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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농업, 죽은 학교를 살린다 | 인문 2011-09-1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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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변방의 사색

이계삼 저
꾸리에북스 | 2011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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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작과 함께 대한민국을 휩쓴 '안철수 신드롬'에 나 역시 휩쓸려 들어갔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나 '내가 왜 서울시장 선거에 관심을 가지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서울시장은 경남 진주에 사는 나와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오세훈식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경상남도에서 일어나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면 온 나라가 이렇게까지 안철수 광풍에 휩싸였을까? 논쟁과 논란은 있겠지만 지난 3년 반 동안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대세론'이 위협받는 정도의 '광풍'은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지방자치가 시작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서울 '중심' 사회임을 안철수 광풍은 증명했다. 이처럼 서울은 아직 견고한 '중앙'이자 '중심'이다. 사람들은 이 중심에서 벗어나면 뒤처지고, 무언가 잃을까봐 오늘도 놓지 않으려고 발부둥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람 냄새 나지 않는 그곳에서 아웅다웅하며 다투기보다는, 중앙이 생각할 수 없는 진실이 살아 숨쉬는 공간인 '지방'이자 '변방'(邊方 :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에서 더 깊은 생각과 사색을 통해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려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경남 밀양시에 있는 밀성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이계삼 선생이다. <한겨레>에서 글을 통해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부산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잡지인 <인디고잉(INDIGO+ing)>, 종이신문 <한겨레>, 인터넷언론 <프레시안>, 교육 월간지 <우리교육> 따위에 투고했던 글을 묶은 책 <변방의 사색>을 통해 그를 깊이 만났다. 

 

'교육 불가능' 사회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확인했듯이 기득권층은 아이들 밥그릇에까지 자본의 논리를 들이댄다. 줄을 세워 내 아이에게 친구를 이기도록 강요한다. 거기에 살림누리는 없다. 온통 어떻게 이길 것인가만을 외친다. 이계삼은 "수시모집 원수를 접수하는 3학년 교무실은 도떼기 시장", "공장 같은 학교", "껍데기가 알맹이를 완벽하게 밀어내고, 껍데기인지 알맹인지 구별도 못하는 학교교육"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교육 불가능'이라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해마다 졸업식 날만 되면 아이들이 속옷 바람으로 날뛰는 모습에 언론은 한탄한다. 지난해부터는 졸업식장에 경찰을 배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우리 어른들은 그들을 탓하기만 한다. 하지만 이계삼을 묻는다.

 

"졸업식 날, 팬티를 입고 거리를 질주하는 이 아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이 사회를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이들은 지난 10년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우리가 답할 때다."(42쪽)

 

과연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부결시킨 한나라당 의원들과 표결에 앞서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의원, 그리고 가스통 들고 '빨갱이' 잡아야 한다는 할배들, 특히 원수까지 사랑할 책무를 지닌 나 같은 목사들이 저주와 정죄를 쏟아내면서 팬티 입고 내달리는 그 아이들에 '답'을 줄 수 있을까. 자신있게 답할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하다.

 

'교육 불로초' 찾아나섰지만, 헛될 뿐

 

그 옛날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나섰듯이 우리는 '교육 불로초'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닌다. 연봉 18억 원을 포기한 스타강사 이범, 메가스터디를 일군 '손사탐'으로 불리는 온라인 강사, 파리목숨 같은 우리나라 교육부 장관과는 달리 20년간 교육부 장관이 안 바뀐 핀란드의 예를 '교육 불로초'라고 하며 좇고 있다. 과연 이것이 교육 불로초일까.

 

하지만 이계삼은 이범 특강을 듣고 "'교육'이 아니라 자기 아이만 생각나더라"라는 한 학부모를 말을 인용해 이범에게 '혹세무민'이라고 일갈하고, '손사탐'에 대해서는 더 냉혹한 판결을 내린다.

 

"손사탐 특강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창녀보다 못한 삶'이라고 아이들에게 들이대는 이 어이없는 공포의 상징 기제를 넘어서는 '다른 삶'의 형상이 우리에게 있는가를 생각했다. 결국 문제는 '삶'이었고, 이 싸움은 가치 투쟁이다. 열일곱여덟 살 아이들에게 '개새끼', '창녀'라고 들이대도 고발당하기는커녕 열광적으로 복종하는 이 현실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99쪽)

 

그럼 왜 이런 교육 불가능 상태가 되었을까? 이계삼은 학교교육이 '희망을 배신'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국어 선생님답게 요즘 아이들은 글쓰기를 할 때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며, 우리 시대 아이들은 생각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아이들 무기력 권태 뒤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대하고 복잡하고 짜증나는 세계가'가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교육 불가능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며 세계와의 대면을 외면하고 있는데, 어른들이 내놓은 대책은 이들을 더 생각없는 아이로, 억압 속으로 이끌어간다. 통탄할 일이다.   

 

"오늘날 아이들의 이러한 일탈과 저항을 학교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익히 알다시피, 학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저 학칙 처벌 규정을 턱없이 강화하고, 자퇴나 전학을 권고하거나, 퇴학시키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학교 바깥 기관에 떠넘기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다."(136쪽)

 

교육 불가능 상태의 해결 방안은 인문학과 농업

 

대책이 현실을 더 악화시키는 것을 내 아이들을 통해 보면서 이계삼 선생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 책임이 우리 어른들에게 있는데 아이들에게 채찍 들고, 징계하고, 줄 세운다. 그러니 교육 불가능일 수밖에.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이계삼은 굉장히 생경한 대안을 제시한다.

 

"나는 12세기 가톨릭 세계의 갱신을 꿈꾸었던 베네딕트 성인의 모토였던 '기도'와 '노동'이라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것은 종교적 언술이지만, 이것을 오늘날의 교육적 맥락으로 번역하면 '인문학'과 '농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148쪽)

 

우리 시대 교육계가 진단하는 것과 너무 다르다. 고개를 갸우뚱할 이들이 만을 것이다. 현실을 모른다고. 하지만 우리 시대는 인문학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이유도, '대학입시'를 위해서다.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고,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겠는가.

 

인문학은 곧 생각하는 힘이다. 생각하는 힘은 주체적인 사람으로 키운다. 전제사회, 기득권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우리 아이들에게 길러줌으로써 교육 불가능 현상의 해소는 시작된다.

 

농업이 죽은 학교를 살린다? '농자지천하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거창한 옛말까지는 가지 않을지라도, FTA에서 확인했듯이 농업을 공산품을 위한 들러리쯤으로 여기지 않는가. 이계삼의 대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농사를 지어보면 안다. 농사를 처음 짓는 사람도 씨앗을 뿌리면 생명이 움트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탁월한 농부라도 콘크리트에서는 생명을 싹 틔울 수 없다.

 

농업이 생명인데, 삽집을 살리기라는 최고지도자

 

그런데 이 나라 최고지도자는 '삽질' 곧 콘크리트를 통해 강을 살리겠다고 나섰다. 삽질 종착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는 지금, 죽어가는 강을 보면서도 '살리기'였다고 우기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이계삼은 30년 전 은어떼가 번쩍번쩍, 숭어떼가 첨벙첨벙, 어린 송사리는 꼬리를 쳤던 강 둔치에서 살았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은 무릎까지 차오는 맑은 물이 드넓은 모래벌이었고, 햇빛을 받아 달궈진 모래톱이 은빛 융단이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일주일간의 낙동강을 여행한다.

 

하지만 그가 본 낙동강은 흙탕물을 뒤집어 쓴 물고기가 꼴깍꼴깍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고, 물풀 하나 없고 송사리, 소금쟁이, 벌레 한 마리 없는, 생명이 완벽히 사라진 곳임을 알고 탄식과 절규한다.

 

공허하다. 헛것을 보는 듯 허망하다. 이 헛것의 물길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자전거를 탈 것이다. 헛것의 물길 위로 요트가 지나다닐 것이고, 유람선이 다닐 것이고, 좀 이어 화물선도 다닐 것이다. 실버타운이 들어서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이 헛것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볼 것이다. 헛것이다. 헛것으로 구축된 헛것들의 파노라마이다. 오직 헛것의 풍경을 위해, 지금 온 지축을 울리며, 강바닥을 탕탕 때리며 뒤집어엎고 파헤치는 이 참혹한 파괴와 죽음의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225쪽)

 

교육 불가능만 아니라 온 나라를 불가능 속으로 이끌고 있다. 죽임 잔치가 난무하고 있다. 파괴와 죽음이라는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는 탄식. 이 절규를 보면서 이계삼은 참 비관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영혼을 맑게 해주는 선생, 아이들에게 가장 귀한 선물

 

<하느님의 눈물>같은 글로 우리에세 생명누리, 살림누리를 글로 만나게 해줬던 권정생 선생의 오랜 벗인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가 이계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교육이란 영혼이 맑은 한 사람이 한 개인을 만나 그 개인의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위대한 젊은 스승을 한분 얻었다."

 

"영혼이 맑은 사람"이 영혼을 맑게 해준다. 내 아이에게 대박과 스타강사 만나게 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는 아주 낯설다. 하지만 이보다 더 사람냄새나는 것이 있나. 내 아이에게 영혼을 맑게 해주는 선생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부모로서 가장 가치있는 일임을 알자.

 

책을 덮는 순간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한 교육 불가능의 큰 틈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함께하면 견고한 방파제처럼 철옹성 같았던 교육 불가능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현장을 우리 눈으로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변방의 사색>은 내 자식만 잘되고, 사람 냄새 없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부둥치는 우리에게 선한 채찍이면서 '살림누리'로 들어가게 하는 생명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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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9 개설