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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진리의 영역인가 | 정치 2008-03-1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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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치와 진리

김선욱 저
책세상 | 200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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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의도는 '공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 중에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사람도 있다. 청와대와 정부 각료는 연일 지난 정부 코드로 임명된 기관장들은 빨리 퇴임하라고 압박을 넘어 협박까지 하고 있다. '정치'가 무엇이기에.


 

이 정치에 대해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있다. "정치는 진리의 영역인가?"라는  당돌하고 과격한 질문을 던진 이는 김선욱이다. 김선욱은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정치사상을 연구해온 소장 철학자로 다원주의·담화윤리·소통 개념·기독교와 정치 등을 주제론 한 논문을 통하여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김선욱은 <정치와 진리>에서 아렌트의 학문적 성과를 기반으로 '정치는 진리의 영역인가,' '정치와 진리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주제로 하여 정치란 무엇이며, 정치가 배태시킨 권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정치권력이 사회적 합의를 어길 때 인민을 넘어 시민이 어떻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짧고 명료하게 썼다.


 


원래 '진리'란 종교와 철학이 든지는 질문이며 답할 수 있는 영역이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은 존경 받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기에 정치와 진리를 연관시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선욱은 플라톤이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왕이 되거나, 통치자가 이미 있을 경우 이 통치자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에 따라 철학자란 진리를 아는 사람이기에 전혀 타당성이 없지는 않다고 본다.


 


이 타당성은 현실에서 얼마나 적용이 가능할까? 이상과 소박한 소망에는 가능하지만 당리 당략, 일신의 이익, 지역주의를 통한 정치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현 정치현실에서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고 말한다.


 


사실 정치 진리 영역이 아닌 것이 더 낫다. 이유는 정치가 진리라면 절대적이며,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진리와 맞물려 이기주의·지역주의·인기주의 그 사회에 적용된다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에서 자기 당, 철학에 맞지 않을 경우 일어난 비극은 많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와 진리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답을 얻어야 한다.


 


"정치 현상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이란, 정치는 인간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함께 모여 공동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정치는 발생한다."(본문 21쪽)


 


동물 세계에서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물리적 힘과 욕구에서 나오는 갈등, 싸워서 이기고 자신의 욕구를 실현해가기 때문에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세계도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동물과 달리 물리적 힘과 욕구만이 아니라 말로써 행동을 조절하는 행동을 한다. 이것이 정치다. 동물은 힘이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지만 사람은 인간은 개체로서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면서 해결한다. 이것이 정치다.


 


또한 인간은 '복수(複數)'다. 한 개체, 한 개체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정치가 가지는 중요한 특징이다. 복수 인간이 다양성을 통하여 정치 행위를 하는데 이를 배격하고, 개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정치적 이해 관계를 위해 자신의 상전에게 봉사하는 사람을 '주구(走狗)'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곧 동물이라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누구됨'의 차이가 어떤 특정한 상황에 서는 잘 기능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구됨' 자체는 그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무엇됨'을 중심으로만 인간을 보는 것은 인간을 기능 중심으로 보는 것이며, 이는 인간의 가장 고유한 부분을 무시하는 것이다." (본문 26쪽)


 


우리나라 정치 현실은 다양성과 개체성을 배격하고, 정치 행위자가 각자의 정치 행위 자체를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배제시키는 일을 자주 본다. 당론이 그 당의 정치철학과 정강과 다른데도 외부적 요인 때문에 각 정치 행위자를 당론으로 제약시키는 일이 있다. 그러므로 김선욱의 주장은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향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다양한 언어행위를 통하여 토론의 장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의견 개진이 없는 현실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럼 정치는 말의 잔치가 아닌가? 이것은 정치를 말하는 가장 기본이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먼 정치를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마을 회관을 건축할 때, 핵을 가지고 논의할 때,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다양한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인 정치적인 행위가 된다면 복잡하고 쉽게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정치적이라는 것은 객관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사실을 각자의 철학을 통하여 말하고 묻고 논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공론의 장에서 펼쳐야 한다. 우리는 이승만 독재, 군부 독재 시대에 밀실에서 이루어졌던 사적인 정치행위를 많이 보았다. 사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정치 행위를 우리는 논쟁과 토론을 통하여 공론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회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는 서로 다른 문제로 사안별로 구분되는 것이기보다는 공적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문제가 갖는 두 측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53쪽)


 


이 공론화를 위해서 시민 사회가 필요하다. 시민 사회는 다양한 방면에서 정치의 진보와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정치는 복수로 존재하는 인간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장이다. 시민은 연대하여 공동행위를 해야 한다. 이 공동 행위가 바로 진정한 권력의 근원이며, 법의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고 한다.


 


이미 정치보다는 경제에 예속되어버린 시대이지만 정치란 인간 객체가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통하여 논쟁과 토론, 합의를 이끌어내는 공론화를 통하여 사람이 사람다움을 발견해 가는 과정으로 다시 한 번 반추할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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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있는 여성이 되세요 | 경제 2008-03-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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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이지성 저
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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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림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되고, 어떻게 당신이 읽어줄지 궁금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만날 되풀이 할 수 없는 일이고, 아이들 이야기를 우리 사이에 자꾸만 개입시킬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럴 때 한 번씩 책이라는 3자를 당신과 나 사이에 개입시켜 함께 나누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독후감이란 형식의 편지는 감정만이 아니라 이성(理性)을 통하여 서로를 더욱 깊게 만들 수 있습니다. 편지 내용이 꼭 사랑만 담을 이유가 전혀 없지요. 사랑만 있는 편지는 조금 식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책을 통한 이성 교감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올 11월에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후세인 오바마 후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입니다. 2월 4일 슈퍼 화요일에서 서로 박빙 승부를 펼쳐지만 그 후 경선에서는 오바마 민주당 경선 후보가 앞서가는 상황이지만 힐러리 후보가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힐러리 후보가 누구인지 아시지요. '힐러리 클린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인이었지요.

만약 힐러리 상원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되며 남편과 함께 대통령이 되는 역사를 이룩하게 됩니다. 역사가 과연 이루어질지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힐러리 상원의원을 대상으로 지은 책이 나왔는데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입니다.

힐러리 상원의원 자서전이나 미국 사람이 지은 책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인 이지성이란 분이 쓴 책입니다. 남자들이 읽기에는 약간 거북한 점이 많답니다. 특히 나 같은 보수적인 생각이 강한 사람이 읽어가기에 여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왕 접한 것 당신과 나누기로 했으니 이렇게 글을 씁니다.

힐러리 상원의원은 자신을 굉장히 존중했던 사람입니다. 자존감을 가진 당당한 사람, 여성으로 살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라가지만 힐러리 상원의원은 자신의 본래 성인 ‘힐러리 다이앤 로댐’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합니다.

최초의 미국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상원의원 이름은 이제 힐러리 클린턴이지만 여성으로서 자신의 자존감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은 강한 자존감을 가진 힐러리 상원의원의 어떻게 성공한 삶을 살았는지를 14가지로 정리한 자기계발서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단어 중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당신은 내가 ‘성공’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님을 당신도 잘 알 것입니다. 성공한 힐러리이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따라야 한다고 설득해가는 저자의 필력에는 그리 동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인간, 여성으로서 자신을 귀하게 여겼던 힐러리는 나와 당신이 한 번 반추할 필요가 있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조심스럽게 가르칠 필요가 있기에 당신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를 쓴 글쓴이는 힐러리의 이기는 생각, 이기는 신념에 주목합니다. 자본주의와 경쟁 사회에서 이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지요 생각한대로 된다고. 꿈과 비전을 어떻게 세우는가에 따라 그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칩니다. 많은 사람들도 동의합니다. 힐러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최고로 일을 잘할 수 있다” 신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불신하면서 떳떳하거나 성공한 삶, 꿈을 이루는 삶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이런 신념도 준비된 삶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준비하지 않고 꿈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럼 준비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힐러리 상원의원의 좌우명처럼 "계획을 세우는 데 실패하는 것은 실패하려고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철저한 계획, 그 계획을 위한 다른 세부 계획도 짜야 합니다.

계획 없이 섣부른 실천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습니다. 내가 이런 일에 부족합니다. 힐러리 상원의원 좌우면이 이런 면을 강조하고 있기에 나에게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로 잘할 수 있다는 신념은 오만하게 읽혀질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는 일도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모든 삶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힐러리 상원의원의 이런 도전은 반추할 필요가 있지요.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이 나에게 부족한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열악합니다. 환경이 열악하면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지요. 최고가 반드시 물질과 권력만은 아닙니다. 처한 환경을 탓하지 말고 도전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 노력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이런 힐러리 상원의원을 두고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힐러리 같은 아내는 싫지만 딸은 힐러리처럼 키우고 싶다”

우리나라 남자도 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 남자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남자들 중에서도 의외로 다른 여성들 지위향상을 위해서는 노력해도 자기 아내만은 현모양처가 되기를 은근히 원합니다. 나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요. 우리 서헌이가 자신과 사회, 직장에서 당당한 여성으로 자라기를 원하지만 왠지 당신은 나에게 현모양처가 되기를 원하는 것을 사실 숨길 수 없습니다.

힐러리 상원의원은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그 문제를 해결하여 자신의 역량을 넓히는 기회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예기치 못한 일이 우리 앞에 닥쳤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보험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한 철저하게 준비해 놓는 것이다.”

사실 우리 시대는 예기치 않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준비된 사람이 일을 할 수 있으며 성공할 수 있습니다. 준비 없이 성공한 삶만 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준비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나에게 적합한 말입니다. 준비하지 않고, 어정쩡한 상황, 성급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 때문에 당신도 당황하고, 주위 사람들도 힘들어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에서 능력 있는 여성이 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삶의 긍정적인 자세를 이렇게 말합니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두려움을 가져라’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워라’ ‘일보다 가정을 중요시하라.’

삶에 대한 긍정, 큰 꿈은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지만 세 번째 일보다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것은 조금 의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가정이 불안한데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가장 작은 공동체도 바로 세우지 못한 사람이 더 큰 공동체에서 성공할 수 없지요. 인간은 결국 공동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독서입니다. 텔레비전을 볼 시간에 책을 읽으라, 책을 읽고 나서 토론을 하라, 책 쓴이와 만나는 기회를 자주 가져라, 10대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라, 하나의 사건에 관련된 모든 입장을 알려고 노력하라는 말은 굉장히 좋은 말이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나도 책은 조금 읽는 사람이지만 토론과 책 쓴 이와 만나는 일은 그의 하지 못하지요.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인터넷이 갇혀버린 우리 시대입니다. 눈과 감정은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머리와 이성은 갈수록 퇴보하고 있습니다. 지식 홍수, 정보 홍수 시대이지만 정작 그 지식과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적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지적 능력은 책을 통하여 얻어집니다. 독서를 하는 이유도 단순히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특히 책을 읽고 나서 토론을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가 읽은 책 내용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어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깨달은 내용이 다르며, 토론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읽고 느낀 생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 권을 읽고 열 명이 토론을 하면 열권을 읽은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새로운 생각을 토론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기는 습관, 신념 등등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독서법이 나에게 가장 와 닿았습니다. 원래 사람이 성공과는 그리 가까운 사람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면에서 힐러리는 최고와 어울리라는 말에는 답답함과 부담스러움 때문에 읽기 거북한 느끼마져 들었습니다. 최고가 무엇을 뜻할까요? 성공한 사람 아닐까요? 최고는 좋은 목표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사실 최고만 우리 삶을 사람답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한 최고가 반드시 진정한 사람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진정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기는 습관, 신념, 왕성한 활동, 최고의 여성이 된 힐러리 상원의원에게는 이런 면에서 반대파가 많다는 생각이 든 이유입니다. 조금 모자람도 필요한 것 아닐까요?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은 여성이 자존감과 존재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일이 매우 긍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뚜렷한 목적과 방향, 큰 꿈을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그저 남편과 남자들이 만들어준 가정과 사회, 직장에서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라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서 여성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이 책을 적극적으로 권할지 모르겠습니다. 딸들에게는 읽으라 하겠지만 아내에게는 나서서 읽으라는 남편이 얼마나 많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아무 그런 남편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단순히 최고로 성공한 힐러리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말 사랑한 힐러리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힐러리 상원의원이 대통령 부인, 어쩌면 대통령 힐러리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말 사랑한 사람으로 존경해야하지 않을까요? 그가 이번에 대통령이 되지 못해도 말입니다.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자기를 존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세속적 성공보다 더 중요합니다. 자신을 비하시키는 일만큼 불행한 일은 없지요. 당신을 존중하는 마음, 자존감은 가장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자존감을 세우는 일에 나도 일조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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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와 끼리-남성 지배문화 벗기기 | 사회 2008-03-0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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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따로와 끼리

정유성
책세상 | 200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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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다. 특히 사람의 위기다. 그리고 남성의 위기다. '남자다움'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남성들은 지금도 짓눌려 산다. 조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곳곳에 남아있는 남자다움, 곧 가부장성은 우리 사회의 천민자본주의와 뒤섞여 남성중심적 지배가 나은 폐해는 심각하다.


 


정유성은 <따로와 끼리-남성 지배문화 벗기기>에서 이 사실을 적나라하게 썼다. 남성지배문화라면 남성이 삶을 지배하고, 기득권을 가져 자신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성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지만 빛깔좋은 개살구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이 모순, 가부장성은 남아있으면서 안은 무너져버린 이 모순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방안은 있을 것이다. 정유성은 "먼저 사람과 삶의 모습을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삶터를 망가뜨리고 부순, 그러면서 그들 스스로도 파괴되고 있는 남성의 존재성을 되짚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정유성은 판단하는 남성 지배문화의 폐해는 한마디로 '따로와 끼리', '가름과 나눔'의 문화로 우리 사회의 학연, 혈연, 지연, 남성 중심 성문화도 '따로와 끼리', '가름과 나눔'의 문화에서 파생된 것을 '사생아'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새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학연이라는 끼리, 지역이라는 끼리, 친분이라는 끼리를 통하여 각료가 인선되는 것을 많이 본다.


 


이런 문화는 천민자본주의와 결탁하면서 빨리, 압축, 모방, 서두름 등으로 표현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 공동체성은 온데간데 없고 파편화된 개인주의, 패거리주의가 공동체인양 왜곡되는 사람은 없고, 집단만 존재하는 배타적 패거리 짓기만 남게 되었다.


 


이런 반문화적이고, 남성지배문화는 "반생명적이고, 반자연적이며, 반공동체적이 반사회적인 동시에 반인간적, 반역사적인 속성을 갖는다. 이는 사회를 어지럽히고 그 구성원들을 질곡으로 몰아넣는 사람답지 못한 잘못과 모자람의 시작이다."(26쪽)


 


능력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기력한 사람, 사람관계를 파편화, 도구화시키는 것, 인민과 시민은 없고, 국민 아니 백성을 만든 사회, '나'라는 개인은 없고 가족만 있는 사회, 물질화된 사람을 만든 것은 바로 이 문화 때문이다.


 


주목할점은 이런 문화를 양성한 자가 누구인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장본인은 바로 가족에서 민족까지 아우르는 단일한 '동일자(同一者)'다. 이들은 위계에 따라 서열화되는 경직된 단일 주체로 독점과 지배를 도맡아온 권력지향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 어른, 중산층이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미분화된 객체로 삼고 타자화하는 '따로와 끼리'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출판사리뷰)


 


사실 조선 역사를 보면 양반 기득권 세력이 가부장성을 배태시킨 장본인들이다. 여성이 국가권력과 사회권력에 진출하는 것 자체를 막은 자들이 양반지배세력들이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여성은 자수성가하는 자가 아니면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


 


그럼 반사회, 반인간, 반역사, 반자연, 반생명적인 문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는 남성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때 가능하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 말처럼 남성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이 정유성 생각이다.


 


만들어진다는 것은 이미 틀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틀은 곧 가부장성, 남성다움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자라면서 남자 아이는 가부장성과 남성다움이라는 틀에 박혀 배우게 된다. 정유성은 "여자 아이는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라는 '인격적 동일시personal identification'를 성 정체성을 얻을 수 있지만 남자 아이들은 추상적이고 간접적인 '위치적 동일시positional identification'를 통해 남성의 성 정체성을 배운다"(45쪽)고 말한다.


 


이렇게 배운 남성 성 정체성은 인격과 사이를 통한 배려와 나눔, 섬김보다는 남성끼리 경쟁, 여성을 비하시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끊임없는 경쟁은 파괴를 낳게 되고, 여성을 비하하여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폭력을 낳을 수밖에 없다.


 


남성지배문화가 나은 병폐는 많다. 이 지배문화에서 소외되고 정체성을 상실한 남성들은 변질된 모습으로 남성지배문화를 지켜나가려고 한다. 그 예의 하나가 바로 남성 중심 성문화로 남성중심성문화는 사회적 지배를 튼튼히 하고 문화적 남성우월주의라는 환상을 서로에게 심어주는 남성지배문화의 상징이라고 정유성은 말한다.


 


성기 비교, 성경험 자랑과 같은 남성들 사이에서 과장된 자랑은 쉽게 드러난다. 이런 성적 담론은 여성들의 생명력에 대한 그들의 거듭된 무기력감, 열패감의 '투사기제projektionsmechanismus'로 변질되어 남성지배담론은 '성신화'를 만들었다. 성적 콤플렉스, 성적 능력 과시, 성 상품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남성과 남성, 여성과의 관계까지 파괴시켰다.


 


"결국 물화된 성성을 남성 성문화의 중심으로 삼고, 남성성을 지키는 남성 지배문화 담론으로까지 부풀렸다가 성문화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여성들과의 관계, 남성들끼리의 관계, 심지어 스스로와의 관계마저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61쪽)


 


극복할 길은 있는가? 남성지배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남성지배성문화다. 영계문화, 원조문화가 하나의 반증으로 아버지 뻘 되는 이들이 딸같은 아이들과 관계를 가지는 것을 겉으로는 비판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남성들 스스로 나서는 것이 없음을 정유성은 지적한다. 성평등과 건강한 성문화를 만드는 일에 적극 참여함으로 문제 해결은 첫 발을 내딛는다.


 


또, '뒤집어 보기'다. 우리는 현실, 전통,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 것에 익숙하다. 원칙과 추상 뒤에 숨어 살아왔다. 이제 이를 뒤집어 보아야 한다.


 


'다르게 느끼기'다. 틀과 만들어진 느낌에 적응하는 것이 쉽고, 친숙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잃어버린 느낌을 다시 찾아야 한다. 나와 다른 환경에 살면서, 정리해고, 가난, 배우지 못함 때문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보고 눈물과 괴로움에 민감해져야 한다.


 


'이어보기'다. 우리 삶이 아주 커다란 생명 나무에서 여러 생명들과 촘촘히 얽힌 채 이어지듯이 좀더 맥락을 잡고, 이어지고 얽힌 매듭을 짚는 이어보기가 필요하다.


 


책을 읽다보면 남성으로서 죄인 취급받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조금만 열린 생각과 만들어진 성문화가 아니라 여성을 생각하고, 따로와 끼리에서 벗어나는 나눔과 섬김의 문화 창조만이 남성인 나 자신까지 다시 회복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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