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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3) |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2009-05-3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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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의롭다 하심에 관하여

제23주일


59문: 이 모든 것을 믿는 것이

      당신에게 지금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며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됩니다.


60문: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됩니까?


  답: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만 됩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크게 어겼고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며

         여전히 모든 악으로 향하는 성향이 있다고

         나의 양심이 고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히 은혜로

         그리스도의 온전히 만족케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나에게 죄가 전혀 없고

         또한 내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실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내가 직접 이룬 것처럼

         여겨 주십니다.

      오직 믿는 마음으로만

         나는 이 선물을 받습니다.


61문: 당신은 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까?


  답: 나의 믿음에 어떤 가치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실 만한 것은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의 만족케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만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가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이 의를 받아들여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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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이제 칼을 뽑을 때가 된 듯...". | 耽讀 쓴 기사 2009-05-3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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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가 29일 밤 자신의 블로그에 '이제 칼을 뽑을 때가 된 듯.... '이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진 교수는 "그 동안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그냥 무시해 버렸지"만 이번에는 "공격이 권력을 끼고 들어왔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권력 실체는 밝히지 않았다.

 

이제 칼을 뽑을 때가 된 듯....

그 동안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그냥 무시해 버렸지요.  억울한 오해를 받아도  대중의 오해를 허락하는 것이 제 성격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번엔 공격이 권력을 끼고 들어왔습니다. 무슨 협의회 어쩌구하는 인터넷 양아치들은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되지만, 그 배후에 어른거리는 권력은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지요. 들려오는 소리도 심상치 않고...  위험한 싸움을 시작하는 셈인데, 일단 싸움을 하기 위해 주변을 좀 정리했습니다. 나 자신을 방어하는 싸움은 그 동안 해 본 적이 없어 익숙하지도 않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변명해야 하는 구차함도 마음에 안 들고.... 별로 내키는 싸움도 아니지만... 가끔은 피할 수는 없는 싸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칼을 뽑지요.   

그는 "나 자신을 방어하는 싸움은 그 동안 해 본 적이 없어 익숙하지도 않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변명해야 하는 구차함도 마음에 안 들고...별로 내키는 싸움도 아니지만"이라면서도 " "가끔은 피할 수는 없는 싸움도 있다, 이제 칼을 뽑지요"라고 했다.

 

진중권 교수 글에는 31일 오전 9시 현재 610개 넘는 댓글이 달렸을 정도로 누리꾼들 반응이 뜨겁다.

 

진 교수의 모든 발언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자신있으십니까'는 "이번 만큼은 진 교수님 편을 들어주고 싶다"면서 "정말 칼을 뽑을 자신 있으십니까?"고 물었다. 그는 "상대는 기득권에 뱀의 혀를 가진 이들"이라며 자신없으면 아예 칼을 다시 꽂아 넣으시고, 자신 있으시면 어떤 것에도 굴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고 했다.  

 

'데미안'은 "뒤에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아시고 부디 현명하고 무사히 위기를 넘기시기를 바랍니다. 또다른 한사람을 보낼 수 없기도 하지만 개인의 몸이 아니시라는 걸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하나의 상징이며 방향성의 지표입니다."라고 했다.

 

일부 진 교수를 비판하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의 댓글은 진 교수가 진정성과 어떤 압력과 불의에도 굴하지 않고, 싸움을 한 다면 멀리 외국에서 뿐만 아니라 함께 이 싸움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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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도 국민장 | 耽讀 쓴 기사 2009-05-2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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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바보 노무현'을 심장에서 타고 흐르는 눈물로 보내고 있다. 상록수를 부르고, 솔아솔아를 부르고, '잊지 않겠습니다. 미안합니다'를 외치면서 바보 노무현을 보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모였는지 노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시청앞 광장에서 1시50분께 출발해서 1시간이 훌쩍 넘은 3시가 넘어서야 서울역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추모 물결이다.

 

봉하 마을과 서울광장, 서울역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듯이 인터넷도 '국민장'을 애도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업체 엔씨소프트는 2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13개 게임 서비스를 중지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7시간 동안 게임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누리꾼들이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빠른 속도와 빈틈없는 서비스를 원하고 있는다는 것음 감안하면 엔씨소프트로서는 대단한 결정이다.

 

특히 게임을 통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게임업체가 7시간 동안 서비스를 중지하면 수익에서도 많은 손해를 볼 것인데 서비스를 7시간 동안 중단한 것은 게임업체가 그 만큼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업체 뿐만 아니라 네이트와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도 29일 0시부터 자정까지 24시간 동안 메인 화면에 광고를 없앴다. 광고를 없앤 자리에는 노 전 대통령 사진과 함께 연설과 생전 좋아했던 음악을 내보내고 있다

 

 

네이버도 배너 광고를 없앴다. 없앤 자리에는 추모글을 남기도록 했다. 네이버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다른 포털업체보다 로고 색깔을 검은색으로 바꾸고 애도 메시지를 올리는 것이 늦어 비판을 받았지만 국민장을 하는 날 파격 메인 편집을 한 것이 새롭다. 

 

 

온라인 게임 업체와 포털뿐만 아니라 누리꾼들도 한 푼 두 푼 모아 종이신문에 광고를 냈다. <한겨레> 29일자 1면 '베이스볼파크' 회원 일동의 광고를 시작으로 28면 "바보 노무현!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전면 광고까지 총 13면이 노 전 대통령 추모 광고였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든 공간에서 눈물과 물질을 통하여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바보 노무현'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또 다른 바보 노무현이 나타나 대한민국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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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한민국에게 침을 뱉었다고? | 耽讀 쓴 기사 2009-05-2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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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를 하려는 순간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하라" "정치보복이다" "무슨 자격으로 헌화합니까"고 소리를 질렀다. 이 소동을 본 조갑제 월간 조선 전 대표가  자신의 홈페이지 <조갑제 닷컴>에 '장례식에 대통령을 야유한 인간들'이란 글을 올려 백 의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 전 대표는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추태를 부린 사람들은 나라와 자신뿐 아니라 상주와 국민들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백 의원 행동이 영결식에서 조금 과한 행동으로 볼 수 있지만 과연 조갑제 전 대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다.

 

조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호칭한 일이 제대로 있는가? 항상 노무현씨는 점잖은 표현이다. 노 전 대통령을 '노씨'로 부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호칭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비난했다. 정당한 비판은 없고, 감정와 미움이 배인 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단어을 선택하여 비난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 국민에게 침을 뱉은 것이라면 <조선일보>와 보수 언론, 보수 세력이 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침 뱉은 일이 아닌가? 5년 동안 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제대로 인정한 일이 있는가?

 

한 번 따져 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탄핵했던 이들이 바로 조갑제씨와 같은 세력들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탄핵 당한 이유를 만약 이명박 대통령에게 적용하면 어떻게될까? 진짜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을 숙명과 운명으로 생각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했던 그 기준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판단해 보아야 한다.

 

조갑제 대표는 이어 "세계언론이 지켜보는 장례식에서 자기 나라 대통령에게 욕설을 하면 선거에 유리해지나?"면서 "이런 사람, 이런 집단에게 정권을 넘겨줄 정도로 한국인들은 아직 충분히 어리석지 않다"고 했다.

 

여기서 본심이 나온다. 결국 정권이다. 이명박 정권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어리석과 파렴치한 악의 무리들이 대한민국 정권을 다시 찾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이후 또 다시 보수(수구)정권이 대한민국을 지배하여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세토록 이어나가를 바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진짜 어리석과 파렴치한 무리들이 누구인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진짜 사랑하는 무리들이 누구인지 한 번 따져보자. 노 전 대통령과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인가? 그의 죽음까지 비하하고, 비난하는 세력들인가?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삶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이 나라는 교양 없는 인간들이 권력을 잡은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조 전 대표가 말하는 교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조 전 대표가 그토록 추앙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헌법을 유린하면서 군사쿠데타로 집권했다. 헌법을 유린한 것만큼 교양없는 자가 누구인가? 자유민주주의국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지 않고, 체육관에서 뽑는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양 있는 사람인가?

 

대한민국 불행은 헌법와 민주주의를 유린한 자를 아직까지 영도자로 추앙하는 조갑제 전 대표 같은 사람들 때문이지, 노 전 대통령과 그의 죽음 앞에 가슴이 저미고, 심장에서 흐르는 눈물을 흘리는 추모 물결 때문이 아니다. 특히 촛불 때문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진짜 세계 앞에서 대한민국을 향하여 침 뱉은 자들이 누구인지 따져보자. 헌법과 민주주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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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흐느끼는 눈물을 보면서, 그가 부럽다 | 耽讀 쓴 기사 2009-05-2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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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길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린다. 눈물 흘리는 이유와 방법이 다양하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자기 같은 서민들을 위해 힘쓴 일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자기들이 힘들어할 때 직접 변호해준 일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최고권력자의 권위를 다 내려놓고, 아버지와 이웃집 아저씨같은 그의 소탈함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의 영정 앞에 천 배 절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담배 한 개비 놓고 눈물을 흘린다. 추모객들을 위해 밥하고, 청소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조의록에 글을 남기면서 눈물을 흘린다.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들이 흘린 눈물을 합하면 강물이 되었으리라.

 

우리는 그 동안 정치인 죽음에 이토록 많은 눈물을 흘렸던 일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김구 선생 죽음 앞에 온 나라가 통곡했던 이후 처음일 것이다. 심장에서 나오는 눈물을 많은 이들이 흘리고 있다.

 

하지만 심장이 흔들리는 눈물을 보면서 분노를 참지 못하는 또 다른 이들이 있다. 그 눈물을 보면서 미쳐버린 눈물이라고 한다. 서거라고 쓰지 말라고 한다. 그이 장례에는 나랏돈 1원도 지원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여권 원내대표는 추모 물결을 보면서 '소요사태'가 우려된다고 했다.

 

권력은 또 대나무 만장은 시위 도구가 될 수 있다면서 PVC 만장을 만들었다. 이 나라 장례문화에 PVC 만장이 새롭게 태어났으니 특허 출헌하면 될 것이다. 유족들이 부탁하여 흔쾌히 허락한 김대중 전 대통령 추도사도 전두환과 김영삼 전 대통령과 형평성 운운하면서 반대했다. 화난 누리꾼은 그럼 전두환에게 추도사를 맞길까 따져 물었다.

 

이명박 정권은 겉으로는 애도를 표하지만 마음으로는 애도하고, 추도하는 물결을 막아버린다. 하기사 추도와 행사도 구분 못하는 이 나라 경찰들, 분향소를 치우라고 외치는 자치단체장, 차벽도 아늑하다고 말하는 서울경찰청이 있으니 PVC 만장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물결을 막아 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다해도 심장에서 나오는 눈물 그 자체를 막을 수 없다. 심장에서 나오는 눈물은 진심이며, 이들을 막으려는 이명박 정권의 수단과 방법은 진심과 진실을 막으려는 두려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럽다. 살아있는 권력이 공권력으로 아무리 막아도 막아도 심장이 흐느끼는 눈물을 흘리는 수많은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부럽다.

 

심장으로 흐느끼는 눈물을 이명박 정권은 보아야 한다. 심장이 흐느끼는 눈물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없다. 차벽과 경찰력, 언론을 장악하여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대통령 노무현보다 '바보 노무현'을 더 좋아했던 그 마음을 읽으면 된다.

 

참 그가 부럽다. 심장으로 흐느껴주는 수많은 이들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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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22) |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2009-05-2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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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2주일


57문: “육신의 부활”은 당신에게 어떠한 위로를 줍니까?


  답: 이 생명이 끝나는 즉시

         나의 영혼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 올려질 것입니다.

      또한 나의 이 육신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킴을 받아             

         나의 영혼과 다시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58문: “영원한 생명”은 당신에게 어떠한 위로를 줍니까?


  답: 내가 이미 지금

         영원한 즐거움을

         마음으로 누리기 시작한 것처럼   

      이 생명이 끝나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완전한 복락을 얻어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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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크 | 사회 2009-05-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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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상트 페테르부르크

방일권 저
살림출판사 | 2004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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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는 사방이 1백 여리에 인구가 1백 만이 되며 시가지와 집들이 웅장하고 큰데다가 네바 강이 온 도시를 껴안았고 황제의 대궐이 강에 임했다."

 

"아름답고 품위 있는 도시의 하나라는 말은 들었지만 처음 오는 사람에게도 안도감을 주는 도시이다. 혼자 솟은 집이 없고 혼자 낮은 집이 없다."

 

한 도시를 5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두 조선 사람이 평가한 글이다. 윗글은 1896년 충정공 민영환 선생이 쓴 글이고, 아랫글은 월북 작가 이태준이 1946년 <소련기행>에서 쓴 글이다. 이 도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이다.

 

민영환 선생은 정치인답게 제정 러시아 수도로 보았고, 이태준 선생은 문학가답게 소박하고 친밀함을 그렸다. 두 선인들이 50년 차이를 두고 다른 시각으로 보았듯이 또 한 명의 후손인 방일권이 60여년이 흐른 후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살림지식총서 105번째 책인 <상트 페테르부르크ㅡ유럽을 향한 창>에서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소개한다.

 

러시아 제국 중흥을 위하여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로 잘 알려진 표트르 1세와 뗄래야 뗄 수 없다. 표트르 대제를 통하여 페테르부르크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서유럽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러시아를 유럽과 버금가는 제국으로 중흥시키기 위해 표트르 대제는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는데 그 중심에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다른 곳으로 천도하는 것이었다.  

 

수도라면 지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자연환경도 뛰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곳은 태양은 더물게 찾아오고, 모든 곡식과 채소 익는 시기가 여름 석 달에 지나지 않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닌 사람살기 좋지 않고, 적들이 공격하기 쉬운 '상 피테르부르흐'였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는 "때로는 위대한 학자, 때로는 용사, 때로는 선원, 목수, 전지전능한 영혼을 가진 위대한 일꾼"이 되어 전통적인 차르 모습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장인이 되어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는 것이 러시아 제국 재건임을 확신하고 밀어붙였다. 그리고 표트르 대제는 1712년 페테르부르크를 수도로 공포했다. 이리하여 이 도시 이름이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즉, '성인 베드로'의 도시가 된다.

 

중흥의 빛이 어둠으로

 

민영환 선생이 1896년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표트르 대제가 페테르부르크 건설하기 위해 맨 처음 지었던 '아름다운 대저택'을 보고 적은 글에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물러나 황제의 높은 자리 사양하고 사업을 세운 처음에는

여러 백성들 가리지 않고 같이 살기를 즐겼네.

위엄을 온 세상에 떨치고 일의 시작으로 인했고,

이름은 조그만 기술로 전하니 가지의 남음에 붙였네

부지런하고 검소한 일생이 피득(표트르대제)의 이진 이인데

본래의 마음이 이 띠집을 저벌리까 두렵네."(민영환 <해천추범소집>) 중에서

 

즉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알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스러져가는 조국 조선을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를 중흥시켰던 것처럼 조선의 황제와 자신, 백성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중흥시키는 바라는 마음으로 그는 페테르부르크에 발을 내딛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충정공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위대한 제국, 아무리 화려한 도시, 아무리 위대한 권력일지라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듯이 러시아를 중흥시킨 페테르부르스크도 민영환 선생이 페테르부르크를 들렸을 때는 저물어가는 제정 러시아의 중심이었다. 

 

표트르 대제가 이룩한 중흥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왜 페테르부르크는 힘을 잃었을까?

"허위와 탐욕이 판을 치고, 인생 전체가 계급에 의해 결정되는 도시"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민영환 선생이 "금으로 만든 대궐"이라고 말한 것처럼 왕정은 '겨울궁전'을 시작으로 네 개나 되는 궁궐을 세웠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인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했다. 빛이 아니라 어둠이 지배하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어둠에 저항하여 혁명을 일으키다.

 

결국 인민들은 저항한다. 1860년대 혁명의 열병이 걸린 대학생들의 전제정 비판으로 시작으로 1905년 1월 착취당한 헐벗은 14만여 명 노동자들은 네 개 궁정이 모여 있는 궁정광장에서 저항하자 군과 경찰은 무차별 발포했다. 이른바 '피의 일요일'이다.

 

이 저항은 1917년 볼세비키 혁명 도화선이 되었고, 볼세비키는 1917년 10월 24~25일 밤 노동자와 병사들과 함께 혁명을 성공시켰다. 어둠에 저항한 인민들이 이룬 혁명으로 로마노프 전제왕가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페테르부르스크도 러시아 제국의 상징에서 사라진다.

 

러시아 문화사의 '황금시대'를 연 푸슈킨

 

페테르부르스크를 "유럽으로 통하는 창"이라 표현했던 푸슈킨, 표트르 대제와 함께 페테르부르스크를 상징하는 푸슈킨은 "북국의 꽃이자 기적인 이 청년도시는 어두운 숲에서, 물 고인 늪지에서 화려하게, 당당하게 일어섰다."고 하면서 "늙은 모스크바는 광채를 잃어버렸다"고 했을 정도로 푸슈킨은 페테르부르스크를 좋아했다.

 

푸슈킨은 러시아 문화사에서 '황금시대'를 연 사람으로 기억된다. "당대 귀족들이 최고의 유럽인다운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프랑스인 선생과 요리사를 고용할 때, 그는 진짜 러시아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러시아인의 가슴과 언어로 사고하였기 때문이다.

 

"거친 광야에서 영혼의 갈증으로 지쳐

갈 곳 몰라 헤매고 있을 때,

여섯 날개의 세라핌 천사

갈림길에 나타나 내 파을 막아섰다

일어나라 예언자여, 보고 들어라,

그리고 나의 뜻을 전하라.

땅과 바다를 두루 돌아다니며,

인간의 가슴으로 불 질러라'(푸슈킨 <예언자>) 중에서

페테르부르스크의 마지막 영웅 '빅토르 최'

 

푸슈킨이 모스크바를 늙었다고 했다면 나는 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스크)의 달과 별을 사랑할 뿐 "모스크바를 싫어한다"고 했던 시인이자, 록 가수가 있다. '빅토르 최'였다. 1962년 6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태어난 빅토르 최는 가난한 미장공과 공장 보일러실 화부로 살면서 암울한 미래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밤은 짧고 목표는 멀다. 밤이면 갈증은 더 일어나지.

부엌에 나가 물을 마시지만 한없이 쓰기만 할 뿐.

마지막 영웅 안녕, 너의 동무들도 안녕.

너는 홀로 있고자 원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빅토르 최 <마지막 영웅>)

 

하지만 이 마지막 영웅은 1986년 6번째 앨범 <밤>이 200만장이 팔려나가면서 진정한 영웅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당시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도 "동지들, 인민과 페레스트로이카를 위해 당신들의 힘이 필요하오 함께 일합시다"라고 제안할 정도로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영웅이었다.

 

우리의 가슴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웃음에, 우리의 눈물에,

그리고 우리의 맥박에 변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 (빅토르 최 <변화>)

 

젊은이들 가슴에 '변화'를 요구했던 빅토르 최는 고국 대한민국이 공연에 초청하자 흥분했다. 하지만 <마지막 영웅>처럼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 노랫말처럼 서울 공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간은 그에게 28살밖에 삶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신의 삶은 비록 스무 여덟에서 끝났지만 지금도 페테르부르스크에서는 "오늘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외쳤던 빅토르 최를 '마지막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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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조선일보 싸움은 끝났을까? | 인물 2009-05-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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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유시민 저
개마고원 | 200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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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론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조선일보>와는 쉴 새 없이 싸웠다. 대통령을 그만둔 후에도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왜 <조선일보>와 노무현은 싸웠을까? 아니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웠을까?

 

16대 대통령 선거를 넉 달여 앞둔 2002년 8월 '노의 남자'로 불리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쓴 <왜 노무현은 조선일보와 싸우는가>에서 그 실마리를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유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욕을 먹고 불이익을 당하면서 굳이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를 해명"하기 위해 책을 썼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선일보>와 싸우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싸움에는 대한민국을 반세기 동안 지배해온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목숨이 걸려있다. 어느 네티즌의 표현을 빌면, 우리는 '바스타유 감옥'을 부쉈지만 '앙시앵 레짐'을 해체하지는 못했다. 국민은 6월 항쟁을 통해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의 문을 여는 데는 성공했지만, 강고한 동맹을 맺은 극우언론과 극우정당의 사상적 ․ 정치적 지배에서 사회를 전면적으로 해방시키는 데까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노무현 전쟁은 바로 이 '앙시앵 레짐'의 해체를 겨냥한 것이다." (7쪽)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임기를 지냈지만 '앙시앵 레짐'을 완전히 해체시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노의 남자'답게 굉장히 노 전 대통령에게 너무 편파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시민은 말한다. 자신은 '객관적 관찰자'가 아니라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며, 공정한 것이 가장 편파적이라"는 한 누리꾼 말을 빌어 "노무현과 <조선일보> 가운데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분명하게 판단하지 못하거나, 어느 쪽인가를 편들면서도 싸움이 벌어진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책을 썼을 뿐이라고 했다.

 

노무현과 <조선일보> 싸움은 1991년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변인이 되었을 때 <조선일보>가 프로필을 소개하면서 "고졸 변호사 … 상당한 재산가"라는 제목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그 유명한 '호화 요트'였다. 노 전 대통령은 <조선일보>를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걸었다 . 다른 정치인들이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후 싸움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조선일보> 같은 거대 언론과 잘 지내려하지만 노무현은 달랐다. 그 이유를 유시민은 "노무현은 '불관용'과 싸우며 통합과 화해를 추구한다."면서 "그는 '조선일보'가 지향하는 '멋진 신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정치인이다. 둘 사이의 싸움은 필연적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럼 이 싸움이 언제 끝날까 "노무현이 대통령의 꿈을 접지 않는 한, 또한 '조선일보'가 '밤의 대통령'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조선일보'의 공격과 노무현의 반격은 끝나지 않는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이 싸움은 그의 임기 내내 계속될 것이다"라고 했다. 유시민 전 장관 말처럼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퇴임 후에도 <조선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1년 6월 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수구세력 선봉에 <조선일보>가 서 있다고"고 했으며, 2001년 12월 3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는 "조선일보는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 신문입니다. 친일경력과 군사독재정권과 결탁했던 과거가 있는 신문입니다. 기득권층의 편에 서 있는 신문이고,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적대적인 신문입니다. 그들이 왜곡보도를 하는 한 국민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신문과 어떻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겠습니까?"라면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약속은 대통령 임기 동안 지켰다.

 

하지만 이제 그가 갔다. 더 이상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다. 유시민은 마지막 글에서 "노무현이 낙선한다고 해도 <조선일보>가 웃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고 했다. 그 이유로 "노무현이 벌였던 <조선일보>와 일전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개혁, 국민톨합과 한반도의 평화를 가로막고 훼손하는 앙시앵 레짐을 백일하에 드러냈기 때문이라"했다.

 

유시민 말과 바람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앙시엥 레짐을 완전히 해체하지 못했지만 <조선일보> 실체가 무엇인지 드러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죽기 전까지 그토록 <조선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고 없는 지금과 앞으로 <조선일보>는 노무현과 싸울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노무현을 기다리고 있을까? <조선일보> 일전을 벌여 앙시엥 레짐의 완전한 해체를 실행에 옮길 사람은 누군인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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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을 두려워한 연주자, 글렌 굴드 | 인물 2009-05-2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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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계의 영원한 수수께끼" "고독과 광기를 예술로 승화한 음악가"로 불리우는 '글렌 굴드'를 을유문화사가 시리즈로 펴내는 '현대 예술의 거장' 일곱 번째 책에서 그의 절친한 동무였던 피터 F. 오스왈드가 쓴 <글렌 굴드-피아니즘의 황홀경>에서 만날 수 있다.

 

글랜 굴드는 평생 우울증으로 고생한 때문인지 여느 연주자들처럼 화려한 쇼맨십은커녕 박수조차 내키지 않을 정도로 청중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무대 생활도 짧았고, 삶도 쉰 살에 마침표를 찍었다. 무대 생활과 삶이 짧았으니 단순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에게 주목했을까?

 

"무대와 청중을 싫어했으나 그의 실황 연주가 스튜디오 녹음 연주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평도 있다. 또 낭만주의 음악을 꺼려했으면서도 젊은 시절 연주한그의 쇼팽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기억한다. 그는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음악에 대해 자신의 분명한 입장과 주관을 가진 음악가였으며, 자신의 해석을 옹호하기 위해 당시 음악 풍토를 거부하고 싸워나가 사람이었다."(10쪽)

 

모순과 독특한 면모는 매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이들이 그 수수께끼에 도전했던 것이다. 오스왈드는 굴렌굴드가 1957년 2월 28일 캘리포니아 한 무대에서 바흐의 바(F)단조 협주곡 연주를 들을 때에 "진정 종교적 계시와 같았다"면서 "정말 대단한 연주자였다! 음악을 극히 지적으로 이해하면서 그토록 멋지고 당당하게 몸으로 녹여 보여주는 마술과도 같은 솜씨를 지닌 피아니스트를 나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글렌 굴드는 글을 읽기도 전에 악보를 읽었고, 방금 들었거나 연주했던 작품은 다 머리에 담을 정도로 음악 재능이 뛰어나 글렌 굴드 어머니는 모차르트와 자주 비교하면서 "글렌이 세 살짜리 천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뛰어난 천재 글렌은 동무와 동떨어진 외로운 아이였다. 동무들은 난폭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평생 그와 함께 하면서 힘들게 했던 우울증의 시작이기도 했다. 동무없는 삶은 그를 우울증으로 고통스럽게 했지만 "그가 좋아했던 피아노나 오르간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화려한 고독"이었으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선물이었다.

 

글렌은 자기 방식대로 일을 해나갔다. 이 고집을 어느 누구도 꺾지 못했고, 현실과는 동떨어졌다. 자신보다 경험 많은 피아니스트에게 도움을 요청할 마음은 없었고, 자신을 교정해줄 다른 음악가들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극단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의지했다. 하지만 그의 연주를 들었던 한 이스라엘 주부가 그에게 보낸 편지는 글렌의 연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평범한 이스라엘 주부랍니다. 당신들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우리들을 싫어할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당신에게 충심으로 감사 드려야겠어요. 당신의 연주를 듣고 딴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먀칠 동안 그 여흥으로 살았습니다. 신의 축복을 기원하면서"(274쪽)

 

청중 앞에 나서기를 싫어했던 그는 1964년 "내가 사람들은 음식 정도만큼만 중요하다"면서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음식이나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깨닫게 됩니다. 나는 갈등이나 서로 대립하는 생각들에서 나 자신을 떼어놓고자 합니다. 수도원처럼 격리되어 지내는 것이 내겐 더 좋아요"라는 말을 잠시 무대를 떠났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녹음과 작곡, 프로그램 제작까지 했다.

 

솔직히 <글렌 굴드-피안즘의 황홀경>을 읽을 때까지 글렌을 몰랐다. 하지만 "고립은 인간 행복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낸 시간만큼 혼자 있을 때 시간이 인간에게는 필요하다"고 말한 글렌의 삶과 연주, 녹음과 작곡 인생은 왜 그를 고독과 광기를 예술로 승화한 음악가로 칭했는지 알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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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지배했던 조선의 성문화 | 역사 2009-05-2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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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의 성풍속

정성희
가람기획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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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칠세부동석과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성생활을 했을까? 그들은 어떤 성풍속과 성문화를 만들었을까? 궁금하다면 조금 오래 된 책(1998년)이지만 정성희가 지은 <조선의 성풍속>에서 우리는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조선의 성풍속>에는 결혼·임신·이혼·수절·성범죄·간통·매춘 따위를 통하여 조선시대 성풍속과 성문화를 알 수 있다.  조선 초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린 남존여비와 같은 불평등 사회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조선 초기 결혼 풍습에서 '시집살이'가 아니라 '처가살이'를 한다고 했다. 심지어 "며느리가 시부모 얼굴도 못 보는 형편이다"라는 말까지 유행했는데 이는 며느리가 시가가 아니라 친정에서 살았음을 보여준다. 시집살이는 2백년도 안 된 결혼 풍습일 뿐이다.

 

하지만 유교가 조선시대 이념을 자리잡으면서 '남녀칠세부동석' '남존여비'가 여성들 삶을 옥죄었다. 양반집 여성들은 바깥 나들이 자유를 제한 받았으며, 불효 중에 후손이 없는 일이 가장 불효라는 사상은 결국 대를 잇는 숙명을 떠안도록 했다.

 

아들을 낳기 위해 아들 낳은 집 금줄을 일주일 동안 차고 다니거나, 고추있는 금줄을 훔쳤으며, 상가집 상여 만장을 상주 몰래 찢어서 속곳을 해입었다. 경북 안동에서는 우물이나 냇물에 세로로 떠 있는 작은 나무토막이나 마디가 있는 짚토막을 물과 함께 마시면 아들을 낳는 '공구 뜬 물 마시기'라는 풍습까지 있었다. 심지어 "뒷간의 똥물이라도 마실 정성이 있어야 아들을 보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었다니 조선시대 여성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여성들은 아들을 낳지 못하면 '칠거지악' 중 하나를 어겼기에 언제든지 버림을 받을 수 있었지만 부인들이 남편을 버릴 수는 없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욕설만 해도 이혼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수절은 여성이 가야 할 길었으며, 재가도 금지되었다. 왜 조선은 재가를 금지했을까? 정성희 설명을 들어보자.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대개 전남편 집에 두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고려나 조선 초기까지 재가하는 여성이 자녀를 데리고 가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재가는 자식이 어느 아버지의 성씨를 따를 것인가 또는 어떠한 상복을 입을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남자 위주의 가계계승에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이렇듯 여성들의 재가 금지는 가계계승에 있어서 순수 혈통을 보장받고 싶어하는 남성들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여성의 정절은 단지 구실일뿐이었다."(122쪽)

 

순수 혈통을 위해 재가까지 금지했던 조선 양반네들은 부인만 평생 사랑하고, 함께 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기녀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기녀들을 허용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아내 없는 변방 군사들을 위해서"였다. 

 

기녀들과 함께하니 스캔들도 일어났다. 국상과 부모상을 당했는데도 기녀와 사랑을 나누다가 탄핵받아 파직되거나 곤장을 맞거나, 상투가 잘린 관리도 있었다. 예를들면 조선 태종 때 정승까지 지낸 조영무 아들 조윤이다. 태종은 조윤에게 "부친을 배반하고서 어찌 아비의 음덕을 입겠느냐"며 곤장 1백 대를 때렸다고 한다.

 

상투 잘린 관리는 세종 때 이조정랑을 지낸 이영서이다.  기녀와 간통을 하다가 발각되어 가족들에게 상투가 잘리는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영서는 생원 시절 성균관에서 일하는 종의 처를 범했다가 상투가 잘렸다. 이 때 병조정랑 이현로는 이영서에게 "자네 머리털은 꼭 베면 다시 나는 부추나물일세그려"라고 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조윤은 곤장 백 대를 맞았고, 이영서는 상투가 잘렸지만 여성이 간통을 했다면 사형이었다. 물론 세종 때 '감동' 같은 자유부인도 있었지만 이는 조선 초기였음을 알아야 한다.

 

<조선의 성풍속>는 19세기에 접어들면 성희(性戱) 묘사를 직설적으로 담은 춘화집이 유행한 사실도 실었다. 춘화는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김홍도와 신윤복이 많이 그렸다고 한다. 이들이 춘화를 그린 것에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성'이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당대 최고 풍속화가였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하고 있는 춘화들은 사실성과 예술적 격조를 갖춘 작품들이다. 따라서 이런 유의 그림들이 빠지기 쉬운 음란 외설적인 차원을 뛰어넘는 높은 희화성을 지니고 있다."(245쪽)

 

조선시대에는 동성애도 있었다. 동성애는 구중궁궐에서 한 평생 한 남자(왕)만을 바라보았던 궁녀들 사이에 심심치 않게 있었다. 세종대왕은 며느리를 두 번이나 폐출시켰는데 두 번째 며느리이였던 세자빈 봉씨는 궁궐 여종 소쌍이란 여자와 동성애 때문에 폐출되었다.

 

이렇듯 조선시대는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종속된 성풍속과 성문화였음을 <조선의 성풍속>는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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