착했습니다."

"통장을 넣어주십시오."

"예, 통장 넣었습니다."

"계좌이체 버튼을 누르시기 바랍니다."

"계좌은행 중 '기타' 버튼을 누르시기 바랍니다."

"예, 눌렀습니다."

"화면에 무엇이 뜹니까?"


화면에 '공무원 사칭 금융사기 조심'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예, 공무원 사칭 금융사기 조심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예, 비밀 번호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눌렀습니다."

"선생님이 돌려받을 돈을 위하여 출금될 계좌번호를 불러 주겠습니다. '○○-○○-○○○-○○○'입니다.

"선생님이 받으실 금액이 95만원입니다. '95'와 '만'을 누르시기 바랍니다.


눌렀다. 그런데 거래할 수 없는 통장계좌번호라고 했다.

 

"거래할 수 없다는 문구가 계속 뜹니다."

"뭐라고요. 혹시 '농협중앙회' 통장인지 '단위농협'통장인지 모르시나요. 다시 계좌번호를 불러주겠습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을 해도 되지 않았다.

 

"그럼 내일 다시 전화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 옆에 있던 아저씨 한 분이 '혹시 금융사기 아닙니까'했지만 아내와 나는 금융사기가 아니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불안했다. 내 통장으로 돈세탁이 일어나서 3억7천만원이나 배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잠깐 생각하니까, 혹시 내가 금융사기를 당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웹사이트에 들어가니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이 공무원사칭 금융사기 조심이었다.

 

112에 전화를 했다. 경찰관이 하는 말이 금융사기 가능성이 있으니까 은행에 문의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금융사기인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그중에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우체국 소포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공기관에서 보내는 모든 공문을 서류로 보내지 ARS로 보내지 않음을 알았다. 금융사기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완벽하게 넘어간 것이다.

 

그럼 제일 빨리할 일은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갔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돈이 인출되지 않았다. 거래정지를 위하여 전화를 했다. 농협도 금융사기가 맞다고 했다. 그런데 돈이 인출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비밀번호를 잘못 눌렸던 것이다. 비밀번호를 잘못 눌렸으니까 거래승인이 되지 않았다. 또 하나는 금융사기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카드 결제를 위하여 개설한 입출금이 자유로운 통장이었다. 오늘 현금지급기에서 끊임없이 눌렀던 통장은 적립식 통장이었다. 적립식 통장은 통장 개설자가 가지 않으면 출금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돈이 출금되지 않았던 것이다.

 

돈 사기는 당하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넘어간 금융사기 경험이었다. 완벽하게 넘어갈 수밖에 없도록 그들은 나를 속였다. 아니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우체국은 ARS를 통보하지 않는 것, 유선전화를 통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 돈세탁, 통장에는 전혀 거래가 없었는데 내 통장으로 돈세탁이 이루어졌다는 것, 계좌이체가 계속 에러가 난 것.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한 것이다.

 

우체국 택배는 절대로 ARS를 통하여 발송과 반송을 알려주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 기관과 은행은 휴대전화와 현금지급기를 통하여 계좌이체를 하지 않는다. 이것을 안 다면 금융사기는 당하지 않는다. 나는 당했다. 하지만 비밀번호와 적립식 통장 때문에 피해는 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고 아찔하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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